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부는 서울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꿈틀거리자 즉각 시장에 개입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부동산 정책 실패 경험과 이에 대한 반성이 본능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검찰 개혁도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고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솎아내더니 올해 정기국회 법안 통과를 목표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속전속결·전광석화라 할 만하다. 경제 분야에서는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에 발탁해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단속하는 등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북한의 핵 실험 같은 대형 악재 속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60~70%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을 1년 유예한다고 발표한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수능이 개편되는 시기가 2022학년도로 미뤄지면서 지금의 중학교 2학년생들이 개편된 시험을 치르는 첫 세대가 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교육 개혁은 답답하고 더디기만 하다. 교육의 본령과 거리가 먼 사건·사고 뒷수습에 허둥대는 모습이 참여정부 당시 교육 난맥상을 떠올리게 한다.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은 두 개의 미흡한 방안을 내놓고 학생·학부모들의 선택을 강요하다 결국 백지화하고 결정을 1년 뒤로 미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논란과 정부 입시안에 반대하는 고교생들의 시위가 있었던 2005년 상황과 비슷하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 등을 놓고 양분된 교직 사회는 노무현 정부 첫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두고 전교조와 교총이 반목하던 것과 닮은꼴이다. 교육 당국의 무능과 무사안일이 부른 ‘교원 임용 절벽’ 사태는 여전히 답이 없고, 사립유치원 집단 휴업은 막판에 가까스로 멈췄지만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교육계의 화약고가 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 부총리는 교육 사령탑으로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지만 아직 교육부 진용조차 꾸리지 못했다. 교육부 1급 5개 직위 중 3개가 공석 또는 직무대행이다. 김 부총리가 교육부 관료들에게 벌써부터 휘둘리고, 청와대와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 부총리는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에 기획관리실장 ㄱ씨를 참여시켰다. ㄱ씨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으로 지원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 인물이다.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조사 주체로 임명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교육부에서 1급 실장과 청와대 비서관으로 승승장구하다 퇴직한 ㄴ씨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연줄을 이용해 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김 부총리는 취임사에서 “불평등하고 서열화된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민주주의의 신념과 공존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참여정부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고 교육 개혁을 이끌기 위해서는 교육 수장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급선무다.

문재인 정부 교육분야 최고 의사 결정기관인 국가교육회의의 앞날도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국가교육회의는 교육혁신·인적자원개발·교육자치 등 교육의 거시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수능 개편안, 특목고·자사고 폐지 같은 미시적인 사안까지 모든 교육 현안을 다룬다. 국가교육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을 통해 집행하는 구조다. 이런 국가교육회의의 사무처 역할을 하는 ‘국가교육회의기획단’의 단장으로 기자 출신 ㄷ씨가 사실상 내정됐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공보담당관을 1년6개월 한 것이 교육 관련 경력의 전부인 ㄷ씨는 문 대통령의 부산 인맥으로, 정권 실세의 대학 동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문 대통령은 국가교육회의 의장을 맡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이 발을 빼고 ‘낙하산’에 의해 운영되는 문재인 정부 국가교육회의가 인사 난맥과 지도력 부재로 제풀에 쓰러진 노무현 정부 교육혁신위의 복사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일이든 나라의 일이든 ‘결정적 시기’가 있다. 두뇌 발달은 태어나서 36개월까지가 결정적 시기이다. 이 기간에 부모나 사회로부터 격리되면 그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지능을 갖출 수 없다. 개혁의 결정적 시기는 정권 초반 6개월이다.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시민들은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김 부총리를 비롯해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이재정 경기교육감 등 교육 관련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도 모두 개혁 성향의 인사들이다. 광장의 촛불이 ‘드림팀’을 만들어준 것이다.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교육 개혁의 호기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교육 개혁은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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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관계기관과의 논의를 거쳐 지원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논란의 주된 이유는 타이밍으로 보인다. 교추협 개최 계획 발표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일본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인도적 지원 시기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북 제재에 대한 ‘한·미·일 동맹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는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과거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무분별한 퍼주기’ 논란이 다시 등장하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요즘 유행어로 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처럼 들리기도 한다. 같은 행동도 어느 정부가 하느냐에 따라 ‘퍼주기’ 또는 ‘원칙에 부합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인도적 지원의 정치화이다. 힘을 모아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 시점에서 비생산적인 소모적 이념 논쟁으로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팩트’와 ‘원칙’에 따른 결정이 중요해진다. 먼저 팩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과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북한의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가 국내에서 엇갈려 객관적 평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375호는 “영양실조 위험에 처한 상당수의 임신·수유 중인 여성 및 5세 이하의 아동과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전 인구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주민들을 포함하여, 주민의 절반 이상이 식량 및 의료 지원에 있어 중대한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유엔인도지원조정실(UNOCHA)의 조사 결과에 주목하며, 이러한 차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이 처한 심각한 어려움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답하고 있다. 초강력 경제제재를 결정한 유엔 안보리의 ‘객관적’ 평가이다.

둘째,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논란이다. 이번 지원 결정은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의 연례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핵실험과 경제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주에 결정을 하더라도 곧바로 원조가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기구의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시기 조절이 충분히 가능하다.

셋째, 인도적 지원의 효과성에 대한 질문이다. 원조가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되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느냐는 것이다. 이 또한 이제는 원조 분야에서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이미 엄격한 투명성 기준에 따른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현금이 아닌 현물,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없는 의약품과 아동 영양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원칙의 문제를 살펴보자.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1860년대 국제적십자가 창설된 이래 국제적인 원칙을 넘어 상식이 되었다. 이번 2375호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유는 북한의 무모한 핵실험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지만 결의안 내용에 이러한 인도적 지원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유엔은 경제제재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국제평화와 안보와 함께 유엔이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이자 원칙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경제제재는 의도와 달리 제재 대상국 아동과 산모 등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힌다.

과거 진보와 보수 정부 모두 국가안보 논리로 북한 인권과 인도적 지원 문제를 다루곤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안보에서는 적국의 위협 수준과 의도에 따라 자국의 방어 수준과 대응 방식을 결정한다. 즉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다르다. 인도적 지원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핵실험과 같은 안보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을 가장 성실하게 이행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성훈 |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경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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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혼란과 불신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북핵 도발에 즉흥적 군사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대북 원칙을 수시로 뒤집은 탓이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계기로 지지층과 여권 내부에서조차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다가 자칫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드 논란은 정부 정책 불신의 대표적 징표다.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를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중 어느 것도 지키지 않았다. 환경영향평가 실시 발표 하루 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우선 배치’로 입장을 바꾼 것이나 사드 배치에 앞서 반대 시민을 설득하는 절차를 생략한 것은 정부 스스로 약속한 것을 저버린 행태다. 사드 배치 후에야 문 대통령이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불가피성을 호소했지만 종교·시민단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즉각적인 배치 철회를 요구했다. 군사적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민주적 절차 존중 약속도 지키지 않은 정부의 조치를 시민들이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6차 핵실험 참여 핵 과학자·기술자 초청 축하연회에 참석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사드 배치 후 한반도 안보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는 점도 정부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북한은 지난 9일 예상과 달리 도발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은 핵보유국 완성을 위해 ICBM 등에서 기술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도 B-1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훈련을 실시하는 등 강경 대응기조를 이어갔다. 한반도 안보지형은 한·미·일 대 중·러의 신냉전구도가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도대체 사드 배치로 한국이 뭘 얻었는지 시민들은 정부에 묻고 있다.

