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10년 동안 펄에 갇혔던 세상이 한꺼번에 밀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 무렵에야 퇴근한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겪고 있다”고 ‘웃으며’ 푸념했다. 한 야당 인사는 “대통령 후보감인지 늘 의아했는데 대통령감은 맞는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권교체기엔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가 관례였다. ‘무조건’ 차별화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출범 20일 만에 40개가 넘는 정부조직을 뜯어고쳤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면 괜찮아)’를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외려 과거 관례를 지우며 출발했다. 곳곳에서 시대의 변화를 해석하느라 분주하다. 문 대통령 리더십에서 찾자면 “비주류이지만 주류의 가치를 만들 줄 알기 때문”(도종환 의원)일 수도, “없음의 힘을 갖고 있어서”(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일 수도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 등 주요국 특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충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은 권력 획득의 과정이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여정이라는 의미가 보태졌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선언한 것에 주목한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의원에 이르는 조직 자원을 갖고 있는 정당은 여론을 결집하는 통로다. 그래서 정당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정당 정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집권 여당이라도 ‘보스’(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르자 “이제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다”고 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사당화 제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고리를 끊으려 했다. 당정분리를 시도하며 “정당을 좌우하지 않는 나의 무능력, 그게 나의 정당개혁”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 시도된 당정분리는 집권 여당의 분열로 막을 내렸다. 정당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한 후보였고, 민주당을 장악한 후보였다. 내각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민주당 정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국정자문기획위원회도 김진표 위원장 등 당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주요 인선 면면을 보면 당의 가치와 철학을 국정 중심에 두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읽힌다. 10년의 적폐를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는데도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것은 선거 때부터 정당이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땐 국회의원들이 유세차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왼쪽’ 이재명부터 ‘오른쪽’ 안희정까지 경선 때부터 정당의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 대통령과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목소리로 ‘민주당 정부’를 외쳤다.

정당 정부는 대통령 의지만으론 버겁다. 정당도 변해야 한다. 당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공천 받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분권도 필수적이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대표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떼주는 ‘약한 분권’을 넘어 독립적 힘을 나눠 갖는 ‘강한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의회는 예산편성권, 인사권조차 없다. 경기도는 전체 인구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올해 예산 규모는 국가예산(약 400조원) 15분의 1 수준이다.

칼럼을 마무리할 무렵, 양정철 전 비서관 퇴장 소식이 들렸다.

문 대통령과 양 전 비서관 관계를 헤아린다면 패권 청산이라는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공공성, 양 전 비서관을 눈물로 보낸 문 대통령의 결심이었을 테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 가는 가장 아픈 길이었으리라.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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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직후부터 이어지고 있는 새 정부의 괄목할 행보에 대다수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세상이 변한 것 같아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한 이 변화는 지난겨울 우리가 치켜든 촛불의 성과다. 촛불광장이 없었다면 지금쯤 대한민국은 어떤 상태였을까? 국정농단은 현재진행형이었을 것이고 세월호는 아직 차디찬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었을 것이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공으로 올라가고 있었을 것이다.

광장에서 우리가 몸으로 터득한 교훈은 ‘군중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교과서적 진리다. 누구나 당위로 받아들이는 명제지만, 인류 역사를 통틀어도 이것을 몸으로 겪은 세대는 그리 많지 않다. 벅찬 행운이다.

그러나 환호와 감격에 머무르고 있을 수는 없다. 마무리를 해야 한다. 광장의 촛불이 추구해온 근본적인 사회개혁이 확고하게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 주요 혁신정책에 ‘대못’을 박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대못도 맘먹고 뽑으면 뽑히는 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격려하며 활짝 웃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대못을 언급한 뜻이야 충분히 공감하지만 혁신은 망치로 두들겨 박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혁신은 생태계 속에 ‘본연(本然)의 상태’로 뿌리내려야 한다. 마치 태초부터 주어진 것처럼 너무도 당연하여 누구도 의심할 수 없고, 누구도 뽑아 제거하려는 마음조차 품을 수 없는 그런 상태로 뿌리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갓 들어선 시기에 성급하다고 힐난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런 큰 그림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언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뼈저린 교훈 아니던가?

사회변혁을 꾀할 때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대립항적 접근이다. 변혁의 대상인 구체제와 신체제의 대립전선을 설정하고 신체제의 에너지로 구체제를 허무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이런 접근방식은 필연적으로 구체제의 결속과 반동을 초래하고 변혁의 본래 목적마저 망각하게 한다. 그 때문에 구체제와 신체제의 대립을 훌쩍 넘어선 ‘초체제적 대안’을 창출하고 이것이 사회의 ‘본연’으로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흑백 양분의 대립적 사고틀을 넘어서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자리 잡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의 촛불광장을 이어받은 이 격동의 시대에 가장 주목해야 할 초체제적 대안은 역시 참여다. 참여야말로 구체제와 신체제의 대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초월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참여는 자유의 확장이다. 확장된 자유를 경험한 국민은 결코 회귀를 용납하지 않는다. 물러서면 다시 노예가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국민 참여가 이루어지면 정부와 관료 엘리트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정책을 입안, 실행할 필요가 없다. 시민사회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이 국가 정책결정에 폭넓게 참여하여 서로 대립되는 시각과 입장들을 좁히고 공감, 화해,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대지에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 과거에도 각종 위원회를 통해 전문가나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대개는 의견을 들어보는 데 그치는 형식적인 참여였다. 촛불광장의 정신은 이런 들러리 참여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정감시, 입법참여, 국민소환제 등 정책의 결정과 실행 과정에 대한 완전한 참여를 지향한다.

물론 건설적 참여가 쉬운 것은 아니다. 모두의 이익을 고려하는 공동선보다는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공격하고 억압하는 ‘파벌의 해악’이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벌의 해악을 넘어서서 다양한 집단이 자체적으로 이익갈등을 조정하는 ‘결사(結社)의 예술’을 체득한 시민사회는 불의한 세력의 폭거와 적폐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굳건한 방벽이 될 수 있다.

파벌의 해악을 넘어선 결사의 예술이 일상적 소양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오랜 경험축적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진정한 참여의 절차를 개발, 평가하고 최선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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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의 없는 대통령의 행보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졌다’며 반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견디고 대통령까지 탄핵시킨 시민들이다. 대통령의 일상에도 이리 들뜨는 마음의 뿌리에는 ‘다른’ 대한민국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이 대담해야 하는 이유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동반성장, 일자리, 교육 등 모두 고난도 숙제들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출산장려책이 시행되었는데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아동수당을 도입하고, 신혼부부에 주거를 지원하면 출산율이 의미 있게 오를까? ‘88만원 세대’ 단어가 뜬 게 2007년 대선 때이다. 10년 동안 여러 청년정책이 도입되었는데도 여전히 막막하다.

