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2008)는 <노예 12년>(2013)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된 영국 출신 스티브 매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마거릿 대처가 기세등등하게 집권했던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IRA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규정한 영국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체포 작전을 시도했다.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 조직원들은 영국정부에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대처 정부는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라며 거절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한 제국이었던 영국은 무기의 질, 군인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대처는 협상을 모르는 단호한 정치인이었다. 세상에서 고립돼 있던 IRA 죄수들은 ‘안 씻기’ 투쟁을 벌였다. 벽에 똥칠하기, 복도에 오줌 흘리기, 먹다 남은 음식 벽에 붙이기 등이었다.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끌어내 구타한 뒤 강제로 소독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자, IRA 죄수들은 마지막 남은 저항 수단을 택한다. 바로 단식이다. 단식 투쟁을 주도한 보비 샌즈가 조금씩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지켜보기가 괴롭다. 샌즈는 면회온 신부에게 단식 투쟁의 결심을 알린다. “할 일이 없어서 내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게 아니에요. 옳은 일이기 때문이에요.”

병상 옆에는 소시지, 오믈렛, 베이컨 등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지지만, 샌즈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샌즈의 뼈와 가죽이 들러붙고, 피부에는 상처들이 생기고, 변기에 앉으면 혈변이 나온다. 의사는 말한다. “간, 콩팥, 췌장의 기능이 약화됐습니다. 골밀도도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심근도 기능장애를 일으킬 겁니다. 저혈당이 올 테고, 에너지 부족으로 근위축이 오겠죠.” 샌즈는 66일간의 단식 끝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샌즈가 주도한 7개월간의 단식 투쟁 기간 동안 9명이 더 죽었다.

2014년 여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45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였다. 노모와 남은 딸의 설득에 김영오씨는 다행히도 샌즈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피했다. 단식 기간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손을 잡았고 야당 정치인과 시민들이 단식에 동참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김영오씨를 폄훼하는 여론전이 벌어졌다. 이혼한 처가 쪽 사람들 말을 빌려 ‘아빠 자격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였고, 자식 잃은 충격에 내뱉은 거친 말을 ‘폭언 파문’이라고 수식했다. 평범한 중년 남자의 처가 사람들, 취미, 언행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인가, 흥신소가 할 일인가.

김영오 씨 단식 일지 (출처 : 경향DB)


김영오씨 단식의 결과는 무엇일까. 여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주자는 유족들의 의견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 말을 믿고 나선 유족들을 청와대 멀찌감치서 가로막고 고립시켰다. 겉보기에 이 단식 투쟁은 얻은 것이 없다.

보비 샌즈의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대처 정부는 IRA 죄수들의 정치범 지위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대처의 행동이 “영국병을 치료했다”며 칭송한다. 하지만 영국 분위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정치적 반대자조차 애도를 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처가 죽었을 때는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마녀가 죽었다” “지옥불에서 타라”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해서 가장 싼 업체에 맡기자”는 말들이 나왔다. 거리에서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다.

단식 투쟁은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약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행동이다. 이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치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승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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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방송되는 주말 드라마 <끝없는 사랑>은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이 주요 배경인 시대극이다. 배우 황정음이 연기하는 주인공 서인애는 엄혹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맞서 살아내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살해당한 상처를 안고 있는 그는 당차고 총명하며,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 시국사건에 휘말려 소년원에 수감되지만 그의 사연이 우연히 방송을 타면서 영화배우로까지 데뷔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독학으로 법대에 진학한 그는 시국선언문을 쓰며 학생운동에 앞장선다. 미모와 지성, 용기, 게다가 복싱까지 배워 ‘문무’를 모두 갖춘 재야의 잔다르크이자 투사의 상징.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인 그는 권력욕과 탐욕에 찌든 기득권층에는 눈엣가시다. 결국 납치돼 고문과 성적 유린을 당하고 임신한 채 감옥에 갇힌다. 언론은 ‘운동권 잔다르크가 벌인 애정행각의 말로’라고 그의 임신 소식을 대서특필하고 세상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수군댄다. 지금까지 서인애의 수난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앞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복수에 성공하는 서인애의 이야기를 묘사할 것이다.

1980년대의 칙칙함이 물씬 배어있는 이 드라마에 최근 ‘꽂힌’ 것은 어떤 트렌디 드라마보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현실감과 동시대성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상식을 말하는 사람이 불순세력으로 둔갑되고, 날조된 소문은 팩트로 자리 잡는다. 본질과는 상관없는 사생활이 까발려지며 인격유린이 자행된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닌가.

