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법부가 13일 일흔 돌을 맞았다. 그러나 ‘양승태 사법농단’의 짙은 그늘 속에 법원도, 법관도 축하받지 못했다.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삼가온 문 대통령이 ‘재판거래’라는 용어까지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수사 방해’에 가까운 법원의 행태로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질타로 봐야 할 것이다.

사법의 위기는 총체적이다. 정의와 인권의 보루여야 할 법원이 온 나라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관사찰·재판거래 의혹으로 전·현직 법관들이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고,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대법원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에만 골몰해 압수수색영장을 줄줄이 기각하고 있다. 그사이 핵심 피의자가 주요 증거물을 인멸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진상규명을 촉구해온 전국법관대표회의조차 ‘영장 기각률 90%’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침묵하고 있다. 오죽하면 ‘신(新)사법농단’이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에 대해 “매우 참담한 사건”이라며 “사법부의 대표로서 통렬히 반성하고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일선 법관의 재판에는 관여할 수 없으나, 사법행정 영역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법원장은 시민의 분노와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듯하다. 지금은 법원 내부에서 통용되는 관행으로 시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관련 법률과 내규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무엇이든 결단하고 행동할 때다. 피의자와 인연이 있는데도 영장심사를 회피하지 않은 영장전담판사는 교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판사 1명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체제에서 탈피해 합의부(법관 3명) 형태의 전담 재판부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개혁이란 없다. 제 살을 도려내는 아픔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사법부의 모든 구성원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사법농단 진상규명에 협조해야 한다. 과거의 재판거래 의혹은 덮어둔 채, 앞으로 ‘좋은 재판’을 하겠다는 다짐은 허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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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며 기밀문건을 무더기로 들고나왔다. 검찰이 이를 파악하자 “증거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압수수색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자 약속을 깨고 돌변했다. 해당 문건을 파쇄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분해해 버렸다. 일반 기업에서 퇴직한 사람이 벌인 일이라 해도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다. 그런데 이처럼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을 공개적으로 모욕한 장본인이 차관급 대우를 받던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라고 한다. 납득하기도, 용서하기도 어렵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9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양승태 사법농단’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해오던 대법원 내부 문건 수백건을 폐기한 사실을 확인했다. 유 전 수석연구관은 일제 강제징용, 통합진보당 사건 등에서 ‘박근혜 청와대’와의 재판거래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검찰은 압수수색영장 심사기간이 이례적으로 사흘이나 걸렸고, 기각한 판사가 유 전 수석연구관과 함께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던 관계임을 주목하고 있다. 법원이 증거인멸을 사실상 방조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법원은 물론 부인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행태에 비춰볼 때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쉽지 않다.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압수수색영장은 10건이 청구되면 1건 정도 발부됐다. 2016년 전국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89.2%였다. 사법농단 수사 과정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 90%(지난 2일 기준)는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책임이 크다. 법원이 수사 협조는커녕 수사 방해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는데도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개별 법관의 영장 심리에 개입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사법행정의 전권을 쥔 대법원장으로서 창의적이고 대담한 조치를 강구하라는 것이다. 13일 열리는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선 강력하고도 실천적인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회 법사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수수방관하던 정치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정조사를 통해 위법행위가 드러나면 해당 법관에 대한 탄핵도 추진해야 한다. 국회는 사법농단 특별법 제정을 통한 특별재판부 설치 등에도 적극 나서기 바란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오만과 일탈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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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법원의 예언자였을까. “한 고위 법관은 ‘양 후보자가 조직 장악력이 뛰어나 사법행정을 통해 재판에 영향을 줄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한겨레 2011년 8월19일자). ‘양 후보자’는 기사 게재 전날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양승태 변호사를 가리킨다. 우려는 적중했다. 이제 양승태라는 이름 뒤에는 사법농단이란 문구가 따라다닌다.