정부가 한반도 문제의 한국 주도, 대북 대화 등 큰 원칙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타협이나 조정이 불가능한 원칙을 뒤집는 정부를 신뢰할 시민은 없을 터이다. 문 대통령은 그 이유로 ‘엄중한 안보상황’을 제시했지만 원칙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그 못지않은 엄중한 사안이다. 

이런 틈을 타 보수층은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론을 제기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오늘부터 국회에 나가 핵무장론을 요구하기로 했다. 야당의 ‘핵 대 핵’ 주장은 위험하고 군사적 실효성도 없지만 북한의 잇단 도발에 불안해하고 강력 대처를 원하는 시민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당의 전술핵 재배치 및 핵무장론 공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북한 도발에 즉흥적 군사 대응을 해온 관행부터 버려야 한다. 엄중한 안보상황 때문에 명분도, 실효성도 없는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면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 요구 역시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눈앞에 둔 지금 한반도 정세는 중대 기로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과 운영 기조를 이대로 유지한다면 대내적으로는 혼란과 분열을 면하기 힘들어지고 대외적으로는 북핵 문제의 관객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걸친 총체적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큰 틀의 정책 원칙을 재확인하고 대응 기조와 매뉴얼도 재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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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경북 성주의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기지에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반입했다. 국방부는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또 “향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드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하여 최종 배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발사대 6기에 미사일 48발로 구성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돼 본격적인 작전운용에 들어갔다. 정부의 용어로는 ‘임시배치’이지만 사드 포대 배치 완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추가 배치된 사드 발사대 4기가 7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 기지에 반입된 뒤 설치되고 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이 7일 경북 성주군 소성리 미군기지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잔여 발사대 4기와 배치 보강 공사를 위한 장비를 반입하고 있다. 정부는 임시배치라고 밝혔지만 이날로 1개 사드 포대가 완전 배치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강윤중 기자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안보 조치라고 할 수 있는 사드 배치는 오류의 연속이었다. 우선 사드의 전략적 효용성이 확인된 바 없다. 유사시 북한의 공격에 가장 취약한 수도권을 방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방의 미군 시설 및 증원전력의 보호가 주목적이지만 한국의 핵심 시설 및 전력 방어에 결정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드는 또 미국으로 날아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중간에서 요격할 수도 없다. 상승하는 과정이나 대기권 밖 비행 단계가 아닌 종말 단계에서 중·고고도로 낙하하는 미사일을 맞춰 떨어뜨리는 무기체계이기 때문이다. 사드로는 한국도 지키지 못하고, 미국 본토를 향하는 미사일도 잡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6차 핵실험 후 급히 배치를 결정했다. 마치 북한 미사일 및 핵실험 같은 도발을 막을 수 있는 무기처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드 배치는 또한 중국에 대한 지렛대도 완전히 놓치는 결정이다. 중국의 격렬한 반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중관계를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게 됐다. 또 전략적 모호성으로 중국의 이해를 구하려는 문 대통령의 복안도 물건너갔다. 이제는 속수무책으로 중국의 보복을 당할 처지가 됐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국의 동력도 결정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 중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완전히 손을 떼는 일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기 사드 배치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배치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회 공론화, 전략 환경영향평가 등 세 가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진정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 일말의 효용이 있다면 사전에 시민들을 상대로 배치 필요성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방부는 사드 배치 전날에야 발사대 4기 반입 계획을 통보했고, 미군은 새벽에 발사대를 성주에 배치했다. 사드 반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막은 채 군사작전하듯 배치를 강행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 또다시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박근혜 정부와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오락가락 대응에 외교안보 전략 부재만 노출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사드 배치라는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이번 사드 배치 과정은 노무현 정부 초기 이라크 전투병 파병 결정을 연상케 한다. 그때도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파병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 실패의 서막이었던 파병 결정을 경험한 문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사드 배치는 북핵 문제 해결이 아닌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다행히 환경영향평가 후 최종 결정이라는 장치가 남아 있다. 사드 배치의 전략적 효용성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점검해야 한다. 사드 배치를 멈추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견인하면서 한반도 정책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할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대강의 대증적 대응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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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대통령 인사권의 막강한 힘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대통령은 장차관, 헌법기관 고위직 등 7000여명의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말의 본질은 대통령 인사권이 정권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역대 정권은 ‘같은 색깔’만 칠하진 않았다.

전략적 고려도 입혔다.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인덕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와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소수정권 한계 극복, 정치적 안정, 우방국 달래기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정체성 강화의 우회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보안 인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낙점한 인물도 언론에 하마평이 오르면 단칼에 지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론 인사’를 선호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후보 명단을 슬쩍 언론에 흘려 평판이 좋으면 인선을 강행했다. 평이 엇갈리면 민간업체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스템 인사에 관심이 많았다. 인수위원회 때 5단계 절차를 밟는 장관인사추천제를 도입했고, 집권 후엔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직을 신설해 인사 추천을 전담케 했다. 그전까지는 민정수석이 인사 추천·검증을 도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파격 인사는 ‘속전속결’ 개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사숙고 인사는 ‘역사적 평가’를 중시한 개혁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인사 정책만 봐도 균형인사, 인재 데이터베이스(약 12만명) 구축 등 시스템 정치를 구현했다.

위력이든 전략이든 스타일이든 인사는 결국 정권의 방향타이자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초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논란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문재인 정부 인사가 방향을 잃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이름이 발표될 때만 해도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은 기득권층 저항을 고려해 천천히 발표하자는 참모들 제안에도 문 대통령은 조기 인선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기영·이유정·박성진 후보자가 나오면서 국정철학은커녕 무슨 메시지인지조차 읽히지 않았다. 이해관계 집단은 물론 지지층 반발도 거세졌다. 여권 내에선 다양한 진단이 쏟아졌다. ‘참모들이 대통령 눈치를 본다’ ‘(전방위 평판이 담긴) 국가정보원 존안자료를 거부했으니 이 정도 비용(부실 검증)은 지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복심들이 빠져서 손발 맞출 인사를 가려내기가 힘들다’…. 문 대통령은 결국 지난 4일 인사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 인사 원칙과 검증 기준을 구체화하고, 인사 추천의 폭을 넓히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회에 청와대 인사기획비서관실도 신설하고, 임기를 보장해야 할 자리와 대통령 국정철학을 반영해야 할 자리를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오작동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인사가 한 정권의 국정철학을 담는다고 할 때 적어도 인사는 ‘시민 동의’가 중요한 기준이다. 재벌이 아닌 노동자, 전쟁이 아닌 평화, 갑이 아닌 을…. 촛불이 만들고, 시민들이 동의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다. 향후 인사에서 이 틀을 벗어날 경우 대통령이 인사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사원칙(철학)과 다투는 건 이해도, 수용도 가능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커지는 것은 청와대 해명 자체가 이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때문이다. 생활 보수, 소시민이라는 논리는 문 대통령의 인사철학도, 원칙도 아닌 ‘희한한’ 변명에 불과했다.

