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민심과 국민 여론은 거듭 대통령의 하야다. 하지만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겠다고 작정했다는 뜻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았던 대통령의 정치는 완료됐으며 명예혁명과 망명을 운운했던 일각의 로망은 소멸했다. 남은 것은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다. 국회의 정치는 이제 외길로 보인다. 탄핵을 가결하고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대통령의 헌법과 국회의 헌법이 맞붙는 막다른 길이다. 반면 시민의 정치는 이 길과 함께 또 다른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사문화된 원칙을 되살려 엘리트 독과점 정치의 대의 민주제를 넘어서겠다는 국민혁명의 길이다.

날마다 특종과 속보와 가십성 뉴스가 홍수를 이루지만 국민은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지 않는다. 대통령의 하야를 마땅하게 여기는 민심은 하야한들 지난한 탄핵으로 간들 그다음이 마땅치 못한 이 난국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직시하고 있다. 국민은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지웠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과 처벌은 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이다. 초겨울의 주말문화이자 저녁문화가 된 광장 행렬이 100만 촛불을 켜면 때맞춰 청와대 실내등이 꺼지고 경복궁과 북악산이 깜깜해지는 광경은 우연이 아니다.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교차하는 이 빛과 어둠의 대비는 국민 저마다의 간절한 ‘보디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거대한 ‘미디어 아트’다.

이 ‘국민예술’이 열망하는 국회의 정치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의 4대 국정과제를 사사로운 먹잇감으로 갈취한 ‘비선 실세’의 공범들과 이들을 공권력으로 뒷바라지한 국가 시스템의 적폐를 대청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 국회를 정당득표 연동 비례대표제를 통해 일신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탄핵 정국을 경과하는 동안 국회의 정치가 보여줘야 할 기본이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로 가서 차기정부가 하겠노라 공약한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민심은 안다. 51%로 당선된 대통령을 95%가 마음에서 버리게 된 국민의 자괴감은 더 이상 무력감이나 패배감이 아니라 새 판 짜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집단지성의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이 점에서 민심의 향배를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한다. 못 볼 것의 끝을 끝내 보았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이 몹쓸 사태를 단숨에 정리할 방법을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 탄핵의 외길에서 입법, 행정, 사법, 헌법재판, 선거관리에 이르는 헌법기관 전체의 정상화를 위한 대장정에 그 어떤 지름길도 샛길도 없음을 직시하고 국가 대개조의 가시밭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국민과 소통하며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어야 대통령 선거가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정치는 국회의 정치를 견인하되 따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100만 촛불이 부른 그 노래의 후렴구 그대로다. “후회 없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다.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소설가 부희령은 “오래오래 광장을 지킬 수 있으면 되는 거”라 믿지만 그러기 위해선 “촛불이 꺼지면 언제든지 옆 사람에게 붙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강풍이 불고 한파가 와도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국민과 함께 만들 공적 주체는 누구일까. 이 난국에도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헌법기관, 바로 전국 17개 광역 지방정부와 의회이며 228개 기초 지방정부와 의회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경험했다. 중앙권력의 갑질 횡포에 위축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지만 주민자치를 위해 깨알같이 많은 일을 해 왔으며 특히 위기 때 국민이 믿고 의지할 언덕이 되었던 공공이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 지방정부와 의회가 전국 각지에 한겨울의 촛불 민심을 환대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시민의 정치는 겨울밤 내내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천일야화를 이어갈 것이다. 이 천일야화를 통해 헌법을 공부하고 민주주의 교과서를 집필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나라를 후회 없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의 통찰대로 “허깨비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정치가 갖는 힘이자 국민혁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면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대통령이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충분한 권력을 가진 지방자치의 각양각색 정치여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6월 국민항쟁 30년이다. 그 사이에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이 원하는 바는 일곱번째 대통령을 뽑기 전에 헌법 제1조의 원칙이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맘껏 꿈꾸는 일이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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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성수대교가 붕괴했을 때 현장을 취재한 어느 일본인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사고 직후 많은 사람들이 부러진 다리의 양쪽 난간까지 몰려와 아래쪽의 수습 작업을 구경했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아찔했다고 한다. 교량 전체가 위험한 상태고 그 난간은 방금 무너진 구조물의 일부이기에 더욱 불안했다. 또한 자칫 거기에서 추락할 수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그리고 경찰이 수수방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안전 불감증은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지적된다. 한국인은 여러 가지 일에 과민하고 불안해하지만, 위험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둔감하고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흔히 취하지만, 안전에 관해서는 무모한 낙관주의를 드러낼 때가 많다. 그동안 별일 없었으니 괜찮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사고가 터지면 불안과 분노의 격정에 사로잡히고 패닉에 빠지기도 한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책임자들도 번번이 안이함을 드러낸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예상 밖으로 퍼져나가게 된 일차적 원인은 보건당국의 미숙한 초동 대응이었다. 사태를 너무 가볍게 파악하고 허술하게 대처한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치밀하게 움직이는 ‘보수적인 안보의식’이 요구되는데 국정 책임자와 관료들은 느슨하기 짝이 없었다. 정보를 감추고 실체를 축소하는 보신주의만 발휘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위험사회를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줄리 K 노럼 교수의 저서 <걱정 많은 사람들이 잘되는 이유>(원제는 ‘부정적 사고의 긍정적 힘’)에 ‘방어적 비관주의’라는 개념이 나온다. 낙관주의만을 신봉하고 비관주의를 무조건 배척하는 통념을 저자는 문제 삼는다. ‘긍정의 배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때로 전략적으로 비관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일이 잘못될 수 있는 상황을 다각도로 상상하면서(이를 그 책에서는 ‘정신적 리허설’이라고 한다)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결과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은 인간을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특히 근대사회에서는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에 실존적인 불안이 가중된다. 후기 근대에 접어들면서 끊임없이 위험을 발생시키는 문명과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 체제로 인해 불안은 한결 증폭된다. 물론 그 감정은 경계심과 주의력을 높여주기 때문에 생존의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두려움이 지나치면 삶이 위축되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다. 감정을 적절하게 제어하면서, 그 신호가 암시하는 징후를 냉정하게 읽어내야 한다.

