나와 그다지 면식이 없는데도, 부고기사에 가슴이 멍해올 때가 있다. 지난 18일.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딱 그랬다.

1995년 부산 YWCA 대학부에서 진행한 ‘여성영화 읽기’에 한 대학교수가 초빙됐다. 강연을 마치며 그가 말했다.

“곧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릴 텐데, 여기 있는 학생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죠?”

“그런 거는 서울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요?”

학생들이 미심쩍어하자 그가 정색했다. “아니 반드시 할 겁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약속만 분명히 해주세요. 도와주겠다고.” 그가 김지석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부산예술대 교수였다.

칸 해변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6개월쯤 지난 어느날, 학내에 공고가 붙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그와의 약속이 떠올라 무작정 지원했다. 부산 남포동에 있는 극장 몇 군데를 빌려 시작한 제1회 영화제는 참 열악했다. 어떤 영화는 번역이 채 안돼 자막 없이 상영됐다. 예고된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상영이 중단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영화제 진행보다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감독과의 대화에 통역자가 없자 보다 못한 관객이 통역에 나서기도 했다. 경험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맨손으로 일군 축제였다.

그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쑥대밭이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좌파영화제’로 낙인이 찍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때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 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북영화제’로 격상됐다.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친박시장이 이끌던 부산시는 영화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지원을 주저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태풍이 해운대 백사장에 설치했던 야외무대를 날리면서 지난해 영화제는 최악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김 부위원장과 함께 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횡령,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특검은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뒷배경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많은 것을 되돌려놓고 있다. 그간 농락당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새 정부가 시급히 명예회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단순한 축제의 복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낳은 거위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영화제의 성공은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아시안필름마켓을 통해 수많은 영화와 시나리오가 팔려나갔다. 이는 한류붐의 원천이 됐다.

영화는 콘텐츠산업의 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제작, 배급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문화체육관광 분야 자료를 보면 콘텐츠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12.4명으로 전기전자(5.1명)나 자동차산업(5.7명)을 앞선다. 콘텐츠산업 종사자의 32%는 29세 이하 청년들이었다. 새 정부가 찾는 청년일자리의 보고가 여기 있다는 얘기다.

가을 바람이 불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문화예술 분야에 붙여진 블랙리스트를 시원하게 떼주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원칙에 대못을 박아주기를 더불어 기대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바다면서 일자리의 바다다.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국내외 영화가 발전하고, 사상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며,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어쩌면 김지석 부위원장이 꿈꿨던 세계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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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잘하는데 인성은 별로다. 서울대 출신에 대한 흔한 평가다. 학업적 성취에 비해 인성 발달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능력은 있지만 조직 친화력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팀워크를 경시하고, 조직 적응 노력을 소홀히 한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서울대 내부 평가도 비슷하다. 서울대 교지 ‘관악’은 서울대생의 심리적 특성으로 대인관계 능력 부족, 지나친 자기중심적·개인주의적 경향,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배려하는 공감 능력 및 공동체 의식 부족을 꼽았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이 어제 2017학년도 입학식에서 “최근 서울대인들은 부끄러운 모습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고 말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류철균·남궁곤 이화여대 교수 등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다수의 서울대 출신이 연루된 것을 염두에 둔 자성의 목소리로 보인다. 성 총장은 “서울대라는 이름에 도취하면 오만과 특권의식이 생기기 쉽다”며 “남의 의견을 경청할 줄 모르는 리더는 모든 이를 불행하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모든 이에게 예의를 갖추라고 주문했다.

[장도리]2017년 3월 3일 (출처: 경향신문DB)

성 총장의 연설은 지난달 서울대 재학생·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끄러운 서울대 동문상’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를 떠올리게 한다. 설문조사에서 ‘2016 최악의 동문상’ 분야 1위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2위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 3위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각각 선정됐다. 또 대한민국 헌정사에 해악을 끼친 인물을 가리는 ‘멍에의 전당’ 분야에서는 98%가 넘는 압도적 비율로 ‘법꾸라지’ 김기춘 전 실장이 꼽혔다. 네 명 모두 사법고시 합격자라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인성은 성적순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타 대학에 비해 서울대 출신에 대한 비판이 많은 것은 국내 최고 대학으로서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가 된다. 서울대 출신 입장에서는 ‘능력 탓할 게 없으니 품성 갖고 뭐라고 한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인성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이다. 그러니 서울대 출신에게 공동체 의식과 공감 능력을 특별히 더 요구할 이유는 없다. 그런 요구 자체가 서울대 특권의식을 조장하는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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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벌인 ‘관제 데모’ 실상이 드러났다. 청와대가 기획하면 재벌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자금을 대고, 극우단체가 움직이는 구조다. 세월호 유족을 조롱하는 집회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 등이 이런 식으로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공작을 주도한 인물은 다름 아닌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직 청와대 직원으로부터 김 전 실장이 2013년 말에서 2014년 초 극우단체에 자금 지원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정무수석실은 전경련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전경련은 극우단체에 차명으로 돈을 보냈다. 진보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우단체를 키운 것이다. 특검은 김 전 실장 등이 2014년 6월 극우단체를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게 한 구체적인 정황도 포착했다.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극우단체의 패륜에 시민들이 충격을 받고 의아해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린 것이다.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극우단체 대표들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도 적극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이 15시간이 넘는 고강도 특검 조사를 받았다. 김기춘 전 실장(왼쪽)이 15시간이 넘는 조사를 받은 뒤 18일 새벽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을 나선 뒤 차량에 탑승해 있다. 조윤선 장관도 21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은 뒤 이날 오전 6시께 특검 사무실을 나선 뒤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청와대 지시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 집회를 벌인 정황도 있다. 뉴시스에 따르면 자유총연맹의 관제 데모를 지시한 사람은 허현준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이다. 허 행정관은 2015년 하반기 자유총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세월호 진상조사 반대 집회’와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를 열어달라고 연락했다고 한다. 허 행정관은 전경련을 통해 극우단체 어버이연합 차명계좌에 수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참가자 1인당 2만원씩 줘 관제 데모를 열게 한 배후자로도 지목받고 있다.

권력과 돈으로 민의를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한 관제 데모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것도 김 전 실장 등과 청와대가 조종했다니 어이가 없다. 그런데도 김수남 총장 체제의 검찰은 손을 놓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대고 청와대가 시위를 사주했다는 의혹을 지난해 4월부터 수사하고 있지만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동생이 김 총장 부속실에 근무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관제 데모 의혹 역시 특검이 풀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전경련, 극우단체 간 유착 관계를 밝히고, 검찰의 직무유기 행위도 파헤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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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 명부(冥府)다. 저승이란 곳이다. 저승엔 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이 있다고 한다. 염라대왕은 그중 다섯 번째에 앉아 있다. 염라대왕 앞에는 아홉 면의 업경(業鏡)이 있다. 하나하나의 거울에 한평생 지었던 죄업이 차례로 떠오른다.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다. 일종의 CCTV다. 꼼짝 마라다.

