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세력들이 전면적인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최순실씨는 그제 열린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8가지는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것인데 공모 사실 자체가 없으니 무죄라는 논리도 폈다. “죽을죄를 졌으니 용서해 달라”며 검찰청에 들어서면서 머리를 조아리던 게 불과 50일 전 일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에서 ‘헌법·법률 위반은 모두 사실이 아니고, 최순실의 비리를 전혀 몰랐다’며 국회가 제시한 13가지 탄핵 사유를 모두 부인했다. 몇 차례 반성하는 대국민사과를 일방적으로 하고 눈물도 흘리는 듯하더니 이제 와서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는 식이다. 갖은 비리에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두 사람은 기억상실증도 동시에 걸리는 모양이다. 최소한의 양심마저 내팽개친 이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2월 21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의 헌재 답변서와 최씨의 재판 발언,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 친박계와 최씨 측근의 국정조사 말 맞추기 의혹 등을 종합하면 모든 것이 치밀한 각본에 따라 이뤄졌다는 의심이 든다. 박 대통령은 헌재 답변서에서 최씨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의 1심 재판 완료 후에 헌재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끌고, 이를 이용해 헌재의 탄핵 결정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국정혼란이 길어지든 말든 자신의 몸을 건사해 반전의 기회를 엿보겠다는 심산이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서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있던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시민들에게 퍼뜨리려 한 것도 작전의 일종이다. 최씨는 이 태블릿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재판부에 검증을 요청했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최씨 소유가 아니라고 해도 비선에 국민주권이 훼손되고 국정이 유린된 이 사건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본심이 확인된 만큼 박영수특검팀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특검팀은 20일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오늘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 등에 수사력을 집중하면서도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같은 이들의 비리도 밝혀야 한다. 범죄 소굴이나 마찬가지인 청와대 압수수색을 실수 없이 마쳐야 함은 물론이다. 헌법재판소는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 절차를 진행해 탄핵 결정을 늦추려는 국정농단 세력에 경종을 울려줘야 한다. 법원도 매일 재판을 연다는 각오로 국정혼란의 조기 수습을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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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인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 두 명이 최순실씨 측근과 질문·응답을 공모한 정황이 드러났다. 대통령 연설문 등이 들어 있던 태블릿PC가 최씨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주기 위한 것으로 청문회에서 실제 각본대로 이뤄졌다. 게이트 내부 고발자인 고영태씨는 지난 13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이 새누리당의 한 의원과 사전에 입을 맞추고 4차 청문회에서 위증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의 의원이 ‘최순실씨와 일하며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박 전 과장이 ‘최순실이 아니라 고영태가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 한번은 고영태가 태블릿PC 충전기를 구해 오라고도 했다’고 답하는 스토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이만희 의원이 18일 오후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정론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조특위 청문회 증인과의 사전 위증모의 논란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다. 연합뉴스


15일 열린 청문회는 고씨의 예견이 적중했다. 이만희 의원이 “JTBC에서 공개한 태블릿PC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박 전 과장은 “고영태씨가 갖고 다니면서 충전기를 사오라고 시켰다”고 답했다. 모의가 사실이라면 경악할 일이다. 게이트 부역 세력이 국정조사마저 조작하고 방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완영 의원이 정동춘 전 K스포츠재단 이사장을 만나 태블릿PC 관련 답변을 협의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노승일 K스포츠재단 과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완영 의원이 태블릿PC는 고영태의 것으로 보이도록 하자며 정동춘 이사장에게 제의했고, 정 이사장이 이를 박헌영 과장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던 셈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두 의원이 특위에서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위 사퇴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의 조사를 통해 출당 등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한다. 국회는 두 명을 윤리위원회에 회부, 제명 등 중징계하는 것은 물론 국정조사 방해 행위로 특검에 고발해야 한다. 시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는 자가 의원 행세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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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넘실대는 거대한 저항행동을 일단 ‘2016 촛불대항쟁’이라고 불러본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한국을 경이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 한 것이 촛불대항쟁이었다. 바로 이 촛불시민이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주판알을 굴리던 국회를 내몰아 마침내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게 했다. 촛불의 힘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우라는 촛불의 염원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16 촛불대항쟁은 이미 그 자체로 정치사적 의미가 되기에 충분하다. 외환위기 이후 점점 더 고단해진 시민의 삶은 민주주의를 아득히 잊어버린 듯했고 위임권력은 권력자들만의 것이 되었다. 이 황폐한 정치의 시대에 놀랍게도 2016 촛불대항쟁은 국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진화된 형태로 귀환시켰다. 그것도 세계적으로 진화를 멈춘 대의 민주주의의 출구를 열었다. 촛불대항쟁은 21세기 민주주의를 진화시킨 지구적 사건이 될 만했다. 그 특징을 몇 가지 들여다보자.

 

첫 번째, 촛불대항쟁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확장했다. 대규모 군중행동은 대개 불법적이고 비제도적 행동을 수반한다. 그러나 촛불대항쟁은 230만명의 군중이 완전한 자발성으로, 그리고 완전히 합법적인 방식으로 제도화된 저항행동을 보여줌으로써 가장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나타냈다. 단 한 건의 체포나 연행 없이 자율적 군중의 민주적 활동반경을 넓힌 셈이며 대의적 영역을 넘어 직접참여의 민주주의를 확장한 효과를 얻었다. 두 번째, 거의 매일 그리고 매주말 열리는 거대 집회는 생활민주주의의 현장이 되었다. 생활민주주의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 참여적 정치양식이 결합된 질서를 말한다. 말하자면 개인의 삶을 공공적 쟁점으로 구성된 정치양식과 결합하는 생활공공성의 질서다. 2016 촛불대항쟁은 불법 없는 시민행동이라는 점에서 이제 확장된 정치제도요, 정치양식이 되었다. 적어도 촛불시민들은 대통령의 퇴진과 새로운 질서라는 공적 쟁점을 추구하고자 자신의 일상적 시간을 정치와 결합시키고 있다. 촛불대항쟁은 생활시민이 생활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공적 정치양식이 되었다.

 

제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보이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 번째, 촛불대항쟁은 자아실현의 민주주의이자 자기표현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다. 이 거대한 집회는 일원적 질서로 움직이지 않고 거대투쟁조직이 일원적으로 시민을 동원해내는 구조도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표현해내고 있다. 매주 새롭게 등장하는 깃발과 구호에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자기표현의 민주주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얼룩말연구회, 한국고산지발기부전연구회, 독거총각결혼추진회, 노처녀연대, 행성연합 지구본부 한국지부, 장수풍뎅이연구회, 아이돌 팬의 깃발 등 대단히 다양하고 흥미롭다. 네 번째, 촛불대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성을 반영한다. 2016 촛불대항쟁은 역사적인 시민항쟁의 누적된 학습효과를 갖는다. 1960년 4월의 민주주의와 1987년 6월의 민주주의가 모두 미완에 그쳤다. 시민의 힘으로 항쟁을 만들었으나 제도정치권이 받아내지 못했다. 2016년 촛불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우리 시민혁명의 미완의 역사를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훨씬 더 차가운 이성으로, 훨씬 더 부릅뜬 눈으로 제도정치권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다섯 번째, 2016 촛불대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세대적 진화를 기대하게 한다.

