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시 헤이더라는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있다. 만 24세. 한 이닝당 거의 두 개의 삼진을 뽑아내는 무시무시한 구원투수다. 지난 7월17일, 일생의 꿈이 이루어지던 올스타 게임 당일, 헤이더는 경기를 마친 후 첫 올스타 게임 출전 소감이나 그날의 경기 성적에 관한 질문이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주의, 여성 혐오주의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가 17세 때 트위터에 썼던 글들이 엄청난 속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흑인과 게이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증오하는 내용들이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투수 션 뉴컴도 올해 깜짝 스타로 떠오른 2년차 신예이다. 지난 7월29일 다저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투아웃까지 단 한 개의 안타도 맞지 않는 완벽한 투구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바로 그날, 7, 8년 전 그가 쓴 트위터가 유포되었다. 인종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 단어들(nigga, faggot)이 섞여 있었다. 뉴컴은 인생 최고의 경기를 한 후 한 시간 만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해야 했다. 워싱턴 내셔널스의 트레이 터너는 2016년 신인왕 투표에서 2등을 한 24세의 엘리트 유격수다. 올해도 인상적인 활약을 하며 올스타 최종 예비후보로까지 뽑혔다. 그 역시 과거 흑인과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글을 쓴 기록이 드러났다. 대학 신입생 때의 일이다.

세 선수 모두 팬과 동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뉴컴은 “깊이 사과한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터너는 “모욕적인 단어와 나의 둔감함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진정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소속 구단들도 별도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 세 명에게 인종·젠더 감수성 훈련을 받도록 명령했다. 사무국의 ‘사회적 책임과 통합’ 분야 부사장인 빌리 빈(유명한 <머니볼>의 저자 빌리 빈과는 다른 사람이다)이 훈련의 책임을 맡았다. 그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이다.

태평양 건너의 세 야구선수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던 거의 같은 시간, 우리나라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을 지칭하면서 “성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자”가 ‘군 개혁’을 이야기한다며 비난했다. “화장을 많이 한 모습”이라고도 했다. 날이 바뀐 후에도 “발언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했고, 같은 당의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이를 “원내대표의 소신 발언”이라고 두둔했다. 당 대변인은 “(임 소장이) 자신의 ‘민감한’ 부분이 꼬집힌 데 대해” 반발하는 것이라는 조롱 같은 논평을 발표했다.

자신의 한때 실언을 진심으로 사과한 20대 중반의 야구선수에게 ‘감수성 훈련’을 권유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라면, 자신의 발언이 무슨 잘못인지도 모르는 60대의 공당 대표나 미국 같으면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발언을 ‘소신’이라 부르는 교수 출신 비대위원장에게는 어떤 조치가 적절할까. 김성태 원내대표의 홈페이지에는 “사회적 약자들을 가슴에 품고 처절한 진정성으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써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지역구에 장애학생 특수학교 신설이 추진되자 이 부지에는 국립한방의료원을 설립해야 한다며 교육청과 각을 세워 장애아 학부모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방송토론회에서 최순실씨를 가리켜 태연하게 ‘미천한 여성’이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약자’는 누구인가? 그에게 젠더·인종 감수성은 무슨 의미인가?

최근의 메이저리그 사태에 대해, 스포츠평론가 댄 클라크는 “이제 ‘문화’에 대해 질문할 때다. 이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모두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이런 시각을 갖고 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우리도 질문해야 한다. 자면서도 약자를 위한다는 말을 할 것 같은 정치인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동성애자를 향해, 여성을 향해, 혹은 장애인이나 노인이나 이주민을 향해 뻔뻔스러운 혐오발언을 하는 ‘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일본인 투수 다르빗슈 유가 자신에게 인종차별적인 제스처를 취했던 율리 구리엘에 대해 (격한 비난을 참으면서) 이 사건이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길 원한다”고 밝혀 찬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정곡을 찌른 것은 NBC 뉴스의 빌 베어 기자의 글이었다. “다르빗슈의 대응은 우아하고 품위 있었지만, 모든 혐오의 피해자들이 그처럼 주위의 지지를 받을 수 있진 않다. 만약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가 화내면 왜 다르빗슈처럼 관대하지 않냐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이고, 특히 편협(한 혐오발언)에 대응하는 적절한 반응이다. 분노는 사회변화를 불러오기도 한다. 다르빗슈가 구리엘에게 했던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여성의 참정권이나 인종차별 철폐를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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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군형법을 보면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밖의 추행’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동성애를 퍼뜨릴 위험인물’이라는 증거가 됐다.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이 같은 논리가 별문제 없이 통용되는 분위기, 게다가 급격히 퇴행하는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가는 청문회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후보자, 항문성교를 연상하게 하는 후배위를 선호하죠? (녹취 파일을 흔들며) 그동안 관계했던 여성의 증언이 확보돼 있어요. 인정하세요.”

