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를 주도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블랙리스트 수사에 나선 지 8개월 만이다. 법원은 블랙리스트 사건을 “어떤 명목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직권남용이자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위법 행위”라고 규정했다.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에게도 줄줄이 징역형이 선고됐다. 사필귀정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와 반성은 고사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권자인 시민을 우롱했다. 김 전 실장은 재판 과정에서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적이 없고, 노구를 이끌고 봉사했을 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7월 28일 (출처: 경향신문DB)

그러나 법원은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작성돼 문화예술인 탄압에 이용됐으며, 이 같은 행위가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표현 활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누구보다 철저하게 적법 절차를 준수했어야 함에도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지원 배제를 시행해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 미꾸라지’인 김 전 실장에 대해서는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한 비서실장으로서 누구보다 법치주의를 수호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할 임무가 있는데도 가장 정점에서 지원 배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판에서 블랙리스트 개입을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김 전 실장 등 부하들에게 유죄가 선고된 만큼 최종 책임자로서 응분의 죗값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김 전 실장에 대한 형량은 납득하기 어렵다. 법원은 김 전 실장이 오랜 기간 공직에 봉직하며 훈장을 여러 개 받은 점과 고령(78세), 건강 상태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반을 허물고 문화예술인들에게 극심한 좌절감을 안겨준 범죄에 징역 3년은 일반인의 법 상식과 거리가 멀다. 심지어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은 국회 위증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특검은 항소를 적극 검토해 국정농단 세력들이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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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조선’ 2009년 12월호에 “한국정부 지원금 받아 연방제 통일 옹호, 조총련계에 장학금 줘”란 제목의 10쪽짜리 기사가 실렸다. 리쓰메이칸대학(이하 본 대학) 코리아연구센터(이하 코리아센터)가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반한 단체’이며, 소장인 내가 ‘현재도 북한 간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제교류재단(교류재단) 등으로부터 다액의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 지지’라는 주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가연합통일방안과 더불어 연방제통일안이 들어 있는 6·15 공동선언에 서명했으며, 2007년 그를 초청하여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기에 코리아센터도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용공 반한단체라는 조잡한 논리로 짜였다. 게다가 본 대학을 ‘좌익대학’으로 단정하고 ‘총련계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고액의 가짜 영수증을 발행하고 있다’ 등 전혀 사실이 아닌 말을 지어냈다. 코리아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기만 해도 아는 초보적인 오류 등 기사에는 48군데나 오류가 있다. 사실 확인도 안 하고, 상반되는 주장을 고루 취재하지 않는 등 언론의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한마디로 가짜뉴스를 넘어 조작·모략 수준의 기사였지만 순식간에 인터넷과 각 매체에 퍼날라지면서 코리아센터의 활동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에 나는 주식회사 ‘월간 조선사’와 담당기자를 상대로 2010년 1월11일, 기사의 정정, 사죄 광고 게재 및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며, 같은 해 12월15일에 정정 및 반론문 게재와 원고에 대한 1000만원 지불이라는 중재판결을 받아냈다. 기본적으로는 원고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기는 하나 피해를 만회할 길이 없었다.

‘코리아센터’에 대한 공격은 이명박 정권 출범과 동시에 시작되었으며,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로 이어졌다. 국제적 체면이나 신의마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정권의 욕망대로 해외에 있는 연구기관까지 사찰·공격한 것이며, ‘전 정권 지우기’ 차원으로 감행된 김대중 전 대통령 명예박사 학위 수여에 대한 보복이었다. 해당 ‘월간 조선’ 12월호 표지의 반은 ‘동아그룹은 김대중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라는 표제가 차지하고, 바로 밑에 코리아센터를 매도하는 기사 표제를 뽑았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집요한 음해의 일환으로 코리아센터와 나를 도마에 올린 것이다.

