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23일자 경향신문 ‘시대의 창’ 지면을 통해 나는 ‘19대 대선이 18대 대선과 다른 이유’라는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핵심은 촛불정국을 겪으면서 각 정당 지지층이 모두 대거 이탈해 부동층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게 되었으며, 이번 대선은 누가 그들을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과는 달리 진영대결이 아니라 국민통합이 화두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오늘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보려 한다.

흔히 ‘이명박근혜’라고들 말하지만, 박근혜 정부 4년은 이명박 정부 5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주변의 지식인과 정책전문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심각한 종말론적 위기감을 토로했다. 정권의 단물을 나눠 먹고 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념도 세대도 상관없는 위기감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그렇지 않았다. 진보와 젊은 세대가 동의하든 안 하든 보수와 기성세대는 나름의 자기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념이나 세대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정말로 몇 년 안에 나라가 망한다는 위기감이 널리 공유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대결적인 정치가 아니라 합의적인 정치가 필요하고, 5년마다 뒤집히는 정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다는 절박한 깨달음이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도 차기 대선에서 이 깨달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여러 조직과 실험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진보단체와 합리적 보수단체들이 함께 활동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었다. 아직까지 대중적 공감이란 과제가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지식인·전문가 사회 내부에서만이라도 보기 드문 합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대정신’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고, 모든 것은 탄핵과 조기대선 국면으로 빨려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왼쪽에서 세번째)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 호프집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오른쪽), 이재명 성남시장(왼쪽에서 두번째), 최성 고양시장(왼쪽) 등 경선 경쟁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의 경선 라인업은 꽤 괜찮은 그림이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지지율 1위로 우뚝 나서고, 합의의 정치를 앞세워 중도보수까지 확장성을 보여준 안희정이 2위, 문재인의 왼쪽에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준 이재명이 3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재인의 ‘정권교체, 적폐청산’ 프레임은 앞서 말한 ‘시대정신’에 비추어보면 아쉬움이 많았지만 경선국면이었으므로 이해할 수도 있었다. 경선 경쟁력과 본선 경쟁력이 늘 거꾸로 가는 민주당의 딜레마가 있고, 안희정이라는 위협적인 경쟁자가 존재하는 상황이었으므로. 그러나 경선이 끝나고 본선이 시작된 지금도 그 프레임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은 곤란하다. 선거공학적으로 불리할 뿐 아니라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과 구속에 대한 변함없이 높은 찬성률이 보여주듯이, 상당수의 보수층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음을 이미 인정했다. 동시에 그들은 박근혜 같은 후보가 아닌, ‘괜찮은 보수’ 후보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정 없다면 문재인에게 표를 주거나 기권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탐색이 반기문에서 황교안과 안희정을 거쳐 안철수에게까지 이어졌다.

안희정의 경선탈락 이후 안철수 지지율이 계속 오르더니 지난 주말 사이 다자구도에서도 안철수가 1위를 차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적폐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라는 프레임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적폐 정치인은 버젓이 남아있으나, 적폐 유권자는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지지층의 높은 충성도가 반드시 플러스 요인인지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랬듯이 이번 대선에서도 그들의 높은 충성도는 역으로 확장성을 방해하는 요소를 동시에 가진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고 권력을 쥐고도 소수파일 수밖에 없는 이 나라의 정치구조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다가 비극을 맞이했다.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개도국 대학의 실험실에서 홀로 밤을 새우며 실험에 몰두하다 폭발사고를 당한 과학자처럼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문재인이 철저한 개혁을 다짐하고 또 다짐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의 교훈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개혁과 통합, 개혁과 미래설계를 분리해야 한다. 개혁은, 설사 저강도라 하더라도, 법과 시스템에 따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5년 내내 지속되어야 한다. 저강도의 일관된 개혁이 고강도의 일회성 개혁과 그에 따르는 역풍에 비해 훨씬 효과적이다. 후보는 ‘청산’을 말할 것이 아니라 ‘통합’과 ‘미래’를 말해야 한다. 19대 대선의 화두는 진영 대결이 아니라 국민통합이다. 상대 진영은 이미 파산했고, 안철수 지지자는 청산 대상이 아니다. 19대 대선은 18대 대선과 다르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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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한다. 살아계셨다면 박근혜 일당의 패악과 탄핵정국에 대해 어떤 말을 하셨을까? 아버지는 초급장교로 6·25에 참전했고 작은 부상을 입어 국가유공자가 됐다. 대학 시절과 4공화국 때 ‘정치물’을 좀 먹어 젊어서는 야당과 함께 독재에 맞섰지만 나중엔 JP의 팬이 되고 말았다. 박정희에 대해선 복잡한 애증을 가졌다.

