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9.01 [시론]단식의 정치학
  2. 2014.08.29 [기자 칼럼]단식에 대한 예의

2만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식을 하겠다고 나섰다. 450만명이나 되는 국민이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서명했다. 두 아이의 평범한 아버지,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장기간 단식으로 촉발된 국민 동조 단식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김영오씨와 고통을 함께해야 한다는 공감 속에서 시작된 동조 단식은 이제 종교계와 예술계, 정치인, 시민사회단체를 넘어서 일반인들까지 확산되고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라는 동조 단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왜 이러한 단식투쟁이 군사독재시절도 아닌데, 박근혜 정부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일까.

정치적 저항으로서의 단식은 극한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나타났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18회나 단식투쟁을 한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감옥 안에서 죄수들의 인권투쟁을 위해서 단식을 했다고 하는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 전 대통령. 1905년 일본군에게 압송돼 대마도에서 곡기를 끊고 죽을 때까지 항일의병 전사로 남은 최익현, 그는 임금이 보낸 마실 물도 거절하고 선비로서의 죽음을 택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 무슨 낯으로 나라의 물을 마실 수 있겠느냐”며 망국의 분노와 수치심을 단식으로 대신했다.

서슬 퍼렇던 1983년 전두환 정권 시절, 가택연금 등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되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회복하기 위해 23일 동안 단식을 감행, 민주화 정치 투사로서의 재기에 성공했다. 평민당 총재였던 DJ(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권의 보수세력이 총집결, 소수 야당의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DJ는 13일간의 단식을 통해 보수대연합의 내각제 개헌 의도를 막아내고 지방자치제 실현까지, 야당으로서의 평민당 지위를 확실하게 받아냈다. 1970, 1980년대 암울한 시절, 폭압적인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으로 단식을 선택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죽음으로 저항 의사를 표시했다.

정치적 저항운동으로서의 단식, 그것은 자신이 단식으로 내건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죽겠다는 극단의 정치적 의사표시이다. YS는 자신의 회상에서 “의사와 간호사들도 죽어가는 몸에서 나오는 악취로 가득 찬 방에 들어오기를 꺼려 하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시대가 된 지 30여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그것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에 세월호특별법을 제대로 제정하라고 요구하면서 곡기를 끊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46일째 단식농성을 이어온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8월 28일 단식을 중단한 후 첫 식사인 미음을 먹고 있다. 이날 김영오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단식은 배부른 강자들이 할 이유가 없다.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수단이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단식을 했던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들은 더 이상 호소할 방법을 현실 정치에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단식을 택했다. 지금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 통할 수 있는 수단이 단식밖에 없다는, 불통의 시대, 절망의 정치현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정치가 갈등과 대립을 풀어내야 한다고, 약자들을 위해서 그 대변자 노릇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은 해묵은 정치학자들의 하소연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1년반이 지났다. 19대 국회가 출범한 지도 2년여가 훌쩍 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식 잃은 부모들의 절규로, 한사람 한사람 생명의 소중함으로 이어가고 있는 단식 행렬을 때로는 방관자로, 어떨 때는 정치 흥정의 대상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동조 단식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절망과 분노의 처참한 정치현실을 곡기를 함께 끊어서 희망을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 같다. 힘들고 희망 없는 정치현실이다. 단식의 정치학, 그것은 우리의 정치현실이 무능하고 무력하다 못해, 나쁜 정치인들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게 한다. 단식의 정치학으로 세월호 정국이 풀리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정치해법이 들어설까. 더 두렵고 폭력적인 정치해법이 등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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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헝거>(2008)는 <노예 12년>(2013)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된 영국 출신 스티브 매퀸의 장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마거릿 대처가 기세등등하게 집권했던 1981년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북아일랜드에서 영국군이 철수할 것을 주장하며 무장 투쟁을 벌였다. IRA를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규정한 영국정부는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체포 작전을 시도했다.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 조직원들은 영국정부에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대처 정부는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라며 거절했다.

한때 전 세계를 호령한 제국이었던 영국은 무기의 질, 군인의 양이 압도적이었다. 대처는 협상을 모르는 단호한 정치인이었다. 세상에서 고립돼 있던 IRA 죄수들은 ‘안 씻기’ 투쟁을 벌였다. 벽에 똥칠하기, 복도에 오줌 흘리기, 먹다 남은 음식 벽에 붙이기 등이었다.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끌어내 구타한 뒤 강제로 소독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자, IRA 죄수들은 마지막 남은 저항 수단을 택한다. 바로 단식이다. 단식 투쟁을 주도한 보비 샌즈가 조금씩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지켜보기가 괴롭다. 샌즈는 면회온 신부에게 단식 투쟁의 결심을 알린다. “할 일이 없어서 내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게 아니에요. 옳은 일이기 때문이에요.”

병상 옆에는 소시지, 오믈렛, 베이컨 등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지지만, 샌즈는 멍하니 천장만 바라본다. 샌즈의 뼈와 가죽이 들러붙고, 피부에는 상처들이 생기고, 변기에 앉으면 혈변이 나온다. 의사는 말한다. “간, 콩팥, 췌장의 기능이 약화됐습니다. 골밀도도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심근도 기능장애를 일으킬 겁니다. 저혈당이 올 테고, 에너지 부족으로 근위축이 오겠죠.” 샌즈는 66일간의 단식 끝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샌즈가 주도한 7개월간의 단식 투쟁 기간 동안 9명이 더 죽었다.

2014년 여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가 45일간의 단식 투쟁을 벌였다. 노모와 남은 딸의 설득에 김영오씨는 다행히도 샌즈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피했다. 단식 기간 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손을 잡았고 야당 정치인과 시민들이 단식에 동참했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김영오씨를 폄훼하는 여론전이 벌어졌다. 이혼한 처가 쪽 사람들 말을 빌려 ‘아빠 자격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였고, 자식 잃은 충격에 내뱉은 거친 말을 ‘폭언 파문’이라고 수식했다. 평범한 중년 남자의 처가 사람들, 취미, 언행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인가, 흥신소가 할 일인가.

김영오 씨 단식 일지 (출처 : 경향DB)


김영오씨 단식의 결과는 무엇일까. 여당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기소권을 주자는 유족들의 의견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경찰은 “언제든 찾아오라”는 대통령 말을 믿고 나선 유족들을 청와대 멀찌감치서 가로막고 고립시켰다. 겉보기에 이 단식 투쟁은 얻은 것이 없다.

보비 샌즈의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대처 정부는 IRA 죄수들의 정치범 지위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이런 대처의 행동이 “영국병을 치료했다”며 칭송한다. 하지만 영국 분위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사람이 죽으면 정치적 반대자조차 애도를 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처가 죽었을 때는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마녀가 죽었다” “지옥불에서 타라”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해서 가장 싼 업체에 맡기자”는 말들이 나왔다. 거리에서 축하연이 열리기도 했다.

단식 투쟁은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약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행동이다. 이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치인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승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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