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어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보고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국방부가 고의로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국방부가 사드에 대해 제대로 보고했다고 주장하자 청와대가 작심한 듯 다시 공식 브리핑을 통해 사드 추가 배치를 파악하게 된 과정을 공개했다. 국방부 보고서 초안에 들어있던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 문구 등이 최종적으로 삭제되면서 두루뭉술한 내용만 보고됐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민구 국방장관에게 ‘사드 4기가 추가 배치됐다는데요’라고 묻자 한 장관이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국방부가 사드 보고에 비협조적이라고 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한 장관에게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나오고 있다. 한 장관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보고 누락 의혹에 대해 “지시한 일이 없다. 지시할 일도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연합뉴스

한민구 국방장관과 국방부는 보고 누락 논란이 오해라는 투로 해명하고 있다. 군통수권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군의 특성상 고의 누락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런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방부는 이미 사드 도입에서부터 배치까지 불투명한 태도로 국민적 불신을 자초했다. 발사대 4기 등을 추가 반입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공식 확인한 적은 없었다. 정상적이라면 국방부는 사드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써서 보고했어야 한다. 언론 보도로 추가 배치 사실이 일부 알려졌다는 것으로 잘못을 면할 수 없다. 보고서 초안에 들어 있는 ‘사드 추가 반입’에 대한 내용을 삭제한 이유가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가 중시하는 사드 배치 문제를 처음 보고하면서 민감한 내용이라고 할 수 없는, 사드가 몇 기 배치됐느냐는 단순한 부분까지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점은 충격적이다.

더구나 사드 추가 배치 보고를 누락한 것이 미국의 보안 유지 요청을 감안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명백한 국기문란이자 문민통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조사 결과에 따라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야당들은 이번 사건은 청와대가 사드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청와대가 사건을 침소봉대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진실 공방 논란으로 이어질 조짐도 있다. 청와대는 이를 감안해 조속하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

사드 보고 누락 논란은 또한 강도 높은 국방개혁의 필요성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국방부 자체 역량과 논리로는 군의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만큼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시민의 시각에서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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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발사대의 국내 추가 반입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는 문재인 정부 출범 전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의 발사대를 국내에 추가로 반입한 사실을 지난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 때 누락했다. 군이 중대한 안보 사안을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모르게 다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철저 조사를 지시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청와대는 25일 업무보고에서 사드 발사대 2기와 엑스밴드 레이더의 반입만 보고받았다고 발표했다. 이에 국방부는 다음날인 26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4기의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했다고 전했지만,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규명해야겠지만 국방부가 업무보고에서 추가 반입 사실을 누락한 것은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림마당] 2017년 5월 31일 (출처: 경향신문DB)

그간 사드 배치와 관련한 국방부의 행태는 국민주권에 대한 폭거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부터 시민사회와 야권의 사드 배치 재검토 요구를 묵살한 채 밀어붙이더니 탄핵 이후에도 군사작전을 하듯이 야밤에 사드 장비 국내 반입, 경북 성주 배치 등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대통령 부재 중에 중대 안보 사안인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알박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정부 시기가 아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문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사드에 대해 전 정부와 달리 국회 비준 등 재검토 방안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그런데도 국방부가 보고를 누락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지 혼란스럽다. 사드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되고 중국의 보복조치가 이어지는 엄중한 현실을 고려하면 보고 누락을 단순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 설령 단순 실수라 해도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북핵 위협 등 안보위기 상황에서 군의 기강 해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실수를 가장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군 통수권자에게 항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드는 국제 문제이자 민감한 국내 쟁점이기도 하다. 외교, 안보, 경제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남북, 한·중, 한·미 관계를 두루 고려해 신중히 결정할 문제다. 당연히 북핵 문제의 해결방안과도 연계해야 한다. 결코 소수의 군인들이 좌우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민구 국방장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의 책임이 무겁다. 철저한 진상조사로 사드 기습 배치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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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준비 부족으로 논란이 벌어졌다며 “야당 의원들과 국민께 양해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대국민사과한 지 사흘 만에 문 대통령이 다시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해 해명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약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5대 비리 공직 배제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6월 임시국회를 하루 앞둔 28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던 국회 본관 제3회의장에 이 후보자 명패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김창길 기자

문 대통령의 어제 해명은 한마디로 약속한 인사원칙을 적용할 세부 기준을 마련할 틈 없이 인선을 진행하다 보니 실수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다만 인사원칙을 훼손한 것이 아닌 데다 앞으로 지키겠다고 한 만큼 직접 사과할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4당 원내대표와 만나 인사청문 대상자에 대한 새 기준도 제시했다. 장관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5년 7월 이후 위장전입자는 국무위원 후보자에서 배제하고, 투기성 위장전입에 대해 시기를 불문하고 사전 검토를 강화하기로 했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것이 빈말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또 인사에 대한 새 기준을 여야가 만들어주면 그에 따라 인선하겠다고도 했다. 야당 요구를 전부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의 직접 해명과 재발방지 대책 등으로 어느 정도 충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인준 동의안 처리를 거부했다. 문 대통령이 시민 앞에 직접 나서서 해명하지 않은 데다 위장전입에 대한 판단 기준도 수용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대통령이 총리 인선에서부터 인사원칙을 어긴 데 대해 야당이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당선과 함께 취임한 악조건을 무시하고 내각 구성을 지연시키면서까지 대통령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당이 진정 시민을 위해 정부 견제에 나선 것이라면 그에 합당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위장전입 이외에 다른 하자가 발견되지 않은 총리 인준을 먼저 처리한 뒤 나머지 인사를 청문회에서 엄정하게 검증하는 게 옳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어제 총리 인준에 협조하기로 결의해 인준안 처리는 기정사실화됐다. 이 총리 후보자 인준에 대해 찬성 의견이 72.4%로 반대 15.4%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 여론조사도 있다. 한국당은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정부 출범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를 감안해야 한다. 청문회가 줄줄이 예고돼 있는데 문 대통령의 직접 사과에 매달리는 것은 소모적인 정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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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이 위장전입 문제를 둘러싼 야당의 반대로 지연되고 있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표명하지 않으면 인준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어제 공직자에 대한 새로운 검증 기준을 여야가 함께 마련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서도 야당은 당장 새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문재인 정부의 첫 총리 인준과 조각이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새정부 28일 국회 본관 1층의 불 꺼진 복도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특위 회의실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 후보자의 인준을 둘러싸고 여야가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국회 인준 시한인 31일까지 인준안 처리가 불투명하다. 김창길 기자

