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 새누리당 비박근혜계 의원 29명이 어제 집단 탈당해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신당은 국회 원내교섭단체 등록을 마친 뒤 첫 의원총회를 열어 주호영, 이종구 의원을 각각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으로 뽑았다. 앞서 탈당해 있던 김용태 의원까지 합류해 의원 30명으로 출발한 신당은 내년 1월 말까지 조직을 정비한 뒤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보수 정치권이 보수신당과 새누리당으로 양분되면서 정치권이 4당 체제로 재편됐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 민자당·국민회의·자민련·민주당 체제가 만들어진 이래 20년 만에 다시 4당 체제가 형성된 것이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비박계 의원 29명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한 뒤 손을 맞잡고 있다. 강윤중 기자

시민들이 신4당 체제와 보수신당에 거는 기대는 분명하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체제 또는 국민의당을 포함한 애매한 3당 구도를 허물어 대립 일변도의 정치 환경을 확 바꿔달라는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와중에도 시민의 뜻을 거스르며 박근혜 대통령을 맹목적으로 지원해온 친박계 새누리당이 원내 1당 지위를 내주었다. 새누리당 의석이 개헌 저지선(101석) 아래인 99석으로 줄고, 새누리당을 제외한 3당 의석이 국회선진화법 의결정족수 5분의 3을 넘김으로써 새누리당이 국정 주도권을 상실했다. 이념적으로 중도를 지향하는 정당이 두 당으로 늘고, 지역 정당의 굴레를 벗어난 새로운 정당이 탄생했다는 의미 또한 작지 않다. 다양한 정책으로 유권자들 선택의 폭을 넓히고,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통해 대화·타협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높였다.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제기한 개혁 과제들을 입법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4당 체제와 보수신당에 대한 회의 역시 상존한다. 이는 신당이 새누리당 내 친박과 비박계 간 내홍의 결과라는 한계에서부터 출발한다. 새누리당과 이념·노선에서 차별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를 보수신당은 안고 있다. 이런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대선 정국에서 원칙 없이 연대한다면 신당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미 국민의당과 보수신당이 손을 잡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모시기 경쟁이나 야합이 벌어진다면 4당 체제는 무의미해진다. 진정한 보수의 길을 걸으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만이 신당과 4당 체제가 성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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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근혜계 의원 30여명이 어제 회동한 뒤 다음주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모임의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은 “가짜 보수와 결별하고 진정한 보수 정치의 중심을 세우고자 새로운 길로 가기로 뜻을 모았다”면서 “패권주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들어 안정적·개혁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세력의 대선 승리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도 탈당 의사를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보수정당의 분당이 현실화한 것이다. 그만큼 보수 진영의 위기가 심각하고 새로운 보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징표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늦었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 세력은 지난 4월 총선에 이어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의결로 여론의 매서운 심판을 받았음에도 반성은커녕 민심을 거스르는 길만 걸어왔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뉘우치는 듯하다 틈만 보이면 이내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였다. 막판에는 비주류에 비상대책위원장을 양보할 것처럼 하다가 뒤집는 치졸함까지 드러냈다. 총선이 3년 넘게 남았고, 촛불은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 등에 기댄 탓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재창당 수준의 혁신과 변화를 통해 당을 재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탈당 의원들을 비판하면서 ‘유일 보수정당의 법통’ 운운한 것은 가히 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비박계의 탈당은 그나마 시민의 질타를 두려워하는 보수세력과 기득권에 젖은 비양심적 가짜 보수의 결별이다. 보수 내부의 싸움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긴급 탈당 기자회견 후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날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31명이 '집단 탈당'을 결의하고. 탈당 시점은 오는 27일이다. 권호욱 선임기자

