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시민사회운동을 해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거 간혹 목에 핏대를 세울 정도로 재벌개혁을 외쳤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때인 2004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윤종용 부회장과 말다툼을 벌이다 삼성 관계자에게 멱살을 잡혀 끌려나가기도 했다. 그랬던 인사가 공정한 시장경쟁을 감시하는 기관을 이끌고 있다.

정부가 ‘김상조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김 위원장 등장 이후 치킨 프랜차이즈는 자발적으로 가격을 조정했다. 치킨값을 올린 BBQ에 대해 공정위가 불공정 행위 조사에 들어가자 업계 전체가 가격 인상 철회 또는 인하로 응답했다. 일감 몰아주기 눈총을 받던 일부 재벌 대기업은 서둘러 사전 정지작업에 나서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세종심판정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열린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국내 4대 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과도 만났다. 박근혜 정부처럼 기업인을 은밀하게 부른 게 아니라 예고한 뒤 훤한 대낮에 만났다. 정체불명 재단에 거액을 출연하라는 요구는 없었다. 대신 “사회와 시장의 기대에 걸맞은 모범 사례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형식은 공정위원장이 ‘변화를 부탁드리는’ 정책 간담회였지만 해당 대기업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됐든 대기업들은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일자리 늘리기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기업을 규제하는 새로운 시스템 없이도, 한 인사로 인해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작 김 위원장은 “저에 대한 과잉 기대와 과잉 보도가 넘쳐 부담이 너무 크다”고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시장에 공정한 질서가 자리 잡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민주주의’에 시동을 걸었다. 청문보고서 없이 임명한 문 대통령의 과감한 인사가 효과를 내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어제 문재인 정부의 조세개혁 방향을 설명했다. “그간 부자감세 정책으로 왜곡된 세제를 정상화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 대주주, 고소득자, 자산소득자 과세는 강화하되 중산·서민층 세제지원은 확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부자증세’ 방침을 공식화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당장 구체적인 변화는 없다. 선언에 그치는 수준이다. 조세·재정 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조세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실시한다고 했다. 세법개혁은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난 뒤에나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앞서 정부는 경유세 인상을 골자로 한 에너지세제 개편안과 근로소득 면세자 축소, 주세의 종량세 전환 등도 당분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세부담을 높이는 사실상 ‘증세’여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한 탓이다. 따라서 다음달 말쯤 발표될 내년 세제 개편안은 알맹이가 빠진 채 나올 공산이 커졌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증세 얘기 꺼내기를 꺼렸던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여전히 신중하다.

얼핏 보면 지금 증세를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지난 4월까지 당초 전망보다 세금 8조원이 더 걷혔다. 정부가 출범 직후 11조원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수 있었던 것은 초과 세수 덕분이었다. 세금이 초과 징수되는 상황에서 굳이 증세안을 꺼냈다가는 긁어 부스럼 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초과 세수 요인을 따져보면 비정상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담뱃세가 대표적이다. 납세자연맹 자료를 보면 담뱃세 인상으로 연간 4조원이 넘는 세수가 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꼼수 증세’였다. 박근혜 정부의 인위적인 부동산 부양 정책으로 부동산 관련 세수도 증가했다. 과열 조짐을 보였던 주택시장이 안정되면 양도소득세는 줄어들 것이다.

현재의 초과 세수는 과거 비정상 시스템에서 비롯됐으니 바로잡아야 한다. 부당하게 올린 담뱃세는 내리는 게 마땅하고, 세수 확대를 반길 게 아니라 주택시장 안정을 기하는 게 정상이다. 급증하는 복지수요에 대응하고, 적자투성이 국가재정을 보강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부자증세뿐 아니라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확산돼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대학교수 시절인 2015년 1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야당은 보편복지를 위해서는 보편증세도 필요하다는 것 즉 재벌·부자 증세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서민 증세도 필요하다는 걸 고백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기구에 맡기겠다고? 당신네들이 솔직하지 못한데 무슨 합의가 이루어지겠는가?”라고 썼다. 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문재인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인사에 보였던 과단성을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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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임명 강행으로 여야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김 위원장 임명에 대한 반발의 뜻으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등 3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한때 거부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까지 임명하면 한국당은 인사청문회 자체를 보이콧할 태세다. 국민의당도 강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면 협치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민이 요구한 협치가 새 정부 출범 후 첫 관문에서부터 막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상조 공정거래위워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임명장을 수여한후 악수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야당, 특히 한국당이 청문회에 임하는 태도는 발목 잡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처음에는 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더니 아무런 논리적 연결성도 없는 추가경정예산안 통과와 다른 장관 후보자들을 연계하고 있다. 자신들의 행위가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점을 자인하고 있다. 제1야당의 존재감을 부각하겠다며 장관 후보자 중 적어도 한 명은 반드시 탈락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구태다. 청문회 시비에서 여야 모두 자유롭지 못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한국당의 논리가 더 군색하다. 과거 한국당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결격 사유가 많은 후보를 두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의 인사를 두고 ‘보은·코드인사’라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과거를 잊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야당은 전직 외교장관들에 이어 인권대사와 유엔 인권기구 전문가들도 강 후보자를 지지하는 성명을 낸 현실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의 협치를 위한 노력도 아쉽다. 국정공백이 장기화된다는 현실론만으로 야당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지난주 국회 상임위원장단과 오찬을 제의했을 때도 야당과 사전에 상의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어제 국회에 강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을 다시 요청했다. 야당이 또다시 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면 주내에 강 후보자를 임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관 임명을 두고 다시 야당과 대통령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협치의 전망이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협치를 실현할 최종적인 책임은 여당에 있다. 촛불시민의 뜻은 단순히 박근혜 정권을 문재인 정권으로 바꾸고자 한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은 야당 설득에 더욱 공을 들이고 실질적인 협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도 협치 요구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 국정농단으로 얼룩진 나라를 넘겨받은 새 정부가 내각 구성도 못하고 있는데 사사건건 비판과 공세만 하는 것은 건전한 야당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협치를 통해 개혁하라는 시대적 요청을 묵살하는 정치세력을 시민들이 두고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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