이 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위장전입에 대한 야당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이유가 있다. 문 대통령이 스스로 첫 인선에서부터 원칙을 어긴 점은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것은 총리 인준 및 조각과 연계할 수 없는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이번 위장전입을 과거 사례와 똑같이 간주해 이 총리 후보자 인준을 지연하려는 야당의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전에 없이 조기에 공직 후보자의 인선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까지 제시했으면 야당은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우 원내대표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민주당이 청문회에서 과도하게 공격했다고 자성까지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통해 사과했음에도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고 공세를 펴는 것은 과도하다.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공직자들의 검증 기준을 여야가 함께 마련하자는 제안을 외면하는 태도도 인준 지연의 저의를 의심케 한다. 이 후보자 부인이 학교 배정의 편의를 위해 위장전입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재산상의 이익을 노린 위장전입과는 성격이 다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경우는 해외연수 등에 따른 것이어서 통상적인 위장전입으로 보기 어렵다. 시민의 시각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 총리 후보자의 인준이 지연되면서 후속 장차관 인선까지 늦춘다고 한다. 새 정부가 조각에서부터 삐걱대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될지 답답하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해 총리 인준 문제를 푸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각당 대표에게 연락해 직접 총리 인준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 같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야당이 과거 자신들이 한 일은 까맣게 잊고 청문회 인준에 몽니를 부리는 것은 구태의연하다. 새 정부 발목잡기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면 인사청문의 기준을 세우는 데 즉각 동참해야 한다. 여야 모두 협치를 기대하는 시민들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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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의 정책결정 과정에 대해 감사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4대강의 죽음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한 다수 국민에겐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추진할 당시 70% 이상의 국민이 반대했고 해마다 4대강이 녹조로 몸살을 앓고 있기에,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는 국민 절대다수가 원하는 ‘국민의 명령’이다. 그럼에도 감사원이 절차상 이유를 들며 곧바로 감사에 착수할 수 없다고 하자 24일 한국환경회의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하였다.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9.5%가 4대강 사업은 물론이고 자원외교, 방산비리 등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국책사업에 대해 재조사에 찬성했다. 4대강 사업 재조사는 전 국민적 관심사로, 새로운 정부가 이를 묵과한다면 오히려 국민 뜻에 반하게 된다. 지지정당별로 보면 정의당 94.7%, 더불어민주당 92.5%, 바른정당 71.5%, 국민의당 69.4%, 자유한국당 29.4%가 재조사에 찬성하고 연령별로는 40대 87.1%, 19~29세 86.1%, 30대 83.6%, 50대 78.8%, 60세 이상 66%가 찬성한다. 결국 재조사 없이 그대로 덮어둬야 한다는 의견은 일부 자유한국당 지지자들이나 60세 이상 노령층 일부에 그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5월 25일 (출처: 경향신문DB)

그런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에서는 재조사 조치에 대해 ‘정치감사’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보복 감사’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감사와 재판, 평가까지 끝난 전전 정부의 정책사업을 또다시 들춰내서 정치적 시빗거리로 만들려 한다며, 오히려 후속사업을 완성하고 확보한 물을 잘 관리해서 당면한 가뭄을 극복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변한다. 당시 침묵했거나 비판에 소극적이었던 보수언론지들의 프레임 또한 다르지 않다.

4대강 사업 재조사가 ‘정치보복’인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4대강을 제대로 회복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과 처벌로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재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녹조 범벅인 강에 물고기들의 사체가 떠오르고 시궁창이나 하수구에나 사는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가 강바닥에 우글거리는데도 4대강 사업이 성공한 사업이라고 우기는 그들 말을 과학적 조사 없이 받아들이고 아무런 조치도 처벌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잘못이 없다면, 떳떳하고 정당하다면, 오히려 이참에 시시비비를 확실하게 가리는 쪽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한나라당 출신 정치인들이나 이 사업을 앞장서 옹호했던 소위 전문가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4대강 사업 예산을 날치기 처리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했거나 4대강 사업을 앞장서 옹호했던 자신들의 행동과 신념이 옳았는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잘 알려진 것처럼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는 2011년 1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긍정적 평가를 내린 건 이명박 정권 당시에 이뤄진 1차 감사뿐이었다. ‘셀프감사’를 통한 면죄부 주기였다. 나머지 감사에서는 모두 4대강 사업을 계획부터 재정지원까지 졸속으로 추진된,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업으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담합에 참여한 건설회사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만 있었을 뿐 책임 있는 정책결정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정당성 있는 4대강 재조사를 정치보복 운운하는 것은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알고 생명의 4대강을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시민적 열망에 대한 모독이다. 이제라도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한다. 혈세 22조2000억원 이상을 투입해서 강을 파괴한 허무맹랑한 이 사업이 왜 추진되었는지, 어떻게 제대로 된 국민적 동의 없이 추진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책임 있는 자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나라다울 수 있다.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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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 조각을 매일 갈았지만, 저녁때면 피로 흠뻑 젖었다. 천을 들어 올리면 내 손에도 살점이 달라붙었다. (중략) 작은 실밥 하나조차도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실수로 남편 피부를 긁기라도 할까봐 나는 피가 날 정도로 손톱을 짧게 깎았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 노벨상 수상자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핵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거나, 핵사고와 관련된 많은 책들이 있지만 내게는 그의 책처럼 가슴이 저릿한 작품은 없었다. 

문학포럼 참가차 방한한 누르딘 파라 역시 한국에 잘 알려져있지 않은 소말리아 출신 작가다. 단지 직업적 관심 때문에 그의 소설 <지도>를 찾아 읽었다. 이 소설은 종족 갈등 때문에 살해당하는 여성과 양아들 이야기다.

‘짧게 말해, 인생은 곧 제물이다. 짧게 말해, 인생은 곧 피다. 하나의 대의명분과 하나의 나라를 위해서 누군가 흘리는 피다. 인생은 적의 피를 마셔 이루는 복수다.’

책 말미에 나오는 이 구절은 아프리카 부족 간의 피와 복수의 악순환을 요약한다. 아프리카 종족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서방과 한국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 비록 소말리아 내전의 역사적 배경과 과정에 대한 지식이 일천했지만 소설을 통해 그들의 핍진한 삶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국회를 찾은 문 대통령이 정의당 대표실에서 노회찬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는, 이런 게 문학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타자의 눈을 빌려 세계를 보는 것이다. 가슴 귀퉁이에 타자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게 아니고 모두가 타자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게 문학이다. 독자는 문학을 통해 아프리카로 갈 수도 있고, 시대를 거슬러 전쟁터나 혁명의 현장으로 갈 수도 있다.