지난 총선과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반칙 없는 세상과 더불어 책임지는 정치를 요구했다. 극우적 세계관과 영남 지역주의를 벗어난 건강한 보수, 명예와 도덕이라는 보수적 가치를 중시하는 진정한 보수 정치세력을 시민들은 갈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탈당파는 이 같은 새로운 보수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를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산·경남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 의원들이 골고루 포진하고 있다. 수구적 이념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는 진짜 보수당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앞서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까지 가세하면 신당 추진은 더 탄력이 붙을 것이다. 탈당파가 중도보수 성향의 신당을 창당하면 정치권은 1990년 3당 합당 후 26년 만에 4당 체제로 바뀌게 된다. 다양한 정책의 대결과 함께 곧 있을 대선 정국에서 정책에 따른 연대 가능성도 커진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보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과제를 풀어야 한다. 과거에도 보수당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보수, 진정한 보수를 표방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전에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보수의 혁신을 외쳤지만 결국 집권을 위한 한 편의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보수의 정책과 가치에 충실한 정당이 아니라 파벌과 이권,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 탈당도 대선용, 위기모면용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사에서 보수당을 박차고 나간 정치세력이 성공한 예는 없다. ‘보수정당의 분열은 필패’라는 말이 있을 만큼 탈당과 신당 창당은 고난의 길이다. 그러나 낡은 체제의 극복과 진정한 보수정당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 흔들림 없이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며 개혁을 한다면 한국 정치사를 새로 쓰는 진정한 보수세력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막 닻을 올린 새누리당 탈당파의 실험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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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뻔한 잔수에 야당이 걸려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다. “진퇴를 국회에서 결정해달라”는 이간책에 주도권을 다투는 형국이다. 무능에 욕심이 더해진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대통령 임기 단축 협상 불가, 2일 탄핵안 국회 처리’ 등을 합의한 바 있다. 합의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불협화음이 터져나온 것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어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만나 박 대통령 사퇴 문제를 논의했다. 추 대표는 내년 1월 말, 김 전 대표는 4월30일 퇴진을 각각 주장했다. 양자 회동 소식이 전해지자 공동보조를 맞춰온 국민의당이 반발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탄핵을 발의하자고 주장하던 추 대표가 내년 1월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왜 이렇게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2일 탄핵안 국회 처리 요구에 국민의당은 “새누리당 비박의 협력이 먼저”라며 거부했다.

야당은 시민이 경계했던 바대로 행보하고 있다. 탄핵이냐 퇴진이냐, 언제 시행하나, 거국내각 구성과 개헌은 어떻게 하느냐 등으로 여야, 야야 갈등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였다. 추 대표는 이미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 및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추진하는 등 돌출 행동으로 ‘추키호테(추미애 + 돈키호테)’라는 별칭을 얻은 터다. 이번에도 ‘탄핵 연대’에 상처를 주면서 “추미애판 최순실이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의당 반응도 문제 해결보다는 제1야당 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1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일정 조율을 위한 야 3당 대표 회동 장소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대표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결국 야당 이견으로 2일 탄핵안 처리는 불발되고 마침 새누리당은 ‘4월 퇴진, 6월 대선’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만일 박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 나서 내년 4월 퇴진과 개헌을 천명하면, 탄핵 결의는 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그간 야당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한 게 뭐냐”고 비난받아왔다. 언론과 시민이 차려놓은 ‘국정농단 사건’ 밥상에 수저만 들고와 배를 불렸기 때문이다. 탄핵이라는 설거지라도 제대로 하라는 게 시민 요구인데, 그조차 못하고 있다.

이제 야당은 다른 일체의 행동을 멈추고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 처리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할 일은 단 하나, 빈틈없는 공조다. 그래야만 새누리당 ‘비박’도 탄핵 대오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이것조차 못한다면 촛불이 아니라 횃불이, 청와대 앞이 아니라 야당 당사 앞에 켜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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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에서 터져 나온 지 5주가 지났다. 촛불민심은 영하의 날씨에 들이친 진눈깨비에도 꺼지기는커녕 거세지고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열망이 뜨겁다는 증좌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들이 개헌론을 끼워 팔려고 하고 있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곁불 쬐기다.

최근 개헌 논의 불씨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폈다. 그는 23일 “문제 해결은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탄핵과) 개헌도 동시에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3지대론’ 토론회에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정 전 의장과 손 전 고문은 26일 따로 만나 개헌 논의를 주고받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개헌 작업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추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개헌 쪽에 서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28일 (출처: 경향신문DB)

이들은 현시점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게 적절한 일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시민 10명 중 8명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이럴 때 각자 정치세력이 개헌을 부수 안건으로 끼워 팔면 탄핵 추진의 집중력이 떨어질뿐더러, 대오마저 흐트러질 수 있다. 개헌 저의도 의심받고 있다. 친박은 개헌이라는 복잡다단한 의제를 끼워 넣음으로써 탄핵을 늦춰 보려 하고 있다. 야당 내 개헌파는 굳어져 가는 대선판을 뒤흔들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개헌은 촛불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 단 한 차례만 광화문이나 자신들의 지역구 촛불집회 현장에 가 봤으면 알 수 있다. 지난 5차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는 “박근혜는 물러나라, 재벌도 공범이다”였다. 개헌 논의는 여의도에 머물러 있지 광장을 파고들지 못했다.