이승엔 그런 거울이 없다. 그러니 마음 놓고 ‘모른다’고 발뺌할 수 있다. 김기춘은 1975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총지휘했다. 당시 한국에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이 대략 200~300명이었다는데 이 중 10%가량이 간첩으로 몰렸다. 혹독한 구타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 피해자들은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김기춘은 그때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기춘에겐 기억도 나지 않는 하찮은 사건으로 학생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수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반성도 사죄도 없었다. 단죄도 없었다.

김기춘이 마침내 구속됐다. 생애 첫 수감이다. 김기춘은 정부 비판적인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다 끊으라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 1만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는 40년 전에 “공산주의자들은 무좀과 비슷하다. 약을 바르면 잠시 들어갔다가 약을 바르지 않으면 또 재발한다”고 했다. 1975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602달러였다. 지금은 3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때에 비하면 소득뿐 아니라 삶의 질과 다양성, 지적 수준, 정보는 50배, 100배 이상 높아졌다. 김기춘의 시계는 40년 전에 멈춰 서 있다. ‘무좀 리스트’를 만들었던 그 사고 그 수준으로 지금 또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고은 시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 영화배우 송강호·김혜수·하지원, 영화감독 박찬욱 등이 들어 있다. 김기춘에겐 모두 무좀 같은 존재들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에 관여한 혐의로 지난 21일 새벽 구속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2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연합뉴스

194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작가인 돌턴 트럼보는 미국에서 무좀 취급을 받았다. 당시 미국은 좌파 성향의 극작가·감독·배우의 활동을 막기 위해 ‘할리우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매카시즘 광풍 이후엔 그 숫자가 더욱 불어나 많은 영화인들이 공산주의자 혹은 동조자로 몰렸다. 미 의회 청문회의 추궁에 트럼보는 “네, 아니요로만 대답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노예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를 잃었다. 생계를 위해 트럼보는 11개의 가명으로 작품을 썼다. 가명으로 쓴 ‘로마의 휴일’(1953), ‘브레이브 원’(1956)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식에도 나타날 수 없었다. 트럼보는 훗날 ‘악마의 시절’이라고 그때를 회고했다.

김기춘은 21세기 대한민국에 악마의 시대를 재현했다. 2014년 6월14일 김영한 민정수석 부임 첫날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공직·민간·언론을 불문하고 독버섯처럼 자랐다’ ‘정권에 대한 도전은 두려움을 갖도록 사정활동을 강화하라’고 했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으니 위태로운 자, 인간 쓰레기를 솎아내는 일을 점진적으로 추진토록 하라’고도 했다. 김기춘은 네, 아니요로만 대답하기를 강요했다. 아니요라고 하는 사람은 무좀으로, 독버섯으로,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라고 그는 명령했다.

대한민국 어두운 역사, 부끄러운 과거마다 김기춘 이름 석자가 빠지지 않았다. 부산 초원복집 지역감정 발언은 도청 사건으로 뒤집었다. 김기설 분신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으로 돌려놓았다. 세월호 참사는 유병언 잡기와 유족들에 대한 공격으로, 정윤회 문건은 지라시 유출로,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국기문란으로 몰아 상황을 반전시켰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태블릿 PC 출처 시비로 또다시 국면을 바꾸려 했다. 위기 때마다 본질을 덮고 “불이야” “강도야”라고 외친 사람을 잡아 가뒀다. 그는 법비(法匪), 법을 악용한 도적이라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말했다.

법비는 48년간 이 나라를 활개치고 군림했다. 그건 누군가의 용인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수언론은 그에게 ‘미스터 법질서’란 애칭을 붙여줬다. 거제 주민들은 3선 국회의원을 만들어줬다. 박근혜는 그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불러들였다. 부끄럽다. 이 나라는 친일도, 유신 잔재도, 군사독재도 제대로 청산해본 적이 없다. 대청소를 할라치면 미래로 가야지 과거를 들쑤셔서 어쩌자는 거냐고 덤벼든다. 그 결과가 김기춘이란 괴물을 만들었다. 온 나라에 제2의 김기춘이 즐비하다. 정의도 아니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는 말은 저승의 법정 몫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이승의 법정에서도 정의는 행해져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서도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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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39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증인 1명 심문에 적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재판이 2주 이상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나 우 전 수석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사안에 ‘모른다’고 답한 인물들이다. 헌재 출석 요구를 받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모두 불응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나 주권자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도 훼방을 놓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보도한 언론사와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고소했다. 자중해야 할 피의자가 수사 주체를 고소해 처벌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대면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 등 향후 특검 수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순실씨도 막무가내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검의 소환 통보를 6차례나 거부해 수감 중인 최씨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물가와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부채와 나랏빚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탄핵 국면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나라 바깥도 어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전 세계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헌재가 일단 내달 1일 김 전 실장과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등을 심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헌재의 최종 결론은 8명의 재판관이 내리게 됐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오는 31일 퇴임한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 찬성에서 8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 조건이 변해 박 대통령은 그만큼 유리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걸 노렸을 것이다. 헌재는 무책임한 박 대통령의 재판 지연 술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선고 일정 등을 가능한 한 일찍 알려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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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인 송수근 제1차관과 문체부 간부들이 어제 정부세종청사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했다. 김종덕 전 장관과 김종 전 차관에 이어 조윤선 장관까지 줄줄이 구속되자 부처 차원에서 참회하고 자성의 뜻을 밝힌 것이다. 송 차관은 성명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보루가 돼야 할 문체부가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 것에 대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면서 “통절하게 반성하고 있으며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특별검사가 진실을 밝히는 일에 적극 협조하고 책임도 감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체부의 참회를 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체부를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챙기는 도구로 마음껏 주물렀다. 자질이 없는 사람들을 장차관으로 기용해 사기업도 못할 일을 서슴없이 시켰다. 문체부는 정상적인 국가 조직이 아니었다. 유진룡 전 장관이 두 차례 박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의 부당성을 제기했다고 하지만 공허한 저항에 그쳤다. 오히려 정유라씨의 승마 대표선수 선발이나 1급 공직자 집단 사직 강요 논란이 보도됐을 때 문체부는 의혹을 부인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편법 설립도 문체부 간부와 직원들이 충실히 해냈다. 법령과 절차에 따라야 할 관료조직이 스스로 규범을 어긴 것이다. 강요당했다고 피해자로 자처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이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검 사무실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집행에 대해 작심한 듯 비판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유 전 장관은 어제 블랙리스트 작성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주도했으며, “헌법 정신을 훼손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김 전 비서실장은 지금까지 리스트 작성 지시를 부인하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며 이를 보도한 언론을 제소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운영은) 문화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로, 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명한 사람들은 나몰라라 하는데 문체부는 분명히 지시를 받았다며 사죄하는 희극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면 황교안 권한대행이 나서서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황 대행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문체부를 대표해 사죄한 차관은 언제 블랙리스트 사건 피의자가 될지 모르는 처지다. 1만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을 블랙리스트에 묶어 탄압한 국제사회의 수치를 수습하는 정부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사건은 공무원들이 권력자의 불법적 지시에 복종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부의 지시를 영혼 없이 따르기만 하다 사후에 참회하라고 공직을 맡긴 게 아니다. 공직사회 전체가 단단히 교훈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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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주말 동시에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문체부가 오늘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23일 (출처: 경향신문DB)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그 숫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한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은 작가, 최고 권위의 국제 문학상 수상 작가까지 망라돼 있다. 그들이 한 활동이라 해 봐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게 전부다. 헌법은 양심, 언론 출판,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다. 더구나 이 정부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내부에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빨간 딱지를 붙여 탄압했으니 그 이중성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두 사람은 구속 직전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컴퓨터를 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려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현직 장관 구속 1호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안게 됐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이라고 믿기 힘든 파렴치한 피의자들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작성의 최종 책임자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 그런 광범위한 명단은 한두 부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도 수차례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동자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상통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가장 심각하고 위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검은 문명국가의 수치인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반드시 찾아내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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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는 유대인 학살에 가장 악랄하게 가담한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수많은 증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법정 재판을 참관하면서 아렌트가 내린 결론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유대인을 색출하고, 그들을 열차로 호송하는 일을 맡았던 아이히만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심문하고 진술하는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행위를 ‘악의 평범성’으로 정의했다. 아이히만은 검찰의 살인죄 기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을 결코 죽인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어떤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아렌트가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 아이히만과 같은 추악한 악을 지나치게 인간의 보편적 악으로 설명하려 했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가 말하려는 악의 평범성은 매우 멍청하고 심오한 의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들, 자신의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들의 보편적 속성이다.