 

현재까지 일곱 차례에 걸친 거대 집회에는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망라되어 있다. 심지어는 신혼부부들이 이 위대하고도 거룩한 역사의 현장에 함께하기 위해 유모차를 몰고 나온다. 또 아이들에게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자녀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말한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를 떠올리게 하는 감동적인 장면이다.

 

2016 촛불대항쟁은 이미 문명사적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는 위태로운 정치과제들이 남아 있다. 더 크고 맑고 차가운 촛불의 눈으로 정치권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고 외쳐야 한다. 완성된 시민혁명, 그것도 무혈의 명예혁명 한 번 해봤으면 더한 바람이 없겠다. 전국에서 출렁이는 촛불의 물결이 2016년 ‘촛불혁명’으로 기록되는 날을 그려본다.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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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를 두고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지난 9일 권한대행이 된 이후 그의 자세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고건 총리가 대통령 대행을 하던 모습과 확연히 달라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본분을 넘어 대통령 행세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그제 유일호 경제부총리 유임을 국회와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대표적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황 대행이) 대통령이 된 것처럼 (국회) 출석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흘리는데, 대통령 된 게 아니다”라고 꼬집은 것은 이에 대한 불만의 표시다. 어제 보수 일색의 학계·언론계 인사들과 오찬간담회를 하면서 참석자를 밝히지 않다가 뒤늦게야 마지못해 공개한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권한대행답지 않은 비밀주의에 ‘반쪽 소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황 대행이 개인적 성향에 따라 국정을 이끄는 것을 넘어 정치적 위상 강화 등 또 다른 일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황 권한대행에게 부여된 법적 지위와 그에 대한 시민의 요구는 오직 하나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비상시국에서 관리형 통치권자에 머물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권한대행은 국정의 틀을 새로 짜고, 방향을 정할 권한이 없다. 행정부 수반의 자리에 있지만 시민에 의해 직접 뽑힌 권력이 아니라서 권리에 한계가 있다. 오히려 유일한 대의기구인 국회의 의사를 물으며 국정을 관리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왼쪽에서 두 번째)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권한대행 자격으로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황 대행 체제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와 대외정책의 안정적 관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갈등을 유발했던 정책을 밀어붙이는 일은 절대 해서 안된다. 시민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통해 박 대통령 정책도 탄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 대행은 보수정권의 취지를 이어간다는 이름 아래 박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집행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국정교과서 도입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같은 논란이 큰 사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보다는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에 빠지지 않도록 다잡으며 일상적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정운영의 방법에서도 관리적 접근이 필요하다. 여소야대의 정치권과 소통하면서 협치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세균 국회의장 및 야당과의 의견 조율이 특히 긴요하다. 유 부총리 유임도 국회와 야당을 찾아 의사를 타진했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에 대한 의전을 요구하듯 국회 출석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국회에 나가 국정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혹여 야당과 대립하면서 보수의 대표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발상을 하고 있다면 애초에 버려야 한다. 어제 야 3당이 요구한 대로 정당 대표들과 만나 국정운영의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황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에 책임이 있다. 법무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직원들의 대선 댓글 개입을 제대로 수사하고 있는 검사들을 좌천시켰다. 이 과정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을 표적감찰로 압박해 물러나게 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을 비판한 기사를 쓴 일본 산케이신문 지국장에 대한 법적 처벌을 추진해 국제적인 비웃음거리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공안적 시각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독주를 뒷받침해온 주요 인물이었으니 촛불시민들로부터 퇴진을 요구받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황 대행은 총리 자리에 있으면서 박 대통령에게 민심을 전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여당으로부터도 질타를 받았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고 돌변해 논란이 있는 정책에까지 손을 댄다면 대행의 지위를 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수개월간 대선 정국이 펼쳐지면서 모든 현안이 분출할 것이다. 이럴 때 황 권한대행이 공정한 관리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황 대행은 박 대통령을 탄핵한 시민들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곧 국회의 의사를 받드는 것임을 인식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개인적 욕심은 금물이다.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도기에 국정을 떠맡은 황 대행이 자신의 문제로 새로운 갈등을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자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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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감정싸움이 위험수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급기야 “박지원 원내대표는 총리 사심이 있다” “문재인 전 대표 측에서 박지원 총리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박 원내대표가 거절했다”며 진실공방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는 13일 페이스북에 “문재인 전 대표 측 인사가 저의 지인을 통해 제가 총리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며 “한 칼에 딱 잘랐다”고 썼다. 촛불정국 와중에 민주당 문 전 대표 측이 총리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는 취지다. 문 전 대표 대변인 격인 김경수 의원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왼쪽)가 1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정국 수습 방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박 원내대표 주장은 문 전 대표 측근으로 알려진 노영민 전 의원의 당원 상대 강연 내용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노 전 의원은 지난 2일 충북지역 당원을 상대로 한 비공개 강연에서 “박지원 대표 본인이 꿈이 있다. 총리를 하고 싶어 하잖아”라며 “이 국면에서 그거 안 해주니까 저 난리를 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가 지난달 14일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비판한 것은 ‘총리 사심’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기 대선을 앞둔 두 야당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촛불혁명 성과를 사유화하려 이전투구를 벌이는 일이다. 촛불민심 꽁무니를 따라가기 급급했던 야당들이 마치 전리품이나 되는 양 총리 자리 문제를 입에 올리며 정쟁하는 건, 그 진위를 떠나 지켜보기 민망하다.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그런 흉물스러운 정부를 배태한 구체제 전체를 향해 타오르고 있다.

야당들도 구체제 일부임은 물론이다. 일신하지 않으면 함께 촛불민심에 쓸려내려 갈 수 있다.

정제혁 | 정치부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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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혁명은 체제(시스템)의 교체를 의미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아직 탄핵이 된 것도 아니고 박근혜·최순실을 만든 시스템도 여전히 그대로다. 그래서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너무 빠르다. 아직은 혁명이 아니다.

물론 탄핵소추가 성사된 것은 시민의 승리이다. 그러나 지금의 승리는 견고하지 못하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시스템의 교체는커녕 정권교체도 이루지 못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1987년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87년 6월 100만명이 거리에서 최루탄과 맞서서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외쳤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겠다는 6·29선언이 나온 후에 상황이 급반전했다.

여당과 야당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8인회의’라는 것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헌법개정안을 만들었다. 거리에 나왔던 시민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헌법개정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했지만, 그해 12월 치러진 대선의 승리자는 군사정권의 한 축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야당은 지리멸렬했고, 시민들이 만들어준 기회마저도 발로 차 버렸다.