이들이 진정으로 개헌을 하고 싶다면 탄핵 문제가 해결된 뒤 대선 혹은 총선 공약으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헌법을 바꾸자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뭉치자는 것만큼 정치공학적인 접근도 없을 것이다. 개헌파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정치권 안에서 계속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개헌 논의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했다. 얕은수로 개헌을 추진하다가는 촛불민심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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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박근혜가 기어코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국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체제의 매듭을 짓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문재인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박근혜만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제도이고 규칙이므로. 박정희를 존경했기 때문에 박근혜를 좋아했던 유권자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보은(報恩)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덕분에 북한의 위협을 이겨냈고 이만큼 먹고살게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딸을 꽃가마에 태우는 것이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수미상관한 매듭이었다. 나는 다른 종류의 매듭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작동했지만 점차 효용을 잃어 이제는 거의 작동하지 않게 된 시스템을 마침내 그의 딸이 철저히 절단을 냄으로써 매듭짓게 될 것이라는 예감. 결국 우리는 그 파국적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파국은 다행스러운 면도 없지는 않다. 더 이상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린 박정희의 기나긴 그림자를 마침내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파국 앞에서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의논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의 파국이 박근혜라는 한 개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주권자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 파트너의 철저한 배제, 5년 단임 떴다방 정권의 대통령 무책임제, 위험의 사회화와 이윤의 사유화 같은 제도의 조합은 지나간 모든 정권에서 문제를 야기해왔다. 그 꼭짓점에 어떤 개인이 앉느냐에 따라 문제의 정도와 양상이 달랐을 뿐이다. 우리의 제도는 언제나 문제를 안고 있었고, 박근혜는 그 문제를 판타지 소설로 만드는 주술을 부렸을 따름이다. 언젠가 이 시스템의 꼭짓점에 박근혜보다 더한 진짜 악마가 들어앉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를 이틀 앞둔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벽면에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이석우 기자

내가 불행하게 생각하는 것은 야권의 유력 주자들에게서 ‘지도자의 언어’를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야권은 대체로 광장의 촛불에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것이 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광장은 엄청난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광장은 앙시앵 레짐을 해체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지는 않는다.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탄 난 정권과 덩달아 멈춰버린 행정부를 대신해 이 모든 논의를 국회가 책임 있게 이끌어나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야당이 앞장서서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고 권력을 가져올 준비가 되어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하고, 그중에서도 대선주자들이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앞장서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대선주자의 기득권은 지지율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러나 지금의 지지율은 우리가 그렇게도 재설계하고 싶어 하는 낡은 시스템하에서 얻어진 것이다.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대표를 보자. 이 와중에도 그의 지지율은 기껏해야 2~3%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대결적 정치구도에서 그의 편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면서도 그의 편에 합류하기를 꺼린다. 확장되지 않는 지지율에 연연하기보다는 다른 주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는 편이 훨씬 나은 전략이다.

국가적 민폐가 되어버린 박근혜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리기 위해 광장의 촛불이라는 동력을 활용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동시에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하나하나 합의하고 우리 중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것만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국민들은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심할 것이다. 마침 새누리당의 남경필 지사는 탈당을 결행했고 김무성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와 탄핵을 선언했다. 누군가는 불타는 수레에서 먼저 빠져나오려는 정치쇼라고 비판하겠지만, 비록 정치쇼라 하더라도 묵직한 희생을 감내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그들에게서 언뜻 지도자의 모습을 본 국민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제 공은 야권 주자들에게로 넘어왔다. 혁명의 시대이지만 지도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한 시대의 파국적 종언을 넘어 새 시대의 청사진을 보여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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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어제 내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또 “보수의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합리적인 보수 재탄생의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 비박근혜계 세력의 중심인 김 전 대표가 대선주자 자리를 버리면서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야 3당 의석을 모두 합쳐도 171석밖에 되지 않아 탄핵 정족수(200석) 확보에 고심해온 야당에 그의 가세는 원군이 될 것이다.