더 보탠다면 인사를 협치의 기반으로 삼길 바란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공약 이행에만 쓰면 안된다. 인사가 협치의 주요 항목이 돼야 할 때다”라고 했다. 당장 정기국회부터 국회의 계절이다. 대통령 의제를 관철하려면 싫든 좋든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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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어제 고조되는 북핵 위기를 타개할 방안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긴급 제안’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북한에 특사를 보내 조건 없는 대화를 시작하고, 6자·4자회담 등 다자회담을 재개하면서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를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청와대 외교안보 참모들의 전면적 쇄신도 요구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정부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다른 야당들과 달리 건설적인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했다.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야당의 모습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5일 오전 정론관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5대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임시배치를 중단하고 지난 정부 안보 적폐세력의 밀실 외교에 의한 사드 조기배치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가 “강대강 대결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과감한 대화 제안에 나서야 한다”고 한 것은 현실을 정확히 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해 놓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원칙도 전략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이끌어나가기는커녕 그에 휘둘리며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대응수위만 높여왔다. 북한의 핵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축소·전략자산 배치 철회라는 이른바 ‘쌍중단’을 해법으로 제안한 것도 타당하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최근 종료된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때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며 훈련을 축소했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이 꺼리는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고 나아가 일부 훈련을 중단함으로써 북한의 핵동결부터 이끌어내는 방안은 현실적이다. 실현불가능한 전술핵 재배치 등 강경 입장만 관성적으로 되풀이하는 보수 야당과 대비된다.

정의당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정책에 협조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난맥상을 매섭게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비판할 것은 냉정하게 비판하는 자기 원칙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정의당의 시의적절한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야·정 평화협력체 구성 제안도 즉각 시행할 필요가 있다. 대화를 통한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는 정의당의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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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초대 주미대사에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내정됐다. 주중대사에는 노영민 전 국회의원, 주일대사에는 이수훈 경남대 교수가 각각 낙점받았다. 정부 출범 100여일 만에 러시아를 제외한 주변 3국 대사 진용이 갖춰진 것이다. 3명 모두 비외교관 출신이고,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일했거나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무난한 인사 같지만 위기의 한국외교 현실은 ‘무난함’에 만족할 상황이 아니다. 특히 조 내정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따져볼 대목이 많다.   

청와대는 그가 다양한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국제경제 분야 전문가로 주영국대사를 지내는 등 외교역량을 보유한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실무경험과 이론을 겸비했다고 평가받는 분야는 경제다. 영국대사직이 미국대사의 자격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는 외교안보 현안인 북핵과 북·미관계, 한·미관계를 직접 다뤄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래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그가 북핵과 동맹 관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굵직한 외교현안들을 잘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이 경쟁력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판이면 주미대사라도 최선의 인물을 찾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적임자를 찾아냈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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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향후 5년간 국정운영 방향을 가늠할 첫 청사진이 어제 발표됐다. 2018년 예산안과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요약하면 고용 없는 성장에서 벗어나도록 일자리와 복지 분야에 재정을 집중 투입해 사람중심의 소득주도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도 총지출을 전년보다 7.1% 늘린 429조원의 슈퍼예산을 집행하겠다고 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 이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보다 2.6%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한국 경제가 수년간 2~3%의 성장에 그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확장재정을 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증액되는 지출을 복지(12.9%)와 일자리부문(12%) 등 사람과 관련된 분야에 집중적으로 확대 편성하기로 했다. 경제성장의 효과가 대기업과 수출기업에서 중소·자영업 및 내수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실종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지고, 사회의 양극화와 극심한 취업난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이다. 정부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재정을 풀어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하는 정책은 오히려 늦은감마저 있다. 저소득 가구의 가처분 소득 감소에 대한 타개책으로 복지 지출을 동력으로 소비를 진작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는 기대할 만하다. 이를 위해 일자리와 분배,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재정의 선도적인 역할도 필요하다.

하지만 몇 가지 점검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우선 향후 5년간 확대재정을 펼칠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럴 여력이 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내년도 총수입을 전년보다 7.9% 증가한 447조1000억원으로 계획하고 있다. 향후 5년간의 재정지출은 연평균 5.8% 늘리겠다고 한다. 이 기간 경제성장률은 기껏해야 3% 정도 수준이다. 그만큼 적자가 날 공산이 크다. 정부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면서도 재정건전성을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정부는 또 향후 5년간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채용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내년에 국민 생활·안전 분야 중앙직 공무원 1만5000명, 지방직 1만5000명 등 총 3만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지금 연간 공무원의 인건비는 35조8000억원에 달한다. 공무원 채용은 비탄력적인 세금의 증가를 의미하므로 장기적으로 운영 가능한지 숙고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 청년 3명 채용 시 1명의 급여를 지원하는 중소기업 청년 고용장려금의 경우 악용되지 않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도 20% 줄이겠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대형 국책사업이 예정돼 있어 자칫 계획이 어긋날 수도 있다. 일시적인 감축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독을 해야 한다.

특히 국방예산은 이번 기회에 방향전환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국방예산을 2조8000억원(6.9%) 늘려 편성했다. 자주국방과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불요불급한 무기체계 사업에 대한 예산배정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막대한 국방비 투입에도 불구하고 전력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첫 예산안의 큰 그림은 무난하지만 향후 5년간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게 사실이다. 정부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쓸 곳에는 쓰겠다는 입장이 강하다. 그런데 복지예산은 인간다운 삶의 최소한을 보장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으로 내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속가능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혹여나 일단 재정을 쓰고 문제가 발생하면 대안을 강구하겠다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란다. 증세 없는 복지가 환상임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요행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예산을 짤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증세의 필요성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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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넘었지만 거의 모든 현안들을 업무지시를 통해 처리했다. 이도 한계가 있다. 올 초만 하더라도 모두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우리 사회 전반의 적폐를 청산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정치·재벌·검찰·언론 등 적폐는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대한민국이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고 미래로 가기 위한 대변혁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촛불민심이 탄핵을 이뤄냈다면 촛불에 담긴 시민의 갈망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전적으로 새 정부의 몫이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발행 된 '제19대 대통령 취임 기념우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내달 1일 열린다. 새 정부의 본격적인 국정운영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향후 5년간의 정책목표를 100대 국정과제로 압축해 공개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 법안·재벌개혁·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거의 모든 개혁과제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이 중 91개는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495건의 법령 제·개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야 간 의견이 엇갈리는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자증세와 부동산·복지·탈원전 등의 정책과 방송법·국가정보원법 개정 등은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정부 정책마다 신(新)적폐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를 선언한 상태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문재인 정부 선심정책과 싸울 것”이라며 선명 야당을 천명했다. 대선이 끝난 지 넉 달이 되기 전에 선거에서 경쟁했던 유력 후보 두 사람이 모두 제1, 제2 야당 대표로 돌아와 새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일이다. 야당은 정기국회가 끝나면 곧바로 내년 지방선거 국면으로 돌입하는 만큼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공산이 크다. 결국 입법을 둘러싼 갈등과 충돌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혁입법을 더 미룰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5년 내내 야당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타협하고 협력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했다. 여야가 강경대치해 국회가 막히면 가장 큰 피해자는 문재인 정부다. 결국 협치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오만과 독선은 협치의 적이다. 여권은 야당과 먼저 소통하고 양보하는 통 큰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은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검찰개혁 등 각종 개혁 조치를 똑같이 공약한 바 있다. 그렇다면 힘을 합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두 야당이 뜻을 모으면 구체제 청산과 각종 개혁입법은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 이번 기회를 또다시 흘려보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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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다. 몇 차례 스텝이 꼬이는 일들이 있었지만 적극적인 대국민 소통과 높은 지지를 통해 착실한 걸음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부 야당은 이미지 위주의 ‘쇼통’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 못하는 자가당착이다. 6개월의 국정공백과 인수위 기간 없이 출범했음에도 안정적이면서도 나라다운 나라를 향한 변화의 역동성이 있다. 같은 기간 80%의 지지율이 반토막 났던 노무현 정부에 비하면 ‘연착륙’이라는 평가를 훨씬 뛰어넘는 성공적 출발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취임 100일의 연착륙이 성공의 보증수표일 수는 없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일자리, 탈원전 등 난제들이 첩첩산중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외교일 것이다. 지난 9년의 실패를 복구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도전은 출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미 공조와 ‘베를린구상’으로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으려던 계획이 흔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2017년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미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언술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중의 힘겨루기로 한국은 설자리 찾기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이 미·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지난 정부 외교부 장관의 엉터리 상황인식은 없어서 다행이지만 대외정책의 컨트롤타워는 현안관리에만 매몰되면서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노정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미 공조를 다진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입장에 지나치게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도 일관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무엇이 다른 것인가라는 질문이 지지층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외교안보라인의 인사를 보며 과연 정권이 교체된 것이 맞는가라는 문제제기도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최선을 다해 수습하고 있는데 반대편도 아닌 지지층의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외교란 관리한다고 관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현상유지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한 경우보다 아닌 때가 훨씬 더 많다. 현안은 처리해야 하겠지만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순위와 과감한 결정을 통해 단순화시켜야 한다.