근대의 과학과 각종 시스템으로 순조롭게 길들여지는 듯했던 자연은 여전히 불가해한 정체로 꿈틀거리고 있다. 문명의 무분별한 확장이 신종 바이러스를 생성하고 지하의 대수층 고갈 같은 생존 기반의 붕괴로 이어진다. 인간의 작위(作爲)가 재난을 또 다른 블랙박스로 변형시켜가는 것이다. 생존의 터전은 이해 불가능, 예측 불가능,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탈바꿈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사회의 역량은 오히려 퇴화되어 가는 듯하다. 게다가 이런 사고가 터질 때마다 드러나는 거짓 행각들로 상황은 더욱 흉흉한 난맥상으로 꼬인다.

메르스 여파로 6월 KTX를 포함한 열차이용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가량 줄어든 가운데 21일 서울역사 내에 열감지기가 설치되어있다. (출처 : 경향DB)


재난은 우리의 삶과 세계가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안간힘을 다해 일으켜 세우려던 경제가 바이러스의 침투 한 방에 맥없이 주저앉고 있다. 정부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할 때, 공포감이 연쇄반응하면서 시장에 치명타를 가하는 것이다. 사회적 영역에서도 불신이 증폭되면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경계 태세에 들어가고 심리적 ‘자가 격리’가 이뤄진다. 부(富)가 지속가능하게 창출되려면, 근원적으로는 생태계가 건전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그 위에 국가 시스템과 사회적 신뢰가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메르스는 결국 정복되겠지만, 그 다음으로 어떤 재난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호언장담과 임기응변으로 얼버무릴수록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위기의 조짐들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는 집단 맹신을 경계하면서, 미지의 일들을 예견하고 비상사태에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가는 집단 지성을 키워야 한다. 이 험난한 시기를 통해 삶과 사회를 어떻게 리모델링할 것인가. 공공영역의 파산을 무엇으로 극복할 것인가. 막연한 기대와 상투적인 희망을 거두고 우리의 자화상과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출구는 열리지 않을 듯하다.