23일 새누리당 김무성 전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하지만 김 전 대표의 다짐이 썩 미덥지는 않다. 김 전 대표는 지난 4년 내내 박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방조했다. 교과서 국정화 앞장서기 등 퇴행적 행태를 보였고 박 대통령이 국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때는 선봉에 섰다. 그런 그가 이제 와 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니 사돈 남말 하는 격이다. 최근에는 “최순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새누리당에 있느냐. 몰랐다면 거짓말 아니냐”며 자신의 직무유기를 덮으려는 모습까지 보인 터다.

새누리당을 합리적인 보수로 개혁하겠다는 말도 생뚱맞기는 매한가지다. 수구적인 발언, 색깔론을 무수히 제기하며 정치판을 흐려온 그가 합리적 보수가 뭔지나 아는지 모르겠다. 친박 세력이 새누리당의 당권을 쥐고 버티는 상황이니 그의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으로는 보수의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될 일이다. 과거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시인하고 통렬히 참회하는, 분명한 자기 청산 과정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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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사표를 냈다. 법무장관과 민정수석이 동시에 사표를 낸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수용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지금 대통령이 사의를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정부와 청와대 내 대통령 법률 참모로서 권력 유지의 양 축이다. 법치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이 대통령 곁을 떠나겠다는 것은 대통령직을 버티는 최후의 보루가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야당에선 “사정 라인의 두 축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침몰하는 난파선에서 선원들이 하나둘씩 탈출하고 있는 광경”이라고 했다. 어떻게 묘사하든 대통령을 비호해온 둑에 구멍이 뚫린 것이요, 내부 붕괴를 보여주는 징조가 분명하다.

김 장관은 지난 7월 진경준 전 검사장 비리 때 사표를 냈으나 반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때 책임지고 물러났어야 했다. 이제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신세가 된 상황에서 사표를 냈다고 해서 새로울 것은 없다. 최 수석은 임명장을 받은 지 불과 5일 만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습하고 무너진 공직기강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 온 민정수석이 임명장 잉크도 마르기 전에 그만둔 것은 충격적이다. 대통령의 막가파식 대응이 법률가의 양심과 동떨어진 데다 더 이상 합리적인 설득도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민정수석실이 본연의 ‘대통령 직무 보좌’가 아닌 대통령 개인을 위한 비리 변론 지원기관으로 전락한 데 대한 자탄의 성격도 짙다.

사의를 표명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23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퇴근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이제 관심은 다른 장관이나 수석비서관들의 사퇴가 이어질지 여부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과의 사연(私緣)에 얽혀 국기를 문란하게 한 것도 모자라 공권력인 검찰권까지 부정했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을 국정 고비마다 활용해왔던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에선 불공정 운운하니 이런 코미디도 없다. 이러니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누군들 옆에 더 붙어 있고 싶겠는가. 이대로는 탄핵 정국을 끌고 가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위임 받은 권력을 사익을 위해 사용하고 헌법을 유린했다. 4·19혁명 당시 허정 외무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충언했고, 이 대통령은 다음날 전격 하야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사람들의 이탈 행렬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저지른 잘못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최순실이 국정에 손댄 흔적을 보면 청와대와 공직자가 수족처럼 움직였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헌정 문란의 공범이자 방관자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그동안의 과오를 뉘우치고 엎드려 사과해도 모자랄 처지다. 그런데도 한편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한국사 국정교과서 강행 등 국정 폭주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에게는 촛불민심도, 시민들의 분노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판국에 장명진 방위사업청장은 미국에 가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두 손 들고 무릎을 꿇은 격이니 도대체 어느 나라 관리인지 할 말을 잃게 한다. 국정 최고 책임자부터 국가 기강을 흔들고 자기 안위만 챙기고 있는데 고위 공직자라도 정신 차려서 국정을 바로잡기를 기대하는 일도 무리다.

