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 폭로가 정치권으로 옮겨간 뒤, 미투를 둘러싼 정치공작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실현하기라도 하듯 사건 당사자들 간의 진실 공방이 뜨겁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폭로할 만한 미투와 그렇지 못한 미투가 있다는 ‘진짜 미투, 가짜 미투 가리기’류의 갑론을박이 포털의 댓글 공간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달군다.

공개폭로를 한 피해자들에게는 악의적인 루머 유포나 혐오 표현, 신상 털기로 적극적인 2차 피해를 입히면서, 익명의 폭로자들에게는 “진실이라면 무엇이 두려운가, 얼굴 드러내고 증거 대고 말하라”고 실명 피해 입증을 압박한다.

어느새 피해자의 절대적인 고통의 무게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희석되고, 피해자도 아닌 사람들이 “미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단서를 앞세워 가해자 중에 단죄받아 마땅한 진짜 나쁜 남자와 어쩌다 실수한 남자의 등급을 서슴없이 가린다.

이 공방의 와중에서 슬며시 사라져버리는 질문이 있다.

남자들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몇몇 거물 성폭력 가해자가 본보기로 처벌받아 이 사회로부터 잠시라도 배제된다면, 미투는 승리한 것인가? 여성들이 성폭력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이 열리는가?

문제 제기는 피해자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해결점을 찾으려면 시선은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왜곡된 사회문화구조로 돌려야 한다.

가해자들이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자기정당화했던 밑바탕에는 세대를 넘어 전수되는 왜곡된 남성성이 있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의 문제점을 분석했던 ‘맨박스(manbox)’의 저자 토니 포터는 남자들 사이에서 “공개적으로 여성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한다.

같은 반 여학생들의 외모와 체형을 놓고 품평하면서 성적 대상화의 재미를 공유하는 남학생들만의 카톡방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남학생들은 ‘○선비’라는 조롱을 받으며 또래에서 소외된다. 남자답지 않다는 평가가 두려워 침묵했던 소년들은, 직장에서 벌어지는 성추행 문제를 못 본 척 넘어가는 방관자들로 성장한다. 남자들 사이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서, 혹은 강해 보이기 위해서, 동창 선배나 직장 상사를 따라, 매매춘에도 나서게 된다. 여자를 때리거나 성폭행하지 않는 나름 선량한 남자들의 관성과 침묵은 나쁜 남자들이 “남들도 다 그러는 거 아니냐”며 자신들의 가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인 구조를 철옹성으로 쌓게 만든다.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피해자들에게 향할 것이 아니다. 형이나 남자 선배나 직장 상사나 동성의 친구, 이웃 남자의 성폭력에 왜 나는 저항하지 않았었는가라고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왜곡된 남성성에 대해 되돌아보기보다는 ‘위험요소’인 여자들을 아예 차단하는 펜스룰을 들이대거나 “원래 남자들은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진화론을 펴는 일부 중장년 남자들의 보수적 저항은 예견된 것이라 하더라도 청년세대 남성들의 남성성에 대한 혼돈은 미래를 위해 그 근원을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여성학자 배은경 교수(서울대)는 “의무병역을 해도 그 공을 사회가 자동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어 가족을 부양하거나 애인에게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여성을 경쟁자인 동시에 성적인 상대로 생각해야 하는 청년 남성들은 스스로의 남성성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혼돈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 혼돈은 일베의 활동에서 볼 수 있듯이 온·오프라인에서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여성혐오로 나타나기도 한다.