김찬호 | 성공회대 초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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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 군(MERS·메르스)의 기세가 꺾이고 있다. 신규 확진자 수가 며칠째 한 자릿수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격리대상자는 감소세로 반전했다. 정부 내에서는 메르스 사태의 조기 종식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6월 말까지 메르스 사태가 종료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보고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메르스 사태의 진정세는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메르스 사태의 조기 종식을 기대할 만한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메르스 3차 유행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고, 지역사회 감염 우려도 불식되지 않는 등 불안 요인이 여전히 적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스 사태의 진정 기미에도 불구하고 방심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사태는 7월까지 갈 것”이란 전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감염 의심자들의 바이러스 잠복기가 이달 말 끝날 것으로 믿고 있다. 메르스 사태의 조기 종식 희망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문제는 당국이 설정한 잠복기간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잠복기 최장 기간인 14일을 넘겨서도 환자가 발생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깨져버린 ‘메르스 공식’을 맹신하다가 사태 악화를 초래한 경험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설령 당국의 잠복기간 기준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잠복기 시한이 이 달을 넘어서는 감염 의심자가 앞으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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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서 유일하게 메르스 사태로 병원 전체를 폐쇄한 경남 창원SK병원에 시민들의 격려와 성원이 잇따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현재의 메르스 상황을 고려하면, 섣부른 낙관론보다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 환자가 접촉한 것으로 예상되는 인원만 5만여명이 넘고, 메르스 감염자가 다녀간 강동경희대병원 투석실을 이용한 사람도 100여명에 달한다. 모두 격리와 추적조사가 필요한 ‘환자예비군’들이다.

신종 감염병을 잡는 데는 왕도가 없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방역망을 가장 넓게 치는 대응이 필요하다. 바이러스 경로를 꼼꼼히 추적하고 감염 의심자는 철저히 격리해야 한다. 자칫 낙관론에 기대다 한 명이라도 놓치면 삼성서울병원이나 평택성모병원의 집단 감염 사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일시적인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자세로는 감염병을 잡지 못한다는 지난 한 달의 교훈을 망각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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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비용’이라는 용어는 흔히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각종 비용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이를 학문적 개념으로 정초하는 데 크게 기여한 유럽의 제도주의 경제학자 칼 윌리엄 캅의 저서 제목은 ‘영리기업의 사회적 비용’이다.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개인 혹은 조직이 자신들이 응당 치러야 할 비용을 치르지 않고 이를 사회에 전가시키는 것을 중심적인 문제로 삼는 것이다.

