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 9억원 수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만기 출소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 전 총리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그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를 ‘사법 적폐’로 규정했다. 김현 대변인은 “억울한 옥살이에서도 오로지 정권교체만을 염원한 한 전 총리님,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향후 사법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나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추미애 대표는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한 전 총리를 타깃으로 이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 사건은 그가 건설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와 유죄가 확정된 사안이다. 사법개혁이 필요한 이유로 여당이 한 전 총리 재판 결과를 거론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한 전 총리가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된 것도 아닌데 출소 현장에 여당 지도부가 우르르 몰려가 영웅 맞이하는 듯한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3일 새벽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검찰은 당시 야당의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한 전 총리를 표적 수사했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았다는 1차 뇌물 사건이 무죄가 날 것이 확실시되자 2010년 4월 검찰은 또 다른 혐의로 한 전 총리를 옭아맸다. 대법원이 2년 가까이 시간을 끌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려 표결하는 등 불필요한 억측과 오해를 산 측면은 있다. 그런데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은 정황 증거가 드러났다. 건설업자가 발행한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의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사용된 것이다. 한 전 총리 비서도 건설업자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 2015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건설업자가 건넨 수표를 한 전 총리가 받아 동생에게 줬다고 판단하고 대법관 8(유죄) 대 5(일부 무죄)로 유죄를 확정했다.

당사자인 한 전 총리로서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재판을 다시 해도 사법적 진실이 달라지기는 어렵다. 게다가 일부 무죄 의견을 낸 대법관 5명도 한 전 총리가 건설업자로부터 최소 3억원을 받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무기력하게 정치적 동지를 감옥에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여권 인사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부패에 눈감고 권력에 굴종하는 사법부를 개혁한다면서 사법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민주당이다. 그럼에도 한 전 총리 감옥행을 사법 적폐라고 하는 것은 이 사법개혁의 정당성을 의심케 하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민주당은 한 전 총리에 대한 온정주의 때문에 시대적 과제인 사법개혁의 순수성을 훼손해도 되는지 성찰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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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10년 동안 펄에 갇혔던 세상이 한꺼번에 밀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 무렵에야 퇴근한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겪고 있다”고 ‘웃으며’ 푸념했다. 한 야당 인사는 “대통령 후보감인지 늘 의아했는데 대통령감은 맞는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권교체기엔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가 관례였다. ‘무조건’ 차별화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출범 20일 만에 40개가 넘는 정부조직을 뜯어고쳤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면 괜찮아)’를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외려 과거 관례를 지우며 출발했다. 곳곳에서 시대의 변화를 해석하느라 분주하다. 문 대통령 리더십에서 찾자면 “비주류이지만 주류의 가치를 만들 줄 알기 때문”(도종환 의원)일 수도, “없음의 힘을 갖고 있어서”(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일 수도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 등 주요국 특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충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은 권력 획득의 과정이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여정이라는 의미가 보태졌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선언한 것에 주목한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의원에 이르는 조직 자원을 갖고 있는 정당은 여론을 결집하는 통로다. 그래서 정당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정당 정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집권 여당이라도 ‘보스’(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르자 “이제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다”고 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사당화 제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고리를 끊으려 했다. 당정분리를 시도하며 “정당을 좌우하지 않는 나의 무능력, 그게 나의 정당개혁”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 시도된 당정분리는 집권 여당의 분열로 막을 내렸다. 정당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한 후보였고, 민주당을 장악한 후보였다. 내각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민주당 정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국정자문기획위원회도 김진표 위원장 등 당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주요 인선 면면을 보면 당의 가치와 철학을 국정 중심에 두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읽힌다. 10년의 적폐를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는데도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것은 선거 때부터 정당이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땐 국회의원들이 유세차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왼쪽’ 이재명부터 ‘오른쪽’ 안희정까지 경선 때부터 정당의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 대통령과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목소리로 ‘민주당 정부’를 외쳤다.

정당 정부는 대통령 의지만으론 버겁다. 정당도 변해야 한다. 당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공천 받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분권도 필수적이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대표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떼주는 ‘약한 분권’을 넘어 독립적 힘을 나눠 갖는 ‘강한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의회는 예산편성권, 인사권조차 없다. 경기도는 전체 인구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올해 예산 규모는 국가예산(약 400조원) 15분의 1 수준이다.

칼럼을 마무리할 무렵, 양정철 전 비서관 퇴장 소식이 들렸다.