국정조사에 출석하여 증언하는 내내, 특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내내 자신은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김기춘에게서 아이히만과 같은 악의 평범성을 느낀다. 블랙리스트 명단은 오스트리아에서의 유대인 추방자 명단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신·공안 동맹체들은 예술이란 영토를 순결하게 만들기 위해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1만명에 가까운 예술가들을 추방하려 했기 때문이다. 김기춘은 박근혜와 동맹하여 블랙리스트 명단 작성을 주도했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마치 유대인 학살의 총책 하이드리히와 그 하수인 아이히만과 같다. 그들은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말로 ‘최종해결책’이란 그들만의 언어규칙을 쓰듯, 김기춘과 유신·공안 동맹체는 예술가들을 추방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라는 언어규칙을 사용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구속영장을 청구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20일 오전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블랙리스트는 문화공안정국의 인장이자, 유신의 징표이다. 박정희가 부일장학회를 강탈해서 만든 것이 5·16 장학회인데 이 장학회의 첫 수혜자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다. 검사였던 김기춘은 법무부 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유신헌법의 기초를 만든 10명의 실무진 중 하나였다. 김기춘은 나중에 자신의 부역행위에 대해 “과장이 아니라 평검사로 일하면서 상부에서 시키는 잔심부름 외에 한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아이히만이 한 말과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유신체제의 법령 입법과 개정의 공로와 실력이 높이 평가되어 유례없이 발탁”되었다고 적고 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죽음과 소녀>는 칠레의 독재정권하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진상조사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에스코바르는 진상조사를 총괄하는 인권 변호사이고, 그의 부인 파울리나는 독재정권하에서 끔찍한 성고문을 당했다. 에스코바르는 어느날 타이어가 펑크가 나 어쩔 줄 몰라 하다, 50대의 시골 의사 로베르토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까지 오게 된다. 그런데 파울리나는 남편을 태워준 그 의사 로베르토가 15년 전에 자신을 성고문한 자임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비록 그녀는 안대를 하고 고문을 당해 로베르토를 본 적은 없지만, 그자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파울리나는 결국 로베르토를 집에서 체포하고 몸을 결박한 후 그에게 총을 겨누며 이렇게 말한다. “너를 죽이는 거야, 그래서 내가 나의 슈베르트를 들을 수 있도록.”

김기춘은 대한민국의 로베르토이다. 그는 공안검사로서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수많은 양심수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그리고 유신의 딸을 보좌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가들의 명예를 짓밟고, 예술을 검열했다. 검열당한 예술가들은 마치 <죽음과 소녀>에 나오는 파울리나와 같다. 그녀가 로베르토를 향해 총을 겨누듯이 우리는 유신의 역사적 유산인 블랙리스트를 향해 죽음을 선언해야 한다. 블랙리스트는 유신 회귀의 악귀이자 역설적으로 그 종말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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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미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으로 결국 꼬리가 밟혔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을 작성하고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공무원들은 이미 일부 구속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나 사퇴는 고사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권자인 시민을 우롱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즉각 구속하고, 이들의 다른 의혹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

김 전 실장의 비위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수첩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김 전 실장은 사법부를 길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대통령을 비판한 야당 정치인을 검찰에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월호 관련 여론을 조작하려 했으며, 검찰 수사와 문체부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도 있다. 과거 독재정권의 정치공작을 연상케 한다. 특검은 이런 의혹의 사실 여부뿐 아니라 이런 일들이 김 전 실장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김 전 실장과 최순실씨의 관계도 의문이다. 김 전 실장은 결백을 강조하기 위해 최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했지만 누리꾼의 제보로 청문회에서 거짓임이 들통났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조 장관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고 하더니 지난 9일 청문회에서는 “예술인들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며 말을 바꿨다. 특검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블랙리스트가 작성돼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가 실행됐으며, 이 과정에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 장관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은 이미 구속됐다.

