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타락상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봉투 만찬 사건’은 검찰의 도덕적 인식이 일반인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검찰개혁 여론이 들끓어도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음을 이 사건 하나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은 18일 사의를 표명했지만 법무부와 검찰의 감찰을 받고 있다. 사표 수리로 사건을 덮지 않고 일벌백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최측근인 안태근 국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2년 넘게 맡고 있다. 안 국장은 검찰 수사 대상이던 우 전 수석과 수백차례 통화한 사실이 특검 수사에서 드러났다. 정상적인 검찰이라면 안 국장을 수사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지검장이 맡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그를 수사하지 않았다. 돈봉투 만찬은 우 전 수석에 대한 불구속 기소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마무리된 지 나흘 뒤인 지난달 21일 이뤄졌다. 만찬에서 안 국장은 특수본 간부 검사들에게 70만~100만원씩 건넸고, 이 지검장은 답례로 법무부 검찰국 1·2과장에게 100만원씩 격려금을 줬다.

18일 서울중앙지검에 걸린 검사선서 앞으로 검찰 관계자들이 지나고 있다. 검사선서는 대통령령 ‘검사선서에 관한 규정’에 정해진 것으로 신임 검사가 취임식에서 읽어야 한다. 김영민 기자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의 행위는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수사 검사가 피의자를 봐준 뒤 사후에 돈을 받은 셈이어서 뇌물죄를 적용할 수도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건이 처음 한겨레에 보도된 뒤 이들이 보인 ‘검찰과 법무부가 밥 먹고 소통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의 반응이었다. 무소불위 권한에 취해 도덕적·법적 판단에 마비가 왔다고밖에 볼 수 없다. 대통령 지시이긴 하지만 ‘셀프’나 마찬가지인 이번 감찰을 시민들이 인정해줄지도 의문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사활을 걸고 이 지검장과 안 국장 감찰에 임해야 한다. 자금의 출처로 알려진 특수활동비의 적법 집행 여부도 따지고, 만약 장관 부재 상태인 법무부에서 이창재 차관(장관 대행)의 허락을 받고 검사들에게 돈을 건넸다면 이 차관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역대 정부마다 검찰개혁을 시도했지만 검찰의 강력하고도 조직적인 저항에 매번 무산됐다. 설득이나 대화를 통해 검찰을 개혁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했다. 향후 1년은 한국 역사에서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검찰개혁의 호기이자 적기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정의롭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공수처 설치와 수사·기소권 분리 등 각종 제도 개혁과 부패 검사들에 대한 인적 청산으로 검찰을 확실히 주권자의 편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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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현 정부를 ‘유랑도적단’에 빗댄 바 있다. 유랑도적단이란 경제학자 맨커 올슨이 <권력과 번영>이라는 저서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그는 정치권력과 경제적 번영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차피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닐 바에는 ‘유랑도적단’보다 차라리 ‘정주도적단’이 낫다고 지적하였다. 정주도적단은 이듬해에도 수탈해야 하기 때문에 씨앗이라도 남기지만, 한 번 털고 떠나는 유랑도적단은 씨앗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단임제 정부가 1987년에 가졌던 역사적 효용성을 차츰 잃어버린 끝에 이제는 유랑도적단과 같은 대통령 무책임제의 폐해만 남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표현을 빌려 쓰면서 이것은 나의 표현이 아니라 올슨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에 대한 건강한 풍자조차 금기가 되어버린 현실을 잘 알기에 공연한 말길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지켜보며 나 스스로가 아직도 얼마나 순진하기 짝이 없는지 깨닫게 됐다. 유랑도적단은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던 것이다. 학자들이 비판이랍시고 비유나 하고 있을 때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 비판자의 입을 틀어막으며 실제로 나라를 털어먹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는 점이 특검수사를 통해 그리고 헌재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 특검수사가 본궤도에 오른 이후 나는 칼럼을 통해 박근혜를 언급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는 이제 적어도 대한민국의 공적인 영역에서 영원히 퇴출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인 박근혜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새로 만들 세상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이 사흘 만에 내놓은 메시지를 보며 아직도 나는 세상 물정 깨달으려면 한참 멀었음을 알았다. 그는 퇴출당할 생각도, 자연인으로 돌아갈 생각도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말해야 한다.

흔히들 ‘친박(親朴)’이라는 단어를 쓰곤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단어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왔다. 친박이 아니라 ‘용박(用朴)’이 맞다. 박근혜와 친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를 이용하는 것이다. 한때 박근혜의 입으로 불렸던 전여옥 전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그를 떠나며 자신이 겪은 여러 경험과 인물평을 남긴 바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니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다. 거기에는 여러 내용들이 적나라하게 밝혀져 있다. 한때 친박이었던 많은 정치인들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이 된 후 변했다’고 말한다. 모두 거짓말일 것이다. 몰랐을 리가 없다. 하다못해 나 같은 백면서생도 알았다. 지난 대선이 있던 2012년 한 해 동안 지면을 통해 발표한 칼럼들을 다시 뒤져 읽어보니 정책과 철학의 빈곤, 맥락은 사라지고 원론만 반복하는 특유의 어법, 정상 상황에서는 한번도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없고 콘크리트 지지층에 기대어 위기돌파에만 능한 그의 경력, SNS를 통해 대대적으로 펼쳐진 의심스러운 여론조작 정황 등이 마치 본 듯이 적혀있다. 그를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일개 학자 눈에도 뻔히 보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정치인들이 몰랐을 리 없다. 알면서도 그의 상품성을 이용해 권력을 차지한 것이다. 현대사의 굴곡으로 인해 박근혜가 저절로 가지게 된 엄청난 상품성, 결함이 있지만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게 해주는 폐쇄성, 거기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못하는 철학과 정책의 부재까지. 노회한 정치인들이 앞장세우고 이용하기에는 최선의 조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친박이 아니라 용박이다.

