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 해당되는 글 319건

  1. 2016.11.30 [시론]한·일 군사정보협정 ‘대통령은 가만히 있으라’
  2. 2016.11.30 [공감]여성대통령, 여성혐오
  3. 2016.11.30 [사설]제사보다 젯밥에 눈독 들이는 개헌론 당장 중단하라
  4. 2016.11.30 [사설]또 변명에 잔꾀 부린 박 대통령, 탄핵할 이유 더 분명해졌다
  5. 2016.11.30 [독자발언대]군 사기도 꺾은 대통령 ‘이러려고 군 생활 하나’
  6. 2016.11.29 정말 바뀌어야 할 것은 ‘검찰’
  7. 2016.11.29 무궁화
  8. 2016.11.29 박근혜 퇴진은 ‘박정희 신화’ 청산 계기 돼야
  9. 2016.11.29 [사설]친박마저 퇴진 건의, 대통령의 조건 없는 사임만 남았다
  10. 2016.11.29 [사설]국가의 미래인 학생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박정희 교과서
  11. 2016.11.28 [특별기고]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가 이제 모든 것이 되는 날
  12. 2016.11.28 ‘국뽕’
  13. 2016.11.28 [사설]이 판국에 개헌하자며 곁불 쬐려는 일부 세력의 얕은수
  14. 2016.11.28 [사설]박 대통령은 침묵을 깨라, 더 많은 촛불이 필요한가
  15. 2016.11.25 [정동칼럼]“그리고, 우리 모두가 울었다”
  16. 2016.11.25 [사설]‘국정교과서 비공개 불법’과 학교의 채택 거부를 직시하라
  17. 2016.11.25 [사설]버티는 대통령엔 탄핵뿐, 여야 공조로 빈틈없이 추진하라
  18. 2016.11.25 [시대의 창]박근혜 이후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19. 2016.11.24 후회 없이 꿈을 꾸겠다
  20. 2016.11.24 [경향의 눈]대통령의 은밀한 사생활

2012년 ‘아미티지 보고서’의 일부다. “2012년 6월 미·일·한 합동해상훈련 참가는 분열적인 역사문제를 제쳐두고, 현재의 더 큰 위협에 대처하는 올바른 방향으로의 한 걸음을 의미한다. 덧붙여 한·일 간 체계적 대북정보 공유를 위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군수물자 공유를 촉진할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등 계류 중인 방위협정 체결을 위한 신속한 움직임이야말로 3동맹국의 안보이익을 위해 유익한 실질적이고 실무적인 움직임이다.”

‘아미티지 보고서’란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전략통들이 모여 만든 초당적 대일·대아시아 전략보고서다. 2000년, 2007년, 2012년 세 번에 걸쳐 발표되었다. 정권을 넘어선 미국의 대일·대아시아 전략의 청사진 같은 것이다. 보고서 참여자들은 조야를 넘나들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예컨대 제2차 ‘아미티지 보고서’에 이름을 올린 커트 캠벨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지냈다.

미국의 전략통들은 진즉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피로감을 나타내며, 신속한 ‘해결’을 한·일 양측에 압박해 왔다. 그리고 지소미아와 군수지원협정의 조속한 체결을 종용해 왔다. 하지만 2012년 성사 직전 엎어졌다. 4년을 기다려 임계점까지 왔다. 한편으로 미 대선의 행방이 문제였고, 다른 한편 내년 한국 대선이 문제다. 힐러리 클린턴이 집권에 실패할 경우, ‘재균형(rebalancing)’은 실종이 우려되었고, 한국에서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지소미아는 물 건너간다. 물론 지금의 탄핵 국면은 상상조차 하기 전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가서명 후 본서명까지의 절차를 9일 만에 해치웠다. 그만큼 미국이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말이다.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21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앞에서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중지를 촉구하는 24시간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창길 기자

위안부 합의와 지소미아는 동일한 과정의 서로 다른 국면일 뿐이다. 그것은 오바마 대표상품인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적 재균형의 핵심 구성요소다. 남한의 강점인 대북 인적 정보, 즉 휴민트(HUMINT)와, 일본의 강점인 신호정보(SIGINT)를 정보자산화해서 중국 견제·대북 억지라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소미아 다음은 무언가? 당연히 군수지원협정이다. 지금은 국방부가 눈치보고 있지만 때가 되면 언제든 들고나올 거다.

2014년 한·미·일은 ‘군사정보공유약정’을 체결했다. 미국을 매개로 3국은 군사정보를 이미 공유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과 이미 엄청난 신호정보를 공유하고 있는데 한·일 지소미아가 왜 또 필요할까?