코리아센터는 2005년 6월에 한국학 연구소로 일본에서 규슈대학에 이어 두번째로 설립되었다. 센터는 일본 문부과학성과 본 대학 규정에 따라 창설되면서 설립취지에 ‘종합적 현대코리아 학술연구센터, 한국관계 교육·교류센터, 한반도 이해를 위해 지역에 열린 센터’를 들었으며, 설립 이래 일본 문부성, 일·한문화교류기금, 한국 교류재단, 동북아역사재단 등에서 연구지원을 받아 활동해 왔다.

한국과 일본은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고, 근년에는 상호방문 관광객 연간 1000만명 시대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러나 학술연구교류 수준은 저조하다. 특히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대학교에 일어일문학과, 일본학과가 있으며, 주요 대학에 일본학연구소가 있는데, 일본에는 근년에 교양과목으로 한국어 강의가 보급되었을 뿐, 한국학 전공학과는 거의 없으며, 한국학연구소는 대여섯 개에 지나지 않는다.

늘그막에 임용된 나는 한·일교류와 상호이해를 높이고, 한·일 간 학술연구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데 이바지하고자 2005년에 코리아센터를 설립했다. 코리아센터는 각종 학술연구, 5차례의 한국 영화제, 식민지인식에 관한 연속시민강좌, 한·일교류 등 다양한 활동으로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활력 있는 한국학 연구기관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일본 최초의 한국학 전공과정 설치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던 중 교류재단에 교수직 설치 지원항목이 있어서 미국 등에서는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류재단과 지원받는 대학에서 50%씩 5년간 한국학 교수직 설치 예산을 분담하고, 정착 후 해당 대학이 독자 운영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세계에 한국학을 보급하자는 것이다. 본 대학도 2008년에 교수직 설치를 신청했으며 2009년 4월 신학기부터 개강하기로 합의하고 임성준 당시 교류재단 이사장이 본 대학 총장에게 총액 14만6154달러(그중 교수직 설치 비용 6만7000달러)의 재정지원 승인서를 보내왔다. 그에 따라 한국 근현대사 전공자인 A교수를 채용했으며, 2009년 4월9일 교류재단 이사장이 본 대학을 방문하여 총장과 교수직 설치 합의서 조인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신학기 이수요강에 한국학 과목이 게재되어 학생이 모집되었다. 그런데 3월11일 돌연 지원과 예정된 행사를 취소한다는 e메일이 날아왔다. 참으로 놀랍고도 무책임한 일이다. 채용한 교수와 수강생들을 어찌 하라는 말인가? 결국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대학에서 교류재단 부담부분까지 떠안게 됐다. 국제적인 위약이자 배신 행위로 한국에 대한 공신력은 땅에 떨어졌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마저도 2009년 7월15일 ‘나라 이미지 오히려 먹칠한 해외 한국학 지원사업’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교류재단이 작년 12월 리쓰메이칸대, 미국 미네소타대, 독일 라이프치히대 등 외국 7개 대학의 신청을 받아 한국학 연구 지원금을 주기로 약속해놓고 경제사정 악화와 환율 상승을 이유로 뒤늦게 지원 약속을 취소했다. 리쓰메이칸대의 경우 교류재단으로부터 14만달러 지원 약속을 받고 일본 대학 중 최초로 정규 한국학 강좌를 개설해 담당 교수도 선발해둔 상태였다”라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의 탄압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온 코리아센터는 개소 13년째, 운영자금난으로 중대한 위기에 빠져 있다. 본 대학 수십명의 교수가 관여하고 한·일 시민사회가 지지해온 연구기관의 소멸은 양국에 큰 손실이 될 것이다. 지금 한·일관계가 최대 외교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한·일 양국의 올바른 역사인식의 보급과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해온 코리아센터와 같은 기관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탄압해온 행태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의 해명과 정의 회복작업의 범위에 해외동포 및 해외 연구·문화기관 블랙리스트까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서승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연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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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 결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 등 5개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이 밝힌 기존 8개 혐의를 더하면 총 13개에 이른다. 최순실씨 등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그에 따른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훼손 등 박 대통령 탄핵 사유는 이로써 더욱 분명해졌다. 특검 수사의 최대 성과는 박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특검은 433억원의 성격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 공권력과 국가 기구를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원활한 합병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운 대가라고 못 박았다. 헌법재판관 출신으로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핵심인 이동흡 변호사는 “삼성 관련 소추 사유가 뇌물수수에 해당한다고 입증되지 않는 이상 파면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법원은 뇌물 공여자인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대통령 등이 시킨 대로 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을 동원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뇌물죄는 뇌물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의 죄를 훨씬 무겁게 묻는다. 박 대통령은 삼성 뇌물만으로 탄핵감이라 할 수 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열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수사 결과 대국민 보고’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김기남 기자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 연설문이나 인사 자료를 유출해 국정 개입을 허용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특검 수사로 더 많은 범죄 사실이 확인됐다. 최씨의 마수는 문화체육관광부 외에 외교부까지 뻗쳤다. 최씨는 미얀마 공적개발원조사업의 이권을 챙기기 위해 내정된 인사까지 밀어내고 유재경 주미얀마 대사와 김인식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을 앉혔다. 청와대 의료시스템이 붕괴 상태였던 것도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최씨 소개로 불법 의료업자들로부터 시술을 받고 공식 자문의가 아닌 김영재씨로부터 ‘비선 진료’를 받았다. 일급 기밀인 대통령의 혈액 등 건강 관련 정보가 새나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문제의식이 없었다. 박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도 관여하고, 최씨 민원을 받아 KEB하나은행의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도 확인됐다. 청와대 지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극우 단체에 지원해 ‘관제 데모’를 유도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주권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이렇게 남용했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민낯도 드러났다. 황 대행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이 이뤄지도록 특검팀을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거꾸로 나왔다. 특검의 수사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를 공표해야 했다. 