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자유로운 공간이어야 한다. 군사독재 시절에도 대학은 자유의 최후 보루로서 국가폭력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곳이다. 당시의 지식인을 대표했던 대학생과 교수들이 모두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대학에서의 사상과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은 바뀌었고,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폭력의 시대는 거의 막을 내리고 있다. 아직도 가끔씩 고개를 쳐드는 국가폭력의 유령이 어른거리기는 하지만 이제 대학에서의 사상과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국가적 이슈가 되는 시대는 아니다. 오히려 갑질과 성희롱 등 다른 직장에서의 폭력과도 닮아가는, 대학 내부의 생활폭력으로부터의 자유가 문제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대학의 사상과 학문과 표현의 자유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는, 지나간 시대의 문제인 것인가? 과연 우리 대학은 쟁취한 자유를 가지고 마음껏 대학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대학의 교수와 학자들은 치열하게 논리를 세우고 검증을 하지만 새로운 영역을 자유롭게 개척하고 새로운 발견에 가슴 뛰고, 새로운 대안과 상상을 제시하는 자유로운 지적 탐험을 즐기고 있는가? 그를 위해 교수들은 학생들과 지적인 대화와 토론을 하며, 열린 마음으로 다른 학자들의 비판과 창의적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캠퍼스 문화와 지식인 문화를 만들어 왔는가? 지금 우리 대학에서의 시간은 일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지적 탐구와 상상력과 낭만의 시간인가? 과연 우리 대학은 사상과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여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물론 민주화투쟁 시기의 대학과 지금의 대학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때와 달리 학생들이나 교수들은 국가적 폭력을 상시적·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또한 그때와 다르게 대학의 수업도 비교적 성실히 진행되고 있고, 못 구하는 교재와 논문도 거의 없다. 교수들도 정년보장과 승진을 위해 수많은 논문을 매년 쏟아내고,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기고하고 출연을 하면서 다양한 대상을 향하여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고 비판을 날리기도 한다.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대학은 이제 당연시된 사상과 학문의 자유 안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그건 바로 학문의 자유 속에서 시대의 고민을 가장 먼저 머리와 가슴으로 끌어안고, 시대를 선도해야 하는 대학이 그 시대 안에서 매몰·침몰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대학이, 보다 구체적으로는 교수들이, 자본주의사회의 단순한 생업종사자가 되면서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문제에 당면하여 자유롭게 새로운 지적 실험을 하기보다는 생활영위를 위하여 기계적으로 일하면서 월급받는 보통의 월급쟁이가 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 현실은 새로움과 창의성과 실험정신이 사라진 대학과 대학원의 강의실과 연구실, 그리고 심사자 이외에는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기계적인 논문들, 대학 강의와 전공과 상관없이 취직에만 골몰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대안을 아직도 외국의 유명 스타 학자에게만 의존하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말해주고 있다. TV나 인터넷의 인문학 강좌나 통찰을 얘기하는 강의를 들어봐도 시대를 선도하는 독창적인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흥미 위주의 역사 이야기나 외국 것에 대한 소개, 아니면 역경을 극복한 체험담 위주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문제, 특히 자본주의와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 나타나는 제반 문제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지적 터부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대안 담론을 모색하는 지식세계가 사라지고 있다.

인문사회 쪽에서는 언젠가부터 구조적 변화를 보는 거대담론을 경멸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거대한 변화를 읽어내는 지적 풍토가 사라지고 대학이나 학계는 테크니컬한 문제만 다루는 기술자의 학계로 보수화되기 시작하였다. 자유로운 지적 탐구의 대학이 기계적 논문생산의 대학으로 변해왔다. 아직도 대학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자유로운 곳이어야 한다는 데 토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는 방학과 출퇴근의 자유가 아닌, 자유로운 지적 실험과 자극과 시대를 선도하는 대안을 연구하는 자유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대학은 충분히 진보적이지 못하고, 충분히 자유롭지도 못하다. 그래서 죽어간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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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논란에 대해 언론에 나온 해결책은 대부분 무책임하다. 예를 들어 수능 복수 시행에 관한 제안이 그렇다. 단 1점 차이에도 민감하기 마련인 우리의 입시 현실에서 복수로 시행하는 수능시험들의 난이도를 동등하게 맞출 길이 있을까? 이제 정말 큰 틀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 까닭은 우선 근본적인 원인이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악화일로의 사회적 양극화 앞에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합격하느냐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다들 생각한다. 대학입시라는 줄세우기 싸움에서 앞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유전자처럼 박혀 있다. 게다가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과 이해관계도 크게 엇갈려 사회적 합의도 어렵다.