10일 서울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 모인 제 7차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하늘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시위를 주도하던 세력의 한계도 있었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주류는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것에 집중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 수 없었다. 더구나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면서도, ‘결선투표제’처럼 당연히 필요한 제도를 논의하지도 못한 것은 결과적으로 큰 실책이 되었다. 대통령제를 택한 많은 국가들이 이미 도입하고 있었던 결선투표제만 됐더라도, 1987년 12월 대선에서 득표율 36.6%를 얻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987년 당시에는 국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도 없었다. 1970~1980년대에 민주화가 되었던 스페인, 포르투갈과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정당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국회의원 선거제도로 택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논의 자체가 없었다. 결국 지역구 소선거구 선거제도를 택한 결과 국회는 지역주의 정당, 기득권 정당들이 채우게 되었다. 이들은 필요하면 정계개편과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이것은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87년 6월 민주항쟁은 ‘미완의 시민혁명’으로 끝났다.

지금의 상황은 1987년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박 대통령은 물러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집권세력 교체와 시스템 개혁의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벌써부터 정치권은 다음번 대통령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야당의 대선후보들은 자기중심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 집권세력 교체와 시스템 개혁의 전망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탄핵에 찬성함으로써 ‘박근혜 꼬리 끊기’를 한 새누리당 세력들은 재결집을 시도할 것이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의 불씨도 살아있다. 자칫 죽 쒀서 남 줄 상황이다.

따라서 이번 촛불이 또 다른 미완의 시민혁명이 되지 않으려면, 시민들이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특검의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리가 신속하면서도 철저하게 진행되도록 하고, 황교안 국무총리 대행체제가 또 다른 국정농단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 우리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얘기다. 이번에 촛불을 들고나온 시민들의 공통된 마음은 ‘이게 나라냐’는 것이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지금부터는 부패하고 낡은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관한 얘기가 곳곳에서 토론될 필요가 있다.

국가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핵심을 잘 잡아야 하고 순서도 잘 세워야 한다. 시스템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의 개혁이다. 그래야 정치판을 바꾸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가 이뤄질 수 있다. 민주주의 역사를 볼 때, 정치판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권고하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만 19세로 되어 있는 투표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것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한편 시스템의 개혁 과정에서 기득권 구조의 청산을 반드시 해야 한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행정·사법개혁이 필요하다. 개혁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직접·참여민주주의를 도입하고 확대해야 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민소환제도, 국민발안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는 지방분권도 시스템 개혁의 핵심이다.

한편 개헌논의도 국회에서 할 일이 아니다. 국회 중심의 개헌논의는 결국 대선을 염두에 둔 정략적인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 개헌은 역사상 최초로 시민들이 참여하고 시민들이 주도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국회는 가만히 있으라.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개헌의 내용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참여 개헌절차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토론하고, 온·오프라인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최근 이런 방식으로 개헌을 추진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의 사례도 있다.

이번에는 여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미완의 시민혁명이 아니라, 부패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드는 시민혁명이 될 수 있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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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날이 밝았다. 결과에 따라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우리 모두의 신념은 확고하다. 탄핵이 성사된다고 해도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실패한다고 해도 결코 끝이 아니며, 따라서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보장된 것은 없지만 오늘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추악한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마침내 칼을 빼든 날이다. 국민을 철저하게 기만하고 정치를 난도질해 온 대통령을 심판하는 날이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며 반성 없는 대통령에게 국가를 사유화했던 잘못이 얼마나 큰 것임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날이다. 치부은폐와 권력연장을 위해 눈 닫고, 귀 막고, 무릎 꿇어왔던 정치인과 정부 관리들에게도 죄를 묻는 날이다.

그리고 홀린 듯이, 취한 듯이 무지몽매하게 나라를 맡겼던 우리 모두의 실수와 오판에 대해 처절히 반성하는 날이다. 숨이란 계속 들이마시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숨이 넘어가지 않으려면 숨을 뱉어내야 하듯이 임계점에 닿은 우리는 이제 이 부조리의 썩어서 악취 나는 호흡을 뱉을 때다. 기도를 꽉 막고 있던 찌든 가래덩어리를 내뱉어 버려야 할 때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혁명이다.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 혁명일까? 민의에 의한 혁명을 더럽히는 선택을 국회가 한다면, 역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된 적이 있었던가? 박근혜 대통령은 고립무원이다. 고립무원이어야만 한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부역자들이야 남겠지만 그들과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만 우리의 미래가 살길이 생긴다.

탄핵 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사퇴를 요구한다. 이유는 아까운 대한민국의 시간이 낭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깨달을 사람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을 사람이었다면 후안무치의 3차례 담화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너무도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런 귀중한 시간을 지연시킬 권리는 대통령, 국회, 헌재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곧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도 그랬듯이 지금의 골든타임은 대통령이 멋 부리며 낭비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국민의 목숨과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시간이다. 정부가 야만성에 항거하고, 이웃의 경박한 피로감에 의해 매장당한 공동체 의식을 살려내어 이번에는 침몰을 막아야 한다.

세월호 대책모임 ‘연장전’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을 떠올린다. “박근혜 정부가 열어버린 지옥에서 우리는 생명보다 죽음에, 진실보다 왜곡에, 슬픔보다 분노에, 애도보다 투쟁에 익숙해져야 했다. 우리는 이 지옥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연대를 만들어 낼 진심들을 반드시 인양할 것이며, 또 우리는 304개의 우주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국의 미래가 민주주의 퇴행을 막고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아 함께 피눈물로 쓴다. 각계각층의 외침과 준엄한 심판의 소리들은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통곡이며, 미래를 위한 기대와 공감의 위대한 합창이다.

창자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신음은 입을 통과해 소리가 되어 울리며, 깊숙이 숨어있던 성찰은 손을 통과해 글이 되어 던져진다. 글과 소리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행동이 되어 저항의 광장으로 돌진한다. 촛불은 횃불이 되고, 횃불은 들불이 되듯이, 결코 뿔뿔이 낱개로 흩어지지 않고 모두 모여 싸워 이기도록 기원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 있다. 박근혜 게이트는 위기와 기회를 모두 품고 있다. 박근혜와 최순실 무리들이 대한민국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들어버렸지만, 국민은 일순간에 찬사로 바꿔버렸다. 세계적인 극우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안보장사꾼들이 판치는 동북아에서 평화를 주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국민의 힘으로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다음 정치권을 쇄신하여 양극화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다. 국가의 진짜 주인이 정치를 되살릴 때다. 시민의 힘으로 민의의 대변자가 되기를 포기한 대통령과 군주의 가신으로 호가호위하는 정치인들에게 준엄한 심판을 직접 내릴 수밖에 없다.

