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의회가 엊그제 무상급식 지원 예산을 의무화하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단체장이 식재료 구입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으로 바꾼 것이다. 산청군의회는 새누리당 소속 8명, 무소속 2명으로 구성돼 있는 여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다. 그런 산청군의 군의원들이 무상급식 주장을 ‘일부 종북세력 등의 외침’으로 표현한 홍준표 경남지사의 논리에 반한 조례를 통과시킨 까닭은 무엇일까.

4월1일 무상급식의 지원 중단 이후 두 달 가까이 흘렀지만 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식어가기는커녕 더욱 확산되고 있음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먹고 있던 아이들의 밥그릇을 빼앗은’ 경남도의 처사에 분노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4월부터 한 달 급식비로 평균 5만5000~11만원씩(학생 1~2인 기준) 학부모들의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그것이 농촌에서 적은 돈인가. 그때까지 실감하지 못했던 유상급식의 악몽이 현실의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급식비 납부 거부 운동의 결과도 반영됐지만 한 달 급식비를 내지 않은 학생수가 3만6000여명(20억원)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도시락 싸기와 서명, 걷기대회, 의견서 제출, 커뮤니티 활동(밴드 등), 펼침막 내걸기, 차량스티커 달기와 급식 티·부채·배지 부착 운동을 자발적으로 펼쳐왔다. 이런 운동이 잠자고 있던 농촌지역의 시민의식을 깨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식을 자각하고, 자신들도 몰랐던 시민의 힘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학교급식법개정과 차별없는 친환경의무·무상급식지키기 범국민연대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 구속 수사 및 경남 무상급식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비단 산청군뿐이 아니다. 양산·김해·통영시의회의 절대다수 의원들이 무상급식 의무화 조례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이에 대해 경남도는 ‘조례 개정이 자치단체장의 재량권을 침해한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들먹이며 ‘위법’이라 주장하고 있단다. 하지만 그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향배를 외면할 수 없음을 시·군의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법 타령’하지 말고 산청군의원들처럼 제대로 민심을 읽으면 된다. 경남도 내 18개 시·군에 지원하는 무상급식 예산(643억원) 가운데 경남도 지원 예산은 257억원뿐이다. 그 돈 때문에 가난한 학생·학부모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차별 없는 평등교육의 가치를 깨서야 되겠는가. 경남도는 ‘급식의 시계’를 4월1일 이전으로 돌려라. 이를 위해 파트너인 도교육청과 머리를 맞대라.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무상급식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보편복지인 무상급식은 좌파 정책’이라며 일방적으로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접한 순간, 무상급식이 선거 쟁점이던 몇 해 전의 신입생 정시 모집 면접시험이 떠올랐다. 무상급식과 관련한 질문에 대부분 지원자는 의무교육을 근거로 찬성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눈칫밥을 먹던 자신이나 친구의 상처를 사례로 들며 찬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조리있는 답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마음의 상처를 말하며 흔들리던 눈동자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함께 먹는 밥, 바로 급식이 아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예민한 문제라는 걸 그때 간파했다. 학교가 친구와 함께 마음껏 공부하고 밥 먹고 뛰어놀며 어울리는 공동체이길 바라는 마음들을 읽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마음은 뒷전이고 어른끼리 이전투구 중이다. 아이들이 ‘무상급식을 주장하면 좌파’라는 말을 들으면 그 기분이 어떨까 궁금해진다.

복지의 관점에서 무상급식을 놓고 갑론을박한 건 최근의 일이다. 본래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의 완전한 실현을 상징하는 지표였다. 제헌헌법 제16조는 ‘모든 국민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적어도 초등교육은 의무적이며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무교육은 곧 무상교육을 뜻한다는 걸 이승만 정부도 잘 알고 있었다.

