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어제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 및 사회 정책 방향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이날 급격히 심화되고 있는 분배구조 악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일자리 정책, 그리고 추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현재의 분배와 실업 상황이 ‘재난에 가깝다’는 말로 심각성을 강조했다. 통계청 통계에 독자적인 분석까지 가미해 소득 상위계층과 달리 하위 20% 계층과 차상위 계층의 소득이 급감하면서 분배가 구조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논거도 제시했다. 해법으로는 소득주도 성장을 재강조했다. 일자리의 양을 늘려 성장동력을 확충하고, 일자리의 질을 높여 임금격차를 줄임으로써 분배구조 악화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왼쪽)이 4일 춘추관에서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에 대해 브리핑한 뒤 기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연합뉴스

장 실장의 분배구조 악화 얘기에 공감하지 않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굳이 통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경제가 성장해도 일자리와 소득은 늘지 않으며 삶의 질이 팍팍해지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경제 정책의 목적이 고루 잘살게 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은 분명 기이하고 또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질 좋은 일자리를 통한 소득 확충이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더 이상 특별한 견해가 아닐 정도로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다만 정책은 정교할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 소득악화 문제에 대한 우선 대책으로 일자리 추경이 필요하다는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세심한 계획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장 실장은 추경에 육아·퇴직급여·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등 각당의 공통공약을 반영하고 민원성 사업을 배제했다고 설명했지만 규모부터 짠 뒤 사업내용을 결정하는 접근법은 미덥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세금으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릴 경우 정부부채 증가 등 부작용이 생긴다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지금의 일자리 부족은 경기 순환적 차원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이런 측면에서 장기적 로드맵과 함께 이를 위한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증세 얘기도 꺼내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시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득에도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에 따라 제기되고 있는 우려와 불안감을 해소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정책은 선의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에 걸맞은 재원대책과 부작용 최소화 방안을 내놓고, 이해관계자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이해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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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지구주의자의 시선>이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몇 년 치 신문 칼럼들을 간추려 정리한 보잘것없는 단행본인데 출간되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지구주의자는 어떤 사람을 지칭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지구주의자는 환경운동가들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세계화주의자를 말하는 경우도 있고, 드물게는 성장지상주의에 맞서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구주의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인간은 지구의 일부이며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러므로 지구를 파괴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구주의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자동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 자투리땅 텃밭에서 생명을 키워내는 도시 농부들, 옥상과 아파트 베란다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하는 시민들은 모두 지구주의자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 그 또한 지구주의자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무와 반려동물 사랑이 극진하고 들꽃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는 세간의 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의 미세먼지 대책 발표와 4대강 정책감사 지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대통령 업무지시 세 번째와 여섯 번째를 환경문제가 차지한 것은, 야만의 시대가 가고 생태적 진실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4대강 6개 보 수문의 상시 개방을 시작한 1일 대구 달서구 강정고령보 위로 물이 넘쳐 흐르자 시민과 취재진 등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수십년간 굳어온 낡은 에너지체제를 현대화하고 녹조로 뒤범벅이 된 강을 되살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비용이 든다. 강력한 저항도 감수해야 한다. <전환 함정을 경계하라>를 쓴 마르크 작서의 표현을 빌리면, 기득권 동맹 가담자들은 자신이 누려왔던 지위와 특권을 지키려는 엘리트들만이 아니다. 동맹에는 급격한 변화가 자신이 익숙한 세계를 뒤흔들까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 과장되었음을 밝히고 전환의 열매를 국민들의 손에 쥐여주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위기란 바로 낡은 것이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것이란 기득권 동맹이 해체되었을 때 빈자리를 채우게 될 ‘이로운 그 무엇’이다. 봄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일시 중단하면 등장하게 될 새로운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트럼프가 폐기한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 사례에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재작년 ‘석탄과의 전쟁’을 선포한 오바마 정부는 공화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때 오바마 정부가 제시했던 ‘새로운 것’은 재생에너지 비전과 천식 예방효과였다. 청정전력계획이 실현되면 2030년까지 풍력은 3배, 태양에너지는 20배 늘어나고 신규 일자리가 수십만개 창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기오염 탓에 발생하는 약 5000명의 조기사망과 9만명이 넘는 어린이의 천식을 예방한다는 분석 결과도 덧붙었다.