그런 아버지의 최후 순간들에 나는 중대한 인생의 진리를 보았다. 건강을 잃고 나서는, 그리고 죽음이라는 전능자·절대진리 앞에서는 다른 모든 세속의 것들과 비슷하게 정치란 게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병석의 그는 평생 뜨거운 관심을 기울였던 뉴스나 신문 한 줄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여를 앞둔 대통령 선거에 대한 아무 논평 없이 숨을 거뒀다. 이 시대의 많은 자식들처럼 자주 아버지와 정치를 두고 논쟁했던 나는 섭섭했고 또 허무했다. 정치란 산 사람들의 것이고 건강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지난주에는 일본에서 1년 만에 귀국한 친구를 데리고 광화문과 시청광장을 걸었다. 군복 입은 노인 남자들이 경계근무하듯 늘어선 시청광장은 질척거렸다. 얼었던 땅이 심부에서부터 녹는지 뻘밭이 깊었다. ‘멸공의 횃불’ ‘전우가’ 따위 너무나 낡은 군가와 조·중·동과 JTBC, 문재인·박원순·박영수를 싸잡아 공격하는 독한 말들로 대기도 탁했다.

보수단체인 태극기행동본부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개최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친구가 매일 농성에 나온다는 군복 노인과 대화를 시도했다. 자식이 셋인데 큰아들이 좋은 대기업에 다닌다며 약간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집회에 이리 열심히 다니니 자식들이 걱정이 많겠어요?’라 묻자, 요즘 자식들과 연락을 잘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왜일까?

저 황혼의 열정은 도대체 뭔가? 태극기 노인들의 일부는 일종의 정체성 정치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리라. ‘내 나이가 어때서’가 집회 노래의 하나라니, 난장은 소외나 문화지체의 울부짖음인지도 모른다. 애처롭기도 하다. 그들이 자기 자식과 후손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만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태극기 시위대가 모두 가난한 노인들이라 일당을 받고 집회에 동원되었다든지 그들이 무지한 저학력층이라든지 하는 생각은 일부만 맞거나, 또는 차라리 그랬으면 한다는 바람의 반영일 뿐일 테다. 그들 맨 앞줄에 서 있는 건 누군가? 명문대 출신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과 도지사 따위 그리고 타락한 목사들, 김기춘과 유사한 계통의 공안 밥벌이꾼들이다. 가난과 거리가 먼 특권동맹의 구성원들이다. 박근혜·황교안 세력의 반동과 태극기 시위대의 난장 앞에 껴 있는 종북몰이·국가주의·박정희신화·군사문화·극우 개신교는 실로 헬조선 ‘암흑의 핵심’이다. 암흑에서 뿜어나오는 쿠데타, 헌재 결정 불복, ‘빨갱이’ 살해 선동은 그 자체로 범죄며, 대한민국의 꺼먼 리비도, 현대사를 피로 물들였던 내전과 학살 유전자의 광증이다.

대형집회에서 큰 충돌은 없었다지만, 소소한 충돌과 시민들의 봉변은 다반사가 됐다. 직장에서 가까운 헌법재판소 주변도 연일 난장이다. 인근 주민들은 몇 달째 불편을 겪고 있다. 어제도 군복들과 꽤 잘 차려입은 선글라스 여성들이 함께 새된 소음을 내고 있었다. 한 여성은 동네주민으로 뵈는 다른 여성과 시비가 붙어 ‘이× 저×’, ‘어느 나라 ×이냐’며 악다구니를 하고 있었다. 자식 같은 어린 의경들 앞에서 체면이라고는 한 점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과 박근혜가 약하고 나이 든 사람들의 소외와 정체성을 이용해 먹는다.

