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만 1년이 지났다.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해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극과 극을 오가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83%로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주년 지지율 중 가장 높다. 어쩌면 일반국민은 남북정상회담 성공으로 안보불안이 현저히 줄어든 가운데 문 대통령이나 문 정부가 지금껏 보여온 국정 개혁의지의 진정성을 신뢰하면서 당장의 정책 효과에 연연하기보다 아직은 지지를 보내야 할 때라고 판단하기 때문 아닐까? 그간 누적되어온 문제를 해결하는 데 1년이란 시간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에너지정책의 주요 기조는 탈원전·탈석탄이라 불리는 원전과 석탄의 단계적 감축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즉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의 전환”이다. “에너지 전환”은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 등장, 문 정부 출범으로 주요 국정과제가 되었다.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 명동 한국YWCA회관 앞에서 3월 20일 시민들이 핵발전에 반대하는 ‘탈핵 불의 날’ 캠페인을 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YWCA 탈핵 불의 날 캠페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위험한 불’인 핵발전을 멈추자는 캠페인으로 이날이 200회째다. 권도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해 시민환경연구소가 학계와 시민사회의 환경·에너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서 전문가들은 5점 만점에 3.12점을 줬다. 중앙값인 3점을 살짝 넘는,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가다. 같은 기준으로 실시된 예전 조사에서 박근혜 정부가 2015년엔 2.2점, 2016년에 1.48점을 받은 데 비해서는 진일보한 결과다.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지지가 높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과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가 지난 1월에 함께 실시한 ‘정부의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전환정책에 대한 국민 인식 현황조사’에서는 긍정 평가 40%(매우 잘함 5%, 잘함 35%), 보통 40%, 부정 평가 20%(못함 15%, 매우 못함 5%)로, 5점 만점 환산 시 3.2점이었다. 사회 전반적인 동의를 뜻한다.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 지지는 에너지를 보는 일반 시민의 관점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경제성장을 위한 저렴한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보다 ‘안전과 생명’이 더 우선이란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전환은 길고도 고된 여정일 수밖에 없다. 우린 이제 겨우 출발선을 지났다. 문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에도 사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조직과 인력, 심지어 예산까지 많은 부분이 에너지전환에 맞서 있다. 전환되어야 할 기존 에너지체제를 지탱하거나 확장하려고 만들었던 것이었고 전환 움직임에 반대하는 구성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기에. 원전의 단계적 감축이란 정책기조에도 불구하고 원전을 진흥하는 법과 위원회가 엄연히 존재하고 연구개발비도 여전히 엄청나다.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려는 지자체장들이 늘고 있지만 에너지분권을 실현하기 어렵고 지자체장들의 에너지 전환 의지도 같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국토해양부 등 부처 간 엇박자도 있어 조율과 조정이 필요하다. 사라질 일자리와 생겨날 일자리가 있고 에너지산업생태계가 변화되기에 정의로운 전환의 기획이 필요하다. 에너지 시장, 특히 전력 시장 구조개편도 필요하다. 제대로 된 사회환경비용의 내부화를 위해 전기요금 체계 개편과 경유세 상대가격 조정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판문점선언 이후 남북에너지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한반도 전체의 에너지 전환 밑그림도 그려야 한다. 이 일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던 길을 가고 있다. 이제 총론이 아니라 각론이 필요하다. 정부 혼자서는 어렵다. 최근에 전문가와 기업인, 활동가, 정치인들이 함께 모인, 에너지전환을 위한 열린 플랫폼으로 ‘에너지전환포럼’이 출범했고 ‘지역에너지전환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도 출범했다. 협치의 공간을 넓히고 사회적 대화를 늘리자. 전환의 길은 만들어가야 하기에.

<윤순진 서울대 교수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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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첫 위기(?)를 맞고 있다. 지지층이든, 아니든 국정 지지율 ‘60%’ 어름에 시끌벅적하다. 지지층이 염려를 담은 분석이라면, 반대층은 ‘거 봐라’는 투로 예언의 실현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전히 국민 3명 중 2명이 지지한다. 70% 안팎을 비행하던 그간 지지율이 지나치게 높았을 뿐 지금도 낮은 게 아니다. 이처럼 ‘고공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를 특징짓는 열쇳말의 하나고, 그 때문에 작은 흔들림조차 파문을 그려내는 ‘지지율의 함정’과도 같은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간 ‘지지율 정치’의 달콤함에 길들여져 있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국민이 외교안보 디딤돌이자 이정표입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밝힌 ‘국민론’이다. 여론을 기준 삼기 가장 어려운 외교에서조차 그의 기준점은 ‘국민’이다. 실제 문 대통령은 80분 남짓한 회견 동안 ‘국민’만 64회 되풀이했다. 그다음 많았던 ‘평화’가 15회임을 감안하면 압도이다. 문 대통령은 회견 내내 “국민의 뜻과 요구를 (국정의) 나침반 삼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치인의 “애국” 발언을 100% 믿지 못하듯, 권력의 ‘국민’ 또한 얼마만큼의 진정성으로 이해해야 할지엔 늘 의문부호가 붙는다. 야당의 ‘포퓰리즘’ ‘쇼통’ 공격은 그 약한 틈을 파고든 것이기도 하다.

실상 문재인 정부의 여론관은 정치적·정신적 뿌리라 할 노무현 정부와 비교해도 다르다.

“여론조사 속에는 비전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기에, 또 비전을 달성할 전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론은 참고자료로 해야지 쫓아가다 보면 장기적 과제를 잊어버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참모들에게 한 당부다. 그에게 여론은 “몇발짝 앞서 나갈까 하는 참고자료”였다. 때로 여론에 한참 앞서 불화를 감수하고 깃발을 들었던 사례는 ‘증세론’ 등 한둘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새 시대의 맏이’를 꿈꾼 지사(志士)적 정치인이라면, 문 대통령은 국민 여론과의 길항에 더욱 예민한 현실적 권력이다. 노 전 대통령이 때로 토론하고 설득하려 했다면, 문 대통령은 시민의 엄호를 받으며 시민과 함께 움직이려 한다. 노 대통령이 ‘제도’의 깃발을 들고 변혁의 첫 열에서 선다면, 문 대통령은 더디더라도 문화·풍토의 변화를 겨냥한다. 문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대통령 때 법과 시스템을 바꾸면 사회가 바뀔줄 알았는데 정작 보수정권으로 바뀌니 소용이 없더라.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기본적 풍토의 변화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여권 인사에게 ‘도대체 노무현 정치와 문재인 정치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라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문재인 정치는 다수의 세력을 가졌다”였다. 문재인 정부는 다수를 추구한다. 비전을 비슷하게라도 성사시키거나 꺼내기 위한 ‘전략’을 추구한다. 여권 한 핵심 관계자는 이를 “기반을 넓히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 친노·친문 인사는 “노무현 정부 때 낮은 지지율의 트라우마와 상처가 크다. 지지율이 낮으면 아무것도 안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노무현은 성패를 떠난 꿈을 꾸었지만, 문재인은 꿈 이전에 ‘실패할 수 없다’. 지극히 현실적인 권력의 출발점이다.