4대강 수문 개방과 물관리 일원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문제를 놓고 기득권 동맹의 저항이 가시화하고 있다. 늘 그랬듯이 앞장서는 이들은 개발 패러다임을 만들어 유포하고 그 과실을 취해왔던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실세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중립을 가장한 채 과도한 일반화, 부풀리기, 절차에 대한 트집 등을 통해 국면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통제하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기득권 동맹의 저항을 뚫고 생태적 전환을 밀고 나가려면 그들이 짜놓은 비용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전환이 정당성을 갖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용보다는 편익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공약 추진의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은 국민들이 누리게 될 편익 중심으로 다시 짜여야 한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시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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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불참을 선언했다. 여권이 한국당의 반대에도 이낙연 국무총리 인준안을 처리한 것으로 볼 때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봐야 문 대통령의 일방적인 국정설명회의 장이 될 게 뻔하다는 이유였다.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매주 여는 4당 원내대표 회동에도 불참할 뜻을 비쳤다. 취임 인사차 오겠다는 이 총리의 방문도 거절했다. 여야 협치가 새 정부 출범 3주 만에 제1야당의 거부로 시작도 못하고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해 적격성을 따지는 것은 시민의 대표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다. 그러나 어제 정 원내대표가 내세운 협치 거부 논리는 동의하기 어렵다. 정 원내대표는 기초 자료 제출 거부로 의혹이 해명되지 않았음에도 이 총리에 대한 인준을 강행처리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이 다 동의안 처리에 참여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여론조사 결과 시민의 3분의 2는 이 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왔다. 시민을 설득하지 못한 채 총리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은 누가 봐도 과도하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1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총리인준 처리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 협치는 시대적 요청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협치가 아니고서는 당면한 국가적 위기와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갈 수 없다는 현실에는 한국당도 동의하고 있는 바다. 박근혜 국정농단을 지켜본 시민들은 당리당략과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새 정치를 갈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당은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대여 공세,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가 90% 가까이 되는데도 잘한 게 하나도 없다는 투다. 이렇게 묻지마 비판으로 일관하는 한국당에 지지를 보낼 이성적 시민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인수위를 구성할 틈도 없이 국정운영을 맡았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초래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당이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그에 대해 자성·자숙하는 게 옳다. 그리고 정부·여당을 향해 견제할 것은 견제하고 협력할 때는 협력하며 민생을 챙기는 새 정치에 나서야 한다. 이런 시민적 기대는 외면한 채 총리 인준 처리 방식을 꼬투리 잡아 협치를 거부하는 것은 한 세대 전의 낡은 수법을 쓰는 못난 야당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은 한국당이 집권할 때도 그와 다르지 않았음을 잊지 않고 있다. 정부 발목만 잡아도 야당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즉각 태도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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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철없는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최씨가 삼성의 뇌물을 받은 것은 당시 스무 살도 안된 정씨의 갑작스러운 임신·출산과 관련이 있다. 어린 딸의 장래가 걱정된 최씨는 사람들 눈을 피해 딸을 독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승마 강국 독일은 승마 선수인 정씨가 그렇잖아도 전지훈련을 가고 싶었던 곳이다. 비선 실세의 존재를 일찍부터 간파한 삼성이 정씨를 위해 그랑프리대회 우승마와 생활비 등을 댔다. 최씨가 재벌·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도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딸이 금메달을 따는 데 도움이 되게 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했다. 결국 정씨 임신이 ‘독일 승마 유학 → 삼성 뇌물 수수와 K스포츠재단 설립 → 언론 추적 보도와 검찰·특검 수사 → 대통령 탄핵 및 구속 → 조기 대선과 문재인 정부 출범’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가 31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공항 게이트에 들어서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9월28일 독일에서 덴마크로 건너가 도피생활을 시작한 지 245일 만에 강제 송환된 정씨는 삼성의 승마 지원 특혜, 이화여대 입학 비리, 재산 해외 은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이화여대 역사상 최초로 직선 총장이 등장한 것도 정씨가 원인을 제공했다. 이대는 2014년 수시모집 체육특기자 전형에 갑자기 승마를 추가했고 배후에 최씨 모녀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입시비리와 미래라이프 대학과 관련해 이대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특검과 검찰 수사 결과 이대는 정씨를 뽑기 위해 최경희 당시 총장 주도로 입시 요강을 바꾸고 교수들에게 ‘금메달을 딴 학생을 뽑으라’는 지시까지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가 31일 강제 압송됐다. 지난해 가을 언론의 추적이 시작되자 독일에서 행방을 감춘 지 8개월, 불법 체류 혐의로 덴마크 당국에 구금된 지 5개월 만이다. 정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수혜자이자 이대 입학·학사비리의 당사자다. 그런데도 정씨는 “엄마와 박 전 대통령의 관계는 모른다. 저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죄를 짓고도 당당한 모습이 그 어머니에 그 딸임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정씨는 이대 부정 입학과 관련해서도 “학교를 한 번도 안 갔다. 전공이 뭔지도 모른다”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그러나 부정 입학 의혹이 제기되던 2015년 정씨가 또래들을 조롱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은 지금 이 순간에도 SNS에 떠돌고 있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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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이 남북관계 대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논설을 게재했다. 노동신문은 남한 측에도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북한 노동당의 기관지로서 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동신문이 논설을 통해 출범 한 달이 안된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노동신문은 어제 ‘유일한 타개책은 북남관계 개선에 있다’는 제목의 논설을 통해 “우리는 북남관계에서의 대전환, 대변혁을 이룩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북남관계는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관계로 확고히 전환되었다”고 덧붙였다. 

노동신문 논설은 최근 통일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한 민간단체의 대북접촉을 승인한 것에 대한 북측의 마중물 성격도 있다. 통일부가 어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의 대북접촉 신청을 승인한 것도 대화 분위기 조성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남과 북 사이에 대화를 위한 말과 행동이 오가고 교류가 시작되면 아무리 단절된 관계라도 개선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 북한이 6·15 공동선언 17주년을 맞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기를 기대해 본다.

북한이 지난 21일 평안남도 북창 일대에서 시험발사한 중장거리전략탄도탄 ‘북극성 2형’이 상공으로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현 정세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 개선은 당장의 북핵 위기국면을 타개하고 군사적 긴장완화의 단초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주변 강대국들이 주도해온 한반도 문제를 남북이 주도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대화가 재개되고 교류가 심화되면 남북 모두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민족동질성도 높일 수 있다.

다만 남북관계 대전환을 위한 내외의 여건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남북 모두 명심해야 한다. 북핵 문제로 인한 한반도 긴장국면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대화를 위한 환경은 최악인 상태이다. 남북 대화를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마저 당장은 대화보다 제재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놓을 정도이다.

