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 노무현의 이상은 높았다. 꿈을 이뤄내는 게 정치다. 정치는 주어진 환경에서, 여러 난관을 물리치고,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한 최초의 민주정부였다. 참여정부는 그 힘을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과거사법·언론개혁법·사립학교법)에 쏟아부었다.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고 시민들은 느꼈다. 파열음이 터져나왔다. 보수언론을 포함한 보수세력은 반노무현 전선을 구축하고 총결집했다. 돌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탓이라고 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노무현은 고립됐다. 여당은 대통령을 지키는 동력을 상실했고 울타리는 허물어졌다. 결국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노무현이 몇 세대를 앞서 너무 일찍 대통령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 같았다. 그의 생각은 옳았고 꿈은 창대했지만, 다수의 시민을 끌고 가지 못했다. 그는 항상 시민들의 몇 발짝 앞에 있었다. 그를 지지하고 열광하는 시민도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시민도 많았다. 보수세력의 저항은 집요했고, 참여정부는 서툴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 행사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열렸다.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노 전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씨 등이 1004마리 나비를 날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 대통령은 “우리는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다”고 했다. 맞다. 참여정부 실패의 본질은 대통령과 시민 간 괴리였다. 그래서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정치인은 국민 반발짝만 앞서가라고 했다. 개혁은 시민이 체감하고 환호할 때 성공한다. 피로감을 느끼고 짜증을 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문 대통령은 75% 이상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탈권위, 개혁 드라이브, 민생 챙기기, 사이다 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개혁은 민생과 같이 가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와 미세먼지 감축 대책이 동시에 이뤄지는 식이다. 민생과 개혁을 씨줄과 날줄로 교직(交織)시킨다. 자수(刺繡) 놓는 솜씨가 참여정부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정교하다. 여당의 한 중진의원은 “문 대통령은 확 달라졌다. 학습을 많이 한 것 같다. 노무현 정부가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떨어지고 재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인사는 그가 직면한 첫 난관이다. 처음 새 정부의 인선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미흡한 인사검증으로 발목이 잡혔다. 문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의 34%가 그 이유를 인사 문제로 꼽고 있다. 문 대통령은 “검증이 약간 안이해진 것 아닌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인사는 이제 시작이다. 17개 부처 장관 후보자 중 6명이 인사청문회를 마쳤고 그중 5명이 임명됐다. 나머지는 아직 청문회도 시작하지 못했다. 국회는 참여정부 때보다 더 열악하다. 그때는 여대(與大)였지만 지금은 야대(野大)다. 문재인 정부는 벌써 코너에 몰리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다. 탄핵당한 적폐세력의 분풀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반문 프레임이 보수언론→보수정당→보수언론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왕따 사이클은 이미 작동되기 시작했다. 반노무현 프레임의 작동법과 똑같다. 문 대통령은 현실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문재인정부가  참여정부 때와 다른 게 있다. 노무현은 시민보다 앞서갔고, 문재인은 시민과 함께 가고 있다. 문재인은 시민들과 담쟁이 덩굴처럼 하나로 휘감겨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시민에게서 나온다. 특히 야당의 힘은 시민의 지지에서 비롯된다. 야당은 여론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도, 등을 지고 갈 수도 없다. 하지만 지금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무릎을 꿇려야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회초리로 나무라도 될 일을 몽둥이질을 하고 있다. 지지율 10%의 정당이 지지율 80% 정부의 허리를 분지를 태세다. 시민들은 묻고 있다. 야당은 몽둥이질을 할 자격이 있는가. 정치란 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행위라는데 당신들은 누구의 눈물을 닦아줬는가. 대의(代議) 민주주의는 정확히 작동되고 있는가.

많은 시민들은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했던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를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비난했던 사람들도 알게 됐다. 그의 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시민들은 깨어났다. ‘노무현 죽이기’를 무력하게 지켜만 봤던 그때의 시민들이 아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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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줄곧 지켜본 사람이다. 분명히 그 경험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그 자신도 그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실패’의 자산목록에 노동은 없는 것일까? 그는 과연 노무현 정부의 노동에 대한 실패에 어떤 입장일까?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업무지시가 비정규직 관련이었고, 비정규직 비율(곧 정규직 전환 비율로 해석될)을 적은 전광판을 집무실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를 수십만개 만들기 위해 무려 10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근데 여기에 노동은 없다. 연일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대통령이 나서지만 여기에 노동은 없다. 노동 문제를 ‘일자리’의 문제로 치환한 것이 문재인의 노동정책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꾸려고 시도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이었다. 당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대립적 노사관계가 안정적 노사관계로 바뀌면서 노동행정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해지고 있어 명칭도 바꾼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는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들을 쏟아냈고, 비정규직 비율 축소를 말하더니, 갑자기 ‘노사관계 선진화법’을 들고나와 비정규직보호입법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확대 법률을 통과시켰다.