지난 몇 주 동안 부를 때마다 모두를 울컥하게 만들었던 노래를 다시 되뇌어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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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어제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라고 시켰다”고 폭로했다. 수사지휘권은 법무장관이 검찰 수사를 지휘·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백 의원은 박 대통령이 법무장관의 지휘를 통해 검찰로부터 서면조사를 받은 뒤 무혐의라는 결과를 얻어내려고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현웅 당시 법무부 장관이 박 대통령의 지시에 반발해 사표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부인하지만 백 의원 발언은 개연성이 있다. 김 전 장관은 이임식에서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윗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백성은 떨어져 나간다)’이라는 뼈 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김수남 검찰총장을 경질하려 한다는 얘기도 돌았다. 박 대통령은 1개월여 전 우병우 민정수석을 앞세워 검찰 권력을 사유화할 때만 해도 수사를 자청했다. 그러나 검찰이 촛불민심을 의식해 게이트 수사에 적극 나서자 표변했다. 지난달 20일 검찰이 최순실씨 기소 때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규정하자 “사상누각”이라며 검찰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수사지휘권 발동 지시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안이다. 수사 대상자가 수사를 무력화하는 공작을 펼친 것이다. 직권남용,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에도 위배된다. 박영수 특검은 박 대통령의 수사 방해 여부와 김 전 장관의 사퇴 이유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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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열차가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국회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탄핵소추결의안 표결에 나선다. 탄핵은 가변적이다. 하지만 탄핵 결정이 난 뒤에도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까지 탄핵사건을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끝까지 해보겠다는 것이다. 탄핵 정국의 혼란이 조속히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탄핵 이후에도 정국은 긴 안개 터널이다.

국가를 경륜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피로하게 하고, 몸은 나그네가 머무는 집 같은 데 두고, 입은 문지기 같은 음식을 먹고, 손은 노예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통치자는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시대·시민과 불화를 자초하며 싸움에 빠져들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역사·시민·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에 나서며 역사에 싸움을 걸었다. 아버지의 명예회복은 그를 정치에 입문시키고 대통령에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자서전 곳곳에 박정희를 ‘국가만을 생각한 위대한 애국자’로 기록했다. 그는 1979년 박정희 피격사건 이후 “아버지의 혜택을 보았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표변했다”며 ‘배신자’라고 적었다. 세상이 뒤집힌 뒤 아버지에 대한 사회의 냉소적 평가에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자 재평가 작업에 나섰다. 역사교과서의 근대사 부분이 전교조의 이념에 경도돼 있다고 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통해 역사와의 전쟁에 나선 것이다.

그는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정화를 집권 후반기의 주요 정책과제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빗발치며 참여 학자들이 부족하자 깜깜이로 모집해 ‘몰래 집필’에 들어갔다. 결국 만들어진 교과서는 편향성 시비에 몰리면서 누더기가 됐다. 사초를 찢고 개칠을 해도 역사는 바꿀 수 없다.

그는 40여년 전 개발시대의 프레임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박정희 생존 당시 가족모임에서 ‘새마을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돼서는 아버지의 유산인 새마을운동 전파에도 몰두했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장단에 맞추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었다. 지속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시민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서고 있다. 지난 10월29일 첫 촛불집회 이후 6차례에 이르면서 함성은 커지고 규탄의 목소리는 강해졌다. 지난 주말 집회에는 조직적인 동원 없이도 232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광장으로 나왔다. ‘퇴진’ ‘하야’에서 이젠 ‘구속’으로 강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국정농단에 자신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고 한다. 국민들은 그에게 나라를 맡겼으나 그는 모르쇠다. 그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하고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의무를 방기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머리를 만지고 있었으며 최순실이 딸 정유라를 위해 갖가지 편법을 동원할 때도 이를 방치했다. 어린 학생에게는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돈도 실력’이라는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청소년들은 장시호와 정유라가 불법·편법으로 명문대에 진학하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는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시간을 벌기 위한 버티기다. 232만 촛불이 시간이 지나가면 꺼질 한시적인 화풀이 정도인 것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는 1차, 2차, 3차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차일피일 퇴진을 미뤘다. 그리고 어제 “탄핵이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결정 과정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고 했다. 헌재까지 가서 싸우겠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5000만명이 반대해도 고집을 꺾지 못할 것”이라는 예견이 맞았다. 탄핵안 가결 후 헌재 결정까지 최장 6개월이 소요된다. 그동안 국정혼란은 불을 보듯 하다.

국가적인 위기 상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내년도 성장률은 올해보다도 낮게 예상되는 등 경제지표들도 하나같이 좋지 않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을 덮치고 있다. 그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서 국민을 볼모로 잡고 실익 없는 싸움에 나섰다. 그는 스스로 1원도 챙기지 않았다며 버티고 있다. 솜털보다 가벼운 법률지식을 가지고 자신의 방어막을 치고 있다. 끝까지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에 거슬러 ‘효도 교과서’를 만들고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나선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사익 추구다. 국민은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권리와 자유를 위해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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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사건은 역사적인 법치주의 학교이다. 부패한 자들이 너무 오랫동안 가짜 법치를 내세워 법으로 민중을 억눌렀다. 하도 당하다 보니 시민들은 법을 지배자의 채찍이며 칼처럼 여기게 되었다. 문정현 신부가 목판에 조각한 ‘법보다 밥입니다’라는 글귀도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문 신부의 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은 사람들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군홧발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의 법의 지배란 권력이 시민을 법으로 지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권력의 행사는 법에서 정한 절차와 내용을 따라야 한다는 것, 즉 권력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이나 탄핵이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최종적 해결은 아니다. 이 땅에 권력자가 법을 지키는 법치를 튼튼하게 세울 때 비로소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법치에 실패하면 제2, 제3의 박근혜가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왜 대한민국의 검사, 고위 관료,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국가 엘리트들은 최순실에게 저항하지 않았을까? 국민적 항쟁을 촉발한 ‘정유라 부정입학 사건’의 경우도 교육부가 이를 막을 법적 권한과 절차가 대학교육법에 있었다. 재벌의 돈을 받아 만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도 비영리재단법인설립법을 지켰다면 불가능했다. 비밀취급인가증이 없는 최순실에게 대통령 일정, 남북관계, 외교관계 등 국가의 중요한 비밀이 유출된 행위는 국가정보원법과 보안업무규정을 지켰으면 막을 수 있었다.

특히 국정원은 법에 의해 청와대에 대해 보안측정이나 보안사고 조사를 할 권한이 있다. 보안업무규정은 아예 국정원장에게 청와대의 보안업무가 적절하게 수행되는지 여부를 확인할 권한을 주었다. 그런데도 최순실은 지속적으로, 아무런 견제 없이 국가 비밀을 건네받았다. 나는 국정원이 청와대가 보안업무규정을 위반하여 최순실에게 국가 비밀을 건네준 행위를 몰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국정원이 몰랐다면 국정원장은 광화문광장에서 백배사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가 엘리트들이 최순실에게 저항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들의 지배동맹이 영속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최순실 공소장에 의하면 청와대의 행정관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국가 비밀문서를 최순실에게 유출했다. 그 행정관은 대통령의 임기가 2018년 2월24일이면 끝난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그러한 행위를 한 이유는 그들의 지배동맹이 계속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법치는 영속적 한·미동맹, 영속적 남북대립 그리고 취약한 민주정당의 세 가지 장애물에 갇혀 있다. 박근혜·최순실 사건의 최종적 해결은 이들 세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끈질기게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전시작전권을 외부가 갖는 한 국민주권은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 민주주의의 문민통제 역사와 전통을 어겨 가며, 별명이 ‘미친개’라는 퇴역 장성을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하겠다는 미국 대통령에게 전시작전권을 계속 주어서는 안된다. 북한 문제도 교류와 협력의 목적과 단계를 밝히고 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어, 우리 내부의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앞의 두 과제는 미국과 북한이라는 외부 변수가 있다. 그러므로 온전히 우리 내부의 의사 결정으로 가능한 정당 질서에서 역사적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200만 촛불이 광화문에만 머물지 않고 국회에서 365일 국민주권으로 피어나야 한다.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왜곡 또는 과잉되게 하거나 누락하지 않고 국회 의석으로 변환시키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엘리트들은 제2, 제3의 최순실에게 저항할 것이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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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선거 날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18세기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현대정치, 현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이렇게 비판한 바 있다. 최근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을 바라보면서, 정치학자로서 가장 자주 떠오르는 것은 이 비판이다.