한 친노 인사는 “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벽하지 않으면 손을 안 댄다. 문 대통령은 기승전결 완결도가 없어도 일단 뛰어들어 현안을 해결한다. 그리고 급한 일일수록 국회에 안 맡긴다”고 말했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그 점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에 어느 진영도 ‘100% 만족’은 어려울 것 같다. 신고리 원전 5·6호기처럼 우리 사회 의제들을 차근차근 모두 국정 메뉴에 올리겠지만, 그 결론은 공약대로만은 아닐 수 있다. 정권은 방향과 목표를 제시할 수 있을 뿐, 최종 선택은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향후 문재인 정부와 진보층의 ‘불화’에 대한 염려는 그래서 나온다.

현 여권의 ‘정권 재창출 열망’에서 지지율 정치의 동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과거 ‘정권 뺏겨도 낭패날 일은 없다’던 오만의 낭패감을 절절하게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수와 더디더라도 문화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시민정치의 완성이 지금 정부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도 된다.

이제 첫 위기의 지점에서 ‘지지율 정치’는 새 좌표를 찾아야할 과제에 직면했다. 그간 고공 지지율은 실상 전 정권 적폐의 반사이익과 촛불혁명의 지지율일뿐 문재인 정부가 증명한 지지율은 아니었다. 부동산 등 난제들에서 ‘국정 능력→지지율→국정 동력’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선순환 궤도의 좌표를 제시해야할 시점이다.

긴 호흡에서 문재인의 ‘현실’이 노무현의 ‘꿈’과 만나 꽃피는 접점은 결국 ‘제도’다. 둘 모두 지향점은 여론과 정치적 다수가 일치하는 정치체제의 제도화에 있기 때문이다. 개헌이 그 한 통로일 수 있으며, 협치를 넘는 연정 문제는 이 진영에서 끊임없이 제기될 질문이다. 모두 ‘권력은 유한하지만, 공동체는 무한하다’는 정치의 궁극적 경구에 다가가는 길이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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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국 정부가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 제도의 희생양이 된 여성은 26개국 출신 40만명 이상이다. 중국인 20만명을 포함해 독일·영국·미국 간호사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다. 따라서 일대일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이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한·일 간에 합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이런 국제적인 인권문제를 졸속 합의로 땡처리한 당사자가 1965년 한일협정을 강행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9일 오후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을 발표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쩌면 그런 박근혜 전 대통령이어서 별다른 일이 없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 4월부터 12차례 국장급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을 못했다. 한·일 양국에 입장차가 있다는 언론 보도만 있었기에 별다른 결과가 나올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전쟁범죄를 다루는 협상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는 만큼 미국의 요구든 뭐든 협상테이블에 나온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결과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림비를 세우는 등 이 문제 해결에 진력해온 우리는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 7개월 만인 지난 9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10억엔을 일본에 돌려주고 화해·치유재단도 해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한·일 합의에 사망선고를 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한국이 합의를 파기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세계인권에 관한 것인 만큼 두 나라의 합의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으며, 앞으로 국제기준에 맞춰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일관계 안에 위안부 문제를 가두는 2015년 양국 합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국제무대에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부터 재개해야 한다. 우리도 캘리포니아 교육부가 채택한 10학년 교과과정 2016년 개정판에 포함된 한·일 합의에 대한 일본 외무성 링크를 없애달라고 다시 요청할 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요청해서 포함된 이 링크를 삭제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간단히 풀 수 있는 첫 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와 피해 당사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세계의 인권문제다. 가장 앞장서서 가장 오랫동안 싸워온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에 맞는 해결을 이루도록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더 늦기 전에.

<김현정 미국 가주한미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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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눈이 많은 올해다. 밤새 소복이 쌓인 눈처럼 12월의 밤들도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한 해의 끝에 닿고 있다. 지난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들 마음속 시간들을 포근히 감싸는 하얀 위로들이다.

지난 26일자 경향신문의 1면 첫 화두는 ‘77만원세대’였다. 통계청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지난해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 한 달 소득이 78만원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여름 우석훈·박권일이 저서 <88만원세대>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청년의 불안한 삶을 공론화한 지 꼭 10년 만이다. ‘88만원세대’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면, ‘77만원세대’는 스스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고 한다. ‘생’ 자체를 부정하는 허깨비 같은 삶들의 절망이 가슴에 박힌다.

출처:경향신문DB

20대의 상위 5%만 공무원·대기업 같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나머지 95%는 비정규직인 ‘0.5 대 9.5’의 사회가 88만원세대의 사회상이라면, ‘77만원세대’는 더욱 악화됐을 터. 어쩌면 ‘0.1 대 9.9’의 사회가 지금 우리 눈앞에 서성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절망의 심연은 다른 곳에 있다. 추락하는 청년의 삶과 달리 국가·기업의 부는 커지는 모순이다. 2006년 국내총생산(GDP)은 847조8760억원이었다. 지난해는 1637조42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성장했다. ‘30대 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 추이’ 자료를 보면 기업들 유보금은 2006년 127조4000억원에서 2015년 478조원으로 275% 폭증했다.

자본은 고삐 없이 증식하지만, 공동체는 깊은 속병이 들고 있다. 헤어날 길 없는 불평등은 절망을 낳는다. 절망은 분노를 만든다. 분노는 한 사회를 파괴한다. 이런 공동체가 지속가능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짓누르는 질문이다. 부의 편중과 민심의 균열은 모든 국가들의 말기적 증상이었다. 그래서 부의 편중의 통제는 정치의 책무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국무위원들과의 만찬에서 “촛불민심을 받들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은 1년, 2년 이렇게 금방 끝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적폐청산의 목표가 비정상 권력의 정상화, 즉 우리 사회 권력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면 참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탄핵과 대선을 통해 정치권력의 변화를 이뤄냈을 뿐 우리 사회 각 권력들의 관계가 정상화됐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결국 적폐청산의 궁극적 지향점은 구성원들의 삶이어야 한다.

적폐청산의 완성은 공동체를 위협할 만큼 심화한 부의 편중과 불균형의 해체다. 이는 ‘자본의 민주적 통제’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권력에 휘둘리고 위협받는 정치·사회 권력을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손)’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정치·사회 권력의 극복은 지금 모든 국가들의 고민이고 과제이기도 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미국 정치 시스템은 갈수록 ‘1인 1표’ 원리보다는 ‘1달러 1표’ 원리에 동화돼 가고 있다”고 탄식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 1호 정책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었다. 그 첫 발자국으로 찾았던 인천공항공사는 26일 비정규직 1만명의 정규직화를 위해 3000명은 직접 고용, 나머지 7000명은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키로 했다. 그 확대판이라 할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담은 새해 예산안도 “포퓰리즘” 비난 등 진통 끝에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다. ‘중소기업 다 망한다’는 일각의 선동에도 최저임금 인상도 일단 결정됐다.

이처럼 하나하나 지향하는 것은 소득과 자본의 분배, 편중·편식의 완화에 맞춰져 있다. ‘임금 상승-소비 촉진-생산 증가’의 선순환으로 경제성장과 복지를 모두 이뤄내겠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자본의 민주적 통제의 다른, 아주 완화된 표현으로 읽힌다.