절박한 심정에 청년수당이라도 붙잡아보지만 이것으로 상황이 풀릴 수 있는 걸까? 지난 몇 년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복지가 상당히 늘었음에도 시민들의 체감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국가가 펴는 정책들이 어떠한 틀 안에서만 맴도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경내서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왼쪽부터 권혁기 춘추관장,이정도 총무비서관,조국 민정수석,문대통령,조현옥 인사수석,임종석 비서실장 ,윤영찬 홍보수석,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일정총괄팀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물론 대다수가 사회경제구조와 복잡하게 엮인 어려운 주제들이다. 인내를 가지고 대면해야 한다. 여기에 나는 미래 비전의 부재를 강조하고 싶다. 개별 제도들이 병렬적으로 쏟아졌지만 이를 통해 언제, 어떻게 세상이 달라지는지 청사진이 없었다. 내 아이가 앞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생길 때 출산율이 오를 수 있다. 당장은 일자리가 불안정하더라도 좋아지고 있다는 희망이 생길 때 청년을 둘러싼 절망적 비유들이 사라질 수 있다. 산에 오를 때 정상과 등산로를 알아야 발걸음의 의미가 분명하듯이 이제는 산업화 시기 선진국가, 반독재 시기 민주국가를 넘어서는 장기 국가비전이 필요하다. 헬조선이 웰조선으로 전환되는 이행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마침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비전 2030’과 같은 ‘국가비전 2050(가칭)’을 구상한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다. 반갑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고착된 불평등 사회경제체제를 혁파하는 국가 비전으로 발전하기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정부가 남긴 교훈을 되돌아봐야 한다. 참여정부의 ‘비전 2030’은 한 세대 앞을 내다보는, 특히 성장과 복지가 동반성장하는 ‘희망한국’의 장기 전략을 밝힌 최초의 정부 문건이었음에도 곧바로 사장돼버렸다. 왜 그랬을까?

하나는 추진 시기와 방식의 한계이다. ‘비전 2030’은 참여정부 후반기에 뒤늦게 제안되었다. 정부가 힘이 없던 시기여서 명분용 ‘보고서’로 간주돼 버렸다. 방식도 전문가 중심이었다. 정부가 준비해 발표하는 익숙한 풍경으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당시엔 복지 경험도 부족한 때였기에 서구 복지국가를 떠올리는 청사진이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또 하나는 재정 플랜의 안이함이다. ‘비전 2030’은 복지국가를 미래상으로 제시하며 선진국 수준으로 복지지출이 늘어나 총 1100조원이 소요된다는 엄청난 수치를 발표했다. 그런데도 정부 홍보자료에는 “2010년까지는 증세 없이 추진합니다”라는 문구가 버젓이 등장한다. 당분간 세출구조조정, 비과세 감면 축소 등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이후 국가채무로 조달할지, 증세를 추진할지는 다음 정권의 과제로 넘겼다. 정부 스스로 국가전략을 맥 없는 페이퍼로 전락시킨 꼴이다.

문재인 버전은 다르리라 기대한다. 집권 초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민들의 열정이 강하다는 점도 유리한 환경이다. 비전은 선포가 아니라 공유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초안 작업에 시간을 들이기보다는 시민들과 더 많이 토론하는 자리를 가지고, 상징적 정책들을 하나씩 실천하며 비전을 만들어가기 바란다.

재정 플랜도 정공법이 요청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정공약을 보면 참여정부의 ‘비전 2030’의 한계가 떠오른다. 지출개혁의 여지가 예전에 비해 훨씬 좁은 게 재정구조의 현실인데도 여전히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의 대부분을 지출개혁 몫으로 넘겼다.

그나마 참여정부에서는 종합부동산세 시행으로 발생한 세금폭탄론이라는 암초가 있었고, 박근혜 정부는 애초 보수정권이라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지만,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증세에 이토록 소극적인 건 이해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를 향한 비판 중 하나가 ‘증세 없는 복지’였다면 세금 논의를 적극적으로 펴기에 지금만큼 좋은 시기가 있을까.

3기 민주정부라 부른다. 지난 9년 촘촘하게 준비한 정책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 재료들을 엮어 시민들이 ‘다른’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가자. 시민들과 함께, 집권 초기에, 대담한 포석을 기대한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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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도발의 파장이 거세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주는 타격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제재와 대화의 병행 노력을 공언해왔지만 북한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탄도미사일로 도발했다. 대화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문제 정책적 공간과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 본토와 태평양 작전지대가 타격권에 들어왔다”고 공언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지만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현실이 될 수 있다. 북핵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게 되면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핵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은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함께 위기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핵 실험·미사일 발사 동결 등 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에 맞춰 4강 특사 파견과 정상회담 등이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핵 접근법에는 이제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북한은 핵보유국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제재에만 의존한 북핵 폐기 입장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어떤 대안이나 비전 제시도 없이 대결적 이념공방만 되풀이하는 국내의 낡은 풍토도 바꿔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역설하던 ‘진짜 안보’를 구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 보호 방침을 재확인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한·미 공조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평화는 어디까지나 한국이 주도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핵 문제 접근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협력과 공조가 중요하지만 한국만의 주체적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 일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다.

북핵 문제는 한국전쟁과 북·미 간 적대 관계의 산물이며 그로 인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은 동북아 각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국제사회와 공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풀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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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엿새째인 15일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일시적 가동 중단 및 폐쇄를 내용으로 하는 미세먼지 대책을 발표했다. 30년이 넘은 노후 발전소 8곳은 내달 한 달 동안 일시적으로 가동이 중단되고, 내년부터는 3~6월 4개월 동안 정례적으로 같은 조치가 시행된다. 노후 발전소 10곳은 임기 내 모두 폐쇄된다. 또 대통령이 미세먼지를 챙기는 미세먼지 대책기구가 설치된다. 새 정부가 출범 초기에 국민적 관심사인 미세먼지 문제를 주요 국가 의제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여준 것은 시기적절하면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전체 미세먼지가 1~2%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절감 효과가 크지 않고 대선 공약의 재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실천 가능한 대책부터 시행하겠다는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노후 발전소 가동 중단은 전력수급이나 전기요금 인상 문제와 연결된 민감한 사안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조치가 국가 에너지 체계를 재편하는 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미래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찾아가는 대통령’ 두 번째 방문지인 서울 양천구 은정초등학교 5학년 1반의 ‘미세먼지 바로 알기 방문교실’에 참석해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누누이 강조하지만 배출원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는 실효성 있는 미세먼지 대책이 불가능하다. 미세먼지 배출원은 석탄화력발전소나 경유차, 공장과 같은 국내 요인과 중국 등 국외 요인이 있지만 각각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경유차 문제나 중국발 미세먼지와 같은 난제 해결을 위해서는 배출원 분석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총괄하는 미세먼지 대책기구의 설치는 적절한 조치라 하겠다.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해양부, 외교부 등에 산재된 미세먼지 업무를 총괄하고 과학적인 자료를 생산하는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세우기 바란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조치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에 국한되지만 그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미세먼지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 전문가, 시민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국가적 과제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하거나 보여주기식 정책에 집착하지 말고 실효성 있는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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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지난 25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동성애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며 “합법화를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론 말미에 문 후보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이 무색할 정도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6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열린 '천군만마 국방안보 1000인 지지선언'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는 도중 성 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든 동성애자들이 항의구호를 외치며 문 후보에게 달려들고 있다. 권호욱 기자

동성애는 찬반 사안이 아니다. 이성애를 놓고 찬반을 따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권 선진국가라면 문 후보의 동성애 반대 발언은 혐오 표현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만에 하나라도 문 후보가 사회의 다수인 이성애자의 표를 얻기 위해 성소수자를 폄훼했다면 민주주의 사회의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 후보가 동성애와 동성혼을 혼동하고, 여기에 군대 동성애 문제까지 뒤섞이는 바람에 말실수한 것이라고 해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성소수자 같은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는 주요 개념은 물론이고 토씨까지 정확하게 표현해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문 후보가 학습이 안되었거나, 성소수자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 후보 발언으로 성소수자들은 상처를 입었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또 다른 어떤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이든 인권은 모두 똑같이 존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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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구에서 유세를 시작했다. 그의 첫 유세 장소는 2·28민주운동 기념탑 광장이다.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28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최초의 저항운동이었으며 4월혁명의 ‘출발’이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구의 2·28에서 시작하여 마산의 3·15를 거쳐 서울의 4·19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이 대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대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촛불민심의 대변자로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보이려 하는 것 같다.