특검 수사의 최종 타깃은 박 대통령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시절 정부의 블랙리스트 적용 움직임과 관련해 2014년 1월과 7월 박 대통령과 면담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 부분이 특검 수사로 확인되면 그것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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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동안 우리 모두의 관심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집중됐다. 매일같이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흥분하고 분노했다. 그래서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이번 사태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이 TV 앞에 나섰을 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에 고정되었다. 몇몇 증인들의 용감한 증언이 나올 때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번 사태와 관련된 대부분의 증인들은 ‘모른다’ ‘아니다’ ‘기억에 없다’로 일관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유의미한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하였기 때문에 청문회 무용론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대화를 할 때 언어뿐만 아니라 손짓, 몸짓, 자세나 얼굴 표정 등을 이용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틀어 ‘비언어 의사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이라 한다. 그리고 이런 비언어 의사소통 덕분에 우리는 유의미한 말이 없었어도 증인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인류가 언어를 처음 사용한 시점이 언제인지는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언어를 진화시키기 이전의 원시 인류도 의사소통을 했다. 이들은 주로 동작과 소리, 그림을 이용하여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뜻을 전달할 수 있다. 비언어 신호는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 만나도 손짓, 몸짓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오른쪽)이 각각 6일과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언어 표현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다.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찰스 다윈은 인간의 기원에 대해 엄청난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비판에 맞서 그는 여러 권의 책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1872년에 나온 <인간과 동물에서 감정의 표현>이다. 이 책에서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비교하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동작이 사용됨을 강조했다. 이런 유사성은 인간과 동물이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고, 그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감정 표현에 대한 찰스 다윈의 놀라운 통찰력은 지난 몇 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비언어 신호는 말을 할 수 없는 아기도 사용할 수 있다. 아기와 아기를 돌봐주는 사람은 울음, 웃음, 얼굴 표정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또 우리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비언어 신호를 이용하여 상대방과 의사소통한다. 그래서 처음 말을 걸기도 전에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마음속에 그려져 있다. 이런 사실은 인간의 비언어 신호가 영장류와의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비언어 의사소통은 우리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깊숙이 배어 있다.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와 비언어 신호를 동시에 사용한다. 언어에도 말투, 높낮이나 억양과 같이 비언어 표현이 담겨 있다. 말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자세, 얼굴 표정, 응시, 손짓 등은 말하는 사람의 지위, 상태, 진실성 또는 성적 매력도를 암시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소통할 때 전달하는 의미의 반 이상(60~65%)을 비언어 신호에 의존한다. 물론 말을 하는 사람의 나이나 성별 또는 말을 하는 상황에 따라 이 수치가 크게 바뀔 수는 있지만 비언어 신호가 우리의 의사소통에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와 비언어 신호는 그 내용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이 둘이 서로 상충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언어보다 비언어 신호를 더 신뢰한다. 우리는 말이 값싸고, 진실을 쉽게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 얼굴의 윗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근육에 의해 주로 지배를 받지만, 얼굴의 아랫부분은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근육의 지배를 받는다. 그리고 두려움, 노여움, 기쁨, 슬픔, 역겨움 같은 주요 감정 표현은 얼굴 윗부분의 표정을 적어도 하나씩 포함하고 있다. 얼굴 표정 같은 비언어 신호가 얼굴 아랫부분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말보다 우리의 감정을 보다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비언어 신호는 언어에 비해 왜곡시키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능숙한 거짓말쟁이는 말과 더불어 비언어 신호도 상대방을 속이기 위해 동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할 때 쉽게 드러나는 비언어 표현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비언어 표현은 동공이 팽창하며 처음에는 눈을 껌뻑이지 않다가 나중에 자주 껌뻑이는 것이다. 일명 ‘동공지진’이다. 두 번째는 얼굴에 표정이 없고, 입술이 굳으며, 머리가 꼿꼿하다. 국회 청문회에서 나타난 익숙한 광경이다.

인간은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원을 얻거나 지키기 위해, 처벌이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을 탐지하기 위해 말이나 비언어 신호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우리 인간이 지닌 의사소통의 속임수와 독심술은 다른 어떤 동물의 능력보다 탁월하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이런 능력은 우리 의사소통에 속임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이권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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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무관 ㄱ씨의 표정은 어두웠고, 눈빛은 다소 지치고 불안해 보였다. ㄱ씨는 서류가방에서 꺼낸 파일을 매우 조심히 은밀하게 다뤘다. 제대로 펼쳐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엑셀 파일을 프린트한 서류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ㄱ씨는 급기야 한 카페에서 불만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배들도 ‘이런 것’은 처음이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앞으로 지침에 따라 어떻게 문화예술 현장에서 적용할지 걱정된다는 얘기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 ㄱ씨는 상급자에게서 건네받은 그 리스트를 산하기관 현장에 가져와 전달하고 적용토록 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을 각종 지원공모에서 떨어뜨려 배제시키려면 최종 심사 결과를 조작해야 하는 난관이 있었다. 수십명, 수백명도 아닌 수천명의 사람들을 합법적인 과정으로 제외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0대의 젊은 사무관 ㄱ씨는 2015년 가을 대학로에서 그렇게 자신의 책무와 무언가 불의하다고 느껴지지만 거역할 수 없는 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사무관 ㄱ씨의 사례는 해당 문체부 산하기관에서 근무한 전직 관계자가 경향신문 기자에게 증언한 내용이다. 사무관 ㄱ씨는 현재 세종시 문체부 청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8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왼쪽 사진)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오른쪽)이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

거대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하나둘 진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가 TV로 중계될 때마다 거짓말하려는 자들과의 진실공방을 지켜본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 등 핵심 관계자들은 여전히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증언이 거짓이라는 정황은 특검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문체부의 전·현직 장관과 차관, 국·실장들이 줄줄이 참고인이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또는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비밀스럽게 다뤄졌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블랙리스트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핵심 고위직뿐 아니라 몇년차 되지 않은 젊은 사무관까지 ‘거대한 블랙의 소용돌이’에 가담돼 있다. 공무원뿐 아니다. 민간인들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지역의 작은 교육기관 인문학 강좌 담당자조차 국정교과서에 반대 서명을 한 강사들을 깨알같이 걸러냈다. 정부 예산이 1원이라도 집행되는 곳이면 작품이든, 사람이든, 프로그램이든, 간행물이든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했다.

블랙리스트는 권력과 탐욕에 눈먼 자들의 손에서 시작됐지만 현장에서 ‘피를 묻힌’ 실무자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업무공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소 1~2년간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그들이 스스로의 이성적 판단을 내면 깊은 곳에 밀어넣은 채 비정상적인 업무를 침묵하며 수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국가에 의해 합법화된 범죄의 시대”를 살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부역자’를 양산한 박근혜 정권에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유대인 학살 핵심 책임자로 재판받은 아이히만을 두고 아렌트가 정의한 ‘악의 평범성’은 이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여하튼 ‘평범성’이란 단어가 취재 현장에서 만난 적지 않은 부역자들의 평범한 모습들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관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문체부 ㄴ씨는 예의 바르고 성실한 인물로 평판이 나 있었다. ㄴ씨는 최근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 마지막 공무수행 때도 겸손한 자세로 제 역할을 했다. ㄴ씨는 취업을 위해 여러번 낙방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고, 나중에는 죽을힘으로 공부해 고시에 합격한 평범한 사람이었다. 또 다른 관계자 ㄷ씨는 평소 느지막이 시작한 피아노 연주를 자랑하길 좋아했다. ㄷ씨는 평범한 사람들도 열정만 있으면 음악이든 뭐든 새로 시작해 삶의 성취와 즐거움을 이룰 수 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ㄱ씨, ㄴ씨, ㄷ씨 그리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생각으로 이 시대를 지나고 있을까. 일상에서 이뤄진 ‘악의 평범성’은 특별하지 않다는 그 특별함 때문에 더 두렵게 느껴진다.

