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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1 “혼란스럽고 아프고 슬프다”

흥분하면 진다. 승패가 다라면 그렇다. 상대를 흥분시키되 자신은 흥분하지 않는 기술이 이긴다. 경기나 싸움 혹은 잘못된 토론에선 이런 처세가 먹힌다. 하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는 승패를 떠난 소중한 경험과 결정적인 순간이 훨씬 많다. 고백하면 거절당할까봐 못나게 굴고 차일까봐 먼저 차버리는 꼼수로 살면 인생은 후져진다. 함께 흥분하지 못하는 불감증과 무정함이 만연하면 불행해진다. 인류 역사는 함께 흥분한 사람들이 사랑하고 응원하며 축제와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향유해온 과정이다. 그것이 승리가 아니었고 불완전했으며 짧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타인의 감정에 내 감정도 같이 흥분하는 상태가 바로 공감이다. 요즘 유행대로 ‘공감 능력’이라 표현한다면 이는 이성의 힘이 아니라 텔레파시 같은 것이 통하는 정념의 힘이다. 그 공감의 에너지가 무척 예민하고 큰 연예인을 꼽자면 김장훈씨가 아닐까. 그는 공연을 취소하고 팽목항에서 봉사를 했다. 서명운동과 추모 콘서트에 앞장섰다. 24일간 광화문에서 단식을 했다. 이도 모자라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비롯해 위기를 겪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를 “우리 프로젝트”라 부른 그의 활동은 석 달째에 접어든다.

이런 그를 유난스럽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부하고 분향하고 애도를 밝힌 연예인들이 여럿이다. 그들에 비하면 그는 확실히 과도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공연의 황제’가 된 것도, 150억원이 넘는 ‘기부천사’로 살아온 것도 같은 과도함에서 나왔다.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려는 ‘지킴이’의 과도함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과도함은 여러 개가 아니라 하나이며 그것이 김장훈씨의 인생인가 싶다. 이쯤에서 밝히면 앞으로 그를 존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년 전이었다. 그는 바다를 횡단해 독도까지 가는 릴레이 수영 끝에 탈진과 공황장애 재발로 쓰러졌다. 그때 한 의사의 블로그에는 이런 분석이 실렸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훨씬 뛰어넘는 정도를 해내고자 하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그의 공황장애가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성정분석”을 통해 치유할 수 있다고 의사는 썼다. 이 글을 보며 당시엔 ‘그가 큰 슬픔과 외로움을 가진 연예인이구나’ 하고 말았다.

그러다 올해 단식 중이던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 문장을 전해듣고는 마음이 뭉클했다. “무엇인가 혼란스럽고 아프고 슬프다”는 그 한마디가 ‘희망을 갖자’는 말들보다 더 묵직하게 내 감정을 흔들어놨다. 그랬다. 모든 사람이 혼란과 아픔과 슬픔을 갖고 산다. 해법이 뭔지, 출구가 어딘지 모른 채 가끔씩 웃고 떠들지만 다들 우울하다. 함께 아우성도 질러보지만 누군가는 차분해지자고 하고, 누군가는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렇게 자리를 뜨면 누군가는 쓸쓸하게 남겨진다.

추석날 가수 김장훈이 세월호를 수색하는 잠수사에게 치킨가 피자 350인분을 전달하기 위해 바지선으로 이동하다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출처 : 경향DB)


며칠 전 세월호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다. 거부의사를 밝힌 가족대책위의 기자회견장 사진 속에는 유가족들이 고개와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뉴스를 지켜본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진 것 같다고 평했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아프고 슬픈 그 ‘무엇인가’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해 진다손 쳐도 같이 분노하고 아파했던 사람들의 이 공감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소중하고 결정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김장훈씨는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소외되고 나약한 인간에 대한 인간의 도리”로 시작한 자신의 단식이 “진흙탕으로 끝난다면 그동안 모진 칼 맞고 똥 뒤집어쓰고 견뎌온 날들이 참 허망”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과도함으로 허망할 일 없이 ‘우리 프로젝트’를 하고 산다. 그 힘은 이성이 논하는 승패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상태일지언정 공감하는 감정에서 고스란히 솟아나온다. 그의 공황장애와 어떤 콤플렉스에서 기인할지도 모르는 그 과도함의 즉각적인 공감과 실천 때문에 말이다.

나는 대체로 이런 연예인을 선호해왔다. 음악다운 음악을 하는 후배들을 가려서 키우려는 윤종신씨. 협동조합을 만들어 동료들의 권리를 찾고 지키려는 신대철씨. 여기에 새 유형이 생겼다. 김장훈씨다. 그는 자신의 장애와 콤플렉스와 아픔과 슬픔을 훤히 드러내서 타인의 감정을 온몸으로 공감하고 노래한다. 늘 먼저 고백해서 퇴짜 맞고 차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는 그런 과도함이 내 안 어디에 숨어 있는지 좀 찾아봐야겠다. 흥분해서 지더라도 내 안의 찌질이와 못난이들을 모두 불러내 시인처럼 묻고 싶다. 넌 김장훈씨처럼 한 번이라도 과도하게 해봤어?


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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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