문 대통령과 양 전 비서관 관계를 헤아린다면 패권 청산이라는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공공성, 양 전 비서관을 눈물로 보낸 문 대통령의 결심이었을 테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 가는 가장 아픈 길이었으리라.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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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구에서 유세를 시작했다. 그의 첫 유세 장소는 2·28민주운동 기념탑 광장이다.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28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최초의 저항운동이었으며 4월혁명의 ‘출발’이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구의 2·28에서 시작하여 마산의 3·15를 거쳐 서울의 4·19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이 대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대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촛불민심의 대변자로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보이려 하는 것 같다.

이런 문재인 후보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대구는 민주화 이후 한번도 민주당을 밀어주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대통령 선거는 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상수였다. 김대중-노무현 당선 때에도 이 지역의 몰표본능은 변함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오른쪽)가 17일 대구 경북대학교 앞 유세에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시민들의 손을 잡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 지역에서 보수정당 지지와 민주당 배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감정, 둘째는 정당일체감, 셋째는 이념이다.

처음에는 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주당을 배제하자고 했다. 근거 없는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민주당에 대한 거부 감정을 키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적 언어, 다른 지역에 대한 막연한 우월감을 동반했다. 이런 감정의 동원은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적으로 유통되지 않았다. 향우회나 동창회와 같은 일차적 관계의 모임에서 내밀하게 통용되는 담론이었다.

이와 같은, 감정에 기초한 정당지지와 배제가 거듭되면서 그것은 급기야 정당일체감으로 발전하였다. 이 단계에서부터 이 지역의 민주당 배제는 조금 더 노골화되었다. 특정 정당과는 동일시하는 의식이 생기고 그와 경쟁하는 다른 정당에 대해서는 적대의식이 흐름을 이루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는 이를 대표하는 담론이다. 민주당에 대한 배제는 조금 더 공개적 영역에서 진행되기 시작했다.

