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방패를 돌려주세요!”

지난 29일 오후 8시40분. 비선 실세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 2만여명이 모인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 일부 시민이 대치하고 있던 경찰관의 방패를 빼앗았다. 근처에 있던 20~30대 시민들은 “방패를 돌려줍시다”라고 외치며 방패를 머리 위로 파도타기 하듯 넘기면서 경찰에 돌려줬다.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사무금융노조가 연 '박근혜 하야 촉구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0분 뒤 “당신들 프락치 아니냐. 평화롭게 해서 청와대 어떻게 가느냐”고 외치며 시민들의 행진을 막아선 의경을 끌어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번에도 많은 시민들이 “때리지 맙시다” “폭력으로 충돌 일어나지 않게 서로 어깨동무 합시다”라고 말하며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의 물리적 충돌을 막아냈다.

시민들이 하나둘씩 해산하기 시작한 밤 10시쯤에는 흰색 대형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쓰레기 여기 버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시민들도 등장했다. 그 덕택에 수많은 인파가 머물다 간 거리는 깔끔했다.

경찰은 30일 “시민들이 경찰의 안내에 따라주고 이성적으로 협조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향후에도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준법 집회시위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찰의 이례적 발표에 정부가 덧씌운 ‘불법·폭력 시위’ 프레임에 말려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껏 시위를 사전봉쇄하는 데 주력하며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눌러온 경찰과 보수언론의 악의적인 프레임에 갇혀 시민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런 지적과는 별개로 현장에서 마주친 시민들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사회 전체가 분노로 들끓고 있기에 자칫 경찰과 시민들 사이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평화시위의 상징으로 어깨동무를 하고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 위법과 탈법을 서슴없이 저질렀던 최순실씨와 청와대를 상대로 시민들은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반응했다. 누가 비정상이고, 누가 정상인가.

김원진| 사회부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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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최씨와 연루된 청와대 참모진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나섰으나 청와대의 거부로 실패했다. 최씨가 국정을 맘 놓고 주무를 수 있도록 도와준 대통령과 청와대는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의 대상일 뿐이다. 국가비밀 보호 운운하며 검찰과 대치하거나 협상을 벌일 위치에 있지 않다. 시민들의 더 큰 저항을 부를 행태만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유출한 것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은 지난 29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부속비서관 등의 청와대 사무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청와대는 법률상 임의제출이 원칙이라며 자료 제출로 맞섰다. 검찰은 자료가 부실하다며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30일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은 공무상 비밀이라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압수수색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청와대에 비밀문서가 보관돼 있어 압수수색이 불가능하다는 청와대 논리는 코흘리개에게도 통하지 않을 망발이다.

최씨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국가 주요정책 등 극도 보안이 요구되는 자료가 흘러가도록 도왔고 그가 청와대 인사권까지 휘두를 수 있도록 방기한 청와대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부한 것은 말이 안된다. 민간인 최씨의 권력이 검찰 수사권보다 센 것이냐는 질문에 무어라 답할 것인가. 최씨의 국정농단은 과거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권력형 비리와 차원이 다른 전례 없는 국기문란 행위다. 시민들이 대통령 하야, 탄핵을 요구하며 분노를 분출하고 있는 것도 바로 대통령이 몸통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눈치만 보는 검찰의 수사의지도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미르·K스포츠 재단에 대한 고발이 이뤄진 지 27일 만에야 수사에 나섰고 청와대 눈치만 보다 압수수색에 나선 것으로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은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자료 협조에 소극적이라며 청와대에 목소리를 높이다 돌연 “청와대가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갈등 진화에 나선 건 청와대에 굴복한 것과 마찬가지다. 안 수석과 우 수석, 문고리 3인방이 30일 물러났기 때문에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이들이 사용했던 청와대 사무실과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관련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청와대의 증거인멸 시도를 도와주다간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아도 시민은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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