6·25전쟁이 끝나자마자 유엔 아동기금을 받아 아이들 급식부터 챙겼다. 이후로도 식판에 밥과 반찬을 챙겨주는 온전한 급식이 아니더라도, 정부는 줄곧 원조를 받거나 재정을 투여해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확대하려 노력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8년에 이를 법제화한 학교급식법안을 마련했다. 비록 완전 무상급식의 실시 시기는 확정하지 못했지만, 학교급식 대상자를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 전체’라고 명시한 것에서 박정희 정부 역시 무상급식을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와선 무상급식에 앞서 완전급식을 실시하라는 요구가 높아졌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등 사회 변화에 발맞춰 학부모가 식비를 부담하더라도 모든 학교에 급식시설을 갖추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교육부는 제7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92~1996)을 수립하면서 1997년부터 초등학생에게 완전급식을 실시한다고 약속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들이 제각기 다른 학교급식 공약을 내놓았다. 민자당의 김영삼 후보는 초등학교 완전급식을, 민주당의 김대중 후보는 초등학교 무료급식을 약속했다.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료급식 공약을 내세웠다.

최초의 완전급식을 이룬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지자체였다. 1996년 대전시 유성구 관내 16개 초등학교 전체가 완전급식에 들어갔다. 유성구의회의 의결을 거쳐 유성구청이 급식시설비를 지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를 두고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최대의 치적이라는 찬사가 잇달았다.

완전급식 시대를 맞은 2000년대에는 무상급식이 화두로 떠올랐다. 2000년과 2004년 총선을 거치면서 여당인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각각 무료급식과 무상급식 확대를 제시했을 때 한나라당은 별다른 문제를 삼지 않았다. 무상급식이 정치 쟁점화된 것은 지방선거에서였다. 무상급식은 2010년 교육감 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고 결국 승패를 갈랐다. 무상 원칙이 의무교육의 핵심 원리라는 주장이 통한 것이다. 이후 무상급식은 지자체별로 형편에 맞게 실현되면서 마침내 전국화되었다.

이처럼 완전급식에서 무상급식까지 학교급식의 시대를 활짝 연 것은 정부가 아니라 지자체였다. 지방자치라는 지역 차원의 민주주의가 학교급식을 무상급식의 단계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왼쪽)와 홍준표 경남지사가 18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경남의 학교 무상급식 지원 중단에 따른 격론을 벌인 뒤 도청을 나서며 다시 신경전을 벌이며 대화하고 있다. _ 연합뉴스


2015년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이 지방자치의 힘이 낳은 소중한 성과를 한순간에 없던 일로 돌리려 하고 있다. 홍준표발 무상급식 논란에 박근혜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교육부도 웬일인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다. 무상급식은 교육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 혹여 박근혜 정부가 무상급식을 보편과 선별로 갈라 다투는 복지 담론 안으로 끌어들여 이를 종북좌파 프레임으로 엮으려는 일각의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면, 다시 현행 헌법 제31조 3항을 살펴보길 권한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유신헌법 제27조 3항도 똑같다. 박정희 정부도 의무교육은 무상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고자 무상급식 실현에 노력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김정인 | 춘천교대 교수·한국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몇 해 전, 당시 중학생이던 내 아들은 주말마다 독거노인을 방문해 음식을 대접하고 말동무 노릇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뭔가 의미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 왔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우리랑 얘기하는 걸 무척 좋아해. 평소 너무 외로워서 그렇겠지? 그런데 소년소녀 가장이나 고아들도 많잖아. 고아들이랑 노인들이랑 함께 살게 하면 서로 의지도 되고 외롭지 않아서 좋을 텐데.” 그런 시도가 있다는 보도를 어느 방송에선가 본 기억이 있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하고 있을 걸”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얼마 뒤, 수십년간 사회사업에 헌신한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름 화제감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 꺼낸 것이 아들과 대화한 내용이었다. “고아원과 양로원을 통합 운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성과가 어떤가요?” 그분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거 애초에 안되는 일이었어요. 노인들은 아이들 때리고 간식 뺏어 먹고, 아이들은 그런 노인들에게 쌍욕 하고…. 자애로운 노인과 천사 같은 아이들은 상상 속에만 있는 거예요.”

