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대검 합동감찰반은 7일 ‘돈봉투 만찬’ 파문의 당사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면직을 청구했다. 이 전 지검장은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수사의뢰됐다. 나머지 참석자 8명에 대해서는 수동적으로 참석한 점을 고려해 모두 경고 조치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고 한다. 말이 면직이지, 이미 사표 낸 사람을 붙잡아 놓고 조사한 끝에 결국 조직을 떠나라고 한 것뿐이다. 2년 이후엔 정상적으로 변호사를 개업할 수 있다. 경고는 엄격하게 말해 징계도 아니다. 감찰반 22명을 동원해 20일 동안 조사한 결과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제 식구를 감싼 조사 내용이다. 검찰은 처음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밥 먹고 소통한 게 뭐가 문제냐” “통상적인 관행”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격 지시에 따라 등 떠밀려 시작한 감찰이다. 이때도 “제대로 감찰이 되겠느냐”는 의문이 쏟아지면서 특검이나 특임검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돈봉투 만찬’ 당사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감찰 지시 다음날인 지난달 18일 각각 서울중앙지검과 법무부를 나서 퇴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지검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지휘한 특별수사본부장이었다. 안 전 국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수백차례 통화하는 등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런 두 사람이 수사 종료 나흘 뒤에 만나 술을 마셨고 돈봉투까지 주고받았다. 봐주기 수사 의혹이 나온 건 당연하다. 보통 공무원이나 기업인이 자신을 수사한 검사와 만나 그렇게 했더라도 소통이니 관행이니 하며 그냥 넘어갔겠는가. 게다가 격려금으로 주고받은 돈봉투의 출처가 공적으로 써야 할 특수활동비에서 나왔다니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지금 검찰의 의식과 수준이 딱 이렇다. 

‘돈봉투 만찬’ 사건은 검찰권이 누구로부터도 견제받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감찰은 더더욱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고 구태의연한 조직문화를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강도 높은 개혁의지를 보여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검찰은 스스로 그 기회를 발로 걷어차버렸다. 되레 시대착오적이고 오만방자한 모습이 여전하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줬다. 검찰이 개혁 대상 1호라는 시민들의 분노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내내 청와대의 우 전 수석과 검찰의 ‘우병우 라인’들이 진실을 뒤집고 왜곡해 국정농단에 부역했다고 여긴다. 이제는 더 두고 볼 수 없다. 가차없이 메스를 가해 썩은 살을 도려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느 학생이 연구실 문을 밀고 들어온다. 그 학생은 학사경고가 누적되어 제적의 위기를 앞두고 있으며, 지도교수로 배정된 내가 소견서를 쓰게 되어 있다.

서울대가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우연히 맞닥뜨린 전공이 적성에 안맞을 수도 있고, 고등학교 때까지 열심히 하던 공부가 지겨워졌거나, 모든 것을 찾아서 해야 하는 ‘대학’이라는 거대한 제도에 적응하기에 실패했거나, 갑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에 짓눌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통속적이게도 그 학생의 손에는 캔커피 하나가 부끄럽게 들려 있다.

그러나, 나는 느닷없이 국가의 공권력이 그 학생과 나 사이에 들어와 있음을 느낀다. 나는 우리의 관계가 ‘직무관련성’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수밖에 없으며, 그 캔커피를 받는 것이 위법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무난하게 돌려보낼지를 궁리할 수밖에 없고, 그 학생이 호소하는 상황이나 결심이 ‘청탁’이 아닌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청탁’에 좌우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학생에게 가장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것이다. 아마도 궤변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지난해 9월 말 시행되고 난 이후에 그것이 ‘공직자’의 범위에 모든 초·중·고·대학의 교원들을 포함시키고 교육과 학술활동에 국가가 개입함으로써 우리는 매우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난 5개월은 또한, 우리가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인지하고 있던 부정부패가 너무나 구체적인 형태와 이름을 가지고 정부와 재벌, 그리고 소위 ‘사회지도층’에 팽배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기간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나 스스로 법적용 대상자로서 이 이야기를 하기는 너무나 조심스럽고, 경천동지의 부정부패 앞에서 소소한 ‘캔커피 이야기’를 하기를 끊임없이 주저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할 때는 침묵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누구나 좋다고 생각하는 선택은 보통 예기치 않은 비용을 수반하는 법이다. 혹은, 우리의 교육과 학술에 스며든 국가주의의 문제는 대통령의 탄핵만큼이나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라 생각한다.