역사가가 사건에서 뼈와 골수를 찾는다면, 문학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을 헤집는다. 역사는 머리에 대응하고, 문학은 감성에 반응한다. 역사는 사건의 현장에 독자를 구경꾼으로 부를 수 있지만, 문학은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독자를 사건의 중심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문학의 나무는 고뇌와 슬픔의 현장에서 잘 자란다. 1830년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소설 <레미제라블>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가 홉스봄은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등 이중혁명의 시대만큼 거장이라고 할 만한 소설가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때가 없었다고 했다. 이 시대는 프랑스의 스탕달과 발자크, 위고의 시대였고, 영국의 오스틴과 디킨스와 새커리와 브론테 자매가 활동했다. 러시아의 고골리와 젊은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등이 등장했다.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먹고살 만해져서 문학이 꽃을 피웠던 것이 아니다. 귀족과 사제, 부르주아는 온갖 호사를 누렸는데도, 노동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불화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가들은 그늘 속에서 울부짖는 목소리를 기록했던 것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했다는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 여자와 가족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다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것은 없다. 동시대를 사는 남자도 누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태어난 남성이 겪은 세상과 차별을 몸에 각인하면서 살아온 여성이 산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시대의 가슴에 상처를 입힌 것들은 문학이라는 이름을 입고 불쑥 부활하곤 한다. 김탁환은 세월호 참사의 잠수부 이야기를 다룬 <거짓말이다>를 썼다. 이건 시작이다. 앞으로도 세월호 문학, 강남역 문학, 구의역 문학이 나올 것이다. 물론 하나의 사건이 이야기로 육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 초등학생이었던 한강이 <소년이 온다>로 5·18을 다시 소환한 것은 34년이 지난 2014년이었고, 김숨이 87년 민주화운동 때 숨진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소재로 <L의 운동화>를 낸 것은 29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삶의 경계는 무한하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자신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관계의 배열, 힘의 이동, 서열과 역할, 이익과 손해의 규모로 세상을 보기 십상이다. 그렇게 볼 때 인간은 하나의 ‘쪼가리’로 전락하기 쉽다.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소설 읽기가 도덕 및 정치이론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도덕적 정의와 법적 정의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이를 ‘시적 정의’로 표현했다. 문학을 통해 한 인간의 온전한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고, 고민과 고통을 나눌 수 있다면 이걸 문학적 정의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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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탈원전’ ‘탈석탄’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신규원전 백지화와 노후원전 수명연장 금지를 약속했고, 지난 15일에는 노후 석탄발전소 일시중단과 조기 폐쇄를 지시하기도 했다. 에너지 정책에 ‘대전환’이 일어날 조짐이다. 2015년 기준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70%는 석탄발전소(38.7%)와 원전(31.2%)에서 생산된다. 신재생에너지는 4%, 그나마도 폐기물과 폐목재가 75%를 차지한다. 기존 전력산업 인프라 구성과 산업규모를 감안하면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격렬한 반발도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료부터 원전·석탄발전 산업계, 학계, 언론이 나서서 전기요금 상승, 경제 영향, 재생가능에너지 불가론을 펼치며 기존 정책을 고수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에너지전환 정책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탈원전과 탈석탄을 목표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누가, 어떤 구조와 방식으로,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지난 4월13일 문재인 후보는 삼척, 영덕, 경주, 부산, 울진, 대전지역 주민들과 “대선 이후 6개월 이내에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탈핵국민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탈핵 로드맵을 논의한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 약속을 잘 지키면 좋겠다. 시민들과 함께 탈핵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만들면서 에너지 생산·소비방식, 산업과 경제구조, 에너지가격과 세제개편 정책을 같이 설계해보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에너지효율 개선과 더불어 재생가능에너지와 LNG 발전을 확대할 방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 바라 본 고리 원전 3호기(왼쪽)와 4호기 냉각재 과다 누설로 28일 일시 정지된 고리원전 4호기. 이상훈 기자

더불어 시민들이 에너지전환에 대한 ‘자신감’과 ‘상상력’을 갖출 프로젝트도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원전과 석탄 중독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제일 낮아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인식도, 신뢰도 바닥이다. 필자도 독일에 직접 가서 두 눈으로 보고서야 독일 전체 전력의 33%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청와대를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자립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올리고, 태양열, 지열, 압전소자, 스마트그리드, 전기차,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광화문시대가 열리면 청와대를 에너지효율 건물로 리모델링해 공개해도 되겠다. 효율기술을 적용하면 생산에 필요한 재생가능에너지 설비용량을 줄일 수 있다. 청와대의 변신은 시민들에게 에너지전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상징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청와대를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이 구현된 전시장이 아니라 계획부터 실행까지 시민이 참여하는 에너지전환의 현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재인 1번가’처럼 ‘청와대 100% 에너지 자립’ 사이트를 열어 시민이나 기업이 다양한 기술을 제안하고, 토론해서 결정하는 방법도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촉발될 것이다. 시민들이 직접 투자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도 설계해보자. 청와대에 올리는 태양광에 출자할 수도 있고, 태양광 기와 모듈은 이름을 달아 기부받아도 좋겠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유럽에서 새로 짓는 발전소의 70% 이상이 태양광,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 설비이다. 중국은 에너지발전전략행동계획에 따라 2020년까지 420조원을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한다.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에너지 분야 일자리가 바로 태양광이다. 제품을 생산하는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는 기업이 80개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우리도 바뀔 때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는 일자리와 도시재생 정책도 에너지 전환과 융합되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원전과 석탄의 양 날개로 날았다. 이제는 과감히 에너지효율과 재생가능에너지로 날개를 바꿔보자. 이미 원전과 석탄의 빈자리를 채울 대안이 있다. 지금까지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청와대 100% 재생가능에너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날 밀양, 청도, 경주, 영덕, 삼척, 당진, 부산 고리 등 그동안 에너지정책으로 고통받았던 지역 주민들도 모두 초청하면 좋겠다. 새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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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25일 내년 예산부터 특수활동비를 올해보다 31%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편성된 올해 특수활동비는 53억원(42%)을 절감해 청년 일자리 창출과 소외계층 지원에 사용하겠다고 했다.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특수활동비를 줄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런 조치는 당연히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여민관 3층 소회의실에서 첫 수석·보좌관 회의를 하기에 앞서 커피를 직접 잔에 따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특수활동비란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수집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활동 수행에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엄연히 국민 세금인데도 영수증 없이 쓸 수 있게 했다. 어디에 썼는지 사용처도 공개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눈먼 돈’이요, ‘깜깜이 예산’이다. 그렇게 쓴 돈이 지난 10년간 8조5631억원이었다. 최근엔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이 검찰 간부들에게 70만~100만원씩을 건넨 ‘돈봉투 만찬’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다른 기관들도 부하 격려금 등으로 펑펑 나눠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2008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매달 특수활동비 4000만~5000만원 중 일부를 생활비로 쓴 사실이 드러나 지탄을 받았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특정업무경비를 단기투자상품에 넣어두고 재산 증식에 이용한 파렴치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헌재 소장에서 낙마했다. 이런 일들이 터질 때마다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단맛에 익숙해진 해당 기관들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되레 매년 증액해 지난해에는 19개 기관 특수활동비가 8870억원이었다. 국가정보원이 절반가량(4860억원)을 쓰고, 국방부(1783억원), 경찰청(1298억원)이 다음이었다. 국정원은 댓글 작업에 동원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도, 아스팔트로 몰려나오는 극우 단체들에도 특수활동비에서 돈을 빼내 줬다. 이런 데 쓰려니 특수활동비가 필요했지 싶다. 이제 공직자가 세금을 쌈짓돈처럼 쓰는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 업무 특성상 꼭 필요한 데가 아니면 폐지하거나 최소화하고, 사용 뒤엔 반드시 증빙자료를 남기도록 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식회의를 위한 식사 외에 가족의 식비, 의복비 등은 모두 사비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관저에서 사용하는 치약·칫솔도 개인돈으로 사겠다고 했다. 진작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당연한 처사다. 대통령을 필두로 공직사회는 더 투명해지고 더 깨끗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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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강화를 지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사문화된 인권위의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하고,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기관과 기관장 평가 항목의 하나로 인권위 권고 수용지수 도입 등 구체적인 실현 방안도 제시했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잃고 인권 지킴이로서의 본령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인권위가 인권 견인차로서 거듭나기 바란다.