미투는 일시적인 소란이 아니라 성차별적인 사회를 바꾸려는 거대한 흐름이다. ‘본성’으로 치부되어온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전면적인 질문과 해체, 재구성 없이 미투 이후의 세상이 법적 처벌 사례 몇 건으로 쉽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곡된 남성성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을 찾을 때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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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2008년 자신에게 성추행당했다는 한 여성의 주장이 제기되자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민 의원이 당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퇴할 경우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본격화 이후 현역 의원의 첫 낙마 사례가 된다. 문화예술계의 고은 시인·이윤택 연극 연출가 등에 이어 정치권에서도 안희정 전 충남지사·정봉주 전 의원 등 진보진영 인사들을 향해 미투가 집중되는 형국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선 이를 틈타 ‘도덕적 우월성을 과시하더니 부메랑을 맞았다’는 식의 공세를 퍼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10일 자신을 겨냥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폭로가 나오자 의원직에서 전격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 의원은 이날 오후 문자 메시지를 통해 "제가 모르는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항상 의원직을 내려놓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이에 의원직을 내려놓겠다. 그리고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건강한 서울 만들기 프로젝트' 발표하는 민병두 의원. 2018.3.10 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투는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젠더폭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서지현 검사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지위나 계급과도 무관하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진보 쪽에서 미투가 더 많이 나오는 배경은 무엇인가. 이미 여성계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다양한 층위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야기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모두 존재할 때 등장한다”며 “말하는 여성당사자들과 동의하는 남성들이 이 진영(진보진영)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도 방송에 출연해 “좌파 진영에 있던 여성들이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고 더 주체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야 한다”며 “좌우를 막론하고 적폐는 있다. 조용한 지역이 위험한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우파라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공작’ 가능성을 염려하는 시각도 근거 없기는 마찬가지다. 미투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미투 운동의 배경에는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배제·억압이라는 거대한 모순이 놓여 있다. 이러한 모순을 견디다 못한 당사자들이 한꺼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금, 특정 세력이 개입해 ‘없던 일’을 만들어내거나 ‘일어난 일’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보는 건 판타지에 가깝다. 사실관계를 다툴 부분이 있다면 차분히 시시비비를 가리면 된다. 미투가 오염되었다느니, 사회적 살인을 한다느니 등의 관점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현실적으로 타당하지도 않다.

“한국 여자 90% 이상이 성추행, 성희롱 경험이 있다”는 배우 김여진씨의 트윗처럼 성폭력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주권자를 대리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 사실부터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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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여성들이 주도하는 커다란 운동의 물결에 휩싸여 있습니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폭력 피해 폭로 이후, 전방위적으로 여성들의 고백과 지지, 동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여간 제가 가장 많이 받았던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이 지면을 빌려 답하면서 운동의 의미를 살펴보려 합니다.

우선 한국의 ‘미투’ 운동이 할리우드발 ‘#MeToo’ 운동의 후속, 아류 혹은 변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길게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부터 진행된 동등권운동, 반식민지독립운동, 짧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에 본격화된 진보여성운동 단체들의 형성과 반성폭력운동, 여성인권운동, 더 최근에는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2015년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진행된 ‘성폭력 필리버스터’, ‘#○○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여성운동의 오랜 역사를 먼저 봐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돌출된 운동이 아니라, ‘관습’과 ‘문화’란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왔던 차별구조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며 저항하고, 시대를 거슬렀던 여성들의 역사 속에서 이번 ‘미투 운동’을 맥락화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성평등 실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무엇보다 우리나라 여성들에 의해 주도됐으되 세계를 흔든 미투 운동의 원조는 일본군 성노예제로 고통당하셨던 김학순 할머니의 커밍아웃입니다. 가해자의 지속적인 부인에 분통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왔다고 했던 할머니의 증언은 반세기 가까이 봉인되었던 끔찍한 성노예제의 실상을 폭로하며 전 세계 시민들을 무지의 늪에서 일깨웠습니다. 덕분에 국내는 물론 다른 나라의 피해자들 또한 앞다퉈 세상에 나왔지요.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지배체제하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진 중층적 부정의와 싸우며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변화하던 할머니들의 모습 덕분에 우리 시민의식은 또 얼마나 많이 성장했던가요. 미국의 #MeToo 운동과 서지현 검사의 용감한 고백이 이번 미투 운동의 도화선 혹은 변곡점이 될 수는 있으되 원인이 아닌 이유입니다.

