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코리아가 빅데이터 분석업체 다음소프트와 함께 지난 7일부터 13일까지 트위터에서 가장 이슈가 된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2016 민중총궐기대회’와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이슈가 가장 많은 대화를 생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주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민중총궐기’다.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트위터 내에서 관련 트윗이 총 130만건 생성됐다. 집회 당일인 12일 오후 10시30분쯤에는 광화문광장 주변 빌딩 옥상에서 촬영해 광장을 가득 메운 집회 사진 등의 트윗이 분당 1200여건 발생할 정도로 현장 분위기를 전달하는 트윗량이 폭증했다. 주최 측 추산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여 ‘박근혜 하야’를 외치며 촛불 파도타기를 하는 영상은 1만2000번 이상 리트윗됐다. 해시태그 ‘#내려와라 박근혜’, ‘#박근혜 하야’ 등을 포함한 현장 영상과 사진들도 수만건 올랐다.

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한 최순실씨의 단골 성형외과가 연간 9000명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의 프로포폴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트위터상에서 ‘프로포폴’이 많이 언급됐다. ‘최순실 사단’으로 알려진 비선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해당 키워드의 언급량도 급증했다. 최씨가 2012년 대선 때부터 운영했던 비선 조직이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까지 들어가서 이른바 극우 정치 성향의 글들을 실시간 보고하고, 야당 정치인과 관련한 SNS 동향을 감시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트위터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예측을 벗어난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도 국내 트위터를 뜨겁게 달궜다. 뉴욕타임스에서 대선 승리 후보를 점치는 그래프인 ‘포어캐스트’가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더 높다는 방향으로 예측을 바꾸는 순간 트위터에는 ‘도널드 트럼프’ 이름 언급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대선에서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역시 주목받았다. 특히 패배 연설에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되리라 점쳐졌던 후보로서 여성들에게 “언젠가 곧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깨길 바란다”고 말한 부분이 많이 공유됐다.

목정민 기자 mo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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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담당 기자를 하면서 교사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우리 교육의 분위기가 확 바뀐 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라는 것이었다. 초등, 미취학 아동까지 사교육이 급증하며 놀이터에 아이들이 안 보이기 시작한 것도, 선망의 직장을 향한 무한경쟁 속에서 아이들이 부쩍 독해지고 폭력적이 되어간 것도, 교사들 간의 연대가 무너진 바탕에도 외환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고 했다.

가르치진 않았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배웠다. 부모가 직장에서 잘리고, 삼촌의 사업이 망하고, 어른들의 이혼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내 삶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것을. 친구를 밟고 올라서 1등을 하고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해야 정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공무원, 선생님이 유난히 인기직종이 된 것도 그 무렵이다. 최근 유행어가 된 ‘각자도생’의 씨앗이 싹튼 것도 알고 보면 외환위기 사태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다.

2016년 11월. 대한민국이 목도하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절망적인 현장은 아이들의 삶을 외환위기 못지않게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 세대는 또 한번 격랑을 맞고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부모님을 따라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에 나온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주말, 100만 시민이 “박근혜 하야”를 외칠 때 단연 눈에 띄는 모습은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었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명절 때도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아이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닷새 앞둔 이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뭐가 그리 절박했을까. 아이들이  가장 많이 외친 말은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였다.

“1919년 3·1운동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이곳에서 오늘은 민주주의 만세를 외치겠습니다.”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에선 사회자의 발언과 함께 전국 청소년 시국대회가 열렸다. “1960년대부터 1987년까지 우리 선배들이 피와 몸을 내던지며 겨우겨우 얻어낸 민주주의입니다. 그런 민주주의를 박근혜 정부는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경기 이천 중3), “끔찍한 악몽을 꾸는 나라를 깨우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남이 아닌 내가 먼저 일어나 나라를 깨우는 겁니다. 대한민국 청소년, 민주주의 파이팅!”(강원 원주 고2), “우리 학생들이 학생들의 힘으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무너져 버린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웁시다”(경기 성남 고3). 각지 학생들의 ‘사이다 발언’마다 수천명 학생들의 지지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중학교 사회교과서 속 민주주의는 ‘주권이 다수 국민에게 있고 국민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지며, 정치권력이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기반으로 형성되고 행사되는 정치 형태’라고 설명돼 있다.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치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아이들이 나선 것이다. 모든 것이 전복되고 허물어진 사회. 아이들이 거리에 나와 자신들이 살고 싶은 미래를 외쳤다.

“저희는 우리나라에 태어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싸우는 것은 과거 우리를 위해 싸워주신 조상분들에 대한 대답이고 현재 우리 스스로를 위한 혁명의 발걸음이며 미래 후손들을 위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어른들이 못한다면 우리 학생들이 나서서 심판해야 합니다.”