따라서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을 벌이는 것과 별개로 이런 움직임이 국제사회의 입장과 충돌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남북 대전환이 북측의 진심이라면 그에 합당한 성의있는 노력이 요구된다. 미사일 발사 일시 중단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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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이 우여곡절 끝에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표결 결과는 찬성 164명, 반대 20명, 기권·무효 2명씩이었다. 찬성률 54.6%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정홍원 총리 찬성률 72.4%를 크게 밑돈다. 야당은 이 총리 부인의 위장전입 등을 걸어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5대 인사 원칙을 어겼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결국 자유한국당은 인준안 표결에 불참했고, 바른정당은 반대표를 던졌다. 더불어민주당 외에 국민의당·정의당이 찬성한 덕분에 가까스로 파국적 사태는 피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출범 21일 만에 총리 인준절차를 마무리했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이낙연 신임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 총리와 서로 허리를 숙인 채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라는 중책을 맡은 이 총리 앞에는 만만찮은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 정부조직개편, 일자리 추경 등의 현안이 산적해 있다. 새 정부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각종 개혁작업도 진두지휘해야 한다. 야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등에 대해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언제 내각이 완성될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청와대가 어제 차관급 인사를 먼저 임명한 것도 부처의 장관 공백 상태를 방치해 둘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총리는 어렵게 인준안이 통과된 만큼 커다란 빚을 지게 됐다. 그럴수록 총리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해 국정에서 성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최대의 관심사는 책임총리가 될 수 있느냐이다. 내각을 책임지고 통할하는 것은 총리의 분명한 권한이고 헌법정신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총리가 각료 제청권 등 헌법에 명시된 권한을 행사한 적은 이제껏 없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책임총리를 구현하는 건 전적으로 이 총리의 몫이다. 이 총리는 “일상적인 행정, 특히 민생 관련 문제는 제가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책임자란 마음가짐으로 해나갈 것이고, 그것이 책임총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다짐이 지켜지길 바란다.

시대가 바뀌면 총리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국회는 일당 독주가 허용되지 않는 협치·상생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의회의 협조를 구하는 통합의 리더십은 필수다. 이 총리는 정부와 시민 사이 가교가 되고 서민을 보듬고 응어리를 풀어주는 해결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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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후, 지하철 2호선을 탔다. 구의역에 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이 맑았고, 초록 잎들은 빛났다. 이렇게 찬란한 5월에 살아 있었으면 스무 살이 되었을 청년의 1주기라니, 그 역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구의역 9-4번 승강장 스크린도어는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하루 전날인 27일 추모제가 열렸을 때는 김군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스크린도어 여기저기에 붙고 바닥에는 흰 국화가 놓였다는데 28일에는 흔적도 없었다. 한적한 휴일 오후이다 보니 10-4번으로 끝나는 역사의 뒤쪽까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오는 승객들도 없어, 9-4번 승강장 앞은 고즈넉했다. 그래도 일부러 9-4번 승강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눈에 띄었다. “1호선을 주로 타고 다니는 중학생”이라고 밝힌 한 소년은 목에 맨 커다란 카메라로 9-4번 승강장의 모습이 잡히도록 역으로 달려 들어오는 지하철의 모습을 반복해서 찍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중년 여성이 청소년기의 아들과 함께 9-4번 승강장 앞을 두리번거리다가 발길을 돌렸다. “저희 큰애가 올해 스무 살이에요. 김군이 살아 있었으면 우리 아이와 같은 나인데,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저도 노동자예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1주기를 앞둔 25일 사고 지점인 구의역 승강장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지난해 5월28일 비정규직 청년노동자가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중 전동차에 부딪혀 사망했다. 강윤중 기자

지난해 10월 드라마 제작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은 이한빛 전 CJ E&M PD는 구의역에서 김군이 목숨을 잃은 직후 9-4 승강장을 찾은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생을 향한 노동이 오히려 생의 불씨를 일찍, 아니 찰나에 꺼뜨리는 허망함. 이윤이니 효율이니 헛된 수사들은 반복적으로 실제의 일상을 쉬이 짓밟는다.”

공고를 졸업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했던 구의역의 김군은 정규직이 될 꿈을 품고 있었다. 끼니조차 거르며 ‘1시간 이내 장애발생 현장 도착’이라는 수칙을 지켰고 그 수칙을 지키기 위해 2인1조 작업 원칙을 어긴 채 혼자 수리를 하다 변을 당했다.

정규직이었던 이한빛 PD가 꿈꿨던 것은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져서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정작 제작현장에서 해야 했던 일은 계약해지된 동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지급금을 환수하는 일이었다. 월급을 쪼개어 KTX 해고 승무원들을 돕는 데 썼던 그가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고 이한빛 PD 유서 중) 하는 삶의 부조리를 견뎌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구의역에서 다시 2호선을 타고 시청 방향으로 15분을 더 달리면 평화시장이 있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역. 평화시장 입구에는 생전에 평화시장을 ‘내 마음의 고향, 내 이상의 전부’라고 했던 전태일의 동상이 서 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전태일 평전> 중)고 전태일이 고발했던 것이 거의 반 세기 전인데, 구의역의 김군도, 상암동의 이한빛 PD도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살자고 하는 노동이 삶을 꺼뜨리는 현실에 맞닥뜨려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제1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일자리 만들기다. 대통령 집무실에 걸린 ‘일자리 상황판’의 18개 지표 중에는 고용률, 취업자 증감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근로형태별 연간 근로시간 등 일자리의 질을 나타내는 것들도 있다. 열아홉 살에 스러진 김군의 꿈도, 스물여덟에 생을 접은 이한빛 PD의 절망도 그 상황판에 별빛처럼 또렷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구의역 김군의 1주기 행사가 있었던 27일 이한빛 PD의 아버지는 9-4번 승강장을 찾아 이런 다짐을 적어 스크린도어에 붙여 놓았었다. “남은 일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어 줄테니 부디 편안하게 지내기 바라오. 젊은이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줄게.” 부디 남은 우리가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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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 인사청문회는 대한민국 엘리트층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그들의 삶이 ‘평균’과 어떻게 다른지를 잘 보여주는 국민교육의 장이다.

