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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08 [미래의 눈]남극 상공에서 찾아낸 희망

인공지능 ‘사관’은 보고를 모두 마쳤다. 그리고 카메라를 통해 탁자 주변에 앉아 있는 네 사람의 얼굴 표정을 분석해 보았다. 평균적인 감정 상태는 안도 60퍼센트, 기쁨 56퍼센트, 슬픔 5퍼센트, 무관심 20퍼센트였다. 네 사람은 사관이 정리한 결과를 두고 여섯 시간에 걸쳐 토의한 다음 10퍼센트가량 더 안도하고, 기뻐하고 있었다.

넷 중 세 사람이 회의실을 나갔다. 인공지능 모더레이터인 이수현만이 회의실에 남았다. 그는 ‘사관’의 눈 역할을 하고 있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사관은 이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과 뉴스와 정보를 모으고, 분류하고, 변별성 있는 항목으로 정리해 빅데이터에서 스몰 뷰를 생성하는 게 사관의 임무였다. 하지만 사관은 사람들이 스몰 뷰를 받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직 추론할 수 없었다. 인공지능 모더레이터가 바로 인공지능 재학습을 책임지는 직책이었다. 이수현이 사관에게 말했다. “이제 질문해도 돼.” 사관은 질문을 문장으로 정리한 다음 음성 파일로 만들어 내보냈다. “결과 보고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당연히 기뻤지. 네가 오늘 보고한 건 지난 이백년 동안 인류에게 중요했던 여러 수치를 종합하고 정리한 결과야. 기후 변화, 대기 오염, 자원 활용 분포부터 시작해서 인재 발생률, 범죄율뿐 아니라 네트워크상에서 생산되고 쓰이는 언어의 분석에 이르기까지… 한마디로 인류 이백년사를 데이터로 정리한 거야.” “단순히 데이터화했다는 걸로 기쁠 리는 없잖습니까? 기뻤던 이유는 뭔가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야.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학습했지? 욕망은 장기적인 안목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고 했잖아? 그 결과 어리석은 행동도 불사하는 게 사람이야. 폐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통계치를 발표해도 담배를 끊지 않는 게 사람이고, 도박에서 큰 돈을 딸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수없이 알려줘도 재산을 탕진하는 게 사람이지.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인류 전체가 눈을 가리고 절벽으로 달려간다면 어떻게 될까? 비록 말을 하진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엔 그런 공포가 늘 남아 있었어.” “공포와 희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수현이 사관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지금까지 가르친 보람이 있네. 그와 동시에 네가 아직 데이터와 세상을 제대로 연결짓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너와 내가 다루는 데이터는 어느 한 순간만 모아서는 의미가 없어. 최소한 백년 단위로 데이터를 모아서 비교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인간은 생물학적인 한계 때문에 학습하고 변화하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해. 수억명이 변화하려면 더욱 긴 시간이 필요하고. 물론 변화하지 못할 수도 있지.” “이제 희망을 품은 이유를 말씀해주시죠.” “일곱 가지 수치가 안정적으로 변했어.

오존층 회복률, 기후 안정도, 범죄 감소율, 대기 오염 감소율, 증오 어휘 감소율, 복지 분배율, 자살 감소율. 물론 그 밖에도 여러 수치들이 있지만, 이 결과를 발표하면 인간이 눈가리개를 풀고 제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모두 깨닫게 될 거야.”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군요. 지금 하신 말씀에 따르면 그 사실을 깨닫기 전부터 노력을 해왔다는 얘기잖습니까?” 이수현은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세상은 욕망과 손익이 뒤엉킨 복잡계라 쉽게 변하지 않거든. 그런데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소망이 그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꿨잖아. 그게 바로 희망을 품은 이유야.” 사관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수현 모더레이터는 인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으면 늘 복잡계라는 용어를 끄집어냈다. 욕망, 소망, 희망이란 단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이수현의 표정엔 기쁨, 안도, 흥분이라는 감정이 각각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관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이수현이 그런 감정을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와 나눈 대화를 학습 데이터베이스의 ‘인간’ 항목에 추가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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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상공의 오존층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인간이 만들어냈던 염화불화탄소가 이 구멍을 만드는 주요 촉매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 각국은 염화불화탄소의 생성과 사용을 규제한다는 몬트리올 의정서를 체결했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1989년에 발효되었다.

나사 고다드 우주비행 센터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염소 화합물 농도는 매년 0.8퍼센트씩 감소했고, 현재는 2005년도 측정치보다 20퍼센트가 감소한 상태라고 한다. 이 수치는 인류의 노력으로 오존층이 회복되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인 셈이다. 수많은 디스토피아 소설과 재난 소설이 악화일로를 걷는 인류의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의 우리는 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끊임없는 관심과 다수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비단 환경 문제만이 아니다. 평등, 자유, 정의와 같은 무형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더 나은 미래는 유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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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