하지만 고삐 없는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운위될 때마다 따라붙는 이야기는 ‘기업 죽이기·때리기’다. 90% 시민의 삶은 나빠지는데 국가·기업은 살찌는 모순 속에서 자본의 민주적 통제가 ‘기업 괴롭히기’로 둔갑하는 현실이 기막히다. 민주적 권력의 권위를 위협할 만큼 자본의 힘은 세다.

자본이 권위를 가진 권력에 의해 정상 통제될 때 개인의 삶도 나아진다는 경험을 주는 것이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그 시간은 길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는 여론의 동력에도, 입법 과정에선 소수정권임을 연일 확인하는 게 현실이다. 자본의 민주적 통제와 이를 밀고 가야 할 정권의 현실적 조건의 괴리는 크다. 앞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넘어서는 길은 그만큼 험난하다. 영리한 정치권력의 유능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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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꿈틀거리자 즉각 시장에 개입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 실패 경험과 이에 대한 반성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검찰 개혁도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고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솎아내더니 올해 정기국회 법안 통과를 목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속전속결·전광석화라 할 만하다. 경제 분야에서는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단속하는 등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북한의 핵 실험 같은 대형 악재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60~70%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수능이 개편되는 시기가 2022학년도로 미뤄지면서 지금의 중학교 2학년생들이 개편된 시험을 치르는 첫 세대가 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교육 개혁은 답답하고 더디기만 하다. 교육의 본령과 거리가 먼 사건·사고 뒷수습에 허둥대는 모습이 참여정부 당시 교육 난맥상을 떠올리게 한다.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두 개의 미흡한 방안을 내놓고 학생·학부모들의 선택을 강요하다 결국 백지화하고 결정을 1년 뒤로 미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논란과 정부 입시안에 반대하는 고교생들의 시위가 있었던 2005년 상황과 비슷하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 등을 놓고 양분된 교직 사회는 노무현 정부 첫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두고 전교조와 교총이 반목하던 것과 닮은꼴이다. 교육 당국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부른 ‘교원 임용 절벽’ 사태는 여전히 답이 없고, 사립유치원 집단 휴업은 막판에 가까스로 멈췄지만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교육계의 화약고가 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 부총리는 교육 사령탑으로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아직 교육부 진용조차 꾸리지 못했다. 교육부 1급 5개 직위 중 3개가 공석 또는 직무대행이다. 김 부총리가 교육부 관료들에게 벌써부터 휘둘리고, 청와대와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부총리는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에 기획관리실장 ㄱ씨를 참여시켰다. ㄱ씨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인물이다.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조사 주체로 임명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교육부에서 1급 실장과 청와대 비서관으로 승승장구하다 퇴직한 ㄴ씨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연줄을 이용해 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김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불평등하고 서열화된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민주주의의 신념과 공존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참여정부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고 교육 개혁을 이끌기 위해서는 교육 수장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급선무다.

문재인 정부 교육분야 최고 의사 결정기관인 국가교육회의의 앞날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국가교육회의는 교육혁신·인적자원개발·교육자치 등 교육의 거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수능 개편안, 특목고·자사고 폐지 같은 미시적인 사안까지 모든 교육 현안을 다룬다. 국가교육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을 통해 집행하는 구조다. 이런 국가교육회의의 사무처 역할을 하는 ‘국가교육회의기획단’의 단장으로 기자 출신 ㄷ씨가 사실상 내정됐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을 1년6개월 한 것이 교육 관련 경력의 전부인 ㄷ씨는 문 대통령의 부산 인맥으로, 정권 실세의 대학 동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문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이 발을 빼고 ‘낙하산’에 의해 운영되는 문재인 정부 국가교육회의가 인사 난맥과 지도력 부재로 제풀에 쓰러진 노무현 정부 교육혁신위의 복사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일이든 나라의 일이든 ‘결정적 시기’가 있다. 두뇌 발달은 태어나서 36개월까지가 결정적 시기이다. 이 기간에 부모나 사회로부터 격리되면 그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지능을 갖출 수 없다. 개혁의 결정적 시기는 정권 초반 6개월이다.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시민들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부총리를 비롯해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이재정 경기교육감 등 교육 관련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도 모두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다. 광장의 촛불이 ‘드림팀’을 만들어준 것이다.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교육 개혁의 호기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교육 개혁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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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관계기관과의 논의를 거쳐 지원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논란의 주된 이유는 타이밍으로 보인다. 교추협 개최 계획 발표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일본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인도적 지원 시기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북 제재에 대한 ‘한·미·일 동맹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는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과거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무분별한 퍼주기’ 논란이 다시 등장하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요즘 유행어로 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처럼 들리기도 한다. 같은 행동도 어느 정부가 하느냐에 따라 ‘퍼주기’ 또는 ‘원칙에 부합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인도적 지원의 정치화이다. 힘을 모아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 시점에서 비생산적인 소모적 이념 논쟁으로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팩트’와 ‘원칙’에 따른 결정이 중요해진다. 먼저 팩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과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북한의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가 국내에서 엇갈려 객관적 평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375호는 “영양실조 위험에 처한 상당수의 임신·수유 중인 여성 및 5세 이하의 아동과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전 인구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주민들을 포함하여, 주민의 절반 이상이 식량 및 의료 지원에 있어 중대한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유엔인도지원조정실(UNOCHA)의 조사 결과에 주목하며, 이러한 차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이 처한 심각한 어려움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답하고 있다. 초강력 경제제재를 결정한 유엔 안보리의 ‘객관적’ 평가이다.

둘째,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논란이다. 이번 지원 결정은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의 연례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핵실험과 경제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주에 결정을 하더라도 곧바로 원조가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기구의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시기 조절이 충분히 가능하다.

셋째, 인도적 지원의 효과성에 대한 질문이다. 원조가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되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느냐는 것이다. 이 또한 이제는 원조 분야에서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이미 엄격한 투명성 기준에 따른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현금이 아닌 현물,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없는 의약품과 아동 영양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원칙의 문제를 살펴보자.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1860년대 국제적십자가 창설된 이래 국제적인 원칙을 넘어 상식이 되었다. 이번 2375호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유는 북한의 무모한 핵실험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지만 결의안 내용에 이러한 인도적 지원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유엔은 경제제재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국제평화와 안보와 함께 유엔이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이자 원칙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경제제재는 의도와 달리 제재 대상국 아동과 산모 등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힌다.