왜 한국 사회에서는 ‘능력’과 ‘윤리’가 상충하는 자질인가?

국가정보원장 후보 부인이 임대사업으로 월 125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소셜미디어상에서는 정치경제학(?) 논쟁도 벌어졌다. 영세 게스트하우스에서 월급 130만원을 받고 일한다는 한 청년 노동자의 문제제기에 대해, 유명한 맛 칼럼니스트가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변호론을 폈다. ‘불법’ 아닌 임대업과 ‘자본수익’(이라 쓰고 불로소득이라 읽는다)이 왜 비판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새 정부의 성격과 개혁의 성패를 좌우할 문제와 연관된 듯하다. 상위 10%가 국부의 66%를 보유하고 하위 50%의 자산은 2% 불과한 사회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불로소득과 상속에 제대로 세금과 대가를 부과하고, 혁신과 노동이 정당한 대접을 받게 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천명대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불로소득과 과다 지대는 ‘흙수저’ ‘금수저’로 표상되는 양극화와 세습자본주의의 핵심 동인이다. 이는 애초의 출발선을 다르게 하여 ‘기회 평등-과정 공정-결과 정의’의 고리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3포’와 ‘5포’란 그 효과에 지나지 않는 것일 테다.

‘자본주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은 마치 부(富)가 자연이나 하느님이 주신 것처럼 만든다. 그리고 부와 땅의 사회적·공공적 가능성을 몰각한다.

그래서 이 논의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역사’다. 부는 국가의 작용이나 ‘사회’의 구체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검이나 ‘노오력’ 같은 개인의 영역도 그 작용과 어울렸을 때만 효력을 발한다. 개인의 ‘능력’에도 가족과 사회의 ‘역사’가 배어있다.

한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자본주의가 시초의 축적과 발전과정에서 정치권력과 전쟁을 통해 부를 일구고 재편성했다. 부의 시원에는 침략·부역·착취·수탈·사기·특혜 등이 있다.(아파트 한두 채를 가진 보통 시민의 재산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 연조가 100년여밖에 안된 한국 자본주의에는 지주 및 임대업자들의 압도적인 사회적 힘과 ‘불패’의 역사적 이유가 아직 선연하다. 특히 ‘과거청산’이 한번도 이뤄지지 못한 험난한 현대사에서 부는 부역과 결부돼 있다. ‘좋은 가문’ 사람들은 부역자들과 그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그들은 ‘친일파’ 또는 그에 준하는 협력자다. 예컨대 ‘동아일보’를 만든 대지주 김씨 가문의 부 형성에 대해서나, ‘조선일보’ 방씨 가문이 금광 개발로 졸부가 된 사연은 역사학자들이 잘 정리해 두었다.

해방기의 혼란 와중에는 ‘모리배’나 ‘꺼삐딴’이 미군정의 특혜로 일본인이 남긴 재산을 불하받거나 밀수나 매점매석으로 부를 일구었다. 고도성장기에 ‘떡고물’은 비교적 넓게 분배됐고 개천에서 용된 개인들도 여럿 나타났지만, 그래도 특혜금융과 투기가 결정적이고 탁월한(?) 수단이었다. 물론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묵과되고 불법적 축재는 선택적으로 비호됐다.

투기성 위장전입도 이 문제와 연결돼 있겠다. 위장전입의 집중적 대상이 된 지역은 따로 있다. 기득권층이 강남에 유독 집착한 이유는 단순하다. 1970년대 초 개발이 시작된 이래 강남은 지대수익을 올리고 상징권력을 획득하는 데 압도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강남 땅값은 1970년대부터 지금껏 언제나 다른 지역보다 빨리 또 많이 올랐다. 부동산투기와 위장전입은 기득권의 일원이 되는 데 쉽고도 유력한 ‘역사적’ 방법이었다.

요컨대 사연 없는 부는 없고 졸부였던 적 없는 부잣집은 없다. 사연은 거개 정의롭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기원은 잊히고 근검과 탁월성의 신화로 미화된다.

그런 신화 전체를 부정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완전히 ‘리셋’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초등학생 장래 희망이 임대업자라는 상황을 철저히 성찰하지 않는다면, 본의 아니게 ‘흙’으로 살며 미래를 암담해하는 청년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갖지 않는다면, 불로소득도 ‘능력’으로 간주되고 부가 오로지 개인이 노력한 결과라 착각한다면, 또 이런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를 사회주의니 빨갱이니 하는 비난이 여전히 먹힌다면, 재산 규모 상위 10% 사람들이 공무와 정치권력도 다 가진다면, 개혁에 대한 모처럼의 밝은 기대는 결국 배반당할 것이다.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부동산시장이 들썩거린다는 불길한 소식도 들려온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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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파격인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기분” “뉴스 보는 게 힐링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이런 인사가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 1주일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진영의 틀에서 벗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찾았다. 인재 풀을 최대한 넓혀서 보니까 그런 게 보이는 것 같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낙점하고 검증팀에 넘긴 뒤 제발 뭐 큰 게 나오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 순항만 계속되겠는가. 첫 충돌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인사청문회, 정부조직법, 일자리 추경일 것이다. 지금으로선 인사 문제를 무사히 넘어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부조직 개편은 중소기업벤처부와 안전 분야 일부 등으로 최소화할 계획이다. 어차피 내년 개헌 과정에서 정부조직에 상당한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지금 정부조직 개편까지 손을 대면 다른 건 못한다. 일자리 추경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인근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을 나서며 딸의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의 예상은 맞았다. 인사부터 암초에 부닥쳤다. 취임 20일 만이다. ‘사이다 인사’는 톡 쏘는 청량감은 줬다. 하지만 선(先) 인물, 후(後) 검증은 결국 사달을 냈다. 야당의 반발은 일견 당연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야당이래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지난 정권에서 실제 그랬다. 더구나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약속했던 인사 5대 원칙 위배 논란이 더해졌다. 당연히 솔직한 설명이 필요했다. 비서실장을 통해 대리 사과한 것은 문재인답지 않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했다.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직접 나섰어야 했다.