용박이 그를 이용했다면 그는 국민들을 이용했다. ‘용민(用民)’이다. 박근혜인들 친박이라 불리는 용박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것을 왜 몰랐겠는가. 하지만 알면서도 짐짓 이용당해 주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하니 기꺼이 이용당했을 것이다. 오늘까지 삼성동 자택 앞을 지키는 지지자들 중 상당수는 빈곤과 전쟁의 상처를 뚫고 솟아오른 대한민국의 도약을 함께했던 사람들이고, 그것을 무한한 자부심의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다. 뒤늦게 이용당했음을 깨닫고 등을 돌린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끝까지 그를 믿어주는 사람들이다. 헌정사상 최초로 파면당함으로써 국격을 떨어뜨리고 사흘의 침묵 끝에 내놓은 메시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했으니 10% 남짓 남은 열성 지지자들을 볼모로 해서 나라야 망하거나 말거나 또다시 진흙탕의 정치싸움을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철저한 ‘용민’이다. 그는 자연인 박근혜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정치인 박근혜로 돌아왔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장덕진 |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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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검찰을 비판하고, 검찰개혁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수사든 유무죄는 법원에서 가려진다. 법원의 최종적인 승인 없이 검찰만의 전횡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검찰권력은 반드시 법원권력과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법원권력의 한가운데에는 대법원이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법원은 정권의 외압을 받지 않는다. 지금의 대법원은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들어서 대법원이 보여준 권력지향성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2015년 1월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것부터 이상했다. 박 원장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의 담당검사 출신이다. 아무리 검찰 출신이 대법관에 임명될 차례라고는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다른 자리도 아닌 대법관에 임명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변호사단체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무리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폭로되면서 그 단서의 일부가 밝혀진다. 박영수 특검이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확보했는데, 그 수첩에 박 원장 관련 내용이 메모돼 있었던 것이다. 양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뜻에 따라 박 원장의 대법관 임명을 강행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조합원들이 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사권을 무기로 일선 법관들의 개혁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즉각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김영민 기자

그뿐 아니다. 2015년 3월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 시절 발령된 긴급조치 9호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국가배상책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긴급조치 9호는 2013년에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부정한 것이다. 워낙 정치적인 판결이다 보니 대법원 판결인데도 이에 대해 반발하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2015년 5월에는 국정원이 경력법관 임용자들에 대해 사상검증식 신원조사를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사법의 독립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태였는데도 법원행정처장이 고작 “부적절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례를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는 반응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밝혔을 뿐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원 전 국정원장은 지난 대선 때 댓글공작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고등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원 전 국정원장 사건이 2013년 1월에 제기된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제3자가 선거과정상 위법행위를 저질러 선거인들이 자유로운 판단에 의하여 투표할 수 없게 된 경우 그 선거는 무효가 된다. 따라서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 유죄로 인정될 경우 지난 대선은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히 대통령 선거를 무효로 판결하는 것은 차마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2015년 7월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였다. 단 한명의 반대의견도 없었다. 원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은 대법관을 거쳐 이명박 정권에서 총리까지 지낸 김황식 변호사였다.지난해 말 국정원이 대법원장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신독재의 망령이 대법원장까지 쫓아다녔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다.

대법원도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고 논평했다. 이번에는 법원 내부통신망이 아니라 공식발표였다. 그러나 유신독재의 망령은 청와대 혼자서 불러들인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망령의 굿판에서 향불을 피워 올렸던 것이 바로 대법원 자신이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며칠 전 대법원이 사법독립을 주제로 한 일선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축소시키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법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대법원이 이 행사를 적극 장려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이쯤 되면 과연 대법원에 사법의 독립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는 OECD 평균 54%에 훨씬 못 미치는 27%였다. 42개 국가 중 39위다. 권력 앞에 비굴했던 대한민국 대법원의 초라한 성적표다.

나승철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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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과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이 태극기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3·1운동은 민족 전체가 계급·지역·이념·종교를 초월해 일으킨 독립운동이었다. 선열들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동단결했다. 꼭 98년이 지난 지금 서울 도심에선 3·1정신과는 정반대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일견 3·1절은 둘로 쪼개진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 시국을 촛불과 태극기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 촛불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이 헌법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시민의 분노에서 시작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우리 사회 불평등·불공정·불의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폭발시킨 기폭제였을 뿐이다. 촛불민심은 국치(國恥) 주범들의 단죄만 요구한 게 아니다. 촛불집회는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심판을 계기로 특권과 반칙이 없는 나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헌법을 유린한 피의자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탄핵 반대 집회를 이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는 없다. 박근혜 구하기에 나선 수구세력들이 나라의 상징인 태극기를 흔들었다고 해서 ‘태극기집회’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제98주년 3·1절인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거대한 경찰 차벽으로 나뉜 두 집회가 각각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집회(오른쪽)와 기각을 촉구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차가운 빗줄기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장의 두 집회는 보수와 진보, 여와 야의 이념이나 진영의 대결이 아니다. 촛불이 이뤄낸 탄핵을 사회개혁, 국가개조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광장에서 만났을 뿐이다. 가치의 충돌도 아니다. 미래의 대립도 아니다. 촛불은 무너진 민주공화국을 복원하고 시민주권시대를 열자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탄핵 반대가, 보호하고 지킬 가치일 수는 없다. 촛불은 구체제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자는 미래의 꿈과 희망을 담고 있다.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란 협박과 선동이 우리의 미래일 수는 없다. 이것이 본질이다. 보수세력이 기계적 중립이란 허울 아래 탄핵 촉구와 반대, 촛불과 태극기가 경쟁하고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공정한 태도가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촛불을 폄훼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 연장을 거부하고, 친박계 의원들이 탄핵 불복을 공언하고 나선 건 탄핵 이후, 대선 이후에도 보수층을 결집해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자구(自救)의 몸부림이다. 한술 더 떠 박 대통령은 3·1절 집회를 하루 앞두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 탄핵 반대 맞불을 키워 지지층을 모으려는 술수에 불과하다.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한 작태다.