24일 오전 문재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열린 일자리상황판 설치와 가동 일정에 참석해 이용섭 일자리위원회(부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그때 노사관계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다. 2003년 취임 첫해 노동자들은 ‘노동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믿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분신의 행렬로 바뀌는 데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비정규노동자 이용석이 분신했고, 세원테크 지회장 이해남과 이현중 등이 자결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을까를 묻기보다, “죽음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잔인하게 일갈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이 실패, 아니 참극으로부터 교훈을 얻을까? 또다시 노동을 우회하는, 노동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닐까?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진용을 봐도 이 우려는 재워지지 않는다. 새 정부의 일자리 수석비서관은 안현효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일자리기획비서관은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내정됐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도 관료 출신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을 빼고 온통 경제부처 관료 출신인 셈이다. 그리고 장하성 실장도 사실 노동 전문가가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와 기업구조 전문가이다. 결국 노동정책을 산업정책 우위로 바라본다.

나는 한국의 노동 문제를 한 정권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의가 아니라 현실 자본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로 여기 이 지점에서 출발하자. 이 냉정한 현실을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적어도 인정하자.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처럼 “모든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적어도 국가의 집행자인 정부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최소한의 균형자 노릇을 하란 말이다. 편을 들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편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노동의 편은 아니겠지만, 자본의 편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법도 재판도 다 노동자들이 이겨도, 자본은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때 법의 집행관으로서 나서라는 말이다. 적어도 자본과 결탁한 친자본적인 정권이 되진 말라는 말이다. 소위 국가·자본의 동맹을 해체하라는 말이다. 노동자들을 ‘비국민’ 취급하지 말라는 말이다. 일자리를 늘려주기 이전에 일자리를 자본이 없애는 데 가담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당연시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장 미개하고 후진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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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지 만 8년이다. 9년 만의 정권교체로 3기 민주정부가 출범한 올해는 어느 때보다 그 의미가 남다르다. 추도식이 열린 23일 김해 봉하마을에는 역대 최다 인파가 참석해 고인을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우리가 함께 아파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끝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고 했다. 모두 공감할 만한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했다. 지난겨울 1700만 시민은 정의와 민주주의가 우선하는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기어이 불의의 시대를 종료했다. ‘노무현정신’은 소통과 참여, 탈권위, 반특권이라는 가치의 실현과 지역주의 극복을 통한 통합정치의 구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8년이 지났어도 많은 시민들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현실의 벽에 돌진했던 ‘바보 노무현’을 기억하며 한목소리로 노무현정신을 외쳤다. 마침내 위대한 시민은 역사의 질곡을 희망으로 바꿔 놓았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바보 노무현’을 활짝 부활시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앞줄 오른쪽),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앞줄 왼쪽 세번째) 등 참석자들이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1004마리의 나비를 날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어느 정부, 어떤 대통령이든 공(功)과 과(過)가 있다. 이념과 입장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지지자나 반대자 모두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진보·보수 정부 전체를 성찰하겠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는 데 그치지 않고 참여정부를 뛰어넘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문재인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이다. 옳은 방향이다. 