노나라의 계강자라는 정치인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정치 정(政)의 본뜻은 바를 정(正)이다. 정치인이 자신을 바르게 정하고 아랫사람에게 모범을 보인다면 어찌 바르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리더부터 바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29일 직접 해명한 것은 정도(正道)다. 협치를 요구하려면 먼저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 손으로는 매듭을 풀 수 없다.

야당은 여기서 멈추는 게 옳다. 절망적 상황에서 출범한 새 정부다. 반발도 정도껏 해야 한다. 지금 야당만 모르는 게 있다. 첫째는 자격이다. 지금 야당이 문재인 정부를 돌로 칠 자격이 있느냐고 시민들은 묻고 있다. 이들은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위장전입과 과연 무관한가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결함투성이 국회의원들이 인준권을 쥐고 호통치는 모습은 갑질의 횡포로 비치고 있다. 불공정이다. 지금의 야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그보다 더한 인물도 인사를 강행했던 것을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이 나서 국회의원들을 검증해보자” “다 까보자” “선거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중요한 건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세상이 바뀐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둘째는 변화다. 세상은 달라졌다. 김무성의 ‘노 룩 패스’를 시민들은 더 이상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는다. 김무성이 보좌관에게 보낸 캐리어 패스 방법을 ‘노 룩 패스’로 명명했고, 과거의 유사 갑질을 더 찾아냈고, 그 행위 뒤편에 숨겨진 인성을 고발했다. 시민은 우매하고 약한 듯이 보이지만 실은 강하고 현명하다. 마치 망명객처럼 이역만리에서 일일논평하고 있는 홍준표의 페북 소음도 언제까지 인내만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셋째, 야당은 시민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 시민은 불의한 권력을 무너뜨린 주역이다. 집단지성으로 무장한 시민 앞에 언론도 패러다임 전환을 실감하고 있다. 언론의 계몽주의 시대는 지나고 오히려 시민들이 언론을 분석·평가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어제 여론조사 결과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준 찬성은 72.4%, 반대는 15.4%였다. 만약 야당이 총리 인준안을 붙잡고 계속 발목을 잡을 경우 시민들은 대의(代議)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곡된 대의기관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됐다. 희망은 땅 위의 길과 같다. 시민들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나라다운 나라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실감하고 있다. 여태껏 몰랐던 경험에 시민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진화하고 있다. 진화한 시민들이 길을 내고 있다. 한 단계의 성취는 더 높은 성취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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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다지 면식이 없는데도, 부고기사에 가슴이 멍해올 때가 있다. 지난 18일.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딱 그랬다.

1995년 부산 YWCA 대학부에서 진행한 ‘여성영화 읽기’에 한 대학교수가 초빙됐다. 강연을 마치며 그가 말했다.

“곧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릴 텐데, 여기 있는 학생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죠?”

“그런 거는 서울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요?”

학생들이 미심쩍어하자 그가 정색했다. “아니 반드시 할 겁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약속만 분명히 해주세요. 도와주겠다고.” 그가 김지석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부산예술대 교수였다.

칸 해변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6개월쯤 지난 어느날, 학내에 공고가 붙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그와의 약속이 떠올라 무작정 지원했다. 부산 남포동에 있는 극장 몇 군데를 빌려 시작한 제1회 영화제는 참 열악했다. 어떤 영화는 번역이 채 안돼 자막 없이 상영됐다. 예고된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상영이 중단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영화제 진행보다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감독과의 대화에 통역자가 없자 보다 못한 관객이 통역에 나서기도 했다. 경험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맨손으로 일군 축제였다.

그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쑥대밭이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좌파영화제’로 낙인이 찍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때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 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북영화제’로 격상됐다.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친박시장이 이끌던 부산시는 영화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지원을 주저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태풍이 해운대 백사장에 설치했던 야외무대를 날리면서 지난해 영화제는 최악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김 부위원장과 함께 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횡령,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특검은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뒷배경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많은 것을 되돌려놓고 있다. 그간 농락당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새 정부가 시급히 명예회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단순한 축제의 복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낳은 거위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영화제의 성공은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아시안필름마켓을 통해 수많은 영화와 시나리오가 팔려나갔다. 이는 한류붐의 원천이 됐다.

영화는 콘텐츠산업의 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제작, 배급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문화체육관광 분야 자료를 보면 콘텐츠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12.4명으로 전기전자(5.1명)나 자동차산업(5.7명)을 앞선다. 콘텐츠산업 종사자의 32%는 29세 이하 청년들이었다. 새 정부가 찾는 청년일자리의 보고가 여기 있다는 얘기다.