“저는 상식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말자,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조문을 정비하자. 현재 동성애와 관련한 논의의 수준은 이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동의가 군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또 이것이 물꼬가 되어 소아성애, 수간, 시체상간까지 비화되리라 단언하고 군대 가야 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을 강변한다. 

듣다 보면 동성애자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 페스트 저리 가라 할 만한 치명적 역병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그 순간부터 동성만 보면 흥분해서 들이댈 좀비 같은 존재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통제불능 성도착자들이다. 좀 있으면 ‘나는 동성애자가 싫어요’ 외치다 죽임을 당했다는 군대 괴담까지 나올 기세다. 이렇게 끔찍한 존재들이 널렸는데 그동안 사우나는 어떻게 다녔으며 화장실 소변기는 어떻게 이용했나. ‘항문성교하면 처벌한다’는 얄팍한 보호막 하나로 안심하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이성애자들은 이성만 보면 흥분해서 껄떡거리는 존재들이다. 남녀가 함께 모이는 학교, 회사, 각종 공동체는 언제든 난교파티가 벌어질 공간이다.

우려해야 하는 것은 남의 성적 지향이 아니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물리력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기득권,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탄압이다.

동성애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데는 보수 개신교계가 큰 몫을 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에 물들어가는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떨쳐 일어날 만큼 ‘순수’한 신앙심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냉전·반공체제를 발판으로 함께 성장했던 수구보수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유통기한 지난 색깔론과 종북 타령을 대신해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성경에 언급된 그 수많은 죄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횡행하는데 왜 동성애에만 목숨 거는 건지 이해할 길이 없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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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며 “합법화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론 말미에 문 후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6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는 도중 성 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든 동성애자들이 항의구호를 외치며 문 후보에게 달려들고 있다. 권호욱 기자

동성애는 찬반 사안이 아니다. 이성애를 놓고 찬반을 따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권 선진국가라면 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은 혐오 표현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라도 문 후보가 사회의 다수인 이성애자의 표를 얻기 위해 성소수자를 폄훼했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 후보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혼동하고, 여기에 군대 동성애 문제까지 뒤섞이는 바람에 말실수한 것이라고 해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성소수자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는 주요 개념은 물론이고 토씨까지 정확하게 표현해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문 후보가 학습이 안되었거나, 성소수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 후보 발언으로 성소수자들은 상처를 입었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또 다른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이든 인권은 모두 똑같이 존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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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암호체계를 해독해 1400만명의 목숨을 구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해지는 앨런 튜링의 생애를 영화화한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의 앞부분은 천재 수학자가 에니그마라는 강력한 암호체계를 푸는 장면이다. 독일군의 공습이 행해지는 영국 런던에서 수학자, 논리학자, 암호학자들이 모여 적국의 암호를 풀어나가는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그러나 암호를 풀고 전쟁이 끝난 후의 앨런 튜링의 운명은 너무나도 쓸쓸하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1952년 남자 매춘부에게 성매매를 하려다가 체포돼 당시 영국에서는 범죄였던 동성애 혐의로 화학적 거세를 당할 것인지, 형을 살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그는 화학적 거세를 선택하고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1954년 청산가리가 들어있는 사과를 먹고 자살한다. 동성애자라는 단 하나의 범죄(?)에 수학적 천재,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인공지능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다 묻히고 만다.

우리는 영국의 유명한 동성애자를 또 하나 알고 있다. 바로 엘튼 존이다. 1947년 영국 미들섹스에서 태어난 그는 국가별 판매량 인증 합산에 따르면 무려 1억6000만장의 음반을 판매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0년대에 존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첫 남성 팝스타였으나 그로 인해 활동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심지어 1998년에는 음악과 자선활동의 공헌이 인정돼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 2006년 영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자 지난해 오랫동안 동성애 파트너였던 데이비드 퍼니시와 결혼했다.

한 시절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던 영국이 동성애 커플에게 이성 부부와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시민동반자법’을 제정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에 대한 발언도 파격적이었다. 성경에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한 의지로 주님께 손을 내민다면 그걸 누가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동성애자를 소외시키지 말고 그들이 사회에 잘 통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과학계에서는 동성애가 유전하는 것인지, 자신의 선택인지에 대해 논쟁이 뜨겁다. 2000년 베일리 등은 4901명의 호주 쌍둥이 연구를 통해 남자 일란성 쌍둥이의 20%, 여자 일란성 쌍둥이의 24%가 일치율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또한 2001년에 허시버거는 8개의 논문에 대한 메타분석을 통해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훨씬 높은 동성애 일치율을 보여 유전적인 성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현재 학계 입장은 성적인 경향은 유전자, 호르몬, 사회적 환경에 의해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뇨의 유전적 성향이 있더라도 사회적 환경에 의해 미국에서 태어나면 음식 섭취가 달라져 비만이 될 확률도 높아지고, 당뇨에 걸릴 확률도 더 높아지지만, 에티오피아에 태어난다면, 당뇨가 발현되지 않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게이 3명이 한커플로 태국서 3각 동성결혼 (출처 : 경향DB)


아직도 동성애자에 대한 시선은 싸늘하다. 그러나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했던 영국이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지 않는 것에서 벗어나 결혼까지 합법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또 동성애를 범죄로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않고, 포용적으로 받아들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가치는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더 성숙한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인류의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소크라테스, 르네상스를 이끌어 간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두 동성애자임을 알고 있다. 이들은 위대한 인간이었으며, 인류에 기여했다. 동성애자들이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이들을 차별할 권리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서홍관 | 국립암센터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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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동성애

오는 12월10일 ‘세계인권의 날’에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선포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울 시민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을 직접 만든다”는 헌장 제정 취지가 성소수자 혐오 앞에서 무색해질 위기에 있다.

