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신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2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보고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근로 등에 관해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속도조절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전날에는 기자들에게 “내년 3월까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최저임금이 고용 악화에 미친 영향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대통령과 경제정책 수장이 한목소리로 속도조절론을 꺼내든 게 심상치 않다. 정부는 지난 7월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사실상 접었다. 이번에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늦추려 한다. 재계와 소상공인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충남 아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서진캠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로부터 부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재계는 고용 악화의 책임을 최저임금에 돌리며 노동자들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경기 침체나 고용 악화는 최저임금 인상보다 조선·철강 산업 등 산업기반 약화와 신흥국의 추격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재계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가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국회는 지난달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 단위시간을 6개월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연한 근로시간 활용으로 근무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는 재계의 요구를 수용한 셈이다. 노동자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6개월 확대’는 굳어져 가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를 앞세우고 출범했다. 그러나 집권 1년 반을 지나면서 노동정책은 후퇴하는 양상이다. 이행되지 못한 공약이나 약속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일정부분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하청 및 외주업체의 비정규직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대선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재계의 반발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정책이 우회전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노동의 양보 없이 경제활성화는 어려운 일일까. 고용 악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고육지책으로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을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양보를 요구하기에 앞서 이것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 묻고 싶다. 노동계의 고충에 귀기울이는 자세가 ‘노동 존중’ 아닌가 싶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노동현안을 대화로 풀어가자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빠진 경사노위에서 첨예한 현안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오산이다. 민주노총이 참여하도록 재삼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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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운 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다. ‘이게 나라냐’고 절규하는 사람들을 위한 약속이기도 하다. 시작은 뭉클했다. 취임 3일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천명했다. 며칠 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역사에 남을 감동극이었다. 대통령과 유족의 포옹에 모두가 울었다. 아픔을 보듬은 눈물, 이제 나라가 제대로 가겠구나 하는 벅참의 눈물.

1년 반이 지났다. 대통령 지지율이 절반 아래까지 내려갔다. 주변 여론도 심상치 않다. 대부분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고대하는 사람들이다. 머뭇거리는 민생 정책을 한탄한다. ‘나라다운 나라’가 떠오르지 않고, 묵직한 발걸음도 보이지 않는다고.

청와대는 억울해할지 모르겠다. ‘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주창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 분야를 포괄하는 ‘포용국가전략회의’도 개최했고, 포용과 혁신의 가치를 지닌 비전과 전략도 발표했다. 얼마 전 OECD는 포용국가론의 첫 사례로 한국을 연구하겠다고 말할 정도이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1일 청와대 집현실에서 열린 '국정과제위원회 및 대통령자문위원회 오찬간담회'에 참석해 각 위원회의 업무보고를 경청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렇다. 포용국가 문서에는 시대가치를 담은 단어들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아 보인다. 촛불정부가 내세운 국가비전이라는데 왜 사람들은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걸까?

지금부터 10년도 더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비전 2030’을 제시했다. 비록 임기 후반에 나오고 재정방안이 없어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지만 앞으로 도달할 미래상과 경로를 담았다. 반면 포용국가에는 우리가 살 집의 조감도도, 그곳을 향하는 로드맵도 없다. 노무현 정부의 경험을 축적했을 문재인 정부이기에 어디엔가 마련했으리라 생각했건만,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새로 진용을 갖춘 청와대 정책실이 내년까지 수립한단다. 아, 아직도 만드는 단계라니.

좋다. 국가비전은 단지 방향이라 치자. 중요한 건 나라꼴을 제대로 갖출 실제 정책들이다. 우선 일자리정부라고 자처했으니 이 분야를 보자. 현재까지 성적은 좋지 않다. 원래 고난도 과제이기에 재촉해서 이룰 일은 아니다. 관건은 내실을 다진 계획이다. 공공부문 몇 개 영역을 합산해 81만개 일자리를 공언하고, 일자리 동향을 대통령 집무실 전광판으로 점검하겠다던 초반의 어설픔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의문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 초단기 인턴마저 동원하는 무리수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그제 청와대 회의에서 대통령은 내년 예산에 포용국가 철학이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근로장려세제, 아동수당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물론 복지 확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다 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기엔 집권 초반에 고삐를 놓친 교육, 부동산정책이 뼈아프다. 월 10만원 아동수당이 도움을 주겠지만 높은 사교육비, 주거비에 휜 허리까지 펴지는 못한다. 노후불안을 대비하는 연금개혁도 오리무중이다. 5년 주기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오래전에 정해진 일이고, 결과도 예상대로인데도 아직도 정부 개혁안은 윤곽조차 알 수 없다.

재정 분야도 실망스럽다. 100년을 이어갈 개혁안을 만들겠다며 재정개혁특위가 발족했지만 상반기에 종합부동산세 개혁안을 권고한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다. 기획재정부 견제 아래서 맴돌다 내년 초에 종합보고서를 발표하고 간판을 내릴 모양이다. 또한 재정정책의 위상을 높인다며 청와대에 재정기획관을 신설하고서도 올해 봄에 열린 재정전략회의는 오히려 요식행위에 그쳤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정에 ‘전략’을 담자며 심혈을 기울였던 회의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렇게 형식화되어 버리다니. 심지어 올해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담긴 5년 후 조세부담률 목표는 20.4%이다. 이미 작년에 도달한 20% 선을 넘을 의사가 없다. 지금 수준의 재정으로 새로운 나라가 가능하다는 건가.

비교되는 분야는 보건의료 쪽이다. 국민건강보험 체계에서 핵심 문제인 비급여에 정면 대응하고 의사들과 일전을 불사하는 뚝심을 보였다. 시민단체 눈높이에선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청사진이 분명하고 무언가 진행되는 움직임이 전해온다. 문재인케어라는 브랜드를 얻을 만하다. 탄탄한 준비, 담대한 추진력이 승부수임을 알려준다.

내년이면 어느새 3년차. 남북관계와 문재인케어처럼 여러 민생 분야에서 새로움을 보고 싶다. 함께 사는 대한민국 공화국을 열망하며 시민들이 무혈혁명으로 만든 정부이지 않은가. 대통령은 당선 첫날 현충원 방명록에 ‘나라다운 나라’를 적었던 심정으로 민생정책을 되돌아봐야 한다. 꿈이 컸던 만큼 역사적 평가가 호될 수 있다. ‘기대의 역설’을 두려워해야 한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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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새 원내사령탑에 4선의 나경원 의원이 선출됐다. 친박계와 잔류파의 지지를 받은 나 신임 원내대표는 비박·복당파가 미는 김학용 의원과의 맞대결에서 전체 103표 중 68표를 얻어 압승을 거뒀다. 나 의원으로서는 세 번째 도전 끝에 원내대표 입성이라는 성취도 크겠지만, 보수정당 사상 최초의 여성 원내대표라는 기록도 썼다.