그런데 사법농단이 적확한 표현일까. 군이 적을 향해 겨눠야 할 총부리를 시민에게 돌렸다면? 군사쿠데타라 부른다. 법관이 사실과 증거 대신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재판을 했거나 계획을 세웠다면? 사법쿠데타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심한 표현이라는 시각이 있겠다. 사람이 죽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1·2심 판결을 깨고 KTX 승무원들의 복직 길을 막아서자 세 살배기 딸을 둔 해고자가 목숨을 끊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깨고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이후 노동자 5명이 세상을 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7월27일 (출처:경향신문DB)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진상규명을 위해 군·검 합동수사단이 구성됐다. 시민은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해 기무사의 실상을 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세 차례나 문건 관련 메시지를 내놓았다. 양승태 사법농단을 두고도 검찰 수사팀이 꾸려지긴 했다. 그뿐이다. 대법관과 법원장들은 태연히 재판거래 의혹을 부인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를 약속했으나, 자료를 내놔야 할 법원행정처는 요지부동이다. 양승태 체제에 순치된 일부 판사들은 사실상 ‘관선변호인’ 노릇을 하고 있다. 국회는 법사위를 열었지만 안철상 행정처장의 “재판거래를 인정할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듣는 데 그쳤다. 청와대는 언급을 삼간다. 삼권분립이란 헌법정신 때문이다.

법원은 이를 틈타 치외법권지대가 되어가고 있다. 최근 사법농단 수사팀은 17건의 압수수색영장(e메일 보전조치 영장 포함)을 청구했다. 발부된 것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에 대한 2건뿐이다. 발부율은 11.76%다. 지난 1~6월 서울중앙지법의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80.85%(법원통계월보)였다.

기각 이유를 살펴보자. 현직 대법관 연루 정황까지 제기된 부산 법조비리 은폐 의혹 사례다. 검찰은 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인사심의관실 및 문모 전 판사의 사무실, 현기환 전 정무수석(구속 중)의 구치소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①윤리감사관실의 경우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고 ②인사심의관실 자료는 “국가 중대 이익과 관련된 공무상 비밀에 해당할 여지”가 있으며 ③문 전 판사 건은 “별건수사”이고 ④현 전 수석 수감실은 “증거물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없다”며 기각했다. 그러나 ①행정처는 윤리감사관실 자료 제출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며 ②법관 인사자료를 내준다고 국익이 훼손된다는 건 논리적 근거가 약하다. ③과 ④는 더 군색하다. ③절도범 쫓다가 살인범 목격하면 외면해야 하나. ④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구치소에 대한 압수수색은 왜 허락했나.

양승태 체제를 옹호하는 일부 법관들은 시민의 합리적 의심을 일축한다. 우리가 위법이 아니라면 아닌 거다, 우리는 사법발전을 위해 노력한 것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대법원 상고심 사건 중 단순한 사건만 별도로 맡는 법원) 도입에 욕심을 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검찰이 확보한 문건들을 보면, 양승태 대법원은 ‘법관의 해외공관 파견’과 ‘고위 법관의 외국 방문 시 의전’ 같은 사안까지 알뜰히 챙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행정처의 재판개입 시도가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사법정책적 목표 외에 극소수 엘리트 판사들의 ‘복지 증진’ 차원에서도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낯부끄러워서라도 법복을 벗어던지는 고위 법관 한 사람쯤 나와야 옳다. 과도한 기대인가.

재판거래 의혹의 피해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수사 대상자들이 법원에 남아 스스로를 변호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김 지부장의 말처럼 피의자 혹은 잠재적 피의자들이 수사를 방해하는 상황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영장심사는 물론 기소 후 재판 과정에서도 공정성을 담보할 장치가 절실하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사법농단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안 2건을 발의할 예정이다. 전자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추천위원회를 설치해 여기서 추천된 판사들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자는 재심사유를 확대해 사법농단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길을 넓혀주는 법안이다. 이제 국회가 적극 나서 신속하게 입법해야 한다. 법원은 현대판 ‘소도(蘇塗·삼한시대 죄인이 도피해도 잡지 않았던 신성지역)’가 아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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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임 전 차장이 은닉한 자료를 확보했다. 검찰은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는 실패했다. 법원이 임 전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영장만 발부하고 나머지는 모두 기각했기 때문이다. 수사 차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7월 23일 (출처:경향신문DB)

