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3.20 광기 바이러스
  2. 2015.03.06 [시론]같이 갑시다
  3. 2015.03.05 [사설]리퍼트 주한 미대사 습격 천인공노할 일이다

지난달, 10대의 김모군이 부모 몰래 출국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가입했다. 다 알다시피 IS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공개 참수하는 등 만행을 여러 차례 저질러 인류 공동의 적(敵)으로 지탄받는 세력이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을 적대하는 반미단체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구구한 추측을 했고 언론들은 그가 평소 페미니즘에 증오감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집단의 사주에 따라 움직였다고 주장하거나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IS에 가담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IS 가입이 ‘한·미동맹을 공격하는 행위’라고 주장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로부터 20여일 뒤 50대의 김모씨가 미국대사에게 테러를 가했을 때의 반응은 이와 판이했다. 당시 해외에 있던 대통령은 이를 즉각 ‘한·미동맹을 공격하는 행위’로 단정했고, 대다수 언론은 이를 ‘개인 김씨’가 아닌 ‘반미 종북세력의 일원인 김씨’의 행위로 취급했으며, 경찰은 김씨를 사주한 배후세력이 있다는 전제하에 수사에 착수했다. 여당은 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라고까지 몰아붙였고, 야당은 김씨가 가입한 단체인 민화협 공동의장에 여당 의원이 있다는 사실을 들어 반박했다. 10대 소년의 행위는 ‘개인 일탈’로 보면서 50대 장년의 행위는 ‘특정 집단의 사주를 받은 행위’로 보는 이런 반응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이 피습을 당한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쾌유를 빌며 부채춤 공연을 펼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광기’라고 보도했다. _ AP연합


1911년 조선총독부는 지금의 옥인동 경찰청 보안수사대 자리에 순화원이라는 전염병 환자 전문병원을 세웠다. 그런데 당시에는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이 병원은 환자를 위한 시설이 아니라 아직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환자를 격리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게다가 총독부는 감염자 또는 보균자를 적발해 순화원에 이송하는 임무를 경찰에 맡겼다. 물론 경찰은 질병을 진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들 중에는 민족적 편견에 사로잡혀 조선인 일반을 병균처럼 대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렇다보니 단지 전염병이 도는 때에 ‘열이 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순화원에 끌려가 거기에서 감염되어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같은 해, 조선총독부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사건’을 조작해 총독 정치를 위협할 것으로 의심되는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체포, 투옥하고 고문했다. 이른바 ‘105인 사건’이다.

순화원 설치는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생체’를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조치였고, 105인 사건은 ‘불온사상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정신’을 ‘순종적인 사람들’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조치였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반박할 수 없는 과학적 지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이런 지식의 확산에 동반하여, 사람의 특정한 생각을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취급하는 태도도 일반화했다. 이에 따라 주로 ‘특정 가문의 구성원’으로 분류되었던 개인들은 ‘특정한 생각을 가진 세력의 일원’으로 재분류되었고, 국가 권력은 역적의 삼족이나 구족을 멸하는 야만적 처벌 대신 국가의 안녕을 위협하는 ‘위험한 생각’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집단 전체를 격리하거나 물리적으로 소멸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 방법이 역적의 삼족이나 구족을 멸하던 옛 방법보다 훨씬 야만적이었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유사 이래 수많은 ‘역모 사건’이 있었지만, 그 사건들의 희생자 수를 다 합쳐도 1950년의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수보다 적다. 게다가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전염병 환자’에 비유하자면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사람들이었다.

사람의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밝혀낼 수 있지만,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저지르게 만드는 ‘병적인 생각의 요소’는 온전히 밝혀낼 수 없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살인의 동기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햇빛 때문’이라고 답했다. 사람의 생각과 기분, 외부의 자극, 구체적 행위 사이의 수많은 변수들을 이해하려는 의지없이 행위와 생각 사이에 일대일 대응관계만을 설정하면, 특정한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은 범죄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 전부를 격리 또는 소멸시키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그러나 이야말로 한 사회에 광기를 확산시키는 생각의 바이러스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온 지금에도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는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종북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40%에 달한다고 한다. 이 수치는 우리 사회가 단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소멸시킬 준비를 어느 정도까지 갖추었는지를 드러내는 지표에 다름 아니다.


전우용 | 역사학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성애자 차별할 권리는 없다  (0) 2015.03.24
‘변호사 강제주의’  (0) 2015.03.23
광기 바이러스  (0) 2015.03.20
지겨운 ‘영수회담 레퍼토리’  (0) 2015.03.17
쓰고 읽는 기쁨  (0) 2015.03.16
종북완장 찬 사회  (0) 2015.03.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충격과 경악의 순간이다. 1882년 한·미관계 성립 이후 미국 정부 최고위급 인사에 대한 가공할 만한 칼부림이라니. 한마디로 엽기적, 저돌적 망동이다. 6·25 전쟁 때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엄청난 일로 너무나 불행한 사건이다. 더구나 비무장 상태의 외교관을 상대로 칼을 휘둘렀다고 하니 어떤 말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주한 미대사의 완쾌와 조속한 업무복귀를 기원하며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매우 잘못된 장소와 시간대에 일어나고 말았다. 그 조찬 모임은 보수와 진보 인사를 망라한 민족 화해협력을 위한 범국민기구가 주최하고, 갓 부임한 미국대사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 한·미관계의 발전 방향을 강연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가해자는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걷어차버린 것이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이 돌발 사태를 그냥 방치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마치 고여 있는 저수지 물이 썩듯 우리 사회가 불통과 오판으로 치닫고 있으며 끝내 이런 극단주의로 비화될 조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범죄 혐의자는 ‘전쟁 반대’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자기 주장의 관철을 위해 이처럼 무모하기 짝이 없는 위험한 행동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도 맹목적 극단주의가 출현해 돌출행동을 불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평화와 공존은 증오나 대립의 물리적 수단과 방법으로는 존립할 수 없다.

