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2.19 [이택광의 왜?]한국 민주주의, 새 출발점
  2. 2016.12.12 [시대의 창]운명의 날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선례가 하나 생겼다고 생각한다. ‘시민혁명’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지만, 과연 사태가 이런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지 논의를 아껴둘 필요가 있다. 김수영의 시 구절처럼,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꾸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불현듯 오는 것이고 가시적인 힘들을 통해 항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밤에 지나간 배”처럼 조용히 온다. 혁명은 평소에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규정된 것들이 무한하게 분출하는 정황이기도 하다. 이런 혁명의 모양새에 비추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당장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방만 바꾸는 일이 있더라도 지금은 분명 세계의 논리에 기입되어 있던 ‘혁명적 상황’이 귀환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겠다. 한때 집회가 너무 비폭력에 집착해서 문제라는 이야기가 오르내렸지만, 비폭력이라고 해서 폭력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간디의 비폭력이 스탈린의 폭력보다 더 폭력적이라는 철학적 탐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200만명이 넘게 모인 집회가 비폭력으로 일관할 수 있었다는 것도 대단한 에너지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후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민주주의의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 ‘87년체제의 합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합의가 물질적 토대로 전환된 것이 ‘대통령 직선제’이다. 군사독재에 환멸을 느낀 ‘시민들’, 상징적으로 지목하자면 ‘넥타이 부대’가 연일 거리를 누비면서 외쳤던 구호가 바로 대통령 직선제였다. 말하자면 지금 상황은 87년체제의 합의를 번복하려는 극우의 반동을 밀어내는 ‘체제의 반발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로 표상되는 ‘평화적 정권교체’는 87년체제의 합의를 이행한 결과였지만, 이른바 ‘산업화세대’에 속하던 일부 극우세력은 이런 합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립되어 있었다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이들에게 ‘합법적 권력’을 부여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적 선거절차였다. 여기에 박근혜라는 ‘미스터리한 존재’가 있었다. 지금은 모두 속았다고 보수 정치인들이 입을 모으고 있지만, 당시 그들에게 이 미스터리한 존재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선동을 종결 지을 ‘능력자’로 보였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을 품을 수 있는 포퓰리즘의 아이콘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바로 이 미스터리한 존재였다고 하겠다. 이렇게 박근혜라는 이름은 말라죽어가던 극우의 뿌리를 되살려낸 구세주의 그것이었다. 여기에 태만한 보수의 포퓰리즘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지난 4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진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태는 극우조차도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 ‘합법적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극단적 민주주의의 유물론을 보여준다. 경제만 살린다면 ‘독재자의 딸’도 국가수반에 임명할 수 있다는 이런 ‘포용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론 이 포용성은 그 반대에 있는 이들, 다시 말해서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대상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정치적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일반 노동자를 구분하고, 정치적인 유가족과 그렇지 않은 일반 유가족을 나누고, 운동권과 일반 시민을 갈라치는 태도가 극우 보수 연합의 경우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편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편향성을 극복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오히려 그에 반대하는 집단에 합법적인 권력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은 증명한 것이다. 미국의 트럼프 집권 역시 이런 민주주의의 편향성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똑똑히 보여준다. 트럼프 같은 ‘백인 쓰레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민주주의는 과연 어떤 민주주의일까. 이 질문은 2012년 우리에게 던져졌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백인들처럼 그때 우리도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분명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자 했을 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일본의 청년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당시 그 청년들의 행동에 십분 찬동하더라도 냉정하게 물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다. 과연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그 자유민주주의에 ‘자이니치’는 포함돼 있는가. 전후 일본이 보여온 태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행동에 나서는 이들이 명징한 신념과 대의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 자체가 이념적 방향을 공고하게 만드는 쪽이라고 봐야 한다.