전임 김성태 원내대표가 지난해 5월 당시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으로 돌아온 소위 복당파의 핵심이었고, 역시 복당파인 김학용 의원이 패배했다는 것은 한국당 계파구조의 복잡성과 변화를 동시에 드러낸다. 한편으로 친박계의 여전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국당에서 천형 같은 계파 패권주의를 청산하고 야당다운 정치를 복원하라는 당내 여망이 투영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정통 친박계도 아니고, 복당파도 아닌 나 원내대표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와 정용기 정책위의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태 전 원내대표, 나 원내대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정 정책위의장, 함진규 전 정책위의장.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나 원내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막아내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같이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물론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와 비판자의 역할은 야당에 주어진 본연의 책무이다. 보수정당으로서 건강한 가치를 기준으로 정부·여당의 정책을 견제하고 견인한다면, 제1 야당다운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한국당은 탄핵과 정권교체,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하고도 합리적 대안 없이 사사건건 반대투쟁에만 몰두해 왔다. 제1 야당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정치는 실종되고 청와대가 정국을 압도하는 걸 구경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오로지 정부·여당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득에 의탁해 연명이야 할 수 있겠지만, 수권 정당으로의 탈바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원내 중심으로 정치적 협상과 타협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제1 야당 원내대표의 역할은 막중하다. 나 원내대표 앞에 놓인 과제가 수두룩하다. 당장에 정국을 경색시키고 있는 선거제도 개편을 필두로 공수처 설치 등 사법개혁, ‘유치원 3법’ 처리 등을 풀어야 한다. 경제와 민생, 개혁 입법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선명성뿐 아니라 제1 야당에 걸맞은 정책적 대안을 내놓고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한다. 당내에서는 보수 재건에 필수적인 인적 쇄신의 길을 추동해야 하는 사명도 주어져 있다. 낡은 이념과 가치에 매몰된 반대를 위한 반대, 기득권에 안주해 혁신을 거역하는 나쁜 습속으로부터의 결별을 나 원내대표가 주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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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세계인권의날 7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해체하고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은 민족 모두의 인권과 사람다운 삶을 위한 것”이라며 “평화를 통해 인권이 보장되고, 인권을 통해 평화가 확보된다”고 말했다. “한반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이 함께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그 말대로 한반도 현실에서 인권과 평화는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회 인권 침해,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평화정착 없이는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남한의 경우 국가보안법을 손대지 않고 인권을 말할 수는 없다. 한반도 분단과 적대의 종식도 국가보안법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 한반도 평화를 우리가 이끌어 가기 위해서도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인 1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2018 인권의날 기념식에서 다문화가정 출신 모델 한현민씨와 세월호 유족 유해종씨, KTX 승무원 김승하씨,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 등 11명의 시민사회 대표들이 세계인권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도 참석했다. 연합뉴스

1948년 12월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지난 70년간 한국 사회의 사상·양심의 자유를 옥죄며 권력이 반대자를 처벌하는 도구로 쓰여왔다. 국가보안법에 기반한 간첩조작, 종북몰이, 색깔론 등 폐해는 따로 거론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막대하다. 유엔과 국제앰네스티가 1990년대부터 폐지를 권고해왔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가 거론되기 시작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개폐 논의가 있었지만 가장 문제적 조항인 제7조(찬양·고무) 개정조차 실패했다. 지금은 논쟁조차 봉인돼 있을 정도로 상황은 후퇴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방북 때 “평화체제가 되려면 국가보안법을 어떻게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가 야당의 집중공격을 받은 것이 이를 웅변한다.

“노회찬 전 의원, 약자 인권향상에 기여” 문재인 대통령이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인 10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정의당 고 노회찬 전 의원의 동생 노희건씨, 부인 김지선씨와 인사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노 전 의원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보안법이 사실상 사문화됐고, 보통 국민은 불편할 것 없는데 개폐 논의가 필요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는 헌법상 권리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정권의 성향에 맡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남남갈등을 가열시킬 개연성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과제를 미뤄둘 수는 없다.

70년에 걸친 남북 간의 적대는 남북 모두를 비정상국가로 만들었다. 양측 권력은 상대의 위협을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해왔다. 우리는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기를 요구하지만, 우리도 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보안법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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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가 2년차 끝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끝 모르던 고공지지율은 어느새 50% 선도 무너졌다. 원인이 된 경제 부진은 좀체 반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속도를 내던 한반도 평화 바퀴도 멈칫거리며 위태하다. 바람은 사납고, 하늘엔 눈폭풍을 머금은 먹구름마저 보인다.

지지율보다 심각한 변화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태도들이다. 지난 1일 3년 만에 열린 대규모 민중대회에선 “문재인 정부의 개혁 역주행”을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진보 성향 야당은 물론 자유한국당조차 “개혁의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조소한다. 한국당부터 민주노총 등까지 ‘개포(개혁 포기) 정부’로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약점을 보인 맹수와도 같다.

 ‘청와대는 무능하고, 정부는 일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기로 버텨온 시간들이 종착점에 다다랐다고도 한다.

 물론 다 동의하긴 어렵다. 국정은 한두 가지 관점만으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 권력에 대한 판단도 상이하다. 청와대 의지가 모든 일의 관건으로 보는 게 통념이지만, 한국정치 구조에서 국회 뒷받침 없이는 ‘고립된 권력’일 뿐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당장 ‘재판 거래’ 의혹 등 선을 넘은 농단에도 사법개혁은 한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다. “개혁 포기 비판은 재벌·관료·법조·언론 등 이 나라 상부 권력의 강고함을 모르고 쉽게 하는 순진한 이야기”(여권 관계자)라는 항변도 나온다.

 ‘개포 정부’ 비판이 일정 부분 정치적 수사라 하더라도 께름칙함은 남는다. 인사·노동 정책 등의 ‘무능’ 진단을 전면 부정키 어렵거니와 무엇보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무력함 때문이다. 취임 초기 ‘100일 작전’처럼 관료들을 몰아치고, 포퓰리즘 소리를 듣더라도 현장으로 달려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청신한 기상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누적된 피로와 그 부산물인 ‘현실과 타협’이란 불온함이 배회한다.

 어떤 정부든 미래세대와 국가·사회의 전진을 위해 뚫고 나가야 할 몫이 있다. 그것을 두고 ‘개혁’이라고 한다. 보수·진보와 무관하다. 다만 개혁에도 방법상 층위는 있다. 혁명이든 개혁이든 ‘현실과의 조응’이란 거대한 숙제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개혁은 현실의 제도를 바꾸든가, 아니면 그런 제도 변화를 ‘당연한 미래’로 우리 사회 지향점을 고정시키든가, 그도 아니면 그 방향으로 의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건설 중인 원전 중단에는 실패했지만 공론화위 방식을 통해 탈원전 원칙을 합의해낸 것은 두번째 단계 어름은 될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당장 사회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선한 명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세 가지 층위는 개혁이 현실과 조응하는 과정이다. 타협은 이 세 범주에 미치지 못하고 멈춰서는 것이다. 그것이 ‘개포 정부’의 길이다.

 그 점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는 과연 충분한 일을 하고 있는가. 지금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현실에 대한 조응과 타협이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비치는 부분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포용적 성장론’으로 강하게 붙들고 있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준비 부족’ 의혹에 전체가 공격받는 상황에 몰렸다. 실수에 대해선 솔직히 성찰하고 보완책과 함께 우리 사회 미래로 설득해야 했지만, 조치는 불협화음을 낸 경제 투톱을 교체한 것뿐 어떤 실패에 대한 교정인지도 명확지 않다. 공론화위로 미뤘던 대입제도 개편안은 결론 없이 되돌아오면서 교육 무능의 상징이 됐다. 재벌 개혁은 ‘실종’인지 아닌지조차 설명이 없다. 모두 정부가 어려움을 설득하기보다 우회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 점에서 지금 위기는 ‘실력과 용기의 위기’이기도 하다.

 ‘위기의 겨울’에 맞닥뜨려 문재인 정부는 국정 전열의 정비를 요구받고 있다. 어떤 정부든 개혁이 체계적이기 위해선 권력의 공고화가 필수적이다. 권력을 더 움켜지는 것이 아니라 폭을 넓혀야만 이룰 수 있다. 국회 다수 확보를 위한 협치·연정과 같은 현실적·정치적 수단을 적극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론 선거제 개편부터 개헌까지 현재의 정치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적폐청산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사회 개혁 과제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 과제들의 현실적 목표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을 민심과 지지층을 향해 설명하고 끊임없는 소통으로 공고히 해야 한다.