국가인권위는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의 침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국가기관이다. 권력에 대한 인권적 감시와 견제가 주요 활동이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독립성이 필수적이다. 김대중 정부 때 출범한 인권위는 왕성한 활동으로 성과가 높았다.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폐지, 고용허가제 도입,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 폐지 등을 권고하고 의견표명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인권위 위상은 급격히 추락했다. 조직은 축소되고 예산은 삭감됐다. ‘인권 문외한’인 현병철 위원장과, 뉴라이트 및 비리검사 출신 등 일부 상임위원에 대한 자질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용산참사 사건 재판 등 사회적 현안에 침묵하고, 공권력의 잘못을 옹호하는 반인권적 조치가 잇따랐다. 그 결과 세계 인권기구 연합체인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로부터 잇따라 3차례나 등급보류 결정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인권 선진국이 단 몇년 사이에 인권 후진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 제고를 천명한 25일 서울 중구 나라키움 저동빌딩의 국가인권위원회 모습. 이준헌 기자

인권위의 위상 추락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권 무시는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시민 삶의 질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관심과 지시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이번 조치는 자생력을 상실한 인권위를 소생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처방에 그쳐야 한다. 특히 대통령이 인권위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지만 자칫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핵심으로 하는 인권위의 존재 의의를 저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인권위가 부끄러운 과거를 딛고 인권의 보루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권 친화적 인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더 이상 현병철 위원장은 없지만, 아직도 인권 문외한이나 동성애 혐오론자 등 부적절한 인사들이 남아 있다면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기 어렵다. 정권의 시녀 역할에 익숙해진 조직 문화도 뜯어고쳐야 한다. 인권위는 최후의 인권 지킴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자기 역할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인권위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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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미국과 중국, 일본을 다녀온 특사단과 간담회를 열고 활동 결과를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특사단 활동에 대해 “(정국이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 생긴) 오랜 외교공백을 일거에 다 메우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도 그렇고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할 말을 좀 제대로 했다고 생각이 든다”고 자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미.중.일 특사단 간담회에 참석해 중국 특사로 다녀온 이해찬 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일본 특사 문희상의원,미국 특사 홍석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문 대통령 ,중국 특사 이해찬 전 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특사 활동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미 행정부에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설명, 새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상당히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홍석현 특사에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로 (북한과)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평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북한의 태도 변화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지만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사를 확인함으로써 변화의 모멘텀은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에서도 벗어났다. 중국 정부로부터 사드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일본에 확인시켜주고 국내 여론도 다독였다. 미·중·일 3국에 새 정부의 뜻을 전달하면서 협력 체제의 초석은 놓은 셈이다.

하지만 특사의 활동은 급한 불을 끈 정도이다. 미국이 핵 포기를 위한 북한의 행동 변화 없이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은 확고하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측도 특사단에 사드 배치의 실질적 (철회) 조치 없이 한·중관계의 복원은 어렵다고 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서 사면초가에 놓인 기본 조건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고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당장 중국의 사드 보복을 풀기 위해서는 사드 배치를 동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음달 있을 한·미 정상회담 등 양자 외교를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대북 국제 제재의 기조를 허물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외교안보팀의 과제 풀기는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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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취임 3일째를 맞이한 문재인 대통령은 ‘상식과 정의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중등의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면서 2018년부터 적용할 예정인 국·검정 혼용체제를 검정체제로 즉각 전환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에 따라 교육부도 검정체제로 전환한다는 재수정 고시를 16일자로 행정예고하였다. 몇 년 동안 한국사회를 편 가르고 적대감을 증폭시킨 국정화 갈등이 마침내 종결된 것이다.

그런데 16일자 교육부의 ‘즉시 보도자료’에는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검정체제로의 전환만을 말하고, 2015교육과정에 따라 오는 8월3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의 심사본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이다. 12일자 청와대 업무지시에는 ‘검정 교과서의 집필기간 확보를 위해 현행 2015교육과정 적용시기 변경을 위한 수정고시 등’을 이행하라고 나와 있는 데도 말이다.

교육부는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컨트롤타워가 부재해서, 또는 청와대와 소통이 어려워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심지어 출판사로부터의 소송을 걱정한단다. 언론에서는 교육부가 진퇴양난에 처했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교육부도 언론도 국정제를 폐지함에도 불구하고 2015교육과정을 지속해야 하는 명분이나, 폐기해야 하는 이유를 교육과정과 연관해 설명하고 있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하는 전자결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래서 기억을 되짚어보자. 2015교육과정은 역사학계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제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회적 반발과 ‘효도 교과서’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2월 이 교육과정의 적용 시기를 1년 연장하여 2018년부터 적용하겠다고 결정하였다. 동시에 교육과정의 구성과 집필기준은 바꾸지 않은 채 국정체제를 국·검정 혼용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하였다. 따라서 검정체제라는 이름으로 8월까지 제출해야 하는 심사본은 검정으로 위장한 여러 버전의 예비 국정교과서에 불과한 것이다.