과거 진보와 보수 정부 모두 국가안보 논리로 북한 인권과 인도적 지원 문제를 다루곤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안보에서는 적국의 위협 수준과 의도에 따라 자국의 방어 수준과 대응 방식을 결정한다. 즉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다르다. 인도적 지원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핵실험과 같은 안보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을 가장 성실하게 이행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성훈 |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경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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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혼란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북핵 도발에 즉흥적 군사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대북 원칙을 수시로 뒤집은 탓이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계기로 지지층과 여권 내부에서조차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다가 자칫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드 논란은 정부 정책 불신의 대표적 징표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중 어느 것도 지키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 실시 발표 하루 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우선 배치’로 입장을 바꾼 것이나 사드 배치에 앞서 반대 시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생략한 것은 정부 스스로 약속한 것을 저버린 행태다. 사드 배치 후에야 문 대통령이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불가피성을 호소했지만 종교·시민단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즉각적인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군사적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민주적 절차 존중 약속도 지키지 않은 정부의 조치를 시민들이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6차 핵실험 참여 핵 과학자·기술자 초청 축하연회에 참석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사드 배치 후 한반도 안보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도 정부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북한은 지난 9일 예상과 달리 도발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은 핵보유국 완성을 위해 ICBM 등에서 기술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도 B-1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훈련을 실시하는 등 강경 대응기조를 이어갔다. 한반도 안보지형은 한·미·일 대 중·러의 신냉전구도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도대체 사드 배치로 한국이 뭘 얻었는지 시민들은 정부에 묻고 있다.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한국 주도, 대북 대화 등 큰 원칙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타협이나 조정이 불가능한 원칙을 뒤집는 정부를 신뢰할 시민은 없을 터이다. 문 대통령은 그 이유로 ‘엄중한 안보상황’을 제시했지만 원칙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 못지않은 엄중한 사안이다. 

이런 틈을 타 보수층은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론을 제기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오늘부터 국회에 나가 핵무장론을 요구하기로 했다. 야당의 ‘핵 대 핵’ 주장은 위험하고 군사적 실효성도 없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에 불안해하고 강력 대처를 원하는 시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당의 전술핵 재배치 및 핵무장론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북한 도발에 즉흥적 군사 대응을 해온 관행부터 버려야 한다. 엄중한 안보상황 때문에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면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 요구 역시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눈앞에 둔 지금 한반도 정세는 중대 기로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과 운영 기조를 이대로 유지한다면 대내적으로는 혼란과 분열을 면하기 힘들어지고 대외적으로는 북핵 문제의 관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걸친 총체적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큰 틀의 정책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응 기조와 매뉴얼도 재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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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드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발사대 6기에 미사일 48발로 구성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돼 본격적인 작전운용에 들어갔다. 정부의 용어로는 ‘임시배치’이지만 사드 포대 배치 완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추가 배치된 사드 발사대 4기가 7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 기지에 반입된 뒤 설치되고 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7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 미군기지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잔여 발사대 4기와 배치 보강 공사를 위한 장비를 반입하고 있다. 정부는 임시배치라고 밝혔지만 이날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강윤중 기자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안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사드 배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드의 전략적 효용성이 확인된 바 없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방의 미군 시설 및 증원전력의 보호가 주목적이지만 한국의 핵심 시설 및 전력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는 또 미국으로 날아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간에서 요격할 수도 없다. 상승하는 과정이나 대기권 밖 비행 단계가 아닌 종말 단계에서 중·고고도로 낙하하는 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사드로는 한국도 지키지 못하고, 미국 본토를 향하는 미사일도 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 후 급히 배치를 결정했다. 마치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같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무기처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는 또한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완전히 놓치는 결정이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관계를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또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국의 이해를 구하려는 문 대통령의 복안도 물건너갔다.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보복을 당할 처지가 됐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진정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일말의 효용이 있다면 사전에 시민들을 상대로 배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 배치 전날에야 발사대 4기 반입 계획을 통보했고, 미군은 새벽에 발사대를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은 채 군사작전하듯 배치를 강행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또다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오락가락 대응에 외교안보 전략 부재만 노출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드 배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이번 사드 배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초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을 연상케 한다. 그때도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실패의 서막이었던 파병 결정을 경험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다행히 환경영향평가 후 최종 결정이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사드 배치의 전략적 효용성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멈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견인하면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대강의 대증적 대응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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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대통령 인사권의 막강한 힘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대통령은 장차관, 헌법기관 고위직 등 7000여명의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말의 본질은 대통령 인사권이 정권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역대 정권은 ‘같은 색깔’만 칠하진 않았다.

전략적 고려도 입혔다.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인덕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와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소수정권 한계 극복, 정치적 안정, 우방국 달래기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정체성 강화의 우회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보안 인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낙점한 인물도 언론에 하마평이 오르면 단칼에 지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론 인사’를 선호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후보 명단을 슬쩍 언론에 흘려 평판이 좋으면 인선을 강행했다. 평이 엇갈리면 민간업체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스템 인사에 관심이 많았다. 인수위원회 때 5단계 절차를 밟는 장관인사추천제를 도입했고, 집권 후엔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직을 신설해 인사 추천을 전담케 했다. 그전까지는 민정수석이 인사 추천·검증을 도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파격 인사는 ‘속전속결’ 개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사숙고 인사는 ‘역사적 평가’를 중시한 개혁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인사 정책만 봐도 균형인사, 인재 데이터베이스(약 12만명) 구축 등 시스템 정치를 구현했다.

위력이든 전략이든 스타일이든 인사는 결국 정권의 방향타이자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초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논란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문재인 정부 인사가 방향을 잃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이름이 발표될 때만 해도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은 기득권층 저항을 고려해 천천히 발표하자는 참모들 제안에도 문 대통령은 조기 인선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기영·이유정·박성진 후보자가 나오면서 국정철학은커녕 무슨 메시지인지조차 읽히지 않았다. 이해관계 집단은 물론 지지층 반발도 거세졌다. 여권 내에선 다양한 진단이 쏟아졌다. ‘참모들이 대통령 눈치를 본다’ ‘(전방위 평판이 담긴) 국가정보원 존안자료를 거부했으니 이 정도 비용(부실 검증)은 지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복심들이 빠져서 손발 맞출 인사를 가려내기가 힘들다’…. 문 대통령은 결국 지난 4일 인사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 인사 원칙과 검증 기준을 구체화하고, 인사 추천의 폭을 넓히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회에 청와대 인사기획비서관실도 신설하고, 임기를 보장해야 할 자리와 대통령 국정철학을 반영해야 할 자리를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오작동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인사가 한 정권의 국정철학을 담는다고 할 때 적어도 인사는 ‘시민 동의’가 중요한 기준이다. 재벌이 아닌 노동자, 전쟁이 아닌 평화, 갑이 아닌 을…. 촛불이 만들고, 시민들이 동의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다. 향후 인사에서 이 틀을 벗어날 경우 대통령이 인사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사원칙(철학)과 다투는 건 이해도, 수용도 가능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커지는 것은 청와대 해명 자체가 이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때문이다. 생활 보수, 소시민이라는 논리는 문 대통령의 인사철학도, 원칙도 아닌 ‘희한한’ 변명에 불과했다.

더 보탠다면 인사를 협치의 기반으로 삼길 바란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공약 이행에만 쓰면 안된다. 인사가 협치의 주요 항목이 돼야 할 때다”라고 했다. 당장 정기국회부터 국회의 계절이다. 대통령 의제를 관철하려면 싫든 좋든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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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어제 고조되는 북핵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긴급 제안’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하고, 6자·4자회담 등 다자회담을 재개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 외교안보 참모들의 전면적 쇄신도 요구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다른 야당들과 달리 건설적인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했다.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야당의 모습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5일 오전 정론관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임시배치를 중단하고 지난 정부 안보 적폐세력의 밀실 외교에 의한 사드 조기배치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가 “강대강 대결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과감한 대화 제안에 나서야 한다”고 한 것은 현실을 정확히 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원칙도 전략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이끌어나가기는커녕 그에 휘둘리며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대응수위만 높여왔다.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전략자산 배치 철회라는 이른바 ‘쌍중단’을 해법으로 제안한 것도 타당하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근 종료된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며 훈련을 축소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고 나아가 일부 훈련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핵동결부터 이끌어내는 방안은 현실적이다. 실현불가능한 전술핵 재배치 등 강경 입장만 관성적으로 되풀이하는 보수 야당과 대비된다.