 현실과의 조응에 실패한 ‘정치권력’이 갈 길은 두 가지뿐이다. 역대 정권의 3년차 현상들처럼 ‘역사와 대화하는 대통령’으로 현실의 소통과 더욱 멀어지거나, 아니면 온전히 현실에 매몰되는 것뿐이다. 어느 쪽이든 촛불이 이룬 이 역사적 시점을 “그저 관청의 이름이 바뀔 뿐”(무라카미 하루키 &lt;노르웨이의 숲&gt;)과 같은 회의감으로 이어지게 하는 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는 진보했는가’라는 질문을 숙명처럼 진 정부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점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가치를 대의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잇고 넘어서야 할 운명적 과제 때문이다. ‘개포 정부’의 주홍글씨를 꼭 지워내야 하는 이유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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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포용적 복지국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복지정책을 확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경제성장의 후유증으로 생긴 불평등의 심화와 그 결과에 주목하였다. 포용적 복지국가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성장의 혜택에서 뒤처진 이들이 우리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포함한 사회경제정책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노동시장정책도 포용적 복지국가를 구현하는 대표 정책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여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증진할 수 있어서다. 아울러 정규직과 같은 일을 했지만 차별과 설움을 겪었던 비정규직 근로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이들의 복리를 증진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로드맵을 설정하여 수많은 국정과제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기초연금이 인상되고, 아동수당이 도입되고, 국공립유치원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정말로 더 포용적인 복지국가가 될까? 또한 국민들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포용적 사회의 중요한 기반은 포용적인 사람들이다. 신뢰에 기반하여 진솔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서로를 배려하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다. 포용적 사회와 탐욕적이고 배타적인 인간형은 서로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가족의 경계를 넘어선 다른 사람들 그리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정부는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포용적 복지국가의 기반인 사람들의 변화를 유도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정부가 아무리 복지제도를 확대한다고 해도 경제, 교육시스템의 극한경쟁과 서열화가 변하지 않으면 포용적 복지국가는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이는 정부가 산업, 노동 등의 핵심적인 경제사회정책, 교육정책과 복지정책 간의 보완성을 깊이 고민해야 함을 의미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빠르게 제품화되고, 이를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해주는 포용적인 산업생태계는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산업정책은 기업의 창의적인 활동이 기업의 경계를 넘어서 활발하게 번성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포용적 심성을 가진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 교육정책은 우리 시대의 바람직한 인재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대학입시에서 수시와 정시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현 정부가 향후 3년 동안 추진할 국정과제는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각종 국정과제가 부처별로 쪼개져 있어서 부처 간의 조율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러한 국정과제의 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3년 후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더 행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포용적 복지국가의 성패는 결국 국민들의 행복 증진 여부에 달려 있다.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갖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최유석 | 한림대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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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지금 싸우는 상대는 이른바 친노동 정부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으로 대통령 직무를 시작한, 바로 그 ‘노동존중’ 정부다. 그래서인지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를, 민주노총이 협력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투쟁할 상대로 보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로 사회경제 문제를 함께 풀기를 시민들은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 사정이 나쁜데 정부를 몰아세우기만 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여론도 있다. 민주노총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대체로 차갑다.

민주노총이 자칫 정부와 맞서다 견제도 제대로 못한 채 시민으로부터 고립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는 상황이다. 고임금을 받는 기득권 귀족노조가 파업은 빈번하게 한다는 게 민주노총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다. 헐뜯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민주노총은 사회 양극화에 일정한 책임이 있다. 대기업 노조의 강력한 교섭력으로 임금을 계속 올리면서 주변부 노동자와의 격차를 벌려왔다. 그로 인해 노조가 강할수록 노동시장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역설이 생겼다. 그렇다면 노·정 갈등은 전적으로 민주노총 책임인가? 마침 변호사, 고등학교 교장과 함께 저녁 하는 자리가 있어 물어봤다. 변호사는 정부 잘못이라고 했다. “민주노총이 얻을 게 없는데 왜 대화하나?” 교장은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대화 가능한 정부가 등장했는데도 싸우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지?” 후배 기자 세 명과 술 먹는 자리에서도 물었다. 한 명은 민주노총 잘못, 다른 한 명은 정부 잘못, 나머지 한 명은 모르겠다고 했다. 노동 문제를 전공하는 두 명의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한 교수는 굳이 따지자면 민주노총 잘못이라고 했다. 다른 교수는 따질 것도 없이 정부 책임이라고 했다.

이렇게 양분된 건 우연이겠지만, 의견은 나뉜다. 사실 정부와 민주노총 모두 자기 행동을 정당화할 이유도 있고, 갈등을 일으킨 책임을 함께 져야 할 이유도 있다. 그럼에도 여야, 청와대·정부는 한목소리로 민주노총을 비난한다. 사사건건 충돌하던 여야가 ‘민주노총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만사 해결’이라는 데 합의라도 한 것 같다. 한국은 대화와 협상에 익숙한 사회가 아니다. 여야 모두에 대화는 어렵고, 대결은 쉽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야당과 대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수없이 듣지만 대화를 어려워한다.

정치권의 대결 성향은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 민주노총이 대화할 줄 모른다고 하는 건 사돈 남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정부가 일을 그르쳤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탄력근로제 확대와 같은 민감 사안을 일방 결정하고는 이에 반발하는 민주노총을 공격했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는 태도로 보기 어려웠다. 파업에 직면하고 나서야 문 대통령은 탄력근로제 확대를 논의할 시간을 갖자고 수정했다. 민주노총에 돌을 던질 수 있지만 그 돌, 혼자 맞을 일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노조만을 위해 활동했던 것도 아니다. 조합원 25%가 비정규직이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을 전국적으로 조직한 유일한 세력이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선 비정규직 대표조직이다. 탄력근로 문제도 대기업과는 무관한 미조직 노동자의 일이다.

최근 비난받는 민주노총 활동의 대부분도 자기 이익이 아닌, 노조 밖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활동을 두고 민주노총의 기득권 때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자세다. 요즘 민주노총이 한국 사회를 흔들며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회자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노사정 협상은 보통 노(勞)가 임금 억제, 노동 유연성을 받아들이고, 사(使)와 정(政)은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고, 사회개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98년 첫 사회협약을 제외한 4차례 대화는 모두 실패했다. 첫 협약도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받은 게 없는 실패작이었다. 힘의 불균형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강자들의 링 위에 올라갈 자신이 없다.