둘째, 남녀관계와 상관없는 ‘권력형’ 혹은 ‘갑질’ 성폭력의 문제일까요? 그저 “나쁜 손버릇” “자제하지 못한 성욕”, 개인의 “비도덕적 행위” “성추문” 혹은 특정 조직의 “특수문제”일까요? 남성지배사회에서 성별 권력관계와 무관한 권력형 성폭력이란 개념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합니다.

1월 1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정기수요집회 26주년 기념 집회가 열리고 있다. 1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317차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성별(gender) 자체가 권력관계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동등하되 이분법적으로 나뉜 남성성과 여성성, ‘적절히’ 배분된 역할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성별은 이미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효과이며 새로운 권력관계를 생성하는 원인입니다. 남성(성)만 인간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여성(성)은 열등한 것, 부차적인 것, 성적인 것, 심지어 ‘낮은 사회적 지위’ 자체를 의미합니다. 중학교 남학생이 여성 교사를, 남성 환자가 여성 의사를 성희롱할 수 있는 이유이지요. 물론 그 남성과 여성은 성별 질서뿐 아니라 계급, 인종, 성적 정체성, 장애여부 등 다양한 차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폭력은 기본적으로 성별권력 관계에서 파생하지만, 다른 차별구조와 만나 더 심화되거나 약화되기도 합니다. ‘성폭력은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조직 및 집단 간 차이와 특수성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의 ‘폭로’는 왜 지속될까요? 왜 개별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있을까요? 물론 처벌은커녕 지속적으로 사실을 부인하고, “지금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가해자, 심지어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며 사회적 타살을 감행한 남성들에 대해 쌓였던 개별적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가해자를 두둔하고 2차 가해를 일삼던 우리 모두에 대해, 구멍난 법과 제도조차 작동하지 않았던 현실에 대해 일제히 공분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믿을 구석이라곤 유사한 경험을 한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와 지지밖에 없기에,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호명하고 상호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너무 어려서” “뭔지 몰라서”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소문이 두려워” 잊고자 했던, 그 봉인된 기억과 마주하고 재해석하고, “치유된 줄(만) 알았던” 상처를 들여다보고, 쓰다듬고 치유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서지현 검사의 말대로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다독이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다른 이들의 상처도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생존자들처럼 말이지요.

자, 이제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답할 차례입니다. 더 이상 피해자들에게 증거를 요구하지 마세요. 한두 사람, 한두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케케묵은 진영논리에 갇힌 ‘물타기’ 대신 일생을 통해 축적된 스스로의 가해 경험부터 성찰해 주세요. 미세한 세포조직처럼 곳곳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성차별적 의식과 구조를 개혁하는 데 동참해 주세요. 우린 이미 사회변혁 운동으로서 ‘미투 운동’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탔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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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정호승 시, ‘산산조각’ 중에서).

‘미투’(#MeToo)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어느 서울대 교수에 대한 조교의 고발이 성희롱을 공론의 의제이자 사법 사안으로 만든 후, 권력관계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과 성토, 개선책 요구가 지속됐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직종의 여성들이, 각급 학교의 여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의 성폭력에 노출되는 사건들이 반복되었고 폭로도 계속되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16년 봇물처럼 쏟아졌던 문단, 영화계, 예술계의 성폭력 폭로에 어떤 실효가 있었는지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폭로는 제도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끈질기게 이어져왔다. 결국 꿈쩍 않던 문화권력의 철옹성들이 썩어빠진 성폭력적 실체를 드러냈다. 참담한 현실이다. 여성혐오를 미화하고 권력지향을 은폐해 온 그들의 예술가적 특권의식,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성추행을 남성예술가의 기벽, 거창한 고뇌의 부작용 정도로 여기는 관행도 뿌리 뽑아야 한다.