서인애를 2014년으로 데려와보자. 3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를 바라보는 수구기득권의 시선은 그대로다. 그를 향한 난도질은 더 교묘해지고 비열해진다. 당당했던 그의 행동은 막말을 일삼는 무뢰한의 그것으로, 주변 남자들에게서 받았던 구애는 문란한 성도덕으로 꼬투리 잡힐 것이다. 어려서 배웠던 복싱은 호화 취미로 왜곡된다.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근거로 내세운 언론은 사생활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보도하고 이는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이 올라 신상은 진작에 털렸다.

문제는 서인애를 굳이 현재로 데려오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현실에서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간 단식을 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도 수많은 서인애들 중 하나다. 김씨가 원하는 것은 생때같은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재발방지 약속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다른 방도가 없어 시작한 단식. 기득권층의 외면 속에 단식기간이 길어지며 그의 존재감은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의무를 지닌 ‘그들’에게 김씨는 몹시 불편한 존재가 됐다. 그리고 어느새 김씨를 향해 시작된 인격테러. 시간이 갈수록 야만과 광기는 짙어졌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김씨를 마치 해명이 급급한 피의자로 몰아갔다.

김영오 씨 페이스북 캡쳐


궁금하다. 이혼하고 나면 아버지가 아닌 건가. 설혹 과거에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지금이라도 자식 일에 관심 가지면 안되는 건가. 위장전입, 탈세, 성범죄, 횡령, 병역비리, 사기, 폭언, 거짓말을 일삼는 공직자들에 대한 검증은 신상털기고, 자식의 억울함을 해소해 달라는 힘없는 아버지의 ‘의지’는 철저히 규명돼야 할 의혹인 건가. 몸밖에 가진 게 없는 약자의 목소리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득권층은 무언가가 밝혀지는 것이 정말로 두려운 건가. 김씨를 비난하는 이들은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세상 이치를 정녕 모르는 걸까.

묻고 싶다. 매일 밤 늦게까지 일에 시달려 주말엔 잠만 자는 많은 아버지들에게. 자녀들과 살뜰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다정하게 사진 한 장 찍어놓지 못한 채 김씨와 같은 끔찍한 일이 닥쳤다고 치자. 억장이 무너진 당신에게 “다정한 아버지였던 증거를 내놓으라”는 세상.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박경은 대중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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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어제 단식을 중단했다. 45일 만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지난달 14일 단식에 돌입한 김씨는 병원 이송 후에도 식사를 거부해왔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남은 딸 유나양과 노모의 눈물 어린 호소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김씨를 비롯한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게 답을 내놓을 때다.

김씨는 목숨 건 단식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던 시민들의 양심을 다시 깨웠다. 그의 아픔에 공감한 수만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혹은 각자의 일터에서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를 위로하는 장면은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의 관심까지 불러일으켰다. 세월호 가족 뜻과 동떨어진 여야의 특별법 합의가 무산된 것도 김씨 단식의 영향이 컸다.


김씨의 싸움은 그러나 공동체의 부끄러운 민낯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정치의 역할은 국가와 시민이 단절될 때 그 간격을 메우고 소통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45일 동안 ‘부재중’이었다. 김씨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세월호특별법 처리 전망이 불투명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진상 규명에 유족들의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던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김씨에게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대통령은 대신 영화와 뮤지컬을 보고, 자갈치시장과 태릉선수촌에 갔다. 여당은 청와대 눈치를 보며 야당 뒤편에 숨어 있다가 뒤늦게 떠밀리다시피 세월호 가족과 마주 앉았다. 가족 뜻을 대변하겠다던 야당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들만의 합의’를 들고 돌아왔다. 이제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조차 힘든 ‘잉여정당’ 처지로 전락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가 46일째 단식 중단을 선언한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 동부병원 병실에서 김영오 씨가 병문안을 온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치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일부 언론과 누리꾼은 김씨가 이혼했다는 등의 이유로 ‘아빠 자격’을 문제 삼는 등 악의적 비방을 일삼았다. 유나양이 인터뷰를 통해 해명한 뒤에도 악성 루머와 왜곡보도는 끊이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딸들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와 양육비 통장 사본까지 공개해야 했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은 아비가 ‘2차 가해’에까지 맞서야 하다니, 이 사회의 야만성에 부끄럽고 참담할 뿐이다.