공연한 대결의식과 정치열에 들린 어르신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박근혜가 탄핵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하루빨리 물러나야 당신들 손주들이 ‘지옥(헬조선)’이라 부르는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나아진다. 이 봄이 새롭지 않으면 많은 젊은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고 또 좌절할 것이다. 오늘의 정치는 내일을 위한 것이다.

이 나라에도 분명 고매한 인격과 지성을 가진 노인들이 많다. 악을 쓸 일이 아니라 침잠·성찰해야 한다. 혹 섭섭하거나 마음에 맞지 않아도 마음을 열어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어른’이며 ‘내 나이가 어때서?’라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어버이연합·박사모들이 노년들 앞줄에서 나대는 한, 얼마 안 남은 이 사회의 노인 공경 문화는 완전히 유물이 되고 세대 갈등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헌재의 심판과 그에 대한 태도는 한국 ‘보수’와 ‘어른’들의 운명도 결정할 듯하다. 책임감 있는 어른 시민일 수 있을지, 아니면 구시대의 잉여나 혼용무도한 박근혜 정치의 소모품 취급을 받게 될지? 헌재의 ‘어른’들도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에 젊은 힘을 실어주길 기대한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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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에서는 두 개의 의미있는 공연이 있었다. 하나는 이윤택 연출의 연희단 거리패의 <씻금>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정월 대보름맞이 <얼쑤, 탄핵하세!> 국악공연이다. ‘씻금’은 진도 씻김굿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극으로 진도 앞바다에 몸을 던진 망자들의 혼을 달래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천을 떠돌던 망자들이 각자의 원혼을 씻고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려 할 즈음, 저 멀리서 울부짖는 아이들의 통곡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은 세월호 어린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시간이기에 충분하다. 공연을 마치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하얀 천을 들고 배우와 관객들은 광화문광장으로 나아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이 있는 곳으로 향하여 넋을 달랬다. 당초 원작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씻김의 예식은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였기에 더 깊은 공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주 토요일 퇴진행동 본부의 본 집회를 마치고, 저녁 8시부터 블랙텐트에서 있었던 <얼쑤, 탄핵하세!> 국악공연 역시 감동의 무대였다. 특히 공연의 맨 마지막 순서로 나온 ‘앙상블 시나위’의 격정적인 연주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국악공연을 선사했다. 알다시피 앙상블 시나위는 2015년 11월에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예정된 <소월산천> 공연을 한 문화 관료의 어처구니없는 검열로 인해 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소월산천> 공연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극장 특성상 맞지 않아 삭제를 요청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월산천> 공연을 함께 만들었던 박근형 연출가가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개구리>라는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앙상블 시나위는 블랙텐트에서 평소처럼 격정적으로 연주했고, 말미에는 이 팀의 검열에 분노하여 1인 시위를 벌인 안무가 정영두와 함께 즉흥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월 10일 광화문광장에 문을 연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이해성 극장장(극단 고래 대표)은 “정치권력에 빼앗긴 극장의 공공성을 광장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했다. 권호욱 기자

이 모든 공연의 감동은 모순적이게도 블랙리스트 덕분이다. 광화문 캠핑촌에 블랙텐트라는 극장이 들어서고 나서 무대에 오를 수 없었던 공연들이 무대에 올려졌고, 모든 공연은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검열 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연극, 그리고 우리 시대 재난의 아픔으로 각인시켜준 마임공연과 영화상영, 시낭송, 국악공연까지 블랙텐트는 검열로 빼앗긴 극장을 대신해서 예술인들의 정겨운 유배지이자 창작의 수용소가 되었다. 비록 시설은 열악하지만, 열정은 충만하다. 발은 시리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그럴듯한 대접은 못 받지만, 검열은 없다. 오직 예술가로서 자기 주권과 관객의 감동적인 환호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탄핵을 향한 촛불의 리듬은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를 뚫고 봄을 맞이하려 한다. 2월에는 탄핵되길 희망했지만, 국면상 3월 초를 기다려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블랙텐트는 그날까지 광장에서 수많은 예술인과 관객들을 만날 것이다. 빼앗긴 극장에도 봄은 오는가? 아마도 올 것이다. 최소한 물리적으로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따스한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의미하는 ‘은유의 봄’도 올 것이다. 사악한 통치자는 탄핵당할 것이고, 감옥에 갈 것이며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위한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야 한다. 