새누리당 남경필 지사·김용태 의원 탈당에 이어 법무장관·민정수석 사표, 김무성 전 대표의 탄핵 선언 등 당·정·청에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여권 내부에서 금이 가고 바닥이 꺼지는 균열의 본격화라고 할 수 있다. 총리도 부총리도 짐 보따리를 싸놓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소송을 대표하는 법무장관까지 가세했으니 사실상 멈춰 선 정부가 됐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29일까지 대면조사를 받으라고 최후 통첩을 보낸 상태다. 이번엔 또 무슨 궤변으로 검찰 수사를 거부할지 모를 일이다. 그럴수록 설 곳이 없으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를 ‘사상누각’이라고 했지만 되레 청와대가 ‘모래 위의 성’이 돼 가고 있다. 이제 대통령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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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어제 “당 대표로서 가장 힘들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도울 수 있도록 조금만 위기관리의 시간적 여유를 허락해 달라”며 또다시 사퇴를 거부했다. 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실이 탄로 난 이후 이런저런 변명으로 한 달 가까이 사퇴 요구를 피해왔다. 이번에 대통령 도울 시간이 필요해 대표직을 좀 더 하겠다는 것은 시민 분노가 누그러질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시간 끌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와 내각이 공중분해되거나 올스톱된 마당에 대통령 사수의 마지노선인 새누리당 친박세력마저 무너져선 안된다는 위기감의 발로일 것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4일 오후 국회에서 비선 실세 의혹 관련 사죄 인사를 마친 뒤 의원총회장에 입장해 답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젖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는 “고립무원의 대통령이 힘들게 이 난국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시고 괴로워 신음하시는데 나 혼자 맘 편하자고 유유히 곁을 떠나는 의리없는 사람이 되기 싫다”고도 했다. 지금 가장 힘들고 신음하는 사람은 바로 시민들이다. 지난 주말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한결같은 외침은 “이게 나라냐”는 것이었다. 그런 함성을 듣고도 집권당 대표가 분노한 민심에 답하기는커녕 대통령과의 의리 때문에 자리를 지켜야겠다니 억장이 무너지고 듣고도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험한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릴지 앞이 캄캄할 뿐이다. 이 대표는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으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당에 돌아와선 친박계 핵심으로 호위무사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선들의 국정농단을 방치해 오늘의 파탄을 낳게 한 공범 중 한 명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유일한 비주류인 강석호 최고위원이 공식 사퇴하고 비박계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도 지도부 사퇴와 박 대통령 탈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표 체제는 이제 국민은 물론 당내에서도 신뢰를 잃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국정에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느낀다면 언필칭 그가 섬기겠다는 시민 여론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깨끗이 사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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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의 숙명 가운데 하나는 매 순간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그 결과가 정치적 자산이 될지, 부채로 남을지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장은 자산인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 부채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 부담감을 용기와 의지로 돌파한 사람들만이 성공한 정치인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김무성 당 대표에게 주목하는 것도 그가 과연 집권당의 지도자다운 인물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행보는 시종여일하다. 친박근혜계 최고위원들의 사퇴 요구에 “고민해보겠다”고 대답한 그는 “밤사이 심경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 김무성 대표는 어제 “유 원내대표 스스로 결단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를 모양새 좋게 퇴진시키자는 것으로, 친박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유 원내대표의 처지도 감안한 절충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29일 경기 평택시 평택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_경향DB



