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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7 누구 아는 사람 없어요?

“혹시 경찰, 의사, 변호사 중에 아는 사람 있어? 그냥 아는 사람 말고 좀 친한 사람.” 친구가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왔다. 생각해보니 경찰 말고는 의사나 변호사는 아예 아는 사람이 없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느냐 했더니 너도 세상 헛살았다며 없으면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보란다. 경찰서, 병원, 법원은 안 가는 게 좋지만 살다보면 갈 일이 생기는 이 3곳에서 ‘아는 사람’의 여부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거다. 꼭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소소한 정보를 얻어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단다. 한동안 이런저런 일로 병원을 다니더니 느낀 바가 많았던 모양이다.

하긴 틀린 말은 아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난리인 지금 같은 때 아는 의사가 있다면 나라도 당장 연락해봤을 거다. 적어도 이 동네 병원 중에 어디를 가지 말아야 할지 정확한 정보를 훨씬 쉽게 알 수 있을 테니까. 어디서 파는지조차 알 수 없는 낙타유와 낙타고기 먹지 말라고 국민을 계몽하는 보건복지부나, 손을 자주 씻고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입과 코 가리라는 뒷북 문자를 요란스럽게 보내는 국민안전처보다 믿음직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니 누구라도 치안, 보건, 법 영역의 일을 맞닥뜨렸을 때 시스템이 아니라 ‘아는 사람’, 즉 연줄을 먼저 찾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초 감염자가 메르스 검사 요청을 했는데도 묵살하다가 “검사를 안 해주면 정부기관에 있는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이야기한 다음에야 검사를 해줬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정부에 대처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하고, 청와대에 열감지기를 설치하고, 환자가 아직 없는 국립의료원을 방문’한 후, 곧 안전한 미국으로 ‘아몰랑 출장’을 떠난다는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 류성룡이 선조에게 전했다는 이야기가 절로 떠오르는 요즘이다. 류성룡이 중국 사신을 만났는데 그 사신이 말하길 “조선 사람들이 왜놈은 얼레빗이요, 천병은 참빗이라 한다고 하더라”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단속하지 않은 장수와 벼슬아치들의 이름을 대라, 엄중히 추궁하겠다” 했다는 것이다. 왜병이 쓸고간 뒤는 그래도 얼레빗으로 머리를 빗은 것처럼 곳곳에 남은 것이 있는데, 명나라 병사는 어찌나 샅샅이 털어가는지 마치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이는 물론 서캐까지 하나도 남지 않는 것처럼 수탈이 고약하다는 말이다. 명나라 병사들의 약탈이 오히려 침략자인 왜병보다 심하다는 이야기인데, 명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도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이었다. 약탈을 사과하기는커녕 백성들의 불만을 문책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명나라와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때 전달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을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놓는 정부는 뭐가 다른가? 조선시대 전쟁을 다룬 책 <나라가 버린 사람들>의 내용이 2015년에 이렇게 와 닿을 줄 누가 알았을까.

정부의 메르스에 대한 종합 대책이 발표된 7일 오후 서울 경복궁 일대가 한산한 모습이다. 이날 경복궁에는 메르스 감염을 우려한 시민들의 방문이 크게 줄고, 외국인 관광객들만 관람하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_ 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문화예술계는 작년에 이어 또 타격이다. 무기한 연기면 그나마 낫다. 아예 취소 통보를 받은 곳도 여럿이다. 엉망이 되는 스케줄은 둘째치고 다들 맥 빠지는 상황이다. 전화만 받았다 하면 행사 취소 이야기라 전화 받기가 무섭다는 넋두리가 줄줄이 올라온다. 그나마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취소는 하지 말고 연기하자고 사정이라도 해본다지만, 말도 꺼내지 못하고 한숨만 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알아서 버틸 수밖에 없다며 애써 위로하는 상황도 작년과 닮았다.

언제부터인가 ‘생존’은 ‘각자도생’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는데 나는 요새 자꾸 시계를, 달력을 들여다보게 된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알아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버틸 수 있을까 싶어 불안하기만 하다. “미국이 위대했던 때에는 가난과 싸웠다. 가난한 사람과 싸우지 않았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 나오는 대사다. 그렇다. 우리는 질병과 싸워야 한다. 질병에 걸린 사람과 싸우는 대신.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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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