김영란법의 국가주의는 스승과 학생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외부강의 신고제를 통하여 연구자들의 헌법상 보장된 권한인 표현의 자유와 학술의 자유 또한 직접적으로 침해한다. 주로 언론이 다루었던 부분은 국공립대와 사립대 교수들의 강연료 액수였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액수와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외부 강의, 강연, 기고, 발표, 토론을 사전에 서면신고하게 되어 있고, 소속단체의 장이 그것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료강연도 신고 대상이며, 이 칼럼 또한 사전신고를 마쳤음을 밝힌다.

사전신고된 칼럼은, 그 정의상, 이류일 수밖에 없다. 사전신고된 강연과 발표와 학술 토론 또한 이류일 수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소속 기관장이 법에 규정된 것처럼 발표 내용을 사전 검열하고 ‘직무 수행을 저해’한다고 판단하여 제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명시된 제한 가능성을 잠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수행하는 강연과 발표와 학술토론과 외부기고가 근본적으로 국가의 눈길을 거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학술이 아니다.

물론 입법취지는 이해한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수백만원의 ‘강연료’를 받고 해당 기업에 유리한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공무원들이나 교수들, ‘촌지’를 받는 교사들은 마땅히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줌의 부패한 무리들 때문에 모든 연구자, 교육자들이 자신들의 연구와 교육활동을 교류하고 소통하는 데 기관에 신고를 하게 하는 것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과도 같다.

청탁금지법의 핵심은 사실 3만원, 5만원 운운하는 구체적 사례들에 대한 제약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청탁관계의 가능성들을 국가가 일괄적으로 정의하고 보고받음으로써 형법이 규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잠재적 대상으로 만든 데 있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어느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것은 공직자들이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요컨대 ‘문화를 바꾸려는’ 기획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화는 입법의 대상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 속에서 국가주의적 게으름과 무능함을 본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국가가 일괄적으로 개입하고 규제함으로써 모든 것을 단칼에 해결하려는 마법에 기대하는 와중에, 정작 크나큰 부정부패는 흘려보내면서 우리의 교육과 학술이 이렇게 인질로 잡혀있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5년 1월, 임신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산 뒤 길을 건너던 남자가 뺑소니차에 치여 숨졌다. 소위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다. 범인은 도주했다가 수사망이 좁혀지자 자수했는데, 그는 한사코 ‘사람을 친 것을 몰랐다’라고 주장했다. 술에 너무 취해 정신이 없었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사고 직후 그가 골목길에 들어가 한참을 숨어 있었다든지, 정비소에 가는 대신 직접 부품을 구입해 부서진 차를 고치려고 한 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사람을 쳤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가 시종 ‘몰랐다’라고 주장한 이유는 그편이 뺑소니보다 형량이나 사회적 비난이 작을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의혹이 불거진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몰랐다”이다. 청와대 경호 담당자는 최순실이 출입기록도 남기지 않고 청와대를 출입하는 것을 몰랐고, 측근을 관리해야 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그녀가 저지르는 국정농단을 알지 못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의 청와대 출입은 물론 그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것 말고도 모르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몰랐다는 건 그가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비서실장이라는 점에서 황당하기 그지없다. 최순실을 모르는 건 소위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였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최순실에게 대통령 보고 자료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면서도 그녀를 모른다고 했고, 이재만 전 비서관 역시 최씨를 만난 기억이 없다고 한 바 있다.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모셨던 이들이 박 대통령이 죽고 못 사는 최씨를 모르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측근들은 하나같이 모른다며 입을 모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쯤 되면 최순실이 과연 존재하는 사람인지 의심이 간다. 언제든 모습을 감출 수 있고 순간 이동이 가능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도 그녀를 못 볼 수 있을까? 대통령보다 높은 ‘VVIP’라 생각했기에 감히 얼굴을 쳐다볼 엄두를 못 낸 것일까? 청와대 거주민 중 유일하게 최순실을 아는 박 대통령 역시 그녀가 연설문을 잘 쓰는 것만 파악했을 뿐 내면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11월4일 대국민담화 때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이라며 눈물을 흘리던 박 대통령의 모습은 친박의 수장 이정현 의원과 몇몇 박사모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은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최씨를 위해 이권을 챙겨주는 그 순간에도 그게 국가를 위한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리 모르는 게 많은 것일까? 뺑소니보다 만취 상태를 선택한 크림빵 가해자처럼, 이들은 안다고 시인해서 범죄자가 되는 대신 무능한 공직자로 남는 게 더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무식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부끄러울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늘 하는 말인데, 위에서 예로 든 분들은 그 부끄러움을 감당할 뻔뻔함이 있었기에 기꺼이 무능을 택했다.

