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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25 [기고]노정객의 거북한 ‘정치 조언’

설 연휴 이후 큰 화제의 하나는 9선 의원 출신 전 국무총리의 부인상이었다. 정파를 초월해 전·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 정당 대표들이 이 조문정치판에 줄을 이었다. 마치 국민장 수준의 행렬이었다.


그런데 정작 눈에 띄는 건 고인을 추모하는 일과 함께 조문을 받는 노정객 김종필의 어록이다. 예를 들면 ‘정치는 허업’(헛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각책임제를 해야 대통령제의 폐단을 줄이면서 정치 안정이 된다는 소신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그 화법은 노환을 앓고 있다는 환자의 입에서 나온 것일까 의심스러울 만큼 정연하다.

정치판을 뒤흔들 만큼 파괴력을 지닌 이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은 거북하기 짝이 없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는 조국 근대화를 앞당기기 위한 구국행위였고, 1972년 10월 유신은 평화통일을 위한 성업이었다고 오래전부터 배워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을 모방한 정보기관을 창설해 공권력의 국내정치 불법개입과 선거부정을 공공연하게 벌여 온 또 하나의 관행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는 데 대해 일말의 반성이나 사과조차 없었다. 그의 손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 18년 장기 집권의 토대가 되었던 민주공화당이 사전 조직되었다. 표면적으로는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기관이라고 내세웠으나 실상은 선거 때마다 집권여당의 승리,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각종 중대한 인권유린과 침해도 불사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아무런 유감조차 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인가. 일본제국주의 36년 강점 이후 불편해진 한·일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과정에서 전쟁범죄 국가, 즉 가해자의 사과나 배상도 전혀 받아내지 못했다. 당시 그의 언행은 일본군 성노예 등 전쟁 피해자를 위한 응분의 피해배상도 청구하지 못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부패하고 타락한 구정치인으로 낙인찍혀 정치생명이 끝난 것으로 되었으나 지역주의 기반의 보수정당 재건을 통해 부활했다. 여기서부터 변형되고 왜곡된 야합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3명의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그의 정치적 야망을 꽃피울 수 있었던 내각책임제 개헌을 매개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가담한 것이다. ‘소용돌이의 정치판’으로 평가됐던 한국 정치의 한 축으로 군림하면서 영원한 2인자로 불리길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파란만장한 정치의 길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내뱉은 한마디는 그의 정치관을 잘 드러낸다. 정치를 개인의 사사로운 사업으로 본 게 아닐까?

그러니 시간의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그 흥망성쇠를 관조하는 그의 사고로는 아무리 자기성찰 지능을 발휘한다고 해도 정치는 헛되고 헛된 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정치의 개인화, 공권력의 사사화야말로 반공보수정객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정치야말로 공동체의 안위와 관련된 가장 거룩한 공공적 사업이며, 좋은 삶을 만들어 가는 가장 복잡한 종합예술이고 고도의 도덕성과 책임윤리, 역사의식, 심모원려의 산물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박영옥씨 발인식이 25일 새벽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서 엄수됐다. 입관식을 마친 김 전 총리(앞줄 오른쪽)와 유족들이 발인식을 마치고 떠나는 고인의 운구행렬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의 한마디는 이런 정치의 고전적 정의와는 매우 거리가 먼 정치경험자의 회한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말은 정치 허무주의를 부추기는 셈이다.

과거 권위주의시대, 개발독재에 항거하다 수난을 받았던 많은 이들이 제2의 민주화운동을 재개한다고 선언한 마당이다. 정치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역사적 행위이기도 하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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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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