이 역학관계의 본질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타협한다 치자. 그래도 이행 여부는 다른 문제다. 대결정치 때문에 국회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 청와대와 여야가 거래의 공정성, 이행을 담보하지 않는 한 민주노총이 돌아오기도 어렵고, 돌아와도 성과를 낼 수 없다. 민주노총 조직률은 4%다. 96%를 책임진 세력의 책임은 묻지 않는, 4% 때리기는 균형을 잃은 것이다. 진짜 힘 있는 세력은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소리 없이 지배한다. 바로 자본이다. 자본은 정부를 움직여 노동을 통제한다. 진정한 질문은 이것이다. 자본과 노동 가운데 누가 기득권인가? 변화해야 할 쪽은 자본인가, 노동인가?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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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비위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비위에 연루된 직원이 여러 명이라거나 평일 근무시간 골프설에 이어 현직 장관이 문제의 특감반원에게 자리를 약속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특별감찰반 전원을 교체한 뒤 검찰·경찰의 조사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했으나 파문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청와대의 태도다. 청와대는 쏟아지는 의혹에 속시원히 해명하기는커녕 함구에 급급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은 “민정수석실 업무 원칙상,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하고, 김의겸 대변인은 “비위로 보도된 사안은 감찰사안으로 확인해드릴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공직자들의 비위를 감시하고 감찰하는 곳이다. 그런 특감반원 전체가 교체되고, 온갖 부패 소문이 떠도는데도 가타부타 충분한 설명이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권력 핵심부에서 비위가 일어났다면 시민들은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 그런데 조 수석은 “비위와 무관한 특감반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넘어갔다. 국민적 의혹을 밝히는 게 왜 비위와 무관한 사람이 피해를 보게 한다는 건지 설득력이 없지만,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기보다 특감반원 보호를 앞세우는 안이한 인식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는 취임 후 줄곧 과거 정권의 적폐청산에 주력해왔다. 그런 정부에서 부패를 감시하는 직원들이 되레 부패에 휘말려 들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특감반원의 비위 사실을 파악하고도 쉬쉬하다가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뒤에야 뒷북 대응을 했다. 최근 청와대 직원들의 음주운전, 폭행사건 등 기강 해이 사건이 잇따른 것도 이런 온정적인 ‘제 식구 감싸기’ 태도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청와대 지휘선상의 비서관부터 민정수석, 비서실장까지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페이스북에 “국내에서 많은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믿어주시기 바란다.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썼다. 잘못은 드러내고 일벌백계해야만 되풀이되지 않는 법이다. 여당 내에서도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청와대 참모들을 전면 교체해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귀국 후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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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우리에겐 너무도 간절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성공적 수립을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승리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그 승리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더 가파르게 무너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반대로 민주당이 이긴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급격한 붕괴는 어느 정도 막아내겠지만, 트럼프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과정을 방해하고 나서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민주주의 문제 때문에 세계의 우환 거리가 되었을까?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한 데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더불어 진행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그 근본 배경으로 지목한다. 그동안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미국의 복지국가 체계를 만들었던 뉴딜 이후의 근간적 사회경제 구조를 흔들면서 그 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숱한 하층 노동자 및 실업자 계층을 양산해 냈는데, 민주당은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그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용하지 못하며 우왕좌왕했고, 그사이 극우 포퓰리즘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포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중간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을 지지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에스테로의 헤르츠 아리나에서 열린 유세집회에 참석해 경례를 하고 있다. 에스테로_AFP연합뉴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불평등의 정도가 심각하고, 그 완화를 위한 노력도 부족하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부 때의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극복해 내었다고 우리 민주주의가 안전할 거라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평등을 방치한다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더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불평등은 단순히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바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광범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체계를 갖춘 포용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민주당은 그동안 증세나 부동산 보유세 강화같이 복지 확충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결정적 조처들 앞에서 늘 머뭇거리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주의 깊고 실효성 있는 실천이다. 단기적인 지지율 관리를 넘어 긴 호흡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을 생각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도 놓쳐서는 안된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이라는 ‘절차주의적 공화국’이 낳은 ‘민주주의의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는 진작부터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이 공정한 절차만 강조하며 정치 과정에서 모든 도덕적 지향을 몰아내려 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시장논리가 들어서 지배하고 결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 걱정했다. 샌델이 볼 때 정치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애써 괄호 속에 넣어 두려고만 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정치에선 결국 원초적인 민족주의적 언사들만이 대중들을 사로잡게 될 터였다.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고 ‘미국 우선’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보면, 샌델은 오래전부터 그의 등장을 예견했던 셈이다.

물론 우리 민주주의는 미국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우리 민주주의에서는 오랜 성리학적 전통의 영향 탓인지 미국과는 달리 오히려 정치를 온통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재단하는 도덕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도덕은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해야 한다. 법과 공정한 절차도 너무 자주 무시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절차주의의 한계에 대한 샌델의 경고를 약간 초점을 달리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조밀하게 잘 짜인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체계를 갖추었지만 트럼프 같은 권위주의자를 제대로 걸러내지도, 제어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절차와 제도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적들로부터 지켜내려 하며 삶의 지향 자체를 기꺼이 거기에 맞추어 내려는 시민들의 태도가 사회적 습관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살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기 이전에 하나의 가치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개혁만큼이나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도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을 통해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한 모범을 보였다고 자랑하지만, 예컨대 절대 다수의 시민들, 특히 청년들은 제주도에 온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을 수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런 상태를 계속 방치해 둔다면, 언젠가 한국판 트럼프가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교육의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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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인적 쇄신과 당 혁신에는 반보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이제는 아예 반동으로 회귀할 분위기다.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이념과 정책, 인물 등 모든 영역을 밑동부터 갈아엎는다는 각오로 임해도 폐허가 된 보수의 재건까지는 갈 길이 멀다. ‘김병준 비대위’가 출범했지만 3개월이 넘도록 습관처럼 정부·여당을 공격하고, 행동 없는 구호로만 ‘보수 가치 재정립’을 외쳐댄 것 빼고는 한 일이 없다. ‘좌표·가치 재정립위원회’가 제시한 자유·민주·공정·포용 등 ‘4대 가치’라는 것도 당의 지향으로 실천이 담보되지 않기에 아무런 울림이 없다.

[시사 2판4판]들꽃 (출처: 경향신문DB)

비대위체제로 바꾸고도 침체와 무기력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낮은 지지율에서 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한국당이 ‘보수통합’을 들고나섰다. 턱도 없어 보이는 보수 ‘대통합’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누구든 뭉쳐야 한다”(김용태 사무총장)는 통합의 명분부터가 문제다. 이념이고 노선이고 가릴 것 없이, 무조건 세력만 불리고 나뉜 보수야당만 합치면 문재인 정부에 대항할 힘이 생기고,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러니 바른미래당을 향해 연대와 합당을 손짓하다가, 소위 ‘태극기부대’와의 통합을 공공연히 꺼냈을 터이다. 인적 쇄신의 권한을 위임받은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은 “태극기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로 극우라는 표현을 써선 안된다”면서 태극기부대도 통합 대상이라고 했다. 대체 박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한테 극우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된다고 하는 발상부터가 황당하다. 박근혜 탄핵이라는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고 냉전수구의 ‘구체제’를 청산하지 않고는 한국당의 출로는 열리지 않는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문재인 빨갱이”와 “박근혜 구출”을 외쳐대는 태극기부대가 보수통합의 상대라면, 더는 ‘보수 혁신’이나 ‘보수 재건’을 운위하지 말아야 한다.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이 만나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대전환의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위장평화쇼” 운운하며 낡은 이념에 매몰되어 있다가 지난 선거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교훈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더욱이 태극기부대와 통합하는 마당에 바른미래당이 동참하라는 건, 정치 도리도 저버린 뻔뻔스러운 발상이다. 애초 지지율 10%대에 고착된 ‘늙은 공룡’이 구심이 되어 보수통합을 이뤄내겠다는 것 자체가 몽상에 불과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실패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한 줌 기득권을 붙잡고 문재인 정부의 실정만 고대하는 정당에 지지를 돌려줄 합리적 보수 유권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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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는 힘이 세다. 그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는 정치권력은 드물다. ‘경제 민심’은 불씨만 대면 화르르 타버리는 바싹 마른 장작처럼 성마르다.

 집권 2년차를 지나는 문재인 정부도 ‘시련’을 피해가진 못하고 있다. 고공 지지율을 앞세워 거칠 것 없던 정부는 경제 성적표 앞에서 초라해보일 정도로 왜소하다. 정권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깊은 위기다.

지금 위기의 미묘함은 정치적 논쟁 대상으로서 ‘지지층 정치’의 문제가 그 가운데 놓여 있다는 점이다. 직접적으론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노동이 고용에 미친 영향이 쟁점이다. 수개월째 내리막이던 고용의 산술적 수치는 두달 연속 ‘재난’에 가깝다. 최저임금 인상이 문재인 정부 공약이고 진보진영 의제라는 점에서 정치적 논쟁이 과학적 검증을 대신하는 양상이다. 야당 등 반대 진영은 ‘최저임금의 저주’를 단정한 채 소득주도성장 패러다임을 무너트리려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두 번째 정례회동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지층’이란 특정 정권을 통해 무언가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들을 총칭한다 할 수 있다. ‘묻지마 지지’를 속성으로 하는 ‘팬덤’과는 구분된다. 시민의 정치참여에서 보면 정권은 이처럼 목적이 아니라 높은 수준의 도구일 수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16.4% 오른 것은 생각보다 높았다. 솔직히 저도 깜짝 놀랐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지난 3일 언론 인터뷰 발언이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은 도대체 누가 결정한 것인가.

 정권은 ‘공약’의 관성에 안주하고, 그 정권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지지층은 그들 의제에 ‘과속’ 성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특히 5년 단임이란 마감시간을 생각하면 정권과 지지층의 마음은 급해진다. 이 경우 정교한 전략과 세심한 추진은 실종되기 쉽다. 최저임금 인상 과정은 당장의 원전건설 중단은 관철하지 못해도 ‘원전 없는 세상’을 못박는 계기가 된 ‘탈원전’ 정리 방식과는 달랐다.