역사학자 다수가 2015교육과정을 반대한 이유는 전체 구성과 집필기준과도 연관이 있다. 2015교육과정은 중·고교 역사교육의 계열성을 무시한 채 시대별 생활문화사를 뺐거나 조금만 집필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중·고교 모두 지나치게 정치사 중심이다. 그렇다고 정치와 지역, 세계를 연관시켜 설명하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다. 폐기된 국정교과서가 증명했듯이, 세계와의 연관은 말 그대로 장식품처럼 처리되어도 무방한 구성이다. 내용 요소를 그대로 둔 채 분량을 100쪽 정도 축소해 제작하도록 하고 있으니 한국사를 서술하기도 벅찬 것이다. 근현대사보다 전근대사를 더 많이 쓰도록 유도하고 있어 역사교육의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가고 있는 점도 큰 문제다.

우선 당장은 대통령의 지시처럼 적용 시기를 바꾸고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국정체제를 폐지하고 검정체제로 전환한다는 취지에 부합한다. 이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소통의 어려움 문제도 아니다. 교육부 관료들이 대통령의 업무지시를 진정으로 납득했다면 16일자 수정 고시에 반영했거나, 그러한 의지를 밝혔어야 할 사항이다.

장기적으로는 역사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며 미래가치를 담아낼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과정평가원에서 교과서 검정 업무를 떼어내는 한편, 인사와 예산이 독립된 교과서 관련 정책기구 또는 시민정치교육을 전담할 기구를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4~5년 간격으로 교과서 검정을 실시한다는 전제를 두고, 교육연한에 맞추어 교육과정을 10년 내지는 12년마다 개정하는 주기성을 제도화할 필요도 있다.

이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논리에 따라 교육과정을 개정하고 교과서를 제작하는 ‘적폐’가 제발 없어졌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도 별로 바뀌지도 않은 교육과정에 맞추느라 3년 만에 교과서를 완전히 다시 쓴 황당한 경험을 또 하고 싶지 않다.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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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 정권교체도, 정권붕괴도, 침략도 하지 않고 체제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미국을 믿어달라”고도 했다. 외교언어치곤 거칠지만 진정성은 묻어난다. 그는 지난 3일 국무부 직원 강연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틸러슨의 발언은 정확히 북한의 흉중을 꿰뚫는다. 김정은 정권의 제1목표는 체제 생존이다. 핵개발도 미국의 안보 위협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북한은 주장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체제 보장을 공개 약속했다. 북한의 핵개발 명분과 논리는 거대한 모순에 직면하게 됐다.

이렇게 선명한 반전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처음에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반도는 전쟁위기설로 설설 끓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를 거론한다.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한 조건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핵과 미사일 실험 동결이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직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국가 관계는 말과 행동으로 구성된다. 말로 명분과 정당성을 주장하고 행동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북한은 틸러슨의 말에 대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말 한마디로 70년간 쌓인 북·미 간 적대감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북핵 게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대외전략 환경 변화는 대미관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혈맹’ 중국의 태도변화도 북한을 곤혹스럽게 한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후 북한에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시사하고,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적극적이다. 북한으로선 하나같이 아프다. 북한이 핵·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지 못하는 데 미국의 군사적 실력행사와 중국의 대북 압박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남한 내에서도 ‘우군’을 잃고 있다. 구조적으로 북한의 ‘적대적 이익공동체’인 남한 보수는 허약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자유한국당 여론지지율은 8%다. 불과 열흘여 전인 지난 대선에서 이 당 후보가 20% 넘게 득표한 것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보수는 대선에서 특유의 색깔론과 이념공세를 폈지만 먹히지 않았다. 과거 보수의 안보공세에 쩔쩔매며 변명으로 일관하던 진보후보가 오히려 보수후보들을 ‘가짜 안보장사꾼’으로 공격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아마도 북한을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공존 추구와 대화를 중시하는 대북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북한을 비난하고 강경정책을 구사하는 보수 정권이 상대하기 쉬울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고마운’ 존재였다. 남북 간 적대감은 북한에 논리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은 북한의 체제 및 핵개발 논리의 명분과 당위를 갉아먹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중장거리 ‘화성-12’미사일 발사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며 단호한 대응을 지시했다. 겉으로 북한을 비난하면서 뒤로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북한에 돈을 건네려 하거나, 선거 때 북한군에 남쪽으로 총을 쏴달라고 부탁하는 보수 대통령, 보수 정당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대외정세의 변화는 김정은 정권에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요구한다. 한국·미국·중국 3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국정 최우선 목표로 삼고 공조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의 일이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도 공유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을 보였던 6자회담과 9·19합의 등을 연상시킨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접근 방식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북한에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북핵·미사일이 동북아 및 세계평화·안정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대두된 지금 북한 역시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해 있다.

핵개발을 통해 안보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북한의 발상은 그 자체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상대국도 핵으로 무장하거나 기존 핵무장력을 강화하게 되므로 안보 우려가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핵개발로 강국이 되겠다는 계획 역시 무모하다. 예컨대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이지만 강국으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핵개발은 강국을 보장하지 못한다.

특히 주민 삶을 희생하는 핵개발은 오히려 국가의 토대를 약화시킨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부수적 피해>에서 “다리의 운명은 가장 약한 교각이 결정한다”고 했다. 북한이라는 다리에는 수많은 교각들이 있다. 하지만 핵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부실하고 강도가 약하다. 김정은은 핵을 자랑하기에 앞서 바우만의 경고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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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촛불혁명’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나는 촛불혁명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당연한 진리를 국민들이 국민 대표들 앞에 당당히 확인시켜준 역사적 사건이라 믿는다.

임기가 남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대선을 통해 새 대통령을 뽑았다고 이러한 촛불혁명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촛불현장의 뜨거웠던 열기와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모습을 떠올려볼 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헌법 제1조의 정신이 국민 모두의 머리와 가슴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날까지 촛불혁명은 계속될 것이라 확신한다.

지난 19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개 정당 원내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한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들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개헌이 정치권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한 야당 원내대표는 “국회 개헌특위를 즉각 가동하고 대통령도 국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국회가 개헌의 주체임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또 다른 야당의 한 원내대표는 “대선 전 국회 개헌특위에서 민주당을 제외하고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합의한 내용이 있는 만큼 이를 중심으로 재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권력구조 개헌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분들의 말 속에는 개헌의 주체가 ‘국회’라는 생각이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아니다. 헌법 제1조에 따르면 개헌에 대한 권력도 국회가 아니라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 보면, 개헌논의가 항상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의 필요에 의해 촉발되고 개헌이 정치인들이 짠 정치일정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조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중에 독재로 치달은 대통령들은 예외없이 장기집권을 위해 헌법상의 권력구조나 대통령 임기조항을 손댔다. 심지어 1987년 6월항쟁의 결과 쟁취해낸 개헌의 기회에서도 주인인 국민들이 아니라 정치인인 여야 8인 대표들이 개헌안을 만들었다. 6월항쟁에서 피를 흘린 국민들은 개헌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 것이다. 그래서 6월항쟁은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고, 그 후 약 30년이 지나도 나아진 것 없는 답답한 현실 앞에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개헌을 한다면, 이제 국민 주도의 개헌이 되어야 한다. 연초부터 국회에 개헌특위가 설치돼 활동 중이지만 국민 여론수렴은 뒷전인 모양새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개헌의 내용이 무엇인지 듣기보다는, 또다시 분권형 대통령제니, 의원내각제니 하면서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권력구조 개헌에만 몰두하고 있다.