그렇다. 2012년 12월19일 우리는 주권자로서 한 표를 던졌다. 그러나 그 이후 지난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다른 후보를 찍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까지, 박근혜의, 아니 최순실의 ‘노예’에 불과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국회는 어떠한가? 보수야당들조차도 분노의 촛불이 광화문에 넘쳐나기 전까지는 기껏해야 ‘질서 있는 퇴진’ ‘명예로운 퇴진’을 주장하며 몸조심하기에 바빴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4%로 떨어지고 국민의 80%가 탄핵을 지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친박계는 아직도 탄핵에 반대하고 있다. 이정현·김진태 의원을 뽑은 순천과 춘천 시민들이 박근혜의 사수대 역할이나 하라고 이들을 국회에 보낸 것인가? 비박계 역시 오락가락하다가 지난 주말 촛불에 놀라 뒤늦게 탄핵 합류를 선언했지만, 언제 다시 마음이 변할지 모른다. 한국 대의 민주주의는 중병에 걸려있다. 만일 탄핵안이 국회에서 부결된다면 사망선고를 받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개최한 촛불문화제에서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를 어쩔 수 없는 ‘현대정치의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문학의 ‘재현(representation)’ 논쟁이 불붙고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간헐적으로 진행됐다. 재현이란 어떤 사물을 다시 형상화하는 것인데 재현이 대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듯이, ‘대의’ 역시 불가피하게 민의의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같은 부분적 재평가를 넘어서 대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번 촛불항쟁의 밑바닥에는 단순한 권력남용을 넘어 헬조선, 흙수저, 신분세습제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논의를 정치 문제로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우리의 문제는 단순히 박근혜를 몰아낸다고,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87년 헌정체제’(제왕적 대통령제)를 타파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설사 내각제로 정부 형태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탄핵 과정이 잘 보여주듯이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대통령의 독재’를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국회의 독재’로 바꾸어놓을 따름이다. 다시 말해 이번 문제의 핵심에는 루소가 고발한 대의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자리 잡고 있다.

촛불을, 광장을 주목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박근혜를 몰아낼, 아니 이미 몰아낸 힘이 거기서 나왔기 때문만이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계기와 가능성을 촛불과 광장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이후에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공화국’의 단초들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광장은 전국 1500개 시민사회단체가 밑으로부터 퇴진운동조직을 만들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광장을 메우고 있는 것은 일반시민이다. 구체적으로 1500개 조직의 조직화된 참여자는 20만명 수준이며, 90%는 일반시민이다. 직접민주주의가 폭발한 것이다. ‘운동 내에서의 직접민주주의적 계기’들도 주목해야 한다. 주요 단체의 대표들이 단상에 포진하고 의례적으로 발언을 과점하는 ‘운동 내의 대의제’가 약화되고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발언권을 갖는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일부 운동권의 돌출적 행동에 대해서도 대중들이 비판하고 규율하고 있다. 탄핵 결과와 상관없이 이제 민선공직자 소환제 강화 등 대의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수술하고 직접민주주의적 기제들을 극대화해야 한다. 대의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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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으로 정의한다면, 정치란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포장 또는 승화하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으로 공적 이익을 사적 이익으로 만들었다. 적과 동지를 가르는 이분법의 정치에만 몰두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최소한의 포장마저 걷어냈다. 공인 박 대통령이 추구했던 사적 이익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은 “이번 일”이란 애매한 말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얼버무렸다. “단 한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고 말하는 대통령이, 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는지 담화문에서는 그 이유를 알기 어렵다. 대통령직의 최대한 연장 또는 구속을 면하는 안전한 퇴진을 위해, 즉 무엇보다도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시간 벌기를 하겠다는 말로 읽힌다. 다시금 사적 이익에 골몰하는 공인 박 대통령이 아닌 사인 박근혜를 보게 된다.

지금 여기서 진행되는 국가권력의 사유화에 저항하는 시민혁명의 와중에 정치에 대한 냉소적 정의를 부르게 된다. 광장에 모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려는’ 또는 ‘못하는’ 우리 시대 혁명의 한 특징 때문이다.

일단, ‘않으려는’에 주목한다. 100만명 이상이 참여하는 비폭력 평화시위는 인류역사에서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 시위가 곧 축제가 되는 전변이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횃불과 촛불을 든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과 시청광장 일대를 출발해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2008년의 촛불집회처럼 전위와 대중, 지식인과 민중, 활동가와 시민의 이분법도 없다. 주최 측이 있다면, 광장의 정치를 준비하는 일꾼들이지 그들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대표는 아니다. 그들을 대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표가 있어야 광장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광장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또는 광장에서 사적 이익의 실현을 고민하는 낡은 보수·진보세력뿐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인 ‘반(反)국가적 국가’ ‘시민국가’ 만들기라는 미답의 길을 우리는 걷고 있다.

그러나 ‘못하는’의 한계가 암초처럼 우리의 항해를 방해하고 있다. 시민혁명이 외치는 공인 박 대통령의 퇴진은, 대통령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하는 사적 결정이 아니라 제도적 절차를 거쳐야 하고, 따라서 제도정치를 통과해야 한다. 사인 박근혜는 3차 대국민담화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지점을 예리하게 인지하고 있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의 직무를 중단케 하는 결정은 선출된 대표기관인 의회의 탄핵이어야 한다. 명예로운 퇴진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여야 담합을 통해 대통령의 퇴진을 결정하는 것은 탈법적인 정치적 행위다. 탄핵이 의제로 강제되자 다양한 정치세력들은 사적 이익을 고려하며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시민혁명이 새 헌정을 창출하려 하지 않고 그 능력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계산기만이 작동한다.

박 대통령의 퇴진을 상수로 해서 자신들의 정치권력 장악이란 사적 이익에 유리한 정치일정을 공학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공학의 난무를 목도한다. 각당 내 다기한 세력들의 셈법이 매일매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물론 나는 이 욕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러나 어떤 세력이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공적 이익으로 잘 포장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혁명의 명령을 의회가 거부할 경우, 시민혁명은 의회를 탄핵하는 강을 건널 것임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군사협력과 같은 사익 추구적 정책을 결정하는, 광장의 시민과 완벽하게 유리되어 작동하는 또 하나의 ‘비선국가’의 작동을 막기 위해서도 대통령 탄핵은 필수적이다.