점차 정당일체감은 그 정당이 추구하고 있는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로 진화하였다.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을 배제하는 논리와 가치를 구축한 것이다. 이 담론은 이제 공적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배제하는 논리적 근거와 명분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촛불민심이 우리나라 정치지형을 완전히 흔들어놓은 상황에서도 감정-정당일체감-이념으로 특정 정당을 배제하는 이 지역 정치의 바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촛불민심의 충격으로 이 지역을 독점적으로 대표하던 보수정당이 둘로 나누어지고 두 정당의 지지율이 보잘것없게 된 지금에도 이 지역 민심은 민주당으로 가지 않고 있다. 그냥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도록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지하자는 흐름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후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되지 않도록 다른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이런 경향이 얼마나 힘을 받을까?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나 그 조짐이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구 정치 역사에는 그런 경험이 몇 차례 있었다는 것도 지나칠 일이 아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진보당 조봉암 후보와 경쟁하여 70% 대 30% 비율로 승리했으나 대구에서는 그 비율이 거꾸로 나왔다. 이승만이 30%를 받았고 조봉암이 70%를 받았다. 정확한 득표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비율이 그렇다. 대구가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던 이 선거는 사실 대구 사람들이 조봉암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승만이 싫어서였다. 당시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사망하였는데 그 때문에 이승만을 싫어하는 모든 표가 진보당 조봉암으로 몰린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돌풍이 분 것이나, 1996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련 바람이 몰아친 것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싫어서였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것 같다. 그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인 2·28민주운동기념탑 광장에서 첫 유세를 함으로써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일깨워 지지를 얻으려고 하였다. 이 힘과, 그가 싫어서 안철수 후보로 흐르는 민심의 힘이 교차하면서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것 같다. 수십년 만에 대구정치가 상수에서 변수가 되고 있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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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은 어제 서울 고척스카이돔 구장에서 마지막으로 수도권·강원·제주 지역 순회경선을 치른 결과, 누적 투표율 57%를 기록하며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친 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오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원내 5개 정당 대선후보들이 모두 정해지면서 19대 대선 본선이 시작된다.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문 후보는 어제 대세론을 확인하면서 대선 경쟁의 선두에 섰지만 그와 민주당에 주어진 과제는 무겁다. 우선 문 후보에게는 대선 본선을 정책 중심의 레이스가 되도록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다. 촉박한 대선 일정으로 정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후보들이 국정운영의 방향을 놓고 제대로 토론하지 못했다.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요구한 개혁 방안은 제대로 제시조차 되지 않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보 간 인신공격과 비방만 난무했다. 본선이 후보들의 정책과 자질을 검증하는 생산적인 경쟁이 될지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갈지는 문 후보와 민주당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력 주자인 문 후보가 선거판의 흐름을 주도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 후보와 민주당이 진정 준비된 대통령을 입증하고자 한다면 네거티브 대응을 자제하면서 선거판을 건강하게 이끌어나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3일 서울 고척동 스카이돔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수도권, 강원, 제주 선출대회에서 최종 후보로 선출된 뒤 손을 들어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 후보가 떠안은 또 다른 과제는 민주당과 국가의 통합이다. 문 후보는 끊임없이 친문재인 패권주의 논란을 불렀다. 지난 대선 이래 여러 당 대표가 문 후보와 지지자들과 맞서다 당을 떠났다. 이번 경선에서도 안희정 후보가 “질리게 한다”고 할 만큼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이런 포용력으로는 산적한 과업을 앞에 두고 있는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 당선과 함께 대개혁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차기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과 마주서야 한다. 시민의 기대가 높은데 민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면 그 정권은 실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 지지율은 민주당과 그의 성과라기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구여권의 실정에 대한 실망감에 따른 것이다. 문 후보에 대한 지지율 못지않게 높은 비호감도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문 후보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이런 확장성의 한계와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들은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대선 레이스와 통합의 리더십을 갖춘 후보를 원하고 있다. 이런 책임을 우선 부여받은 문 후보가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대세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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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19일 부산대 강연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선한 의지로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겠지만 뜻대로 안됐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K스포츠·미르 재단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회적 대기업의 좋은 후원금을 받아 잘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것이 법과 제도를 따르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발언이 알려지며 파문이 일자 안 지사는 “어떤 선의라도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진의”라고 해명했다. 일종의 비유와 반어법을 쓴 것이라고 했다. 실제 현장의 청중들은 그의 발언에 웃음을 터트렸다. 강연에서 안 지사는 ‘반대하는 정치, 싸우는 정치, 비난하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선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대권행보에 나선 안희정 충남지사가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재경 충청향우회 신년교례회에서 축하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안 지사는 현재 대선 지지율 2위를 달리는 야권의 유력 후보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도 검증의 시험대에 올라섰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헌법재판소에선 박 대통령의 5가지 헌법위반과 8가지 법률위반 사항에 대해 심리 중이다. K스포츠·미르 재단 모금을 위해 대통령이 직권을 남용했다는 뇌물죄도 그중 하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된 인사만 20명이 넘는다. 이들의 범죄 행위가 선의에서 비롯됐다고 보기에는 저지른 일이 너무 어마어마하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임박한 시점에서 지금은 법리의 일자일구를 다투는 엄중한 시국이다. 지금까지 박 대통령 측은 일관되게 ‘선의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안 지사의 ‘선의’와는 다른 의미겠지만 선의는 이렇게 얼마든지 왜곡되고 오해받을 수 있는 발언이다. 더구나 범의(犯意)는 범죄 구성의 중요 요건이다. 박 대통령은 공식정부 위에 사설정부를 운영했고, 최순실은 대통령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챙겼다. 설사 어떤 선의가 있었다 해도 악행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안 지사는 충청, 50~60대 이상 중도·보수층의 지지를 빨아들이며 지지율 20%대를 돌파하고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의 발언은 중도·보수 표 확장을 겨냥한 것일 수 있다. 여소야대 협치를 위한 대연정 구상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게이트가 시민들에게 준 상처가 매우 깊다는 사실을 유력 후보인 그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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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평

미국인들은 중고차시장을 ‘레몬 마켓’으로 지칭한다. 시큼하고 맛없는 과일인 레몬만 널려 있는 레몬 마켓처럼 중고차시장에선 값싸고 품질이 떨어지는 자동차만 유통된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레몬을 위한 시장’이란 논문에서 “중고차시장이 레몬 마켓이 되는 것은 판매자에 비해 제품에 대한 정보가 적은 구매자들의 역선택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고차시장의 역선택 논리는 이렇다.

구매자들은 중고차시장의 평균가격에 근거해 구매의사를 표시한다. 개별 중고차에 대한 정보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매자는 자신의 차량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 간 정보의 비대칭이 나타나는 것이다. 성능이 좋은 차량 소유자들은 평균가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중고차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반면 성능이 떨어지는 차량 소유자들은 평균가격이라도 받고 팔려고 한다. 이에 따라 구매자들은 값은 싸지만 성능이 떨어지는 중고차를 살 수밖에 없는 역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가 19일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에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의 오디오북 녹음 리허설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역선택은 뷔페식당에서도 발생한다. 뷔페식당의 주인은 음식을 적게 먹는 손님을 선호한다. 하지만 손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뷔페식당 주인은 적자가 예상되면 식당 이용료를 올리거나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역선택을 한다.

