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을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지난 18일 내놓은 보고서는 사법부의 자정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들과 시민들의 반발을 잠재우고 사태를 축소·은폐하기 위한 꼼수로 진상조사위 카드를 사용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진상조사위는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개입한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행정처 컴퓨터에 판사들 뒷조사를 한 파일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컴퓨터를 조사하지 않은 채 ‘판사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단정지었다. 양 대법원장을 조사했다면서도 무슨 내용을 묻고 어떤 답변을 들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전·현직 고위 법관 7명으로 구성된 진상조사위는 논리적 비약과 모순, 궤변으로 가득 찬 보고서를 내놓고도 “어떠한 편견과 예단도 갖지 않고 철저하고 엄정한 조사를 했고, 조사대상자들이 적극적인 태도로 조사에 응해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대법원의 법관 탄압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18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ㅣ연합뉴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이다. 행정처를 통해 판사들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난 것이 발단이다. 이 과정에서 행정처 소속 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내리고 해당 판사가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내자 부임 2시간 만에 지방법원으로 인사 복귀 조치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 전권이고, 특히 행정처로 발령난 판사를 되돌리는 인사를 대법원장이 모를 리 없는데도 양 대법원장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대법관인 고영한 행정처장은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거짓 해명까지 했다.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보복 인사, 블랙리스트 운용 등 박근혜 게이트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판사 통제 목적으로 사법부에서도 재연됐다.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를 했다면 대법원장 탄핵 사안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사법부 내 헤게모니 다툼인 양 물타기하고, 일부 진보 성향의 판사들이 양 대법원장을 흔들기 위한 것이라는 식의 여론전을 펴고 있다. 거짓 해명과 사실 은폐로 사건을 키우는 사법부의 모습이 6개월 전 국정농단 사건 초기 청와대와 닮은꼴이다. 진상조사위의 부실 조사로 이번 사태를 사법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법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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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사 탄압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임법관 임관식에서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라고 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은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갈파한 경구로서, 우리 모두 이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젊은 법관 107명이 처음 법복을 입고 들은 ‘대법원장님 말씀’은 과연 사실일까.

이 말은 발자크의 소설 <창녀의 영광과 비참(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입니다. 사법부의 현재 관행을 때려 부수고 다른 바탕 위에 새롭게 지으십시오. 하지만 사법부 신뢰를 멈추진 마십시오.’ 현실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가 섞인 문장이라고 한다.

파리8대학에서 발자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예영 서울대 교수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발자크는 사법권이 얼마나 권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고 부패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명성, 출세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야심, 그리고 권력층의 이해관계와 명예가 얽혀 있어서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판사의 갈등을 묘사한 이야기다.”

지난 6일 대검찰청의 조각작품 ‘심흔 95-1’을 두고 촬영한 대법원이 과녁에 든 표적물처럼 보인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양 대법원장(과 그의 비서업무를 하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하필이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발자크의 소설을 찾아내 인용하면서, 발자크의 말이라거나 경구라고까지 표현한 이유가 있을 테다. 문제는 이들의 원전 비틀기 대상이 프랑스 대문호의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헌법의 핵심 구절을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양 대법원장은 제왕적 인사권을 방어하기 위해 ‘법관의 독립’이 아닌 ‘법원의 독립’을 말해왔다. 이날 임관식에서도 “법관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의 구성원”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1항)를 뒤집은 것이다. 이런 해석이라면 제헌헌법에서는 ‘구성된’ 대신 ‘조직된’이었으므로 판사가 법원의 조직원이 된다.

헌법 제5장 법원(101~110조)을 관통하는 핵심은 ‘법관의 독립 보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에서는 법관의 독립 상대가 ‘법원 내·외부의 간섭’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재판의 독립’으로 바꾸고, 그 상대도 ‘외부의 부당한 통제’로 축소시킨다. 내부의 통제가 없다는 것인지, 있어도 그만이란 것인지 애매하다.