블랙리스트의 어두운 장막이 명명백백히 거둬진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경험한 비이성적인 인식과 행위의 잔해가 어딘가에 살아남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을 때 불현듯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되는 것은 아닐까. 문체부는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 모두를 “범죄의 시대”에 몰아넣은 이들에 대한 확실한 단죄만이 두려움을 몰아낼 것이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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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검찰의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권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한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비리에 눈감아 오늘의 대혼란 사태를 야기했다. 김기춘·우병우 같은 검사 출신 인사들은 갖은 공작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홍만표·진경준 같은 전·현직 검사장은 공익의 대표자와 사회의 거악이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시민이 꿈꾸는 세상과 검찰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자명해졌다. 시민의 감시에서 벗어난 검찰,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부패한 폭압기구에 불과하다.

한국 검찰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2200여명의 검사와 7000여명의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찰은 그 자체로 직접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는 거대 권력이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도 지휘한다. 경찰이 형사 사건의 97%가량을 처리하지만 수사 주체는 엄연히 검찰이다. 경찰 단독으로는 압수수색 영장조차 발부받을 수 없고 경찰 조서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도 없다. 검찰은 기소도 독점하고 있다. 검찰이 봐주기로 작정하고 재판에 넘기지 않으면 아무리 나쁜 사람도 죄를 물을 수 없다. 검찰이 저지른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기관도 사실상 검찰밖에 없다.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검찰은 자체 비리에 둔감할 뿐 아니라 제 식구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검찰청 조사실에서 점퍼 지퍼를 반쯤 내린 채 팔짱을 끼고 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4일 (출처: 경향신문DB)

한국 사법시스템의 원조격인 독일은 검찰에 자체 수사 인력이 없다. 검찰에 기소·불기소의 재량도 주지 않는다.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 일본은 경찰이 체포·압수수색 영장 등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시민들이 심사하는 제도도 있다. 무작위로 뽑은 시민 11명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지방 법원마다 설치돼 검찰을 견제한다. 미국에서는 범죄 수사를 원칙적으로 경찰이 담당하고, 검사장을 시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 영국은 중대 경제 범죄가 아닌 이상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 않고 기소와 공소유지만 담당한다.

이들 나라에 비하면 한국 검찰의 권력은 가공할 수준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검찰을 두려워하지만 검찰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검찰에 부여된 막강한 힘은 정의의 편에서 공익을 수호하라는 취지지만 검찰은 강자의 이익을 위해 썼다. 부정한 정권일수록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검찰총장으로 세우고 민정수석을 리모컨으로 활용한다. 곽상도·홍경식·김영한·우병우·최재경을 거쳐 지금의 조대환까지 현 정권의 민정수석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청와대와 각 정부 부처는 매년 수십명의 검사를 파견받고 있다. 검찰은 정권과 거래하며 전리품을 챙긴다. 입법·사법·행정부의 주요 권력기관은 검찰의 재취업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직 공안 검사인 황교안과 박한철은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장으로 옮겼고, 국회는 검사 출신 의원들로 넘쳐난다. 검찰 공화국, 검찰 파쇼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정권과 한 몸이 된 검찰이 한 일은 시민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이번 게이트는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검찰은 부실·편파 수사를 했고 결국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일을 키웠다. 2년 전 정윤회씨가 청와대 핵심 인사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 정보를 교류했다는 청와대 문건이 공개됐을 때 검찰은 문건의 유출 과정만 문제 삼았다. 우병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비리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겨냥하는, 본말 전도로 일관했다. 최순실씨 관련 비리는 지난해 7월 언론에 최초 보도가 났지만 압수수색은 3개월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특검 출범이 기정사실화하자 검찰은 뒤늦게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하고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시민 통제에서 벗어난 검찰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취약하다는 증거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한 것도 무소불위의 검찰이 대통령 권력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권의 축소와 분산, 검찰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수사를 담당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한다. 공수처가 검찰의 의도적인 수사 기피와 검찰 부패를 막는 대증적 처방이라면, 검찰권 남용을 막는 근본 대책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가칭 수사청과 기소청을 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미국처럼 주민이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직접 선출하자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정권으로부터 검찰을 독립시키고 중앙집권적인 검찰 권한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법무부에 대한 시민 통제도 필요하다. 검사 출신이 아닌 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법무부 주요 보직을 전문 행정관료로 대체하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직적인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다만 수사권 조정 등의 문제는 검경 간의 권한 배분이 아닌, 인권 신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경찰의 인권 의식이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검찰에 더 이상 ‘셀프 개혁’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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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가 일단락됐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핵심 증인인 최순실씨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은 공개된 청문회장에 끝내 나서지 않는 등 시민 우롱으로 일관했다. 어제 국정조사특위는 19년 만에 구치소 현장 청문회를 했다. 최씨는 청문회장까지 나오기를 거부했고, 의원들은 수감동을 찾아가 비공개 신문을 했다. 검찰 출두 당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울던 최씨는 이날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고 의원들은 전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아느냐”는 질의에 최씨는 “모른다”고 잡아뗐고,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에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의혹에는 “딸은 이화여대에 정당하게 들어갔다”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의 통화 여부를 묻자 최씨는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기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백번 양보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답변 내용과 태도는 기가 찰 일이다. 최씨는 사익을 꾀하려고 정부와 청와대를 주물렀다가 국정 마비 상태로까지 몰고 온 장본인이다.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 도깨비가 박 대통령을 홀려 일을 했다는 건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앞줄 왼쪽)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오른쪽)이 26일 수감 중인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가 개최한 현장 청문회에서 여야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부구치소 제공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고질이 재발한 점은 아쉽다. 의원들은 의혹을 재탕, 중복 질문을 했다. 특히 새누리당 이완영·이만희 의원은 위증 교사 의혹을 불렀다. 이는 국정조사제도의 근간을 흔들 중차대한 문제로, 수사를 통해서라도 규명돼야 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있었다. 정·관·재계가 어떻게 최씨와 얽혀 이익을 주고받았는지, 그 민낯이 생중계됐다. 누리꾼의 실시간 제보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등 시민참여형 청문회 가능성도 보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증인·참고인 출석 거부와 모르쇠 답변, 위증 등을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 증언·감정법과 형법상 ‘국회 회의장 모욕죄’ 형량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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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22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했다. 법 지식을 악용해 출석요구서와 동행명령장 수령을 피하는 방법으로 국회를 농락한 그는 인터넷에 수배 전단이 돌고,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리자 결국 청문회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게이트 연루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위원들의 질의에 “모른다” “아니다”로 일관했다. 대통령 측근과 고위 관료들의 비리 감시 등 민정수석 업무를 소홀히 한 것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사판이다. 민정수석이라는 자가 이렇게 뻔뻔하고 무책임하니 박 대통령이 그렇게 됐는지, 아니면 밑에서 일하다보니 상사를 닮아서 그렇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게이트의 공범이라는 심증은 더욱 분명해졌다.