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한 더불어민주당에서 역선택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 지지모임인 ‘박사모’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민주당 경선에 모두가 참여하십시다. 문재인이 후보가 되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라는 글이 발단이 됐다. 민주당은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를 경선 단계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반대 진영이 벌이는 방해공작”이라며 발끈했다. 반면 중도·보수층 선거인단 참여를 독려 중인 안희정 충남지사 측은 “역선택을 따질 거였으면 완전국민경선제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역선택은 실패를 낳는다. 선거에서의 역선택도 마찬가지다. 특정 후보를 떨어뜨리려 다른 당의 경선에 참여해 경쟁 후보를 미는 정치공작적 행위는 선거도 망치고, 민주주의도 훼손하기 때문이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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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불출마 선언’이 아쉽다. 그의 기자회견문을 몇 번이고 읽어보았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 설명의 전부다. 그가 얻고 있는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그게 정말이라면 참 안타깝다.

그는 이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나서겠다고 했다. 자신이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는 얘기도 했고, 자신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런데 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지지율이 낮아 주저앉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박 시장은 지지율이 높건 낮건 그만의 독특한 빛깔과 목소리를 계속 내야 했다. 그것은 지도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무이다.

박 시장이 하차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후보 진용에 심각한 결손이 생겼다. 그것은 박 시장의 지지율과 견줄 수 없는 큰 구멍이다. 그레고리 헨더슨이 ‘대한민국 그 자체’라고도 한 서울특별시를 이끈 값진 경험, 협치와 혁신의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민주당 후보 경쟁 과정에 계속 참여했더라면 민주당의 확장성과 역동성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라는 미련을 버릴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김부겸 의원(오른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발언 순서를 양보하고 있다. 두 주자는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와 공동정부·공동경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양측은 야3당이 연합해 개방형 공동경선을 치를 것을 제안했다. 강윤중 기자

박 시장의 느닷없는 하차는 정치지도자 본인을 위해서도,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박 시장이 왜 저렇게 황망히 떠났을까, 그를 붙들어둘 수는 없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박 시장의 하차를 애석하게 여기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김부겸이 눈에 밟힌다. 박 시장의 행보를 지켜보며 김부겸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지역구 경기도 군포를 버리고 민주당의 ‘동토(凍土)’ 대구로 달려가 깃발을 꽂은 김부겸은 그 여세를 몰아 정권교체의 선봉에 서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선후보 여론조사표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져 버렸다. 김부겸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민주당 주류의 대표 후보와 어쭙잖게 겨루려다 ‘18원짜리 후원금’으로 조롱을 받은 일이야 병가지상사라 하더라도 지하로 내려간 지지율은 참기 어려운 수모일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김부겸이 레이스를 포기하면 안된다. 그는 문재인, 이재명, 안희정이 가지고 있지 않은 덕목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부겸은 대구·경북의 ‘총아’다. 그는 민주당 간판으로 30여년 만에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주의의 어두운 장막에 바늘 같은 빛줄기를 만들었다. 김대중의 동진정책, 노무현의 전국정당화정책을 이어받아 그가 단기필마로 이룬 성과다. 이번 대선에서 김부겸이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히 크다. 지난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200만표가량을 졌는데 이번에 그 차이의 절반은 따라붙여야 민주당이 전국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에서 넘어와 정체성이 어리바리하다고 무시당하고, 진보적 입장 그 자체를 우월감으로 여기는 민주당 주류의 철없는 구박을 견디면서도 대구·경북에서 빛바랜 민주당 깃발을 굳세게 지켜온 김부겸에게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민주당원들은 김부겸이 포기하지 않도록 성원을 해야 한다.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 그렇다. 김부겸은 문재인처럼 내로라하는 정치 혈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재명처럼 결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며, 안희정처럼 스마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만큼 정치적 사려(prudence)가 깊은 지도자는 없다. 그는 1980년 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 연설의 주인공이라는 신화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다. 그가 내세우는 상생의 정치, 공존의 공화국이라는 비전은 가장 김부겸다운 메시지다. 그는 ‘나를 따르라’라는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양떼를 뒤에서 밀고 가는 목동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자 만델라의 리더십에 비견하고 싶다. 이런 리더십이야말로 민주당의 확장성과 역동성, 그리고 민주진보세력의 통합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즈음에 김부겸을 격려하자는 이런 ‘위험한’ 제안을 마음 놓고 하는 이유는 사실 그가 꼴찌를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에 김부겸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가치만큼 필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제안이 김부겸에게는 좀 미안하다.