매주 이어지는 두 집회를 놓고 걱정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걱정할 것 없다. 대다수 시민들은 알고 있다. 탄핵이 인용되면 반대 세력의 반발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어느 정도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수구세력의 반동과 퇴행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과 외환위기 속에서도 오늘의 자유와 번영을 이뤄냈다. 박 대통령 탄핵은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헌법과 정의와 역사와 미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다. 누구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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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이 설립한 하나고의 입시 비리를 고발했다가 해임된 이 학교 전경원 교사에 대해 교육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어제 해임취소 결정을 내렸다. 전 교사는 2015년 8월 서울시의회에 출석해 하나고가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남학생을 더 많이 뽑기 위해 지원자들의 성적을 조작했다고 증언했다. 교육청 감사 결과 전 교사의 폭로는 사실로 확인됐지만 학교법인은 전 교사가 학교장 허가 없이 외부 강연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 10월 해임했다. 비리 고발에 보복한 것이다. 학교법인의 처분이 잘못됐다는 소청심사위 결정은 사필귀정이다. 의로운 행동으로 상을 받기는커녕 해직의 고통을 겪은 전 교사는 새 학기부터 교단에 다시 서게 됐다. 선생님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며 안타까워했을 학생·학부모들도 소청심사위의 이번 결정이 위안과 희망이 됐을 것이다.

정부 조직이나 학교의 비리, 대기업의 담합, 금융권 화이트칼라들의 범죄 등은 내부자의 도움 없이 밝혀내기가 어렵다.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는 데다 내용 또한 전문적이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의 중요성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부장이나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협조가 없었다면 특검 수사가 지금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K스포츠재단 노승일 부장이 24일 '비선 실세' 최순실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그러나 전 교사 사례에서 보듯 내부 고발자는 조직의 보복행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2012년 학교 비리를 제보한 안종훈 동구마케팅고 교사도 해직 통보를 받았고, 2015년 동국대 사태 당시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 등을 제기한 한만수 교수도 해직됐다가 천신만고 끝에 복직했다. 삼성은 2007년 차명 비자금 등을 사회에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를 배신자로 낙인찍었고, 현대차는 지난해 승객 안전을 위협하는 에어백 센서 결함과 세타2 엔진의 시동 꺼짐 등의 문제를 언론에 제보한 직원을 가차없이 해고했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과 ‘부패방지법’ 등은 보상이 미약한 데다 민간 부문 적용이 제한돼 내부 고발자 보호에 한계가 많다. 내부 고발자 보복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비리와 부패가 많다는 뜻이고, 어떤 사회가 내부 고발자 보호와 보상에 취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정의롭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전 교사처럼 옳은 일을 하고도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내부 고발자 보호법’(가칭)을 만들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부패와 비리를 척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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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에 임하는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16차 변론에서는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국회 수석대변인’이라고 모독하고, 재판관 기피 신청을 내는 막장극을 벌였다. 강 재판관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질문 등을 많이 한다는 이유였다. 아무리 탄핵 위기에 몰렸다 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이 22일 16차 변론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연합뉴스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인들까지 무더기로 신청을 한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 측이다. 증인들이 나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거짓 가능성이 높은 발언을 하면 재판관이 사실 확인을 위해 물어보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헌재가 박 대통령 측의 재판관 기피 신청을 각하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재판을 파행으로 이끌고, 최종 선고에서 강 재판관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뻔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측은 이날 또 박한철 전임 헌재소장, 정세균 국회의장 등 20여명을 증인으로 신청하는 억지를 부렸다. 일부 대리인은 신성한 법정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발언하는 등 무례의 극치를 보였다. 이 같은 행동이 헌재 재판관들을 자극해 대리인단 전원 사퇴 명분을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헌재의 탄핵 결정에 불복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주권자인 시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과 보조를 맞추려는 듯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특검 수사에 어깃장을 놓고 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기간 연장의 필요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한과 알량한 법 지식으로 수사망을 피하고 시민과 국회를 능멸해온 우 전 수석은 영장실질심사에서도 모든 것을 박 대통령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혐의는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수색과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우 전 수석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이다. 묵인·방조 수준을 넘어 국정농단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한두 건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 ‘찍어내기’ 인사,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방해, 개인비리 의혹 등 그의 혐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우 전 수석 비리 규명은 특검 수사의 곁가지가 아닌 본류다. 황 대행은 특검 수사기간을 연장하고, 특검은 보강 수사로 구속영장을 재청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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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정국,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이 사회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자주 접하는 단어는 ‘여성혐오’ ‘표현의 자유’ ‘검열’ 등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오른 그림 ‘더러운 잠’이나 DJ DOC의 ‘수취인 분명’도 비슷한 논란 구조를 가졌다. ‘여성혐오 표현’이라는 문제제기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검열 아니냐?’는 반응이 그것이다. 이런 논란 구조와 논의 방식은 ‘표현의 자유’와 ‘성평등’이라는 가치가 마치 공존 불가능한 이항대립처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누구는 옳고 누구는 틀리다는 결론을 요구한다. 여성혐오라는 문제제기를 곧바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연결한다.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다. 여성들의 문제제기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려서 그른 것은 삭제해 버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여성들이 경계하는 것은 이분법이다. ‘여성혐오 없는 표현의 자유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우리 사회에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보다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경계하고 성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이다. 그러나 그동안 대통령의 성별을 강조한 적은 없다. 하여 성별은 눈에 보이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유독 ‘여성’이 부각된다. ‘역시 여자는 안돼, 이제 100년 동안 여자 대통령은 못 나와’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놀랍게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4대강으로 온 나라를 말아먹었을 때는 ‘역시 남자는 안돼’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농담으로라도 절대로.