그런데 블랙텐트에는 정말 봄이 올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탄핵이 인용되면 블랙텐트는 아마도 사라질 것이다. 광화문 캠핑촌의 텐트와 각종 작품들과 시설도 서서히 정리될 것이다. 만일 기각되면 블랙텐트는 저항의 시간을 연장하며 존속될 것이다. 블랙텐트에 봄이 오려면 블랙텐트는 소멸되어야 한다. 빼앗긴 극장에 봄이 오면 우리는 다시 블랙텐트를 정리하고 본래의 극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최선의 길일까? 아니다. 빼앗긴 극장에도, 그래서 애써 만든 블랙텐트에도 진정 봄이 오려면, 광화문광장에 블랙텐트가 영구적으로 존치되었으면 한다. 블랙리스트의 참혹한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의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광화문 블랙텐트는 탄핵 이후에도 그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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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이 드러났다. 그제는 일정이 언론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특검 조사를 거부하더니 어제는 ‘국정 공백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이 원인이고, 특검을 수용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발언까지 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이제 주권자와 전면전을 선포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5000만명이 시위를 해도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던 김종필 전 총리의 예언이 불행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손범규 변호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자기들(국회)이 탄핵을 해서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고 국정 마비를 일으켰다. 제대로 된 증거와 확실한 혐의도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야당이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탄핵부터 감행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혼란이 박 대통령의 비리와 헌법 위반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이런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주권자의 뜻을 받들어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킨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고, 지금도 절대 다수의 시민이 헌재의 조속한 탄핵 결정을 바라고 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9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2차 변론에서 양측 대리인의 출석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 변호사는 “탄핵을 위한 자료 수집 의미를 갖는 특검을 야당이 통과시킨 것이라 처음부터 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도 했다.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나는 반헌법적·반민주적 발상일 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했다. 특검 수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박 대통령이 자청한 일이다. 특검법안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다수가 지지해 78%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됐다.

박 대통령은 탄핵 결정을 지연시키겠다는 의도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손 변호사는 탄핵심판에 참여 중인 대통령 대리인단 전원 사퇴와 대통령의 최후 변론 출석에 관해 “배제할 이유가 없다. 가능하다”고 말했다. 종국으로 치닫고 있는 탄핵심판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계산이다. 다행히 어제 열린 12차 변론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박 대통령 측의 불필요한 증인 신문을 적극 제지하며 신속한 재판 진행 의지를 보여줬다. 박 대통령이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이상 법을 바꿔서라도 특검 수사 기간은 연장돼야 한다. 특검은 박 대통령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주권자에 도전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들을 응징하고, 헌재는 박한철 전 소장이 밝힌 대로 이정미 재판관 임기 만료(3월13일) 전 선고가 이뤄지도록 재판을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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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주말 동시에 구속됐다. 국정농단의 공범이면서도 교묘하게 수사망을 피했던 이들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결국 꼬리가 잡혔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두 사람의 구속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좌파’로 낙인 찍어 각종 지원에서 배제해왔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문체부가 오늘 대국민사과를 한다고 한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23일 (출처: 경향신문DB)

블랙리스트 대상자들은 문화예술 전 분야에 걸쳐 그 숫자가 무려 1만명에 달한다. 노벨상 후보로 추천받은 작가, 최고 권위의 국제 문학상 수상 작가까지 망라돼 있다. 그들이 한 활동이라 해 봐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거나 야당 정치인을 지지한 게 전부다. 헌법은 양심, 언론 출판,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예술인을 통제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 중대 범죄다. 더구나 이 정부 국정기조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내부에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빨간 딱지를 붙여 탄압했으니 그 이중성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두 사람은 구속 직전까지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다.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컴퓨터를 폐기하는 등 증거를 없애려고도 했다. 조 전 장관은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영장실질심사를 받아 현직 장관 구속 1호라는 불명예 기록까지 안게 됐다. 고위 공직자의 처신이라고 믿기 힘든 파렴치한 피의자들이다.  