고은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는 대신, 문화예술계의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들의 ‘성취’를 평가하는 데 사용된 미학적 기준과 비평의 관점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예술가 개인의 삶은 별개로 볼 수 없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소비하고 착취하면서 이룬 ‘성취’를 그 행위와 별개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하는 잣대는 이미 윤리적, 정치적으로 비뚤어지고 오염된 것이다. 문제는 커진다. 편향되고 오염된 잣대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은의 시, 이윤택의 극을 ‘좋아하도록’, 거기서 모종의 ‘가치’를 읽어내도록 훈련된 우리 자신의 시각과 사고방식 역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동료의 말에 절망감을 느꼈다. 한 사람의 인격, 인권을 온전히 철저히 존중해야 한다는 일상의 사실을 간과한다면, 문학도 예술도 혁명도 다 무의미하다. 여성을 소비하는 남성중심적 예술관, 윤리적 실패를 내포하는 가치를 이상화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의 향유를 통해서 여성혐오에 공모하도록 만드는 미적 가치기준,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극단을 해체하고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자숙을 약속하고 일부는 침묵한다. 하지만 성폭행은 물론 희롱이든 추행이든 성폭력은 범죄다. 수사기관의 공식적 개입을 통한 조사, 문책, 처벌이 필요한 것이다. 속죄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말로 눙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법이 명시하는 절차대로 수사에 성실히 임하고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윤택이 사과성명을 시 쓰듯 작성해서 연극처럼 리허설하고 연기했다는 보도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다. 성범죄 가해자들의 ‘사과’가 어쩌면 가질 수도 있었을 진정성을 부정하며 그는 가해자에게도 죄의식, 자기혐오가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조롱한 셈이다. 다른 범죄들과 달리 성폭력이 사과로 해결된다는 생각,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이처럼 계속되는 고발과 증언에는 1월 말 서지현 검사가 검찰조직의 여성혐오적 문화와 성추행, 성폭력의 관행을 폭로하고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 계기가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서 검사가 당한 추행이 은밀한 것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검찰 인사 다수가 있는 장소에서 공공연히 행해졌다는 점, 수차례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법무부 내에서 그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공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충격적이었다.

서 검사의 폭로가 이전 다른 여성들의 외침보다 더 주목받은 이유는, 상대적으로 권력과 지위를 가진 여성들조차 여성혐오의 폭력적 행태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또 그러한 폭력적 행태를 단죄하는 법적 임무를 부여받은 남성들 사이에서조차 사실은 여성혐오적 성범죄가 일상화되어 있음을 밝혔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혐오적 남성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그들의 탈법적 특권의식,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그 후 검찰조직 내부의 성폭력적 문화에 대한 비판과 처벌, 정화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 문제에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팀들이 조직되었다. 하지만 법에 따라 범죄를 가리고 처벌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이 성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집단이었다면, 검찰조직의 자기정화라는 게 가능할까. 검찰이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한, 그들의 법적 권위와 정당성에도 큰 흠결이 생긴다. 성범죄 일반에 대한 검찰의 적절한 수사와 기소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것이다. 제도와 절차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산산조각 부서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흩어져야 풀어내고 골라낼 수 있지 않을까. 아픔도 절망도 산산조각이 났으면 좋겠다. 깨지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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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선수들의 값진 승리와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는 온 나라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국가대표 컬링팀인 ‘갈릭 걸스’(애칭)가 일으킨 ‘영미 신드롬’까지 재밌고 유쾌했다.

그러나 모두들 온전히 흥겹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성폭력을 고발하는 문화예술계 ‘미투(#MeToo)’가 연일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유명 배우가 제자들에게 가한 성폭력이나, 문화계 거장으로 불리던 연출가들의 성폭력 은폐 시도와 침묵은 분노를 일으켰다. 2년 전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나왔지만 검찰 조직 내 성폭력 폭로로 다시 촉발된 미투는 문학에서 시작돼 연극, 영화, 방송 등은 물론 종교계까지 그 민낯을 드러냈다. 깊이를 잴 수 없는 ‘검푸른 심연’처럼 성폭력은 분야를 망라하고, 아주 오랜 시간, 상습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왔다.