지금 여기서 시민혁명의 최소 공통분모는 박 대통령의 퇴진이다. 우리는 시민혁명을 관전하며 지배연합의 재편성을 통해 시민혁명의 성과를 약탈하려는 세력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반국가적 국가, 시민국가를 지향하는 광장의 자유로운 개인들이 대통령 퇴진 이후를 위한 반걸음, 아니 100분의 1 정도의 앞선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면, 모든 혁명의 다음이 그렇듯 반동을 맞이하게 된다.

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박근핵닷컴’만큼 탄핵 이후를 생각하는 ‘박근혜이후닷컴’을 준비할 수는 없을까. 형식주의적이어도 좋다. 이른바 지도를 자임하는 낡은 세력들이 위에서 아래로 부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지향하는 바를, 시민혁명의 정수를, 시민혁명의 최소 공통분모를 간결한 몇 가지 원칙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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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청와대 100m 앞까지 다가가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세월호 사건 진실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 퇴진 구호도 외쳤다. 지난 3일 열린 6차 촛불집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유가족들의 청와대 앞 시위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이날 전국에서 촛불을 든 230만 시민이 유가족들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전명선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그동안 한번도 못 온 곳인데 시민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것에 답변 한번도 없다. 그에 대한 사과, 꼭 받아내겠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그동안 박 대통령 면담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수백일간 농성을 하고 집회를 열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근처 경찰버스 차벽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된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보자기를 두른 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 대통령은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무성의와 외면으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은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을 찾아가 유가족들 앞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내겠다며 눈물을 흘렸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 원하면 언제든지 면담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말뿐이었다. 사건 발생 한 달 뒤인 2014년 5월16일 유가족 대표와의 면담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유가족들을 사회적으로 따돌림하는 일에 골몰했고 세월호특별법과 특별조사위원회도 무력하게 만들었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바람이라 할 수 있는 세월호 선체 인양은 언제 이뤄질지 기약도 없다.

세월호 사건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불가분의 관계다. 게이트 정점에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 의혹이 있다. 전 국민이 TV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보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출근도 않고 숙소인 관저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들도 공범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그랬다는 박 대통령은 7시간 만에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하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수첩을 보면 김 전 실장은 ‘대리기사 폭행’ 건에 검찰의 엄정 수사를 주문하는 등 유가족과 야당 의원을 범죄자로 내몰아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도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판단이다. 유가족들의 한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해소하지 못하는 수사는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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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더 진한 물도 있더라.” 2014년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최순실씨를 가리켜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가장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왜 박 대통령이 40년 동안 친동생들마저 외면하고 최씨에게 그토록 집착했는가일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수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는 말도 박 대통령과 최씨가 피보다 더 진한 관계였음을 잘 보여준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피를 나눈 혈연관계는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구관계보다 본래 더 끈끈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그렇다. 일반적으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의 잘못된 40년 우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명제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특히 독자가 젊은이라면 더 의아해할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청소년이나 청년들은 친동기보다는 단짝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더 친밀감을 느끼곤 한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방 청소를 도와주거나 용돈을 꿔주는 등의 소소한 도움을 베풀 의향도 그 상대가 친동기가 아니라 절친이면 더 높아진다. “내 자식, 애지중지 키워 놓았더니 매일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정신이 없네”라며 섭섭해하는 부모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내가 느끼는 정서적인 친밀감만 따지면, 한집에서 티격태격한 친동기보다는 차라리 긴 세월 사귄 단짝 친구가 종종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러나, 진화생물학의 시각에서 보면 친밀감이 상대방을 돕게 하는 유일한 요인인 것은 아니다. 왜 혈연에게 도움을 주는가? ‘갑돌이’의 몸속에 있으면서 ‘을돌이’를 돕게 만드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이해를 돕기 위한 은유일 뿐이다. 유전자가 정말로 의도와 동기를 지닌다는 뜻은 아니다). 을돌이가 갑돌이의 혈연이라면, 을돌이의 몸속에도 이 유전자의 복제본이 들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을돌이가 얻는 이득이 갑돌이가 입는 손해보다 넉넉히 크다면, 이 유전자는 갑돌이로 하여금 을돌이를 돕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복제본을 남길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갑돌이는 을돌이로부터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가 맛있게 밥 먹는 모습만 보아도 부모는 절로 배가 부르듯이, 피붙이를 돕는 인류의 적인 행동양식은 그 자체로서 자연 선택된 것이다.

단짝 친구를 돕는 진화적 이유는 따로 있다. 동성의 또래와 어울리고 끈끈한 우정을 나누려는 심리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거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운에 대비하거나, 다른 집단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화했다. 특히 수렵·채집생활을 했던 진화적 과거에는 보험회사가 없었음을 고려하면, 예기치 못한 불행에 대한 일종의 보험으로서 믿음직한 절친들을 미리 만들어두는 일이 매우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즉, 가까운 친구 사이에는 하나를 받으면 반드시 하나를 갚아야 하는 엄격한 상호성의 원리가 적용되지는 않지만(“괜찮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우리는 어쨌든 미래에도 변치 않을 의리를 기대하면서 절친을 돕는다. 한 번 의리를 지킨 친구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면서 점차 우정이 강화된다. 요컨대, 친구를 도울 때 우리는 마치 앞으로 돌아올 보상을 바라는 것처럼 행동한다.

가족애는 무조건적인 헌신이다. 우정은 조건적인 협력이다. 피붙이만이 누리는 이러한 ‘특혜’는 최근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첫 번째, 정서적인 친밀감의 효과를 통계적으로 제거했을 때 사람들은 여전히 절친보다는 혈연을 더 챙긴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두 명의 상대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이 똑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피붙이를 절친보다 더 돕고자 했다. 두 번째, 불타는 건물에 뛰어들어 상대를 구조하거나, 콩팥 하나를 떼어주는 등의 커다란 도움을 베풀 의향은 그 상대가 절친이 아니라 친동기일 때 더 높았다. 이처럼 큰 도움은 그 속성상 상대방이 은혜를 갚아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세 번째, 한 연구에서 실험 참여자들에게 두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혼자서 150달러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자신과 자신의 절친이 똑같이 75달러씩 가질 것인가? 대다수 참여자는 150달러를 독차지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75달러의 수혜자가 친동기라면, 대다수 참여자는 자신과 친동기가 75달러씩 나누어 갖겠다고 답했다.

언제나, 예외 없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키가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웬만한 남성보다 키 큰 여성도 얼마든지 있다. 요는 혈연관계와 친구관계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이다. 우정은 아주 단단할 수 있지만, 의외로 쉽게 끊어진다. 연락이 두절되거나 의리를 저버린다면 친구는 도로 남이 된다. 요즘 박 대통령이 최씨의 비행을 전혀 몰랐다는 식의 발언을 흘리고 있다. 두 사람도 ‘피보다 더 진한’ 사이에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서로를 배신하는 공동정범이 되었다.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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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국민이 검찰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혐의가 나오고 어떤 비리가 더해질 것인지 검찰의 수사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이 밝혀낸 것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범죄 혐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별개로 우리는 최근 드러나고 있는 사건들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국정농단과 엄청난 비리가 일어났는지 근본 원인을 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민정수석은 청와대에서 민정, 공직기강, 법무, 민원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민정수석은 국가 인사에 관여하고 감시하며 사정기관들의 정보를 취합하기도 한다. 현재 확인된 여러 비리들은 민정수석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지만 실상은 민정수석이 오히려 이런 일들에 공공연하게 앞장선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4일 오전 김수남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검사 출신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앞서 박근혜 정부에는 곽상도·홍경식·김영한 3명의 민정수석이 있었는데 모두 검사 출신이었다. 사의를 표명하긴 했지만 우 전 수석의 후임으로 임명된 최재경 민정수석 역시 검사 출신이다. 이 밖에도 정홍원 전 국무총리, 황교안 국무총리, 김기춘 전 비서실장, 안대희 총리 후보, 그리고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까지 모두 검사 출신이다.