문 대통령은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다”라고 했다. 또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둘도 없는 친구로서 어려운 결심이었을 것이다. 추모를 넘어 희망을 나누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국민 통합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분노와 적대, 분열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 지역주의 타파, 권력기관의 탈정치화, 남북 평화와 번영 등 노 전 대통령이 사회에 던진 과제들은 아직 미완성이다.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은 개혁과 통합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이룰 때 가능하다. 개혁과 통합이 우리 사회 발전 동력으로 승화될 때 비로소 노무현정신은 영원한 가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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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처리를 앞둔 그날 윤영철 당시 헌법재판소장과 출입기자단의 오찬간담회가 예정돼 있었다. 날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정례 기자간담회인데 몇 달 전에 잡힌 일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

오전에 서초동 검찰 기자실에서 TV로 중계되는 국회 상황을 보면서 설마 탄핵안이 통과될까 했다. 앞서 많은 여론조사에서 탄핵 반대가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많다는 결과가 나온 터다. 야당이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무리를 하겠는가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곤 헌재가 있는 재동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 라디오에서 탄핵안이 통과됐다는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울어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어마어마한 사태의 담당이 정치부 기자들에게서 헌재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들에게 넘어오는 순간이었다. 아뿔싸. 탄핵안은 전날에도 통과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이날도 그냥 넘어가려니 하는 생각에 기사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였다. 헌재소장 기자간담회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4주년인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17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과 레드카드를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 무슨 기구한 팔자인지. 헌재 출입기자 때 겪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담당 사회부장이 돼 또 맡고 있다. 당시와 지금은 같은 대통령 탄핵 정국이지만 상황은 많이 다르다. 당시는 지금처럼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심판정에서 대리인단이 재판부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없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과에 승복 못하겠다는 억지는 없었다. 당시도 광화문 일대 등에서는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헌재 정문 앞에서는 탄핵 찬반 1인 시위가 이어졌지만 지금처럼 ‘빨갱이를 죽이자’느니 ‘군대여 일어나라’느니 같은 비이성적 구호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태들보다 당시와 지금을 본질적으로 차별 짓는 것은 누가 대통령 탄핵을 이끄는가다. 당시는 국회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등 야당이 탄핵을 주도했다. 반면 이번 탄핵은 야당 등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들이 이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초반 야당은 대통령 탄핵 주장을 꺼내는 데 주저했다. 여소야대이긴 하지만 야당은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국회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탄핵을 주도한 정치세력이 몰락했던 ‘흑역사’도 의식했으리라. 그러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탄핵 촉구 함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야당은 탄핵안을 발의했고, 여당에서조차 찬성표가 대거 나오면서 국회를 통과했다. 탄핵을 헌재 손에 넘긴 것은 국회가 아니라 시민들이다.

2004년 헌재는 탄핵 기각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가 발표한 51쪽짜리 결정문에 담긴 기각 사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 등에서 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신임투표를 받겠다고 한 것은 공직선거법이나 헌법을 위배한 것은 맞지만 대통령직에서 파면할 정도까진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헌재는 50일 동안 진행된 7차례의 변론과 여러 증거 자료, 국회 소추위원과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각종 서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배경엔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탄핵 반대 여론은 지금의 탄핵 찬성 여론만큼 높았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중 치러진 17대 총선 결과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선 결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전보다 103석이나 많은 152석을 얻어 과반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137석이던 의석이 12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탄핵안 발의를 주도한 새천년민주당은 61석이 9석으로 줄어들며 완전히 망했다. 압도적인 국민들의 뜻을 목격한 법조계나 정치권에서는 탄핵심판의 결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고, 실제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 같은 사정을 잘 아는 박근혜 대통령 측은 지금 여론 돌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한민국 인구의 10분의 1인 500만명이 모였다느니, 탄핵 찬반 의견이 5 대 5가 됐다느니 주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는 탄핵 찬성 응답이 77%이고, 반대는 18%였다. 탄핵심판 초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치다.

헌재는 이번에도 81일 동안 진행된 17차례의 변론과 여러 증거 자료, 국회 소추위원과 대통령 대리인단이 제출한 각종 서면 등을 면밀히 검토해 결정을 내릴 것이다.

지난 주말은 유난히 햇살이 좋았다. 봄은 성큼 다가왔고, 탄핵심판 선고도 며칠 남지 않았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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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2등 경쟁’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 달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 시간과 순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2017년 대선 정국이 안희정으로 요동치고 있다.

‘공적 됨됨이.’ 십수년간 지켜본 정치인 안희정에 대한 주관적 평가다. 1990년 3당 합당 후 이념도 정치도 헌 옷처럼 느껴져 여의도(이철 의원 비서관)를 나설 때, 1993년 친구 이광재와 서울 연신내 허름한 술집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도원결의 할 때,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홀로 멍에를 짊어졌을 때도 안희정은 조직과 대의명분이 우선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 2008년 총선 공천 배제 땐 ‘폐족’이란 말로 친노를 일으켜 세웠다.