대통령제가 문제여서 이 부분을 개헌해야 한다고 말하는 국회의원들 중에는 바로 그런 대통령을 보좌해온 분들이 없지 않다. 누가 권력구조 개헌을 통해, 말로는 ‘국민을 위한 개헌’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이나 자기 당의 권력 참여지분 확대에 더 치중하는지 국민들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물론 현행 헌법 제128조에 의해 개헌발의권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헌법 제1조의 정신으로 이 조항을 읽으면, 개헌의 방향과 개헌안의 주된 내용은 국민들이 정하고 국회나 대통령은 이를 받아 발의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정치일정에 따라 당리당략에 따른 주고받기로 만든 개헌안에 대해 국민들이 국민투표로 찬반의사만을 표시하게 해서는 ‘국민 주도의 개헌’이 될 수 없다. 또한 국민 주도의 개헌절차를 밟다보면 당연히 개헌의 주된 방향과 내용도 국민들이 결정하게 된다.

헌법에는 권력구조 조항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권조항, 경제민주화 조항, 지방자치조항 등 국민생활과 직결된 더 중요한 조항들이 많이 있다. 촛불현장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된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는 국민이 배제되고 기존의 정치인들만 참여하는 개헌논의 과정 속에서는 결코 반영될 수 없다. 비정치인으로 구성된 헌법심의회가 우편이나 각종 소셜미디어상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개헌안을 마련해 낸 아이슬란드 개헌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 주도의 개헌이 외국에서도 대세를 이룬다.

개헌은 국민들이 주도하게 하고, 국회와 정부는 적폐청산, 일자리 등 민생, 외교안보 안정화, 선거구제 개편 등을 통한 정치개혁에 노력을 집중하면 된다. 촛불혁명의 시작도 국민이 했듯이, 그 수행도 국민이 개헌을 통해 이루어내야 한다. 이번 개헌이 반드시 국민 주도의 ‘촛불개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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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라는 직업이 한국에서도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협회도 있고 자격증까지 줍니다. 식당에서 와인을 추천하는 이 소믈리에들이 많아진 것은 와인 소비가 늘어난 현실을 반영합니다. 어느덧 ‘포도주’라고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죠. 화이트와 레드를 구분하는 정도였던 와인에 대한 이해도 아주 깊어졌습니다. 이제는 호주산인지, 칠레산인지도 따지고 각종 브랜드와 생산연도까지 꿰차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5만원 밑에도 인기 있는 와인이 있지만 1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하죠.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이 넘는 와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100만원은 고사하고 10만원만 넘어가도 쉽게 손이 가지 않죠. 어쩌다 비싼 와인을 마시게 되면 역시 다르구나 싶습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넘기면 칭찬과 탄성이 튀어나옵니다.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싶죠. 별 차이를 못 느껴도 내가 잘 모르는 것이겠지 싶어 술자리가 끝난 후 와인스쿨을 검색해 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와인 전문가들도 막상 눈을 가리면 와인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가 여럿 있습니다. 한 실험에서는 똑같은 와인을 마시고도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고급 상표라고 여겼을 때 평가단은 찬사를 쏟아냈죠. 반대로 싸구려 와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시큰둥한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상표에 대한 편견 때문이죠. 이런 편견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명품 가방이 더 품위 있어 보인다거나 알프스 어디 물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 그런 예일 테죠.

짧지만 떠들썩했던 선거전을 치른 한국정치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후보라는 상표를 좋아한 사람들은 그의 공약뿐 아니라 언행 하나하나에 열광했습니다. 미소 하나도 듬직하게 보았고 그의 공약을 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죠. 하지만 상대 후보는 늘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습니다. 음식을 넘기는 입 모양 하나도 꼴불견처럼 느껴졌고 그의 지지자들마저도 이상하게 쳐다봤습니다. 심지어 거의 같은 공약을 두고도 내 후보 것은 혁신적이라고 불렀고 상대방의 것은 엉터리로 믿었습니다.

사실 상표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가방을 다 뜯어보고 들어볼 수는 없습니다. 그 많은 와인을 다 마셔볼 수도 없죠. 모든 후보의 공약집을 다 읽어보고 비교 분석한 후 지지하는 후보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북 외교, 경제 운용, 노동, 환경 등등 수많은 정책 이슈가 있습니다. 각각의 이슈를 들여다보면 많고 많은 정책이 있죠. 이들은 서로 얽혀있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헷갈립니다.

유권자의 선택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가이드라인에 기대게 됩니다. 여러 정보의 극단적 축약본인 ‘상표’는 이럴 때 요긴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명 브랜드를 믿고 사듯, 정책은 다 몰라도 정치 이데올로기를 보고, 후보 이름을 보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죠.

복잡한 현대정치에서 이런 선택은 어쩔 수 없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지하는 후보의 정책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부작용을 낳는 것 중 하나죠. 그러니 정책에 대한 논쟁은 쉽지 않습니다. 대신 토론은 외모나 말투에 국한되고 그럴수록 서로 간의 소통은 고통스러워집니다. 불편한 소통 대신 우리끼리 모여 함성을 지르며 선거를 치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드디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갖게 됐습니다. 정치 이데올로기를 옆에 두고, 브랜드를 무시하고 좀 더 차분히 지켜볼 여유가 생겼죠. 문재인 후보가 좋아서 그를 지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좋다고 정부 정책을 감싸기만 해서는 안될 테죠. 한쪽에선 벌써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들립니다.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됩니다. 조건 없는 지지는 조건 없는 명품 소비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문재인 브랜드를 접어놓고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어야 저쪽도 ○○○ 브랜드를 내려놓고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 사는, 나라다운 나라에 우리는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겠죠.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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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공동개발한 중거리 미사일 방어 시스템 ‘다윗의 물매돌(David’s Sling)’이 최초로 실전 배치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물매돌을 하찮은 무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더불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표현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 대결에 많이 쓰이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다.