이 정도 되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검찰공화국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검사 출신들이 가장 막강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엄청난 비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실질적인 견제기관 하나 없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한국의 검찰조직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 결코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임기 중 가장 후회되는 일로 검찰을 개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함께 근본적으로 한국의 검찰이 바뀌어야 한다. 수십년간 외쳐온 말뿐인 그들만의 개혁이 아니라 진정으로 검찰이 바뀌어야만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동규 | 충남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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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갖가지 추문을 단박에 잠재운 강력한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이다. 이 사건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등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그간 박근혜 정권 아래 이루어진 모든 일과 맞물려있다. ‘문화융성’이란 모토 아래 추진된 여러 행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지 문화예술 관련 기관장 선임이 최순실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졌다.

그 무리들에 의해 온갖 비리가 저질러졌고 블랙리스트도 작성되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화예술계의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는 등의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당시 정무장관이었던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심을 사고 있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작성한 리스트란다. 2014년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지원하지 말아야 할 문화예술계 인사와 단체들의 명단을 작성했고, 이 명단을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내려 보내 지원사업 선정에 반영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옥죄고 탄압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방증하고 있다. 이미 이명박 정권 때부터 정부는 돈줄을 풀거나 조이는 방식으로 문화계를 길들여왔다. 자신들과 정치적 이념이 다르거나 비판적인 이들을 모조리 좌파로, 빨갱이로 몰아 뽑아내고는 전문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선거캠프와 새누리당 출신 친정부 인사들을 기관장으로 내리꽂았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갖은 비리와 전횡을 일삼아 왔음도 익히 접하고 있다. 그들은 오로지 동일한 욕망으로 공동체를 이룬 무리이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 자본을 확장하고 대를 이어 보존하고자 하는 탐욕으로만 점철된 강고한 카르텔이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물인 차은택의 스승이란 이유로 장관에 임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김형태 전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사장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활동한 이였는데 최근 성추행과 인사전횡 등으로 해임됐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통령 관심사항인 전시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진즉에 파리 목숨이 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를 관리하는 간부직엔 대선캠프에서 활약한 기업인이 추천한 인사가 낙하산 임용됐다는 설이 오래전부터 파다했다. 그리고 이 사람이 국내 미술상황에 대해 거의 무지할 수밖에 없고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외국인 관장 뒤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로 인해 서울관의 위상이 추락하고 전시 내용이 부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덕 전 장관이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에 응모해서 선별된 후보자를 선임하지 않고 미루다가 끝내 무산시키고 뜬금없이 낯선 외국인을 관장으로 선임한 배경을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여타 미술관의 관장이나 문화재단 이사장 선임 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윗선과 연결된 문체부 관리들이 주축이 돼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진보나 좌파적 성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인사들을 적극 소탕하고 내치는 한편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조직적으로 앉혀왔다고 본다.

그렇게 기관의 장이 된 이들이 각종 행사에 나와서 문화융성에 대해, 문화예술의 창조성에 대해 온갖 수사로 지껄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공무원들은 그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주도해나갔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특정 예술인들을 속아내고 지원금을 차단하고, 직장에서 내쫓거나 검열을 일삼는가 하면 대통령 측근 인사를 심어주는 일을 충실히 집행한 대가로 승진하거나 해외 문화원 원장으로 영전돼 나갔다. 이게 우리나라 문화현실의 꼬락서니다. 이러한 문체부는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괴벨스나 매카시, 박정희가 지배했던 그 시대를 아직도 살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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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하야하라.” 서울 도심에서만 100만여명!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월드컵 때도,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다. 비폭력으로 평화롭게 진행한 집회였다.

짱돌과 최루탄과 쇠몽둥이가 난무하던 1980년대 집회 광경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333번 시내버스 운전 일을 하고 있었다. 거리엔 늘 데모대와 경찰이 대치했다.

내가 봤던 경험으로만 보면 데모가 가장 심했던 때는 1987년 6월이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체육관에서 간접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4·13 호헌조치’를 선언한 뒤, 각지에서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랐고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시민과 학생들은 백골단에 몽둥이로 맞아 머리가 터지고 피를 흘려도 항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즉각 퇴진’ ‘박근혜는 하야하라’고 쓰인 손팻말과 플래시를 켠 스마트폰,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전국 37개 도시에서 100여만명이 데모한 6월26일이 아니었나 싶다. 버스 운행을 하다 데모 때문에 길이 막혀 서울역 정류장에 서 있었다. 버스 안에 있던 손님들이 다 내리고 한 명도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도,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도 데모대가 꽉 차 있었다.

그때였다. 서울역 광장 쪽에서 대학생 한무리가 백골단에 쫓겨 내가 서 있는 버스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얼른 차 문을 열었다. 최루탄 냄새를 훅 풍기면서 학생들이 타는데, 이게 웬일인가?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회수권(당시의 학생들 버스 요금)을 하나씩 꺼내서 요금통에 넣으면서 올라오는 게 아닌가. “빨리 타! 빨리!” 하고 소리 지르니 학생들은 그때서야 부리나케 버스로 올라온다. 다 탄 뒤 얼른 문을 닫았다. 아슬아슬했다. 뒤이어 백골단 열댓 명이 쫓아왔다. 그중 몇 놈이 문을 두드렸다. 난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백골단은 열이 받아 몽둥이로 버스 문과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때 남대문 쪽에서 또 다른 시위대가 내가 탄 버스 주변에 있는 백골단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는 보도블록을 깬 돌을 쥐고 있었다. 결국 백골단은 도망갔다. 버스 문을 열어 줬더니 학생들이 “고맙습니다!” 하면서 우르르 내렸다. 학생들은 길에서 돌멩이를 집어 들고 다시 시청 앞으로 행진하면서 소리쳤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6월29일,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민정당 대표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와 야당의 직선제 개헌을 수락했다. 민중의 힘으로 얻은 값진 승리였다. 비록 그 뒤에 노태우가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그때 쟁취한 직선제는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토대가 됐다.