그리고 양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라고 신임법관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헌법 130개 조항 어디에도 ‘명백하게’ 재판의 독립을 선언한 구절이 없다. 우리 헌법이 선언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며 그 결과가 ‘재판의 독립’인 것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양심에 바탕을 둔 법관의 독립을 선언한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마저 미묘하게 왜곡된다. 대부분 학자들은 ‘헌법과 법률을 기초로 양심에 따라’라고 해석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라고 쉼표 하나를 얹어 법관의 양심을 3분의 1로 깎아내린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거쳐 나온 그의 발언이 이것이다. “법관은 어떠한 외부의 부당한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한다는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지난 6년 동안 양승태 대법원장의 헌법 해석이다.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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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자료 등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사실이라면 박근혜 게이트에 버금가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판사들의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김모 전 심의관 컴퓨터에 대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의 동향을 정리한 일종의 사찰 파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찰 파일에 관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대법원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법원행정처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해 발령 2시간 만에 행정처에서 인사조치당한 ㄱ판사는 이 파일 관리 업무도 맡으라고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과거에도 설이 무성했다.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의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에서 법관의 88.2%가 대법원장 등의 뜻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보직 등에서 불이익이 우려된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재판의 독립성을 거스르는 반민주적·반헌법적 행위다.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침해한다. 대법원이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운용한 것이 확인되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탄핵이 불가피하다. 양 대법원장 등 법원 수뇌부는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 존재 여부를 떠나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거론된 것 자체가 사법부엔 치욕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사법개혁 방해 의혹을 조사 중인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블랙리스트 관련 진술을 판사들로부터 확보하고도 쉬쉬하면서 의혹 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블랙리스트 파일이 있었다는 컴퓨터를 당장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 등으로 복원하고 정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양 대법원장도 직접 조사해야 한다.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벌인 판사 통제 작업의 실체가 이번 기회에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나 검찰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최선은 지금이라도 양 대법원장이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는 것이다. 양 대법원장과 사법부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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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검찰을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수사든 유무죄는 법원에서 가려진다. 법원의 최종적인 승인 없이 검찰만의 전횡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권력은 반드시 법원권력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법원권력의 한가운데에는 대법원이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법원은 정권의 외압을 받지 않는다. 지금의 대법원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서 대법원이 보여준 권력지향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2015년 1월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것부터 이상했다. 박 원장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의 담당검사 출신이다. 아무리 검찰 출신이 대법관에 임명될 차례라고는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다른 자리도 아닌 대법관에 임명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변호사단체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무리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폭로되면서 그 단서의 일부가 밝혀진다. 박영수 특검이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확보했는데, 그 수첩에 박 원장 관련 내용이 메모돼 있었던 것이다. 양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뜻에 따라 박 원장의 대법관 임명을 강행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조합원들이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사권을 무기로 일선 법관들의 개혁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즉각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김영민 기자

그뿐 아니다. 2015년 3월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발령된 긴급조치 9호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국가배상책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긴급조치 9호는 2013년에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것이다. 워낙 정치적인 판결이다 보니 대법원 판결인데도 이에 대해 반발하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2015년 5월에는 국정원이 경력법관 임용자들에 대해 사상검증식 신원조사를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법의 독립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태였는데도 법원행정처장이 고작 “부적절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례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는 반응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밝혔을 뿐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원 전 국정원장은 지난 대선 때 댓글공작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고등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원 전 국정원장 사건이 2013년 1월에 제기된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제3자가 선거과정상 위법행위를 저질러 선거인들이 자유로운 판단에 의하여 투표할 수 없게 된 경우 그 선거는 무효가 된다. 따라서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 유죄로 인정될 경우 지난 대선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히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판결하는 것은 차마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2015년 7월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였다. 단 한명의 반대의견도 없었다. 원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은 대법관을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 총리까지 지낸 김황식 변호사였다.지난해 말 국정원이 대법원장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신독재의 망령이 대법원장까지 쫓아다녔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대법원도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고 논평했다. 이번에는 법원 내부통신망이 아니라 공식발표였다. 그러나 유신독재의 망령은 청와대 혼자서 불러들인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망령의 굿판에서 향불을 피워 올렸던 것이 바로 대법원 자신이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며칠 전 대법원이 사법독립을 주제로 한 일선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축소시키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법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대법원이 이 행사를 적극 장려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쯤 되면 과연 대법원에 사법의 독립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는 OECD 평균 54%에 훨씬 못 미치는 27%였다. 42개 국가 중 39위다. 권력 앞에 비굴했던 대한민국 대법원의 초라한 성적표다.