이는 그 개인이나 조직의 도덕성을 문제로 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리사업 자체가 필연적으로 비용을 사회에 전가시키는 경향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리사업체는 영리활동에 필요한 것들 중 꼭 값을 치르고 사야 하는 항목들, 즉 이미 상품이 되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하게 되어 있으며, 나머지의 요소들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런 돈도 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리활동의 투입물 중에는 그렇게 정확히 상품화되어 가격이 붙어 있지 않은 것들도 부지기수일 수밖에 없으며 영리활동의 와중에 그를 둘러싼 사회적·자연적 환경에 끼치게 되는 ‘외부성’ 또한 무수히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피해의 종류는 환경 파괴, 인간적 비용, 실업으로 인한 고통, 사회의 문화와 윤리의 파괴 등 무한히 다양하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비용을 사회에 떠넘긴 채 기업은 꼭 지불해야 할 것들에 대한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를 오롯이 이윤으로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 와중에서 우리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난맥상을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민낯으로 보고 있는 중이다. 공공의료 체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이러한 위급 상태에서도 국가 기구가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정보 파악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기능부전을 보이고 있다. 질병 전파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이른바 ‘슈퍼 전염 병원’들 몇 개가 떠올랐다. 정부는 병의 전파가 병원을 통해서만 벌어진다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들면서 정작 그 슈퍼 전염 병원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초기에는 아예 병원 이름 공개조차 거부하면서 사태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지금까지도 그 병원들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민간 병원들이 거두고 있는 이윤 속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 즉 그들이 마땅히 지불했어야 할 비용들이 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구조적 차원이다. 허약하다 못해 사실상 무력화되다시피 한 공공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전국의 환자들을 집중시켜 대기업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몇 개 대형 병원들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은, 양자가 표리를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몇 개의 큰 병원들의 큰 이윤은 결국 공공의료 시스템의 위축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그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국내 유입이 확인된 이후 상당 기간 문제의 병원들, 특히 슈퍼 전염 병원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그 병원들은 계속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정부가 비공개 입장을 고수했던 것을 설마 그 병원들에 영업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병원들은 정상적으로 영업을 계속했고 메르스 사태는 통제불능의 지경으로 치달았다. 격리당하고 병마에 시달리며 심지어 목숨을 잃은 개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조성된 불안과 불편함, 그리고 경기의 위축으로 경제적 손해를 입은 숱한 사업체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크기의 비용을 치러야 했다.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병원장이 14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와 관련해 국민여러분께 사과드리며, 메르스 대응을 위해 부분적으로 병원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번 사태는 ‘비즈니스 코리아’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영리기업이 어떻게 비용을 사회에 전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한 사회적 비용을 합리적으로 계산해 공평하게 부담하는 체제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여준다. 무책임하게 뒤로 빼는 정부와 각자도생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결국 그 비용이 사회적 자원과 영향력이 없는 약자들에게 어떻게 전가되는지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의 공공성 부재라든가 국가 시스템의 붕괴 등을 질타하는 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러한 성찰이 현실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이 ‘영리기업의 사회적 비용’의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영리조직들이 어떻게 각종 비용들을 발생시키며, 또 이를 눈에 보이지 않게 사회에 전가하는지, 그리고 그 비용을 결국 최종적으로 부담하게 되는 이가 누구인지 등의 메커니즘을 좀 더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또 그렇게 해서 발생한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하기 위한 ‘사회적 회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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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력이 약한 것으로 알려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유독 국내에서 빠르게 확산된 주요 이유로 감염병에 취약한 국내 의료기관을 들 수 있다. 가족 간병이나 잦은 병문안 등 한국 특유의 병실문화도 확산에 기여했지만, 제도적인 차원에서는 병원의 감염관리의 부실함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에서는 국내 손꼽히는 대형병원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

어제까지 확진 판정을 받은 메르스 환자는 108명이고 이 가운데 9명이 사망했다. 병원별 메르스 감염 건수를 보면 삼성서울병원 47건, 평택성모병원 36건, 건양대병원 9건, 대청병원 8건, 한림대동탄성모병원 3건, 서울아산병원과 여의도성모병원 각각 1건 등이다. 이들을 감염시킨 곳은 대부분 응급실과 다인실이다. 이곳은 감염병에 취약한 환자들이 대거 모여 있는 공간임에도 다른 환자는 물론 보호자나 방문자 등 모든 사람에게 개방돼 있다.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응급실 문제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지금까지 47명을 감염시킨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가벼운 감기 환자부터 만성질환자까지 무조건 대형병원부터 찾고 보는 쏠림 현상과 이로 인한 응급실 과밀화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고 할 수 있다. 항상 환자로 붐비는 응급실의 감염병 관리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는 병원도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다인실은 최초 감염자가 평택성모병원 2인실에서 부인과 옆 병상의 3번 환자 및 그 자녀 등 모두 36명을 감염시킨 데서 알 수 있듯이 이번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였다. 이는 정부가 병원 내 감염병 관리 강화 조치 없이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 다인실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감염병 관리 ‘세계 최하위 수준’이 ‘의료 선진국’ 한국의 이면이라는 사실은 뼈아픈 일이다.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으로 인해 11일 서울시로 부터 봉쇄조치를 당한 서울시 양천구 메디힐병원 출입구에서 한 여성이 입원중인 가족에게 줄 약과 음식물을 병원관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정부와 의료계는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 깨달아야 한다.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는 환자 100명 중 6명은 병원에 갔다가 병을 얻어 나온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만성질환자 중 병원 내 감염으로 숨지는 환자가 매년 1만5000명이라는 추산도 있다. 정부는 병상 수를 늘리는 것만큼 국내 병원의 감염관리 프로그램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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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의 싸움은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이자 질병의 확산이 불러오는 공포와의 싸움이다. 바이러스의 피해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해 감염자 또는 잠재적 감염자를 효율적으로 보호·격리하는 보건시스템적 대응, 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료기술적 대응, 불필요한 공포의 확산을 막고 시민이 차분하게 질병에 맞서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정치적 대응, 이 세 가지가 맞물려야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은 당대 의료기술 수준에 의해 한계가 지어진다. 메르스처럼 백신이나 치료제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있다. 이 경우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최소화하는 것,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요컨대 국가의 보건시스템과 정치의 문제이다. 두 가지 모두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보건시스템적 대응이건 정치적 대응이건 시민의 신뢰를 높이는 결과를 낳아야 한다. 신뢰를 잃는 순간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이미 지는 것이다.