기대에 정면으로 배치된 대답에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노인들이 아이들 간식을 뺏어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줘도 그런 일이 생겼겠느냐고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이 ‘자애로운 노인과 천사 같은 아이들’로 가득 찬 세상을 바라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본성이 정말 그런 것일까?

사람의 성정이 전적으로 유전자에 좌우되는지,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에 반응하고 적응하면서 형성·변화하는 것인지 쉽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설령 그악스러운 심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많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스페인의 역사철학자 호세 오르테가이가세트는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다. 그에게는 오직 역사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이 말대로, 그 노인들을 그렇게 만든 건 그들이 겪은 역사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 코가 석자인데 남 사정 봐줄 여유가 어디 있나”는 한국 현대사가 사람들에게 가르쳐 온 보편적 신념의 하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육재정확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보육재정파탄대응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17일 국회 앞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및 무상보육, 무상급식 후퇴에 반대해 농성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홍준표 경남지사가 초·중·고생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뒤, 무상급식을 ‘과잉복지’나 ‘부당한 복지’의 대표 사례로 지목해 공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정부가 4대강 사업이니 자원외교니 하는 터무니없는 일들에 수십조원씩을 쏟아부을 때에는 잘한다고 박수치던 사람들이, 고작 학생들 점심 한 끼 값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고 호들갑 떠는 모습은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지만, 그래도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부잣집 아이들 ‘공짜 밥’ 주는 데 돈 들이는 건 예산 낭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상급식의 원 취지는 부잣집 아이들에게 ‘공짜 밥’ 주자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눈칫밥’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부모 둔 죄로 눈칫밥 먹으며 자라야 하는 아이들, 그런 현실을 함께 겪으며 밥과 자존심을 교환하는 게 세상의 원칙이라는 믿음을 내면화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주역이 되는 미래는 어떨 것인가?

어린이가 나라의 미래라면 노인은 나라의 역사다. 밥 한 끼를 위해서 자존심은 물론 양심까지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로 취급했던 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이런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미래의 인간형도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4대강 강바닥에 돈을 쏟아부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보다는, 이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의 심성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가난한 집 자식들은 ‘눈칫밥’ 얻어먹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고집한다면, 미래에 화를 입는 것은 지금의 어른들일 것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세상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에게 꼭 이기세요”  (0) 2014.11.24
역사를 다루는 방식  (0) 2014.11.18
밥 한 끼와 자존심  (0) 2014.11.17
반기문 짝사랑  (0) 2014.11.10
가느다란 신음 소리  (0) 2014.11.03
노조 상대 소송의 ‘진짜 이유’  (0) 2014.10.2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예산 문제를 놓고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지난 3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내년부터 도내 학교의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논란이 표면화돼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그제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내년도 유치원을 포함한 누리과정 예산의 절반 이상을 편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홍 지사의 무상급식 지원 거부 선언에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맞장구치는 등 새누리당 소속 단체장이 동조하고 진보 성향의 각 시·도 교육감들도 누리과정 예산 편성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해 책임 공방과 무상복지 논쟁을 증폭시키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무상급식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처음 내세운 공약이었다. 무상보육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대선공약이었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퇴와 보궐선거 등을 거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고 박 대통령과 홍 지사도 선거공약에 포함시킨 바 있다. 무상보육 또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도 공약했다. 여야 공통공약이나 마찬가지인 두 사안을 놓고 어느 쪽이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서로 상대방의 것을 외면하고 공격하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무상급식을 다시 포퓰리즘으로 몰면서 재검토할 태세이며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상보육은 국가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3일 오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내년부터 도에서 지원하는 학교 무상급식 예산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_ 연합뉴스


문제의 근본 원인은 물론 돈이다. 세수가 부족한 데다 예산 마련 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않은 탓이다. 올해 무상급식 예산은 2조6000억원으로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이 분담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4조원에 이르는 무상보육 재정 부담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긴 데서 비롯됐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교육재정에 막대한 짐을 지운 것은 누가 봐도 무책임한 일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무상급식 예산 5000억원을 무상보육 예산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니 ‘무상급식 죽이기’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복지국가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가 대표적 복지정책이라고 할 무상급식·무상보육을 파탄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가의 어려움이 복지 과잉에 있고 무상급식이 마치 그 원흉인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된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하위이고 조세부담률도 평균치에 크게 못 미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내년 예산을 20조원 증액하면서 유독 무상급식에만 인색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경로의존성이란 개념이 있다. 요컨대, 익숙한 것에 대한 집착이다. 일단 어떤 경로가 정해져서 익숙해지고 나면 나중에 틀리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돼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성을 말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데,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이 사회과학에 응용된 것이라 하겠다.