현 난국을 돌파하는 방법은 상황관리보다 담대한 제안과 주도권 행사라는 인식의 전환이 먼저다. 노무현 2.0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식의 미국 내 강경파의 압박과 국내 보수세력의 안보프레임 공세를 비껴가기 위해 혹시라도 일보후퇴 일보진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 재고해야 한다. 사드 조기 배치 여부를 통해 한국 대통령을 검증하겠다는 미국 내 강경파들의 도를 넘은 압박에 말려들어서는 결코 안된다.

참여정부 초기 국내 보수기득권의 거센 저항에 비하면 훨씬 나은 환경이고 이를 잘 관리하면서 대북 문제에 관한 통합적 지지를 획득한다는 논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기모순을 내포한 희망적 사고다. 그들이 현재 입을 다문 것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신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 때문에 벙어리냉가슴 앓는 것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내심 원하는 외교를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느 쪽도 여차하면 돌변할 변덕스러운 침묵일 뿐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분명하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한 소심한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을 때 담대한 평화구상을 제시하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정책에 대한 지지를 이미 표한 것이며, 80%를 넘나드는 지지율은 이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좌충우돌로 대중정책은 변덕스럽고, 대북정책도 불분명하다. 미국이 헤매고 있을 때 우리가 나서야 한다. 사드 조기 배치, 예방공격, 한국의 독자제재 강구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노선과 압박에 더 이상 밀리지 말고 우리의 담대한 구상으로 미국을 설득해내야 한다.

1994년 제네바합의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는 현 위기에서 희망은 문재인 대통령뿐이라고 했다. 이는 개인의견이 아니라 미국 대화파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북핵동결론은 원래 전제조건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었으나 어느 순간 조건이 되어버렸다. 대화를 하고 조건을 다루면 되는데, 대화에 조건을 두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박근혜의 신뢰 프로세스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단순한 신정부가 아니라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다. 따라서 빚진 대상은 국민들뿐이다. 국민들만 생각하고 국민들만 믿고 담대한 타개책을 제안할 때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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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한반도가 지니는 지정학적 의미는 강대국들 간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서 특정 국가에 의한 한반도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힘겨루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무역관행을 조사토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 무역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15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다자간 무역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나서서 “중국과의 경제 전쟁은 모든 것이고, 우리는 모두 그에 미친 듯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 그들이 (북핵 문제 등으로) 우리를 툭툭 치고 있지만 그건 단지 곁가지(sideshow)에 불과하다”고 했다.

7월 28일 오후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미군 장비가 놓여 있다. 이날 국방부는 사드 기지에서 진행해온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이외 일반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은 ‘말폭탄’이 결국 ‘쇼’였던 것이다. 난공불락인 북한의 핵무기 위협 속에 살아남으려면 자수자강(自守自强)하는 수밖에 없다는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핵무기가 없는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가 숨겨져 있다. 풀기가 어려운 고난도 방정식과도 같다.

역대 어느 지도자도 자신에게 주어진 북핵 숙제를 풀지 못했다. 그 사이 북핵 문제는 점차 난도만 높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레드라인’을 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도 임기 내 북핵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묘안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임기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세습으로까지 이어지는 왕조체제를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시 말한다. 김정은 정권이 10~20년 이내 붕괴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말자. 희망적 사고가 정책이, 국가전략이 될 수는 없다. 머지않아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것을 가정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면 당장 중단하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현명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경로를 택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비핵화 벽돌을 한 장만 쌓는 일이다. 

‘가난한 국가’가 국가안보 수준을 단기간에 높이는 방법은 타국과 군사동맹을 맺는 것이 정설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사드 배치 과정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듯이, 한·미동맹 강화 과정에서 중국의 크고 작은 반발에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명민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이다. 이를테면 동북아 지역에서라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급격하게 세력 전이가 이루어질 경우 우리의 내부적 균열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민도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의 동아시아 전문가였던 카를 필니가 19세기 말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존 헤이의 “지중해는 과거의 바다이고, 대서양은 현재의 바다이며, 태평양은 미래의 바다”를 인용하면서 21세기는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 역할을 맡는 다극화된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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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바보! 바보!’ 10여년 전, 방청석에서 서초동 417호 법정으로 들어서는 황우석을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탄식했다. 대한민국의 영웅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과학자. 나의 책 <지민(知民)의 탄생: 지식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지성의 도전>의 상당 부분은 황우석 사태와 ‘황빠’ 현상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내가 깨달은 교훈은 여러 가지다. 첫째, 권력은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다. 황우석은 권력에 도취했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었으며 ‘사이언스’ 논문 조작이라는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둘째, ‘빠’(지지자)는 사라지기 쉽고, ‘까’(반대자)는 순식간에 늘어난다. 과학이 정당성을 상실할 때 지지할 이유는 사라지고 비판할 이유만 남게 된다. 셋째, 결과적으로 권력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8월10일 (출처: 경향신문DB)