2016년. 이젠 시위 현상이 많이 바뀌었다.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백골단도 해체됐고 최루탄과 짱돌도 사라졌다. 시위대는 청와대 400m 앞 효자동, 폴리스라인과 차벽 앞에서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국정을 운영하면서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무슨 폭력?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구조는커녕 진상규명조차 안 하는 것,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죽게 하고 책임자 처벌을 안 하는 것, 자본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 노예로 만드는 것, 약점이 있는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 최순실에게 갖다 바친 것, 사드 배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맺는 것 등은 모두 당장 내 목숨을 빼앗는 폭력이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다면 손가락이라도 꺾어야 한다. 1987년 백골단에 쫓겨 내 버스를 타면서, 회수권을 내던 착한 학생들이 짱돌을 던진 행위는 목을 조르는 자의 손가락을 꺾는 행위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보다 결코 가볍지가 않다.

국가 수장으로서 자격을 잃은 박근혜 정권과 부패한 지배층, 그리고 수구 언론은 민중에게 선진국처럼 ‘폴리스라인까지만’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합법집회, 평화시위’를 하는 선진국은 대체 어느 나라인가? 선진국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져도 폭동이 일어난다. 하물며 나라를 말아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계속 그렇게 민중들의 목을 조르면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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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시대에 젊은 세대를 붙잡기 위한 언론들의 노력은 힘겹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로 대표되는 이들은 ‘입에 스마트폰을 물고 태어났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활자보다 영상에 친숙하고, TV 대신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다.

이대로라면 절대 신문을 읽지 않을 ‘미래의 독자’를 붙잡기 위한 기성 언론들은 머리를 싸맨다. 짧고 재미있는 동영상, ‘바이럴(입소문)’을 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한없이 가벼운 존재’일까.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만든 말레이시아의 영상미디어 ‘레이지(R.age)’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지난 8~1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디지털 미디어 아시아(DMA) 2016’에서 레이지의 이안 이 편집장은 “리얼한 사회적 주제로 밀레니얼 세대에게 도달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지는 최근 말레이시아의 아동 성범죄를 다룬 ‘내 휴대폰의 포식자(Predator In My Phone)’ 시리즈로 주목받았다. 총 21개의 영상 중 일부는 10분을 넘는 긴 동영상이었지만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 아동 성범죄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 위한 사회적 캠페인까지 이끌어냈다. 이 편집장은 “말레이시아에서는 아동 성범죄를 처벌하는 법이 없다. 모바일에서 아동 성범죄 반대 버튼을 누르도록 해 수백만개의 지지를 이끌어냈다”며 “마우스 클릭으로 참여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은 이미 35명의 국회의원이 서명했으며, 한 달 뒤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레이지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청소년들이 앞장서 거리로 나왔다. 지난 19일 촛불은 수능을 끝낸 학생들의 합류로 더 뜨겁게 타올랐다. SNS에 “투표권도 없는 학생들에게 어른이 미안하다”는 기성세대의 ‘반성’이 잇따른다. 이들은 정치적 주체이며, 어른보다 현명하며, 더 빨리 행동하고 있다. 이들을 ‘생각 없다’고 치부한 건 기성세대가 기존의 문법만 고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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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인간의 표정과 몸짓, 생리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눈썹 근육은 위축된다. 눈을 부라리며 분노의 대상을 응시하고, 근육이 긴장하면서 권투 선수의 기본자세와 같은 몸짓이 생겨난다. 사람이 재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언제든 주먹을 내지를 수 있도록 손으로 향하는 혈류량도 늘어난다. 화가 나면, 주먹이 먼저 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외부 자극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내뱉는 언어도 과장되고 공격적으로 된다.

분노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과 도발에서부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회적 부조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분노는 이런 외부 자극에 대한 인간의 방어수단이다. 우리의 몸이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도록 만들어 준다. 위협으로 인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심리적 효과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분노 상태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는 없다. 격렬한 분노 상태가 계속되면, 몸이 버텨내지를 못한다. 탈진해서 일순간 맥없이 풀어져 버리거나, 자기 분노를 스스로 못 이겨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지난 19일 전국 60여 곳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 주최 측 추산 96만명(경찰 추산 26만여명)이 참여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부산 서면 촛불집회(왼쪽 사진)에는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만명이 참가했다. 대구 중구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린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 퇴진, 새누리 해체’라고 적힌 현수막을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오른쪽 위). 광주 집회에선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에 횃불을 켜고 열었던 ‘민주성회’가 재현됐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오는 26일 5차 촛불집회에 최대 30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심경은 복잡하다. 부끄러움, 허탈감, 배신감, 나라가 사달이 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 대통령의 태반주사 의혹에 이르러서는 역겨움까지 느끼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적인 감정이 분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 그리고 그들의 수하들이 벌인 온갖 일은 우리 사회의 근간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국민의 분노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감정의 발로이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원천이 뿌리 뽑혀야 분노가 풀어질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한 친박 국회의원의 말처럼 청와대와 수구세력은 버티기 모드로 들어갔다. 우리도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장기전을 준비하는 첫번째 마음가짐은 차갑게 분노해야 한다는 것이다. 뜨거운 분노는 오래갈 수 없다. 흥분하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극우단체를 동원한 물리적 충돌의 덫에 걸려들 수도 있다. 어차피 오래갈 일이라면 차분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 우리 중의 누군가가 지나치게 흥분하면 서로 자제시켜야 한다. 극우단체들이 촛불집회 옆에서 난장판을 부려도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사나?’라며 구경하면 될 일이다. 분노라는 감정적 에너지를 소비할 하등의 가치가 없다.

두번째 마음가짐은 딴 데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작정치와 여론조작은 저들의 전매특허이다. 해운대 엘시티의 유력 정치인 연루설, 조직적인 실시간 검색순위 조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작과 조작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명 연예인 스캔들이 터질 수 있고, 간첩단 사건이나 남북 간 무력충돌과 같은 북풍이 재현될 수도 있다. 개헌 카드를 되살려 국면 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 국민의 눈과 귀를 돌릴 수 있다면 저들은 어떤 일이든 능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눈과 귀를 떼지 말아야 한다.

세번째 마음가짐은 분열의 언어를 경계하는 것이다. 분열은 청와대와 수구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도 조장될 수 있다. 평범한 국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유는 특정 세력, 특정 정치인, 특정 정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런 마당에 각 세력, 정치인, 정당, 그리고 이들의 지지자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내부에 총질하고 서로를 흠잡는 것은 볼썽사나운 일이다. 촛불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경쟁과 비판은 칭찬받아야 한다. 그러나 각자의 힘을 키우기 위한 갈등과 비난에 대해서는 국민이 가차 없이 레드카드를 들고 호루라기를 불어야 한다.

지금도 기억나는 군 훈련소 시절의 교관이 있다. 다른 교관들과는 달리 그는 화를 내거나 고함을 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는 항상 웃는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가 훈련을 제대로 할 때까지 한없이 우리를 뺑뺑이 돌렸다. 말 안 듣기로 소문난 군의관 훈련생들이었지만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화를 내거나 고함치는 교관들은 그때만 잘 피해서 넘기면 되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 교관의 별명이 ‘무한반복’이었다.

마음가짐만 잘하면 시간은 우리 편이다. 빨리 결론을 내 달라고 정치권을 독촉할 이유도 없다. 성급한 결론은 청와대와 수구세력을 이롭게 할 공산이 크다. 우리 아이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국민의 권리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지치지만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답답한 이는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다.

이진석 |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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