[장도리]2018년 2월 22일 (출처:경향신문DB)

요즘 같아선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작가를, 감독을, 배우를 인터뷰하거나 작품을 소개하기 망설여진다. 언제 어디서 또 누가 가해자의 얼굴로 세상에 드러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투가 시작되기 전, 위계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이 정도로 만연해 있는 줄 몰랐기에 사회적 충격은 더 크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몰랐던 것일까. 성폭력의 구체적인 정황이야 알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성폭력을 비롯해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자행되는 폭력들에 눈감고 무뎠던 게 사실이다. 개인이 경험하는 폭력의 정도는 그 사람이 속한 사회가 어느 정도로 권력과 위계에 예속되어 있는지를 말해준다.

권력에 예속된 사회의 적나라함은 특정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폭로를 거쳐 전 세계에서 거대한 미투 물결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양성평등에 가장 근접한 나라로 손꼽히는 아이슬란드에서조차도 권력관계에서 빚어진 성폭력이 사회 이슈로 불거졌다. 스웨덴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의 권위 있는 신문인 다겐스 뉘예테르(DN)는 ‘스웨덴의 미투 운동은 이제 혁명이며 1919년 여성 참정권 운동 이후 가장 큰 여성 운동’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만큼 미투의 사회적 파장이 크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권력에 예속된 현재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려는 문제 제기에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선 미투가 전개되며 그 본질을 흐리는 말들이 끼어들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투 운동이 당초 한국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24일 SNS를 통해 한국당의 ‘북 김영철 방남 반대’를 언급하는 가운데 “우리 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소위 미투 운동이 좌파 문화권력의 추악함만 폭로되는 부메랑으로 갈 줄 저들이 알았겠느냐”고 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최근 미투 운동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에 대한 ‘공작’ 소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팟캐스트를 통해 “이거(미투 운동)는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보이는 뉴스” “그런데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이걸 보면 어떻게 보이냐. … (성폭력)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서 등장시켜야 되겠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라며 마치 현재의 미투가 정치적 공략의 가능성을 지닌 듯 말했다.

이에 대해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SNS에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라며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진보 보수가 관련이 있냐”고 말하기도 했다. 공감능력은커녕 현실인식조차 없는 정치권과 그 주변이 미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성폭력 가해자 못지않은 2차 피해를 만드는 행위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잡음에 흔들림 없이 미투 운동은 갈수록 생명력을 더하고 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의 용기에만 기대지 않고 사회 변화에 함께 나서겠다는 주체들의 동참이 시작됐다. 25일에도 공연계 ‘미투’와 ‘위드유’ 운동을 지지하는 공연계 관객들이 서울 대학로에 모여 성범죄 가해자들의 의혹 규명과 처벌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냈다. 아직 일부이지만 공연을 제작하며 관련 계약서 내 성폭력 조항을 체계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 움직임도 나온다. 미투는 어느 날 불쑥 나온 게 아니다. 그 뿌리가 질기고 깊다. 마치 뿌연 안개와 공기가 그런 것처럼 한번에 손으로 잡아내 몰아내기도 힘들다.

그러나 미투가 향한 방향이 옳고 분명한 만큼 또 함께 연대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있는 한 그 여정을 의심하지 말자. 미투는 이제 시작이다.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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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물결이 거세다. 시인 고은, 연극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민기씨 등의 ‘과거’가 잇달아 폭로됐다. 인간문화재 하용부, 연극 연출가 오태석씨를 둘러싼 의혹도 불거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피해자들의 증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부인하거나, 침묵하거나, 형식적 사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인사는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한다. 은폐·조작 시도에 다름 아니다. 더 이상은 피해자들의 용기에만 기댈 수 없다. 범사회적 차원에서 대처방안을 모색할 때다.

2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는 고은 시인의 전시공간 '만인의 방'을 시민이 둘러보고 있다. 고은 시인은 최근 상습 성추행으로 논란을 빚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오동식씨의 내부고발은 충격적이다. 오씨는 21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연희단거리패를 이끌어온 이윤택씨의 성추행이 공개 폭로된 후 극단 차원의 대책회의가 여러 차례 열렸다고 폭로했다. 오씨에 따르면 이씨는 성폭행 피해를 폭로한 전직 단원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공개사과 전에는 리허설을 통해 ‘불쌍한 표정’을 짓는 연습까지 했다. 오씨는 “그곳은 지옥의 아수라였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고 털어놨다.