이 같은 난국을 뚫고 나가려면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우선 교육현장에서 밑으로부터 불고 있는 새 바람, 진보교육감의 괄목할 만한 진출로 입증된 새 기운을 잘 북돋워야 한다. 각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를 다지고 확대하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축적해야 한다. 개별 학교와 일선 교사의 열정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확대함으로써 대학, 기업, 사회가 기존의 타성을 버리고 변화를 받아들일 여지를 넓혀야 한다. 물론 아래로부터의 움직임만으로는 부족하고, 위로부터의 적절한 호응이 필요하다. 그것은 대학 서열구조를 허무는 대학 개혁이며, ‘국립대학 연합체제’ 방안이라고 부를 수 있다. 계획의 골자는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학들의 적절한 통합 운영을 통해 대학에서도 판을 치는 학점과 스펙 경쟁을 배제하고 공부다운 공부가 이루어지는 고등교육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지방 국립대학을 내실화하고 특성화함으로써 정부의 시장주의적 대학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피하고, 지역경제를 살림으로써 수도권 편중의 국가운영이 지닌 폐해를 넘어설 수 있다.

장기적으로 서울대 수준의 종합대학 10여개를 전국에 골고루 만들어낼 수 있다. 5000만명의 인구에 세계 10위권 경제를 가진 나라가 이것을 해내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미술대학 실기전형을 한 달여 앞둔 30일 오후 서울 홍익대 인근 미술학원에서 한 수험생이 실기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 대선에서 야당이 유사한 안을 검토하자 일부 언론은 이를 ‘서울대 폐지론’의 프레임에 걸어 좌초시켰다. 그러나 이 길은 서울대도 살리는 방법이다. 왜냐하면 서울대에서 점수 따기의 귀재는 인기 전공만 찾거나 고시에 몰두하고, 대학다운 공부를 열망하는 잠재력 있는 학생은 방향을 잃은 학부교육 탓에 좌절하고 방황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이 양적, 질적으로 줄어들어 서울대의 연구 기능은 이미 심각한 장애를 겪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만 들자. 교육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10여년 만에 대학들은 학부제 모집에서 학과별 모집으로 회귀하고 있다. 연구·교육 단위로서 학부가 정착된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고 사실상 학부제는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실의 새로운 도전에 맞서야 할 때에 젊은이들을 학과별로 묶는 것은 과거의 갖가지 한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만약 연합체제에 참여한 대학 교수진의 깊은 논의를 통해 준비된 분야부터 적정한 규모의 공동선발을 하고 해당 분야에서 대학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든다면, 학생의 숨은 잠재력이 발휘되어 몇 년 안에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다. 대학 내에 소모적인 학점 경쟁이 아닌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경쟁이 자리 잡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국립대학 연합체제’ 안은 결코 무모한 ‘평준화론’이 아니다. 또 대학에 학생 선발의 완전한 자율권을 달라는 말로 포장된 사회 일각의 ‘본고사 부활론’, 즉 1%의 성공을 위해 99%를 더 큰 고통과 희생에 빠뜨리는 길과도 질적으로 다르다.

