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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09 [세상읽기]동네 편의점, 명절 하루는 쉬자
  2. 2017.01.31 명절의 김지영씨들

1인 가구 시대, 혼밥족을 위한 공간. 바로 편의점을 빗댄 말이다. 어느 순간 거리마다 편의점이 없는 곳이 없다. 너무 많다 보니,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편의점은 정말 다양하다. 도시락과 같은 제품부터 택배와 은행 그리고 세탁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흡연자 절반 이상은 담배 구입을 위해 편의점을 찾는다. 그만큼 편의점은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를 잡았다.

편의점은 언제부터 우리 주위에 자리 잡았을까. 1989년 5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내내 물건을 파는 가게가 서울 송파에 생겼다. 당시 언론은 ‘구미식 구멍가게’ ‘심야 만물 슈퍼’란 별칭을 붙여 소개했다. 30년 전 편의점의 시작이었다. ‘편의점 왕국’ ‘편의점 나라’로 불리는 일본은 1974년 도쿄에서 세븐일레븐이 처음 문을 열었다. 사실 1927년 미국 텍사스에서 처음 개점할 때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한다는 뜻으로 ‘세븐일레븐’이라고 상호를 정했지만, 이후 거짓말이 되었다. 24시간 내내 영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편의점 1개당 인구는 한국이 일본과 미국에 비해서도 많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퇴직자 사이에서는 ‘만만한 게 편의점’ 운영이었다. 창업비용이 여타 프랜차이즈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한때 편의점은 ‘퇴직자의 꿈’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편의점 수익률은 점차 하락세다. 전체 시장은 커졌지만, 점포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수익은 점점 줄고 있다. 일부 편의점은 가맹본사에 내는 로열티가 인건비보다 많은 곳도 있다. 그래서인지 “더는 못 버텨”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연중무휴 24시간 의무영업’ 가맹계약에 따라 손님이 없는 심야시간에도 영업을 해야 한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본사 눈치를 봐야 하는 점주들은 어디다 하소연도 못한다. 건강이 악화되어 폐점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가맹본부에 지불해야 할 위약금 때문이다.

자주 가는 동네 편의점 사장에게 물어보니 지난 몇 년간 명절에 단 한번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2013년 개점을 했으니 잘 버틴 편이다. 그런데 2013년은 프랜차이즈 편의점 점주들이 생활고로 잇단 자살을 하던 해다. 국내 최대 편의점 대표가 대국민 사과까지 했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은 무엇인가.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영업시간 구속’을 명시한 것의 조정을 피력한 정도다. 가맹본부가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추어 부당하게 가맹점주의 영업시간을 구속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은 실효성에 의문이 많다.

오히려 가맹본부는 심야시간이나 명절 연휴기간 영업은 고객들이 더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댄다. 본질이 아닌 이유들이다. 그래서 편의점 영업시간 단축 규정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주의를 조금만 밖으로 돌리면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의 편의점과 비슷한 독일 ‘키오스크(Kiosk)’는 매주 일요일 정기 휴점이다. 최근 일본 패밀리마트는 고객이 적은 점포를 대상으로 심야시간 영업 중단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토를 비롯해 6개 지자체는 편의점 영업시간 규제도입 시도도 했다. 프랑스는 독립 자영업자들에게 프랜차이즈 본사와 협상할 권한까지 주고 있다.