메르스와의 싸움에서 정부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보건당국의 메르스 확산 방지조치는 엉망진창이었음이 드러났다. 최초 감염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을 조기에 파악하지 못해 바이러스가 전국 각지로 퍼졌다. 그나마 확인된 접촉자의 격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의사는 1500여명이 모인 행사에 참석했고, 다른 감염자는 1시간30분 동안 다른 승객들과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만약 행사장이나 시외버스에서 3차 감염이 이뤄졌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3차 감염자(들)의 생활 동선과, 그 동선 상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동선에 따라 접촉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000명이 넘는 다른 자가 격리자들의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다른 사람과 접촉한 사례가 속출하면 사태는 그야말로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2차 감염자가 발생했을 때 보건당국은 3차 감염자는 없다고 했다. 3차 감염자가 발생한 뒤에는 “모두 병원 내 감염이며, 지역사회 감염은 없다”고 안심시켰다. 감염자와 함께한 행사장이나 버스에서 3차 감염자가 발생하면 그때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상식일 터인데, 보건당국은 최선을 가정했다가 상황이 악화되면 속절없이 끌려가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시민들이 보건당국을 신뢰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보건당국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붕괴됐다. 괴담이 난무하고, 공포는 바이러스처럼 퍼졌다. 투명한 정보 공개와 소통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할 이 때, 질병관리본부는 도리어 트위터 계정을 닫아버렸다.

5일 메르스 발원지로 알려진 경기도 평택성모병원은 인적이 끊어진채 굳게 문을 닫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가적 재난의 극복은 대통령의 첫째 소임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나서야 점검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도 남 일 말하듯 하는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여당 지도부가 제안한 당·정·청 협의도 거부했다. 야당과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데 대한 불만 때문이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박 대통령은, 보수언론이 즐겨 하는 표현대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메르스 확산 국면에서 정부가 취한 선제적 대응이라고는 ‘유언비어 엄벌’ 방침밖에 없다.

메르스 사태로 한국은 국제적 망신거리로 전락했다. 가게는 텅텅 비었고, 중국인을 비롯한 관광객은 급감했다. 이 정권이 말하기 좋아하는 ‘국격’은 곤두박질쳤고, 경제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서울 강남구가 ‘메르스 괴담’의 직격탄을 맞은 것을 보면 이 정권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이익은 고사하고 우파적 가치와 핵심 지지층을 보호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쯤 되면 시민들은 진지하게 물어봐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가를 운영할 최소한의 능력이 있는가.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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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 군(메르스) 사태가 심상치 않은 국면을 맞고 있다. 어제 감염환자는 36명으로, 의심 환자는 1667명으로 각각 늘었다. 지난 3일 사망한 80대 남성이 감염환자로 확인됐다. 3차 감염자 가운데 첫 사망자로, 메르스 사망자는 모두 3명으로 늘었다. 새로운 감염환자 가운데 대형병원 의사가 포함된 것이 고약하다. 직업 특성상 의사는 환자와 가족 등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최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국내 대표 병원의 의료진마저 감염됐다니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이 의사는 감염환자 옆 병상의 환자를 진료하다가 감염됐다고 한다. 1명의 2차 감염자에게서 감염된 종전의 3차 감염자 4명과는 경로가 다르다. 의사에게 메르스를 옮긴 감염환자가 발열 증상을 보인 지난달 21일부터 열흘 동안 밀접 접촉한 사람들 가운데서 또 다른 3차 감염자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이 의사는 1500여명이 모인 외부 행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상황이 한층 복잡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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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5층에 설치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직원들이 3일 3차 감염까지 일어나 비상 국면을 맞은 메르스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_ 보건복지부 제공