나승철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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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일선 법관들의 사법개혁 요구를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에게 압력을 가하고, 판사들의 학술 모임을 와해시키려는 음모를 꾸미다 들통났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대법원은 해당 판사가 지시를 거부하자 부임 2시간 만에 지방 법원으로 인사 조치까지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드러난 권력자의 부당한 지시와 증거인멸, 보복 인사 등이 사법부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발단은 판사 480여명의 학술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개혁을 위해 전국의 법관 29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다. 설문에는 법관의 독립성 보장,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재판의 공정성 등에 관한 질문이 포함됐다. 그러자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로 갓 발령이 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판사에게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것을 막고,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성을 상실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부당한 지시에 판사가 반발하자 대법원은 그를 직전 소속이었던 지방 법원으로 다시 인사 발령을 냈다. 문제가 불거지자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게 학회 행사 축소 관련 지시를 한 사실이 없으며, 해당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부임한 바 없다”고 거짓 해명했다.

2월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전담법관 임명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이백규(53·사법연수원 18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주한길(53·24기) 변호사(서울서부지법 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를 신임 전담법관으로 임명했다. 전담법관은 특정 사건 재판만 맡는 법관으로 15년 이상 법조 경력자 중에서 선발한다. 대법원은 2013년부터 매년 3명씩 소액사건 전담법관을 임명해 전국 5개 지방법원에 배치했다. 연합뉴스

대법원 행위는 파렴치하기 그지없다. 학문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침해해 헌법에도 위배된다. 이 같은 행위를 묵인하거나 조장한 이는 다름 아닌 양승태 대법원장이다. 법관 인사는 대법원장 전권이고, 특히 법원행정처로 발령난 판사를 되돌리는 인사를 대법원장이 모를 리 없다. 양 대법원장은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해 법관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법개혁을 방해해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인사권을 무기로 법관들의 개혁 요구에 재갈을 물리는 ‘양승태 사법부’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대법원이 판사들을 이처럼 쉽게 여기는데 이들이 진행하는 재판이 사법부 수뇌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렇잖아도 한국의 사법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보고서를 보면 ‘사법제도를 신뢰한다’는 한국인 비율은 27%에 불과하다. 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다. 국가권력의 한 축인 사법부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나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과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시민의 신뢰를 상실하고 대법원을 복마전으로 전락시킨 사법부 수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양 대법원장은 자문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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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신영철 대법관의 후임 인선 작업이 시작됐다. 서울변협은 후보로 이석연·장경찬 변호사를 추천했다. 둘 다 법관 경력이 없는 순수 변호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때마침 국회에서는 대법관의 절반을 비(非)법관 출신으로 임명토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판사 출신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지금의 대법관 구성을 바꿔 교수·검사와 재야 출신 변호사에게 문호를 개방하자는 취지다.

대법관 자격은 45세 이상 및 법조 경력 20년 이상으로 돼 있을 뿐 구체적인 제한은 없다.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여야 145명 의원이 서명한 법 개정안은 판사 출신이 대법관을 독차지하는 지금의 관행을 강제적으로라도 바꿔보자는 얘기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검사 출신이다. 검찰 몫의 대법관 자리를 확보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대법관의 인적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취지 자체는 백번 공감한다.

지금의 대법원은 가히 기형적인 구조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의 대법관이 모두 정통 엘리트 법관 출신이다. 이 중 11명은 50대 나이의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안대희·양창수 대법관이 물러난 뒤 검찰·재야 몫도 모두 법원 출신으로 채워졌다. 1980년대 이후 임명된 84명의 대법관 중 판사 출신이 81%를 차지할 정도니 싹쓸이라는 말이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오영중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오른쪽)과 김종우 변호사가 17일 서울 서초지법 기자실에서 최근 대법원이 내린 쌍용차 해고자 판결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쏠림 현상은 부작용을 낳게 마련이다. 양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원의 보수·획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법부의 마지막 보루라는 대법원 위상을 감안하면 전문성 못지않게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균형·다양성도 중요한 덕목이다. 같은 대학에 다니다 사시에 합격한 뒤 평생 한솥밥을 먹은 비슷한 연배의 판사 출신 대법관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제 쌍용차 판결에서는 항소심의 전향적 판결을 뒤집고 대법관 4명이 한목소리로 사용자 편을 들었다.