조민기씨의 대응도 어처구니가 없다. 청주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성추행해왔다는 폭로가 나오자, 조씨는 소속사를 통해 “명백한 루머”라고 부인했다. 학생들의 추가 고발이 이어지고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뒤에야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예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가해자들이 오랫동안 성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침묵의 동조자들’이 있었다. 연희단거리패의 김소희 대표는 이윤택씨의 행태를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성폭력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연극계 전반적으로도 이씨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지만 목소리를 낸 사람은 없었다. 고은 시인의 행태 역시 문단의 ‘공공연한 비밀’에 속했지만 모두가 침묵했다. 권력에 굴종하느라 동료들의 피해를 외면한 수많은 이들도 반성하고 사과해야 옳다.

가해자들이 사태를 모면하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이 피해자들은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적폐청산 차원에서 성폭력 근절에 나서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여성가족부에만 맡겨놓을 일도 아니다. 성폭력 피해가 문화예술계나 여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 부처는 물론 법조계·여성계·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성폭력 적폐청산기구’를 구성해 법적·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몇몇 유명인의 추락 수준으로 마무리된다면, 한국 사회의 성폭력 청산은 요원하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외침을 헛되게 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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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연극계는 ‘미투(#MeToo)’ 운동으로 뜨거웠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유명 연출가 이윤택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전직 단원 등의 증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연극인들의 모임 게시판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이씨 외 또 다른 가해자들의 성폭력을 증언하는 글도 잇따랐다. 피해자들은 수업이나 연기지도를 빙자한 성희롱,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의 성추행 사례 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연쇄 성폭력 범죄 사실이 최근 폭로되기 시작한 연극 연출가 이윤택.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이윤택씨가 저질러온 성폭력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씨는 연희단거리패 시절 여성 배우들을 심야에 극단 별채인 황토방으로 불러 부적절한 안마를 시켰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배우 개개인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작용했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상처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해자는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승승장구했으니 기막힐 따름이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용기있는 ‘미투’가 없었다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이씨는 그동안 연희단거리패 뒤에 숨어 ‘간접 사과’로 일관해왔다. 추가 폭로가 계속되고 비판이 거세지자 뒤늦게 19일 공개 사과를 하기로 했다. 한국연극협회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가해자의 책임을 묻고,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조치들이지만 충분치는 않다. 이씨의 행태는 고백과 사과로 용서받을 수준을 넘어섰다고 본다. “스스로 벌을 달게 받겠다”(14일 경향신문 인터뷰)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수사를 자청해야 옳다. 연극협회도 철저한 진상규명 작업은 물론 연극계 전반의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위계서열 문화를 청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지난달 말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불붙은 반(反)성폭력 운동은 법조계·기업·문학계를 넘어 연극계로까지 확산됐다. 이는 성폭력이 특정 분야나 집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 상존하며,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음을 일깨운다. 연극계를 넘어 또 다른 분야에서도 ‘미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강요된 침묵’에서 벗어나 비로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사회는 이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정부는 제도적 차원에서 응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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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직 내 성폭력, 성추행 사건이 한 여검사에 의해 드러났다. 한국 최고의 권력 조직 내, 최상의 전문직이라 여겨지는 검사도 성폭력의 대상이 되어 고통받고 차별받는 현실을 폭로한 이번 사건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성계급 체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한 것이다. ‘여성’은 여전히 상수처럼 존재하는 가장 열등한 계급이다.