지난달 20일 첫 감염환자 발생 이후 메르스 사태는 사망자와 3차 감염 등 여러 고비를 거침없이 돌파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3차 감염에 의한 지역사회 확산이다. 지역사회 3차 감염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불특정 다수의 감염 가능성을 의미한다. 메르스 발병 환자와의 접촉력을 분명히 확인할 수 없고, 접촉자 범위가 급격히 넓어져 방역에 큰 어려움이 생긴다. 의료기관에서는 폐렴 등 원인이 불분명한 유사 증상에 대해 모두 메르스 바이러스 검사를 해야 하는 상황도 예상된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역사회 3차 감염만은 막아야 할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안일한 자세로 봐 지역사회 확산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첫 감염환자를 진료한 병원과 가족으로부터 메르스 의심 신고를 받고도 뭉갠 보건당국과, 국민에게는 마스크가 필요없다 해놓고 정작 자신은 마스크를 착용하는 장관을 미덥게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심환자가 1300명을 넘어선 뒤에야 첫 대책회의를 열면서 ‘실태 파악과 국민 홍보’나 주문하는 대통령의 한가한 현실인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정부의 각성이 필요하다. 그 다음 선제적 대응으로 전환해야 한다. 감염환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허둥지둥 대처하는 식의 수동적·사후적 대응은 사태 악화만 불러올 뿐이다. 과거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사스 사태를 진정시킨 경험을 되살리기 바란다. 이는 보건행정에 대한 국민 불신을 씻는 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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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다. 지난 주말 동안에도 감염환자가 추가로 3명 확인됐다. 내국인 감염환자는 15명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어제서야 ‘메르스 감염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민관합동대책반’을 구성, 운영에 들어갔지만 총체적으로 구멍 뚫린 국가방역체계에 대한 국민 불신을 떨쳐내기 힘들다. 최초 환자가 5월20일 발생했고 최대 잠복기가 2주일임을 감안하면 메르스 사태는 이번 주 고비를 맞을 것 같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부실한 메르스 대처는 지난 주말 확진한 감염환자 3명에게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이들은 최초 환자가 입원한 병원의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자이거나, 다른 입원환자를 간병 또는 매일 문병한 사람들이었지만 격리 대상이 아니었다. 기계적으로 최초 환자의 병실 방문자만 격리했을 뿐 공동 화장실 등 해당 병원의 다른 장소에서 최초 환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탓이다. 화석화된 메르스 전파경로 매뉴얼에만 매달린 결과다. 정부와 보건당국은 해당 병원에 현장 대응팀을 파견해 접촉자 모니터링과 검사를 다시 실시하는 등 뒤늦게 부산을 떨었다. 언제까지 사후약방문식 대처를 되풀이할 것인가.