 실상 역사의 시간 동안 숱한 ‘개혁’ 좌절은 조급함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 전기 대유학자 이황과 기대승은 서신에서 조광조의 개혁 실패를 두고 “현자들이 위태로울 때를 맞아 경계하지 않고 너무 날카롭게 앞으로만 나아갔다”고 탄식했다.

 조급함은 ‘권력의 획득’을 ‘권위의 획득’과 동일시하는 자만과 만날 때 커진다. 이는 그간 진영들의 대결 정치에선 당연시해온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권력 획득이 결코 권위의 획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위의 획득은 ‘권력 행사가 정당할 때’라는 요건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정당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몇가지다. 성과도 권력의 민주적 행사를 의미하는 설득·소통 등과 함께 그중 하나다.

 지지층 정치는 실상 진영 정치의 덫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이다. 반대편 경쟁자들에게도 가장 손쉬운 대응수단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대’ 깃발만 들면 그들 역시 쉽게 정치적 동력을 얻는다. 무조건에 가까운 반대를 통해 정권의 의제를 좌초시키는 것이 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정은 지지층의 바퀴만으론 매끄럽게 굴릴 수 없다. 집권 초 손쉽게 지지층 동원에 나섰던 정권들은 ‘진실의 순간’에 마주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경제위기라는 난기류를 맞딱뜨려 ‘다른 길’도 기웃거릴 때 이는 지지층과의 불화·균열로 이어지게 된다. “너무 초조하다.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경직성 때문에 오히려 실패할 수도 있다”(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고 통증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지지층은 이를 정권의 변심으로 읽는다. 초반 ‘개혁 속도전’으로 정국을 장악할 때 사려깊은 전략에 대한 공유가 없었기에, 그들은 동원 대상으로만 취급받았을 뿐이라고 느낀다.

 진보 지지층이 이해할 것은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이 정권 역시 ‘5년’이 한계라는 점이다. 혁명적 변화를 제도화하길 바라지만, 그 방법은 설득·타협의 더딘 시간이 흐르는 민주적 ‘개혁’일 수밖에 없다. 5년짜리 정권이 감당할 수 있는 건 변혁의 씨앗을 뿌리고 이어갈 힘을 만드는 정도다. 이 때문에 ‘디테일’이 중요해진다. 모든 성공한 혁명은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꾼” 사람이면서, “리얼리스트가 되자”(체 게바라)고 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지층 정치’를 끌어가야 할 정권의 책무는 더 무겁다. 그들은 언제든 동원 가능한 팬덤과 달리 지지와 성찰·비판이 모두 가능한 정치적 시민이기 때문이다.

 지지층 정치의 ‘진실의 시간’에 마주한 정권이 밟을 수 있는 길은 3가지다. 더욱 지지층만 붙들고 가는 길이 하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걸은 경로다. 두번째는 지지층과 불화를 감수하고 ‘국정의 명분’으로 정면돌파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 같은 식 해법이 단적이다.

 마지막 길은 가장 어렵다. 비전과 전략으로 정권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지지층에 설득하면서 국정과의 거리를 좁히는 길이다. 최저임금 무책임에서 보듯 지지층의 과속 성향을 정치 동력으로만 삼으려 해선 안된다. 지지층의 실망감은 그래서다. 지지층은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첫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지층의 이해와 조금이라도 결을 달리할 땐 더더욱 그렇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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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포용국가’를 내걸었다. 포용국가는 사회정책의 국가비전이다. ‘모두를 위한 나라, 다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이 비전의 이름이다. 포용국가의 목표는 세 가지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배제와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도모하며,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를 일구겠다는 것이다.

포용국가는 3대 비전으로 이뤄져 있다. ‘사회통합 강화’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 ‘사회혁신 능력 배양’이 그것이다. 이 비전들은 다시 각 3개씩의 세부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른바 ‘9대 전략’이다. 정부는 포용국가의 실현을 위해 ‘국민 전 생애 기본생활보장 3개년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용국가론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다.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어느 정부든 집권 5년의 시간을 고려한 국정 운영 로드맵을 마련했다. 그 로드맵은 대개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국가비전에 걸맞은 정책을 추진하고, 이어 이를 통해 도약을 모색한 다음, 마지막으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마무리하려는 장기 계획이 그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집권 2년에 제시하는 비전과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선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에 ‘친서민 중도실용’을,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과 ‘규제 개혁’을 내걸었다. 현재 시점에서 친서민 중도실용, 통일 대박, 규제 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목할 건 정부의 입장에서 집권 첫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지난 1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가 주력했던 세 과제는 적폐 청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한반도 평화 정착이었다. 적폐 청산이 낡은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머지 두 과제는 국정의 양대 영역인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에 관한 것이다. 집권 중반기로 향해가는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과제에 더하여 사회 분야 비전으로서의 포용국가를 내놓은 셈이다.

둘째는 포용국가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다. 앞서 말했듯이 포용국가는 9대 전략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 완화를 위한 소득보장제도 개혁, 공정사회를 위한 기회와 권한의 공평한 배분, 사회통합을 위한 지역균형발전 추진이 ‘사회통합 강화’를 위한 3대 전략이라면, 저출산·고령사회 대비 능동적 사회시스템 구축,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신뢰성 강화 및 일자리 창출, 일상생활의 안전 보장과 생명의 존중이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3대 전략이다. 그리고 ‘사회혁신 능력 배양’을 위한 3대 전략으로는 인적 자본의 창의성·다양성 증진, 성인기 인적역량 강화와 사람 중심의 일터 혁신, 경제-일자리 선순환을 위한 고용안전망 구축이 제시된다.

2018남북정상회담평양’의 첫 날인 18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환영나온 평양 시민들에게 손흔들어 답례하는 장면이 이날 서울 중구 DDP프레스센터에 생중계 되고 있다. 연합뉴스

9대 전략은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국가적 과제들인 일자리 창출, 불평등 해소, 인구절벽 대응 등을 적절히 고려하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포용이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시대적 가치임은 분명하다.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도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평등은 ‘배제’에 맞서는 ‘포용’으로 재정의돼야 하고, 정부의 일차적 과제는 ‘찢겨진 사회’를 ‘포용적 공동체’로 재구조화하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포용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이다. 포용국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정책 구현을 위한 법적 제도의 정비 및 구축이 요구되고, 이를 위해선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사회의 현실이다. 현재 정치사회는 국민을 둘로 나누는 능력은 탁월해도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을 도출하는 역량은 허약하다. 더욱이 여소야대 상황은 새로운 법적 제도를 완비하는 데 작지 않은 어려움을 안겨준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용적 정치의 중요성이다. 지난 1년여의 국정 운영을 돌아보면 역시 ‘문제는 경제’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에서 볼 수 있듯, 정부에 이른바 ‘먹고사니즘’만큼 더 중요한 대내적 과제는 없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에서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에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으며, 이 과정에선 무엇보다 국회와의 협치가 필수조건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를 일궈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주장한 바 있는 포용적 정치를 정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문제는 경제’인 만큼 ‘문제는 역시 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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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17일 ‘균형발전정책과 포용국토’ 국제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은 ‘서울 집중’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송 위원장은 서울·수도권 집중과 관련해 “수도권이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1000대 기업 본사의 74%가 밀집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읍·면 소재 학교 학생이 급격히 줄고, 앞으로 30년 내 228개 시·군·구 중 85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지고 보면 최근 서울과 일부 수도권 중심의 주택가격 급등도 불균형한 국가발전이 초래한 부작용의 산물이다.

국가균형발전은 지속 가능한 한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는 공감이 간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노무현 정부보다 발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최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수도권 공공기관 122곳의 이전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정부는 ‘혁신도시 시즌2’를 계획하고 있다. 그에 앞서 그동안 추진된 혁신도시 실태를 점검하고, 시행착오는 없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공기업을 지방에 내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허허벌판에 건물만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은 지방에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내려가 지방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 교육, 문화시설과 교통 인프라 완비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앞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도 감안한 ‘지방도시 생존플랜’이 있어야 한다. 도시를 확장만 할 게 아니라 기존 도시를 압축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국가균형발전 논의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집중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공기관 이전이 국가균형발전의 전부인 양 받아들여져선 곤란하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터전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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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명박 정부는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물가상승률은 상반기에만 정부 저지선인 4%를 훌쩍 뛰어넘더니 3분기에는 4.8%까지 치솟았다.