<학교라는 괴물>의 저자인 권재원 교사는 우리 교육의 이중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며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어른이 아이들을 죽인 사건으로, 더 나아가 국가가 아이들을 버린 사건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권 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을 절망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신뢰를 잃어버린 어른들이 할 일은 뭔가. 권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거짓이 되지 않도록 현실을 바로잡는 것까지가 교사의 책무에 추가됐다고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른들이 해야 할 몇 가지를 더하고 싶다. 한 달 전쯤 ‘비선 실세’ 최순실 딸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특혜 의혹을 받고 있던 이화여대에는 ‘부끄러움은 왜 학생의 몫인가’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 현수막처럼, 이번 게이트를 관통하는 핵심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끄러움이다. 우선 이 땅 대부분의 평범한 어른들은 이런 사회를 만든 것에 대해 한없이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야 한다. 다음으론 IMF 체제 이후 20년을 지배했던 ‘각자도생’을 깨고 세대를 넘은 연대의 두 팔을 벌리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가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적인 시민 항쟁의 시기였음을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아픔과 실망을 준 어른들의 최소한의 도리다.

송현숙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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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선 대통령이 범죄의 몸통이고,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한 사상 초유의 ‘박근혜 게이트’로 국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최순실이 검찰에 출석하면서 “국민 여러분,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뻔뻔함에 오물을 뒤집어쓴 듯한 모멸감을 느꼈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최순실은 하야하라!”는 시위 구호가 ‘신정통치’의 장막을 걷어내라는 ‘정언명령’처럼 들리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런 ‘최순실의 나라’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317일간 사경을 헤매다 숨을 거둔 백남기 농민은 영정 속에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는 ‘물대포 살인’을 저지른 경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 이후 한 달간 온갖 ‘패륜 행위’를 일삼다 시신 부검영장을 재청구하지 않기로 했더군요.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아버지를 광주 5·18 구묘역에 모실 세 남매의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요?

지난달 31일 밤 긴급체포된 최순실씨가 이틀째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1998년 세상을 뜬 독일의 소설가 잉게 숄입니다. 히틀러의 폭압정치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쳤던 대학생 단체 ‘백장미’에서 활동하다 게슈타포에 체포돼 1943년 2월 처형된 한스 숄과 조피 숄의 누나이자 언니입니다. 기억을 되살리고, 자료를 모아 두 동생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기록한 책이 <백장미(Die Weisse Rose)>입니다. 한국에선 1978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제목을 달고 출간됐지요. 당시 한국 대학가에선 ‘아미죽’이란 줄임말로 불렸고, 금서로 묶이기도 했다지요?

남동생 한스와 여동생 조피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것은 24살과 21살 때였습니다. 의사가 되려 했던 한스는 뮌헨대 의대에 들어갔고, 조피는 뮌헨대 철학과에 진학합니다. 자유를 옭아매는 독재권력의 족쇄가 조여오고, 수많은 지식인들이 집단수용소로 끌려가면서 두 동생은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지니게 됐고, ‘백장미’를 결성하게 됩니다. 백남기 농민이 1968년 중앙대 행정학과에 입학한 뒤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해 유신 독재정권에 항거한 것과 흡사합니다.

1942년 뮌헨대 교정에 ‘백장미’ 문장이 새겨진 전단이 뿌려집니다. 전단에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무책임하고 어두운 충동에 빠진 통치자에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굴욕적인 일은 없다”고 쓰여 있었지요.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했던 백남기 농민도 같은 심정이었겠지요. 한 나라의 농민으로서 무책임하고, 어두운 충동에 빠진 통치자에게 굴욕당하지 않으려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밧줄을 잡았을 겁니다.