이런 문재인 후보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대구는 민주화 이후 한번도 민주당을 밀어주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대통령 선거는 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상수였다. 김대중-노무현 당선 때에도 이 지역의 몰표본능은 변함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오른쪽)가 17일 대구 경북대학교 앞 유세에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시민들의 손을 잡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 지역에서 보수정당 지지와 민주당 배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감정, 둘째는 정당일체감, 셋째는 이념이다.

처음에는 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주당을 배제하자고 했다. 근거 없는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민주당에 대한 거부 감정을 키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적 언어, 다른 지역에 대한 막연한 우월감을 동반했다. 이런 감정의 동원은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적으로 유통되지 않았다. 향우회나 동창회와 같은 일차적 관계의 모임에서 내밀하게 통용되는 담론이었다.

이와 같은, 감정에 기초한 정당지지와 배제가 거듭되면서 그것은 급기야 정당일체감으로 발전하였다. 이 단계에서부터 이 지역의 민주당 배제는 조금 더 노골화되었다. 특정 정당과는 동일시하는 의식이 생기고 그와 경쟁하는 다른 정당에 대해서는 적대의식이 흐름을 이루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는 이를 대표하는 담론이다. 민주당에 대한 배제는 조금 더 공개적 영역에서 진행되기 시작했다.

점차 정당일체감은 그 정당이 추구하고 있는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로 진화하였다.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을 배제하는 논리와 가치를 구축한 것이다. 이 담론은 이제 공적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배제하는 논리적 근거와 명분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촛불민심이 우리나라 정치지형을 완전히 흔들어놓은 상황에서도 감정-정당일체감-이념으로 특정 정당을 배제하는 이 지역 정치의 바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촛불민심의 충격으로 이 지역을 독점적으로 대표하던 보수정당이 둘로 나누어지고 두 정당의 지지율이 보잘것없게 된 지금에도 이 지역 민심은 민주당으로 가지 않고 있다. 그냥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도록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지하자는 흐름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후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되지 않도록 다른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이런 경향이 얼마나 힘을 받을까?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나 그 조짐이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구 정치 역사에는 그런 경험이 몇 차례 있었다는 것도 지나칠 일이 아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진보당 조봉암 후보와 경쟁하여 70% 대 30% 비율로 승리했으나 대구에서는 그 비율이 거꾸로 나왔다. 이승만이 30%를 받았고 조봉암이 70%를 받았다. 정확한 득표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비율이 그렇다. 대구가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던 이 선거는 사실 대구 사람들이 조봉암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승만이 싫어서였다. 당시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사망하였는데 그 때문에 이승만을 싫어하는 모든 표가 진보당 조봉암으로 몰린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돌풍이 분 것이나, 1996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련 바람이 몰아친 것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싫어서였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것 같다. 그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인 2·28민주운동기념탑 광장에서 첫 유세를 함으로써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일깨워 지지를 얻으려고 하였다. 이 힘과, 그가 싫어서 안철수 후보로 흐르는 민심의 힘이 교차하면서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것 같다. 수십년 만에 대구정치가 상수에서 변수가 되고 있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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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전 대표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나도 참여해서 한 표를 던졌다. 두 사람 외에는 사실상 유력 후보가 없다 하니 어쨌든 정권교체가 확실하고, 그러면 이제 ‘촛불혁명’의 2단계란 것도 달성되는 건가?

그런데 뭔가 매우 찜찜하고 부족하다. 굉장히 익숙한, 김 빠진 국산맥주를 종이컵에 부어 들이켜는 듯한, 외려 더 목마르고 답답해진 이 느낌은 도대체 뭘까? 호사가 ‘아재’들이나 종편은, 매일매일 몇 자 구도, 여론조사 산수놀이에 열을 올리고, 별 논쟁거리도 안될 논쟁을 만들어내는데 왜 이런가? ‘아름다운 경선’이었다 자찬들도 하는데, 나 자신 지난달 자동응답(ARS) 전화투표 참가 신청할 때와 마음가짐이 달라져버렸다. 이른바 ‘어대문’ 상황이라 그런가? 그렇진 않다. 1·2위 간 격차가 좁아진다 가정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3일 서울 고척동 스카이돔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수도권, 강원, 제주 선출대회에서 최종 후보로 선출된 뒤 손을 들어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늘 봐오던 익숙한 ‘현실 정치+정치소외’의 구도 아닌가? 일부 ‘빠’들은 우상화와 비이성으로 무장하고 다른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벌떼처럼 공격하는 것을 낙이자 자랑으로 삼는 듯하다. 그러나 외려 그들이 맵차게 행동할수록, 다른 다수의 시민들은 뜨악해지고 정치에 대한 염오가 커진다. 한때 정치인 팬덤이 정치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적이 있었다. 이젠 아닌 듯하다.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회의해야 한다. 폭력과 욕설로 중무장하고 역사의 발목을 뒤에서 잡아채려 한 박사모만의 문제인가? 박근혜에게 박사모가 눈을 멀게 하는 암종이었듯, 다른 정치인들도 열광적 지지가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

선거철답게(?) 멋진 공약도 넘쳐나지만 진정성이 있다고는 여기기 어렵다. 탄핵정국 이후 야당 의원들은 각기 스타가 돼 방송 출연을 하거나 선거운동하느라 바빠선지, 개혁입법을 단 하나도 통과 안 시켰다. 18세 선거권 하나 못 만들어낸 원내 1당과 다른 당들의 개혁의지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까? 과연 이제 젊은 세대의 대선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 이르러 찜찜함의 결정적인 이유를 만난다. 노동자, 여성, 청년들은 대선판에서 배제돼가고 있다. 익숙한 상황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끼리의 바람이 있는진 몰라도 그들과 함께하는 바람은 잘 모르겠다. 백화점식 공약 나열 앞에 대선이 ‘내 일’이라 여겨질 진정한 논쟁이나 참여는 없다. 후보들 중에도 청년·여성·노동자들이 ‘진짜 내 대통령’이라 여길 만한 신선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인다. 대신 욕심꾸러기 영감님들과 권력기술자들이 정치공학으로 판을 수놓는다. ‘정치소외’는 이 모든 것의 결과이리라.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경선후보가 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19대 대선후보자 선출대회에서 후보로 공식 선출된 뒤 수락연설을 마치고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ㅣ연합뉴스

만약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다시 낮아지고 결국 환멸이 온 나라를 덮을 것 같아 불길하다. 실제로 서울대 ‘대학신문’(4월3일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지지하는 후보를 묻자 서울대생의 30%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했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한 학생은 ‘대세’ 후보를 지지한다는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6.4%가 “딱히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서”라고 답했고, “정치에 무관심해 후보들에 대해 잘 몰라서”라는 답변(32.4%)이 뒤를 이었다 한다. 왜 이럴까? 이런 큰 무관심은 어떻게 ‘촛불’과 병립하는가? 아마 일하느라, 입사시험 준비하느라 바쁜 젊은이들 대부분이 비슷해지고 있는 거 아닐까?

전적으로 정치권의 책임이다. TV 프로그램에서도 앞다퉈 정치를 다루고, 헌법을 논하고 설명하는 책들이 수십만권 팔릴 정도로 시민의 주권의식과 참여의식은 높아졌지만, 대선은 과연 거기에 부응하는 방향인가?