이제 블랙리스트 작성의 최종 책임자가 누군지 밝혀야 한다. 그런 광범위한 명단은 한두 부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도 수차례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작성의 주동자였음을 가리키고 있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상통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 중 가장 심각하고 위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검은 문명국가의 수치인 블랙리스트의 몸통을 반드시 찾아내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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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 문양이자 인류 최고의 길상 문양 ‘스와스티카’와 나치의 상징 문양 ‘하켄크로이츠’의 유사성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다. 히틀러는 아리아인의 혈통과 인종적 우수성을 나타내기 위해 스와스티카를 회전시켜 나치의 상징물로 채택했다.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해 12월31일 정유라의 성적을 조작해 학사 특혜를 준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류철균은 그해 11월20일 카카오톡에서 자신의 기분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상태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변경했다. ‘나는 불행의 사용법을 알고 있다.’ 류철균과 나는 카톡을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순간 류철균이 불행을 냉장고나 세탁기처럼 다루어야 할 것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류철균을 내리덮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마음이 일어났다.

세상만사에 대해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라 해도, 적어도 불행에 대해서는 이런 태도를 취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자신의 불행에 대한 것이라 해도 마침내 그것은 타인의 불행에 대한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김영민 기자

이제 눈을 감고, 우리 시대에 만연한 불행의 면면을 떠올린다. 얼굴이랑 가슴이랑 여기저기가 불붙듯이 매우 화끈거린다. 다음 순간 중국으로 전래되어 만(卍)자로 자리 잡은 스와스티카 문양의 신비로움을 떠올리며, 머릿속의 실타래가 풀린다.

언젠가 류철균이 카톡 상태메시지를 ‘나는 불행하다’로 변경하기를 바란다. 만약 류철균에게 ‘불행에 대한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류철균은 구속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 박근혜에게 ‘불행에 대한 진정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박근혜는 탄핵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박근혜가 눈물 흘리며 ‘나는 불행하다’라고 혼잣말하기를 바란다.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박근혜의 머릿속에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간 세월호 아이들의 비명이 권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발파음처럼 자꾸만 터지지 않을까.

박근혜를 비롯하여 최순실, 차은택, 우병우, 류철균 등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 의해 소환, 체포, 구속되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불행에 대한 진정성, 타인에 대한 공감의 단서를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기고 다시는 그것을 가지고 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단번에 늙어버린 자의 피로감이 발견될 따름이다.

류철균이 <인간의 길>이라는 소설에서 미화했던 박정희 대에 시작되었고 박근혜 대에 이르러 한층 증폭된 우리 사회의 병폐는 ‘불행에 대한 진정성’과 ‘타인에 대한 공감’의 실종이다. 어처구니없는 불행의 폭탄을 우리 사회 한복판에 작렬케 한 세월호 아이들의 사망 및 실종 사건의 장본인이 박근혜인 것도, 그로 인해 박근혜가 탄핵에 이르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위로와 치유, 힐링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며 도리어 상황이 나빠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고인이 된 문화평론가 이성욱은 이인화(류철균)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몇 개의 소설을 고스란히 표절한 것임을 낱낱이 밝혔다. 이인화는 그것을 온전히 시인하는 동시에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혼성모방 기법이라고 강변했다. 혼성모방 또는 패스티시 또는 문학적 조각이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면, 혼성모방의 ‘끝판왕’으로 스와스티카를 모방한 하켄크로이츠만 한 것이 있을까. 리얼리즘 또는 모더니즘의 정색이 진부하다고 해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농담은 ‘류철균과 이인화’(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단군 이래 최고의 농단인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한복판에서 발군의 학자·문학인의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류철균이 카톡 상태메시지에 다음의 문장을 덧붙이기를 바란다. ‘나는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기 위해 나의 불행을 사용한다.’ 부디 류철균 그리고 박근혜가 마음속 깊이 불행을 경험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불행의 올바른 사용법을 알 수 있기를. 소망컨대, 하켄크로이츠가 스와스티카 또는 만자로 회귀할 수 있기를.

강영희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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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