최근 여성혐오라는 비판이 자주 출현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맥락 때문이다. 권력자의 무능과 부패의 문제가 너무 쉽게 여성의 문제로 치환된다. 차별적인 편견이나 그릇된 통념에 기댄 비판은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권력을 사유화하고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비판하고 해결해야 할 민주주의 문제다. 그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안에 스며 있는 성차별을 성찰하면서 탄핵 이후 우리가 만들어갈 민주주의 국가의 변화된 그림을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러운 잠’ 작가도 여성비하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나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왜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여성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그것도 창녀로 상징해서’라는 의문은 든다. 동시에 의구심을 갖는다. 새누리당에서 표창원 의원에 대한 징계와 사퇴를 요구하며 대응한 방식과 결국은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두 가지는 가부장적인 편견이라는 같은 맥락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여성을 벗기고, 남성은 아내와 딸인 여성을 벗기는. 그래서 나는 작가가 비판에 대해 불편해하거나 이분법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이 문제를 조금 더 성찰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성별,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 개인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모두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는 표현의 자유와 함께 헌법적 가치다. 둘은 공존해야 할 가치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하면서도 다른 이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 우에노 지즈코의 말처럼 ‘젠더질서 속에서 성장하는 이들 가운데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늘 경계하고 성찰해야 한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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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말과 설 연휴까지 반납하며 최선을 다해왔지만 실체 규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수사는 손도 못 댔다. 게이트 주범 격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 수사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이기도 한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관제 데모’ 의혹 역시 청와대가 재벌의 돈을 뜯어 극우·보수단체에 지원했다는 큰 그림만 나왔을 뿐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야 할 것이 많다. 특검 수사 와중에도 최씨의 미얀마 대사 인사개입 등 새로운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포스코 등에 최씨가 인사 민원을 넣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2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주지하다시피 모든 의혹의 정점에 박 대통령이 있다. 그러나 탄핵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입으로 약속했던 특검 조사마저 거부하고, 청와대는 특검이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막고 있다. 오죽했으면 특검이 법원에 압수수색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행정소송을 냈겠는가. 소송 결과가 특검에 유리하게 나와도 청와대가 특검 수사진의 청와대 경내 진입을 무력으로 막는 등 막무가내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특검의 1차 수사기간이 오는 28일 만료되므로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속셈이다. 박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재벌들도 특검 수사가 조기에 마무리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특검법에는 특검 수사기간을 30일 연장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결정권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쥐고 있다. 검사 출신인 황 대행은 수사기간 연장의 필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특검 수사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황 대행은 지난주 대정부질문에서 특검 수사기간 연장 문제와 관련해 “지금 단계에서 연장을 검토할 상황은 아니다. 특검팀이 수사기간 연장을 요청한다면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답변했다. 그렇잖아도 황 대행은 국정농단을 방조한 공범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수사기간 연장 거부는 황 대행 스스로 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황 대행이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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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적 양심을 걸고 이번 경제성 분석 결과를 확신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경인운하 사업에 대해 비용 대비 편익(B/C) 분석이 기준점인 1을 넘는다고 설명하던 한 국책기관의 연구원이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같은 분석에서 1을 밑돌던 사업이 단번에 경제성 있는 사업으로 둔갑했다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 끝에 나온 답이었다. 한반도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MB 정부 출범에 토건관료들은 경인운하를 다시 들고 나왔고, 사업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국책연구기관들을 압박했다. 이전에도 정부는 B/C 결과가 1에 못미치자, 평가항목을 수정해 재분석을 요구했고, 그래도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용역비 지급을 미루기까지 했다. ‘학자적 양심’과 불도저 같은 정부의 밀어붙이기에 2조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그 결과는 4대강 사업의 ‘녹조라떼’만큼이나 허탈한 상황이다.

정부가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는 이유는 객관적 입장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신뢰 때문이다. 일반 시민의 의사 결정에도 전문가의 의견은 필수적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제적 측면에서 시민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음으로써 정보취득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앤서니 다운스는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에서 “합리적 시민들은 전문가의 의견에 필적한 만한 의견을 스스로 생산할 때 드는 비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전문가의 일반적 의견을 구매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적 갈등 속에서 전문가 의견마저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어떻고,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어떻다라는 백악관 안팎의 경제학자들에게 “외팔이(one-handed) 경제학자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비꼬기도 했다지만 지금 우리 상황은 반대다. 너무나 완고해서 논리를 통한 설득보다는 상대방 의견을 ‘순진한 생각’, ‘얼치기 수준’으로 무시하기 일쑤다.

더 씁쓸한 것은 전문가로서 쌓은 명성과 지식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쓰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하는 주요 인사들이 그렇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를 지내다 2005년부터 박근혜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해외출장을 가도 대통령 전용기만 타고 다녀서 면세점 갈 시간이 없다”며 명품가방을 요구했다는 소식에 쓴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미르재단과 보수단체에 필요한 돈을 수금하는 데 앞장섰던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역시 완고한 시장우선주의자였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전경련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학자 출신이다. 대통령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얘기하던 달변가이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누구보다 반(反)시장적이었고, 권력을 좇는 ‘예스맨’에 불과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역시 교수 출신이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이들은 ‘영혼 없는 공무원들’과 함께 헌법을 유린했다. 정유라 부정 입학과 학사 특혜 혐의 등으로 남궁곤·류철균 등 이화여대 교수들도 구속됐다.

시민이 전문가의 의견에 의지하다가는 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관계처럼 ‘대리인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고 신영복 선생은 지식인에 대해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라며 떨림이 없이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나침반이 아니라고 했다. ‘조기 대선’ 분위기에 전문가들이 캠프에 몰려들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신념과 그 신념을 펼치기 위한 자리 구하기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떨림’이어야 할 것이다.

산업부 |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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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이 다시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정권의 입맛에 따라 진실이 왜곡되고 은폐돼 심지어는 북한군 투입설까지 공공연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1980년 5월의 진실이 하나둘씩 미국의 비밀문서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시민들을 향한 헬리콥터에서의 기총소사가 사실로 밝혀졌다.

1980년 5월에서 1987년 6월항쟁으로, 그리고 비록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험하게 된 역사도 5월의 희생 위에서 맺어진 열매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극도로 어수선한 시국에서 5월의 민주주의와 역사성을 키우고 발전시켜야 할 5·18기념재단이 정작 5월의 가치를 훼손하고 ‘민주·평화 도시’라는 자부심을 갖고 사는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5·18기념재단을 둘러싼 문제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그동안 곪아오던 고질적인 내부 문제들이 터져서 오늘날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시민단체들이 이미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재단은 오래전부터 내부 감사보고서에서조차 연고주의와 가족주의, 낡은 타성과 관행을 수차례 지적받아 왔다. 재단의 공식 기구가 이 같은 비판을 반복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직원을 회유하거나 협박해 재단의 비리를 감추려는 시도를 해왔다. 심지어 광주시의 감사가 진행되는 순간에도 5·18기념재단은 전혀 반성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의 5·18기념재단은 스스로 자정할 능력마저도 없는 것 같아 답답하고 참담한 심정이다. ‘5월은 명예가 아니라 멍에이고, 이권이 아니라 채무이자 희생이고 봉사’라는 1994년 창립선언문이 무색할 정도이다.