민심은 들끓었고 장관들은 동분서주했다. 난데없이 물가감시기구를 자처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이라는 거창한 조직을 신설, 라면 제조사들과 “왜 비싼 라면을 출시했느냐”며 드잡이를 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비 안정화 점검단’이라는 걸 꾸려서 원비를 올린 유치원의 리스트를 뽑아 교육청에 통보, 원비 안정화를 ‘당부’했다.

대형외식업체에는 가격 인상 자제를 ‘협조요청’하고, 편승인상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골목식당들의 밥값 인상 억제를 ‘계도’하는 등 갖가지 구식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현장에 투입됐다. 말이 당부와 요청·계도였지 사실상 값을 올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윽박지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잡는다’는 말에 어폐가 있었던 것이 당시 국제유가·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불안한 물가국면을 겪던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치솟던 물가상승률이 갑자기 한국은행이 내놓은 연간 물가상승률 예상한계치인 4.0%에 오차 없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해 11월 구성 품목들을 새로 넣고 빼서 내놓은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 때문으로, 통계청은 “새 지수에 따라 10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라고 공표했다.

통계청은 “국제기준 권고에 따른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3년에 등장한 권고를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갑자기 이행한 이유까지 설명해내지는 못했다. 지수 구성은 더 합리적으로 바뀌었지만, 그 수상한 시점 탓에 꼼수 개편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한참이나 난타당했다.

청와대가 최근 단행한 통계청장 교체 인사가 논란이다. 악화된 고용 통계가 쏟아지는 가운데 최근 저소득층 소득분배까지 악화됐다는 나쁜 소식 때문에 경질된 것 아니냐는 게 야당에서 제기하는 비판의 골자다.

여기에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게 심혈을 기울였다”거나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는 황수경 전 통계청장의 말까지 더해지며 논란은 증폭되는 형국이다.

“통상적인 인사일 뿐”이라며 말을 아끼던 청와대는 파문이 확산되자 “통계청 독립을 훼손할 지시를 내린 적이 전혀 없다”며 부랴부랴 차단에 나섰다. 황 전 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그분의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통계청의 최근 생산물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여왔다. 소득분배지표 악화와 관련해 표본추출이 제대로 이뤄졌느냐며 구체적인 설명과 빠른 대처를 주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여당의 불만이 금시초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청와대는 어쨌든 이번 인사를 ‘통상적인 인사’라고 했다.

청와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으려고 애써봐도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차관급 인사를 둘러싼 그 모든 조건과 환경이 ‘지금이 적기’라고 외치고 있어도 시기적으로 정치적인 오해를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했다면 기다렸어야 한다. ‘다급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자초한 셈이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격언은 너무 구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이런 정무적 판단조차 고려하지 못하는 수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이 중차대한 시기에 차관급 인사 하나로 문재인 정부는 통계청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정부라는 의혹의 꼬리표를 하나 더 달게 됐다. 가뜩이나 불리한 소득주도성장 담론에서 상대에게 또 선수를 내준 패착이다.

<이호준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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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이라 알려진 소득주도성장이 사면초가에 처했다. 언론은 연일 이전보다 더 나빠진 고용과 분배지표를 거론하며 맹폭에 나서고 있다. 야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포기하고 경제정책 담당자를 교체하라며 으름장을 놓는 와중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최저치를 경신했다.

지표만 놓고 보면 할 말이 별로 없게 된 것도 사실인데, 대통령은 “우리는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단호한 입장을 재확인하는가 하면, 장하성 정책실장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더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청와대의 이런 입장에 대해 ‘국민과의 전면전 선포’라고까지 비판하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뒤)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더 세밀한 검토와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특히 외국에서는 ‘임금주도성장’이라고 불리는 정책이 한국에서는 자영업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해 ‘소득주도성장’으로 변형되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자영업자가 1차적 피해자가 된 점. 소득주도성장의 선순환 효과가 수학적으로는 발견되지만 실제 시장에서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나타나게 되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미흡한 점.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극히 일부라고 말하지만 다른 정책수단들은 무엇이며 얼마나 잘 시행되어 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 소득주도성장은 단순한 성장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경제·사회정책의 종합 패키지인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노력이 지지부진한 점. 이런 것들은 시급히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득주도성장이 단칼에 폐기되어야 할 정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업 투자가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 난무하지만 대안은 마땅치 않은 형국이다.

소득주도성장 논란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의 거버넌스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요 정책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설계하고, 토론을 거쳐 정책에 합의하고,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면 일관되게 추진하면서 정책현장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능력 말이다.

우리가 성장률 하락을 겪어온 것은 어느새 25년이 되었다.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해마다 0.2%, 한 정부의 임기 5년이 지날 때마다 1%씩 법칙적으로 떨어져왔다. 25년이 지나는 동안 9%대 성장률은 2%대로 추락했다. 단기적인 경기하락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 추세이고 구조적 문제이다. 이것을 반전시키지 못하면 2030년대 마이너스 성장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별·분기별 지표를 놓고 일희일비할 일도 아니고, 정권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옹호하거나 정권의 힘을 빼기 위해 무조건 트집 잡을 일도 아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걱정스럽다. 일차적으로 정부의 책임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한 시대적 배경과 진정성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주류 성장이론에 비해 검증이 부족한 이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세심한 준비와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했다. 장기적 하락 추세를 뒤집기 위해 결단이 필요한 시기임을 알리고, 예상되는 고통은 무엇이며,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어떤 대책들을 세울 것인지 미리 설득하고 합의해야 했다. 정책의 한 축이 되어야 할 각 정당들의 반응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나간 정부들에서도 늘 그래왔듯이, 대선에 진 야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새 정부의 정책실패가 드러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공격거리가 생기면 그 부분만을 선정적으로 부각하면서 최대한 상처를 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불장난’ ‘세금중독’ ‘소주방(소득주도성장 3인방)’ ‘무데뽀’와 같은 비판들은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입에 착 붙을지는 모르지만 합리적인 정책을 만드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구체적인 대안과 예상되는 정책효과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차기 집권의 가능성을 높여줄지는 모르겠지만 25년 장기 하락추세를 뒤집는 데는 방해가 됐으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당대표 선출이라는 커다란 정치적 이벤트가 있었다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지키자는 것 이외에 어떤 자기 성찰이 있었는가.

정치인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 비토 세력과 무조건적 지지 세력이 낳고 있는 폐해를 이제 진지하게 고려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사회적 합의의 산실이 되어야 할 노사정대표자회의는 4개월 동안 서로 만나지도 않았다. 사회적 합의 없이 소득주도성장은 성공할 수 없다. 합리적인 정책을 만들고 합의하는 능력이 절실하다. 이것이 없다면 어떤 정책도 25년 장기 하락 추세를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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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다음주 중 장관 4~5명을 교체하는 중폭의 개각을 할 것이라고 한다. 사실 개각은 지금도 늦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 없이 출범하면서 조각이 서둘러 이뤄졌음에도 1년이 넘도록 개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을 쉽게 교체하지 않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 때문이다. 그동안 능력과 자질이 의심되는 장관들의 실명이 거론된 지도 오래다. 국방부 장관은 기무사 계엄령 문건 방치를 비롯해 구설에 휘말렸던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민망하다. 교육부 장관은 대입제도 개편안 등 오락가락 정책을 놓고 무책임하고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쓰레기 대란, 미투 운동, 노동개혁을 놓고 제대로 역할을 못한 환경부·여성가족부·고용노동부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주요한 역할인 갈등 조율은 기능을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들은 장관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인 50%대로 떨어진 것도 여러 현안에서 빚어진 실망이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는 고용·성장·가계소득 등 모든 지표가 악화일로에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제·민생을 이유로 지지층의 이탈 현상이 나오는 것은 수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시민들은 집권 2년차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구호나 슬로건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고 성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가 상충되는 현안을 해결해내는 역량도 바라고 있다.

