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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2 ‘문민통제’ 없이 국군의 미래 없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을 국군의 통수권자로 규정한다. 대통령은 군인 아닌 민간인이며,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러나 식민지, 분단과 전쟁, 장기간의 군사독재 탓에 우리는 ‘별짜리’와 그 출신이 군에 관한 주요 결정을 사실상 독점하는 심각한 폐해에 대해 여전히 둔감하다.

전쟁에 대비하는 특수조직이니만큼 문민통제가 직업군인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3년 출범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육군의 사조직 ‘하나회’ 청산을 단숨에 해치우면서 군 혁신의 장기적인 전망과 계획 수립이라는 후속조치에는 소홀했다.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응당한 조치였지만, 새 시대에 부응할 문민통제의 모범 사례는 아니었던 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튼튼한 상비군은 평화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렇게 믿음직한 군대를 위한 문민통제의 절실함은 최근 잇달아 터진 사고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벌어진 사고 자체도 중대하지만, 하나같이 그 실상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 들었다는 점이 정말 심각하다. 이렇게 불투명한 군대는 무능하고 부패한 지휘관들의 밥줄일 뿐이지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방패가 될 리 없다.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의 ‘역주행’을 7년째 겪으며 우리 사회가 어두운 과거를 확실하게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는 명백해졌다. 그래서 사반세기가 넘은 고 리영희 선생의 옛 칼럼은 여전히 새롭다. “6·25전쟁의 첫 달부터 최전방에서 3년 반, 후방에서 3년 반, 합계 꼬박 7년을 보병장교로 지낸 나는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와 부정이라면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도 않는다. 그렇게 무딘 감각인데도 이른바 ‘제5공화국’ 8년 동안에 대한민국 군대에서 군기사고와 안전사고로 자그마치 6393명이 죽었다니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내가 아는 옛 보병 편성으로 3개 연대가 훨씬 넘는 병력이다. 1개 사단의 손실이다. 끔찍한 일이다.”(한겨레신문 1988년 10월9일자)

이 중 자살자 2254명은 당시 민간 동년배 자살률의 20배를 넘는 수치다. 반면, 최근 10년간 군내 자살률은 (약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민간의 동년배 자살률보다도 낮고 절대숫자도 크게 줄었다. 이 대조적인 수치는, 과거보다 우리 군이 나아진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얼마나 야만적인 시대를 거쳐 우리가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더 실감나게 한다. 축소와 은폐를 일삼던 그 시절에 자살자 중 피살자는 몇 명이나 될는지.

윤모 일병 사건 당시 윤 일병의 사인이 구타인 근거를 제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출처 : 경향DB)


5공 치하의 군대에서 20대를 보낸 이는 지금 대략 4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이다. 아직 현역이라면 장군이든 부사관이든 30년 안팎을 복무한 핵심 간부들이다. 이들은 과연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얼마나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 역대 정부는 이들이 역사적 변화에 적응할 여건들을 제대로 마련해주었을까. 문민통제하의 깊이있는 조사 연구와 정책보고만이 대답할 수 있다.

문민통제는 직업군인의 명예와 자긍심을 살리는 길이다. 강한 군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의 인사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 그것은 정책의 일관성을 지닌 원칙있는 문민통제가 직업군인의 소명의식, 경험 및 전문적 식견과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 그러나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이 보여주듯이 (군 출신이 요직을 차지한) 현 정권과 군 지휘부에 문민통제는 남의 얘기다. 이런 현실을 빨리 교정하지 못할 경우 우리 군대는 전쟁이 터지면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문민통제만이 군의 관성과 기득권을 타파하고 시대에 맞게 군을 발전시킬 수 있다. 참된 국방개혁의 출발점은 특히 육군의 저항이 심한 병력 감축이다.

5공 시절 50%선이던 징병 대상자 현역 판정비율이 현재 90%를 넘겼듯이, 군복무가 어려운 젊은이까지 마구 징집함으로써 ‘관심병사’를 양산하는 낡은 체제의 시효는 끝났다. 당연히 간부 규모도 줄이면서 질을 높여야 군을 정예화할 수 있다. 그래야 연줄 있는 고급장교는 전역 후에 군수산업 등 좋은 자리에 취직하지만 부사관 출신 등 다수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소외를 겪는 모순을 피할 수 있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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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