김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가 신임을 받으면 대통령은 뭐가 되며, 대통령 뜻대로 되면 유 원내대표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결론이 어떻게 나든 파국인데 그러면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대통령의 위신 손상과 당 내분 모두를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씁쓸하다.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질타했을 때 그는 유 원내대표를 엄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뜻을 읽은 뒤에는 “(유임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그러다 여론이 친박에 비판적으로 돌아가자 “(의원들의 뜻을 묻는) 의총에서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대통령 눈치 보기는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가 이튿날 사과한 적이 있다. 여의도연구소장에 박세일 전 의원을 임명하려다 친박의 반대에 부딪히자 접기도 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비이성적 태도에 균형을 잡아줄 이는 현재 집권당 대표뿐이다. 김 대표는 당초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 부정적이었다. 당 대표로서 그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이고, 당내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대통령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든지, 당내 논의의 흐름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집권당의 대표이자 국정의 중심축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당의 중심을 잡고 유 원내대표 축출 운동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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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2012년 박근혜 캠프의 대선자금 문제로 확장되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어제 “여야가 함께 2012년 대통령 선거 자금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대선자금 수사에 응하겠다”며 “대선자금 조사하려면 야당도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불법 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지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야당을 끌어들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은 홍문종 의원에게 2억원의 선거자금을 건넸다고 밝혔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대선자금 의혹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김 대표의 주장은 대선자금 수사를 할 경우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측의 대선자금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검찰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이다. “검찰에 외압이 없도록 새누리당이 앞장서 책임지겠다”던 다짐은 어디다 팽개친 것인가. 야당 대선자금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려면 구체적 근거나 혐의가 있어야 한다. 성 전 회장의 인터뷰나 ‘메모지’에는 야당의 ‘야’자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야당과 관련한 증거나 증언이 나오면 그때 가서 조사하면 될 일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야당 대선자금 수사를 운위하는 것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가리기 위한 치졸한 정치공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2일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 대표는 검찰에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출처 : 경향DB)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한꺼번에 ‘검은돈 의혹’에 휩싸인 전대미문의 ‘권력형 게이트’이다. 거기에 ‘홍문종 2억’으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꼬리를 드러냈다.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나, 성 전 회장이 1억원을 건넸다고 한 홍준표 경남지사의 측근이 사실상 시인한 데서 보듯 ‘성완종 리스트’는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찰이 그야말로 성역없이 엄정한 수사로 임한다면 진실을 규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러한 의구심과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연루된 사건이라고 해서 수사기관이 눈치 보고 좌고우면해선 안된다는 점을 직접 천명해 검찰이 독립적인 특검처럼 수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여당 대표가 야당의 대선자금 수사를 거론하며 압박을 가하는 것은 엄정해야 할 검찰 수사의 발목을 비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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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참 나쁜 정치를 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정치권력이다. 그 위임에는 적어도 국민에 대한 책임이 전제되어 있다. 대통령과 여당이 나라 안의 모든 일에 대해 무한책임의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부와 관련된 사태의 경우 더욱이 직접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그 책임을 회피하는 정치야말로 나쁜 정치이다. 그보다 더 질 나쁜 정치는 책임을 회피하려고 국민을 두 편으로 가르는 정치이다. 말하자면 ‘두 국민 정치’이다.

세월호 정국이 길어지면서 정치가 국민들에게 증오와 적대감를 심고 있다. 애초에 대통령은 세월호의 진상이 곧 ‘유병언’이라고 이해한 듯하다. 책임을 물어야 할 유병언이 죽었으니 이제 진상은 더 캘 것이 없고, 나머지는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매정함이 섬뜩하다. 게다가 여·야의 2차 합의안을 언급하며 이른바 가이드라인을 대통령이 제시하는 형국을 만들었다. 절규하는 유족과 시민들은 더 이상 대통령의 국민이 아니었다. 유가족이 전례 없는 보상을 요구한다는 유언비어가 돌고 보수언론은 앞 다투어 유족과 시민을 향해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푸념했다. 자신들이 뱉은 말과 자신들의 기분을 이름 지어 ‘세월호 피로증’이라고 불렀다. ‘대한민국이 당신들만의 것이냐’는 지탄과, 단식하는 유족과 시민 앞에서 ‘막 먹어대는’ 막가파식 패악이 이어지기도 했다. 유가족과 대리운전기사의 폭력사건은 이 애끓는 참사의 본말을 더욱 더 기형적으로 뒤틀었다. 사태를 책임져야할 대통령과 여당에게 가야할 화살이 오히려 유족을 향하는 기이한 반이성적 야만의 질서가 만들어졌다.

해방이후 분단의 세월 속에 우리는 증오와 적대의 역사를 누적시켰다. 아무리 냉전의 시대라 해도 극단의 분열과 갈등은 이념 그 자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고비마다 겪게 되는 가학적 국가폭력과 희생의 체험이 증오의 싹을 틔우고 적대의 전선을 만들어 낸다. 48년의 제주, 같은 해의 여수 순천, 80년의 광주는 증오와 적대를 생산하는 우리의 집합적 체험이었다. 이제 세월호 참사가 증오와 한으로 적대를 쌓는 또 하나의 현대사가 될 것 같아 두렵다. 국민을 둘로 나눈 후 위기의 정국을 벗어나는 전가의 보도는 늘 그랬듯이 ‘민생’이었다. 누구의 민생이고 어떤 민생인가? ‘세월호의 국민’에게 민생의 구호는 기만의 언어일 뿐이다. 대통령과 여당에게 세월호의 유족이나 유족 편에 선 시민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니다. ‘촛불시민’과 ‘안녕들 하십니까’를 외친 청년들, ‘앵그리 맘’, 쌍용차의 노동자들, 강정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의 주민도 그들의 국민일 수 없다. 국민을 둘로 나누고 적대와 증오를 심는 참으로 나쁜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표들이 16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한 대책위의 입장을 밝히는 동안 청와대를 방문하고 돌아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기자회견장을 지나 본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출처 : 경향DB)