시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나란하게 서겠다는 다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성금으로 창립하고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5·18기념재단은 소수의 인사들에 의해 사유화되는 바람에 시대의 아픔과 만나는 광장이 되지 못하고, 깨어 있는 시민들의 든든한 동지가 되지 못한 채 고립돼 있다. 스스로 특권의 밀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재단은 특정인을 채용하기 위해 내부 규정까지 바꾼 것으로 드러났고, 기증물품과 관련한 각종 비리 의혹도 불거졌다. 그런가 하면 재단에 파견된 공무원의 수당 부당 지급, 부당노동행위와 노동탄압 등으로 얼룩졌다. 여러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진 바 있지만 5·18기념재단이 안고 있는 문제를 모두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이렇듯 재단이 무력하고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원인은 재단 이사 구성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특정 단체가 추천하는 이사가 과다하게 선임되고, 그로 인해 이사회가 민주적인 논의가 불가능한 구조로 돼 버린 것이 오늘날 5·18기념재단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행해야 할 것은 기득권과 특권 지키기에만 집착하는 이사회의 개편과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는 시스템의 확립이다. 고인 물은 썩고 부패하기 마련이다. 조직이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견제와 비판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시민사회에 과감하게 조직을 개방하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그동안 5월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제기된 ‘그들만의 5월’ ‘기득권화된 5월’이라는 비아냥과 냉혹한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뼈를 깎는 각성과 고민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5·18기념재단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재단이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재단 측이 무슨 대안을 내놓든 시민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단언컨대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제기한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책임지고 풀어가는 모습을 통해 쇄신하지 않으면 5·18기념재단의 미래는 없다.

정영일 |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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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와 특검 수사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드러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는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애먼 시민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다. 설인 지난 28일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박사모’ 회원 조모씨가 투신해 사망했다. 조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사용하는 손태극기 2개를 든 채 몸을 던졌고, 태극기에는 ‘탄핵가결 헌재무효’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은 “박사모 활동 때문에 가족과 불화가 있었다. 유족을 상대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7일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서는 한 스님이 박 대통령 체포 등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두 사람의 극단적 선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지만,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죽음은 박 대통령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고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조씨의 투신에는 설 직전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올린 거대한 산”이라며 허위 내용으로 극우 언론인과 인터뷰한 것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박사모의 탄핵 반대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대통령직 유지를 국가 수호와 연계하는 극단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인 시민을 연결하는 매개체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 박근혜 정부가 중도에 해체되더라도 주권자가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세우면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박 대통령이 궤변으로 혹세무민하며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나라는 더욱 엉망이 되고 있다. 시민들의 피로감과 스트레스도 임계치에 이르렀다. 설 연휴 모처럼 일가 친척이 모인 자리의 대화 주제도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와 나라 걱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최씨는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 특검과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수구 보수층을 내세워 재기를 모색해보려는 꼼수에 시민들은 억장이 무너진다.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 등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고, 헌재는 탄핵 결정을 앞당겨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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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비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은 기본이고,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서 특정 기관을 탈락시킨 정황까지 나왔다.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대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형사처벌까지 받았지만 국정원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국정원, 시민 아닌 정권에 봉사하는 국정원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적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일탈 행태 시정 필요’ 문건에는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문화재단들이 좌편향을 보이고 있으므로 감사 등을 거쳐 보조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작가회의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정권에 비판적인 단체를 탈락시키기 위해 최종 심사까지 마친 ‘현장 예술인 교육 지원 사업’을 갑작스럽게 폐지하는 과정에도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정보 수집 차원을 넘어 정부 부처의 예산 집행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으로 매우 심각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10일 (출처: 경향신문DB)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목할 만한 작가상’ 선정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 선임 과정에도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폭로가 있다. 문화예술인 이름 뒤에 알파벳 K나 B가 적혀 있는 새로운 블랙리스트도 발견됐다. 지난해 초 작성된 이 블랙리스트에서 K는 국정원, B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선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특검은 문화체육관광부 압수수색을 통해 국정원과 문체부 직원들이 “진보성향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은 국정원의 불법과 일탈이 드러난 이상 좌고우면할 필요없다. 특검법은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검은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 등 전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원은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막대한 인력과 예산 지원을 받고 있지만 국가안보를 명목으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정권에 악용될 우려가 있어 무엇보다 중립이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시민들이 감시하고 통제할 방법이 전무하다. 특검 수사가 국정원의 게이트 개입 의혹을 규명하고 관련자와 책임자를 처벌해 국정원 개혁과 인적 청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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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국정원 정보관들이 문화체육관광부 직원들과 e메일 및 휴대전화를 이용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단서가 포착됐다. e메일에는 “진보성향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특검팀은 국정원 직원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와 관련해 국민연금의 내부 동향을 파악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보고한 단서도 확보했다. 정권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연루되지 않은 적이 없는 국정원이 여전히 불법 정치 개입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 사례는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이명박 정권 이후만 해도 민간인 사찰 의혹과 대선 개입 여론조작,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국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인 대북정보 수집에서는 허점을 드러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 포착하지 못하거나 멀쩡하게 살아 있는 북한 고위 인사가 사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간첩조작 사건 등 인권 침해 행각도 잇따랐다.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어려운 지경이다.

국정원은 일탈 행태가 드러날 때마다 개혁을 내세웠지만 시늉만 냈을 뿐이다. 민간인 사찰 때는 정치중립 선언문을 제출하고,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때는 이른바 ‘셀프 개혁’을 했지만 탈정치, 탈권력화라는 개혁 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해에는 테러방지법 제정으로 개혁 1순위 기관이 개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몸집만 불린 공룡이 되었다. 그렇다고 국정원 내부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준 적이 없다.

국정의 정상화를 위해 국정원 개혁은 필수적이다. 촛불의 힘이 작동하는 지금이 국정원을 실질적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검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게이트 개입 행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겠지만 이와 별개로 근본적인 개혁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기존 제도를 인정하고 몇몇 통제장치를 만드는 정도로는 근본대책이 될 수 없다. 우선 정치 개입의 제도적 통로를 막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정원 정보관의 기관 출입 금지가 선행 조건이다. 또한 정보기관으로서 필요한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손을 떼도록 하고, 이에 맞춰 조직과 인력, 예산과 권한을 축소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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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검찰의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권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한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비리에 눈감아 오늘의 대혼란 사태를 야기했다. 김기춘·우병우 같은 검사 출신 인사들은 갖은 공작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홍만표·진경준 같은 전·현직 검사장은 공익의 대표자와 사회의 거악이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시민이 꿈꾸는 세상과 검찰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자명해졌다. 시민의 감시에서 벗어난 검찰,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부패한 폭압기구에 불과하다.