150명의 시민위원들이 마련한 인권헌장 초안은 9월, 10월 두 차례 권역별 토론회를 통해 일반 시민에게도 공개됐다. 이 토론회에 일부 개신교, 보수 단체 회원이 대거 참석했는데 인권헌장의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에이즈 감염에 대한 편견과 공포를 조장하면서 성소수자를 혐오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인권헌장이 없는 게 낫다는 식의 발언들을 쏟아냈다.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논하는 자리면 어김없이 재현되는 이런 난동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는 변명거리를 제공한다. 실제로 혐오세력들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을 ‘표’ 앞에 무릎 꿇리곤 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성소수자가 캠페인을 열 장소조차 승인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도 이번 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방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더욱 존재를 드러낼 수 없으며 ‘인권을 누리는’ 시민으로 인식될 수 없다. 다른 시민들이 성소수자 차별을 제대로 이해할 길도 멀어지고 만다.

20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강당에서 동성애 반대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서울시민 인권헌장 공청회를 저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청회가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출처 : 경향DB)


서울시가 성소수자를 인권헌장에 표현하고 차별로부터 보호한다고 약속하면 ‘성소수자도 시민’이라는 선언적 힘을 가질 것이다. 인권헌장이 법적 강제력을 갖지는 않지만 차별의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은 할 수 있다. 이번 인권헌장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배제한 채 ‘누구나’ ‘모두’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으로 뭉뚱그린다면 결국 성소수자를 차별받는 대상으로 떠올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세계인권의 날에는 서울 성북구에서 ‘성소수자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내용이 담긴 주민인권선언문을 발표했다. 2012년 제정된 ‘서울시 어린이·청소년인권조례’에는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명시됐다. 그리고 13년 전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의 19개 차별금지 사유에도 성적지향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이 이보다도 뒤처진다면 서울시의 부끄러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서울시는 이제부터라도 혐오 표현이 괴롭힘이자 인권침해라는 분명한 태도와 입장을 갖고 인권헌장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소외받는 집단이 존재를 드러내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싸울 때마다 혐오가 등장했다. 성소수자 혐오는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중첩되며 최근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모욕적 발언들과도 관련이 깊다. 성소수자를 혐오할 권리가 용인되는 사회는 다른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사회임을 인식해야 한다.


송정윤 | 무지개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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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동성애

가톨릭교회가 전통적으로 금기시해온 동성애·이혼·혼전 동거에 대해 포용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가정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바티칸에서 소집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는 “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은 물론 이들의 아이들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이 보고서에 가톨릭이 그동안 죄악시해온 동성애를 종교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은 실로 놀랍고 뜻깊은 변화다.

가톨릭은 남녀 간의 결혼만 인정하는 성경 교리에 따라 지난 2000년 동안 동성애를 ‘내재적인 장애’로 여기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혼과 동거도 금기시했다. 하지만 그간 가톨릭이 교리주의에 갇혀 동성애·이혼·동거가 늘어나는 세상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현실과 교리의 괴리가 가톨릭 쇠퇴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따라서 이번 시노트 보고서는 달라진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혁명적 전환’의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이혼.동성애.미혼모 등에 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들 (출처 : 경향DB)


이번 회의에서도 개혁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교황은 취임 후 일관되게 ‘상처받은 가족들’을 언급했다. 그가 지난해 9월 “만약 어떤 사람이 동성애자이고 그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면 누가 그를 판단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동성애에 대한 교황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번 보고서가 곧장 가톨릭 교리의 변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종 결론까지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 보수적인 주교들이 반발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신(神)의 대리자급 권위를 가진 교황의 뜻이 세계 가톨릭교회의 지침이 될 것은 확실해보인다.

가톨릭계의 이런 변화는 동성애 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법체계의 변화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이제 우리가 가톨릭의 이런 변화를 한국의 ‘상처받은 가족들’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때다. 우리 사회처럼 동성애자, 이혼자, 미혼모 등에 대한 차별이 심한 곳도 드물다. 성적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이 동성애자나 다른 소수집단의 법적·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에 앞장섰으면 한다. 예컨대 국회에서 계속 미뤄지고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가톨릭의 역사적인 동성애·이혼·동거 포용의 뜻이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전해져 소수자에 대한 종교적·법적·제도적 차별을 없애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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