지난 9월 말부터 발효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금품을 받은 경우 대가성 여부에 상관없이 처벌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간 수많은 정치인과 공직자가 돈을 받은 뒤 대가성을 부인해 처벌을 받지 않는 광경을 지겹게 봐왔던 터라, 여론은 이 법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뻔히 아는 사실을 몰랐다고 함으로써 혐의를 벗으려는 공직자들은 대가성을 부인하는 공직자보다 덜 나쁜 것일까? 직급이 낮은 분들이야 조금 무능해도 괜찮겠지만, 높은 직급에 있는 이들의 무능은 사적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국가적으로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특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무능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중대한 범죄다.

그래서 난 국회가 소위 ‘김기춘법’을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한다. 고위공직자가 자신의 직책상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을 모른다고 우기면 알고 범죄를 저지른 것보다 훨씬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자는 취지다. 법안을 처음 제안한 내 이름 대신 ‘김기춘법’이라 명명한 까닭은 그가 “모른다”는 말을 단기간에 가장 많이 한, 후안무치한 분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공직사회를 변화시킨 것처럼, 김기춘법도 시행만 된다면 공직자들의 언행을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최순실씨 잘 알죠. 하도 자주 와서 주민등록등본을 아예 청와대로 옮기라고 농담한 적도 있어요.”(안종범)

“안 수석은 가만있어요. 최순실씨를 저만큼 자주 본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래요? 매일같이 보고서 갖다 준 사람이 바로 납니다.”(정호성)

“사실 그날 대통령이 사생활이라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문밖에서 코를 대보니 희미하게 프로포폴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 대통령께서 사생활을 누리고 계시는구나.”(김기춘)

어디까지나 예를 든 것이지만, 상상만 해도 신나지 않은가? 김기춘법이 하루빨리 시행돼야 할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허탈감에 빠졌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교사는 제자가 주는 캔커피조차 부담스럽고 공무원들은 지인과의 일상적인 만남도 기피하는 상황이었다. 공적 영역을 뛰어넘는 초법적인 세계가 실재하고 있었음이 확인되면서 평범한 국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은 더욱 커져 간다. ‘한국은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외신 보도가 이어지면서 국가 이미지는 추락하고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쳤다.

한식 세계화 사업을 위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지원받은 미르재단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 최순실의 권력이 독버섯처럼 확장되었던 음습한 공간들은 ‘잘나가는’ 강남 사모님의 일상생활 세계, 그들의 권력 공간과 묘하게 겹친다.

언론에 등장하는 최순실의 주요 활동 무대는 강남 사모님의 마법이 시작되는 소비 공간이다. 카페, 레스토랑, 명품숍, 피부 마사지를 받는 사우나에서 호스트바까지. 일부 부유층 여성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교의 장소이자 외모를 가꾸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뷰티 공간인 것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정권 초기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단정한 외모와 패션 외교를 칭송했다. 패셔니스타 최순실이 골라준 세련된 옷들이 신통한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어디 대통령뿐이랴? 최순실의 마법은 한국 사회에 팽배한 외모지상주의, 명품 소비시장과 결합되어 더욱 강력해졌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미모가 곧 권력’인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들은 피부 마사지를 받고 세련된 외모를 유지하느라 고달픈 서민들의 삶과는 자꾸 멀어져 간다.

이제는 초등학교 여교사들조차 예뻐야 학생들이 좋아한다며 방학 때면 성형수술을 받고 외모 가꾸기에 열중한다. 책보다는 옷과 화장품을 사고 도서관보다는 피부과를 찾는 게 한국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실력과 배짱으로 독일을 이끄는 여성 지도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한국에 오면 촌스러운 아줌마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을 것 같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화여대마저 최순실의 마법이 통하는 무대로 전락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여자대학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대학가 앞에는 서점 대신 뷰티·소비공간만 즐비하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대 졸업생들의 존재감은 공적 공간보다는 사적 공간에서 더 위력적이다.

한국의 고학력 전업주부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좁은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막강한 재력과 정보력을 무기로 자녀와 남편을 뒤에서 조종해 억눌린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요즘 강남에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옷 입고 진학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아바타’ 같은 젊은이들 천지다. 집 밖에서는 멀쩡한 대장부인데 부인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꼬리를 내리는 생쥐 같은 가장도 의외로 많다. 종교의 힘을 빌려서라도 현세의 부귀영화를 대대손손 누리기를 원하는 일부 강남 사모님들에게 최순실은 최고의 멘토일 수 있다. 재산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대학입시 규칙을 바꾸고 국정까지 좌우하는 신묘한 마법의 소유자이니 말이다.