정의당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협조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난맥상을 매섭게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비판할 것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자기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정의당의 시의적절한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야·정 평화협력체 구성 제안도 즉각 시행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한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정의당의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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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초대 주미대사에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내정됐다. 주중대사에는 노영민 전 국회의원, 주일대사에는 이수훈 경남대 교수가 각각 낙점받았다. 정부 출범 100여일 만에 러시아를 제외한 주변 3국 대사 진용이 갖춰진 것이다. 3명 모두 비외교관 출신이고,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일했거나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무난한 인사 같지만 위기의 한국외교 현실은 ‘무난함’에 만족할 상황이 아니다. 특히 조 내정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따져볼 대목이 많다.   

청와대는 그가 다양한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국제경제 분야 전문가로 주영국대사를 지내는 등 외교역량을 보유한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했다고 평가받는 분야는 경제다. 영국대사직이 미국대사의 자격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는 외교안보 현안인 북핵과 북·미관계, 한·미관계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그가 북핵과 동맹 관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외교현안들을 잘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경쟁력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판이면 주미대사라도 최선의 인물을 찾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적임자를 찾아냈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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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첫 청사진이 어제 발표됐다. 2018년 예산안과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요약하면 고용 없는 성장에서 벗어나도록 일자리와 복지 분야에 재정을 집중 투입해 사람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도 총지출을 전년보다 7.1% 늘린 429조원의 슈퍼예산을 집행하겠다고 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 이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보다 2.6%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가 수년간 2~3%의 성장에 그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확장재정을 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증액되는 지출을 복지(12.9%)와 일자리부문(12%) 등 사람과 관련된 분야에 집중적으로 확대 편성하기로 했다. 경제성장의 효과가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 중소·자영업 및 내수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실종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사회의 양극화와 극심한 취업난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재정을 풀어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는 정책은 오히려 늦은감마저 있다. 저소득 가구의 가처분 소득 감소에 대한 타개책으로 복지 지출을 동력으로 소비를 진작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기대할 만하다. 이를 위해 일자리와 분배,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재정의 선도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하지만 몇 가지 점검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향후 5년간 확대재정을 펼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럴 여력이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내년도 총수입을 전년보다 7.9% 증가한 447조1000억원으로 계획하고 있다. 향후 5년간의 재정지출은 연평균 5.8% 늘리겠다고 한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기껏해야 3% 정도 수준이다. 그만큼 적자가 날 공산이 크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정부는 또 향후 5년간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채용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내년에 국민 생활·안전 분야 중앙직 공무원 1만5000명, 지방직 1만5000명 등 총 3만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지금 연간 공무원의 인건비는 35조8000억원에 달한다. 공무원 채용은 비탄력적인 세금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장기적으로 운영 가능한지 숙고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 청년 3명 채용 시 1명의 급여를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고용장려금의 경우 악용되지 않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20% 줄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대형 국책사업이 예정돼 있어 자칫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다. 일시적인 감축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독을 해야 한다.

특히 국방예산은 이번 기회에 방향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국방예산을 2조8000억원(6.9%) 늘려 편성했다. 자주국방과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무기체계 사업에 대한 예산배정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막대한 국방비 투입에도 불구하고 전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첫 예산안의 큰 그림은 무난하지만 향후 5년간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쓸 곳에는 쓰겠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런데 복지예산은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을 보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으로 내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속가능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혹여나 일단 재정을 쓰고 문제가 발생하면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란다. 증세 없는 복지가 환상임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요행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예산을 짤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증세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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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넘었지만 거의 모든 현안들을 업무지시를 통해 처리했다. 이도 한계가 있다. 올 초만 하더라도 모두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우리 사회 전반의 적폐를 청산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정치·재벌·검찰·언론 등 적폐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대한민국이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 미래로 가기 위한 대변혁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촛불민심이 탄핵을 이뤄냈다면 촛불에 담긴 시민의 갈망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전적으로 새 정부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발행 된 '제19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내달 1일 열린다. 새 정부의 본격적인 국정운영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향후 5년간의 정책목표를 100대 국정과제로 압축해 공개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 법안·재벌개혁·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거의 모든 개혁과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 중 91개는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495건의 법령 제·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야 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자증세와 부동산·복지·탈원전 등의 정책과 방송법·국가정보원법 개정 등은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정부 정책마다 신(新)적폐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를 선언한 상태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문재인 정부 선심정책과 싸울 것”이라며 선명 야당을 천명했다. 대선이 끝난 지 넉 달이 되기 전에 선거에서 경쟁했던 유력 후보 두 사람이 모두 제1, 제2 야당 대표로 돌아와 새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일이다. 야당은 정기국회가 끝나면 곧바로 내년 지방선거 국면으로 돌입하는 만큼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공산이 크다. 결국 입법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혁입법을 더 미룰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5년 내내 야당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타협하고 협력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다. 여야가 강경대치해 국회가 막히면 가장 큰 피해자는 문재인 정부다. 결국 협치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오만과 독선은 협치의 적이다. 여권은 야당과 먼저 소통하고 양보하는 통 큰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은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검찰개혁 등 각종 개혁 조치를 똑같이 공약한 바 있다. 그렇다면 힘을 합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두 야당이 뜻을 모으면 구체제 청산과 각종 개혁입법은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또다시 흘려보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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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다. 몇 차례 스텝이 꼬이는 일들이 있었지만 적극적인 대국민 소통과 높은 지지를 통해 착실한 걸음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부 야당은 이미지 위주의 ‘쇼통’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 못하는 자가당착이다. 6개월의 국정공백과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했음에도 안정적이면서도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변화의 역동성이 있다. 같은 기간 80%의 지지율이 반토막 났던 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연착륙’이라는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 성공적 출발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취임 100일의 연착륙이 성공의 보증수표일 수는 없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일자리, 탈원전 등 난제들이 첩첩산중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외교일 것이다. 지난 9년의 실패를 복구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도전은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미 공조와 ‘베를린구상’으로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으려던 계획이 흔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17년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미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언술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중의 힘겨루기로 한국은 설자리 찾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 미·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지난 정부 외교부 장관의 엉터리 상황인식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대외정책의 컨트롤타워는 현안관리에만 매몰되면서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노정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미 공조를 다진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입장에 지나치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도 일관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라는 질문이 지지층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외교안보라인의 인사를 보며 과연 정권이 교체된 것이 맞는가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있는데 반대편도 아닌 지지층의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외교란 관리한다고 관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현상유지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한 경우보다 아닌 때가 훨씬 더 많다. 현안은 처리해야 하겠지만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순위와 과감한 결정을 통해 단순화시켜야 한다.