대법원 판례는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단순한 법 해석을 넘어 시대 변화에 걸맞은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다. 외국 최고법원을 보더라도 비법률 전문가들이 재판관을 맡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구관 제도를 두고 있으면서 대법관을 법률 전문가로 제한해야 하는지는 재론의 여지가 있다. 법으로 대법관 구성을 강제할지는 차치하고라도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부터 바꿔야 한다. 대법관·법무장관·변협 회장에게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대법관을 추천하라고 하는 것은 허망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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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대법원

대법원 재판에 대한 개혁이 논의되고 있다. 지금 대법원은 국가·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충실하게 심리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사건 처리 지연으로 권리 구제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의 업무 과중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법원의 업무 과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이런 결과는 대법원이 자초한 부분도 있다. 하급심이 전권으로 행사한 사실심리 결과를 법률심인 대법원이 뒤집는 사례가 있었고, 그것이 알려지면서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패소 당사자는 파기율이 6%에 불과해 거의 희망이 없음에도 대법원에 상고로써 호소하게 된 탓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송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의 권리의식도 크게 변화됐다. 예전에는 인정과 신뢰로 해결되던 분쟁이 소송으로 치닫고 있다. 매년 늘어나는 법원의 사건 수가 이를 말해 주고 있고, 소송만능주의가 남의 나라 일이 아니게 됐다. 국민은 자신의 권리침해에 대해 매우 민감할 뿐만 아니라 법을 활용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심지어 결론에는 불만이 없음에도 단순히 재판을 지연시켜 미결수로 있는 기간을 늘리려고 하거나, 강제집행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상고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같이 다양하게 제기되는 상고사건을 모두 대법원이 판단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선 하급심의 잘못을 가리는 대법원의 기능은 하급심을 강화해 해결할 문제이다. 상고심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한 나라 사법제도의 수치이다. 다만 하급심의 강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법원의 제도개혁만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판절차를 개선하고 판사의 자세와 충실함을 보강하는 것뿐 아니라 소송대리인의 역량강화와 소송구조시스템의 정비 또한 뒷받침돼야 한다.

4월에 있었던 ‘담배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오른쪽)과 2009년 폐암으로 사망한 이기홍씨의 동생 이기호씨(왼쪽) 등 소송 관련 인사들이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법원이 모든 사건을 다 처리하려 하는 데서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상고심 개선은 대법원의 근본적인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하급심의 잘못을 가려 개인의 권리를 구제하는 기능만 한다면야 사건 수에 따라 대법관 수를 늘리면 될 일이지만, 그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대법원은 개별 사건을 해결하는 기준이 통일되도록 기본적 가치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헌법이 대법원을 최고법원으로 정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률 선진국으로 불리는 독일 역시 상고사건 수 급증에 대응해 2002년 민사재판에 상고허가제를 전면적으로 채택했다. 독일은 대법관 증원론 또는 대법원 판사 도입론의 모델이 된 나라이다. 그런 독일에서조차 사법 자원이 무한하지 않으므로 대법원의 기능을 법의 형성 발전과 판례 통일에 집중시키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독일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은 모두 상고제한제도를 채택해 대법원 사건 수를 대폭 줄였다. 이들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2심으로 끝난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할 것도 없지만, 하급심 강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 바로 상고허가제를 도입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이번에 상고심 개선 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고법원안은 이런 문제에 관해 기존에 없던 참신한 답을 내놓았다. 개별적 권리 구제를 위한 상고심 기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대법원의 최고법원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국가·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 지혜의 횃불을 밝히고, 상고법원은 개별 사건에 대해 하급심이 간과한 법률적 쟁점이 없는지를 충실하게 심리하게 된다. 이 제도의 장점을 살린다면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는 대법원과 상고법원 양쪽에서 두텁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개별적인 권리 구제를 위한 사건과 법령의 최종적·통일적 해석을 위한 사건을 구별해 처리하는 것이 모든 국민을 위한 최적의 사법서비스 제공이라는 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이제 우리 국민의 권리보장과 대법원의 기능 회복을 위해 논의의 결실을 보아야 할 때이다.


이용구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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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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