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 바다는 눈물이었다. 검은 섬을 휘감는 시퍼런 바닷물을 마주한 어머니의 멈추지 않는 눈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그대로 바다가 넘쳐 내 자식이 내 혈육이 멀쩡하게 뭍으로 나오기만 한다면 육신이 사그라진다 해도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시뻘겋게 녹슨 바닥을 드러낸 배를 보면서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또 울었다고 했다. 우는 것밖에 할 게 없어서 다리 뻗고 앉아 가슴 치며 울었던 그해 봄처럼.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봄은 또다시 되풀이되는 눈물의 봄이다.

건져 올린 배 앞에서 어머니는 낯선 항구로 부리나케 달려간 그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구조했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갔는데, 체육관은 텅 비어있고 행여 병원으로 갔나 싶어 물어보니 아직 아무도 병원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아침잠 많은 딸이 깨어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스무날이 넘도록 딸은 바다에서 나오지 못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했다고 밝힌 28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 미수습자 가족 임시거처에서 허다윤양 어머니 박은미씨(왼쪽)와 조은화양 어머니 이금희씨가 오열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골’은 동물뼈로 확인됐다. 진도 _ 연합뉴스

사람들은 3년 동안 배가 바닷속에 있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 배는, 어머니의 온몸에서 뻗친 팽팽한 아딧줄로 매어져 있었다. 슬쩍 바람만 스쳐도 파도만 일렁여도 어머니의 가슴이 찢기었다. 병원에 가니 가슴뼈가 벌어져 있다고 하더라는 어머니는 큰딸 앞에서는 의연하려고 애쓴다. 행여 어머니가 쓰러질까 봐 뭍에 오른 동생을 혼자 맞이했던, 큰소리 내어 울지도 못한 큰딸이 어느 날 그러더란다.

“엄마, 나는 이제 행복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어머니는 그 말에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아니다, 봄이 올 것이다. 네 봄이 올 것이다. 어머니는 큰딸을 위해 단단히 땅을 딛고 일어나 새봄을 보여주고 싶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어서 궁리 중이에요. 내가 이제 할 일은 그것뿐인 것 같아요.”

내가 그리하면 우리 딸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며 또 눈물을 보이던 어머니는 아직 딸을 기다리는 다른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면서 눈물 자국을 닦아낸다. 그래, 꼭 돌아올 거야. 몸 잘 챙기면서 기다려. 어머니 둘이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속보가 떴다. 그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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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지난 26일 오후.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린 안산 세월호 분향소 광장은 춥고 쓸쓸했다. 추모의 마음으로 걸치고 갔던 노란색 머플러를 목 주위로 돌려 감아도 파고드는 냉기를 막을 수가 없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1072일 만에야 물 위로 올라온 세월호를 지켜보는 단원고 희생자 엄마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꼭 그렇다고 했다. “3주기가 다가오니 너무 힘들어요. 선체 인양을 바라보는 것도 그렇고요.” 매달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과 함께하는 모임에 따라나섰다 만난 영만이 엄마는 두어 마디 끝에 결국 울먹였다.

“이제야 세월호가 올라오네요. 곧 미수습자 가족들이 그렇게 원하던 유가족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우리 유가족들의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유가족이 되고 난 뒤 또 얼마나 절망할지, 두려운 마음이 들어요.”

애써 담담한 예은이 엄마의 말에 순간 명치 끝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유가족이 되는 것이 소원이라니. 정신병리학자이자 대형 참사의 유족들을 상담해온 일본의 노다 마사아키 교수는 “유족들이 처참한 시신임에도 집착하는 이유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가족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른 유가족은 피해자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수습자 가족은 시신의 일부라도 확인하지 않고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도군민들이 28일 진도 팽목항 등대 앞에서 세월호 선체의 무사이동과 미수습자들의 온전한 수습을 기원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행사를 가진 뒤 노란풍선을 날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단원고 희생자 아버지들이 동거차도 산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지난 18개월 동안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생활하는 강행군을 해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버지들은 망원렌즈를 통해 세월호 인양작업을 모니터링하면서 아이들이 숨져간 현장을 하루 종일 바라보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세월호가 인양되고 미수습자 가족이 유가족이 된다면 못할 일이 뭐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노다 마사아키 교수의 설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이들을 쉽게 떠나보내지 못한 부모들은 미수습자 가족만이 아니었다. 유가족 부모 또한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정부와 일부 정치인이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고 유가족을 조롱하고 모욕하자, 희생자 가족들은 타는 가슴과 슬픔의 시간을 단식투쟁으로, 삭발로, 촛불로, 그리고 간절한 외침으로 맞서고 버텨왔다. 아이들에게 보내는 ‘꽃잎편지 전시회’ 또한 그런 기억투쟁의 하나였다.

분향소 건너편 경기도미술관에서 5월9일까지 열리는 ‘세 번째 봄, 너희를 담은 시간전(展)’. 전시회에는 색색깔 꽃잎과 거친 나무껍질과 얇게 말린 채소로 꾸민 꽃잎 편지와 꽃잎 수공예품들이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과 간절함을 담은 채 전시되고 있었다.