현 난국을 돌파하는 방법은 상황관리보다 담대한 제안과 주도권 행사라는 인식의 전환이 먼저다. 노무현 2.0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식의 미국 내 강경파의 압박과 국내 보수세력의 안보프레임 공세를 비껴가기 위해 혹시라도 일보후퇴 일보진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 재고해야 한다. 사드 조기 배치 여부를 통해 한국 대통령을 검증하겠다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도를 넘은 압박에 말려들어서는 결코 안된다.

참여정부 초기 국내 보수기득권의 거센 저항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환경이고 이를 잘 관리하면서 대북 문제에 관한 통합적 지지를 획득한다는 논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기모순을 내포한 희망적 사고다. 그들이 현재 입을 다문 것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신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 때문에 벙어리냉가슴 앓는 것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내심 원하는 외교를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여차하면 돌변할 변덕스러운 침묵일 뿐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분명하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한 소심한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을 때 담대한 평화구상을 제시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미 표한 것이며, 80%를 넘나드는 지지율은 이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좌충우돌로 대중정책은 변덕스럽고, 대북정책도 불분명하다. 미국이 헤매고 있을 때 우리가 나서야 한다. 사드 조기 배치, 예방공격, 한국의 독자제재 강구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노선과 압박에 더 이상 밀리지 말고 우리의 담대한 구상으로 미국을 설득해내야 한다.

1994년 제네바합의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는 현 위기에서 희망은 문재인 대통령뿐이라고 했다. 이는 개인의견이 아니라 미국 대화파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북핵동결론은 원래 전제조건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 조건이 되어버렸다. 대화를 하고 조건을 다루면 되는데, 대화에 조건을 두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박근혜의 신뢰 프로세스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단순한 신정부가 아니라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다. 따라서 빚진 대상은 국민들뿐이다. 국민들만 생각하고 국민들만 믿고 담대한 타개책을 제안할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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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한반도가 지니는 지정학적 의미는 강대국들 간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서 특정 국가에 의한 한반도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힘겨루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무역관행을 조사토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 무역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15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다자간 무역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나서서 “중국과의 경제 전쟁은 모든 것이고, 우리는 모두 그에 미친 듯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 그들이 (북핵 문제 등으로) 우리를 툭툭 치고 있지만 그건 단지 곁가지(sideshow)에 불과하다”고 했다.

7월 28일 오후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미군 장비가 놓여 있다. 이날 국방부는 사드 기지에서 진행해온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이외 일반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은 ‘말폭탄’이 결국 ‘쇼’였던 것이다. 난공불락인 북한의 핵무기 위협 속에 살아남으려면 자수자강(自守自强)하는 수밖에 없다는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핵무기가 없는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가 숨겨져 있다. 풀기가 어려운 고난도 방정식과도 같다.

역대 어느 지도자도 자신에게 주어진 북핵 숙제를 풀지 못했다. 그 사이 북핵 문제는 점차 난도만 높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레드라인’을 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도 임기 내 북핵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묘안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임기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세습으로까지 이어지는 왕조체제를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시 말한다. 김정은 정권이 10~20년 이내 붕괴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말자. 희망적 사고가 정책이, 국가전략이 될 수는 없다. 머지않아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것을 가정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면 당장 중단하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현명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경로를 택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비핵화 벽돌을 한 장만 쌓는 일이다. 

‘가난한 국가’가 국가안보 수준을 단기간에 높이는 방법은 타국과 군사동맹을 맺는 것이 정설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사드 배치 과정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듯이, 한·미동맹 강화 과정에서 중국의 크고 작은 반발에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명민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이다. 이를테면 동북아 지역에서라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급격하게 세력 전이가 이루어질 경우 우리의 내부적 균열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민도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의 동아시아 전문가였던 카를 필니가 19세기 말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존 헤이의 “지중해는 과거의 바다이고, 대서양은 현재의 바다이며, 태평양은 미래의 바다”를 인용하면서 21세기는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 역할을 맡는 다극화된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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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바보! 바보!’ 10여년 전, 방청석에서 서초동 417호 법정으로 들어서는 황우석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탄식했다. 대한민국의 영웅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과학자. 나의 책 <지민(知民)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의 상당 부분은 황우석 사태와 ‘황빠’ 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내가 깨달은 교훈은 여러 가지다. 첫째, 권력은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다. 황우석은 권력에 도취했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었으며 ‘사이언스’ 논문 조작이라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둘째, ‘빠’(지지자)는 사라지기 쉽고, ‘까’(반대자)는 순식간에 늘어난다. 과학이 정당성을 상실할 때 지지할 이유는 사라지고 비판할 이유만 남게 된다. 셋째, 결과적으로 권력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8월10일 (출처: 경향신문DB)

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계에 폭탄을 던졌다. 황우석 사태 당시 황우석과 함께 가장 큰 정치적, 과학적,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박기영 전 보좌관을 연 20조원의 연구·개발비를 관리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한 것이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악몽’이라고 절망했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웠다.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많은 교수들이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황우석 사태를 엄정하게 분석한 과학사학자 김근배는 그의 책 <황우석 신화와 대한민국 과학>에서 박기영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지적한다. 박기영은 정치적 과학자로 아무런 기여도 없이, 위조로 판명 난 황우석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황우석을 위해 연구비 증액, 생명윤리법 개정 시행, 최고과학자 선정 지원, 황금박쥐의 결성 등 거의 모든 일에 관여했다. 21세기 최악의 과학스캔들을 일으킨, 황우석과 공동책임을 지고 평생을 자숙하고 살아야 할 장본인을 문재인 정부는 연 예산 20조원을 관리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것이다.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일 오후 과천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온 박기영 본부장은 퇴근 이후 자진 사퇴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계의 거센 반발로 박기영씨가 자진사퇴한 일은 문재인 정부를 위해 무척 잘한 선택이다. 청와대는 과학기술계에 대해 무지했고 인사시스템에 문제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적폐의 상징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내가 10여년 전 깨달은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권력은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벌써부터 권력에 도취했고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박기영 임명이라는 악수를 두었다. 과학기술이 권력을 경계하는 이유는 후자가 전자의 합리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황우석 사태로 그토록 많던 ‘황빠’는 사라지고 순식간에 ‘황까’가 득세했다. 박기영 사태로 한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성실한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문빠’에서 ‘문까’로 돌아설 뻔했다.

권력은 왜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을까?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황우석은 왜 논문을 조작했을까? 최고권력 박근혜는 왜 최순실의 이권을 무리하게 챙겼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스스로 도취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한 경향이 있다. 권력을 움켜쥘수록 자신에게 덜 엄격하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판단착오를 일으키며 권력이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주요 이유이다.

반면 시민들은 똑똑하다. 박기영 사태에 반발한 것은 시민사회였다. 시민들은 권력의 불합리성, 곧 멍청함을 지적했고 여론에 밀려 박기영은 사퇴했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정치엘리트들과 지식엘리트들은 서로 결탁하여 황우석 사태, 4대강 사태, 광우병 사태, 최순실 사태를 일으켰다. 시민들은 권력과 거리가 있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권에 개입하지 않아 사건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적으며, 엘리트 의식이 없어 권력에 도취하는 경향이 적다. 따라서 내가 ‘지민(知民)’이라고 일컫는 똑똑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주체이다. 촛불시민에 의해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똑똑한’ 목소리를 경청하여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성공하길 바란다. 권력이 멍청해질 때 ‘빠’는 사라지고 ‘까’가 득세한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권력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바보! 바보! 바보!