최순실 일가가 수천억원대의 재산을 형성하게 된 배경은 1980년대 강남 빌딩 매입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동산 거래를 통해 막대한 재산을 순식간에 형성할 수 있었던 어수선한 시절, 강남은 복부인을 위한 ‘대박의 땅’이었다. 쉽게 번 돈은 고급 외제차, 명품 옷·가방 구입에 쓰였고, 자녀들의 사교육과 결혼시장으로 흘러갔다.

돈으로 거의 모든 걸 살 수 있는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녀의 결혼은 강남 사모님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젊은 판·검사를 강남 아파트와 고가의 혼수로 유혹해 사위로 삼으면 미래의 고위공무원이 저절로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내 딸도 커서 나처럼 판사 부인이 되면 정말 좋겠다’는 강남 사모님의 솔직한 고백은 애교에 가깝다. 지방의 가난한 집안 출신 검사가 초고속 승진을 하고 권력을 행사하려면 처가의 든든한 경제력이 필수라는 자조적인 농담 속에서 그녀들은 국가 권력마저 소리 없이 장악해 왔다.

재테크에 밝은 최순실은 국내외 승마장과 동계스포츠 관련 이권에도 주목했다. 실제로 최순실 일가는 동계올림픽 개발 호재를 놓치지 않고 평창 일대 부동산에까지 손을 뻗쳤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말을 구입해야 하는 승마, 장비구입과 빙상시설 이용으로 돈이 많이 드는 동계 스포츠 종목들은 일반인들이 넘볼 수 없는 특권층의 공간이 되기 쉽다. 외동딸의 승마 전지훈련을 지원하기 위해 독일에 거처를 마련하고 K스포츠재단을 통해 해외 진출까지 모색한 최순실의 지리적 상상력은 끝없이 확장 중이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최순실의 마법에서 깨어날 때다. 막대한 돈과 권력을 가졌으나 공식적으로는 무직자이기에 더 자유롭게 활동 영역을 넓혀갈 수 있었던 최순실 세력의 허상을 깨닫고 ‘강남 사모님 공화국’의 실체를 직시하자. 프라다 신발, 명품가방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 어둠 속에 가려 있던 부패의 커넥션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났으니 진짜 개혁을 시작할 기회가 왔다.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세월호 참사, ‘관피아’ 문제 드러내
공직자 가족 관련 직무 제한 법안
정치·언론계 ‘연좌제’ 억지 주장에
3년7개월 만에 ‘누더기 법’ 통과


1950~1960년 미국 연방정부 내에서 트루먼과 아이젠하워가 지명한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몇 건의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자 1960년 뉴욕시 변호사협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윤리규정 때문에 이해충돌 문제를 제대로 막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의회와 대통령이 주요 윤리규정들을 개정해 연방정부의 윤리시스템을 조사하고, 선물 수수나 외부 고용 등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한 새로운 윤리규정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권고에 따라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윤리규정들을 포함하는 연방정부의 윤리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마련했다. 이어서 미국 의회도 1962년 10월23일 뉴욕 변호사협회의 권고를 상당부분 수용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입법의 하나로 평가되는 ‘연방정부의 뇌물 및 이해충돌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고, 케네디 대통령은 이날 법안에 서명했다. 이후 이 법은 정부윤리법(1978), 윤리개혁법(1989) 등으로 진화했다. 이 법률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다름 아닌 이해충돌의 방지다.

2015년 3월3일 우리 국회 본회의에서 법 하나가 통과되었다.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전체 재석의원 247명 중 226명이 찬성했으니 외견상 국회의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법이 처음 입법예고된 것은 2011년 8월이니, 장장 3년7개월 만에 제정되었다. 이 법이 2013년 8월 정부에 의해 국회에 제출되었을 때의 원래 명칭은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었다. 공직자의 부당한 청탁 수수를 금지하고, 이해충돌이 있는 직무의 수행 등을 방지해 공직자의 부패를 막고, 정부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법이었다. 부정 청탁은 이해충돌의 가장 부정적 상황이라는 점에서, 부정 청탁의 금지와 이해충돌의 방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특히 이해충돌 방지는 공직자 윤리를 확보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 규정으로, 이미 주요 선진국에서는 일상화된 규정이다. 그런데 김영란법 제안 당시 우리나라에는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규정이 없었다. 공직자윤리법과 부패방지법은 명칭은 그럴 듯했지만, 이 법에서는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한 제대로 된 규정을 찾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해충돌 방지를 핵심으로 하는 김영란법은 우리나라 공직윤리 관리의 큰 허점을 메울 수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오랫동안 잠자다,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 문제가 부각되면서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세월호법으로 논의가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의 하나가 바로 이해충돌에 대한 부적절한 관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의는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입법 논의과정에서 김영란법의 가장 중요한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제거되었으며, 법안에서 명칭마저 제거되었다. 공직자 가족의 직업선택권 제한 등 위헌 시비가 일면서 삭제된 것이다. 김영란법 원안은 공직자 가족의 취업 제한이나 가족 관련 직무수행의 제한은 이해충돌이 존재하는 경우만 예외적으로 적용됨에도, 국회와 언론은 모든 공직자와 가족에게 일상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법안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일부 국회의원조차도 방송에서 공공연히 공직자 가족의 취업을 금지하는, 공직자 가족이 선물을 받으면 처벌받는다는 연좌제법이라고 억지 주장을 했다.