한국 검찰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2200여명의 검사와 7000여명의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찰은 그 자체로 직접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는 거대 권력이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도 지휘한다. 경찰이 형사 사건의 97%가량을 처리하지만 수사 주체는 엄연히 검찰이다. 경찰 단독으로는 압수수색 영장조차 발부받을 수 없고 경찰 조서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도 없다. 검찰은 기소도 독점하고 있다. 검찰이 봐주기로 작정하고 재판에 넘기지 않으면 아무리 나쁜 사람도 죄를 물을 수 없다. 검찰이 저지른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기관도 사실상 검찰밖에 없다.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검찰은 자체 비리에 둔감할 뿐 아니라 제 식구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검찰청 조사실에서 점퍼 지퍼를 반쯤 내린 채 팔짱을 끼고 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4일 (출처: 경향신문DB)

한국 사법시스템의 원조격인 독일은 검찰에 자체 수사 인력이 없다. 검찰에 기소·불기소의 재량도 주지 않는다.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 일본은 경찰이 체포·압수수색 영장 등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시민들이 심사하는 제도도 있다. 무작위로 뽑은 시민 11명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지방 법원마다 설치돼 검찰을 견제한다. 미국에서는 범죄 수사를 원칙적으로 경찰이 담당하고, 검사장을 시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 영국은 중대 경제 범죄가 아닌 이상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 않고 기소와 공소유지만 담당한다.

이들 나라에 비하면 한국 검찰의 권력은 가공할 수준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검찰을 두려워하지만 검찰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검찰에 부여된 막강한 힘은 정의의 편에서 공익을 수호하라는 취지지만 검찰은 강자의 이익을 위해 썼다. 부정한 정권일수록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검찰총장으로 세우고 민정수석을 리모컨으로 활용한다. 곽상도·홍경식·김영한·우병우·최재경을 거쳐 지금의 조대환까지 현 정권의 민정수석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청와대와 각 정부 부처는 매년 수십명의 검사를 파견받고 있다. 검찰은 정권과 거래하며 전리품을 챙긴다. 입법·사법·행정부의 주요 권력기관은 검찰의 재취업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직 공안 검사인 황교안과 박한철은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장으로 옮겼고, 국회는 검사 출신 의원들로 넘쳐난다. 검찰 공화국, 검찰 파쇼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정권과 한 몸이 된 검찰이 한 일은 시민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이번 게이트는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검찰은 부실·편파 수사를 했고 결국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일을 키웠다. 2년 전 정윤회씨가 청와대 핵심 인사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 정보를 교류했다는 청와대 문건이 공개됐을 때 검찰은 문건의 유출 과정만 문제 삼았다. 우병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비리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겨냥하는, 본말 전도로 일관했다. 최순실씨 관련 비리는 지난해 7월 언론에 최초 보도가 났지만 압수수색은 3개월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특검 출범이 기정사실화하자 검찰은 뒤늦게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하고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시민 통제에서 벗어난 검찰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취약하다는 증거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한 것도 무소불위의 검찰이 대통령 권력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권의 축소와 분산, 검찰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수사를 담당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한다. 공수처가 검찰의 의도적인 수사 기피와 검찰 부패를 막는 대증적 처방이라면, 검찰권 남용을 막는 근본 대책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가칭 수사청과 기소청을 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미국처럼 주민이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직접 선출하자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정권으로부터 검찰을 독립시키고 중앙집권적인 검찰 권한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법무부에 대한 시민 통제도 필요하다. 검사 출신이 아닌 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법무부 주요 보직을 전문 행정관료로 대체하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직적인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다만 수사권 조정 등의 문제는 검경 간의 권한 배분이 아닌, 인권 신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경찰의 인권 의식이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검찰에 더 이상 ‘셀프 개혁’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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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1일 유명 영화감독과 배우의 스캔들이 한 매체 보도로 불거졌을 때, 그날 하루 네이버에 오른 관련 기사는 403건이다. 경향신문은 지면에도 온라인에도 내보내지 않았다. 나와 편집자는 온라인에 ‘무엇을 쓸 것인가’ 못지않게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사안을 두고 의견을 나누다  “쓰지 맙시다” 할 때가 많다.

대량생산체제의 한국 온라인 뉴스시장에서 ‘우라까이’(베껴쓰기를 가리키는 일본어로 언론계 속어)든 ‘인용보도’든 수분이면 뚝딱 만들어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뷰를 보장하는 뉴스거리를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양적인 트래픽을 유지·상승시키는 것도 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정론을 표방하고, 독자들은 그 실천을 주문한다. 트래픽과 저널리즘의 동시 수행이라는 언뜻 불가능한 과제를 마주한 채 고민할 때가 많다.

경향신문 현장 기자들이 모든 온라인 이슈를 거르기는 힘들다. 온라인에서 불붙는 타지의 단독보도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슈를 받을지를 판단하는 건 모바일팀 일이다. 신뢰할 만한 언론사 또는 사람(단체)인가, 단독보도나 주장에 물적 증거가 있는가를 들여다본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쓸지 말지를 판단하는 것보다 까다롭다.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어떤 소문·의심·비난·주장·추정을 담은 것이라도 기득권을 비판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정의를 구현하는 (듯한) 내용을 두고서다. ‘○○신문·방송이 보도했다’로 내보내곤 했다. 일하면서 찜찜한 부분이었다.