스스로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혁명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게 한국 야당사다. 가진 게 어정쩡해서다. 안락한 2등이 보장되는 소선거구제를 움켜쥐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그래서 결정적일 때 늘 보수적이었다. 1987년 분열, 1990년 민자당 합당, 1997년 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은 선명한 궤적이다. 안희정은 그럴 때마다 “동의할 수 없는 가치와 타협할 수 없고, 더욱이 그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현실 권력으로 존재할 때 난 그 권력을 (중략) 관용, 용서, 이해할 수 없다”(2004년 7월3일 옥중일기)고 다독여 왔다. 이렇게 하지 않고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산다는 건 그저 세상의 대기권 밖을 서성이는 일이었을 테니.

안희정 충남지사가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4차 혁명과 미래인재’ 콘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안희정은 이처럼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선한 의지’, 대연정 제안, 사드 배치 신중, 녹색성장과 창조경제 계승…. 파문도 이런 파문이 없다. 파문이 지나간 자리마다 기존 정치가 익숙하게 밟았던 경로 의존성도 흔적조차 없다. 안희정 ‘현상’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대선이라는 최고 권력 획득전에서 한 후보의 발언을 두고 전략이냐, 소신이냐는 격론이 연일 벌어진다. 즉위를 반대하는 노론을 상대로 ‘아버지의 원한을 갚으려 하지 않겠다’고 한 정조의 시그널도 어른거린다. 안방(야권)에서 쫓겨날 듯한 질타를 받으면서도 지지율은 고공상승 중이다. 순식간에 야권 대 야권의 대결로 대선 구도를 바꿔 버렸다. 여권은 ‘안희정 경계령’을 내렸고, 야권에선 선거철 전가의 보도였던 연대·단일화 논쟁이 사라졌다. 생존조차 불투명했던 진보정당은 회생 기회를 잡았다.

합리적 차별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국민정당(캐치올 정당)화된 여야, 길을 잃었지만 안길 곳 없는 보수 등 정치환경이 바뀐 이유도 있다. ‘노무현 적자’라는 배경 또한 안희정에겐 든든한 방어막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안희정 현상이라고 단언하진 못하겠다. 대선 주자가 개인 선의부터 확신한 것, 구체적으로 치열해야 할 때 담론의 늪을 만든 것, 민심의 언어로 세상을 읽지 않고 있는 것. 대연정만 해도 싸우지 않기 위해 손잡자는 게 아니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쓰임새가 더 크다. 분권형 개헌이 불가피하다. 법과 시스템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법과 시스템이 필요한 대목을 그는 지나쳤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신념은 철학과 계몽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공동체 이익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약속하고, 실천하면서 얻게 되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첫 의료보험제로 평가받는 오바마 케어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의료복지’라는 신념을 안겨줬듯이.

구시대 마지막 열차와 새시대 첫 열차는 같은 길목에서 만나겠지만 타고 내리는 통로는 분명히 다르다. 반미청년회 수장 ‘안희정’에서 재선 충남지사 ‘안희정’이 되기까지, 마음속 철조망을 걷어내느라 수천 수만번 찔리고 다쳤을 것이다. 현실 정치로 나왔다면, 안희정 현상을 입증하려면 숱한 생채기가 벗겨지고 새살이 돋는 동안 ‘내가 품었던 세상의 욕망’을 성찰만 하지 말고 뚜렷하게 보여달라. 지난 계절을 ‘불만의 겨울’(1970년대 말 영국 노동당 집권 후 대규모 공공노조 파업)로 기억하는 봄을 맞고 싶진 않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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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대통령의 독서목록을 공개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였다. 책 읽는 대통령을 부각시키려는 뜻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폭넓은 독서편력으로 유명했다. 3만여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그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모퉁이에 글을 적었다는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책으로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 피터 드러커의 <단절의 시대>, 박경리의 <토지>, 변형윤의 <한국경제의 진단과 반성> 등을 꼽았다.

다독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직사회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책을 활용해 보수언론에게 “‘독서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해 중용하기도 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를 쓴 오영교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을 펴낸 이주흠 전 리더십비서관이 대표적인 경우다.