우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 등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문화계 실력자 차은택씨가 박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며 정부의 문화융성 사업을 말아먹고 있었지만 낌새를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석수 전 청와대 특별감찰관은 물론 언론사 기자들까지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던 최씨와 차씨의 전횡을 대한민국의 수사·정보 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민정수석이 몰랐다는 말을 믿으라는 소리인가. 그는 심지어 장모 김장자씨가 최씨, 차씨와 골프를 같이 쳤다는 구체적인 정황과 증언이 있는데도 장모와 최씨가 모르는 사이라고 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5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입을 굳게 다문 채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강윤중 기자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 시절 ‘정윤회 문건’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광주지검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와의 통화 내역이 담긴 해양경찰청 서버를 압수수색할 때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거나 압력을 행사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윤회 문건 사건 발생 당시 그가 최씨의 비위 행위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조사하지 않고 덮었다는 경찰관의 증언이 있고, 그에게서 압력을 받았다는 광주지검 수사진의 진술도 있다. 청와대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에도 일을 했다는 우 전 수석이 오히려 게이트를 처음부터 기획하고, 사건이 드러나자 증거를 조작하고 인멸하려 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 전 수석은 개인 비리도 모두 부정했다. 가족회사 정강의 자금 유용 혐의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청문회에서 밝힌 유일한 사실은 박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존경한다는 것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우 전 수석의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의 혐의는 물론 청문회에서 한 발언의 사실 여부까지 밝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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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날,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대답했다. 안민석 의원이 말한다.

“대통령의 머리로는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 동안 이야기할 만한 그런 지식이 없으세요. 무슨 얘기 했습니까, 30~40분 동안?”

새누리당은 ‘금도를 넘는 인신공격’이라고 비난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없다시피 했다. 안 의원의 발언에 대부분 동의했기 때문이리라. 대통령이 3차례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질문을 받지 않은 것,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의 지적 수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잖은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아는 게 없어도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걸 박 대통령이 보여준 덕분일까. 고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뒤 사인을 해줄 때 장래희망을 꼭 묻는데, 대통령이 꿈이라는 학생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나라를 잘 만들어 보겠다는 뜻을 가진 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통령만 한 ‘꿀직업’이 없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인 듯하다.

첫째,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관저에 있다가, 가끔 집무실에 나와서 남이 써준 원고를 읽기만 해도 2억1200만원의 연봉이 꼬박꼬박 입금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통령은 일어나시면 그게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관저에서 태반주사를 맞든 미용시술을 하든, 아니면 드라마를 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꿀직업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5년을 이렇게 놀아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를 받는데, 그게 자그마치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연금과 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이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둘째, 충성스러운 부하가 많다. 세월호 침몰 당시 대통령의 대처는 크게 잘못됐다. 대통령의 지적 수준으로 보아 일찍부터 대책본부에 나와 있었다고 결과가 크게 달랐을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국가적 재난 때라도 자리를 지키라고 그런 대우를 해주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7시간이나 자리를 비웠다면 욕을 먹어도 싼데, 그 공백을 입증해줄 수많은 증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닫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 대변인의 활약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지경인데, 그날 오후 대통령이 머리를 올리면서 보고를 받았다는, 자신도 안 믿을 말을 해명이랍시고 해대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셋째, 지인에게 한턱 크게 쏠 수 있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선물을 주면서 폼을 잡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사정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인데, 대통령이 되면 지인이 바라는 바를 다 들어줄 수 있다. 특히 좋은 점은 자기 돈을 전혀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이라더라”는 한마디로 공직자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고, 관저로 재벌 총수를 불러서 몇 마디 하면 수십억, 아니 수백억원의 돈이 생긴다. 나중에 걸리면? 걱정하지 마시라. 몰랐다고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넷째,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매일이 휴가지만, 그래도 다들 휴가 가는 여름이 되면 또 놀러 가서 모래사장에 낙서를 하는 것, 이게 바로 대통령의 행복이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우즈베키스탄 등 원하는 나라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국내에서도 그랬듯이 외국에 간다고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 눈에는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니 일석이조다. 오고 갈 때 편안한 전용기를 타고 가는 것은 보너스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대통령은 임기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들 중 박 대통령만큼 큰 잘못을 한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박 대통령은 감옥 대신 평소 좋아하던 관저에 머물고 있다. 이만한 죄를 짓고도 관저에 있을 수 있는 건 물론 자신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종북에 관한 한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남들은 빨간 옷만 입어도 종북으로 몰지만,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매우 비굴한 편지를 보낸 게 드러나도 종북이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아이들마저 선망해 마지않는 이 자리를 대통령이 물러나기 싫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던 3차 담화 때의 약속을 지키는 대신 영혼을 팔아치운 분들로 변호인단을 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모조리 부인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만, 박 대통령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래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대통령의 꿈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대통령의 건투를 빈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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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양에 관한 얘기는 그가 정계 입문한 18년 내내 입방아에 올랐다. 박근혜는 늘 짧게 말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간단명료하다.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알고 보니 그게 다였다.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선 정책 현안을 묻는 문재인의 질문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선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했다. 본질인 정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그간 보여준 행적과 언행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수단과 방법은 전무했다. “대통령이 돼도 걱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8회, ‘무능과 독선의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았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10회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50여회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는 4년 동안 5번 기자회견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질문은 받지 않았다. 토론 없는 회의, 대면보고 불가, 문답 기피는 박근혜의 실체다. 대통령 리더십은커녕 사회인의 기본 자질마저 갖추지 못했다. 그런 그가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집단 네다바이’를 당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는 보수·영남·고령층에 깔린 박정희 향수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신격화됐고, 박정희의 딸도 특별한 존재였다. 박정희의 후광을 빼놓고서는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둘째는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다. 박근혜는 야당 시절에도 ‘여의도 권력’이었고 확고부동한 ‘차기 대통령’이었다. 불러주면 감읍했고, 부르지 않더라도 줄을 이었다. 셋째는 포장이다. 박근혜의 불통과 오기, 무능, 책임 회피는 철저히 감춰졌다. 모든 단점은 신비주의로 포장됐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신중하다고 했고, 어쩌다 한마디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메시지라고 했다. ‘식인종 시리즈’를 얘기하면 세상에 이런 재밌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처럼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를 만들었다. 비극의 전조는 있었을 테지만 외면하거나 은폐됐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곧바로 ‘레이저’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원로그룹 7인회의 좌장 김용환조차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거명했다가 그 길로 정치생명이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여옥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외친 유일한 측근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박근혜 대표를 2년간 밀착 수행한 전여옥은 박근혜의 실체를 맨 처음 폭로했다. 전여옥에게 물어봤다.