촛불과 정권교체는 양가적 관계를 맺는 듯하다. 일면 이번 대선에서 야당이 집권하는 것은 일종의 연착륙일 수 있겠다. 즉 ‘이명박근혜’ 시대의 종결과 새 민주정부의 시발은 ‘촛불 여망’의 공약수이자 최소치다. 반면 ‘그들만의 리그’식으로 진행되는 대선은 촛불의 한계다. 대선이 오히려 촛불을 배신하고 그 변혁성을 진압하는 수동혁명이 될 거라는 불길한 예언은 이미 나오기도 했었다. 자다 봉창 두드리는 듯한 대연정이니 개헌이니 하는 소리들과 박근혜를 구속하자마자 ‘사면’ 논란부터 나온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러려고 주말마다 촛불을 들었나?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아래로부터의 정치에너지가 급격히 소진되는 느낌이다. 퇴진행동이 촛불을 여의도 국회로 가져가지 않은 것(못한 것)이야말로 최대의 아쉬움이다. 적어도 이런 견지에서는 ‘대세’란 허망하다. ‘대세’가 그러니 뭔가 억지스러운 ‘이자구도’도 자동 기각이다. 촛불의 연장으로서의 대선, 개혁과제를 진짜 수행하기 위한 대선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정권교체를 원하지 않는다. 촛불은 ‘다른 사회’를 원한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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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은 어제 서울 고척스카이돔 구장에서 마지막으로 수도권·강원·제주 지역 순회경선을 치른 결과, 누적 투표율 57%를 기록하며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을 압도적인 표차로 제친 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오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원내 5개 정당 대선후보들이 모두 정해지면서 19대 대선 본선이 시작된다.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선 문 후보는 어제 대세론을 확인하면서 대선 경쟁의 선두에 섰지만 그와 민주당에 주어진 과제는 무겁다. 우선 문 후보에게는 대선 본선을 정책 중심의 레이스가 되도록 이끌어야 할 책무가 있다. 촉박한 대선 일정으로 정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그랬겠지만, 후보들이 국정운영의 방향을 놓고 제대로 토론하지 못했다.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통해 요구한 개혁 방안은 제대로 제시조차 되지 않았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보 간 인신공격과 비방만 난무했다. 본선이 후보들의 정책과 자질을 검증하는 생산적인 경쟁이 될지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으로 갈지는 문 후보와 민주당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력 주자인 문 후보가 선거판의 흐름을 주도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문 후보와 민주당이 진정 준비된 대통령을 입증하고자 한다면 네거티브 대응을 자제하면서 선거판을 건강하게 이끌어나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3일 서울 고척동 스카이돔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후보자 수도권, 강원, 제주 선출대회에서 최종 후보로 선출된 뒤 손을 들어 지지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 후보가 떠안은 또 다른 과제는 민주당과 국가의 통합이다. 문 후보는 끊임없이 친문재인 패권주의 논란을 불렀다. 지난 대선 이래 여러 당 대표가 문 후보와 지지자들과 맞서다 당을 떠났다. 이번 경선에서도 안희정 후보가 “질리게 한다”고 할 만큼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 이런 포용력으로는 산적한 과업을 앞에 두고 있는 국가를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 당선과 함께 대개혁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차기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과 마주서야 한다. 시민의 기대가 높은데 민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면 그 정권은 실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 지지율은 민주당과 그의 성과라기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구여권의 실정에 대한 실망감에 따른 것이다. 문 후보에 대한 지지율 못지않게 높은 비호감도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문 후보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이런 확장성의 한계와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들은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대선 레이스와 통합의 리더십을 갖춘 후보를 원하고 있다. 이런 책임을 우선 부여받은 문 후보가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대세론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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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이 29일 전격 회동했다. 정 전 총리는 “우리나라가 이래 갖곤 안되겠다, 좀 더 잘 만들기 위해선 정치구도, 지형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화합과 통합으로 가야 한다. 통합·공동·화합정부를 하는 것에 대해 얘기해 봤다”고도 했다.

김 전 대표는 대권 도전 결심을 굳히고 다음주 대선 출마 선언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리도 출마 선언 이후 독자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홍 전 회장은 이번 대선에서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회동에서 세 사람은 나라 걱정을 했다고 한다. 결국 보수·중도 대연합의 필요성을 공유했을 것으로 사람들은 보고 있다. 이미 김 전 대표는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고 반문(반문재인) 세력 결집을 주도해오고 있다.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정운찬 전 국무총리(왼쪽) 등과 조찬회동을 한 뒤 호텔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5·9 대통령선거는 이제 41일을 남겨놓고 있다. 각 당의 대선후보는 확정됐거나 차츰 윤곽이 잡히고 있다. 당 후보들은 모두 국정을 이끌 정책과 비전, 정치적 노선을 제시하고 치열하게 당원·시민들의 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한데 정당과 무관한 사람들 몇이 바깥에 모여 ‘문재인은 안된다’는 식의 연대를 궁리했다면 어리둥절해질 뿐이다. 누가 이들에게 그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큰 선거를 앞두고 정파 간의 연대나 후보단일화 논의가 나오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요, 비난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합집산에도 명분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에 대해 지금까지 보수 정당과 후보 누구도 반성과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반성은커녕 탄핵 정국 내내 민심에 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바른정당도 국정농단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이들을 묶어 대선 구도를 바꿔보겠다는 시도는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세 사람은 ‘화합과 통합’을 얘기하지만, 책임질 사람이 책임을 진 후에 통합도 가능한 것이다. 

앞서 대선과 개헌을 병행하려는 이른바 ‘개헌 연대’가 흐지부지 소멸된 바 있다. 개헌을 고리로 대선에 승산 없는 세력들이 연대해 장차 권력을 나눠 먹겠다는 속이 너무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야합이 동력을 받을 리 만무했다. 3인이 통합정부니 공동정부니 운운하는 것도 호응이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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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후보 간 경쟁이 정책 대결이 아니라 말꼬리 잡기와 흠집 내기로 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표창장’ 논란이 대표적이다. 문 후보가 토론회에서 특전사 복무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받기도 했다”고 소개하자 민주당 안팎의 대선후보들이 융단폭격하듯 비판을 쏟아냈다. 비판의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크게 문제 삼을 일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또 자유한국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 끝에 별문제가 없다고 발표한 문 후보 아들의 대기업 입사에 대해 연일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들의 토론회가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재명 성남시장,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최성 고양시장. 사진공동취재단

이번 대선에서 정책 토론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경제와 민생, 외교안보, 노동 등 해결이 시급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후보 간 치열한 토론을 통해 공약을 검증해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게다가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와 캠프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책을 조율할 틈도 없이 바로 집무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마당에 선거 과정을 통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한 공약을 국정에 그대로 반영한다면 상당한 시행착오가 우려된다. 그런데 후보 간 정책 토론의 빈도는 오히려 다른 때보다 더 적다.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 복지와 외교안보 정책 등을 놓고 정책선거를 했던 것에 비해서도 후퇴하고 있다. 갑자기 치러지는 대선이라 공약 준비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해도 아쉬운 일이다. 후보 약세로 공약조차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정당과 후보들이 비방전에 더욱 적극적인 점은 유감스럽다. 정책 대결을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흠집 내기로 선거판을 흐리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이다.