사회적으로 많이 진출했다 하지만 실제 여성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남성의 충실한 내조자 혹은 부속품, 육아와 양육을 전담하는 존재,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용기’라는 인식은 그 뿌리가 흔들리지 않은 채 각종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변주되고 발전해 왔다. 예전의 ‘빨간책’은 디지털화되어 폭력적 이미지들을 쏟아내고 여성은 발가벗겨진 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남성들의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다. 기생집은 룸살롱으로, 집창촌은 오피스텔로 온라인·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횡행하는 성산업은 여성을 사고, 팔고, 비하하고, 때리고, 강간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4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1일 전국 16개 검찰청 앞에서 검찰 내 성차별, 성폭력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는 지난 1월 19일 한 방송사에 나와 법무부 간부였던 안태근 전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과거의 사실을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한국여성단체연합·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미투’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검찰 내 성차별, 성폭력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 같은 현상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적 영역에 진출한 여성은 두 가지 역할을 여전히 수행해야 하는 압력을 느낀다. 남성과 함께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에서도 여성은 어리고 예쁘고 날씬하고 순종적이어야 하며 남성이 요구하는 어떤 것에도 ‘눈 똑바로 뜨고’ 저항해선 안된다. 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일 잘하며 안팎으로 두루두루 살피는 돌봄의 태도까지 갖추어야 한다. 결혼을 해도 문제고 안 해도 문제며, 아이를 낳아도 문제고 낳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 시시때때로 이어지는 성차별적 발언과 성적 괴롭힘, 느닷없는 성적 접촉에도 순응해야 하고, 심지어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적당히 웃어줘야 하며 웬만해선 참아야 살아남는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어도 꽃뱀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2차 피해를 걱정하며, 공론화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곤, 조직의 안위까지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고 삭여야 한다. 서지현 검사가 용기 내어 말하는 데 8년이나 걸린 이유다. 여성은 사실상 단 한번도 남성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은 적도, 동등한 시민이자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받은 적도 없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성폭력이 성차별적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폭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가시적인 잘못을 저지른 특정인들의 주관적 악행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정상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적 과정의 결과물인 구조적 부정의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성폭력이 구조적 문제인 이유는 차별을 당하는 집단에 대한 특권이나 지배를 유지하려는 욕구, 혹은 약자로 낙인 찍힌 자들을 지속적인 피해자로 삼고자 하는 권력의지가 발현된 결과물이며, 위계화된 성별 질서에서 배태되어 불공정한 결과를 야기하고 성별 권력관계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생을 위협 속에서 살아가게 방치하는 것, 이들에 대한 폭력 행위들을 가능하게 하고 용인하는 것, 그래서 약자에 대한 지배와 통제가 정상적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다시 피해자들을 암흑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것, 결과적으로 이들의 자유와 존엄성을 박탈하는 것, 그 자체가 구조적 부정의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므로 이번 사건에 대한 명명백백한 진상규명과 관계자 처벌은 문제해결의 선결과제이자 첫걸음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조사와 법무부 내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 설치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검찰조직 내 ‘불미스러운’ 문제로 축소되어선 안된다. 개인의 도덕적 흠결의 문제이거나 특수 조직의 성추문 사건이 아니다. 피해자에 대한 각종 외모품평회를 일삼으며 사생활을 캐고, 적반하장식 책임전가에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오래된 적폐가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성차별적 구조임을 웅변 중이다.

이제 프레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성폭력, 가정폭력, 여아학대, 성매매, 음란물, 스토킹, 데이트강간, 디지털성폭력, 인신매매 등은 ‘여성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남성이고, 남성들의 의식과 무의식이 전면적으로 개조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면, ‘남성문제’ 아닌가. 무지가 면죄부를 주던 시대는 끝났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묵인하고 동조하고 정상화하고 비가시화하며 성차별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무지는 명백한 범죄행위다. 그러므로 목격자가 되었을 때 침묵하지 않겠다는 ‘미퍼스트’(#MeFirst)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생을 통해 누적된 가해자성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반성하는 자세가 우선이다.

들불처럼 번지는 각계각층 여성들의 ‘미투(#MeToo)’운동은 이제 남성들의 변화를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변혁의 갈림길에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인식의 지체현상을 깰 것인가, 과거에 머물 것인가.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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