-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 많았는데.

“컴퓨터로 치면 저장 용량이 이미 꽉 차 있다. 새로 타인의 삶을 보고 배우고 공감할 능력이 없다. 야당 대표 시절엔 그나마 종이에 써서 외우기라도 했다. 대통령이 돼서 다시 나의 집이었던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내 임무를 완수했다 생각하고 손을 놔버린 것 같다.”

- 박근혜 화법을 ‘베이비 토크’라고 했다.

“사용하는 단어를 세어 보면 100단어가 안된다. 문법도 표현도 안 맞는다.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는 말은 유치원생들이 ‘꽃이 아야야 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청와대 공주 수준에서 딱 멈춘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나.

“왜 몰랐겠나.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먼저 안 사람도 많다. 그런데 말을 안 하더라. 그게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란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 넘버원인 김기춘은 “우리 대통령은 차밍(매력적)하고, 디그니티(위엄) 있고, 엘레강스(우아)하다”고 했다. 이정현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다. 이들뿐 아니다. 박근혜를 인우(隣友)보증 선 인사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지금 이들은 서로 네 잘못이 크다며 싸우고 있다. 박근혜 코미디 2막이다.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박근혜가 무사히 임기를 마쳤으면 전직 대통령으로 그 위세를 계속 떨쳐갔을 것이다. 친박계도 건재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판을 휘저을 것이고, 현안마다 “좋아요” “나빠요”를 던지며 정치 영생(永生)을 누렸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런 꼴을 더 봤어야 할 판이다. 반면교사도 훌륭한 선생님이다. 이젠 인물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눈도 생겼다. 지역·세대 투표도 달라질 수 있다. 천만다행이다. 그러니 박근혜에게 속았다고 속상해할 일만은 아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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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한국인은 참으로 위대했다. 100만, 200만명이 저마다 촛불 하나씩을 들고 몰려나와 근 두 달 동안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는 모습을 나는 프랑스 남쪽 님(Nimes)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거북아, 거북아/ 네 목을 내어라…”를 외쳤던 신화를 떠올리게 하였으니, 만인의 입이면 무쇠도 녹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후세의 사가들은 2016년 12월9일,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어떻게 기록할까?

돌이켜보면, 4년 전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부터 그는 좀 이상했다. TV토론에 나와 “그래서 내가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잖아요”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웬만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댓글조작 의혹을 받는 국가정보원 여직원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것을 두고 “사람들이 그녀를 감금했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앉은 그는 어쩌면 지금도, 나쁜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감금돼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첫 재판관 회의가 열린 헌법재판소 앞에서 경찰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언어구사력이 극히 저조해서 논리적 사유가 불가능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것은 세계적인 스캔들이 될 거라고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급기야 그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보수’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물론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내세웠던 공약들이라는 것이 ‘진보’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박정희’는 이 땅의 우상이었다.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면서 그가 저지른 온갖 만행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그 18년 동안 이룩한 경제적 성과만을 내세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퇴행적 로맨티시즘이 상당수 한국인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식 개발과 7·4·7 공약을 내세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옛날에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삽을 들고 4대강을 파기 시작했다. 어떤 외신은 그런 그를 보고 “뇌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박정희를 잊지 못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그 단세포적인 논쟁은 이제 너무나 식상하고 피곤한 것이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그것이 보혁 논쟁의 출발점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박근혜의 출현에 대하여 어떤 외신은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웃었지만 소용없었다.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따위는 따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정말이지 절망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땅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 낡은 우상을 사람들이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반신반인의 그 위대한 박정희의 딸’은 알고 보니 청와대 관저에서 각종 주사나 맞으면서 최순실이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는 의혹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비서실장 김기춘은 유신시절에 박정희 밑에서 배웠던 온갖 독재적 탄압을 오늘날 버젓이 음모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놀랍고 끔찍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근혜가 탄핵심판대 위에 올랐다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뇌리를 점령하고 있던 그 지긋지긋한 우상이 통렬하게 허물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우상을 허물어야만 비로소 사람들은 보수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차가운 사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일지 | 소설가·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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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에는 여러 가지 눈물이 있다. 기쁨의 눈물, 억울한 눈물, 겁먹은 눈물, 회한의 눈물, 고통의 눈물, 웃음 끝의 눈물, 마지막 숨을 몰아쉰 눈물, 웃픈 눈물, 거짓 눈물…. 눈물을 흘리는 사람과 상황에 맞춰 이름을 짓자고 하면 세상에는 사람들 생김새만큼이나 많은 눈물이 존재할 것이다.

이날의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을까. 지난 9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날이다. 남보라색 재킷에 회색 바지를 입은 그는 오후 4시53분 청와대 위민1관 영상 국무회의실에 입장해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대통령 신분’이란 껍데기만 갖게 된 그는 4분54초간 모두발언했고 우리는 TV로 이를 지켜봤다.

이후 TV로는 볼 수 없는 비공개 간담회가 이어졌다.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자리였을 것이다. 그는 국무위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악수하며 개별 인사를 나눴고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황교안, 유일호, 이준식 등 국무위원들과 한광옥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끝내 모두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영국 BBC방송이 9일 페이스북 계정에 ‘박근혜가 탄핵안 가결로 한국 대통령직에서 축출됐다’는 문구와 함께 박 대통령의 사진을 올렸다. BBC 페이스북

우리는 최근 그의 눈물 몇 가지를 기억한다. 지난 1일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이후 35일간의 칩거를 깨고 화염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점포 839곳 중 679곳이 소실된 곳이다. 소실된 점포 가운데는 2005년 당시 화재로 빚을 지고 아직 그 빚에서 벗어나지 못한 곳들도 있다.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상인들의 피눈물이 뚝뚝 떨어진 자리다. 무엇을 위한 방문이었는지 그는 10여분간 일부 지역을 둘러본 뒤 시장을 빠져나왔다. “청와대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지난달 4일의 눈물도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2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면서다. 올해 최대 유행어를 낳은 이날 담화문에서 그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며 눈물을 보였다.