가을 바람이 불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문화예술 분야에 붙여진 블랙리스트를 시원하게 떼주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원칙에 대못을 박아주기를 더불어 기대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바다면서 일자리의 바다다.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국내외 영화가 발전하고, 사상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며,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어쩌면 김지석 부위원장이 꿈꿨던 세계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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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미국과 중국, 일본을 다녀온 특사단과 간담회를 열고 활동 결과를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특사단 활동에 대해 “(정국이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 생긴) 오랜 외교공백을 일거에 다 메우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도 그렇고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할 말을 좀 제대로 했다고 생각이 든다”고 자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미.중.일 특사단 간담회에 참석해 중국 특사로 다녀온 이해찬 전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일본 특사 문희상의원,미국 특사 홍석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문 대통령 ,중국 특사 이해찬 전 총리.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특사 활동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특사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 미 행정부에 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설명, 새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상당히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트럼프가 홍석현 특사에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로 (북한과)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평화’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북한의 태도 변화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 있지만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의사를 확인함으로써 변화의 모멘텀은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에서도 벗어났다. 중국 정부로부터 사드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일본에 확인시켜주고 국내 여론도 다독였다. 미·중·일 3국에 새 정부의 뜻을 전달하면서 협력 체제의 초석은 놓은 셈이다.

하지만 특사의 활동은 급한 불을 끈 정도이다. 미국이 핵 포기를 위한 북한의 행동 변화 없이는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은 확고하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중국 측도 특사단에 사드 배치의 실질적 (철회) 조치 없이 한·중관계의 복원은 어렵다고 했다. 일본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서 사면초가에 놓인 기본 조건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고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당장 중국의 사드 보복을 풀기 위해서는 사드 배치를 동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음달 있을 한·미 정상회담 등 양자 외교를 통해 풀어나갈 수밖에 없다. 대북 국제 제재의 기조를 허물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방안도 찾아야 한다. 문재인 외교안보팀의 과제 풀기는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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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1호 과제인 일자리 정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어제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는 취임 13일 만에 ‘일자리 상황판’이 설치됐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기획재정부에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문하는 등 일자리 추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6월 임시국회에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위원회도 산하에 공공·민간·사회경제 등 3개 소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업무영역 조정과 인선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자리 상황이 최악이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실제 일자리 부족은 양극화 심화, 소비부진, 가계부채 악화, 결혼 기피 등 사회문제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신속한 대응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은 공공 81만개의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감소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철폐 등을 통한 일자리 질 높이기, 4차 산업혁명을 통한 민간 일자리 동력 창출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 가계소득을 늘리면서 성장에 필요한 수요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성장을 정책의 최우선에 두고 고용을 창출하려 했던 과거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접근법이다. 

24일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첫 시험대는 추경 편성이다. 자유한국당은 “공공 일자리만을 위한 추경은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어 순탄한 처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는 민간의 회복에 앞서 공공이 마중물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정부 추경안에 공감한다. 다행히 세수 여건도 좋은 편이다. 다만 일자리 창출은 기업 몫이라는 야당의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협치 차원에서도 야당의 이해를 구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야당도 뚜렷한 대안 없이 발목잡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자리 정책은 느긋해서도, 조급해서도 안된다. 청와대 상황판에만 의존한 채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흘러서도 안된다. 비정규직 문제 등을 놓고도 노·노 간 갈등이 야기될 것이고,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장하는 재계·야당과는 눈을 흘기는 장면이 자주 연출될 수 있다. 이럴 때마다 일자리 정책이 최고의 성장전략이자 복지정책이란 인식을 바탕으로 인내심을 갖고 설득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등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진정성을 갖고 확산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 정책 중 수십조원씩 뭉칫돈을 쏟아부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청년창업 정책 등은 백지에서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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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손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대통령은 5·18에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버지를 잃은 딸과 눈물의 포옹을 했다. 5·18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거명하며 “그들의 헌신을 기리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가슴속에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분노와 슬픔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을 맞는 심경이 각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염원을 압축한 노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합창단이 부르면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후 해마다 5·18 기념식은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됐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진보·보수를 떠나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손을 맞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씨, 문 대통령,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1980년 5월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투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탱하는 근간이었고, 1987년 6월항쟁과 지난해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시원(始原)이었다. 광주는 민주의 가치와 인권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줬고 잠자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다. 문 대통령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처사다. 5·18민주화운동은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인류 보편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완전한 진상규명도 다짐했다. 5·18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것은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일일 뿐 아니라 정의가 승리하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한데도 계엄군 헬기 기총소사, 국가기관의 조직적 왜곡과 날조 등으로 5·18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은폐돼 있다. 지금껏 발포 명령자가 누군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해 일으킨 폭동’ ‘님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 찬가’라는 따위의 황당한 허위 주장이 난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살의 주범 전두환마저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사태의 제물”이라며 마음껏 5·18을 능멸했다. 늦었지만 국회와 정치권이 5·18진상규명위원회 구성,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5·18이 박제된 과거가 아님을 웅변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37번째 맞은 행사지만 이날 기념식은 특별했다. 5·18정신을 온전히 승계한 민주정부만이 국민의 생명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민주정부였다면 광주 민주화운동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로 인해 국민도 잃고 권력도 잃었다. 국가가 존재 이유를 잊으면 비극이 발생한다. 5·18은 항상 그 교훈을 일깨운다.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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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북한은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 12호’를 발사했다. 안보실장이 직접 보고했다.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 참석했다.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으로서 회의를 주재하지만 상임위원회에 직접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북핵불용·도발불용의 원칙하에서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대응 매뉴얼에 따라 시스템을 존중하고,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북한의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지난 16일 매튜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 미국 정부 대표단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정의용 청와대 외교안보태스크포스 단장과의 대화에서 양측은 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공통입장을 재확인했다. 올바른 여건이 이뤄지면 북한과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도 공유했다. 한·미의 북핵정책 목표가 비핵화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대화와 압박의 ‘투트랙’임을 확인한 것이다. 문제는 대화의 조건이다. 엄격한 조건을 내걸면 대화를 하지 말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 그러하고,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는 ‘선 비핵화, 후 남북관계’ 구도를 설정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도 이끌지 못하고 남북관계도 후퇴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선 신뢰, 후 남북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신뢰도 쌓지 못하고 남북관계는 파탄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지하벙커)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긴급 소집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평화로운 한반도 구상’으로 읽힌다. 미국의 일부 언론에서 사용한 ‘문샤인’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한반도 평화정책은 달밤에 체조하는 가벼운 것이 아니라 5년 동안 8000만 한민족이 전쟁의 두려움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엄중함이 담겨 있다. 평화구상은 한반도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남북한 하나의 시장과 더불어 민주사회 구현 등 4대목표가 담겨 있는 듯하다. 북한핵을 용인하지 않고, 북한의 도발도 좌시하지 않으면서, 책임안보·맞춤외교를 통한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겠다는 원칙도 분명해 보인다. 도발에는 강력히 대응하지만 대화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선순환 관계를 위해 북미대화의 중재자적 역할도 충실히 하겠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북핵문제도 비핵화에 목표를 두되 동결·해체·폐기라는 단계적인 수순도 담겨 있는 듯하다.