문재인 정부가 과학기술계에 폭탄을 던졌다. 황우석 사태 당시 황우석과 함께 가장 큰 정치적, 과학적,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박기영 전 보좌관을 연 20조원의 연구·개발비를 관리하는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한 것이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는 ‘악몽’이라고 절망했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한국 과학기술의 부고(訃告)’를 띄웠다.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많은 교수들이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황우석 사태를 엄정하게 분석한 과학사학자 김근배는 그의 책 <황우석 신화와 대한민국 과학>에서 박기영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지적한다. 박기영은 정치적 과학자로 아무런 기여도 없이, 위조로 판명 난 황우석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황우석을 위해 연구비 증액, 생명윤리법 개정 시행, 최고과학자 선정 지원, 황금박쥐의 결성 등 거의 모든 일에 관여했다. 21세기 최악의 과학스캔들을 일으킨, 황우석과 공동책임을 지고 평생을 자숙하고 살아야 할 장본인을 문재인 정부는 연 예산 20조원을 관리하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것이다.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1일 오후 과천 정부과천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아온 박기영 본부장은 퇴근 이후 자진 사퇴했다. 연합뉴스

과학기술계의 거센 반발로 박기영씨가 자진사퇴한 일은 문재인 정부를 위해 무척 잘한 선택이다. 청와대는 과학기술계에 대해 무지했고 인사시스템에 문제를 드러냈다. 무엇보다 적폐의 상징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내세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내가 10여년 전 깨달은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권력은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벌써부터 권력에 도취했고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박기영 임명이라는 악수를 두었다. 과학기술이 권력을 경계하는 이유는 후자가 전자의 합리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황우석 사태로 그토록 많던 ‘황빠’는 사라지고 순식간에 ‘황까’가 득세했다. 박기영 사태로 한국에서 가장 똑똑하고 성실한 과학기술계 사람들이 ‘문빠’에서 ‘문까’로 돌아설 뻔했다.

권력은 왜 멍청해지는 경향이 있을까?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황우석은 왜 논문을 조작했을까? 최고권력 박근혜는 왜 최순실의 이권을 무리하게 챙겼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스스로 도취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빠’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한 경향이 있다. 권력을 움켜쥘수록 자신에게 덜 엄격하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판단착오를 일으키며 권력이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주요 이유이다.

반면 시민들은 똑똑하다. 박기영 사태에 반발한 것은 시민사회였다. 시민들은 권력의 불합리성, 곧 멍청함을 지적했고 여론에 밀려 박기영은 사퇴했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정치엘리트들과 지식엘리트들은 서로 결탁하여 황우석 사태, 4대강 사태, 광우병 사태, 최순실 사태를 일으켰다. 시민들은 권력과 거리가 있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권에 개입하지 않아 사건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적으며, 엘리트 의식이 없어 권력에 도취하는 경향이 적다. 따라서 내가 ‘지민(知民)’이라고 일컫는 똑똑한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주체이다. 촛불시민에 의해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의 ‘똑똑한’ 목소리를 경청하여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성공하길 바란다. 권력이 멍청해질 때 ‘빠’는 사라지고 ‘까’가 득세한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권력은 의외로 쉽게 무너진다. 바보! 바보! 바보!

김종영 | 경희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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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은 용기입니다. 세금을 더 내겠다는 것도, 세금을 더 내달라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 증세안이 논란 끝에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상을 ‘핀셋’처럼 특정한 증세안입니다. ‘슈퍼리치 증세’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예상대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포괄적 증세’ 요구와 ‘세금폭탄’ 논쟁까지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합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든 ‘불만족’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증세가 논쟁 중심에 선 지금의 현상이 반갑습니다. 증세 이야기만 나오면 경기(警氣)부터 일으키던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집권 여당부터 질색합니다. 2014년 새누리당이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임대소득 과세 방침에 “책상머리 정책”이라며 난타하던 풍경이 단적입니다. 박근혜 청와대 위세에 숨죽이던 새누리당이 유일하게 한목소리로 정부를 질타한 기억입니다.

세금을 더 내라는데 부처님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당장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데 표정이 반듯할 순 없지요. 정약용 선생조차 ‘세외전(稅外田)’에서 세금을 내지 않는 밭을 기뻐했음(<풀어 쓰는 다산 이야기>, 박석무)을 보면 인간 본능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치 세력이 세금을 내리긴 쉬워도 올리는 건 지난합니다. 미래 국가재정조차 방기할 만큼 포퓰리즘의 대상입니다. ‘세금 포퓰리즘의 유령’이 우리 사회를 배회해온 이유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걸었기에 ‘증세’를 증세라 하지조차 못했던 박근혜 정부의 초라한 초상(肖像)이 떠오릅니다.

문재인 정부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요.

문재인 정부 출범은 경제에 있어서 ‘패러다임 시프트’라 할 정도의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그 핵심이 ‘소득주도 성장론’입니다. ‘임금 상승-소비 촉진-생산 증가’의 선순환으로 경제성장과 복지를 모두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낙수효과’에 기반을 둔 전통적 성장론이 ‘톱·다운’이라면 소득주도 성장은 뿌리에서 시작해 입과 꽃·열매로 영양이 가는 이치와 같습니다. 물론 세상은 고용 없는 성장에 ‘로봇세’까지 거론되는데, 여전히 낙수효과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이들은 ‘실험 정책’이라고 비난합니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의 ‘대한민국 미래전략보고서 2017’에서 석학들은 “정부는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위해 부득이하게 재정적 개입, 즉 2차 소득분배를 하게 된다”고 미래를 전망했습니다. 분배와 증세는 어느 정부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이야기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과거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토로했지만, 정치 세력에게 세금정책은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을 다시 가져와 주인인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방도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대선 당시부터 문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조차 내내 부족함으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요. 증세에 대한 모호함 한 가지로 집약될 것 같습니다. ‘핀셋 증세’로 마련될 24조원(5년간)으로 문재인 정부 정책 재원이 충분하다고 느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금 정책의 핵심이 일관성·예측가능성임을 생각하면 “증세를 하더라도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임기)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는 문 대통령 발언은 두고두고 발목이 잡힐 것 같습니다. ‘세금 포퓰리즘의 유령’과의 싸움에서 지나친 조심스러움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두려움은 새누리당이 이율배반적으로 ‘담뱃값 인하’를 ‘서민 감세’로 둔갑시키며 공격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했습니다.

결국 세금은 정권의 결단과 용기가 중요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 제안이 실패로 끝난 2005년 10월 초 참모들에게 “내년 1월을 겨냥한 정치담론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증세·복지국가’였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증세를 ‘정치 담론’ 차원으로 고민하고 결단한 것입니다.

시민들은 이제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누가 보면 전경련 사람인 줄 알 법한 남편 왈. “우리가 이렇게 세금을 내니까 ○○이 얼집(어린이집) 돈 안내고 다니는 거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라는 후배의 페이스북 글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복지의 효능감’을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증세에 대한 태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상 증세를 둘러싼 12년 전과 달라진 풍경은 그사이 진전된 복지와 효능감이 원인입니다. 복지는 우리 사회에 대한 재투자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권력의 주인들은 그 세월 동안 바뀌어 왔는데, 여전히 정치만 ‘세금 포퓰리즘의 유령’에 지레 사로잡힌 건 아닐까요.

문재인 정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담대한 도전입니다. 모든 용감한 것은 두려움과 싸우며 커갑니다. 두려움 없는 용기는 없습니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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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이후 정치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상은 보수다.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보수의 밑바닥이 그대로 드러난 지난겨울의 영향 때문이다. 그들은 농익은 고름들을 모두 짜내고 ‘보수의 새살’을 돋게 할 수 있을까.