문 후보를 비판했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어제 공세를 멈추며 “경선 캠페인이 네거티브로 흐르지 않도록 품격 있게, 그리고 절제 있게 말하고 상대를 존중하자”고 제안했다. 바람직한 태도이다. 모든 후보와 캠프는 꼬투리 잡기 캠페인을 자제하고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 정책을 검증받지 않은 후보가 집권하면 시민은 또다시 좌절할 수밖에 없다. 언론과 시민들도 정책 대결이 가능하도록 후보들의 공약에 주목해야 한다. 유권자가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후보들 간 정책 대결도 유도할 수 있다. 후보 간 직접 토론뿐 아니라 전문가들 간 토론의 장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조기 대선이 정작 시민의 바람과 거꾸로 가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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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계로 분류되는 양향자 최고위원은 엊그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이 전문 시위꾼처럼 귀족노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말했다. 전윤철 공동선대위원장은 “제조업은 한계에 직면했고 악성노조까지 감안하면 민간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할 여력이 적다”고 말했다. ‘전문 시위꾼’ ‘귀족노조’ ‘악성노조’ 등의 발언은 노조를 혐오 집단으로 낙인찍는다는 면에서 종북몰이와 다를 바 없다. 앞서 안보 자문역으로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군인들은 아무 죄가 없다”고 했다. 발언이 문제가 되자 당사자들이 사과하거나 캠프를 떠났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유력 대권주자 주변의 발언이 이렇게 가벼워서야 어떻게 믿음을 줄 수 있겠는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일 서울 구로구 G-벨리컨벤션 센터에서 정보통신기술(ICT) 현장 리더들과 간담회를 갖고있다. 이준헌 기자

문재인 캠프 인사들의 잇단 구설은 단순한 말실수로만 보기 어렵다. 문 전 대표는 매일같이 인재 영입을 발표하고 있다. 지금까지 참여한 각계 인사만 1000명이 훌쩍 넘는다. 유능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연구 자문을 넘어 세(勢) 과시용으로 무분별 영입하는 것은 곤란하다. 최근에는 미디어특보단에 합류한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의 이명박 정부 시절 친정부 편향 보도 경력을 놓고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캠프 외연 확장에 집중한 나머지 내실에 소홀한 인상이 짙다.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문재인 캠프가 어떤 나라를 만들려는 것인지 믿음을 주지 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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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일정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유력 후보들이 공약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그제 정책 대담집에서 현행 21개월인 군 복무기간을 1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때 18개월까지 단축하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면서 단계적으로 1년까지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10개월로의 단축을 주장했다. 앞서 모병제 전환을 거론한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는 최저임금의 15% 수준인 사병 임금을 50%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가로 제시했다. 그는 사교육 폐지도 공약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은 ‘육아휴직 3년법’을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다.

조만간 현실화할 인구절벽과 그에 따른 현역병 자원 감소를 고려하면 현행 군 복무제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복무기간을 당장 1년 또는 10개월로 줄이는 것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역대 모든 정권이 복무기간 단축을 접은 것은 공약 이행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으로 안보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향후 5년 내에 복무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수다. 공약을 실천에 옮기지 못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온 공약이 분명하다. 추가적인 복무 단축은 기술군 중심의 군 체제 개편 및 모병제 도입 등과 함께 장기적 과제로 검토할 문제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7일 서울 마포의 한 호텔에서 경향신문과 신년 인터뷰를 하며 대선과 관련한 현안과 정책 등의 구상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남 지사가 2018년 국민투표를 내걸고 사교육 폐지를 주장한 것도 비현실적이다. 헌재에서 이미 위헌 결정이 난 사안이다. 공공부문처럼 민간기업에서도 육아휴직 3년을 보장하겠다는 유 의원의 공약 역시 허용된 육아휴직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앞서갔다.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인기영합적 공약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다. 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은 데다 선거기간이 짧아 유권자의 시선을 단숨에 끌려는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약을 검증할 시간은 부족하다. 비중이 높아진 50대 유권자층이나 선거에 무관심한 젊은층을 겨냥한 파격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차별을 과감히 줄일 개혁적인 공약은 필요하다. 그러나 재원 대책이 없는 공약, 구체적 실행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약속은 공허하다. 실패한 정권이 또다시 탄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약 검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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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 모인 다수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회학자들은 군중의 유형을 다양하게 구분한다. 쇼윈도 앞에 모여든 ‘우연적 군중’과 스포츠 경기관람을 위해 모인 ‘관습적 군중’으로 나누거나, 강렬한 일체감으로 군무에 빠져드는 ‘춤추는 군중’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군중행동 가운데 언제나 주목되는 것은 집단저항이나 시위에 참여하는 ‘능동적 군중’이다. 능동적 시위군중은 자칫 충동적으로 변해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서구의 대규모 시위는 약탈과 방화가 없는 경우가 드물다. 시위군중의 폭력성은 자극에 대한 순간적 반응의 효과이기 쉽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타나는 ‘순환적 반응’인 셈이다. 반면에 사람들의 일상적 상호작용은 순환적이 아니라 상대의 말과 몸짓을 알아듣고 이해한 후에 반응하는 ‘해석적 과정’이다.

지난 주말 광화문에 모인 100만명이 넘는 군중시위에는 폭력도 없고 순환반응도 없었다. 빼어난 시민의식이라고 했다. 21세기에 ‘무당국가’로 낙인 찍혀 해외에서 추락한 국격을 그나마 100만 촛불시민의 수준 높은 시위문화가 살렸다고도 했다. 그 날 구름처럼 모인 100만의 시위군중은 놀라우리만치 이성적이었다. 1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점령’했던 거리에 쓰레기 한 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무서운 시민들이었다. 그들이 거리로 나와 외친 것은 광폭한 불만이 아니라 아주 냉철하고 차가운 분노였다. 그들은 충동적 군중이 아니라 서로의 표정을 읽고 연사의 발언에 귀 기울이며 끊임없이 현실을 판단하는 ‘해석적 군중’이었다.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1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대통령 퇴진 촛불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 무서운 100만 군중의 차가운 분노는 모든 정세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과 시간 끌기, 변호사의 입을 통해 확인된 어떻게든 임기를 채우고자 하는 몸부림과 뻔뻔함, 그 모든 것을 냉철하게 포착했을 것이다. 또한 정치적 이익에 따라 분열하는 정치인의 타산적 행동 또한 분명히 가릴 것이다. 특히 대안이 되어야 할 야권에 대해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오직 하나의 대오를 만들기를 염원하고 있다. 야권 내의 서로에 대한 비방은 시민들에게는 이기적일뿐더러 때 이른 선거공학으로 비칠 뿐이다. ‘부패’로 망하는 박근혜 정권의 목전에서 ‘분열’로 망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는 안된다. 박근혜 퇴진의 절체절명한 국면에서 비난은 오로지 이 대오를 이탈하는 경우로만 한정되어야 한다.

이제 저 무서운 100만의 해석적 군중 앞에서, 나아가 그들이 내리는 ‘명령’ 앞에서 야 3당은 하나의 대오로 결집해야 한다. 마침 그 조건도 만들어졌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이 이미 ‘질서 있는 퇴진’을 일관되게 주장했고,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도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대권주자들도 대통령 퇴진 대오에 모두 동참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 광장의 100만 시민과 함께 퇴진운동에 벌써 뛰어들었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마침내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설 것을 선언했다.

이제 야 3당은 가슴 뚫린 시민들을 위무해야 한다. 촌철의 상황도 놓치지 않고 차가운 분노로 대응하는 위대한 시민을 이제는 야 3당이 앞서서 끌어줘야 한다. 야 3당이 당리당략을 넘어 박근혜 퇴진운동을 거국적으로 주도했으면 한다. 이번 주말 또 한 번의 100만 군중 앞에서 그 출발을 알렸으면 한다.