극단주의는 민족주의에서는 쇼비니즘, 종교적으로는 광신적 이단, 피부색으로는 배타적 인종주의, 정치적으로는 유별난 독단과 독선의 정치사상과 과격한 이념을 씨앗으로 삼아 언로가 막혀 있는 사회에서 발호한다. 그러므로 신생 극단주의자는 어떤 성격장애자 개인의 몫이 아니라 다수 대중 안에서 그것을 선호하는 소수의 언동을 통해 재생산된다. 다수 안에서 잠복된 폭력충동과 파괴본능을 자극함으로써 극단주의는 인간사의 상대성과 다양성, 유한성을 완강히 거부하고, 오로지 일방적으로 자기들의 세상에 집착한다. 극단주의가 현대사회에서 출현, 기생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그만큼 외롭고, 버려진 주변성의 질곡이 극한의 공포와 공격성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극단주의를 극복, 해결하는 길은 그 반사회적 요소나 사회악을 물리적으로 배척하기보다는 사태의 심연에 침잠해 있는 정치적 거악부터 척결하는 게 우선순위이다. 왜곡되고 변형된 소수의 관점과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어 일부 사회로 유입·확산됐던 사회적 폭포현상부터 해명·분석돼야 한다.

한국에서 반미·반전주의가 어째서 파괴적인 테러리즘으로 비화하고 말았는가? 한국의 극단주의는 망상과 아집만으로 현상유지적 외교관계를 부정하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일방주의적으로 재단함으로써 하나를 취하되 다른 하나를 버리는 것에 대한 아무런 검토를 하지 않는 주관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온건하고 평화적 접근을 배제하고, 더욱 폐쇄적이고 경직된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는 극단을 방치할 것인가?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화협 주최 초청 강연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씨가 경찰에 사지가 들린 채 끌려가고 있다. _ 연합뉴스


우리 모두가 나서 극단주의를 치유하려면 견제와 균형을 회복하려는 꾸준하고 차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틈을 타서 누군가 공포의 정보정치로 회귀하며 사회 진화에 역행하는 구시대적 반동의 유혹에 빠진다면 극단주의라는 기름에 불장난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한·미관계는 광복 이후 이와 같은 극단주의 행태를 하나의 변곡점으로 삼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진입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입원 중인 미 대사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 ‘같이 갑시다’라고 제안했다. 이 말 한마디는 더욱 튼튼하고 건전한 내용의 새로운 한·미관계로의 도약 필요성을 호소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분별없는 폭력성을 치유하려면 극단주의를 낳는 소모적 진영논리 강요와 정쟁을 해체해야 한다. 이제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수용하자. 사회통합의 절박함을 받아들이자. 이것들이야말로 극단주의가 움트고 있는 지반을 정리하는 수습의 정도가 아닐까?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어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 조찬 강연회에서 한 시민운동가의 습격으로 부상을 당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니 불행 중 다행이지만 한국의 동맹국 대사가 도심에서 습격을 당한 사건은 충격적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낳은 아들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줄 만큼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한국인의 친구가 되고자 노력했던 그가 무자비한 공격을 받은 것은 개탄할 일이다.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문화단체 ‘우리마당’ 대표라고 자처하는 김기종씨는 그동안 과격한 행동을 일삼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그는 “외국사절 폭행 등 전과 6범”으로서 상습적으로 주한대사관 직원들을 공격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독도 문제로 주한 일본대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지기도 했다. 이번 리퍼트 대사 습격 때는 통일에 방해된다며 “한·미 군사훈련 반대”를 외쳤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그는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인물로 추측된다. 물론 그도 그의 논리와 주장을 펼 수 있다. 그러나 흉기를 들고 외국 대사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어떤 수식이 필요 없는 습격행위이다. 한국 사회가 그걸 용납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미국 CNN 방송이 6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 소식을 긴급 뉴스로 전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두고 공연히 야당을 공격했다. 제1야당 대변인이 김씨를 ‘극단적 민족주의자’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미화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치고 그 표현을 미화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황당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김무성 당 대표도 “테러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며 한발 나아갔다. 아직 진상 조사도 하지 않았는데 1인의 행위를 ‘세력’이라고 단정지은 그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분열을 조장하고 정쟁을 부추길 생각이 아니라면, 냉정하게 수사당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나 여야 정당, 시민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어떤 명분도 습격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어떤 습격도 관용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다져야 한다. 그래서 진보성향이든 보수성향이든 자기의 이념을 위해 남을 해치는 야만적 행위가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건 미국의 외교정책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와는 다른 문제이다. 자기의 의사를 폭력에 의존해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여당과 야당의 차이,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넘는 대원칙임을 안다면, 이번 습격으로 한국 사회가 갈등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빈다. 그가 다시 밝은 얼굴로 한국인과 만나는 장면을 보고 싶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