이제 얽히고설킨 현안을 풀고 시민의 힘을 한데 모아 국정운영의 새로운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개각은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급선무다. 새 내각은 정책 성과를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책만 발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충실히 이행하고 결과까지 책임질 수 있는 추진력과 소통능력, 책임감이 중요하다. 개혁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뚝심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문재인 정부 첫 개각은 국정을 다잡고 내각 분위기를 쇄신하는 쪽으로 과감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 가급적 시기를 앞당기고 개각 폭과 인재풀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때보다 심기일전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정치권의 협력을 끌어내고 시민이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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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시민참여형 개혁기구는 경찰청이 만든 경찰개혁위원회였다. 새 정부 출범부터 경찰개혁위원회 출범까지 달포밖에 걸리지 않았다. 구성도 남달랐다. 위원들은 모두 외부 인사였다. 경찰관이나 전직 경찰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고위직 경찰관들은 갑자기 낯빛을 바꿔 개혁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처구니없고 속은 쓰렸지만, 그것도 촛불의 성과라 여기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개혁성과였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모두 30건의 개혁안을 발표했는데, 다행히 어지간한 개혁안은 두루 담아냈다. 2005년 남영동 보안분실(예전의 대공분실) 폐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하던 전국 각지의 보안분실들이 모두 폐쇄된다. 서울만 해도 홍제동, 옥인동, 신정동, 장안동, 신촌 등지에 보안분실이 있다. 정권 차원에서 눈여겨보는 시국사범들이 경찰서가 아닌 분위기부터 살벌한 보안분실에서 잔뜩 위축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이상한 일은 앞으론 없게 되었다. 정보분실도 사라진다. 의경들의 노동시간은 최대 주당 45시간을 넘지 않아야 하고,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휴식 기회를 보장받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외출도 가능하게 된다. 영창제도는 이미 사라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경찰관들도 더디지만,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시작한다. 당장 노동조합을 설립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마땅하나, 일단은 직장협의회부터 시작한다. 남성 위주의 조직인 경찰청에서 적극적인 성평등 정책도 실현한다. 당장 성평등정책관부터 외부 인사를 채용했고, 적극적인 여성 우대 정책을 인사에서부터 펼치고 있다. 여러 경찰개혁이 진행되고 있다. 검찰, 군대, 국정원, 감옥 등 인권침해와 관련한 논란이 많은 곳에서도 다양한 개혁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생각처럼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할 때가 많지만, 전체적으로는 환영할 만하다. 인권분야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있다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경찰개혁위원회가 낸 개혁방안 중에 ‘시민에 의한 민주적 외부 통제기구 신설’이라는 게 있다. 만약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어 경찰이 실질적으로 수사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훨씬 힘센 경찰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의 부작용과 우려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영국(잉글랜드, 웨일스)의 IPCC(Independent Police Complaint Commission, 독립적 경찰 비리민원조사위원회)를 모델로 시민적·민주적 통제기관을 만들자는 거다. 명칭은 ‘경찰 인권·감찰 옴부즈맨(또는 위원회)’이라고 붙였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오로지 경찰만 감시하는 기구다. 경찰관의 법령 준수 여부를 감찰하고, 위법 부당한 행위가 드러나면 경찰청에 징계를 권고하거나 경찰관의 범죄사실을 직접 수사할 수도 있다.

영국의 IPCC는 법률 개정으로 IOPC(Independent Office for Police Conduct)로 바뀌고 위상과 업무도 예전보다 줄어들었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경찰과 전혀 다른 독립적 조직이 경찰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경찰의 잘못을 시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문제는 아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구가 이미 존재한다는 거다.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다. 인권위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별도의 전담 감시기구가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인권위에 대한 기대가 적다는 거다.

인권위의 위상은 어디가 바닥인지 모를 지경으로 추락해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 특별보고를 부활시키고, 정부 부처에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데도 인권위 위상이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인권위 설립은 그 자체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50년 만의 정권교체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국가인권기구 설립이라는 그동안의 염원을 현실화했다.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적 인권기구는 김대중의 대선 공약이었고, 그 공약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행되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설립과 동시에 조직의 기반을 닦은 인권위는 노무현 정부 때 여러 가지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 등 인권위가 주도한 쟁점이 많았다. 한마디로 시끌벅적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인권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명박 정권은 위상을 추락시킬 방도를 고민했다. 법 개정이 여의치 않자, 위원장 등 지도부를 바꿔 위원회 성격을 변화시켜갔다. 정권의 의도대로 인권위의 위상은 추락했고 누구도 인권위를 자신의 인권을 지켜줄 호민관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장 큰 잘못은 2009년 7월부터 2015년 8월까지 6년 동안 인권위원장을 맡은 현병철이 저질렀지만, 지금 위원장인 이성호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꼭 현병철과 이성호만의 잘못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 즉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그리고 사무처 직원들도 공범의 혐의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현병철 체제에 저항한 일부가 있었지만, 임기가 다 끝나갈 때쯤 사임한다든가 진정성을 믿기 어려운 대목도 많았다. 그렇게 인권위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혀져 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인권위가 바뀌었는지 뭘 어떻게 고쳤다는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지난 정권과 달리 비교적 민감한 인권의제에 대해 의견을 내는 일도 간혹 있지만, 그건 이미 쟁점화된 사안들에 대한 뒷북이었을 뿐이다. 인권위가 의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주도하는 일은 없었다. 설립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공염불만 외우며 진정사건 처리 때문에 힘들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온갖 인권문제가 터져 나오는 지금도 인권위는 조용하기만 하다. 그래서 인권위는 지금 악플조차 별로 없는 무플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관료들에겐 무플이 훨씬 좋을 게다. 월급이야 꼬박꼬박 나오는데, 굳이 논란에 휩싸여 일감을 늘릴 일도 감정을 상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오늘도 인권위는 조용하기만 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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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만 1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해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83%로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주년 지지율 중 가장 높다. 어쩌면 일반국민은 남북정상회담 성공으로 안보불안이 현저히 줄어든 가운데 문 대통령이나 문 정부가 지금껏 보여온 국정 개혁의지의 진정성을 신뢰하면서 당장의 정책 효과에 연연하기보다 아직은 지지를 보내야 할 때라고 판단하기 때문 아닐까? 그간 누적되어온 문제를 해결하는 데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주요 기조는 탈원전·탈석탄이라 불리는 원전과 석탄의 단계적 감축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즉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이다. “에너지 전환”은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등장, 문 정부 출범으로 주요 국정과제가 되었다.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 명동 한국YWCA회관 앞에서 3월 20일 시민들이 핵발전에 반대하는 ‘탈핵 불의 날’ 캠페인을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YWCA 탈핵 불의 날 캠페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위험한 불’인 핵발전을 멈추자는 캠페인으로 이날이 200회째다. 권도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해 시민환경연구소가 학계와 시민사회의 환경·에너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서 전문가들은 5점 만점에 3.12점을 줬다. 중앙값인 3점을 살짝 넘는,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가다. 같은 기준으로 실시된 예전 조사에서 박근혜 정부가 2015년엔 2.2점, 2016년에 1.48점을 받은 데 비해서는 진일보한 결과다.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지난 1월에 함께 실시한 ‘정부의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국민 인식 현황조사’에서는 긍정 평가 40%(매우 잘함 5%, 잘함 35%), 보통 40%, 부정 평가 20%(못함 15%, 매우 못함 5%)로, 5점 만점 환산 시 3.2점이었다. 사회 전반적인 동의를 뜻한다.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에너지를 보는 일반 시민의 관점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경제성장을 위한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보다 ‘안전과 생명’이 더 우선이란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은 길고도 고된 여정일 수밖에 없다. 우린 이제 겨우 출발선을 지났다. 문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에도 사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조직과 인력, 심지어 예산까지 많은 부분이 에너지전환에 맞서 있다. 전환되어야 할 기존 에너지체제를 지탱하거나 확장하려고 만들었던 것이었고 전환 움직임에 반대하는 구성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기에. 원전의 단계적 감축이란 정책기조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진흥하는 법과 위원회가 엄연히 존재하고 연구개발비도 여전히 엄청나다.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려는 지자체장들이 늘고 있지만 에너지분권을 실현하기 어렵고 지자체장들의 에너지 전환 의지도 같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국토해양부 등 부처 간 엇박자도 있어 조율과 조정이 필요하다. 사라질 일자리와 생겨날 일자리가 있고 에너지산업생태계가 변화되기에 정의로운 전환의 기획이 필요하다. 에너지 시장, 특히 전력 시장 구조개편도 필요하다. 제대로 된 사회환경비용의 내부화를 위해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경유세 상대가격 조정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에너지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한반도 전체의 에너지 전환 밑그림도 그려야 한다. 이 일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던 길을 가고 있다. 이제 총론이 아니라 각론이 필요하다. 정부 혼자서는 어렵다. 최근에 전문가와 기업인, 활동가, 정치인들이 함께 모인, 에너지전환을 위한 열린 플랫폼으로 ‘에너지전환포럼’이 출범했고 ‘지역에너지전환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도 출범했다. 협치의 공간을 넓히고 사회적 대화를 늘리자. 전환의 길은 만들어가야 하기에.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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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첫 위기(?)를 맞고 있다. 지지층이든, 아니든 국정 지지율 ‘60%’ 어름에 시끌벅적하다. 지지층이 염려를 담은 분석이라면, 반대층은 ‘거 봐라’는 투로 예언의 실현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전히 국민 3명 중 2명이 지지한다. 70% 안팎을 비행하던 그간 지지율이 지나치게 높았을 뿐 지금도 낮은 게 아니다. 이처럼 ‘고공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를 특징짓는 열쇳말의 하나고, 그 때문에 작은 흔들림조차 파문을 그려내는 ‘지지율의 함정’과도 같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간 ‘지지율 정치’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국민이 외교안보 디딤돌이자 이정표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론’이다. 여론을 기준 삼기 가장 어려운 외교에서조차 그의 기준점은 ‘국민’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80분 남짓한 회견 동안 ‘국민’만 64회 되풀이했다. 그다음 많았던 ‘평화’가 15회임을 감안하면 압도이다. 문 대통령은 회견 내내 “국민의 뜻과 요구를 (국정의) 나침반 삼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인의 “애국” 발언을 100% 믿지 못하듯, 권력의 ‘국민’ 또한 얼마만큼의 진정성으로 이해해야 할지엔 늘 의문부호가 붙는다. 야당의 ‘포퓰리즘’ ‘쇼통’ 공격은 그 약한 틈을 파고든 것이기도 하다.