김종영 | 경희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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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용기입니다. 세금을 더 내겠다는 것도, 세금을 더 내달라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 증세안이 논란 끝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상을 ‘핀셋’처럼 특정한 증세안입니다. ‘슈퍼리치 증세’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예상대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포괄적 증세’ 요구와 ‘세금폭탄’ 논쟁까지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든 ‘불만족’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증세가 논쟁 중심에 선 지금의 현상이 반갑습니다. 증세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警氣)부터 일으키던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집권 여당부터 질색합니다. 2014년 새누리당이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 방침에 “책상머리 정책”이라며 난타하던 풍경이 단적입니다. 박근혜 청와대 위세에 숨죽이던 새누리당이 유일하게 한목소리로 정부를 질타한 기억입니다.

세금을 더 내라는데 부처님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데 표정이 반듯할 순 없지요. 정약용 선생조차 ‘세외전(稅外田)’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밭을 기뻐했음(<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 박석무)을 보면 인간 본능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치 세력이 세금을 내리긴 쉬워도 올리는 건 지난합니다. 미래 국가재정조차 방기할 만큼 포퓰리즘의 대상입니다. ‘세금 포퓰리즘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배회해온 이유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걸었기에 ‘증세’를 증세라 하지조차 못했던 박근혜 정부의 초라한 초상(肖像)이 떠오릅니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문재인 정부 출범은 경제에 있어서 ‘패러다임 시프트’라 할 정도의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그 핵심이 ‘소득주도 성장론’입니다. ‘임금 상승-소비 촉진-생산 증가’의 선순환으로 경제성장과 복지를 모두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낙수효과’에 기반을 둔 전통적 성장론이 ‘톱·다운’이라면 소득주도 성장은 뿌리에서 시작해 입과 꽃·열매로 영양이 가는 이치와 같습니다. 물론 세상은 고용 없는 성장에 ‘로봇세’까지 거론되는데, 여전히 낙수효과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은 ‘실험 정책’이라고 비난합니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의 ‘대한민국 미래전략보고서 2017’에서 석학들은 “정부는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재정적 개입, 즉 2차 소득분배를 하게 된다”고 미래를 전망했습니다. 분배와 증세는 어느 정부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이야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토로했지만, 정치 세력에게 세금정책은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다시 가져와 주인인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방도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대선 당시부터 문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조차 내내 부족함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증세에 대한 모호함 한 가지로 집약될 것 같습니다. ‘핀셋 증세’로 마련될 24조원(5년간)으로 문재인 정부 정책 재원이 충분하다고 느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금 정책의 핵심이 일관성·예측가능성임을 생각하면 “증세를 하더라도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임기)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두고두고 발목이 잡힐 것 같습니다. ‘세금 포퓰리즘의 유령’과의 싸움에서 지나친 조심스러움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두려움은 새누리당이 이율배반적으로 ‘담뱃값 인하’를 ‘서민 감세’로 둔갑시키며 공격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습니다.

결국 세금은 정권의 결단과 용기가 중요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이 실패로 끝난 2005년 10월 초 참모들에게 “내년 1월을 겨냥한 정치담론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증세·복지국가’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증세를 ‘정치 담론’ 차원으로 고민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시민들은 이제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누가 보면 전경련 사람인 줄 알 법한 남편 왈. “우리가 이렇게 세금을 내니까 ○○이 얼집(어린이집) 돈 안내고 다니는 거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라는 후배의 페이스북 글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복지의 효능감’을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증세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상 증세를 둘러싼 12년 전과 달라진 풍경은 그사이 진전된 복지와 효능감이 원인입니다. 복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재투자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권력의 주인들은 그 세월 동안 바뀌어 왔는데, 여전히 정치만 ‘세금 포퓰리즘의 유령’에 지레 사로잡힌 건 아닐까요.

문재인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담대한 도전입니다. 모든 용감한 것은 두려움과 싸우며 커갑니다. 두려움 없는 용기는 없습니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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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이후 정치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상은 보수다.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보수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지난겨울의 영향 때문이다. 그들은 농익은 고름들을 모두 짜내고 ‘보수의 새살’을 돋게 할 수 있을까.

탄핵 대선이 지나고 두 달, 보수정치의 현주소는 ‘지리멸렬’과 ‘경쟁’ 두 단어로 집약된다. ‘합계 127석’의 두 보수정당이 한 자릿수 지지율을 전전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현실은 탄핵의 겨울만큼이나 암울하다.

그나마 ‘경쟁’이 시작된 것은 흥미롭다. ‘보수 교체’를 이야기하고 ‘새 보수’ 구호가 등장했다. 그것도 가치 경쟁을 하겠다고 한다. “보수는 노선투쟁할 만큼의 이념도 없다”는 야당 의원의 자조처럼 소신보다는 ‘편안한 울타리’를 택하던 보수정치의 무리근성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정우택 원내대표가 6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어땠어.” 

“새누리당? 거긴 구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피곤한 몸을 구겨 넣은 심야버스 앞자리 20대 남녀의 대화다. 전날 서울시장 후보자 토론을 두고서였다. ‘구리다’는 것, ‘스타일, 생각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싫다’는 감정적 배제의 언어였다.

정치 좀 안다는 지인에게 물었다. “보수의 가치는 뭘까?” “책임, 원칙, 애국…. 뭐 그런 거?” 마지막 말은 “그 양아치들은 왜?”였다.

세상의 부모들이 모두 보수일 리 없듯, 자식들이 모두 진보일 수도 없다. 지금 한국사회의 단면인 이념적 세대갈등은 그래서 허상이다. 세대 간 소통이 욕망의 벽에 막히고 단절된 결과일 뿐이다.

한국에서 보수는 개인적 욕망을 우선하는 보수였다. 보편적 국가들에서 보수의 덕목인 “희생과 헌신”(박세일 <지도자의 길>)은 한국 보수에선 자리잡지 못했다. 보수는 스스로를 ‘보수’라 말하지도 않는다. ‘애국세력’이니 ‘산업화 세력’이니 돌려 말한다.

개인 욕망을 우선했기에, 한국 보수는 사회성도 획득할 수 없었다. ‘성공’한 보수들 눈에 자식들은 모두 앞가림 못하는 ‘못난 자식’들이다. 과거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훈장처럼 추억하던 그들은 이제 “북한 가서 살아봐라”는 훈계를 늘어놓기 일쑤다. 그런 자식들에게 앞세대는 구릴 뿐이다. ‘구리다’는 젊은 세대의 감정 속에서 ‘보수=꼰대’라는 파생 등식도 생겨난다. 그나마 ‘룰’을 지키는 보수와 룰 위에 군림하듯 ‘행세’하는 보수로 나뉜다. 후자는 수구·극우 등으로 조롱받는다. 그들이 바로 ‘보수의 고름’들이다.