나는 이번 주말 다시 모이게 될 광화문의 100만 촛불 군중 앞에서 야 3당이 ‘박근혜 퇴진 2000만 서명운동’을 천명할 것을 제안한다. 이미 안철수 전 대표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을 야 3당이 공조해서 2000만 서명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올 연말을 기한으로 적극 추진했으면 한다. 나아가 야 3당은 조기 대선을 포함한 정권이양 일정을 합의해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이를 통해 박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했으면 좋겠다.

1986년 2월 당시 신민당과 민추협은 ‘1000만 개헌서명운동’을 시도했다. 전두환 정권의 혹독한 탄압과 감시 속에서 연행과 투옥이 일상화된 가운데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다. 그 험한 시절 1000만 서명운동을 추진한 민주화의 역사를 되새긴다면 우리 시대에 어디로든 흐르는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2000만 서명은 빠르고도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야 3당 대표와 대권주자들이 손을 맞잡고 전국을 순회하며 서명운동본부를 발족시킨다면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가 트일 수 있지 않겠는가?

100만 군중을 2000만의 시민행동으로 잇고, 마침내 박근혜의 ‘사설국가’를 정상적 민주공화국으로 되살리는 역사의 과업을 이제 야 3당이 기꺼이 떠안아야 한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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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의당 대표선거 후보로 나선 조성주 후보의 출마선언문이 SNS를 통해 화제가 됐다. 2세대 진보정치를 주창한 그의 선언문은 진보진영뿐 아니라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도 새길 부분이 많아 보인다.

조성주는 양당 정치 구도의 ‘한국 민주주의가 외면한 이들’을 대변하겠다고 선언한다. 쌀과 김치가 있으면 부탁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젊은 작가, 수십 번의 취업실패에 절망하며 고시원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청년이 그들이다. 현실이 암담한 젊은이는 이제 소수가 아니다. 청년 10명 중 1명은 백수이고, 대졸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으로 첫 직장을 구하고, 그 비정규직의 월급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 이어 인간관계, 내집마련,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라는 말도 나온다. 갤럽이 지난 24일 공개한 세계 웰빙지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145개국 중 11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같은 앞선 세대의 경험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노동운동 밖의 노동에 대한 경험이라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그 영웅담의 시대는 지났다는 선언이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은 더 이상 진리의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 준비기관화 됐고, 일자리는 ‘한 줌의 정규직’과 ‘대부분의 비정규직’으로 나눠진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새정치연합도 최근 혁신에 나섰다. 혁신위는 당내 기득권 타파, 사회적 특권 내려놓기, 불평등 해소, 전국정당화, 공천제도 민주화 등 5대 혁신 분야도 제시한 상태다. “새정치연합은 도당(徒黨) 또는 무리들의 모임이라고 보는 게 맞다”는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기준에서 보자면, 이번 혁신 노력은 도당을 그나마 정당(政黨)답게 만드는 과정이다.

정당으로서 기본을 갖춰가는 것과 별개로 새정치연합이 유권자들의 사랑을 원한다면 조성주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당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대변해 줄 때 지지받을 수 있다. 졸업후에도 대출금 갚기 바쁘고, 대기업 정규직은커녕 비정규직 자리도 못 구한 사람들이 주변에 흔하다. 정치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은 일부 극빈층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다수다.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면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복지를 챙겨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이제 1980년대 독재 타도에 앞장섰던 자랑스러운 정당의 기억을 잊어야 한다. ‘86세대’의 정당, 민주화 세력의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 제2의 민주화, 즉 경제적 민주화에 앞장서는 정당이 돼야 한다. 소외된 다수보다 승리한 소수가 우선이고, 상생보다는 경쟁이 먼저라는 세력과 싸워야 한다. 정권과 각을 세우며 반사이익을 얻으려 말고 소시민의 팍팍한 현실과 싸워서 개선해야 한다. 최근 새정치연합에서 유일하게 칭찬받는 조직이 을(乙)들의 권익을 위한 ‘을지로위원회’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25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25 한국전쟁 65주년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 (출처 : 경향DB)


새정치연합은 현재 부동의 제1야당이다. 내부적으로 집권은 못해도 2등 지위는 변함이 없을 것이란 사고도 팽배하다. 연일 공천 지분 싸움을 하는 것도 이런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면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유권자들이 새로운 대안 야당을 찾아나서거나, 아예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다. 기업환경에 빗대자면 새정치연합은 고객인 유권자들에게 기대를 갖게 하고 다른 정당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다시 찾고 키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다.

환경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면 대기업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현실이다. 연일 파당을 지어 내부 투쟁만 하는 부실덩어리라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다.


박영환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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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이 4·29 재·보선에서 완패한 뒤 문재인 당대표 사퇴론이 당 일부에서 고개를 든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사퇴론 자체는 책임정치라는 차원에서 정상적인 정치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내 다수 의견은 사퇴가 아니었다. 대안부재 때문이기도 했고, 그에게 기회를 더 줘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문 대표가 패배를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공갈친다”면서 동료 최고위원을 막말로 공격하고, 느닷없이 노래를 부르는 등 제1야당 지도부라고 믿기 어려운 행태가 속출했다. 패배한 당의 지도부가 신뢰와 권위까지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다.

정당에 선거 패배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 패배의 원인을 찾아내 바로잡고, 실패를 극복하려는 집단적 열의를 조직한다면 얼마든지 새 기회를 만들 수 있다. 패배에 대처하는 당의 태도와 자세, 실천역량에 따라 패배는 다음 승리를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새정치연합은 패배를 다루는 데 실패했다. 당의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 채 당내 분열상은 더 심화되고 당 지도력은 표류하는 이 현상은 ‘또 다른 패배’, 바로 그것이다.

야당에 이 두 번째 패배는 어쩌면 재·보선 패배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바로 그건 전망을 상실하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벌써 총선 패배론이 나오고 있다. 모두 새로운 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합심협력해도 부족할 판에 계파 갈등이 고개를 든 결과다. 새정치연합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에 대해 문 대표는 물론 지도부, 의원 각자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문 대표의 책임과 역할이 막중함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야당과 야당 지지자 사이에 위기감이 확산되는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과감하고도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 대표는 재신임을 받는다는 각오로 전면 쇄신을 해야 한다. 의사 결정 구조도 바꾸고, 당 조직도 재편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런 다음에도 계파 이익의 관점에서 시비하는 당내 세력이 있다면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 대표는 아직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판세력에게 반박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려다 보류하고 그 와중에 입장문이 공개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그 내용도 “기득권과 공천권을 탐해” “공천 지분 챙기기” 등 당내 갈등을 자극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문 대표 앞에 펼쳐지고 있는 문제는 다른 누가 아닌, 문 대표 자신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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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3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먼저, 통합이냐 혁신이냐 하는 것이다. 짧게 반추하더라도 새정치연합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통합노선으로 치렀으나 패배했다. 그럼에도 계속 통합노선을 견지할 것인지, 아니면 혁신노선으로 터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정당모델이냐 운동모델이냐 하는 것이다. 당명은 바뀌었지만 새정치연합은 2002년 국민경선부터 정당보다는 운동모델을 지향해왔다. 지구당을 없앴고, 당원보다는 시민의 참여를 더 강조했다. 지역대결 구도와 그로 인한 핵심 지지층의 구조적 열세 탓에 소수파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노선 때문에 정당의 풀뿌리 조직이 약화된 건 사실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어정쩡한 스탠스다. 둘 중에 어느 모델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대표인지 후보인지 그 롤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새정치연합이 유효한 수권정당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 당은 너무 오랫동안 대표 리더십의 공백으로 인해 지리멸렬했다. 당 대표는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악역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 때문에 대중적으로 나쁜 이미지를 낳을 수 있다. 혁신을 이뤄내면 전보다 훨씬 큰 도약이 뒤따르겠지만 일시적 손해는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혁신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다음 대선에 나설 후보로서는 맞닥뜨리기 싫은 게 당연하다.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길을 100% 배제하는 건 아니나 큰 방향은 정해야 한다. 절충은 어렵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이기려면 문 대표가 대표로서 리더십을 발휘해 당을 일대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일은 혼자 해내기 벅차다. 하긴 해야 하나 힘은 달리고….