 

탄핵이라는 명백한 목표가 있는 지금이 지나고 나면 현재 벌어진 상황은 다시 봉합될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어떤 목표가 남게 될지 질문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잃어버린 10년’을 거론하면서 태평천하를 약속했던 보수의 의제가 10년도 가지 못하고 몰락했다. 이 칼럼 연재는 그 보수의 의제를 분석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이제 또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부족한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 제현에게 감사드린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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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오늘은 대한민국 운명의 날이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진다. 만약 이 안이 가결되고 장차 헌법재판소를 통과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최초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실로 오랜만에 우리나라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장면을 국민이 목격하게 된다. 세월호 유족들은 먼저 간 자식을 생각하며 눈물 흘릴 것이다. 토요일 촛불집회에서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뒤 정국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 될 수밖에 없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서 여러 후보가 대선의 급류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은 불문가지다. 개헌 주장도 더러 나오겠지만 현 국면에서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에 불과하다. 지금은 오직 탄핵과 정권교체뿐이다. 박 대통령을 포함하여 개헌파 중에는 속셈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많으므로 양두구육이 아닌지 잘 봐야 한다. 경기 전날 갑자기 경기규칙을 바꾸자고 하는 사람은 저의를 의심할 만하다.

물론 현재 헌법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고치는 것은 차후 과제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적폐를 해소할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는 것이 다음 대통령의 임무다. 다음 대통령이 재벌개혁, 사법개혁, 관료개혁, 교육개혁, 언론개혁 등을 완수한 뒤 임기 후반에 가서 개헌을 논의하는 게 순서라고 본다. 그때 가서는 대통령중심제냐 의회중심제냐, 비례대표를 얼마나 늘릴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까 등을 포함해 백가쟁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 만일 탄핵안이 부결되면 그 이후 정국은 먹구름 속으로 빠져들어 한 치가 아니라 반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탄핵안 통과에 실패한 야당 국회의원들은 ‘내가 이러려고 국회의원 했나’라는 자괴감에 빠져 집단 사표를 던질 것이다. 지금까지 사상 유례 없는 평화시위로 세계의 찬탄을 받았던 시민들도 참을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 성난 촛불은 민의를 배반한 국회와 새누리당사를 에워싸 국회를 마비시킬 것이고, 국정 혼란은 극에 달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 기능이 마비된 나라가 어떤 모양일지는 전대미문이라 도저히 상상하기 어렵다.

탄핵은 찬성하는 게 옳은가? 백번 옳다. 대통령의 헌법 파괴, 범법 행위는 현재 밝혀진 것만 해도 차고 넘친다. 세월호 7시간만 해도 여러 의혹에 대해 부인만 하지 그 시간에 대통령이 뭘 했는지 왜 말하지 않는가. 결국 최태민, 최순실은 박정희의 유신독재 그늘에 똬리 튼 독버섯이다. 이번 국정농단은 박정희, 최태민을 극복하지 못한 박근혜의 왜곡된 역사인식이 빚은 사태다. 아버지 미화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폐기하고, 백해무익한 사드는 없애고, 자존심 상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합의는 폐지하고, 억울하게 문 닫은 개성공단은 다시 열어야 한다. 박정희 독재의 망령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며 법 위에 군림해온 간신배들은 심판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소시민들, 촛불집회가 끝나면 열심히 거리를 청소하는 애국시민들이 자존심을 갖고 어깨 펴고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온 세계에 대통령이 떨어뜨린 국격을 국민이 회복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오늘 결정되니 오늘은 진정 운명의 날이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이 운명의 결정은 국정농단의 공범인 새누리당 의원들의 손에 달려 있다. 골수 ‘진박’은 개전의 정이 없으므로 눈곱만큼도 기대할 게 없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고, 정계에서 쫓겨날 운명이다.

반대로 새누리당을 탈당해서 대통령 탄핵을 열심히 외치는 남경필, 김용태의 주장에 비박, 친박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새누리당에 마지막 남은 양심과 애국심이 있다면 당연히 압도적 국민이 요구하는 탄핵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무자격 대통령을 내세워 국민과 역사 앞에 지은 죄를 속죄할 마지막 기회가 오늘이다. 잘못을 회개하고 새 출발을 하려는 사람은 용서하자.

독일의 나치 정권은 작곡가 ‘막스 브루흐’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모든 음악 연주를 금지했다. 브루흐가 작곡한 ‘콜 니드라이’도 물론 금지당했다. 콜 니드라이는 ‘신의 날’이란 뜻인데, 이 노래에 의해 인간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고 한다. 이 곡은 속죄의 날을 기리는 관현악 반주의 첼로곡으로, 장중하게 흐르는 동양적 비애의 멜로디가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오늘 운명의 날이 속죄의 날이 되기를 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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