1943년 2월 뮌헨대 건물 3층에서 ‘백장미’ 전단을 뿌리던 한스와 조피는 잠복해 있던 게슈타포에 체포돼 즉결심판에 회부된 지 나흘 만에 단두대에 오르게 됩니다. 처형되기 전 한스는 감옥 벽에 “모든 폭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썼고, 조피는 “자유!”라는 글을 새겨 넣었지요. 한스와 조피의 처형 10주기였던 1953년 2월 테오도어 호이스 독일연방 초대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독일의 비극 속에 뛰어든 그들의 행동은 암흑의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반인륜적 폭거를 자행한 박근혜 정부는 사과는커녕 백남기 농민을 능욕하고, ‘병사(病死)’ ‘안락사’ ‘부작위에 의한 살인’ 등을 거론하며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갖추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당시 상황보고서에 ‘물대포에 의한 부상’ 등으로 적어놓고도 “파기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부검영장이 기각되자 ‘빨간 우의’ 타살 의혹까지 포함시켜 부검영장을 재청구했지요. 나치 체제를 견뎌냈던 저도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70여년 전 나치 폭정에 시달렸던 독일 국민들이 그랬듯이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격 없는’ 대통령이 국가의 근본을 무너뜨려 패닉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이게 나라인가”라는 장탄식과 함께 ‘하야’ ‘탄핵’을 입에 올리고, 시민사회와 대학에선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한스와 조피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해주셨던 “히틀러는 독일 민족을 파멸로 몰고 갈 거야”라는 말이 “박근혜와 최순실, ‘문고리 3인방’이 대한민국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것 아닌가”라는 불길한 예감과 겹쳐집니다. 지난 주말 전국 곳곳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규탄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아바타 정권 퇴진” “박근혜 하야” 등을 외치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시민들이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굴욕당하지 않으려는 간절함 때문이 아닐까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지만 폭력 정권에 희생된 한스와 조피, 백남기 농민이 그토록 바랐던 것처럼….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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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은 온 세계의 모순을 걸머진 화약고가 되어 있다. 우리는 식민지 경험에 이어 분단구조 아래에서 독재정권을 겪으면서 빛나는 민주화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보수반동 정권이 연달아 들어서서 모든 걸 뒤엎어 놓았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 갈등과 분열의 양상이 온 사회에 걸쳐 짙게 깔렸다. 무엇보다 인사정책을 보면, 고위 공직자를 불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고 요리조리 병역을 기피하고 출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채웠다. 게다가 무슨 은혜를 갚는다고 해 자신의 선거캠프에 있던 사람이나 곁에서 아첨하는 인사를 골라 요직에 앉혔다. 이는 바로 족벌주의나 환관정치로 추악한 권력의 남용이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울먹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다음. 재벌에게 법인세 인하 등 온갖 특혜를 주고 노동자의 권익을 짓밟았으며 민주인사를 종북좌파로 몰아붙여 숨을 죽이게 만들었다. 남북대화는 파탄을 가져왔으며 사드 배치 문제로 인접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를 두고 단돈 10억엔을 받고 마무리 짓는 해괴한 일도 벌였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을 막고 고사하게 만들었고 시민단체의 활동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마침내 ‘박근혜 게이트’(최순실 게이트는 틀린 말)가 곪아서 터졌다. 양식이라고는 한 푼 없는 무식하고 사이비종교를 받드는 최순실이라는 간악한 여인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막후에서 국정을 농단하다 못해 기업인에게 강요해 비리재단을 만들고는 사유화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9세기 끝 무렵, 고종과 민비는 진령군이라는 무당에게 빠져 국고를 탕진하였고 진령군은 그 위세를 업고 온갖 이권을 차지하고 재물을 갈취한 게 100여년 전에 일이다. 추악한 권력이 현대 민주정치 제도 아래에서 재현되었다.

하나 더 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지정하고 건국절을 새로 지정하려 하고 있다. 세계 민주국가에서는 교과서를 검인정이나 자유 채택제로 선택해 역사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르치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국가는 현재 김일성 교조를 강요하는 북한과 종교교육에 충실한 이슬람권 국가뿐이다. 또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지정하는 건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하고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작업이다. 왜 이러는가? 이승만 때문인가, 박정희 때문인가?

지난 29일 서울 광화문 일대와 전국 여러 곳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일어나 박근혜와 최순실을 규탄하고 ‘박근혜 하야와 탄핵’을 외쳤다. 이 기세대로라면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4·19혁명, 6월항쟁이 다시 일어날 분위기이다. 오늘날 그런 사태가 일어나야 모순의 사회를 바로잡고 국가 기강을 세우며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승만은 하야하고 박정희는 살해당하고 전두환은 감옥에 가지 않았는가?

지금 여당에서는 비리에 연루된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하고 대통령의 중립을 보장한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게 그 해결 방법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어림없는 해결책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중심제이므로 그 권한을 어떤 편법으로 어떻게 분산하든 박근혜 주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미봉책을 국민 정서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양식 있는 인사는 그런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말 것이다. 너무나 썩어 문드러져서 어지간한 집도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이를 푸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첫째, 박근혜 대통령은 유신독재의 향수를 잊고 일대 결심을 굳혀 이 사회의 비리와 갈등을 풀어가는 것이다. 편중 인사를 전면 철폐하고 양식과 청렴, 전문성과 능력을 헤아려 공직자를 임명하고 환관과 같은 간상모리배를 제거하는 기풍을 만든다. 재벌의 특혜를 막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소득자의 권익을 보장하며 남북의 대화 물꼬를 트고 반민주적 국정 교과서를 철폐한다. 그러고 나서 참된 민주가치가 무엇인지, 소득 불균형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처절한 성찰을 해야 한다. 이를 해내지 못한다면 마지막으로 사퇴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통령은 우리 헌법이 명시한 최고 통치자다. 통치자는 용기와 결단력과 판단력이 있어야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자질이 모자라면 물러나는 것이 국가를 위해 현명한 선택이다. 하야를 선택하라. 일시의 혼란은 긴 역사에 비추어 보면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터지는 둑을 미봉으로 막으려 하다가 정작 둑이 터지고 나면 모든 게 쓸려간다. 그때는 개인도 나라도 그르친다. 박근혜 대통령의 준엄한 자기 성찰과 결단이 요구된다.

루이 16세는 거대한 프랑스 혁명의 노도(怒濤)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단두대에 올라갔다. 이게 역사의 교훈이요, 심판이다.

이이화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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