국내메르스 환자 성별.연령대 (출처 : 경향DB)


새로운 질병이 출현했지만 치료제나 백신이 없다면 의학적 한계에 해당된다. 이와는 달리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은 환자 관리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해당 질병이 창궐한다면 정부의 무능과 안일함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 확산일로의 메르스와 더없이 무력한 국가방역시스템에 불안과 공포를 느낀 국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대비하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당연한 반응이다. 정부는 공개가 필요한 정보마저 일절 차단한 채 “안심하라”고 외치고 있다. 어찌 보면 메르스 공포의 진원지는 정부와 보건당국이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글 중에는 ‘괴담’도 적지 않지만 최초 환자의 이동경로와 메르스 예방법 등 유익한 정보도 많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메르스 괴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경찰은 메르스 관련 글들을 모니터링해서 허위사실이나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수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새누리당 대변인은 어제 “독버섯처럼 자라는 인터넷 괴담도 뿌리부터 찾아내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정부·여당의 실책과 책임론을 모면해 보려는 행태로 비칠 수밖에 없다. 위기 대처 역량 부족이 드러날 때마다 툭하면 괴담 운운하며 국민을 겁박하는 나쁜 버릇이 또 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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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 군(메르스) 환자가 어제도 2명이 추가로 발생했다. 지난 20일 국내 첫 발생 이후 8일 만에 환자가 벌써 7명으로 늘어났다. 중동지역에 국한해서 발생하고 전파력이 낮아 지나치게 공포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던 보건당국의 설명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그런 가운데 메르스 환자와 밀접 접촉한 뒤 고열 등 의심 증상이 발생한 남성이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까지 어제 확인됐다.

추가로 확인된 환자는 최초 감염 환자가 두 번째로 입원한 병원의 같은 병동에 입원한 환자와 최초 감염자를 치료하던 간호사다. 특히 여섯 번째 환자는 최초 감염자와 병실은 물론 화장실을 같이 쓴 것도 아니어서 보건당국의 관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메르스에 감염됐다는 것은 보건당국의 밀접 접촉자 판정 기준이나 방식에 문제가 있거나 관리에 허술한 점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뒤늦게 당국은 두 환자의 동선을 자세히 파악하고 당시 그들과 같은 병동에 입원한 다른 환자들을 일일이 추적해 밀접 접촉 혹은 증상 발현 여부 등을 조사한다고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의심자가 2명 더 발생한 26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쓰고 입국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감염 의심자가 외국으로 출국한 것은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이다. 세 번째 환자의 아들이자 네 번째 환자의 동생이기도 한 이 40대 남성은 아버지의 병문안을 위해 첫 번째 환자가 입원한 병실에 4시간가량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 발열 등의 증상을 보여 두 차례 응급실에서 진료까지 받았다. 그는 의료진의 중국 출장 취소 권유에도 불구하고 출국을 강행했다. 보건당국이 두 명이나 감염이 확인된 가족의 밀접 접촉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당국은 이 감염 의심자의 부인과 그가 방문한 의료기관의 의료진, 직장 동료, 중국행 항공기에서 주변에 앉았던 승객과 승무원 등 200여명을 찾아 밀접 접촉자를 가려내고 있다고 한다.

보건당국은 최초 환자가 증상이 발현돼 확진 판정을 받기까지 9일간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그 결과 6명의 환자가 추가로 발생하고 60여명이 격리되는 사태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이한 대응으로 감염자와 감염 의심자 관리 등 사후약방문에서조차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한 군데 구멍이 날 때마다 수십, 수백명이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보건당국은 확진 환자와 밀접 접촉한 사람을 전수 재조사하기로 했다고 한다. 사후약방문이라도 제발 제대로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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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 군(메르스) 환자가 지난 20일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지 일주일 만에 5명으로 늘어났다. 최초 감염자와 그의 부인, 병실을 같이 쓴 환자 등 3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뒤인 지난 21일 보건당국에 의해 자가 격리됐던 밀접 접촉자 64명 가운데 2명의 추가 감염이 확인된 것이다. 최초 감염자와 같은 병실을 쓴 환자를 간호한 딸과 최초 감염자를 치료한 의사로서 모두 2차 감염이라고 한다. 치사율은 높지만 전염성이 약하다는 보건당국의 설명과는 정반대로 전파력이나 확산 속도가 예사롭지 않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동 국가를 제외하고 메르스 환자가 5명 이상 발생한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유독 국내에서 메르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데는 보건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네번째 감염이 확인된 40대 여성은 아버지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자 자신도 증세가 의심된다며 보건당국에 검사와 격리 치료를 요청했다고 한다. 당국은 38도 이상의 발열과 급성호흡기 증상을 보여야 한다는 기준을 내세워 이를 거절하다가 지난 25일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오른 뒤에야 국가지정 격리병상으로 옮겨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안이한 대응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당국은 체온 38도에서 37.5도로 유전자 검사 시행 기준을 낮추고 밀접 접촉자가 원할 경우 격리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뒷북 대응에 나섰다.