탄핵 대선이 지나고 두 달, 보수정치의 현주소는 ‘지리멸렬’과 ‘경쟁’ 두 단어로 집약된다. ‘합계 127석’의 두 보수정당이 한 자릿수 지지율을 전전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현실은 탄핵의 겨울만큼이나 암울하다.

그나마 ‘경쟁’이 시작된 것은 흥미롭다. ‘보수 교체’를 이야기하고 ‘새 보수’ 구호가 등장했다. 그것도 가치 경쟁을 하겠다고 한다. “보수는 노선투쟁할 만큼의 이념도 없다”는 야당 의원의 자조처럼 소신보다는 ‘편안한 울타리’를 택하던 보수정치의 무리근성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정우택 원내대표가 6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은 어땠어.” 

“새누리당? 거긴 구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피곤한 몸을 구겨 넣은 심야버스 앞자리 20대 남녀의 대화다. 전날 서울시장 후보자 토론을 두고서였다. ‘구리다’는 것, ‘스타일, 생각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싫다’는 감정적 배제의 언어였다.

정치 좀 안다는 지인에게 물었다. “보수의 가치는 뭘까?” “책임, 원칙, 애국…. 뭐 그런 거?” 마지막 말은 “그 양아치들은 왜?”였다.

세상의 부모들이 모두 보수일 리 없듯, 자식들이 모두 진보일 수도 없다. 지금 한국사회의 단면인 이념적 세대갈등은 그래서 허상이다. 세대 간 소통이 욕망의 벽에 막히고 단절된 결과일 뿐이다.

한국에서 보수는 개인적 욕망을 우선하는 보수였다. 보편적 국가들에서 보수의 덕목인 “희생과 헌신”(박세일 <지도자의 길>)은 한국 보수에선 자리잡지 못했다. 보수는 스스로를 ‘보수’라 말하지도 않는다. ‘애국세력’이니 ‘산업화 세력’이니 돌려 말한다.

개인 욕망을 우선했기에, 한국 보수는 사회성도 획득할 수 없었다. ‘성공’한 보수들 눈에 자식들은 모두 앞가림 못하는 ‘못난 자식’들이다. 과거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훈장처럼 추억하던 그들은 이제 “북한 가서 살아봐라”는 훈계를 늘어놓기 일쑤다. 그런 자식들에게 앞세대는 구릴 뿐이다. ‘구리다’는 젊은 세대의 감정 속에서 ‘보수=꼰대’라는 파생 등식도 생겨난다. 그나마 ‘룰’을 지키는 보수와 룰 위에 군림하듯 ‘행세’하는 보수로 나뉜다. 후자는 수구·극우 등으로 조롱받는다. 그들이 바로 ‘보수의 고름’들이다.

문제는 ‘보수의 고름’들이 보수경쟁에서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정치 재생의 출발점은 그들이 시대착오적으로 휘둘러온 이념의 칼을 향한 태도일 것이다. 그 점에서 새살은커녕 상처가 더 문드러질 판이라 절망적이다.

107석 제1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의 선택은 홍준표였다. 막말과 기행으로 비웃음의 ‘아이콘’이 돼버린 그다. ‘즐풍목우(櫛風沐雨)’ 각오로 보수를 “혁신”한다고 하지만, 전대 내내 외친 것은 “주사파 패당정부” “보수우파 결집”이었다. ‘친박’의 몰락으로 무주공산이 된 수구를 ‘친홍’으로 바꿔치겠다는 욕망이다. ‘모래시계 검사’의 패기는 간데없이 탄핵 광장에서 난동하던 태극기 보수에게 정치적 명운을 구걸하는 초라함만 남았다.

정략적 이념논쟁은 국민들을 불신의 감옥에 가둔다. 그래서 몹시 반공동체적이다. 낡은 보수정치는 시대 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 성공의 추억에 취해 스스로를 ‘이념의 감옥’에 얽어매두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게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나마 바른정당에서 희망의 어린 싹을 본다. 바른정당의 선택은 “낡은 보수가 해온 종북몰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것과 결연히 차별화하고 공정한 경제개혁을 하겠다”며 ‘새 보수’를 선언한 이혜훈이다. 그가 친유승민의 상징적 인사고, 새 보수가 당초 ‘박근혜 정치’에 저항한 유승민의 브랜드임을 감안하면 바른정당의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보수는 건강해져야 하고, 그래서 살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라는 권력의 견제자로서, 국가의 한 축을 이뤄야 할 의무가 있다. 문제는 정당성과 명분에서 최소 대등한 정도라도 위상을 확보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게다. ‘쪽수 보수경쟁’이 아닌 ‘가치 보수경쟁’이 필연적인 이유다. 퇴행한 한국당 경선 결과가 증명하는 바다.

<모차르트>의 저자인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은 ‘과도기’에 출현한다”고 했다. “항상 몰락하는 구계급과 부상하는 신흥계급의 규범 사이에 전개되는 역동적 갈등에서 나온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누가 구계급이고, 누가 신흥계급인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벼랑 앞에 선 보수정치 입장에서 봐도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김광호 정치·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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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정부의 인선·정책에 발목 잡는 식의 투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홍 대표는 한국당이 일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데 대해 “부적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국민이 알면 됐다. 거기에 당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서는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 늘리는 것 빼고는 요건이 되면 해주는 게 맞다”고 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하려는 정부조직을 야당이 막는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했다. 사실상 국회 정상화를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두 시간 뒤 열린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장관 인사와 연계해 추경과 정부조직법 심사를 거부하는 종전의 강경노선을 유지키로 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홍 대표의 국회 정상화 선언에 대해 “대표로서의 개인 소견이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당내에선 두 사람 간의 엇박자를 놓고 당분간 이런 식의 기싸움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왼쪽두번째)가 4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신임 대표에게 팔짱을 끼며 여야 협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권호욱 기자

한국당이 막 홍 대표 체제로 새 출발한 때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이른바 한계선(레드라인)에 다가가는 것이어서 미국의 대북 대응은 더욱 긴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다. 한반도 안보는 어느 때보다 위중한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새 정부 조각은 출범한 지 두 달이 다 되도록 지지부진하다. 국가 안보를 맡고 있는 국방장관조차 임명하지 못한 상태다. 각료 인사와 국회 운영을 둘러싸고 꽉 막힌 정국의 교착 상태도 길어지고 있다.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이미 한달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또 출국했다. 이대로라면 문 대통령이 내주 초 귀국한 뒤에도 정국의 돌파구가 마련되리란 보장이 없다.