그러나 방법이 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연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새정치연합에서 새로움을 상징한다. 낡은 체제나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롭다. 대중적 지지가 강한 차기 대선주자들이다. 이들 셋이 힘을 합치면 새정치연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참신한’ 정당이 된다.

문·안·박(MAP) 혁신연대는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필요하다. 먼저 당내 기득권의 맹렬한 저항이다. 새정치연합은 혁신 없이 회생할 수 없다. 혁신이 성공을 반드시 담보하는 건 아니지만 혁신이 없으면 무조건 실패한다. 그런데 혁신을 하려면 기성질서 또는 기득권의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 이들의 저항은 집요하고 격렬할 것이다. 혁신연대를 통해 수구 대 혁신의 대결로 가야 돌파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제로섬 경쟁의 위험성이다. 당 대표가 혁신을 하려 해도 대선주자 간의 경쟁 프레임이 작동한다면 혁신은 혁신이 아니라 패권주의, 권력욕으로 오해된다. 계파 갈등 또는 대선경쟁의 전초전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얘기다. 셋이 연대하면 이런 혼란을 방지할 수 있다. 문·안·박 혁신연대는 당도 살고, 대선주자들도 살고, 지지층도 사는 삼생(三生)의 길이다.

정치적 흐름이나 여론지형상 새정치연합에 2016년과 2017년은 좋은 기회다.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평가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에서도 야권이 앞서고 있다. 관건은 야권이 내부 싸움 때문에 분열하고, 그 때문에 혁신에 실패할지 여부다. 야권이 내분에 발목이 잡히고, 여권에선 개혁파가 대세를 장악할 때 2016년과 2017년은 새정치연합에 ‘어게인 2012’가 될 수도 있다. 분열을 방지하고 혁신을 이뤄내는 가장 좋은 방안이 바로 문·안·박 혁신연대다. 이 연대로 총선에서 승리한 다음부터 셋 간의 경쟁이 펼쳐진다면 그때는 제로섬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다. 지금 만약 셋이 견제·경쟁하거나 방관·외면한다면 그건 공멸하는 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왼쪽)과 박영선 의원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박영선·안철수가 말하는 경제성장을 위한 공정한 시장경쟁 좌담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_ 연합뉴스


한 왕조를 창업한 유방은 위험을 무릅쓰고 한신에게 독자세력화의 길을 열어줬기에 성공했다. 천하를 움켜쥐기 직전까지 갔던 항우는 독패하다 망했다. 문재인 대표는 권력을 나눠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당 혁신이 성공해야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에게도 기회가 온다. 안 의원은 새로움을 더해야 하고, 박 시장은 시민을 움직여야 한다. 이들은 아직 독자적으로 집권하기엔 힘이 부족하다. 따로 움직이면 공격에도 취약하다. 대의를 위해 돕고 거들면서 동반성장하는 혁신연대는 재집권으로 가는 지도(map)가 될 것이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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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준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는 자신의 부적절한 제안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문 대표는 제안 이튿날인 지난 14일 “국민에게 물어보고 국민 뜻에 따르자는 여론조사 제의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국민의 지지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라며 새누리당을 비판했다.

여론조사로 인준 여부를 정하자는 제안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대여 전략으로 부적절하거나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그건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넘어서는 문제로 정치의 역할을 포기하는 반정치적, 비민주적 발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잘못인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다. 시민들이 직접 법을 만들고 국정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시민을 대표하는 정당이 경쟁을 통해 국회와 국가를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는 이미 존재하는 시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표성·책임성이 있느냐의 문제다. 특히 정당은 정책, 공직 후보 추천, 현안에 대한 의견 표명을 통해 시민 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것을 여론조사에 맡기겠다면 정당, 정치인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회·정부, 나아가 대통령도 필요 없다. 여론조사 기관 하나만 있으면 그만인데 그런 복잡한 제도를 왜 두어야 하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6일 이완구 총리 인준안 표결을 앞두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눈을 감고 최고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출처 : 경향DB)


문 대표는 정당 역할뿐 아니라 일관성에서도 흔들리고 있다. 그는 당초 “이번이 세 번째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넘어가려 했으나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보수언론은 그가 다음날 “이미 두 명의 총리 후보가 낙마한 상황이라 부담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인준 반대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의사 표시로 보인다. 그러나 당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인준 반대다. 당 대표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또 최고위원으로서 신임 지도부에 진입한 정청래 의원은 연일 혐오 발언을 일삼고 있다. 문 대표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를 유대인의 히틀러 참배에 비유, 여야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고도 자제할 줄 모른다.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참배에 대해서도 “참 얼굴 두껍습니다”라며 거친 표현을 했다. 여야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런 식의 언어로 공격하는 것이 그의 본래 임무는 아닐 것이다. 지도부의 일원이 됐으면 책임있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출범한 지 겨우 일주일 넘은 시점인데 새 지도부가 불안해 보인다. 문 대표와 정 최고위원의 실망스러운 태도 때문일 것이다. 신뢰감을 주는 지도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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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무관심 속에 치러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선거에서 유력 차기 대권후보 문재인은 신승(辛勝)하였으나 당내 최고지위는 물론 대중노출 측면에서도 유리한 지위를 확보했고, 호남 맹주 박지원은 문재인 견제세력을 총집결시키면서 세를 과시했으며, 1980년대 반독재학생운동의 지도자 이인영은 고투(苦鬪)하며 존재감을 유지했다. 그러나 과열되기 마련인 선거과정의 공방은 각 후보 및 지지자 사이에 깊은 감정의 골을 남겼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이 지적했던, 당을 분열시키고 지도부를 무력화하는 ‘악마’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선거결과는 이 정당이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의 정신을 따르는 정당임을 재확인해주었고, 각 세력의 지분은 대략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었다. 이제 세 후보 및 맹렬 지지자들은 세 분 고인이 자신들에게 무슨 요청을 하고 있을 것인지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현 상황이 어떠한가. “이명박근혜” 보수정권의 민낯과 밑천이 다 드러났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가 계속 하락하여 “문제 있는 수준”이 되는 등 정치적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판은 불허하고 소통은 거부하는 ‘남조선 최고 존엄’이 되었다. 집권세력은 대한민국을 “이승만과 박정희만의 나라”로 만들면서, 반대자를 억압하거나 무력화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할 의사가 없고, 경제활성화는 할 능력이 없다. 뽑아 올리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기득권 유지와 확장에 충실했던 사람들이다. 내세우는 정책은 하나같이 서민과 중산층의 주머니를 털어 ‘사회귀족’을 챙겨주는 정책이다. 그 결과 국민의 절대다수는 ‘을’ 또는 ‘장그래’가 되어 불안과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율은 새정치연합 지지율을 계속 10~20%가량 앞서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한 셈이다. 그사이 새누리당은 ‘탈박’에 시동 걸고 있다. 박근혜 정권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정권이 야당에 넘어오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가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작 발언은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필자는 2016년과 2017년 권력교체를 희망한다. 야당이 집권을 한다 해도 ‘천국’이 오진 않겠지만, ‘지옥’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에. 여기서 제1야당의 대표가 된 문재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민주화, 그리고 소득, 일자리, 복지를 중시하는 성장이라는 노선의 얼개는 잡힌 것 같다. 이제 본인이 공언한 정당 혁신을 실현해야 한다. 투명하고 계량 가능한 공천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확정하여 적대적 계파 대결과 불승복의 악순환을 원천봉쇄해야 한다. 영국 노동당의 경험에 따라, 시민참여를 보장하고 고무시키는 체제를 만들어 당의 기반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사실 이는 현대 정당이 갖추어야 할 기본의 문제이다. 새누리당이 먼저 실천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정당 혁신 없이 총선 승리는 없다. 총선 승리 없으면 문재인은 없다. 그러면 문재인은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가. ‘육참골단(肉斬骨斷)’이다.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어야 상대의 뼈를 끊을 수 있다.” 만약 문 대표가 ‘살’을 챙기다가는 자신도 죽고, 당도 죽고, 범진보도 죽을 것이다. 그 결과 수구기득권의 ‘뼈’가 끊어지기는커녕 더 튼튼해질 것이다.