압수수색은 강제수사의 기초단계이며, 인신 구속을 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혐의 일부라도 소명되면 영장을 발부해온 것이 관행이다. 영장을 기각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권을 침해할 만큼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각 사유가 사태의 심각성과 동떨어진 데다, 담당 판사의 이력도 석연치 않다. 해당 판사는 영장이 청구됐던 박 전 처장이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할 때 배석판사를 지냈다. 서울중앙지법은 “함께 근무한 경력은 형사소송법상 재판 회피 사유가 아니다”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이미 해당 판사와 박 전 처장의 관계를 들어 공정성 논란 가능성을 보도한 터다. 법원에서 지시하든, 본인이 선택하든 영장심사를 다른 영장전담 판사에게 넘기는 것이 옳았다.

애당초 검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한 것도 법원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대법원의 행태는 약속과 달랐다. 폐기되지 않은 임 전 차장 등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제출을 거부하고, 자의적 기준으로 선별한 파일만 검찰에 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하드디스크 데이터가 디가우징으로 영구 삭제된 사실도 드러났다.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법원 내에서 자료를 열람한 뒤 복제하는 일은 허용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 컴퓨터에서 의심스러운 문서를 발견하고도 여전히 법원의 거부로 반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은 왜 자신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지, 지금 ‘김명수 코트(court)’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시하기 바란다. 사법부의 신뢰 회복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만 가능하다. ‘제 식구 감싸기’로는 시민의 분노만 키울 뿐이다. 법원이 검찰 수사에 계속 협조하지 않는다면, 국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법농단 사태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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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김선수 변호사와 이동원 제주지법원장,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을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것은 대법원 구성 다양화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것으로 보인다. 세 사람은 역대 대법관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의 범주를 모두 벗어났다. 김 변호사는 법원·검찰을 거치지 않은 순수 재야 출신의 노동·인권변호사다. 이 원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법원행정처 근무 없이 재판에만 전념해온 정통 법관이다. 노 관장은 젠더 관점을 지닌 이화여대 출신 여성 법관으로 여성의 지위와 권한에 관해 주목할 판결을 여럿 남겼다. 대법원은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 기대를 염두에 두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에 대한 인식 등을 고려해 선별했다”고 밝혔다. 외형상 인적 구성이나 대법관 가치관의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오는 8월 2일 퇴임하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 후임으로 김선수 변호사(왼쪽부터)와 이동원 제주지법원장, 노정희 법원도서관장이 결정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일 김 변호사 등 3명을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해달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입법부는 지갑을, 행정부는 칼을 가지고 있다. 사법부는 지갑도 칼도 없다.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만 가지고 있다.” 1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미국의 법률가이자 정치인 알렉산더 해밀턴 얘기다. 빈털터리 사법부는 시민의 신뢰를 밑천으로 비로소 권부(權府)가 됐다. 그러나 과거 대법원은 권력에 대한 추종과 사법부 기득권 지키기 행태로 유일한 밑천인 시민의 신뢰를 잃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재판을 정치권력과의 거래 대상으로 삼는 사법농단으로 사법부 신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여론조사에서 시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사법부 판결을 불신한다고 했다. 신뢰관계가 무너진다면 판결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는 사법부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시민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개혁을 추진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안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보수 일변도 구성을 탈피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최종심을 담당하는 대법관은 시민의 권리를 구제하는 마지막 심판자다. 특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가진 대법관 일색으로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추된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야당도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인물들이 대법관으로 임명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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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31일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연루 인사들에 대한 고발·수사의뢰 여부는 법원 안팎 의견을 종합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이 공식 사과한 것은 당연한 일이나,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조치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가 나온 지 이미 엿새가 지났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사법농단 앞에서 시민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언제까지 의견 수렴만 할 것인가.

