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국방장관으로 내정된 김병관 예비역 대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 “인본주의형 국방개혁”을 하겠단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전쟁기념관에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그를 찾아갔다. 대화는 3시간가량 이어졌다. 그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전방에 30만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는 육군은 오지의 장병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이런 병력 배치로는 전쟁 초기에 제1전투지역(페바 알파) 방어에 병력의 40%가 손실된다. 무기체계가 현대화된 지금 과거와 같이 장병들에게 피를 흘리라는 비합리적인 군사정책이다. 지금 병사들은 1가구 1자녀 시대의 자식들이다. 1만명이 죽으면 5만명의 가족의 대가 끊긴다. 우리는 이런 전쟁을 할 수 없다. 그 대신 병력을 후방으로 배치하면 손실률은 17%로 줄어든다. 좋은 무기로 살아서 싸워야지 왜 병사들의 피를 강요하는 것인가? 7군단장 시절 그는 육군의 주요지휘관회의에서도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말이 계속되는 동안 총장이 무언가를 열심히 받아 적기에 김 중장은 자신의 말이 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총장의 쪽지를 비서실장이 가져다주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당신 일이나 잘해”라는 남재준 총장의 핀잔이었다. ‘생명이 존중되는 군대’라는 한가한 소리는 우리 지상군 문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결국 그는 엉뚱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국방장관에서 낙마했다.

올해 1월 인사청문회 당시 김병관 후보자의 모습 (출처 : 경향DB)


지금 전방에서는 때아닌 총성이 들린다. 북한군과 싸우는 총성이 아니라 한 말년 병장이 동료를 향해 난사한 총성이다. 그런가 하면 지휘관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한 의무대에서 지옥의 묵시록에나 나올 법한 암흑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고, 꽃다운 젊음이 사라졌다. 부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등병은 무슨 공식처럼 아침에 화장실에서 목을 매는 일이 이어진다. 사건이 발생하면 항상 해당 지휘관은 사건을 은폐·축소하면서 자리를 보전하기에 급급해한다. 문제가 악화되고 나서야 국방장관이 나와서 “국민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또 병영문화개선위원회를 운영할 모양이지만 이미 대책은 과거 정부에서 다 나왔다. 단지 실천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개혁이 지연되고 문화가 지체된 재래식 군대는 이제 국가안보의 자산이 아니라 무거운 짐이 되어가고 있다. 청년 문화에서 폭력과 집단따돌림과 같은 범죄는 매우 전염성이 강하다. 한 번 폭력을 경험하면 그것을 모방한 또 다른 폭력이 나타나 후임자에게 전승되는 조직의 문화를 형성한다. 1987년 이래 30년 가까이 ‘구타와의 전쟁’을 하고 있고 지휘관의 관심을 촉구하는 군이지만 구타는 근절되지 않는다. 겨우 좋아졌다 싶으면 또 독버섯처럼 자라나 순식간에 확산되는 그 전염성 때문이다. 징병된 병사 위주의 재래식 조직, 그것도 오지에 고립된 폐쇄적인 문화의 군대라면 이런 결과는 필연적이다. 더구나 우리 초급 간부와 병사들은 전방에서 고생하는 걸 굉장히 서럽게 인식하는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자발적으로 모인 조직이 아니라 억지로 끌려왔다는 상실감은 인간 이성과 상호 존중과 배려의 도덕관념을 끊임없이 잠식하다 어떤 특이점에 이르면 조직을 자기 파괴의 양상으로 몰아간다.

우리는 왜 재래식 군대를 대규모로 유지해야 하는가? 북한이 110만의 군대를 유지하고 그 태반을 전방에 배치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래야 할까? 전방의 병력 숫자 유지에 무척 민감한 우리 지상군 문화에서는 금기시된 질문이다. 누군가 현역 장군이 이런 의문을 제기하면 “당신 일이나 잘해”라는 핀잔만 돌아온다.

그래서 김병관의 국방개혁론에 대해서도 “부대 기동이 뭔지 모르는 포병 출신의 헛소리” “동부전선에서만 근무해서 서부전선의 실정을 모르는 편견” 정도로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군의 악습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군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에서 잘못 교육받은 20대가 문제라고 원인을 외부로 떠넘긴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치 군대의 부조리가 한국 군대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사회에서 유입된 새로운 문제라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편리한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게 군 개혁 논의를 뒷전으로 미룬다. 바로 현대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한국군의 자화상이다. 그렇게 개혁의 사각지대에서 나오지 않는 군을 보면 비난을 받으면서도 변혁을 외친 김병관이 다시 떠오른다.


김종대 | 디앤디 포커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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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교육부 장관에 서남수 전 교육부 차관을, 외교부 장관에는 윤병세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수석을 발탁하는 등 6개 부처 장관을 내정했다. 법무부 장관에는 황교안 전 부산고검장, 국방에는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안전행정부에는 유정복 새누리당 의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는 유진룡 전 문화부 차관이 각각 내정됐다. 6개 부처는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과는 무관한 부처들이며, 나머지 11개 부처 장관은 개편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상 첫 조각의 특징 중 하나는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5명 전원이 고시를 거친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들 5명은 지역적으로 수도권 출신이며, 고교별로 봐도 경기고(3명), 서울고(2명), 제물포고(1명) 등 이른바 명문고를 졸업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중 3명은 박 당선인의 대선 캠프 출신이기도 하다. 보수·안정 지향 및 관료 등용을 통한 전문성 추구라는 박 당선인의 국정운영 구상의 일단을 엿보게 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체적으로 인재풀이 협소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경향신문DB)


이번 인선은 내정자들의 적격 여부와 별도로 적잖은 문제를 노출했다. 우선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이 미뤄지면서 실장이 관장하는 인사위원회의 기능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외교·안보 라인 중 통일부 장관만 빠진 것도 의아스럽다. 북핵 위기 속에서도 그나마 대화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통일부의 상징적 위상을 경시한 듯한 느낌이다. 산학협력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느냐, 마느냐는 논란이 여전한 교육부의 수장을 조직 개편에 앞서 내정한 것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구제역 파동으로 물러난 인사가 안전행정부를 맡고, 공안수사로 잔뼈가 굵은 검찰 간부 출신이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법무장관에 발탁된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철저한 자질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홍원 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드러난 박 당선인의 인선은 사상 첫 과반 득표에 어울릴 만한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물론,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상징성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만기친람형인 박 당선인의 용인술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향후 인선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울 지경이다. 아직 여지가 남아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청와대 비서진과 11개 부처 장관 인선에서는 대선 승리 직후 밝힌 대로 지역과 성별, 세대를 초월한 대범한 탕평 구상을 펼쳐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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