며칠 전, 문재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기념 학술심포지엄의 기조연설에서 오늘날 정당정치의 위기를 정체성의 위기, 당 기반과 시민참여의 위기, 소통의 위기라는 3중의 위기로 진단했다. 아울러 정치와 정당,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생활민주주의’, ‘생활정당’,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한 정치’라는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문재인 의원으로서는 우리 정치가 나아갈 큰 그림을 그린 셈인데, 언론에서는 고약하게도 네트워크 정당 만들어서 당권 잡아 보자는 속내로 해석하니 꽤 섭섭하고 답답했던 모양이다.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전문’을 봐달라며 생활정당, 생활민주주의, 모든 이를 위한 정치를 재차 강조했다.

문재인의 ‘모든 이를 위한 정치’는 ‘두 국민 정치’의 대척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모든 이를 위한 정치’를 탈냉전 시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넘어선 모든 계층과 모든 지역, 모든 세대, 모든 성을 위한 정치로 규정하고, 모든 이의 ‘생활’이 중심이 되는 정치를 강조했다. 어떤 처지의 국민도 보듬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고 누구에게도 편향되지 않는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서 좋다. 화합과 화해의 정치가 그려져 더 의미가 있다. 두 국민의 나라는 미래가 없다. 적대와 갈등으로 버티는 정치에서 시민의 삶과 시민의 생명은 정치를 위한 수단이요 장식일 뿐이다. 그래서 정치와 국가와 민주주의의 중심에 시민의 삶이 있는 ‘모든 이를 위한 생활민주주의’야말로 우리 정치의 새로운 미래라고 할 법하다. ‘모든 이를 위한 정치’는 문재인의 정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필연적으로 나아가야할 길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정치가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일 수 있다. 나쁜 정치를 버리고 참 좋은 정치로 가는 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이 모두 눈과 귀를 크게 열어야 할 대목이다.


조대엽 |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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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는 불리한 이슈에 대처하는 공식이 있다. 처음엔 무조건 납작 엎드린다. 시간이 흐르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눈물로 호소한다. 그럼에도 이슈가 소멸하지 않으면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든다. ‘불순한 외부세력’이 개입해 ‘순진한 국민’을 ‘배후 조종’한다는 음모론이다. 새누리당이 세월호특별법 정국에서도 어김없이 공식을 밟아가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배후 조종 세력이 유족들에게 잘못된 논리를 입력시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다. 새누리당은 고장난 축음기라도 되나.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매번 철 지난 유행가를 틀어대나.

김 대표의 발언은 인간적 존엄을 지닌 개별 시민을 특정 세력의 조종 대상으로 바라보는 저열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5일간이나 곡기를 끊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는 배후세력에 조종당한 ‘마리오네트’가 된다. 청와대 인근에서 노숙농성하는 세월호 참사 가족,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해 단식하는 시민 수만명도 같은 처지로 전락한다. 집권여당 대표라는 이가 스스로의 결단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들을 이렇게 싸잡아 모독해도 되는 건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세월호 가족의 마음에 상처 주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당부한 게 바로 며칠 전 아닌가. 김 대표는 세월호 가족과 시민 앞에 사과해야 옳다.

본인의 SNS에 유족들 배후론에 관한 글을 올려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출처 : 경향DB)


새누리당이 ‘세월호 배후론’을 꺼낸 까닭은 짐작할 만하다.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한 만큼 이참에 세월호 가족을 몰아붙여 특별법 정국을 끝내겠다는 복안일 것이다. 또한 가족들에게 ‘색깔’을 덧칠함으로써 중도적 시민들이 등 돌리게 하기 위함일 테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집권당이 국민을 갈라놓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태도로는 세월호 가족과 면담을 이어간다 한들 어떠한 합의도 이뤄내기 어렵다. 대화 상대를 꼭두각시로 폄훼하면서 진정한 대화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세월호 가족을 고립시키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수준 낮은 책략으로는 정국을 돌파할 수 없다. ‘무늬만’ 특별법이 아닌,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드는 일만이 민생을 위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새누리당은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슬픔에 잠겨있는 세월호 가족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모욕은 말아야 한다. 그게 정치 이전에 사람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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