김명수 대법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대법원장은 담화문에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부를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징계를 신속히 진행할 것이며, 조사자료 중 의혹 해소를 위해 필요한 부분의 공개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종 판단을 담당하는 대법원이 형사조치를 하는 것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및 각계 의견을 종합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자 한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의 조직을 인적·물적으로 분리하고 법원행정처 상근 법관들을 사법행정 전문인력으로 대체하는 등의 제도적 쇄신 방안도 제시했다.

담화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법원의 재판에는 누구도 부정한 방법으로 개입할 수 없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사법부는 더 이상 존립의 근거가 없고 미래도 없다. 사법부 구성원 모두와 함께 그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 지금 그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김 대법원장이 할 일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을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를 대법원 청사 외부로 이전한다는 약속 정도로 시민의 충격과 분노를 달랠 수는 없다. 관련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유용하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이다. 심판하던 이들이 심판받는 처지가 될 때에야 연루 인사들은 물론 모든 법관들이 법의 준엄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심판대에 세우는 주권자를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대법원장의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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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한 장의 사진이 수백쪽 분량 책보다 많은 말을 한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이 29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절규하는 사진이 그랬다. 김 지부장 등 KTX 해고노동자들은 이날 대법정에 뛰어들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했다. 앞서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보고서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KTX 승무원 판결’을 두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2006년 해고된 KTX 승무원들은 2008년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을 내 1·2심에서 이겼지만 2015년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승무원 한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 대법원장에게 묻고 싶다. 이 사진을 봤는지,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KTX 해고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정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후 면담 요청서 전달이 저지 당하며 대법원으로 진입한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대법정 안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김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장 추가 조사 여부와 관련해 “특별조사단에서 최종 정리한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보고서 내용과 여론 등을 모두 검토해 결정한 뒤 말씀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후속조치 시점에 대해선 “신중하게 대책을 마련하겠다. 날짜나 시간을 약속드릴 수는 없다”고 했다. 고심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특별조사단 조사를 이미 거부한 터라 대법원에서 추가 조사 요구를 한다 해도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검찰 수사로 갈 수밖에 없다. 김 대법원장은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만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사법농단 의혹에 온 나라가 분노하는 마당에, 전직 대법원장의 명예 따위는 고려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재판 거래’가 사실이라면 이는 위법을 넘어 위헌이다. ‘셀프 면죄부’로 그칠 사안이 아니다.

검찰에는 이미 양 전 대법원장 수사를 요구하는 고발장이 8건 접수돼 있다. 추가 고발을 예고한 단체들도 있다. 언제든 수사 착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수사권력을 구성하는 검찰이 법원 수사에 먼저 나서는 일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법관들을 고발하거나 수사의뢰하는 게 정도다. 검찰 수사로 미흡하면 특별검사를 도입해서라도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모든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13년째 싸우고 있는 KTX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 그래야만 나락에 떨어진 법원의 명예와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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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가 ‘전관예우’ 실태조사 시행 여부를 두고 절반으로 갈렸다고 한다. 지난달 17일 열린 사법발전위원회 2차 회의의 회의록을 보면,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하는 데는 위원 모두 찬성한 반면, 전관예우 실태를 수치화하는 통계조사에는 10명 중 5명이 반대한 것으로 나온다. 반대한 위원들은 사법불신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는데, 답답할 따름이다. 사법불신이 가중되는 건 문제를 드러내는 대신 감추려고만 드는 불투명성 탓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9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법관대표회의가 상설기구화된 후 처음 열린 것이다. 이상훈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전관예우가 없다거나 사법불신에 대한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외면할 게 아니라 여러 불신 요인들을 차단할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역대 대법원장 중 취임사에서 전관예우를 직접 언급한 것은 김 대법원장이 처음이다. 대다수 시민이 ‘유전무죄’의 배경에 전관예우가 도사리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그동안 사법부에선 전관예우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의지에 따라 ‘사법제도 개혁 실무준비단’은 전관예우 근절을 4대 개혁과제에 포함시켰다. 사법발전위원회는 이들 개혁과제에 대한 각계 의견을 반영하는 개혁기구로 출범했다. 그런 사법발전위원회가 전관예우 근절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사실 ‘전관예우’라는 용어부터 틀렸다. 예우의 사전적 의미는 ‘예의를 지키어 정중하게 대우함’이다. 전관예우는 전직 법관들에게는 정중한 대우일지 몰라도, 법률소비자 입장에선 부당한 특혜성 거래다. 지난 3월 경향신문이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2017년 상고심 수임 사건을 전수조사했더니, 수임 사건 수가 2016년보다 6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와 하루라도 같이 근무한 대법관에겐 해당 사건 주심을 맡기지 않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법원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고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대법원장이 전관예우 근절 의지를 공개 천명했는데도 악습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사법개혁은 요원하다. 사법발전위원회는 반드시 실태조사를 벌여 전관예우가 사법현실을 어떻게, 얼마나 왜곡시켜 왔는지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물론 법원과 사법발전위원회에만 맡겨놓을 일은 아니다. 국회는 전관 변호사의 수임료를 공개하는 등의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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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말로는 못할 것이 없다. “우리 국문과 교수들이 소설을 안 써서 그렇지, 쓰면 연수씨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소설가 김연수에게 어느 국문학과 교수가 했다는 말이다. 인터뷰집에서 김연수는 써야만 쓰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간절함인데, 그 간절함(은)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일이겠죠.” 그리고 “재능은 큰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서른 살까지 산다면 결정적이겠지만, 대부분은 오래 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의미해지죠”라고 했다.