최초 감염자의 중동 여행 사실을 일찍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3년 6월 메르스중앙방역대책반을 꾸려 메르스의 국내 발병에 대비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최초 감염자가 바레인에서 카타르를 거쳐 귀국한 뒤 발열과 기침 등의 증세를 보이며 병원 3곳을 전전하도록 이를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환자가 중동에 다녀왔다고 일찍 밝혔더라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기본적인 검역·감시체계부터 구멍이 뚫린 셈이다. 그 결과 가족과 다른 환자, 의료진 등 60여명이 메르스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태를 빚었다.

28일 메르스 의심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한 병원 응급실 앞에 메르스 의심 증상을 의료진에게 알려줄 것을 요청하는 글이 붙어 있다. (출처 : 경향DB)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 출석해 메르스 발생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방역 대책에 있어 기존의 지침에 얽매이지 않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과잉 조치로 지나치게 공포감을 조장해서도 안되겠지만 안이한 대응으로 사태를 키우고 국민 불신을 가중시키는 것은 더더욱 안될 일이다. 보건당국은 아직 3차 감염이 없고 지역사회로 감염이 확산될 가능성이 낮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중, 삼중의 치밀한 관리와 대응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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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 후군(메르스)’ 환자가 지난 20일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더니 이틀 새 감염자가 3명으로 늘어났다. 중동 지역에 다녀온 첫 감염자에 의해 간병하던 부인과 같은 병실을 쓰던 70대 남성이 2차 감염된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발생 지역이 주로 중동에 국한됐고 전파력도 그리 높지 않았던 메르스가 국내에서 급속히 확산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가족을 넘어 병실을 같이 쓴 환자에게까지 2차 감염이 발생했다니 충격적이다.

메르스는 2003년 세계에서 8000여명이 감염돼 약 800명이 사망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과 같은 코로나 계열의 바이러스가 원인균이고 증상도 비슷하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이제까지 1142명이 감염됐는데 이 가운데 98.7%가 중동에서 발병해 ‘중동판 사스’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사스에 비해 확산 속도가 느리고 최근 들어 주춤하는 추세를 보이기까지 한다. 지나치게 공포감을 조장해서도 안되겠지만 치사율이 40.7%에 이르고 예방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 의심자가 2명 더 발생한 26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에서 관광객이 마스크를 쓰고 입국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날 자택 격리 중이던 2명의 감염 의심자를 국가지정격리병상으로 옮긴 뒤 감염 여부 확인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_ 연합뉴스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아직 정확한 감염 경로조차 밝혀지지 않은 점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등 보건당국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2m 주변에 1시간 이상 머문 사람을 ‘밀집접촉자’로 분류해 격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첫 환자 발생 직후 보건당국은 메르스에 대한 위기경보체계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하고 감염자가 3명으로 늘어나자 가족과 의료진 등 밀집접촉자 64명 전원을 격리 조치했다. 아직은 지역 발생이 아닌 병원 내 감염 수준이기 때문에 ‘주의’ 단계를 그대로 유지하되 사실상 ‘경계’에 준하는 대응을 취하는 것이다. 확진 환자에 대해서는 증상에 따라 적절한 내과적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다행히 이들 확진 환자는 모두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격리 중인 밀집접촉자 가운데서도 의심 사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메르스가 독감처럼 쉽게 퍼지는 질병이 아니고 지역사회로 번져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을수록 현실화되면 큰 혼란이나 재난으로 나타나는 만큼 더욱 철저한 대비가 요구된다. 일반 국민도 손 씻기 등 평소 개인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고 특히 중동 지역을 여행할 때는 낙타·박쥐·염소 등 동물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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