이런 주장은 대세가 되었고, 국회는 김영란법의 핵심인 이해충돌 관련 규정을 제거한 채 나머지만으로 법을 통과시켰다. 명칭도 바꾸었다. 그런데 지금도 국회와 언론은 이 법을 김영란법이라고 부른다. 이제 이를 김영란법이라고 부르지 말기를 요청한다. 김영란법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호법이라고 부르지 말기를 요청한다. 세월호법도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인 이해충돌의 효과적 관리방안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법 통과 후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가 이해충돌 관련 규정의 제거를 심각한 입법의 흠결로 지적하자, 국회는 뒤늦게 이 규정을 다시 법에 추가하겠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일이다. 이해충돌 방지 규정이 없는 이 법은 김영란법이 아니다. 세월호 이후를 변화시키겠다는 세월호법도 이젠 아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10일 서울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미국 의회는 1962년 ‘뇌물 및 이해충돌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킨 것을 20세기 들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로부터 50년 이상이 지난 2015년, 우리 대한민국 국회는 이해충돌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김영란법의 제정을 거부했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변할 수 있을까? 국회는 세월호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지 벌써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 아직도 팽목항에는 선명한 노란색의 리본들이 수도 없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윤태범 |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실행위원·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마침내 한국 사회의 부정과 비리의 사슬을 끊어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제정되었다. 2011년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초안을 내놓은 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뤄낸 3년9개월 만의 결실이다. 원안에서 일부 후퇴된 부분이 있지만, 직무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금품수수를 금지한 취지가 관철됨으로써 강력한 반부패법의 정신을 살리게 됐다. 당장에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각종 청탁과 접대 문화에 혁명적 변화가 기대된다.

‘김영란법’은 한 번에 100만원, 연간 300만원을 넘는 금품을 받은 경우는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처벌하도록 했다. 금품에는 돈·물품 말고도 접대와 향응, 편의 제공 등 유·무형의 이득이 모두 해당된다. 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에는 선출직·임명직 공무원과 공직 유관기관 임직원 외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직원도 포함됐다. 하나의 법이 모든 것을 이룰 순 없겠으나, 관행이라는 핑계로 만연한 부조리의 구조를 깨뜨릴 수준이다. 일각에서 과잉 입법을 운위하지만, 수십년 전부터 시행 중인 선진국들의 반부패법에 비하면 외려 널널한 편이다. 177개 국가 중 46위(2013년)에 불과한 국가청렴도를 높여 ‘투명 사회’를 이루려면 일시적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일상화한 부정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법에서 우려스러운 대목도 없지 않다. 원안과 달리 100만원 이하의 금품수수 때는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만 과태료 대상으로 삼아 떡값·촌지 등을 없애기 힘들어졌다. 적용 대상 ‘공직자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축소한 것도 법의 구멍이다. 다른 가족과 친족을 통한 우회 청탁·금품수수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자 대상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까지 포함한 것은 또 다른 우려를 자아낸다. 민간 영역으로 대상이 확대됨으로써 수사기관의 권한이 비대해지고 남용의 소지가 커졌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이 법을 악용, 독립성과 자율성이 생명인 언론을 감시·통제할 수도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공정한 법 운용과 더불어 검경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이유다.

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표결 결과가 전광판에 나타나 있다. 여야는 이날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다. (출처 : 경향DB)


당초 ‘김영란법’은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금지, 이해충돌방지 등 세 부분으로 이뤄졌지만 이번에 ‘이해충돌방지’는 빠졌다. 이해충돌방지는 공직자나 가족이 이해관계에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국회 정무위 심의에서 현실 적용의 어려움을 내세웠으나, 이해충돌방지는 전 세계의 보편적 공직윤리규범이다. 여야는 이해충돌방지 부분의 별도 입법도 서둘러 반부패법으로서 ‘김영란법’이 온전체로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