구약성경을 보면, 다윗은 물매돌로 거인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쓰러뜨린 후 그의 목을 벤다. 물매돌로 이마를 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물매(Stone sling)란 가죽으로 만들어진 끈을 사용하여 돌을 회전시킨 뒤 원심력의 힘으로 던질 수 있도록 고안된 도구이다. 물매는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청동기 시대부터 고대 근동 및 유럽에서 전투무기로 널리 애용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탄도학 전문가인 에이탄 허시는 1995년 한 심포지엄에서 물매돌과 같은 강한 발사체로 두개골에 충격을 주어 사람을 의식불명에 빠뜨릴 수 있는지 실험한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로 그리스 의사 셀시우스는 물매돌에 맞은 군사의 몸에 박혀 있는 돌이나 납덩이 등의 효과적 제거를 위해 상세한 의학적 처방을 남기기도 했다. 더욱이 물매는 상대가 갑옷이나 투구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도 효과적인 무기다. 다윗이 골리앗과 맞선 때는 혈기 넘치는 10대 후반으로 추정되며, 그 위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윗은 단 한 번에 골리앗의 얼굴을 명중시켰다. 다윗만 물매돌의 달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의 기록에 따르면 에게해 주민들은 최고의 물매돌 전문가들로, 이들은 단지 적군의 얼굴을 명중시킬 뿐만 아니라 얼굴의 특정 부위를 정밀 타격하는 데도 능했다고 한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하기 전에 이미 사자나 곰을 물매돌로 기절시키거나 죽였다. 반면 골리앗은 힘센 거인이었지만, 성경의 기록을 보면 방패병의 도움을 받으며 다윗과의 대결에 나갔다. 아마도 말단비대증으로 인해 시력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성경의학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그는 실제로 날아오는 돌을 피하지 못했다.

말콤 글래드웰은 베스트셀러 <다윗과 골리앗>에서 보병인 골리앗은 백병전으로 결투를 치를 계산을 하고 나왔지만 다윗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투석을 이용해 싸우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이겼다며, 이것은 일대일 대결의 패러다임을 깬 혁명적 전술이었다고 기술했다. 1967년 ‘6일전쟁’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한 전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모세 다얀도 에세이에서 ‘골리앗과 싸운 다윗은 열세가 아니라 우세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위대함은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나간 것에 있지 않고 나약한 사람이 장점을 파악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무기 활용법을 잘 아는 데 있었다’고 언급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허무맹랑한 대결이 아니다.

다윗은 치기 어린 혈기나 광신적인 믿음으로 골리앗을 상대한 것이 아니다. 철저한 준비와 경험이 그를 골리앗과의 싸움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다윗은 엄청난 믿음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노력가이자 전략가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위해 벌인 전쟁에서 연전연승한 이유가 그것을 증명한다. 다윗은 지금도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 칭송받고 있다.

다윗시대의 이스라엘과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비슷하다. 새 대통령이 뽑혔다. 부디 다윗과 같은 지혜로운 지도자가 되어 최고의 대통령으로 칭송받게 되기를 기도한다.

이종훈<성경 속 의학 이야기> 저자·안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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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취임 1주일 만에 처음으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방문,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했다. 북한이 신형 미사일을 발사한 상황에서 최고군령부인 합참에서 군 대비태세를 보고 받은 뒤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는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바른정당 의원도 참석,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는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지휘관회의에 여야 국방위원을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국회 및 야당과의 협치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동안 야당 의원과 안보 정보까지 공유하며 과감하게 협치를 시도한 대통령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오후 취임 후 처음으로 국방부를 방문해 대회의실에 도열한 전군 주요 간부들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이날 협치 시도는 문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반쪽으로 끝났다. 야당 소속으로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의원은 바른정당의 김 의원, 정의당의 김종대 의원,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는 서영교 의원 등 3명이 전부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의원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김영우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다 여당과 가까운 의원들이어서 야당이 동참했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하다. 안보가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면서 불참한 야당 국방위원들의 태도는 유감스럽다. 그렇지만 야당 의원들을 탓할 일만도 못된다. 의원들은 전날 오후 참석을 요청받았다고 한다. 사전에 일정이 잡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참석을 요청해 응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일정을 통보한 것은 협치라고 할수 없다.

협치는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협치를 제대로 하려면 협치할 여건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새 정부가 그런 점에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시민의 지지를 받는 정치를 하면 야당 의원들도 정부에 호응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는 협치를 보장할 수 없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행사에 야당이 들러리 서라는 식이면 될 일이 없다. 전군 지휘관회의에 참석한 국방위원들은 문 대통령과 차 한잔한 것 외에 한 일이 없었다. 한국당과 국민의당도 말로만 협치를 내세울 뿐 새 정부와 함께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연일 비난만 해왔다. 국민의당도 문 대통령 비판으로 새 원내지도부 출범을 알렸다. 이런 신경전으로는 협치가 어렵다. 새 정부와 야당이 진실로 협치를 하고자 한다면 협치의 틀부터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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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10년 동안 펄에 갇혔던 세상이 한꺼번에 밀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 무렵에야 퇴근한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겪고 있다”고 ‘웃으며’ 푸념했다. 한 야당 인사는 “대통령 후보감인지 늘 의아했는데 대통령감은 맞는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권교체기엔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가 관례였다. ‘무조건’ 차별화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출범 20일 만에 40개가 넘는 정부조직을 뜯어고쳤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면 괜찮아)’를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외려 과거 관례를 지우며 출발했다. 곳곳에서 시대의 변화를 해석하느라 분주하다. 문 대통령 리더십에서 찾자면 “비주류이지만 주류의 가치를 만들 줄 알기 때문”(도종환 의원)일 수도, “없음의 힘을 갖고 있어서”(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일 수도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 등 주요국 특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충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은 권력 획득의 과정이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여정이라는 의미가 보태졌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선언한 것에 주목한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의원에 이르는 조직 자원을 갖고 있는 정당은 여론을 결집하는 통로다. 그래서 정당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정당 정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집권 여당이라도 ‘보스’(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르자 “이제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다”고 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사당화 제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고리를 끊으려 했다. 당정분리를 시도하며 “정당을 좌우하지 않는 나의 무능력, 그게 나의 정당개혁”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 시도된 당정분리는 집권 여당의 분열로 막을 내렸다. 정당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한 후보였고, 민주당을 장악한 후보였다. 내각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민주당 정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국정자문기획위원회도 김진표 위원장 등 당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주요 인선 면면을 보면 당의 가치와 철학을 국정 중심에 두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읽힌다. 10년의 적폐를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는데도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것은 선거 때부터 정당이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땐 국회의원들이 유세차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왼쪽’ 이재명부터 ‘오른쪽’ 안희정까지 경선 때부터 정당의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 대통령과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목소리로 ‘민주당 정부’를 외쳤다.