온라인 저널리즘 문제와 대안을 물었을 때, 박재영 고려대 교수가 우려한 부분도 이것이다. “검증하지 않은 센세이셔널한 정보가, 검증한 밋밋한 정보를 몰아내는 경향성이 온라인에서 더 강하게 나타날 겁니다.” 그는 조기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은 올해 미확인 정보가 전례 없이 온라인을 휘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국 언론의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 JTBC와 TV조선 등 여러 언론사의 실증 탐사보도는 언론사의 개가였다고 박 교수는 평가한다. 그러나 언론 전반으로 확대해보면, 과가 공을 앞질렀다. 다른 언론사의 단독보도, 유명인의 SNS 발언을 두고 사실 확인과 검증 없이 받아쓰는 ‘카더라’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가 ‘디지털뉴스팀’ ‘온라인뉴스팀’ 이름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정보 불충분, 이해집단의 대결구도화, 마구잡이 비판은 각각 오해, 갈등, 냉소를 부추기며 언론을 증오와 독설의 배설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정통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김세은 강원대 교수는 온라인 팀·기자의 과제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유혹에서 벗어나라.” 품은 적게 들이면서 트래픽은 많이 뽑을 수 있는 기삿거리에 매달려선 안된다는 말이다. 현장 기자들이 공들여 취재한 기사를 전면에 배치해 승부수를 띄우는 게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검증·확인의 저널리즘을 수호할지는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다. 김세은·박재영 두 학자도 참여한 <한국 언론의 품격> 책 머리말엔 “신뢰할 수 있는 뉴스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비틀거린다”는 월터 리프먼(1889~1974)의 말이 적혀 있다. 지난 미 대선 때 페이스북에 트럼프 관련 가짜 기사를 써온 폴 호너라는 사람은 대선이 끝난 뒤 가짜 기사가 널리 퍼진 이유를 두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사실 확인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널리즘의 수행은 언론 몫이자 책임이지만 시민 역할도 중요하다. 다행히 한국엔 언론 비판에 적극적인 시민들이 많다. 언론의 자정 능력은 약하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여러 언론사의 자성은 시민들의 질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대선에서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사실보도 기준을 갖고 언론을 감시·독려해야 할 이유도 여기 있다.

모바일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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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간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그의 집무실과 자택이 압수수색당했다. 특검이 곧 그를 소환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요지부동이다. 2014년 청와대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리스트를 만든 혐의로 특검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지만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조 장관의 블랙리스트 작성 참여 사실은 복수의 전직 문체부 고위간부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조 장관이 정무수석으로 재직할 때 정무수석실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김소영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을 거쳐 문체부로 내려보냈다고 증언했다. 리스트를 본 적조차 없다는 조 장관의 변명은 말이 안된다. 특별검사도 조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으며, 본 적도 없다”고 한 것은 위증이라면서 특검에 고발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리스트를 함께 만든 사실은 특검이 문체부 실무자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에서도 확인했다고 한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8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적용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문,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박근혜 정부의 4대 국정지표 중 하나가 문화융성임을 감안하면 정권의 자기기만이다. 다른 사람이 한다고 해도 막아야 할 일을 해놓고 문체부 장관 자리에 계속 앉아 있는 것은 공직의 엄중함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 차례 장관을 할 정도로 승승장구한 배경에도 이런 불법행위가 작용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문체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부처다. 최순실씨 딸 정유라에 대한 특혜지원과 미르·K스포츠 재단 편법 설립 등이 다 문체부를 통해 이뤄졌다. 관계자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려면 장관이 그대로 있으면 안된다. 더구나 조 장관은 수사가 시작될 즈음 집무실과 해당 부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갈아치워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있다. 지금도 매일 출근하면서 어떤 증거들을 인멸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조 장관의 존재는 공무원들이 사실대로 진술하는 데도 방해가 된다. 핵심 역할을 한 직원이 장기간 휴가를 가는 사례도 있었다.

엊그제 임명된 송수근 제1차관도 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돼 있다. 현직 장차관이 동시에 사법처리되는 초유의 사태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지경이면 조 장관은 단순히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조 장관은 즉각 사퇴한 뒤 특검에 출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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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그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위 위원들과의 접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 발표 자료를 보내주면 최순실씨가 밑줄을 치면서 수정했다”고 말했다. 인사 발표 내용에 대해서도 “(최씨의) 수정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2015년에도 (자료를) 조금 전달한 게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 열람했다는 내용이 JTBC에 보도된 다음날인 10월25일 1차 대국민담화에서 “(최씨는)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에 의하면 연설문 외에 인사 자료까지 최씨에게 건네졌고, 취임 3년차인 지난해까지도 이런 자료 유출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차 대국민담화부터 박 대통령은 거짓으로 위기를 모면해볼 생각이었던 셈이다.

청와대 문건유출 등 혐의로 구속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20일 새벽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국정농단' 의혹을 수사해 온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11월 20일 기소한다. 연합뉴스

지난달 4일 발표한 2차 대국민담화도 거짓이었다. 박 대통령은 “어느 누구라도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져야 하고, 저 역시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했지만 정작 검찰이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 대면조사 등을 요구하자 수사 자체를 거부했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 당일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았으면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피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했다”고 답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실 박 대통령의 거짓말은 이전부터 일관됐다. 지난 9월 언론과 야당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관한 의혹을 쏟아내자 박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는 폭로성 발언”이라고 했다. 이제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참담한 것은 대통령의 거짓말이 놀랍지 않고 시민들도 대통령의 거짓말에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로 나라가 엉망이 됐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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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가 일단락됐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핵심 증인인 최순실씨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은 공개된 청문회장에 끝내 나서지 않는 등 시민 우롱으로 일관했다. 어제 국정조사특위는 19년 만에 구치소 현장 청문회를 했다. 최씨는 청문회장까지 나오기를 거부했고, 의원들은 수감동을 찾아가 비공개 신문을 했다. 검찰 출두 당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울던 최씨는 이날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속 짜증을 냈다고 의원들은 전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아느냐”는 질의에 최씨는 “모른다”고 잡아뗐고,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에서 “나는 그런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 정유라씨 부정입학 의혹에는 “딸은 이화여대에 정당하게 들어갔다”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과의 통화 여부를 묻자 최씨는 “어제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기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백번 양보해 피의자의 방어권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답변 내용과 태도는 기가 찰 일이다. 최씨는 사익을 꾀하려고 정부와 청와대를 주물렀다가 국정 마비 상태로까지 몰고 온 장본인이다.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 도깨비가 박 대통령을 홀려 일을 했다는 건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앞줄 왼쪽)과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오른쪽)이 26일 수감 중인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가 개최한 현장 청문회에서 여야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남부구치소 제공