문재인 자신이 ‘친노’ 해체에 나서야 한다. ‘노무현 정신’에 충실한 ‘친노’라면 당의 혁신과 정권 교체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낮추며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 문재인을 앞에 내세우고 그 뒤에서 과실(果實)을 따려는 마음을 죽여야 한다. ‘친노’로 분류되지 않는 지도자와 그 지지 세력을 존중하고, 그 마음을 읽어야 한다. 새정치연합은 애초부터 중도진보와 중도보수의 연합정당 아니던가.

‘친노’건, ‘반노’건, ‘비노’건 모두 불쏘시개를 자처하고 자신을 태울 때 희망과 신뢰가 만들어질 것이다. 노선과 정책 논쟁은 필요하지만, 폐쇄적 계파 의식·문화와 분열의 프레임은 사라져야 한다. 누구도 진리를 독점하고 있지 않다. 확보하고 있는 진리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버려야 얻는다. 비워야 채워진다. 잘라내야 자라난다. 나눠야 커진다.

※이제 ‘밥과 법’을 마무리합니다. 올해 ‘긴 호흡’을 유지하며 써야 할 법학서가 있기에 대중매체에 글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밥’을 먹는 세상, 제대로 ‘법’이 서는 세상을 위한 노력은 미력이나마 계속할 것입니다. 그간 졸고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조국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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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TAG 문재인

지난 대선에서 진보적인 시민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문재인씨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막판까지 안철수씨를 지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는가’에 대해선 거의 완전한 의견일치를 보였다. 박근혜씨다. 진보적인 시민들이 박근혜씨를 그토록 반대한 건 그가 단지 보수 후보인 걸 넘어 ‘독재자의 딸(이자 정치적 아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 시절 목숨 걸고 독재와 싸운 사람들이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걸 인생의 모욕으로 여기는 건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일이 있었다. 독재자의 딸을 그토록 반대하는 진보적인 시민의 아이들이 독재자의 시절 아이들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독재자의 시절보다 잘 먹는다. 학교에서 체벌과 억압적 교육도 그 시절에 비해 많이 가셨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삶, 아이의 일상에서 자유와 인권은 독재자의 시절보다 못하거나 억압적이다. 아이의 행복과 조화로운 성장에 가장 결정적이라는 ‘놀기’의 면에서라면 독재자 시절보다 못한 걸 넘어 비참한 지경이다. 독재자의 시절에도 아이들을 오후 내내 뛰어놀았지만 이제 아이들은 뛰어놀기는커녕 오후 내내 혹은 밤늦도록 컨베이어 벨트 위의 부품처럼 학원을 돌며 시들어간다.


참 이상한 일 아닌가. 독재가 물러난 지 30여 년이고 대통령을 ‘쥐’라고 욕해도 잡혀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며 많은 부모들이 그토록 독재자의 딸을 반대하는데, 아이들은 독재자의 시절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역시 이명박과 박근혜 때문인가. 이명박과 박근혜의 군대와 경찰이 전국의 초등학교 교문을 지키고 있다가 하교하는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 나르기라도 하는가. 바로 시민들이 제 아이들을 으르고 달래며 그러고 있지 않은가. 그들 중의 누구도 아이들이 이렇게 살아도 좋다고 말하지 않지만 하나같이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현실에 반대하다 결국 멘붕에 빠지기까지 한 그들이 그토록 무기력한 현실은 무엇인가.


두 현실을 요약하면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을 게다. 권위주의는 민주화 이전 반세기 동안의 극우독재가 남긴 것이다. 새누리당, 조·중·동을 비롯한 이른바 ‘수구 기득권 세력’이 그 주인공이며, 그들은 여전히 가능만 하다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되돌리거나 거스르고 싶어 한다. 신자유주의는 민주화 이후 특히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흐름에 편입하면서 본격화했다. 신자유주의를 통해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몇몇 대기업은 국제적인 기업이 되었지만 대다수 시민의 삶은 불안정해졌다. 양극화, 정리해고, 비정규노동, 청년실업,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이 그 내용들이다.


아이들의 삶과 관련해서 권위주의는 체벌이나 억압적 교육의 잔재들로 남아 있다. 신자유주의는 교육을 사람이 아니라 상품(인적 자원) 생산과정으로 만들어, 독재자의 시절에도 오후 내내 뛰어놀던 아이들을 학원을 돌며 시들게 만들었다. 정권으로 보자면 권위주의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모두가 해당한다. 시민은 그에 대응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지한 보수적인 시민은 권위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받아들인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지한 진보적인 시민은 권위주의는 반대하되 신자유주의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접고 산다면

우리가 외치는 진보는, 지키려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독재자의 딸을 반대하는 진보적인 시민의 아이들이 독재자 시절 아이들보다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건 결국 그래서다. 진보적인 시민들은 체벌이나 억압적 교육 같은 권위주의 교육엔 단호히 반대하지만, 아이가 학원을 돌며 시들어가는 신자유주의 교육 상황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들의 모습은 체벌과 억압적 교육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말하던 독재자 시절 시민과 수십년의 시차를 두고 빼닮았다.


미궁을 빠져나갈 열쇠 또한 그 빼닮음에 있다. 권위주의 교육은 어떻게 아이들에게서 물러났던가. 세상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며 물러났던가. 일부 운동권의 몽상으로 여겨지던 권위주의 반대운동(민주화운동)에 시민이 참여하면서 권위주의도 권위주의 교육도 물러나지 않았던가. 신자유주의 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부 비현실적 좌파의 몽상으로 여겨지는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 시민이 참여할 때 비로소 물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막막한 이야기다. 신자유주의라는 초유의 괴물 앞에서 누군들 막막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독재와의 싸움은 덜 막막했던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사람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다. 손잡고 힘을 모은다면 말이다. 다 떠나서, 우린 자문할 수 있다. 오늘 독재자의 딸을 반대하는 우리가 적어도 독재자의 시절 시민보다는 나아야 할 게 아닌가. 우리 아이들이 독재자의 시절 아이들보다는 행복해야 할 게 아닌가. 우리가 그조차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접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외치는 진보는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는 대체 무엇인가.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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