제1야당인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이정현 전 대표가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반년여 만에 정상적인 당 지도부가 들어섰다. 그사이 한국당 지지율은 7%대로 곤두박질칠 만큼 민심이 등을 돌렸다. 자유한국당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처절한 반성과 혁신뿐이다. 정부가 하는 일마다 무조건 반대하는 식의 무한투쟁으로는 돌아선 민심을 다시 얻긴 힘들다. 반대할 건 반대하더라도 협력할 건 협력하는 협치의 정치력이 필요한 때다. 홍 대표가 인사 대치 정국을 풀고 국회 운영에서 주도권을 쥐는 ‘홍준표 리더십’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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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갈망하는 촛불민심이 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0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담장은 높지만 감옥 안에서도 정상적인 나라가 되어가는 변화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라는 촛불의 명령을 문재인 정부가 거침없이 수행해가길 바랍니다. 특히, 후진적 민주주의로 평가받고 있는 근본 문제인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노동을 적대시하는 정책이 세계 최악의 불평등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는 언제나 성장지상주의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노동조합을 불온하고 불순한 집단으로 매도했던 역사야말로 청산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와 파렴치한 탄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지만 정부는 눈을 감고 있고, 법은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차선만 위반해도 처벌받는 세상에서 헌법과 노동법을 무시하고 농락하는 사용자를 뿌리 뽑지 못하면 노동 존중 사회는 불가능합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2000만 노동자의 10% 수준인 노동조합 가입 노동자 200만명을 마치 기득권 집단으로 치부하는 것은 나머지 1800만 노동자가 무권리 상태로, 노예처럼 희망 없는 노동을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연례행사처럼 쏟아지는 국제기구들(유엔, 국제앰네스티, 경제협력개발기구, 유럽연합, 국제노동기구, 국제노총 등)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라는 보고서, 결의문, 권고안, 항의서한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부와 자본이 한편이 되어 노동을 지배한 70년 역사를 청산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도 않고,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노동하는 사람은 아무런 제약과 탄압, 차별 없이 누구나 본인의 의사에 따라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교사와 공무원의 단결권은 조건 없이 허용해야 하고,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노동자, 무늬만 사장님인 특수고용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스스로 권리를 찾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3권을 제약하는 모든 악법 조항을 이번 기회에 국제적 수준으로 보장하도록 개정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산별교섭을 통해 단체교섭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단체협약 적용을 산업과 초기업,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해야 재앙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나라다운 나라’ ‘노동 존중 나라’의 뼈대는 무엇일까요? 노조 가입률을 30%로 끌어 올리는 것만큼 확실한 길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조 가입률 30%, 노동조합 전성시대’야말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개혁이 좌파가 되고, 노동조합 하면 빨갱이 소릴 듣는 한심한 민주주의, 노동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게 될 것입니다. 무노조와 노조 탄압 등 최소한의 견제도 없었던 재벌의 횡포와 착취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불공정 하도급 근절, 골목시장 보호, 수많은 협력업체의 생존권도 함께 지켜낼 수 있을 겁니다. 권리보장과 공정한 분배를 통해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을 없애고, 말로만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임금소득이 주도하는 선순환경제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노조할 권리를 확고하게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세운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한 것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노사 대표가 국민을 심판자로 모시고 TV토론을 하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노동자 여러분, 행복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노동조합에 가입하십시오. 정부가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은 헌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인권변호사로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보면서 다짐했던 노동 존중 세상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라는 대통령의 기조발언을 상상해 봅니다. 이런 뉴스를 듣는 날은 감옥생활 중 최고로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일한 유산인 더 나은 세상, 노동조합 전성시대를 꿈꾸는 지금 참으로 행복합니다. (춘천교도소에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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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CBS방송, 워싱턴포스트 신문과의 연쇄 인터뷰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접근방안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고, 먼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이어 완전한 핵폐기를 이루는 단계적 방식을 제시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과거 여러 차례 거론한 바 있어 새로울 게 없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침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핵을 평화적으로 풀지 못하고 대규모 파괴와 인명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의미가 없다. 또한 제재·압박에 대화를 병행하는 문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될 경우 북핵 해법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방안 공개는 다음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미국 측에 이를 미리 알리고, 회담에도 대비하게 하려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접근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는 한·미 일각의 우려를 씻으려는 의도도 드러난다.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구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여’ 정책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의 노력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런 노력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이 발언은 북한에 억류됐던 오토 웜비어가 송환된 지 얼마 안 돼 사망한 것과 관련, 북한을 연일 성토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어떤 맥락에서인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사진은 트럼프가 이날 백악관에서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정상회담을 앞둔 한·미 지도자 사이에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중요하다. 문제는 외교·안보 환경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환경영향평가 문제,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발언 논란이 불거진 데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이라는 새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 여론이 싸늘해지고 이를 반영하듯 미국 행정부는 대북 대화 조건을 비핵화로 대폭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다가 군사적 조치를 운운하던 과거로 회귀하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평화적인 북핵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하는 문 대통령의 부담이 더 커진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으로 한·미 간에 큰 균열이라도 발생한 것인 양 소란스러운 보수세력도 경시할 수 없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 이념공세의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자칫 북핵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건강한 논의를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대북 구상을 제시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된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 선제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핵보유 단계에 접어든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기왕의 대북 지원 차원을 넘어서는 담대한 제안이 요구된다. 실효성 있는 선제적 조치를 마련한다면 미국은 물론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데도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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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세력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총공세를 펴고 있다. 이들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워싱턴 발언을 친북으로 몰고, 존 매케인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 면담 불발을 청와대 홀대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익과 한·미동맹 발전을 위한 문제제기라기보다 문재인 정부 흠집내기 성격이 강해 보인다. 보수의 공세는 다음주 열릴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두 나라에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 열리는 회담이기 때문에 이견이 없을 수 없다. 그래도 두 대통령이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으로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보수층은 마치 양국 간 중대한 균열이 발생한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한 문정인(왼쪽) 통일외교안보 대통령특보가 19일(현지시간)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한반도 위기-한미동맹의 의미’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 끝은 대니얼 러셀전 미 국무부 차관보. 뉴욕 _ 연합뉴스

특히 보수층이 문정인 특보의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 시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관련 발언을 친북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성을 잃은 행태다. 문 특보의 발언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핵 도발 중단-한·미 군사훈련 축소 방안’ 자체는 한·미 양국 논의 과정에서 거론 못 할 이유가 없다. 미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해법을 제기한 바 있다. 매케인 위원장 푸대접론도 이해가 안된다. 청와대는 매케인 측의 문 대통령 면담 요청을 즉시 수락했다. 그러나 다른 일정이 있다며 면담시간 조정을 요구하다가 청와대가 검토하는 과정에서 방한을 취소했다. 청와대 측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매케인 측이 결례에 가까운 행동을 한 것 같다. 아무리 미국 정가의 실력자라 해도 문 대통령이 수시로 면담 일정을 조정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수층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은 처음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노 대통령의 남북협상론과 자주국방론을 공격하면서 협상력을 약화시켰고, 회담이 끝나자 “소득이 없었다”고 깎아내렸다. 이번에도 보수층은 문정인 특보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으며, 정상회담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보수층의 반정부 연대가 위험한 이유는 미국을 상전처럼 받드는 뿌리 깊은 사대주의가 배경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미 간 이견이나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한국의 국익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고민하지 않고 어떻게든 한국 정부를 흔들어 미국이 이익을 얻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세로는 한반도 위기 극복은 물론 미래 개척도 어렵다. 보수층의 조국은 어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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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부터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100대 국정과제’를 확정해갈 예정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전향적으로 평가하기에 기대가 크다. 다만 계속 마음에 걸리는 주제가 국민연금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연금 정책이 현세대 편향을 지닌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다른 복지제도와 달리 ‘시차’를 지닌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늘리면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면서 동시에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로 재정을 충당한다. 새로 도입될 아동수당도, 기초연금 30만원도 그렇다. 반면 국민연금은 내고 받는 시점이 다르다. 지금 국민연금 대체율을 올리는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지출은 수십년 후에 이루어진다. 이렇게 시차를 지닌 제도이기에 국민연금에선 현세대의 재정 책임 인식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집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명시했고, 후보 TV토론에서도 대체율 40%를 50%로 올리겠다고 주장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장도 오래전부터 이를 강하게 주창해 왔던 연금학자이다. 지난주엔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300여개로 구성된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율 50%를 요구하며 정부 기조에 힘을 보탰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핵심 인사, 많은 시민단체까지 대체율 인상에 한목소리를 내는 모양새이다.