이번 국정조사에서도 고질이 재발한 점은 아쉽다. 의원들은 의혹을 재탕, 중복 질문을 했다. 특히 새누리당 이완영·이만희 의원은 위증 교사 의혹을 불렀다. 이는 국정조사제도의 근간을 흔들 중차대한 문제로, 수사를 통해서라도 규명돼야 한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있었다. 정·관·재계가 어떻게 최씨와 얽혀 이익을 주고받았는지, 그 민낯이 생중계됐다. 누리꾼의 실시간 제보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등 시민참여형 청문회 가능성도 보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증인·참고인 출석 거부와 모르쇠 답변, 위증 등을 막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 증언·감정법과 형법상 ‘국회 회의장 모욕죄’ 형량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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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이라곤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말이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앉혔던 1차 청문회는 가관이었다. 신념이나 명예를 지키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자들. 증인으로 출석한 자들은 ‘불법’보다는 기꺼이 ‘무능’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비록 사회적 선(善)이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이나 철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는 고상함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정기준(윤제문 분)’을 떠올려보라. 그에게는 ‘악당의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증인석에 앉은 자들 중에 그 정도의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는 모르오, 나는 무능하오, 나는 꼭두각시였소”를 읊조렸을 뿐이다.

나는 이 처절한 무능의 스펙터클 앞에서 기괴함을 느꼈다. 자유주의와 만난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는 기회의 균등과 능력 본위를 기반으로 한 합리성이다. 이 시대에 무능은 도태의 원인으로 여겨졌고, 무엇보다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발버둥 친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의 무능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그 큰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사진 오른쪽부터)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수치심은 사회적인 맥락과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립하는 매우 문화적인 감정이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는 공동체가 지정해주며, 타인의 시선은 우리에게 그 기준을 내면화하게 한다.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재벌 총수들이 무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우리와 사회적 약속의 장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법이 작동하는 장에서 살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를 규율하고 있는 이 세계의 가치는 저들에게 아무런 행동의 지침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의 전시된 무능과 뻔뻔함은 상징적이다. 평등, 능력 본위, 합리성 등을 내세우며 세계에 등장한 자본주의가 처절하게 실패하여 완전한 판타지로 휘발되었다는 것을 ‘한국 자본주의의 리더’인 그들이 몸소 보여주었다. 대물림되는 무소불위의 계급이 상존하는데 ‘개, 돼지들의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법망의 공백 안에 몸을 숨겨 어떻게든 당장의 곤란함을 피해가면 그만이다. 이 하루만 잘 버티면 영원과도 같은 부와 권력이 그들 앞에 있다.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이나 명예 따위, 중요할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역설적으로 스스로 ‘개, 돼지’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들의 무능을 손가락질하면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를 공고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기꺼이 무능함을 선택한 자들이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종류의 ‘스펙’과 자기계발의 신화를 강요하는 각자도생의 담론을 생산하고 있음을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능이 오히려 위세가 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예컨대 이재용 부회장의 얼굴에 때때로 떠오르던 ‘교활한 썩소’는 바로 이런 이율배반이 흘러나오는 틈새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우리를 구속하는 ‘유능함’이라는 주술로부터 벗어나되, 그들에게는 무능을 가장한 부정(不正/否定)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봉건적인 계급제가 근대적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부활한 현장을 보고 있다. 정유라가 ‘부모의 돈도 실력’이라고 말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실력’이라는 말을 봉건적 언어로 왜곡했다. 이는 그들만의 문법이다. 우리는 그들의 문법이 우리의 문법을 침해해 오염시키는 것을 용인해선 안된다.

수치심은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에서 벗어난 소수자들을 억압하고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시선을 자기 내부로 돌리고 성찰의 기회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하는 문명의 감정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 한다.

수오지심은 모멸감과는 또 다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그의 아내가 청문회 후 드러냈다는 감정은 모멸감이었다. 모멸감은 억울함과 분노, 짜증 등을 동반한다.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일생이 수치의 기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록 앞에서 모멸감을 느껴야 할 것은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이 모멸의 시대를 뒤집을 봉기의 시공간을 열었다. 이 혁명의 시공간이 그들에게 수오지심을 가르칠 수치심의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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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친박)계’ 행보가 목불인견이다. 국회 국정조사의 위증을 교사하고, 당이야 깨지든 말든 ‘비박계’ 찍어내기에만 힘을 쏟고 있다. 선거가 코앞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을 자행하는 이들의 행태는 불한당과 다를 바 없다.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인 이만희·이완영·최교일 의원이 위증을 교사했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이들은 지난 9일 이완영 의원실에서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따지기는커녕 방해하려 한 것이다. 이들은 주요 증인인 고영태씨 발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절도범으로 몰려고 했다. 일반 재판에서도 중대 범죄인 위증을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도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은 어제 의원총회에서 해명 기회만 제공했다.

최순실 태블랫PC 관련 위증 논란 진상규명을 위한 국조특위 긴급 전체회의가 열린 19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친박계는 또 비박계가 유승민 의원을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하자 사실상 거부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유승민 의원이 비대위원장이 되면)당의 내분과 내홍이 심해져 심지어 풍비박산과 분당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총회에서 친박계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지 않고 당을 수습하는 대통합 비대위원장’을 첫번째 조건으로 내세워 유승민 의원을 거부할 명분을 마련했다. 더 가관인 것은 친박계의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공식 해체다. 불과 일주일 전 친박계는 “당을 구하겠다. 새로운 보수를 만들겠다”면서 모임을 꾸몄다. 그간 혁신과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자신들이 알 것이다. 변한 게 있다면 친박계 원내대표가 뽑혔다는 점이다. 결국 모임은 원내대표 자리를 비박계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표 단속용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여당 주도 세력의 처신이 이렇게 경망스럽다.

총선이 내년 4월 치러진다면 친박계가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아마 명망있는 비대위원장 모시기, 당 쇄신, 보수 통합, 대통령과 선 긋기, 비리·물의 인사 축출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친박계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도로 친박당’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친박계에 남은 것은 단 하나, 유권자 심판이다. 3년 뒤 이들이 당을 쇄신하고 보수를 통합한다고 북새통을 떨어도 유권자들은 4년마다 되풀이되는 ‘신장개업 쇼’로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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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