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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4.18 [이범준의 저스티스]조현민의 물컵은 갑질이 아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물컵을 집어던졌다고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 어느 당의 서울시장 후보는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경찰은 재벌 3세를 잡겠다며 수사에 들어갔다. 유명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재벌들의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말도 한다. 경제신문들은 인성검증이 안된 재벌 3세의 갑질이 기업에 부담이라고 썼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조현민 전무가 경찰 포토라인에 설지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끝날 일이다. 더구나 마흔을 바라보는 어른에게 가정교육 운운하는 것도 듣기 민망하고, 인성만 검증되면 3세 경영도 문제없다는 논조는 의도를 의심케 한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과 말뿐인 반성이 반복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3년 전 ‘땅콩 회항’에 대해 사과했고(왼쪽 사진) 장본인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항공사고 조사위원회에 출석했다(가운데). 이번에는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를 숙였다. 경향신문 자료사진·MBC 화면 캡처

머지않아 조현민 전무에 대한 소박하지만 적절한 결론이 나올 때쯤이면 우리는 유전무죄다 전관예우다 하면서 막연하게 세상을 욕하다가 또 다른 사건을 찾아내 지금 하는 것처럼 남의 집 가정교육이나 탓하다가 잠들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영화 대사가 어쩌면 나를 향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술자리나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적당히 씹어대다가 싫증이 나면 뱉어버리겠죠. 이빨도 아프고 먹고살기도 바쁘고.”

그들에게 개·돼지 같은 대중이 되지 않으려면 현실을 차갑게 직시해야 한다. 조현민 전무의 물컵 투척 따위는 갑질도 뭐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경미한 폭행 사건에 불과하다. 한진그룹이 저지른 진짜 갑질은 지금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다. 조현민 전무의 형제자매 3명이 주식 100%를 소유한 회사에 대한항공이 일감을 몰아주다 적발된 사건이다. 이런 방법으로 대한항공은 고객과 주주, 경쟁 납품업체에 손해를 끼쳤다. 그래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14억3000만원을 공정거래위원회가 2017년 1월 부과했다. 하지만 곧바로 9월에 서울고법 행정2부(재판장 김용석 부장판사)가 모두 취소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공정위에 따르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3남매인 현아·원태·현민씨가 주식 100%를 가진 싸이버스카이와 90%를 가진 유니컨버스는 대한항공 일감으로 손쉽게 대규모 이익을 올렸다. 기내 면세품 인터넷 예약 사업을 받아 업무대행 수수료로 매출액의 14%를 챙긴다거나, 국내선 면세품 카탈로그 제작을 하고 판매액의 15%를 수수료로 받는 등이었다. 대한항공 콜센터 운영 업무 계약을 하고, 시설사용료와 유지보수비 명목으로 거액을 받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구멍을 뚫는 일이라고 해서 터널링(tunneling)으로 부른다. 기업 관계자가 내부거래를 통해 자신과 가족에게 기업의 부를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는 공정거래법 23조의2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을 공정위는 적용했다. 이 조항은 2014년 2월 신설된 것으로 다른 부당지원과 비교해 가족 등에 대한 부당지원은 규제가 쉽도록 했다. 국회가 제시한 개정이유에도 “현행법상 부당지원행위는 (회사 간 거래에 주로 인정되는)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돼 있어 (가족 등) 특수관계인을 지원하는 경우에는 입증이 곤란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특수관계인이 대상이면) 공정거래 저해성이 아닌 부당이익 제공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규정을 신설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서울고법 김용석 재판부는 ‘경제력 집중 발생 우려’라는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 한진그룹에 대한 과징금을 취소했다. 그러면서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통해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가 사익을 편취하고 경제력의 집중을 도모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판결에 공정위는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더라도 경제력 집중을 우려할 정도로 부당이익이 크지 않으면 제재할 수 없다는 뜻이어서 재벌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게 됐다”고 했다. 서울고법의 한진그룹 판결은 23조2항이 만들어지고 나온 첫 해석이고, 대법원에 올라가 있다. 

공정거래 저해성이니 경제력 집중 우려니 하는 법률용어들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변호사들 중에도 공정거래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지만 관심을 가지고 기사라도 읽으면서 사람들과 의견을 모아야 한다. 군사독재가 정치민주화로 끝났듯이, 재벌 갑질은 경제민주화로 사라진다. 그렇지 않고 물컵 투척에만 분노하면서, 경찰서로 재벌 3세를 불러내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공동체의 부를 빼앗는 진짜 갑질은 조용히 면죄부를 받아낼 것이다. 법원에는 갑질 제재를 취소하라는 재벌 3세들의 재판이 예정돼 있다. 하이트진로 3세 박태영 부사장이 부당이득을 챙기다 받은 과징금 107억4000만원 사건 등이다. 효성 3세 조현준 회장도 최근 받은 과징금 29억9000만원에 소송할 예정이다.

재벌 3세가 던진 물컵에 나의 가족이 맞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고 울화가 치민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우리의 열정을 아껴서 정확한 목표에 쏟아야 한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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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