정당 정부는 대통령 의지만으론 버겁다. 정당도 변해야 한다. 당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공천 받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분권도 필수적이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대표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떼주는 ‘약한 분권’을 넘어 독립적 힘을 나눠 갖는 ‘강한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의회는 예산편성권, 인사권조차 없다. 경기도는 전체 인구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올해 예산 규모는 국가예산(약 400조원) 15분의 1 수준이다.

칼럼을 마무리할 무렵, 양정철 전 비서관 퇴장 소식이 들렸다.

문 대통령과 양 전 비서관 관계를 헤아린다면 패권 청산이라는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공공성, 양 전 비서관을 눈물로 보낸 문 대통령의 결심이었을 테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 가는 가장 아픈 길이었으리라.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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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후 일주일이 지났다.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새 정부의 지향을 보여주기에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유쾌한 변화를 예감한다. 늦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과 새 정부의 출범을 축하한다. 새 정부에서 책임을 맡게 될 분들에게도 축하와 함께 높은 소명감을 기대한다. 아울러 나랏일은 공직자만의 의무가 아니라 국민들도 함께 나누어지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몇 말씀 드리고자 한다.

대통령께서 강조하는 것처럼 반드시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 바란다. 헌정사 70년이 지나도록 성공한 정부를 보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과거에는 장기집권의 과욕 때문에, 최근에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오만함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 국민을 거스르는 정부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첫 100일의 결심이 마지막 100일까지 시종여일하길 바란다. 그 마음으로 정부가 성공하고, 성공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우뚝 서고 세계에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미·중·일·러·유럽연합 등 주요국 특사단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송영길(러시아)·문희상(일본) 특사, 문 대통령, 이해찬(중국)·홍석현(미국) 특사. 연합뉴스

새로운 정부로 새 시대를 이끌어주기 바란다.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 겸손한 정부, 국민을 속이지 않는 착한 권력, 국민을 편 가르지 않는 통합된 나라, 특권과 반칙이 사라진 공정한 국가를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5년은 매우 짧다. 단기 실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라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임기가 끝나면 후임 대통령에게 떳떳하게 넘겨줄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새로운 대통령상을 보여주기 바란다. ‘나라다운 나라’의 첫걸음은 ‘대통령다운 대통령’에서 시작되므로 대통령의 자세가 중요하다.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대정신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겸비한 융합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은 파격의 선수였고, 김 전 대통령은 돌다리 두드리기의 선수였다. 문 대통령께서는 파격과 두드림의 장점을 균형있게 취하는 대통령이 되어주기 바란다.

국정의 큰 방향을 분단과 전쟁과 지역감정에서 연원한 분열적 대결구조를 완화하고 일체의 차별을 해소하는 데 맞추어주기 바란다. 쉬운 일이 아니고 하루 이틀에 끝날 일도 아니지만, 대통령과 정부와 국회가 공식적으로 결의하고 솔선수범함으로써 역사적인 출발을 해주기 바란다.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내재되어 고착된 망국적인 대결의식과 차별주의에서 벗어나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하여 젊은 세대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일체의 독점구조를 타파한 공정한 나라를 만들어주기 바란다. 에드워드 기번과 폴 케네디와 시오노 나나미가 내놓은 분석을 관통하는 망국의 원인은 사치와 방종이며 그 배경에 재화의 독점이 있다. 권력의 독점과 재화의 독점은 쌍생아이다. 고려 말의 토지겸병과 조선 후기의 노론 독점이 그러했다.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재벌독점, 여론 형성을 왜곡하는 언론독점, 교육을 좀먹는 사학독점,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종교독점, 지역사회의 토호독점에서 벗어나야 공정한 나라로 나아갈 수 있다.

욕심을 부리자면, 국민참여의 영역에서는 세상에 내놓을 만한 ‘가장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제안이 참여로, 참여가 통합으로, 통합이 국력으로 연결되는 참여의 선순환 구조가 국정 운영에 적용되기를 바란다. 링컨 대통령이 150년 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미국민들에게 약속했다면, 이제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국민이 제안하고,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이 결정하는 국민에 의한 정부”를 국민들에게 약속해봄직하다.

성공하는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국정 운영의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다. 관료적 행정절차로 축소되어버린 국민신문고를 부활시키면 국민의 뜻을 국정 운영에 폭넓게 반영할 수 있다. 정부의 모든 결정에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면 정부 결정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다. 모든 공무원들에게 한 직급 높은 결정권을 부여하면 공직사회의 활력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모든 반대와 비판을 수렴하는 정부기구를 운영함으로써 국론분열을 치유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인류사를 돌이켜보면 국운 융성의 기회는 매우 드물게 찾아온다. 조선시대 세종과 성종, 영조와 정조 연간에 국운이 융성했지만 후자의 경우 정조의 죽음으로 끝나고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영·정조 개혁이 권력 균형을 도모하는 수준에 머물러 권력의 토대인 사회적 독점구조를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회경제적 변화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지속될 수 없다. 스타일만으로는 변화를 불러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새 정부가 꼭 유의해주기 바란다.

정대화 | 상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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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의 산파역을 맡았던 친문 측근들이 잇따라 2선으로 물러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16일 현 정부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곧 뉴질랜드로 떠나겠다고 했다. 그와 함께 ‘3철’로 불렸던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제 할 일을 다했다”며 대통령 취임 당일 해외로 떠났다. 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호위무사’로 통했던 최재성 전 의원, 정청래 전 의원도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마치 승리의 전리품을 챙기듯 한 자리씩 나눠 차지했던 그간의 정치권 관행과는 사뭇 다르다.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을 공격하는 쪽에서 “집권하면 측근들이 완장 차고 전면에 나설 것”이라며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던 게 무색할 정도다. 최측근 인사들의 자발적인 2선 후퇴는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고, 대통령의 인사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문재인 정부 성공의 초석을 놓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참으로 신선한 모습이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주일간 청와대 참모 진용을 갖추면서 계파와 지역, 노선을 뛰어넘는 탕평·통합 인사를 선보이고 있다. 비문재인계 출신인 임종석 전 의원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경선 때 안희정 충남지사 측 대변인을 맡았던 박수현 전 의원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은 계파를 불문한 파격인사로 볼 수 있다.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하승창 사회혁신수석과 김수현 사회수석을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청와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에 일면식이 없는 전문 관료를 기용한 것은 많은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능력 있는 인물을 적재적소에 쓰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통합·대탕평 원칙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이 모든 게 이른바 개국공신들이 전면에서 물러남으로써 문 대통령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부담을 줄여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탕평인사 요구가 높았지만 실천된 적은 거의 없다. 오죽 편중이 심했으면 ‘문고리 3인방’이니, ‘고소영’ ‘성시경’ 인사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고 가야 한다. 그 전에 스스로 뗏목에서 내려 떠난 측근들의 아름다운 퇴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 성공의 문을 연 첫번째 열쇠가 됐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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