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 조각을 매일 갈았지만, 저녁때면 피로 흠뻑 젖었다. 천을 들어 올리면 내 손에도 살점이 달라붙었다. (중략) 작은 실밥 하나조차도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실수로 남편 피부를 긁기라도 할까봐 나는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짧게 깎았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노벨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거나, 핵사고와 관련된 많은 책들이 있지만 내게는 그의 책처럼 가슴이 저릿한 작품은 없었다. 

문학포럼 참가차 방한한 누르딘 파라 역시 한국에 잘 알려져있지 않은 소말리아 출신 작가다. 단지 직업적 관심 때문에 그의 소설 <지도>를 찾아 읽었다. 이 소설은 종족 갈등 때문에 살해당하는 여성과 양아들 이야기다.

‘짧게 말해, 인생은 곧 제물이다. 짧게 말해, 인생은 곧 피다. 하나의 대의명분과 하나의 나라를 위해서 누군가 흘리는 피다. 인생은 적의 피를 마셔 이루는 복수다.’

책 말미에 나오는 이 구절은 아프리카 부족 간의 피와 복수의 악순환을 요약한다. 아프리카 종족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서방과 한국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비록 소말리아 내전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에 대한 지식이 일천했지만 소설을 통해 그들의 핍진한 삶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국회를 찾은 문 대통령이 정의당 대표실에서 노회찬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이런 게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타자의 눈을 빌려 세계를 보는 것이다. 가슴 귀퉁이에 타자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모두가 타자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게 문학이다. 독자는 문학을 통해 아프리카로 갈 수도 있고, 시대를 거슬러 전쟁터나 혁명의 현장으로 갈 수도 있다.

역사가가 사건에서 뼈와 골수를 찾는다면, 문학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을 헤집는다. 역사는 머리에 대응하고, 문학은 감성에 반응한다. 역사는 사건의 현장에 독자를 구경꾼으로 부를 수 있지만, 문학은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독자를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문학의 나무는 고뇌와 슬픔의 현장에서 잘 자란다. 1830년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소설 <레미제라블>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가 홉스봄은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등 이중혁명의 시대만큼 거장이라고 할 만한 소설가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때가 없었다고 했다. 이 시대는 프랑스의 스탕달과 발자크, 위고의 시대였고, 영국의 오스틴과 디킨스와 새커리와 브론테 자매가 활동했다. 러시아의 고골리와 젊은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등이 등장했다.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먹고살 만해져서 문학이 꽃을 피웠던 것이 아니다. 귀족과 사제, 부르주아는 온갖 호사를 누렸는데도, 노동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불화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가들은 그늘 속에서 울부짖는 목소리를 기록했던 것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는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 여자와 가족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다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것은 없다. 동시대를 사는 남자도 누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태어난 남성이 겪은 세상과 차별을 몸에 각인하면서 살아온 여성이 산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시대의 가슴에 상처를 입힌 것들은 문학이라는 이름을 입고 불쑥 부활하곤 한다. 김탁환은 세월호 참사의 잠수부 이야기를 다룬 <거짓말이다>를 썼다. 이건 시작이다. 앞으로도 세월호 문학, 강남역 문학, 구의역 문학이 나올 것이다. 물론 하나의 사건이 이야기로 육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 초등학생이었던 한강이 <소년이 온다>로 5·18을 다시 소환한 것은 34년이 지난 2014년이었고, 김숨이 87년 민주화운동 때 숨진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소재로 <L의 운동화>를 낸 것은 29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삶의 경계는 무한하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자신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관계의 배열, 힘의 이동, 서열과 역할, 이익과 손해의 규모로 세상을 보기 십상이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은 하나의 ‘쪼가리’로 전락하기 쉽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소설 읽기가 도덕 및 정치이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도덕적 정의와 법적 정의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를 ‘시적 정의’로 표현했다. 문학을 통해 한 인간의 온전한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고, 고민과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이걸 문학적 정의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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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난 7월 말 재·보궐선거가 끝나자 개혁 성향의 언론들은 동작을에서 여당의 ‘강남4구’ 공약이 유권자의 표심을 파고들었다는 관전평을 내놓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해당 지역 거주자로서 약간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먼저 2008년 총선부터 되짚어 보자. 여당의 정몽준 후보는 4만7000표를 얻어 정동영 후보를 상대로 13% 차의 압승을 거뒀다. 19대 총선에서도 4만6000여표를 얻은 정몽준 후보의 승리였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야당 후보와의 표차가 6000표로 줄었다는 점이었다.

정몽준 후보가 두 차례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들은 ‘동작을의 강남화’로 요약되는 것이었다. 각각 ‘뉴타운 개발’과 ‘대기업 업무시설 유치’가 핵심 공약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공약들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는 재벌가 정치인의 지역구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이번 재·보궐선거에 나선 여당 후보 역시 전임자의 공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차이라면 ‘강남4구’라는 꽤 파격적인 슬로건을 내건 것이었다. 타 지역의 유권자들에게는 이것이 ‘욕망의 정치’에 불을 지피는 발화성 높은 슬로건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역 주민에게는 그다지 호소력이 있는 슬로건은 아니었다. 왜냐면 그들 상당수는 이미 ‘국회의원 정몽준’을 통해 ‘동작을의 강남화’라는 공약이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실제 여당 후보 득표수는 지난 선거의 정몽준 후보보다 8000여표가 줄어든 3만8000여표였다. 반면 야당 후보의 득표수는 4만여표에서 3만7000여표로 줄었다. 재·보궐선거라고 해도 여당 표의 축소율은 꽤 높은 편이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언론의 관전평과는 달리 ‘강남4구’ 공약은 여권 지지층을 결집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즉 16만7000명의 유권자 중 여당 후보에게 투표한 3만8000명이라는 수치는 이 지역 보수층의 규모를 가리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가설도 가능해 보인다. 2007년 대선에서 정점을 찍었던 ‘욕망의 정치’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이번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말이다.

서울 동작을 야권 단일화 논의 회동을 위한 노회찬 후보와 기동민 후보의 만남 (출처 : 경향DB)


그렇다면 야당 패배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나치게 ‘단일화’에 매달린 탓이 아닐까? 2002년 대선에서 빛을 발했던 이 전략은 12년이 지난 후 동작을에서 초라한 몰골을 드러내고 말았다. 특히 한 야당 후보가 시내에 내건 현수막이 압권이었다. 그 현수막은, 모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3자 대결에서 꼴찌인 특정 후보가 다른 야당 후보에 비해 상대적 우위의 본선 경쟁력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정권 심판’이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괴한 민주주의.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진보정치인은 바로 그런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내걸고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결과는 그 현수막에 담긴 여론조사 그래프 그대로였다. 926표 차의 아쉬운 패배. 이를 두고 노동당 김종철 후보의 표에 눈을 흘기거나 무효표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태도야말로 ‘단일화의 정치’가 ‘욕망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이제 효력을 다했음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사실 덧셈·뺄셈 수준의 선거공학에 매달린 만큼 ‘강남4구’ 공약을 비난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양자는 지난 10여년 동안 여야의 핵심적인 선거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구도에 갇혀 있는 한, 야당은 두 차례 시장 선거에서 자신의 후보를 지지했던 유동층이 왜 이번 선거를 외면했는지에 대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지만, 이 물음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야당은 수도권에서 보수층의 강고한 벽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더 분명한 것은, 패색이 짙을수록 486 유명 인사들을 앞세운 ‘양심 호소형’ 선거철 표몰이 행사가 더욱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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