“그립고, 그립고, 그리운…” 영원히 잊을 수 없어 편지 제목에 마침표를 찍지 못한 지숙이 엄마는 “푹신 푹신 네 뱃살 맞대 꼭 안아주고 싶고 … 젖은 머릿결 잡고 뽀뽀하고 몸이 으스러지도록 안고 싶다”고 꽃잎 편지를 썼다. 차웅이 엄마는 엄마의 예쁜 마음을 꽃밥에 수북이 담고 “여전히 아이에게 따순 밥 한 끼만 먹이고 싶고, 그러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내내 쓰리다”고 했다.

훅 불면 나비가 되어 날아갈 것 같은 여린 꽃잎은 그리움의 세월호 리본으로 형상화되고 간절한 기다림의 빈 의자와 주인 없는 신발과 못다 공부한 책으로 되살아났다. 샛노란 꽃잎 자동차를 그린 세영이 아빠는 “대학 들어가면 자동차 사 줄게라는 말을 생전에 하지 못해 아빠가 많이 미안하다”는 편지를 띄웠다.

“낮고 더 낮게 엎드립니다. 부디 모두를 보내주소서.” 지난 3년 동안 팽목항에서 애타게 아이들을 기다리던 미수습자 가족들은 촛불을 밝히는 창호지 램프에 9명의 미수습자 명단과 함께 “머리칼 한번 쓸어줄 시간을 허락하소서”라고 써넣었다.

이 아이들이 우리 모두의 아이일진대, 이 부모의 “머리칼 한번 쓸어줄 시간”은 우리 모두의 가장 간절한 순간이다. 네 생명을 지극히 존중할 때, 내 생명도 존중받는 법이다. 생명의 침몰 앞에 올림머리부터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먹던 것도 뱉어내고 맨발로 뛰어가는 그런 마음은 너, 나,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이제 곧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도착하면 미수습자의 흔적을 찾고,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 착수할 것이다. 수많은 난관과 불가능을 뚫고 여기까지 왔다. 그건 기적 같은 일이지만, 창현 엄마의 말대로 “희생자 가족과 국민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월호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생명의 존엄함과 국가의 책무를 일깨웠다. 그 진실을 기억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뒤따를 때 또 다른 억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생명존중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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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 갑판 위에서 뼛조각 7점과 신발 등 유류품이 발견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뼛조각은 미수습자의 유해가 아닌 동물의 것으로 확인됐다. 실종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것은 미수습자 수색작업이 끝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정부가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을 종료한 뒤 절망 속에 살던 미수습자 9명의 가족은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유류품이 선체 밖에서 발견돼 유실 가능성에 대한 대책이 부실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배가 기울고 있어요.” 2014년 4월16일 단원고의 한 학생은 전남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첫 신고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시작이다. 배가 기울고 침몰하는데도 ‘기다리라’는 말을 따르다 단원고 학생을 포함해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는 서서히 침몰했고 일각에서는 ‘에어포켓’ 안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배가 침몰한 뒤 시신이 발견되자 서로가 자신의 가족이 아니기를 바랐다. 시신이 발견될 때마다 비명이 귀를 갈랐다. 피붙이임을 확인하는 순간 가족들은 비명과 함께 혼절했다. 잠수사들은 숨진 아이들을 인양했다. 그러나 차가운 바닷속 아이들은 “왜 이제 왔냐”고 원망하듯 움직이질 않았다. 잠수사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어르고 달래야 그제야 움직였다.

28일 4대 종단의 미수습자 조기수습기원제가 반잠수식 선박 인근에서 열리고 있던 상황에서 세월호 조타실 옆을 받친 반목 쪽(네모 표시)에서 뼛조각들이 발견되자 작업자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진도 _ 사진공동취재단

며칠이 지나 희망의 끈이었던 에어포켓도 사라졌다. 세월호 생존의 희망도 사라졌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젠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만을 바랐다. 시신이 발견되면서 유가족들도 하나둘 떠났다. 세월호 침몰 102일 만에 295명째 희생자 황지현양의 시신이 수습됐다. 18번째 생일을 맞은 황양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황양의 친구들은 빈소의 조화에 “잊지 않을게. 돌아와줘서 고마워”라고 적었다. 그해 11월 정부의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은 종료됐다. 배에 탔으나 아직도 내리지 못한 9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세상에서 잊혀져 갔다.

지난 23일 진도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1073일 만에 인양됐다. 완전히 드러난 세월호를 본 미수습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곳곳이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에 내 아이가 있다며 탄식과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우리 딸이 저 안에서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주저앉았다. 세월호에서 추가로 유류품이라도 발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희망은 있다. 지상으로 올린 선체와 세월호가 누워 있던 해저도 샅샅이 수색해야 한다. 그래서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눈물로 지새는 미수습자 가족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게 나라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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