그래야 특검이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대행은 알량한 법 지식을 이용해 결정을 미루면서 국회와 특검을 능멸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황 대행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특검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주말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 덕분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인 정경유착을 뿌리뽑지 않고서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는 특검 수사팀의 의지도 작용했다. 청와대는 “특검의 수사 결과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심리의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이는 헌재가 판단할 일이다.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어제 여론조사 보도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75.7%와 73.3%다. 탄핵심판 선고가 일주일 안으로 다가왔다. 헌재는 법과 원칙에 따라 박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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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고 있다. 박 대통령 측은 어제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무려 39명의 증인을 추가로 신청했다. 검찰과 특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관련자들을 직접 불러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증인 1명 심문에 적어도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재판이 2주 이상 늘어질 수 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나 우 전 수석은 이미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모든 사안에 ‘모른다’고 답한 인물들이다. 헌재 출석 요구를 받은 청와대 ‘문고리 3인방’도 모두 불응했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조금이라도 더 대통령 자리에 앉아 반전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속셈이다.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나 주권자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도 훼방을 놓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박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보도한 언론사와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특검 관계자’를 고소했다. 자중해야 할 피의자가 수사 주체를 고소해 처벌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대면조사나 청와대 압수수색 등 향후 특검 수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최순실씨도 막무가내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특검의 소환 통보를 6차례나 거부해 수감 중인 최씨의 체포영장을 법원에 청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서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물가와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계부채와 나랏빚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탄핵 국면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나라 바깥도 어지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전 세계가 대격변의 소용돌이에 들어갔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위중하다. 헌재가 일단 내달 1일 김 전 실장과 김규현 외교안보수석 등을 심문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헌재의 최종 결론은 8명의 재판관이 내리게 됐다. 박한철 헌재 소장은 오는 31일 퇴임한다. 9명의 재판관 중 6명 이상 찬성에서 8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탄핵 조건이 변해 박 대통령은 그만큼 유리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런 걸 노렸을 것이다. 헌재는 무책임한 박 대통령의 재판 지연 술책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선고 일정 등을 가능한 한 일찍 알려 시민들이 대통령 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 등을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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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주말 동시에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문체부가 오늘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23일 (출처: 경향신문DB)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그 숫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한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은 작가, 최고 권위의 국제 문학상 수상 작가까지 망라돼 있다. 그들이 한 활동이라 해 봐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게 전부다. 헌법은 양심, 언론 출판,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다. 더구나 이 정부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내부에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빨간 딱지를 붙여 탄압했으니 그 이중성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두 사람은 구속 직전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컴퓨터를 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려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현직 장관 구속 1호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안게 됐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이라고 믿기 힘든 파렴치한 피의자들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작성의 최종 책임자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 그런 광범위한 명단은 한두 부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도 수차례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동자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상통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가장 심각하고 위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검은 문명국가의 수치인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반드시 찾아내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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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미꾸라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어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으로 결국 꼬리가 밟혔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 명단을 작성하고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공무원들은 이미 일부 구속됐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사과나 사퇴는 고사하고 국회 청문회에서 거짓 변명을 늘어놓으며 주권자인 시민을 우롱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즉각 구속하고, 이들의 다른 의혹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