문제는 ‘보수의 고름’들이 보수경쟁에서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정치 재생의 출발점은 그들이 시대착오적으로 휘둘러온 이념의 칼을 향한 태도일 것이다. 그 점에서 새살은커녕 상처가 더 문드러질 판이라 절망적이다.

107석 제1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의 선택은 홍준표였다. 막말과 기행으로 비웃음의 ‘아이콘’이 돼버린 그다. ‘즐풍목우(櫛風沐雨)’ 각오로 보수를 “혁신”한다고 하지만, 전대 내내 외친 것은 “주사파 패당정부” “보수우파 결집”이었다. ‘친박’의 몰락으로 무주공산이 된 수구를 ‘친홍’으로 바꿔치겠다는 욕망이다. ‘모래시계 검사’의 패기는 간데없이 탄핵 광장에서 난동하던 태극기 보수에게 정치적 명운을 구걸하는 초라함만 남았다.

정략적 이념논쟁은 국민들을 불신의 감옥에 가둔다. 그래서 몹시 반공동체적이다. 낡은 보수정치는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 성공의 추억에 취해 스스로를 ‘이념의 감옥’에 얽어매두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게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나마 바른정당에서 희망의 어린 싹을 본다. 바른정당의 선택은 “낡은 보수가 해온 종북몰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것과 결연히 차별화하고 공정한 경제개혁을 하겠다”며 ‘새 보수’를 선언한 이혜훈이다. 그가 친유승민의 상징적 인사고, 새 보수가 당초 ‘박근혜 정치’에 저항한 유승민의 브랜드임을 감안하면 바른정당의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보수는 건강해져야 하고, 그래서 살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라는 권력의 견제자로서, 국가의 한 축을 이뤄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정당성과 명분에서 최소 대등한 정도라도 위상을 확보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게다. ‘쪽수 보수경쟁’이 아닌 ‘가치 보수경쟁’이 필연적인 이유다. 퇴행한 한국당 경선 결과가 증명하는 바다.

<모차르트>의 저자인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과도기’에 출현한다”고 했다. “항상 몰락하는 구계급과 부상하는 신흥계급의 규범 사이에 전개되는 역동적 갈등에서 나온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누가 구계급이고, 누가 신흥계급인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벼랑 앞에 선 보수정치 입장에서 봐도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김광호 정치·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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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인선·정책에 발목 잡는 식의 투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한국당이 일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데 대해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국민이 알면 됐다. 거기에 당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는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늘리는 것 빼고는 요건이 되면 해주는 게 맞다”고 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하려는 정부조직을 야당이 막는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했다. 사실상 국회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두 시간 뒤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장관 인사와 연계해 추경과 정부조직법 심사를 거부하는 종전의 강경노선을 유지키로 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홍 대표의 국회 정상화 선언에 대해 “대표로서의 개인 소견이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당내에선 두 사람 간의 엇박자를 놓고 당분간 이런 식의 기싸움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왼쪽두번째)가 4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신임 대표에게 팔짱을 끼며 여야 협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권호욱 기자

한국당이 막 홍 대표 체제로 새 출발한 때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이른바 한계선(레드라인)에 다가가는 것이어서 미국의 대북 대응은 더욱 긴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다. 한반도 안보는 어느 때보다 위중한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새 정부 조각은 출범한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지지부진하다. 국가 안보를 맡고 있는 국방장관조차 임명하지 못한 상태다. 각료 인사와 국회 운영을 둘러싸고 꽉 막힌 정국의 교착 상태도 길어지고 있다.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이미 한달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또 출국했다. 이대로라면 문 대통령이 내주 초 귀국한 뒤에도 정국의 돌파구가 마련되리란 보장이 없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이정현 전 대표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반년여 만에 정상적인 당 지도부가 들어섰다. 그사이 한국당 지지율은 7%대로 곤두박질칠 만큼 민심이 등을 돌렸다. 자유한국당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처절한 반성과 혁신뿐이다. 정부가 하는 일마다 무조건 반대하는 식의 무한투쟁으로는 돌아선 민심을 다시 얻긴 힘들다. 반대할 건 반대하더라도 협력할 건 협력하는 협치의 정치력이 필요한 때다. 홍 대표가 인사 대치 정국을 풀고 국회 운영에서 주도권을 쥐는 ‘홍준표 리더십’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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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새 시대를 갈망하는 촛불민심이 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0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담장은 높지만 감옥 안에서도 정상적인 나라가 되어가는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라는 촛불의 명령을 문재인 정부가 거침없이 수행해가길 바랍니다. 특히, 후진적 민주주의로 평가받고 있는 근본 문제인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노동을 적대시하는 정책이 세계 최악의 불평등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는 언제나 성장지상주의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노동조합을 불온하고 불순한 집단으로 매도했던 역사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와 파렴치한 탄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지만 정부는 눈을 감고 있고, 법은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선만 위반해도 처벌받는 세상에서 헌법과 노동법을 무시하고 농락하는 사용자를 뿌리 뽑지 못하면 노동 존중 사회는 불가능합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2000만 노동자의 10% 수준인 노동조합 가입 노동자 200만명을 마치 기득권 집단으로 치부하는 것은 나머지 1800만 노동자가 무권리 상태로, 노예처럼 희망 없는 노동을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례행사처럼 쏟아지는 국제기구들(유엔, 국제앰네스티, 경제협력개발기구, 유럽연합, 국제노동기구, 국제노총 등)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는 보고서, 결의문, 권고안, 항의서한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부와 자본이 한편이 되어 노동을 지배한 70년 역사를 청산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도 않고,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동하는 사람은 아무런 제약과 탄압, 차별 없이 누구나 본인의 의사에 따라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교사와 공무원의 단결권은 조건 없이 허용해야 하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무늬만 사장님인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스스로 권리를 찾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3권을 제약하는 모든 악법 조항을 이번 기회에 국제적 수준으로 보장하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산별교섭을 통해 단체교섭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단체협약 적용을 산업과 초기업,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재앙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라다운 나라’ ‘노동 존중 나라’의 뼈대는 무엇일까요? 노조 가입률을 30%로 끌어 올리는 것만큼 확실한 길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조 가입률 30%, 노동조합 전성시대’야말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개혁이 좌파가 되고, 노동조합 하면 빨갱이 소릴 듣는 한심한 민주주의, 노동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입니다. 무노조와 노조 탄압 등 최소한의 견제도 없었던 재벌의 횡포와 착취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불공정 하도급 근절, 골목시장 보호, 수많은 협력업체의 생존권도 함께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권리보장과 공정한 분배를 통해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을 없애고, 말로만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임금소득이 주도하는 선순환경제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노조할 권리를 확고하게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세운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노사 대표가 국민을 심판자로 모시고 TV토론을 하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노동자 여러분, 행복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노동조합에 가입하십시오.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헌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인권변호사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보면서 다짐했던 노동 존중 세상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라는 대통령의 기조발언을 상상해 봅니다. 이런 뉴스를 듣는 날은 감옥생활 중 최고로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일한 유산인 더 나은 세상, 노동조합 전성시대를 꿈꾸는 지금 참으로 행복합니다. (춘천교도소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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