유럽 몇몇 나라들은 아직도 일요일 정기휴점을 유지하고 있다. 공항이나 관광지 등 일부 예외지역을 제외하면 영업시간도 규제한다. 영업시간 규제나 의무휴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사회적 배경 이외에도 노동자와 중소 상공인들의 건강 보호 때문이다. 편의점 점주나 가족들은 1주일에 65시간 넘게 일한다. 세계 최장시간 노동은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 종사자들이 더 심각하다. 이제 곧 설 연휴가 시작된다. 소박하지만 명절 하루라도 편의점 점주들이 쉴 수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 심야영업 시간의 조정 정도는 검토해야 한다. 그리 어렵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사업법 시행령에 ‘편의점 명절 휴점’ 조항을 추가하면 된다. 물론 시민과 고객의 불편함은 있다. 그래서 과거 동네 약국처럼 지역 거점별로 순번을 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한 번의 불편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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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사연을 품고 있다고 했던 톨스토이의 글을 흉내 내자면, 명절 한국 가정의 모습 또한 불행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행복의 표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과일 박스와 선물 꾸러미를 들뜨고 그리운 마음과 함께 실은 출발은 산뜻하다. 극심한 정체가 계속되고 ‘가다 서다’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 오면 그것은 그것대로 왠지 우리가 헤쳐가야 할 숭고한 고난의 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부모님께 보란 듯 정체 상황을 보고할 때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가 갑니다’라는 생각도 들고, 1년간 다하지 못했던 효도를 속죄하고 빚을 탕감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닿은 고향집의 문턱에서 반가움을 짐과 함께 부리고 나면, 이제 목표는 그 집을 탈출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미션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두 100개 빚기, 모둠전 200장 부치기, 나물 다섯 가지 무치기, 산더미 같은 설거지 하기 등등. 미션은 과도한 육체적 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 못 가기, 미소 짓기, 언제나 순종적일 것, 때로는 보고 듣고 때로는 못 보고 못 듣는 신공 발휘하기. 이 놀라운 감정 센서는 명절 내내 작동하지만 대체로 음식을 놓고 둘러앉은 저녁시간 이후 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더라’ 유(類)의 시샘과 걱정, 잔소리 등이 오가고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 특히 그러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면 지친 몸과 마음은 탈출을 명령한다. 그것은 며느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다. 불편함의 끝에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설 아침 차례와 세배가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안녕’ 하고 돌아 나오는 정체길에서는 효도빚을 탕감받고 출옥한 죄인의 푸념이 있게 마련이다. 과도한 육체적, 감정적 노동에 시달렸던 아내의 논평이 정체길만큼이나 무한정 이어지게 마련인데, 대개는 남편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그 분노가 정체길의 짜증과 버무려져 ‘명절망국론’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논쟁에 이어 냉전에 이르렀을 즈음, 차가 여자의 집에 당도한다. 시댁에서 주눅 들고 남편에게 화가 나있던 여자는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소리가 커지는데, 짐들을 던져놓고 널브러지면서 게으르고 말 많은 여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딸은 엄마에게 이것저것 명령하기 시작한다. ‘느끼해 죽겠어, 커피 좀 끓여줘’로 시작해 이틀 내내 묵언수행하던 여자의 말문이 터진다. 시댁에서 무뚝뚝하고 철부지 아들 같았던 남자는 처가식구들 앞에서 붙임성 있고 믿음직하며 배려심 많은 썩 괜찮은 사위로 변신한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여자’, ‘며느리’, ‘엄마’로 길들여지고 결국 ‘맘충’이 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학적 보고서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를 상징하는 ‘김지영’은 그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맘충’으로 전락해 우울증을 앓는데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자들의 말을 복화술처럼 대신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가령 명절에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라고 하는 시어머니에게 그녀는 친정엄마로 빙의되어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명절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축제이자 의례이다. 그러나 명절은 가족의 구성원을 규율하고 훈육하는 살벌한 현장이기도 하다. 날것의 욕망을 드러내고 결핍과 충족을 재단하는 심판대. ‘누구는 어떻다더라’로 상징되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가족은 지극히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속물적인 세계관 위에 세워진다.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집 등 구성원들을 자극하고 다음 1년을 다짐하게 만드는 ‘좋은 것’의 목록이란 ‘자본주의’의 규율과 다를 바가 없고, ‘나, 우리’의 배타성으로 연결된다. 명절에 흔히 도마에 오르는 취준생과 미혼의 문제는, 다시금 가족 구성원들을 납작하고 보수적이며 방어적인 세계관 위에 세운다.

속죄, 속물, 쇼윈도, 비교와 경쟁, 배타, 이기심, 보수, 자본, 교묘한 폭력으로 이루어진 한바탕의 신파가 또 한 차례 지나갔다.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하나의 교본에 또 어떻게 저항하고 쳐내야 하는지의 미션은 남아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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