장애물은 많다. 자칫하면 예산 낭비와 혼란 속에 교육관료의 권한만 커지는 최악의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 한국 교수집단의 자발적인 열정과 헌신을 이끌어낼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우리 교수들을 믿을 수 없다고? 맞다. 현재는 같은 교수인 나도 확신이 부족하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해내야 할 사람은 이들이다. 무엇보다 이들도 학부모임을 기억하자.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진정으로 승리를 원하는 정치집단은 지금부터 범사회적 논의를 주도할 채비를 해야 한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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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대학, 입시
고려대 학생이던 김예슬씨가 자퇴와 함께 내붙인 '김예슬 선언'이 사회에 던진 충격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지만 대학의 모습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걸까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유지영씨가 학교 게시판에 다시 글을 올렸습니다.
얼마 전 '기초학문 말살'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중앙대학교 구조조정 계획을, 고려대도 따라하려는 것이냐며
대학의 존재의미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격변의 시기, 철학 없는 대학엔 미래가 없다!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영원히 세계의 패권국가일 줄 알았던 미국은 무역적자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 나라든 정세에 가장 민감한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계의 행보도 심상치 않다. 자타공인 시장주의자인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 박근혜는 ‘복지국가’를 기치로 들었고, 중도 개혁 노선을 견지해오던 민주당의 당대표 선거에는 ‘진보’ 담론이 등장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팔리는 책은 경제학, 재테크 도서였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가 몇 달째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많은 돈을 버는 법이 아니라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혼란의 시기, 무너지지 않는 진리로 여겨왔던 신자유주의가 위기에 봉착하자, 새로운 시대의 나침반은 무엇인지,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고려대에서도 대학에서 더 이상 참된 삶을 배울 수 없기에 자퇴를 선언한 김예슬 학생의 이야기는 전 사회를 흔들었다.

자퇴를 한 것은 김예슬 학우 1인이었지만 이 반향은 전체 대학생의 기업이 된 대학에서 숨 막히게 열심히 살아도 꿈과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절규였다. 새로운 가치와 철학 없이는 아무리 더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 되기도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더, 더 노력한다고 미래는 찾아지지 않기에.

그러나 대학에서 삶과 꿈, 미래의 나침반을 찾지 못하고 자퇴를 결심한 학생과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진 수 많은 학생들이 울부짖는 동안 민족사학, 명문사학을 자임하는 고려대학교 당국은 대체 무엇을 했는가? 




학우들의 이해와 요구를 실현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총학생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전 사회가 김예슬 선언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시대를 논하며 뜨거울 때 학교도 학생회도 무엇 하나 뛰어들어 바꾸고자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대는 반성은 커녕 이젠 대놓고 ‘돈 되는 놈 밀어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Global KU의 기치 아래 상대평가, 영강의무화 등 학사제도는 더욱 엄정해지고 학교생활은 더욱더 숨막히게 되었다. 금융위기로 펀드 수익률이 반토막이 날 때 고대의 1300억원 적립금 펀드 투자 의혹이 대두됐다. 2010년, 고대는 이미 건물이 3개(경영본관, 경영별관, LG-POSCO 경영관) 나 있는 경영대학에 새 건물 G50관을 짓기 위해 조형학부와 사범대 학생들이 사용하는 사대분관을 철거하는 계획을 냈다. 한 학기 동안 조형학부 학생은 라이시움 주차장에서 실습을 하라는 덧붙임과 함께.

그리고 지난 주 학교는 중앙대 구조조정 안을 내놓은 경영 컨설팅 업체에 8억 6천여만원을 주고 구조조정을 위한 경영진단을 맡겼다. 학제개편을 제1순위의 목표로 하는 그 경영진단의 미래는 올해 중앙대의 모습이다. 

중앙대 경영진단의 결과는 경영학 특성화, 심지어 문과대 “폐지”까지 논의되는 인문학, 기초학문단위 통폐합이었다. 중앙대 당국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 탄압을 추진하며 그간 학생회가 진행하던 새터를 학교당국이 빼앗아 갔고,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던 학생들에겐 퇴학 등의 초강수 징계를 내렸다. 

내년 고려대에서 구조조정이 벌어진다면 고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너무나도 끔찍하다.




모든게 변하고 있다. 철학 없는 고대, 바뀌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세상은 새 길을 찾고 있는데 신자유주의적 기업식 대학운영이라는 낡은 배를 몰고 가려는 고려대에선 철학의 빈곤에 숨막혀 하는 제2, 제3의 김예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대학은 대학 다워야 한다. 어떤 사회도 60대가 세상을 주도했다는 역사는 없다.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으로, 새 시대를 주도할 청년들을 배출해야할 곳이다. 시대가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철학을 제시하지는 못할 망정, 변화의 시대에 신자유주의 구태를 고집하며 거꾸로 가는 대학엔 미래가 없다. 

지금이라도 돈이 아닌 사람을, 효율이 아닌 가치를 위한 대학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철학 없는 고대, 바뀌어야 우리 모두 산다!

  

고려대 진보전략포럼 조직위원장 정치외교학과 4학년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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