작금의 한반도 상황은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남북관계는 단절되어 있다. 북·미 간의 대립·대결은 악화되는 모습이다. 미·중 간의 갈등도 잠복되어 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이면서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국제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산가족문제,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는 남북한의 문제이다. 국제적인 문제와 남북한의 문제는 정책적으로 분리하고 전략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현실적 접근이다. 북한이 전략적 도발을 하면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하면서도 남북한 간에는 최소한의 대화와 교류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인식은 강함의 표시가 아니라 스스로 지혜가 없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한다. 남북관계 복원으로 주도적 역할은 시작된다. 남북 간 대화의 틀이 있어야 북한을 설득하고 미국도 설득해서 북·미대화, 6자회담으로 넓힐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대화의 복원방식은 하향식과 상향식이 있다. 하향식은 남북정상회담이나 특사교환을 통해 교착된 남북관계를 일거에 복원하는 방식이다. 상향식은 이산가족 등 인도적 사안과 스포츠 교류 등 사화문화 사안, 그리고 민간급 교류를 통해 관계개선 분위기를 조성한 후 회담의 폭을 넓혀가는 방식이다.

남북 당국 간의 불신의 골이 깊고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큰 현 단계에서는 상향식이 효과적이다. 남북대화 복원은 판문점연락사무소 정상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첨단시대에 확성기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굴뚝산업시대의 방식이다. 우리가 먼저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선언의 성실한 이행 메시지를 보내고 북한이 판문점연락사무소 정상화로 화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정치분야의 대화와 교류로 시작해서 10·4 10주년 및 추석맞이 이산가족상봉으로 이어져야 한다. 체육회담을 서둘러야 평창올림픽 및 창원사격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이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주변 4강의 특사외교로 평화로운 한반도 만들기에 시동을 걸었다. 이제는 남북한의 대화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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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 없는 대통령의 행보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졌다’며 반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견디고 대통령까지 탄핵시킨 시민들이다. 대통령의 일상에도 이리 들뜨는 마음의 뿌리에는 ‘다른’ 대한민국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이 대담해야 하는 이유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동반성장, 일자리, 교육 등 모두 고난도 숙제들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출산장려책이 시행되었는데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아동수당을 도입하고, 신혼부부에 주거를 지원하면 출산율이 의미 있게 오를까? ‘88만원 세대’ 단어가 뜬 게 2007년 대선 때이다. 10년 동안 여러 청년정책이 도입되었는데도 여전히 막막하다.

절박한 심정에 청년수당이라도 붙잡아보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풀릴 수 있는 걸까? 지난 몇 년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복지가 상당히 늘었음에도 시민들의 체감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국가가 펴는 정책들이 어떠한 틀 안에서만 맴도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경내서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왼쪽부터 권혁기 춘추관장,이정도 총무비서관,조국 민정수석,문대통령,조현옥 인사수석,임종석 비서실장 ,윤영찬 홍보수석,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일정총괄팀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물론 대다수가 사회경제구조와 복잡하게 엮인 어려운 주제들이다. 인내를 가지고 대면해야 한다. 여기에 나는 미래 비전의 부재를 강조하고 싶다. 개별 제도들이 병렬적으로 쏟아졌지만 이를 통해 언제, 어떻게 세상이 달라지는지 청사진이 없었다. 내 아이가 앞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생길 때 출산율이 오를 수 있다. 당장은 일자리가 불안정하더라도 좋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생길 때 청년을 둘러싼 절망적 비유들이 사라질 수 있다. 산에 오를 때 정상과 등산로를 알아야 발걸음의 의미가 분명하듯이 이제는 산업화 시기 선진국가, 반독재 시기 민주국가를 넘어서는 장기 국가비전이 필요하다. 헬조선이 웰조선으로 전환되는 이행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마침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비전 2030’과 같은 ‘국가비전 2050(가칭)’을 구상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다. 반갑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고착된 불평등 사회경제체제를 혁파하는 국가 비전으로 발전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정부가 남긴 교훈을 되돌아봐야 한다. 참여정부의 ‘비전 2030’은 한 세대 앞을 내다보는, 특히 성장과 복지가 동반성장하는 ‘희망한국’의 장기 전략을 밝힌 최초의 정부 문건이었음에도 곧바로 사장돼버렸다. 왜 그랬을까?