대선후보 여론조사표에서 이름이 사라진 김부겸에게 ‘모멸을 삼켜라’,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포기하지 말라’는 요구가 그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이 꼴찌에게 갈채를 보내야 한다. ‘18원짜리 후원’이 아닌 제대로 된 후원을 해야 한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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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감정싸움이 위험수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급기야 “박지원 원내대표는 총리 사심이 있다” “문재인 전 대표 측에서 박지원 총리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박 원내대표가 거절했다”며 진실공방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는 13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전 대표 측 인사가 저의 지인을 통해 제가 총리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한 칼에 딱 잘랐다”고 썼다. 촛불정국 와중에 민주당 문 전 대표 측이 총리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는 취지다. 문 전 대표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왼쪽)가 1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국 수습 방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박 원내대표 주장은 문 전 대표 측근으로 알려진 노영민 전 의원의 당원 상대 강연 내용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노 전 의원은 지난 2일 충북지역 당원을 상대로 한 비공개 강연에서 “박지원 대표 본인이 꿈이 있다. 총리를 하고 싶어 하잖아”라며 “이 국면에서 그거 안 해주니까 저 난리를 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가 지난달 14일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비판한 것은 ‘총리 사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기 대선을 앞둔 두 야당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촛불혁명 성과를 사유화하려 이전투구를 벌이는 일이다. 촛불민심 꽁무니를 따라가기 급급했던 야당들이 마치 전리품이나 되는 양 총리 자리 문제를 입에 올리며 정쟁하는 건, 그 진위를 떠나 지켜보기 민망하다.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그런 흉물스러운 정부를 배태한 구체제 전체를 향해 타오르고 있다.

야당들도 구체제 일부임은 물론이다. 일신하지 않으면 함께 촛불민심에 쓸려내려 갈 수 있다.

정제혁 | 정치부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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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불쑥 제안했다가 당 의원들의 반발로 한나절 만에 철회했다. 긴급 의총에서 다수 의원들은 충분한 논의 없이 양자회담을 졸속 결정한 그에 대해 강력 성토하며 회담 취소를 요구했다고 한다. 추 대표의 이날 깜짝 제안은 시기도 형식도 뜬금없었다. 두 사람이 만나 정국 수습이란 큰 틀의 의제를 놓고 담판을 짓겠다고 하지만, 견해차가 커 애당초 성과를 기대하기는 난망했다. 대통령이 퇴진하겠다는 분명한 의사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 할 얘기만 하고, 검찰 조사를 앞둔 박 대통령의 위상만 높여주는 회담은 시민들의 부아만 돋울 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담 제안도 다른 야당들과 사전 협의 없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서도 일부만 알고 있었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발표됐다고 하니 돌출 성격이 짙다. 추 대표가 100만 촛불 민심을 대표하는지도 의문이다. “민주당이 제1야당이지만 국민들은 민주당에 수습권한을 위임한 바 없다” “국민이 추미애에게 영수회담 하라고 촛불 든 것 아니다”라는 반발에 부닥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시민과의 공감 없이 추진되는 회담은 추 대표가 민심을 독점한 듯한 오만함으로 비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추 대표의 독단적 의사결정은 한두 번이 아니다. 대표 취임 직후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가 역시 여론의 반발에 취소했고, 과거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엔 비정규직 법안 단독 처리를 강행한 바 있다. 이번에도 당내에서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만난 격”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의 독단이 다시 도졌다”고 우려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미 사태는 4·19혁명, 6월항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촛불의 바다에서 ‘대통령 퇴진’이란 말이 더는 새삼스럽지 않게 됐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은 야 3당의 긴밀한 공조가 중요한 때다. 국민의당·정의당은 일찌감치 ‘퇴진’ ‘하야’로 당론을 정한 반면에 민주당은 100만 촛불집회를 본 뒤에야 가세했다. 대선주자들의 의견도 중구난방이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 있는 제1야당 대표라면 야당 내 이견을 조율하고 통일된 안을 만드는 데 앞장섰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의 회담을 우선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민심을 이용하려는 행태로 볼 수밖에 없다. 거대한 노도 앞에 소리(小利)를 챙기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추 대표는 이번 소동을 놓고 촛불 민심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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