과거 반독재 투쟁 시절, 기본 균열은 민주 대 반민주였다. 즉 민주에 대한 찬반의 대립구도였다. 사물이나 현상을 찬반으로 보는 것은 옳고 그름의 시비로 구분하는 것이다. 일종의 당위적, 윤리적 관점이다. 민주화가 이뤄진 후 민주를 둘러싼 대립은 사라졌지만 찬반의 사고방식은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민주당에 강고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


찬반 사고는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하나는, 어떤 문제든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적 차이로 이해하고자 하는 습성이다. 지난 대선을 예로 들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나 민주당 문재인 후보나 모두 복지, 경제민주화를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박 후보의 그것은 가짜이고, 자신들의 방안이 진짜라는 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진짜와 가짜, 즉 진위는 찬반이나 시비의 다른 표현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부터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새누리당은 무상급식에 반대했고, 민주당은 찬성했다. 무상급식을 두고 분명한 찬반구도가 형성되자 유권자들이 쉽게 양당의 차이를 이해했다. 이 찬반구도는 서울시장의 사퇴와 연이은 보궐선거에서의 패배를 경험한 새누리당과 박 후보가 무상급식을 받아들이면서 사라졌다. 누가 더 잘할 것이냐 하는 우열구도로 대체됐다.


우열구도에서는 포지션보다 콘텐츠를 둘러싼 실력 경쟁이 중요하다. 인물, 신뢰, 리더십이 관건이다. 대표성이나 상징성을 갖춘 인물, 후보 등 지도자의 신뢰성과 리더십에 따라 누가 더 나은지 판가름된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이슈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박 후보는 김종인이란 인물과 박 후보 본인의 리더십으로 승부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진짜 대 가짜라는 주관적 평가만 강요할 뿐 쉽고 간명한 그림이 없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유권자들은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더 잘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민주당의 진위 프레임이 먹히지 않은 셈이다. 민주당은 무상급식처럼 익숙한 찬반구도에서는 잘하나, 우열구도에서는 딱 숙맥이다.


(경향DB)


다른 하나의 문제는, 찬성과 반대가 분명한 정치·도덕적 이슈에만 매달리는 경향이다.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이슈, 대선에서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 이슈에 몰입한 것이 좋은 예다. 누가 보통사람의 고단한 삶을 풀어줄 더 나은 해법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민주당은 매우 둔하다. 사실 그들의 의지는 충만하고 열정은 넘쳐 보인다. 그런데 자신들의 해법이 왜 나은지를 보여주는 데에는 영 미숙하다. 2012년 민주당이 총·대선에서 패배한 것도 결국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찬반구도를 허용하지 않고 우열구도를 조성하자 우왕좌왕하다 결국 경로의존성에 따라 찬반이슈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도덕적 이슈도 중요하다. 부정부패나 권력의 오·남용, 불통 따위의 문제들은 야당이라면 의당 집요하게 파고들고,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은 먹고살기 힘든 때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민생 문제를 의제화하고,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당은 찬반구도에 대한 경로의존성을 끊고 우열구도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제 주장보다 실력이 관건이다.


정치·도덕적 이슈는 인화성이 강하나 지속성이 떨어진다. 반면 사회경제적 이슈는 쉽게 쟁점화하기 어렵지만 일단 형성되고 나면 효과가 크고 길다. 뉴딜 시기의 미국 민주당이나 유럽 사민당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경제적 쟁점을 둘러싼 전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갈 길은 이 길이다. 특히 일시적 승리가 아니라 안정적 집권을 원한다면 다른 길은 없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