하나는 추진 시기와 방식의 한계이다. ‘비전 2030’은 참여정부 후반기에 뒤늦게 제안되었다. 정부가 힘이 없던 시기여서 명분용 ‘보고서’로 간주돼 버렸다. 방식도 전문가 중심이었다. 정부가 준비해 발표하는 익숙한 풍경으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당시엔 복지 경험도 부족한 때였기에 서구 복지국가를 떠올리는 청사진이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재정 플랜의 안이함이다. ‘비전 2030’은 복지국가를 미래상으로 제시하며 선진국 수준으로 복지지출이 늘어나 총 1100조원이 소요된다는 엄청난 수치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정부 홍보자료에는 “2010년까지는 증세 없이 추진합니다”라는 문구가 버젓이 등장한다. 당분간 세출구조조정, 비과세 감면 축소 등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이후 국가채무로 조달할지, 증세를 추진할지는 다음 정권의 과제로 넘겼다. 정부 스스로 국가전략을 맥 없는 페이퍼로 전락시킨 꼴이다.

문재인 버전은 다르리라 기대한다. 집권 초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열정이 강하다는 점도 유리한 환경이다. 비전은 선포가 아니라 공유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초안 작업에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시민들과 더 많이 토론하는 자리를 가지고, 상징적 정책들을 하나씩 실천하며 비전을 만들어가기 바란다.

재정 플랜도 정공법이 요청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정공약을 보면 참여정부의 ‘비전 2030’의 한계가 떠오른다. 지출개혁의 여지가 예전에 비해 훨씬 좁은 게 재정구조의 현실인데도 여전히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의 대부분을 지출개혁 몫으로 넘겼다.

그나마 참여정부에서는 종합부동산세 시행으로 발생한 세금폭탄론이라는 암초가 있었고, 박근혜 정부는 애초 보수정권이라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증세에 이토록 소극적인 건 이해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를 향한 비판 중 하나가 ‘증세 없는 복지’였다면 세금 논의를 적극적으로 펴기에 지금만큼 좋은 시기가 있을까.

3기 민주정부라 부른다. 지난 9년 촘촘하게 준비한 정책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 재료들을 엮어 시민들이 ‘다른’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가자. 시민들과 함께, 집권 초기에, 대담한 포석을 기대한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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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의 산파역을 맡았던 친문 측근들이 잇따라 2선으로 물러나고 있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16일 현 정부에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곧 뉴질랜드로 떠나겠다고 했다. 그와 함께 ‘3철’로 불렸던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제 할 일을 다했다”며 대통령 취임 당일 해외로 떠났다. 문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호위무사’로 통했던 최재성 전 의원, 정청래 전 의원도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혔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마치 승리의 전리품을 챙기듯 한 자리씩 나눠 차지했던 그간의 정치권 관행과는 사뭇 다르다.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을 공격하는 쪽에서 “집권하면 측근들이 완장 차고 전면에 나설 것”이라며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던 게 무색할 정도다. 최측근 인사들의 자발적인 2선 후퇴는 이런 의심을 불식시키고, 대통령의 인사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문재인 정부 성공의 초석을 놓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참으로 신선한 모습이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주일간 청와대 참모 진용을 갖추면서 계파와 지역, 노선을 뛰어넘는 탕평·통합 인사를 선보이고 있다. 비문재인계 출신인 임종석 전 의원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경선 때 안희정 충남지사 측 대변인을 맡았던 박수현 전 의원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은 계파를 불문한 파격인사로 볼 수 있다.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하승창 사회혁신수석과 김수현 사회수석을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청와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총무비서관에 일면식이 없는 전문 관료를 기용한 것은 많은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능력 있는 인물을 적재적소에 쓰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통합·대탕평 원칙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이 모든 게 이른바 개국공신들이 전면에서 물러남으로써 문 대통령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주고, 부담을 줄여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탕평인사 요구가 높았지만 실천된 적은 거의 없다. 오죽 편중이 심했으면 ‘문고리 3인방’이니, ‘고소영’ ‘성시경’ 인사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고 가야 한다. 그 전에 스스로 뗏목에서 내려 떠난 측근들의 아름다운 퇴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은 문재인 정부 성공의 문을 연 첫번째 열쇠가 됐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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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북한의 미사일 도발의 파장이 거세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주는 타격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제재와 대화의 병행 노력을 공언해왔지만 북한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탄도미사일로 도발했다. 대화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문제 정책적 공간과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 본토와 태평양 작전지대가 타격권에 들어왔다”고 공언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지만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현실이 될 수 있다. 북핵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게 되면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핵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은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함께 위기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핵 실험·미사일 발사 동결 등 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에 맞춰 4강 특사 파견과 정상회담 등이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핵 접근법에는 이제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북한은 핵보유국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제재에만 의존한 북핵 폐기 입장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어떤 대안이나 비전 제시도 없이 대결적 이념공방만 되풀이하는 국내의 낡은 풍토도 바꿔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역설하던 ‘진짜 안보’를 구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 보호 방침을 재확인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한·미 공조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평화는 어디까지나 한국이 주도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핵 문제 접근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협력과 공조가 중요하지만 한국만의 주체적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 일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다.

북핵 문제는 한국전쟁과 북·미 간 적대 관계의 산물이며 그로 인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은 동북아 각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국제사회와 공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풀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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