좀 더 시간을 돌려보자. 2년7개월 전 2014년 5월19일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9일 만에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된 세월호 참사 대국민담화다. 그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두 줄기 굵은 눈물을 흘렸다. 또렷이 정면을 응시한 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비장한 목소리로 희생자들을 호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 “감사합니다”라는 맺음말에선 할 일을 잘해낸 사람의 당당함마저 느껴졌다. 그때까지도 닦지 않은 눈물은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생중계됐다. 이때의 눈물이 무엇이었는지 이후 그는 스스로 증명해보였다.

대통령의 눈물은 그때마다 회자가 됐다. 정치적 해석은 물론 심리학, 생물학 등 과학 영역의 분석 대상이 되기도 했다. 눈물샘의 위치, 주름살의 모양, 눈물이 맺혔다 내린 초시간, 흘러내린 뺨의 위치 등을 근거로 눈물의 진의를 따지는 정밀한 분석도 나온다. 과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지지율을 올리는 반전도 낳았다. 반대로 조롱과 분노를 일으키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에도 자격이 있을까. 지난 3일 232만명이 촛불을 든 6차 촛불집회에서는 세월호 미수습자인 단원고 조은화양의 엄마가 무대에 올랐다. 은화 엄마는 “지금도 팽목항에서 4월16일을 살고 있다”면서 “최소한 엄마로서, 최소한 사람으로서 은화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왜 세월호가 인양돼야 하는지 담담히 그 정당성을 얘기하는 엄마는 울먹이지 않았다. 말을 끝맺을 때서야 그리움과 억울함에 울음을 토했다.

대통령이 탄핵 후 국무위원들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 또 다른 눈물이 있었다. 국회 방청석에서 탄핵 표결을 지켜봤던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엄마들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탄핵 가결 후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무겁게 입을 뗐다. “이제 시작이죠. 국민들의 힘이, 촛불의 힘이 이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기쁜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2초간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킨 그는 대통령이 하루라도 더 청와대에 있는 것은 국민에게 고통이라고 분명히 했다.

지난 10일 탄핵 가결의 한 파고를 넘긴 광화문광장과 전국에서는 또다시 104만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을 든 고사리손들도 많았다. 이날의 촛불은 한층 더 밝았고 더 예리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황교안이 웬 말이냐” “김기춘·우병우를 구속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한상균을 석방하라”…. 소리 없이 자신의 몸을 태워 칠흑 같은 어둠을 몰아내는 촛불은 반전의 눈물을 허락지 않는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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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씨에 맞먹는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왕실장 또는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그는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했다. 최씨가 비선이라면 김 전 실장은 공식 라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이 머리 손질을 했다는 보도에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태반주사 등 각종 주사를 맞은 사실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최씨를 만나거나 본 적도 없으며, 지난 10월 대통령의 연설문이 들어있는 최씨의 태블릿 PC 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최씨 존재를 알았다고 말했다. 나라가 큰 혼란에 빠지고 박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직전이지만 비서실장으로서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다.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게 전부였다. 그의 발언대로라면 그는 청와대 허수아비였다. 무능하고 어리석다는 말을 듣더라도 형사처벌을 피하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김 전 실장과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아예 청문회에 나오지도 않았다. 가족 모두가 일부러 집을 비워 국회가 보낸 등기우편과 동행명령장을 받지 않은 것이다. 당사자가 직접 받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는 점을 악용했다. 검사 출신인 우 전 수석은 누구보다 엄정한 공권력 집행을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미 게이트의 공범에 준하는 수사를 받고 있다. 그의 청와대 입성을 최씨가 막후에서 도왔다는 설도 있다. 그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회장이 최씨·차은택씨 등과 골프를 친 사실도 확인됐다. 우 전 수석은 김 전 실장과 2014년 12월 ‘청와대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을 은폐·조작하고, 검찰의 수사 정보를 기업에 유출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이들이 재직했던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에 설치된 국가기관이다. 정부 부처와 행정기관 등을 통해 국내외에서 발생한 일들을 시시각각으로 보고받고 필요한 조치들을 하달하는 민생과 국정의 컨트롤타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주도하는 비서실은 민생과 시민의 안전은 안중에 없었고 대신 국정을 빙자한 음모가 판을 쳤다. 김 전 실장 밑에서 우 전 수석의 전임으로 8개월간 일한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수첩 메모를 보면 기가 막힌다. 김 전 실장은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하므로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길을 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김 전 수석에게 지시한 정황이 담겨 있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는 양창수 대법관의 후임으로 호남 출신은 배제하고 검찰 몫 획득을 위해 양승태 대법원장 등과 교류할 것 등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도 있다. 사실이라면 사법부 독립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야당 정치인에게 공작을 펼친 정황도 있다. 김 전 실장 지시에 따라 박 대통령을 모독한 장하나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는 취지의 메모 등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월호 관련 여론을 조작하려 한 의혹도 있다. 이 모든 내용에 대해 김 전 실장은 “그렇게 이야기한 일이 없다”며 부인으로 일관했다. 석고대죄해도 부족한 그가 국회 청문회에서 또 한 번 주권자를 능멸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는 또 다른 차원의 국정농단이 대통령비서실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영수 특검은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이들의 비위를 밝히고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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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규명할 특별검사로 박영수 전 서울고검장이 임명됐다. 박영수 특검은 “수사영역을 한정하거나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정파적 이해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인 미증유의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혐의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시민들의 퇴진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행방을 둘러싼 ‘7시간 의혹’은 여전하다. 박 특검의 말처럼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수사 대상이나 범위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박 특검은 무엇보다 시민들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 특검은 국정농단으로 금이 간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95%의 촛불 민심으로 출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특검 수사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의 비리를 드러내 처벌하는 것 외에 망국적인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박 특검이 대검 중수부장 시절 부하였던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관계를 의심하지만 사사로운 인연으로 나라의 명운이 달린 수사를 그르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비리를 밝히는 것도 이제 특검의 몫이 됐다. 이들은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하는 수준을 넘어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넣고 수사정보를 유출해 ‘부두목’ ‘행동대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검찰과 사건 관련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김 전 실장은 최씨와 차은택씨 등 사건의 주범들을 이미 2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 전 수석은 2014년 12월 민정비서관 시절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을 은폐·조작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등 사건의 핵심 피의자이다. 우 전 수석의 청와대 입성을 최씨가 막후에서 도왔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실망스럽다. 검찰은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을 각각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지만 박 대통령을 최씨 공범으로 규정하고 재벌 총수들을 소환할 때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검찰에도 당부한다. 특검이 임명됐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 김 전 실장과 우 전 수석 비리 의혹 등 남은 수사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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