김씨는 “몸을 추스르면 다시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가 싸울 것”이라고 했다. 그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또다시 농성하는 일이 있어선 안될 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라도 세월호 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의 아픔을 감싸안기 바란다. 새누리당도 담대한 태도로 특별법 협상에 임해 조기에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깊이 자성하고 야당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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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처서를 지나 이제는 가을 문턱에 걸터앉았다. 때아닌 가을장마가 열대야를 저만치 밀어내고 있다. 가을 바람 한 줄기가 끈적함을 빼앗더니 달아난 입맛까지 돌아온다. 벌초 행렬이 주말 고속도로를 꽉 채웠고 이제는 추석 차례상을 준비해야 할 때다. 가을이 시작됐다. 추석을 코앞에 두고 단식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2013년 9월의 얘기다. 쌍용차 국정조사 촉구를 요구하며 21명이 대한문 앞에서 단식을 했다. 그 전 2012년 10월엔 같은 장소에서 쌍용차 김정우 전 지부장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42일간 단식을 했다. 단식은 의식적으로 굶는 행위다. 온몸을 바쳐 절박한 요구를 관철하려는 정치적 행위다. 이런 단식에 숱한 마타도어(흑색선전)만이 횡행했다. 굶어서 무엇이 해결되느냐를 물었고 조롱한다. 심지어 무엇을 먹고 하는 것 아니냐는 악의적인 정치 공세만 높았다. 달래고 으르기만 할 뿐 쌍용차 문제 해결은 결국 없었다.

44일째.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단식이 길어지니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김영오씨 신상털기가 한창이다. 이혼 전력과 금속노조 조합원이란 이유를 교묘하게 짜깁기하고 있다. 인과관계 없는 항렬이 조합되고 상관관계 없는 근거들조차 하나로 뭉뚱그려져 공격의 수단이 되고 있다. 가족관계의 슬픔이 공격의 재료로 재등장한다. 44일 단식의 고통이 일반 시민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발악이며 몰염치다. 단 하루라도 굶어본 적이 있는 자들이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오장육부가 말라비틀어지는 경험을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인간이라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소금뿌리기다. 이런 정치 공세는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의 주객을 바꿔 청와대와 집권여당으로 응집하는 화살 부러뜨리기다.

김영오 씨에 대한 악성루머 캡쳐본


하루 종일 틀어대는 종편에선 한국 사회에 단식 투쟁이 난무한다고 한다. 단식 투쟁이 무분별하다는 훈계와 조롱만이 커지고 있다. 단식의 절박한 현실은 뒤로한 채 의도와 꿍꿍이가 있지 않으냐는 혐의는 더욱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단식 투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 같은 한국 사회의 저열하고 졸렬한 정치 때문이다. 조정과 조율의 정치가 작동하지 않은 채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가는 정치 현실이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믿음이 한 자락도 있을 수 있겠는가. 단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위가 잘못이 아니라 모든 수단을 박탈한 채 단식밖에 할 수 없게 만드는 발가벗은 정치가 문제의 원인인 것이다. 이것에 대한 해결은 결국 정치가 자기 자리를 잡아야 하지만 남 탓만 하고 있다.

단식의 후유증은 상상 이상이다. 잇몸이 내려앉고 장기가 헛돌기 일쑤다. 시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기억력은 가뭇거린다. 일상의 회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장기간의 단식은 생명의 불씨를 작게 만든다. 그럼에도 단식이란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 엄중한 현실이 있다. 자식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아야 한다 하지 않는가. 어떤 이유로 수백의 목숨이 그렇게 무참히 한순간에 사라진 것인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지 않는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여기다. 세월호특별법이 정치 흥정거리로 추락하고 여야 거래의 산물로 전락하는 현실을 두고 어떻게 단식을 포기할 수 있는가. 길어지는 단식을 무작정 비난하고 중단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단식을 끝낼 수 있는 여건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병원으로 이송되기 전 사진에 찍힌 김영오씨의 마를 대로 마른 다리를 봤다. 앙상하게 말라 기력 없는 정치, 참혹한 정치가 부른 비참한 현실. 그 모습이 한국 정치다. 어디까지 밀어낼 것인가. 어디까지 죽음의 문턱으로 손짓할 텐가. 죽음을 부르는 정치를 끝낼 방법은 무엇이고 죽음의 사선에서 생명의 불씨를 살릴 방안은 어디에 있는가.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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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숨진 안산 단원고생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 40일 만인 어제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씨는 입원 뒤에도 수액 주사 외에 식사는 거부하고 있다. 진상규명이 가능한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특별법이 만들어지는 걸 못 보고 여기서 (단식을) 멈추면 유민이를 볼 낯이 없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안타깝고 참담할 따름이다.