2016년 5월 1일 일반인들에게 첫 공개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서 관광객들이 창밖에서 서재 내부를 구경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 최고경영자 출신답게 독서스타일도 실용적이었다. 종이책보다는 ‘e북’(전자책)을 즐겨 읽었던 그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피터 언더우드의 <퍼스트 무버> 를 청와대 참모진에게 추천하기도 했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선 잠자기 전 책 한 권을 읽었다는 존 F 케네디가 독서광의 반열에 올라 있다. 20일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도 케네디에 버금가는 애독가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8년간의 백악관 생활에서 생존한 비밀은 독서에 있다”고 했다. 그는 “연대감을 느끼고 싶을 땐 링컨, 마틴 루서 킹,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의 책을 읽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관저 유폐’ 중인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책을 읽으며 ‘생존’하고 있을까. 박 대통령의 독서목록을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청와대가 지난 10일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을 읽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펴낸 <축적의 시간>이 낫다”고 넌지시 조언하기도 했다. 하긴 평소 책 읽기보다는 TV시청을 즐겼다는 박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독서목록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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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과 곧잘 비교됐던 미국 대통령은 앤드루 잭슨(1767~1845)이다. 미국 제7대 대통령이었던 잭슨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비주류 출신이다. 정치조직을 활용하지 않고 유권자를 상대로 유세를 벌여 당선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인 잭슨의 지지계층은 노동자·농민 등 서민이었다. 하지만 주류 정치인들은 그를 ‘서부 출신 촌뜨기 대통령’으로 경시했다. 그래서였을까. 잭슨은 대통령 취임 이후 자신과 대립각을 세운 각료들을 제쳐두고 측근들과 국정을 논의했다. 이에 반발한 각료들은 잭슨이 ‘키친 캐비닛’(주방 내각)을 운영한다고 비난했다.

 

미국 가정에선 일반 손님은 응접실(Parlor)까지만 들이고, 친한 사이만 주방(Kitchen) 출입을 허용한다. 이에 빗대 미국 정가에선 잭슨 대통령 재임 이후 공식 내각을 ‘팔러 캐비닛’, 비공식 자문위원을 ‘키친 캐비닛’으로 부른다. 대통령에게 격의 없는 조언을 하는 키친 캐비닛은 임명직이지만 보수는 없고, 1년에 4차례 백악관에서 모임을 갖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하기 전 키친 캐비닛의 일원으로 활용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재일동포 출신 이홍범 박사 등을 임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탄핵소추안 답변서에 ‘키친 캐비닛’이란 용어가 느닷없이 등장했다. 박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연설문을 고치게 한 것은 ‘국민 눈높이 자문’을 받은 것이며, 이를 속칭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자 “미국 따라하려면 오바마처럼 세월호 참사 당일에 뭐했는지 분 단위로 공개하라”는 등의 비난여론이 쏟아졌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둘(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는 치킨 캐비닛이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 국민은 치킨 캐비닛에 권력을 위임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순실이 ‘키친 캐비닛’이라니, 프로포폴 전담 캐비닛이었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은 서민 대통령으로 미국인의 존경을 받으며 20달러 지폐 앞면에 인물초상이 새겨진 잭슨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것 같다. 미국 시민이 알까 걱정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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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 조사실에서 점퍼 지퍼를 반쯤 내린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는 검사. 어제자 조선일보에 실린 사진은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됐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사진 속 우 전 수석은 피의자가 아니라 후배 검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검찰 간부의 모습이다. 수석직에서 물러났는데도 이 정도이니 현직 때는 그 위세가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우 전 수석은 조사받기 전 수사팀장인 윤갑근 고검장에게 차 대접도 받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당시 대검 중수부장(지검장급)이 준 차를 마신 것과 비교하면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의 예우가 전직 대통령보다 더 높은 셈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8일 (출처: 경향신문DB)

검찰은 “우 전 수석은 당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부장검사가 팀장에게 보고하러 간 사이 후배 검사·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기밀 유출 의혹을 받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도 조사 전 차를 대접받았다”면서 특별 대우가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이 검사나 고위 공직자 출신이 아닌 일반 피의자에게도 이렇게 친절한지 되묻고 싶다. 검찰은 이르면 다음주 우 전 수석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볼 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별수사팀은 출범 두 달 반이 넘었지만 우 전 수석 자택·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을 하지 않았다.