상상력조차도 꾸준함에서 나온다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1982년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리고 있는 그이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뛰어간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속 이어가는 것 리듬을 끊지 않는 것. 이것이 장기적인 작업에서는 중요하다.” 무라카미는 에세이를 쓰는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나는 글자로 써보지 않으면 어떤 사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누구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프로가 되지 못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지 31일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후보자로 발표되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31년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두 가지 속내를 전달하고 싶었을 테다. 법원행정처 경험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 평생을 재판만 해온 95% 판사들에 대한 응원이다. 이 말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재판을 잘하려면 재판을 오래 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법원에서는 부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김명수 후보자가 발표되자 행정처에서 일한 전·현직 판사들은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기자를 만나서도 스스럼없이 후보자의 경력을 깔보았고, 사고를 치고 법복을 벗은 처지에 사법부의 미래를 개탄했다. “(청와대가) 사법부를 행정조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가장 혁명적인 조치.” “도대체 법원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행정처 출신들은 스스로도 이렇게 본다. “우리 행정처 판사들이 재판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당신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정처 출신 판사 가운데 재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강일원 헌법재판관의 재판은 폭포가 떨어지듯 정확하고 신속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무난하게 끝난 것도 그의 공이다. 또 다른 행정처 출신인 특허법원 김환수 수석부장판사 재판은 사람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영어로 심리를 주재하는 실력파이지만 당사자의 긴 얘기를 마음으로 듣는 겸손한 판사다. 무람하지만 내 주례 선생인 김앤장 변호사도 행정처 출신의 그런 판사였다.

하지만 몇몇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해서, 일반적인 현상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재판을 오래 하지 않았어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오히려 이 판사들이 재판에만 집중했다면 더 좋은 재판을 했을 테다. 사법시험에 붙은 판사들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재판을 오래 한 사람이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도 사법관료들은 “하급심을 아무리 오래 해도 대법원 재판은 다르다. 미국에서도 곧바로 대법원장이 되지만 종신제라 다르다”며 버틴다.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걸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을 내놓은 게 일흔이 넘어서다. 여든아홉에 임종을 앞두고 그는 “하늘이 내게 수명을 다섯 해 더 준다면, 진정한 화공이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했다. 유럽까지 뒤흔든 천하의 호쿠사이도 이렇다. 물감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재판은 죽을 때까지 해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25일 업무를 시작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주권자인 국민이 여섯 해를 주었다. 이 시간 동안 약속을 지켜야 한다.

31년 동안 재판만 한 사람의 실력을 보여줄 때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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