대체율 인상의 근거는 낮은 국민연금액이다. 불안한 노후를 생각하면 매력적인 제안이다. 하지만 연금은 급여와 보험료의 짝으로 존재한다. 아무리 급여를 올리고 싶어도 적합한 재정방안을 갖추지 못하면 부실 건축물로 전락한다. 현재 우리가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지만, 40% 대체율에 부응하는 수지균형 필요보험료율은 대략 14~16%이다. 현세대의 여러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부족한 보험료만큼이 미래로 넘어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서 대체율을 더 올리면 이에 합당한 보험료율 논의가 가능할까? 결국 문재인 정부가 대체율 인상을 국정과제로 꺼내고도 임기 내내 실행하지 못하거나 공약 후퇴라는 비판 때문에 도로 주워 담지도 못하는 늪에 빠질까 걱정된다.

그 조짐은 지난 대선 토론에서 발견되었다. 대체율을 올리면 보험료율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유승민 후보의 끈질긴 질문에 문재인 후보는 사실상 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 번 그랬다면 생중계 토론에서 답변이 미진했다 여기겠지만, 이어진 토론회의 거듭된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면 후보보다는 캠프의 연금 공약 자체가 타당했는지 물어야 한다. 간혹 출산율을 올리는 게 대안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가입자가 내고 받을 몫을 사전에 확정하는 국민연금에서는 보험료와 급여의 수지 균형이 문제의 본질이다. 기금 수익을 강조하는 논리도 있지만, 국민연금기금이 무슨 신공을 가진 투자자도 아니고 그만큼 위험도 따르기에 공적연금에는 적합지 않은 제안이다.

사각지대 대책의 하나인 크레디트 확대 역시 균형 잡힌 인식이 요청된다. 지금 출산크레디트, 군복무크레디트 등을 늘리더라도 실제 지급은 은퇴할 때 이루어지므로 재정은 미래 세대가 감당한다.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도 결국은 국채 발행이다. 크레디트 확대가 필요하고, 공공투자 사업의 효과를 지지하지만, 재정 책임을 후일로 미루는 우리의 안이함도 되돌아봐야 한다.

공적인 노후소득보장을 단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대체율 인상론에 얽매여 연금개혁 논의가 공전만 되풀이할까 우려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크레디트를 늘리고, 국민연금용 국채를 발행하는 만큼 우리 세대의 각성을 촉구하려는 취지이다.

국민연금의 현세대 편향을 직시하자.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제도’라는 당위적 포장으로 안주할 일이 아니다. 현행 대체율도 감당하지 못하는 보험료율 상황에서 대체율 인상은 설득력이 약하다. 현재 노인의 빈곤 대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도 한계이다. 연금의 시야를 기초연금, 퇴직연금을 포함한 다원체계로 넓혀가야 출구가 생길 수 있다. 현재 노인빈곤에도 대처하고 당해 세대의 재정 책임을 동반하는 기초연금을 더 올려 최저보장선을 확보하자. 법적 의무인 퇴직연금을 제2국민연금으로 전환하면 여기서도 공적연금 대체율이 20% 정도 상향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온 힘을 쏟아야 할 주제는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이 아니라 기초연금과 공공투자 재원을 위한 증세, 퇴직연금의 공적연금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 궁극적으로는 은퇴를 늦춰 연금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노후의 재구성 등이다. 이 모두가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시대적 숙제이다. 연금의 지속가능성은 미래 아이들의 몫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려 있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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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해왔던 과거 정부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며 경제정책의 중심을 ‘사람’에 두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동안 우리 경제정책에서 ‘노동’은 항상 뒷전이었고, 노동조합은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돼 왔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고용안정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약속의 첫 행보라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결과제가 있다. 노동시장의 ‘차별 문제’가 우선 개선돼야 일자리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칫 저임금 및 단순 업무직들만 양산될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진정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민간업체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여전히 핵심 업무 외에는 대부분 비정규직 및 간접고용, 외주화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의 위치에서 이윤만 챙기고 책임은 지지 않는 나쁜 기업문화 행태다. 따라서 ‘직접고용’ 확대를 통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화 정착이 가장 시급한 일자리 창출 과제라 할 수 있다. 청년실업 문제 해소 방안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 산업에 독버섯처럼 번져 있는 외주화 남용은 고용불안뿐만 아니라 산업재해까지 양산하고 있다.

5월 24일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필자는 지난 몇 년간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무료취업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일하면서 구인구직 업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며 느낀 바는 고용창출을 위해서는 기업들에 대한 당근과 채찍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규직으로 직접고용을 하는 업체들에는 각종 훈포장 및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 또한 각종 정부사업 입찰 시 가산점도 부여하고, 행정편의 지원도 뒤따라야 한다. 반면에 상습체불과 불법파견, 위장도급, 기간제 남용 등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악덕기업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채용 시부터 진입장벽이 투명해야 한다. 건설업의 경우 1000억원대 공사가 발주돼도 인력 채용공고 자체가 없다. 음성적 비리가 여기에서부터 싹튼다. 하청, 재하청 등 다단계 하청으로 내려가면 누가 진짜 사장인지 구분도 모호한 사업장들이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러니 청년 구직자들은 대기업 취업만 바라보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진적인 인맥 위주 채용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유료 직업소개소들은 고용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범람하고 있는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의 외국인 불법취업에 대한 철저한 단속도 필요하다. 구직자들이 ‘3D 업종’이라서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대우를 못 받으니 기피하는 것이다.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무료 취업지원사업에 대한 대폭적인 확대 지원과 점검이 필요하다. 일자리의 질보다는 머릿수 채우기식 단기 일자리 알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성과지표’만 챙기다 보니 나타난 풍선효과다. 취업지원 업무를 하는 직업상담사 등 알선 업무 직원들의 근로조건 개선도 필요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이라 사기가 땅에 떨어진 채 알선 업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관리직 직원들도 취업지원 업무 부서를 맡는 것을 매우 꺼린다. 따라서 승진 1순위 대상자를 이 같은 업무에 배치하는 것도 유인책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 채용·전환이 선심 쓰는 양 내려지는 ‘시혜’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괜찮은 소득에 안정되고 질 높은 일자리는 가정의 번영과 행복에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며 이는 국가의 의무다. 결코 시혜적 조치가 아니다. 기업에 대한 지원은 ‘투자’라고 하면서 노동에 대한 지원은 ‘비용’처럼 인식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의 각종 노동 지원 정책은 세금만 허비하는 일일 뿐 병 자체를 고치는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못한다. 노동의 양극화로 인한 깊은 골을 하루속히 메꿔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처하고 다가오는 4차산업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박종국 | 전 무료취업지원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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