실상 문재인 정부의 여론관은 정치적·정신적 뿌리라 할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도 다르다.

“여론조사 속에는 비전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기에, 또 비전을 달성할 전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론은 참고자료로 해야지 쫓아가다 보면 장기적 과제를 잊어버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참모들에게 한 당부다. 그에게 여론은 “몇발짝 앞서 나갈까 하는 참고자료”였다. 때로 여론에 한참 앞서 불화를 감수하고 깃발을 들었던 사례는 ‘증세론’ 등 한둘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새 시대의 맏이’를 꿈꾼 지사(志士)적 정치인이라면, 문 대통령은 국민 여론과의 길항에 더욱 예민한 현실적 권력이다. 노 전 대통령이 때로 토론하고 설득하려 했다면, 문 대통령은 시민의 엄호를 받으며 시민과 함께 움직이려 한다. 노 대통령이 ‘제도’의 깃발을 들고 변혁의 첫 열에서 선다면, 문 대통령은 더디더라도 문화·풍토의 변화를 겨냥한다. 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대통령 때 법과 시스템을 바꾸면 사회가 바뀔줄 알았는데 정작 보수정권으로 바뀌니 소용이 없더라.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기본적 풍토의 변화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에게 ‘도대체 노무현 정치와 문재인 정치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문재인 정치는 다수의 세력을 가졌다”였다. 문재인 정부는 다수를 추구한다. 비전을 비슷하게라도 성사시키거나 꺼내기 위한 ‘전략’을 추구한다. 여권 한 핵심 관계자는 이를 “기반을 넓히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 친노·친문 인사는 “노무현 정부 때 낮은 지지율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크다. 지지율이 낮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은 성패를 떠난 꿈을 꾸었지만, 문재인은 꿈 이전에 ‘실패할 수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권력의 출발점이다.

한 친노 인사는 “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벽하지 않으면 손을 안 댄다. 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결도가 없어도 일단 뛰어들어 현안을 해결한다. 그리고 급한 일일수록 국회에 안 맡긴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점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에 어느 진영도 ‘100% 만족’은 어려울 것 같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처럼 우리 사회 의제들을 차근차근 모두 국정 메뉴에 올리겠지만, 그 결론은 공약대로만은 아닐 수 있다. 정권은 방향과 목표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최종 선택은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향후 문재인 정부와 진보층의 ‘불화’에 대한 염려는 그래서 나온다.

현 여권의 ‘정권 재창출 열망’에서 지지율 정치의 동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과거 ‘정권 뺏겨도 낭패날 일은 없다’던 오만의 낭패감을 절절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수와 더디더라도 문화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시민정치의 완성이 지금 정부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이제 첫 위기의 지점에서 ‘지지율 정치’는 새 좌표를 찾아야할 과제에 직면했다. 그간 고공 지지율은 실상 전 정권 적폐의 반사이익과 촛불혁명의 지지율일뿐 문재인 정부가 증명한 지지율은 아니었다. 부동산 등 난제들에서 ‘국정 능력→지지율→국정 동력’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선순환 궤도의 좌표를 제시해야할 시점이다.

긴 호흡에서 문재인의 ‘현실’이 노무현의 ‘꿈’과 만나 꽃피는 접점은 결국 ‘제도’다. 둘 모두 지향점은 여론과 정치적 다수가 일치하는 정치체제의 제도화에 있기 때문이다. 개헌이 그 한 통로일 수 있으며, 협치를 넘는 연정 문제는 이 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될 질문이다. 모두 ‘권력은 유한하지만, 공동체는 무한하다’는 정치의 궁극적 경구에 다가가는 길이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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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국 정부가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 제도의 희생양이 된 여성은 26개국 출신 40만명 이상이다. 중국인 20만명을 포함해 독일·영국·미국 간호사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다. 따라서 일대일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이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한·일 간에 합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이런 국제적인 인권문제를 졸속 합의로 땡처리한 당사자가 1965년 한일협정을 강행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9일 오후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을 발표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쩌면 그런 박근혜 전 대통령이어서 별다른 일이 없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 4월부터 12차례 국장급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을 못했다. 한·일 양국에 입장차가 있다는 언론 보도만 있었기에 별다른 결과가 나올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전쟁범죄를 다루는 협상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는 만큼 미국의 요구든 뭐든 협상테이블에 나온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결과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림비를 세우는 등 이 문제 해결에 진력해온 우리는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 7개월 만인 지난 9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10억엔을 일본에 돌려주고 화해·치유재단도 해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한·일 합의에 사망선고를 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한국이 합의를 파기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세계인권에 관한 것인 만큼 두 나라의 합의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으며, 앞으로 국제기준에 맞춰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일관계 안에 위안부 문제를 가두는 2015년 양국 합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국제무대에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부터 재개해야 한다. 우리도 캘리포니아 교육부가 채택한 10학년 교과과정 2016년 개정판에 포함된 한·일 합의에 대한 일본 외무성 링크를 없애달라고 다시 요청할 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요청해서 포함된 이 링크를 삭제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간단히 풀 수 있는 첫 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와 피해 당사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세계의 인권문제다. 가장 앞장서서 가장 오랫동안 싸워온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에 맞는 해결을 이루도록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더 늦기 전에.

<김현정 미국 가주한미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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