‘유민 아빠’가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은 7월14일이다. 당초 예상한 단식 기간은 여야가 세월호특별법 처리 시한으로 합의했던 7월16일까지였다. 그러나 특별법안 처리가 계속 지연되면서 사흘 하려던 단식이 40일에 이르렀다. 그사이 김영오씨는 57㎏이던 체중이 47㎏으로 줄어들 만큼 쇠약해졌지만, 달라진 건 없다. 400만명 가까운 시민이 ‘수사·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세월호 가족들을 위로했으나 정치권은 외면했다. 무책임한 집권세력과 무능한 야당은 ‘그들만의 합의’를 가족에게 내밀며 동의를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0일째 단식농성을 이어왔던 김영오씨가 건강이 악화되어 22일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의료진은 김씨가 근육 손실이 불가피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라고 밝혔다. 김씨는 의료진의 미음 공급을 거부하며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 경향DB)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렇다고 정치 실종만 탓할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은 ‘유민 아빠’의 고통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에는 온 국민이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다. 저마다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 130일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많은 시민이 세월호 가족의 고통에 공감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피로감 운운하며 수수방관하고, 일각에선 상처에 소금 뿌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세월호 가족이 요구하지도 않은 ‘피해자 전원 의사상자 지정’ 같은 유언비어가 떠도는 현상은 공동체의 건강성을 의심케 한다. 한국 사회는 얼마나 더 비정하고 잔인해질 셈인가.

지극히 당연한 명제이지만, 세월호 가족은 피해자다. 피해자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 피해자가 한 달 넘게 단식하다 병원으로 실려갈 때까지 집권자가 돌아보지도 않는 사회는 정상적이라 말할 수 없다. 다행히도 이러한 ‘비정상성’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동조 단식에 참여한 시민이 2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우리는 김영오씨와 시민들이 단식을 멈추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공동체의 각성이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낼 때 그날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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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인 안산 단원고 2학년 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단식 40일째인 22일 병원에 실려갔다. 김씨의 혈압은 90/60, 혈당은 57-80, 체중은 47㎏으로 혈압·혈당·체중 모두 정상치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제대로 단식을 했으면 벌써 (병원에) 실려 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댔던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 말대로 됐다.

김씨가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해온 이유는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것이다. 다른 세월호 가족들처럼 김씨 역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진실을 은폐할 동기가 있다고 의심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진상조사건, 특검이건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가급적 자유로운 인사들이 진실 규명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김씨 등이 주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야가 재합의한 방안대로 특검을 구성하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규명될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특검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무수한 의혹과 의심이 뒤따를 것이다. 세월호 가족과 정부·여당 사이에 팬 불신의 골이 이렇게 깊다. 정부·여당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정부·여당이 그렇게 만들었다. 유병언을 세월호 참사의 몸통이자 ‘절대악’으로 만든 검찰은 유씨가 사망한 지 40일이 넘도록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세월호가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기까지 유씨가 책임을 져야 할 어떤 일을 했는지 무엇 하나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다.

전대미문의 사고 발생 직후 7시간 동안 대통령과 청와대가 시간대별로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는지 아는 것은 주권자인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인데, 정부·여당은 그에 관한 사항을 조사·수사 대상에서 한사코 배제하려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오른쪽)이 24일 오후 단식 농성 중 건강 악화로 병원으로 이송된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입원하고 있는 서울 용두동 동부병원 병실을 찾아 김씨의 손을 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여당 의원은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가족을 ‘노숙자’로 비하하고, 호통친다. 여당은 ‘세월호 참사=교통사고’를 공식 입장으로 내세운다.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없고, 자신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도 없는 정부·여당을 세월호 가족들이 신뢰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문제의 원인은 불신이다. 불신의 원인 제공자가 정부·여당이라면 해결 방법 역시 불신을 불식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진상조사위건 특검이건 가족들이 수용할 수 있는 조사·수사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어떤 조사·수사 결과가 나오건 가족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건 어떻게 가능한가. 가족들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들로 진상조사위건 특검이건 구성하면 된다.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박 대통령은 면담을 요청하고 있는 김영오씨를 하루빨리 만나 열린 마음으로 대화해야 한다. 인간적 존중과 배려가 깔린 소통의 온기는 불신을 녹이는 첫걸음이다. 거창한 명분 따위는 다 제쳐두더라도, 세월호 참사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자유롭게 무리지어 오가는 청와대 앞길에서 김씨가 경찰에 가로막히는 풍경을 보는 건 대통령의 덕목 운운하기 앞서 인간적으로 민망한 일이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가족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켜 제 뜻을 관철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마무리되면, 세월호 가족의 목소리가 배제된 침묵의 시간이 오면 이 사회는 더 평화로워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했다. 사회적 분열의 치유와 통합, 평화는 배제와 억압, 강요된 침묵의 결과가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는 의미로 읽힌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통합을 내세웠다. 박 대통령의 ‘통합’은 어떤 것인가.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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