윤갑근 수사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특별수사본부를 통해 우 전 수석을 어제 출국금지 조치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우 전 수석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 검찰이 180도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궁지에 몰린 검찰의 꼼수지만 검찰에는 마지막 기회다. 이번 사건은 특검이 예정돼 있다. 검찰총장 직속의 초대형 수사본부가 나섰는데도 밝히지 못한 사실이 특검 수사로 드러난다면 검찰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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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에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지 6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건네 들으면서 나도 깜짝 놀랐다. 그새 6년이나 지났단 말이야? 그가 슬프게 우리를 떠난 지 6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야당발 뉴스에서 인물이든 개념이든, 가장 많이 호명되는 단어로 남아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와 친한가 아니면 그와 친하지 않은가, 그렇게 규정된다.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칭하든 혹은 언론에 의해서 규정된 프레임이든, 그와의 친소 관계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의 자살도 비극적이지만, 그의 사후에 벌어진 일들 역시 비극적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그 비극이 6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희극 그것도 극단적인 희극으로 자기 완결성의 형태를 가지게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기호학자 움베르트 에코의 두 번째 소설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장미의 이름>은 사라진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곡론 2편이 아랍지역을 거쳐 다시 유럽에 등장하게 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중세 통치의 핵심에 들어가 있는 아리스토텔레스가 1편인 비극만이 아니라 2편인 희극, 코미디도 저술하였다는 것은 종교 근본주의 시대의 근간을 흔들 정도의 불온한 사건이다. 그래서 희극편을 읽으려고 했던 수사들이 한 명씩 살해되는 과정이 소설의 근간이다. 노무현 서거라는 비극적 사건은 처음 몇 년간은 비극으로, 그리고 그 후 몇 년은 친소 관계로 모든 야당 인사를 규정하는 희극 사건으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든 계층을 대표하든 혹은 전문성을 대표하든, 무엇인가 대표하며 자신의 인생의 클라이맥스에 서 있는 최고위급 정치인들에게 기껏 우리가 물어보는 것이, 그와 친해? 안 친해? 친한 것도 계급장이고, 안 친한 것도 계급장이다. 역으로 보면, 친한 것도 낙인이고, 안 친한 것도 낙인이다. 코미디를 둘러싼 메타 구조가 트라제디, 비극인 것은, 우리와 언론이 이 ‘친소 놀이’를 하는 동안에 새누리당의 영구집권 구조가 더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친하면 어떻고 안 친하면 어떠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오른쪽)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출처 : 경향DB)


경제의 눈으로 보면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의 공과는 비교적 뚜렷하다. 농민 등 많은 소외계층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과 같은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반면, 지금 한창 입법 논의 중인 사회적 경제의 기본이 되는 사회적 기업이 그의 임기 막판에 추진되었다. ‘함께 일하는 재단’은 사회적 기업은 물론이고 청년들을 위한 경제 정책의 초기 논의의 산실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이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한국 경제는 점점 위기국면으로 들어가고 있고, 어떻게 수치를 왜곡한다고 해도 청년들의 삶은 극한으로 몰리고 있다. 이 새로운 비극성은 아마 시간이 지나면서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문제로 결혼을 포기한 청년들은, 일본처럼 ‘초식남’ 등 결혼 및 연예 거부 문화로 전환되어 갈 것이다. 솔로가 문화가 되어가는 상황, 야당 정치인들이 친해요, 안 친해요,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며 퇴행적이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비극의 주인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사회에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2년이 지나 새로이 유권자가 될 10대들이 그와 친하겠느냐, 안 친하겠느냐? 잘 모른다고 할 것 아니냐?

지금 돌아보면 ‘노무현 정신’은 상고를 나와도 행복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자는 것 아니겠는가? 상고 나와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 아니겠는가? 제2, 제3의 노무현이 20~30대에 행복한 세상이라는 정신을 가슴에 품고 ‘개고생’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들이 움직일 수 있게 길을 만들어주자, 그게 2015년의 노무현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야 할 것 같다. 노무현과 친하냐 그렇지 않으냐, 그랬던 지난 6년을 넘어, 젊은 사람과 청년들이 과감히 돌파해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주체로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새롭게 해석한 노무현 정신 아니겠는가?


우석훈 |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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