김 전 실장의 비위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수첩에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김 전 실장은 사법부를 길들여야 한다는 취지로 부하들에게 지시하고, 대통령을 비판한 야당 정치인을 검찰에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세월호 관련 여론을 조작하려 했으며, 검찰 수사와 문체부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도 있다. 과거 독재정권의 정치공작을 연상케 한다. 특검은 이런 의혹의 사실 여부뿐 아니라 이런 일들이 김 전 실장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도 밝혀야 한다. 김 전 실장과 최순실씨의 관계도 의문이다. 김 전 실장은 결백을 강조하기 위해 최씨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했지만 누리꾼의 제보로 청문회에서 거짓임이 들통났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왼쪽 사진)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조 장관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고 하더니 지난 9일 청문회에서는 “예술인들 지원을 배제하는 그런 명단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며 말을 바꿨다. 특검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블랙리스트가 작성돼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가 실행됐으며, 이 과정에 당시 정무수석이던 조 장관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진술 등을 확보했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 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 신동철 전 정무비서관 등은 이미 구속됐다.

특검 수사의 최종 타깃은 박 대통령이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재직 시절 정부의 블랙리스트 적용 움직임과 관련해 2014년 1월과 7월 박 대통령과 면담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 부분이 특검 수사로 확인되면 그것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탄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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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간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그의 집무실과 자택이 압수수색당했다. 특검이 곧 그를 소환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요지부동이다. 2014년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리스트를 만든 혐의로 특검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조 장관의 블랙리스트 작성 참여 사실은 복수의 전직 문체부 고위간부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조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 정무수석실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김소영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보냈다고 증언했다. 리스트를 본 적조차 없다는 조 장관의 변명은 말이 안된다. 특별검사도 조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본 적도 없다”고 한 것은 위증이라면서 특검에 고발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리스트를 함께 만든 사실은 특검이 문체부 실무자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에서도 확인했다고 한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적용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문,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지표 중 하나가 문화융성임을 감안하면 정권의 자기기만이다.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해도 막아야 할 일을 해놓고 문체부 장관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것은 공직의 엄중함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 차례 장관을 할 정도로 승승장구한 배경에도 이런 불법행위가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문체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부처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 대한 특혜지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 편법 설립 등이 다 문체부를 통해 이뤄졌다. 관계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려면 장관이 그대로 있으면 안된다. 더구나 조 장관은 수사가 시작될 즈음 집무실과 해당 부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갈아치워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있다. 지금도 매일 출근하면서 어떤 증거들을 인멸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조 장관의 존재는 공무원들이 사실대로 진술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핵심 역할을 한 직원이 장기간 휴가를 가는 사례도 있었다.

엊그제 임명된 송수근 제1차관도 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돼 있다. 현직 장차관이 동시에 사법처리되는 초유의 사태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지경이면 조 장관은 단순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 장관은 즉각 사퇴한 뒤 특검에 출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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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