이는 미국이 또 다른 무엇을 기획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일 군사협력을 정보·군수 그 다음 병력으로까지 확장시켜 궁극적으로 한·일 상호방위조약으로 가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일 지소미아를 한·일 군사동맹, 나아가 한·미·일 군사동맹 혹은 아시아판 나토의 ‘전’ 혹은 ‘전전’ 단계로 가는 신호탄으로 본다.

사드(THAAD)와 더불어 지소미아는 북·중·러 북방삼각과 끝없는 군사적 긴장과 대결, 남북의 무한대결이라는 재앙을 불러온다. 박근혜가 자초한 ‘외환(外患)의 우(愚)’로 인해 우리는 미국 군사전략의 영원한 ‘졸’로 전락, 국가전략의 중장기 전망은 고사하고 그저 내일의 일을 걱정해야 할 저주받은 민족이 될 것이다. 미군의 지휘하에 한·일 동맹군이 북한군과 전쟁을 하는 장면이 소설에 불과할까?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국내적으로는 국회에 제출된 한·일 지소미아 효력정지를 위한 특별법이나 헌재 권한쟁의 심판 등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효력이 대한민국 영역에만 한정돼 한·일 지소미아의 국제법적 효력을 무력화하진 못한다. 그래서 두 번째 경로가 있어야 한다. 한·일 지소미아 제21조에는 조약의 ‘종료’가 규정되어 있다. 협정은 1년 동안 유효한데, 만기 90일 전에 서면통보가 없으면 자동갱신된다.

그렇다. 이 말은 만기 90일 전에 협정의 종료를 팩스 등을 통해 서면통보하면 협정은 종료, 즉 폐기된다는 뜻이다. 당장은 첫 번째 경로를 추진하되, 두 번째 경로를 통한 협정의 폐기가 우리의 선택이다. 한·일 지소미아는 사실 미국이 요구한 것이다. 쉽지 않다. 성공하자면 정권교체로 탄생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첫 번째 과제로 위안부 합의와 지소미아 폐기를 올려놓아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 트럼프는 이른바 오바마 ‘업적’의 두 축 중 하나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다. 나머지 하나인 재균형을 대략 1년에 걸쳐 재검토할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경로, 즉 폐기 프로세스를 작동시키되, 트럼프의 아시아 전략에 개입하기 위한 협상을 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단, 박근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이해영 |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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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통령을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일컫는 것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을 위한 정책을 제안한 적도 없고, 여성으로서의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여성’을 단지 생물학적 범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음을 생각하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한때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직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자가 무슨 정치!’라고 공공연히 훈계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물론 현 대통령이 선출된 데에 여성이라는 요소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생물학적 금기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후광’이 가장 중요했다. ‘박’가에게 통치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일종의 ‘역성혁명’의 논리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성혁명이란 새 왕조의 옹립을 의미한다. 국정교과서를 통해 박정희 정권을 영원히 미화하려는 것이나, 국가예산을 들여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거나, 옥천군 예산으로 육영수 숭모제를 지내겠다는 계획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보다는 오히려 ‘나라님 숭배’의 정서에 가깝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서 자란 ‘비운의 공주’ 이미지가 사실상 많은 지지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러한 전근대적 역성혁명의 결과가 현재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전근대적인 국정농단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여성 신년인사회'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만큼,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거나, ‘여성대통령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 묻지 못했다’는 말들은 어처구니가 없다. 걸핏하면 여성혐오 발언과 사건들이 불거지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그토록 고귀한(?) 존재인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여성’의 수치심이 국정농단의 범죄보다, 300명 이상의 목숨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만큼, 대한민국이 그렇게 여성을 맹종하는 사회였던가?

발언자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이러한 발언은 대한민국 여성을 ‘김치녀’로 매도하는 여성혐오의 문법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현 대통령을 옹호는커녕,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김치녀로 표현되는 여성혐오의 출발점이 바로 ‘여성이 무슨 벼슬이나 되는 줄 안다’는 남성들의 지레짐작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실제로 처한 상황이나 경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최대의 이익을 거두려 한다’는 ‘상상과 억측’이 여성혐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 대통령을 ‘모시는’ 이 ‘신사(?)’들의 발언은 바로 이 상상과 억측에 기초해 있을 뿐만 아니라, 뻔뻔스럽게도 그것이 충성이라고 주장하는 행위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좌우, 학력, 세대, 계층적 차이와 무관하다. 심지어는 현 대통령을 철벽수비하려는 입장과 비판하는 입장마저 가리지 않는다. 여성대통령의 사생활 운운하는 ‘충신’들의 발언이 여성혐오적이라면, 대통령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임을 강조함으로써 조롱의 수위를 높이는 표현들 역시 여성혐오적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여성은 여성이라는 범주의 한 차원에 불과하고, 여성이라는 범주의 다른 특성들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과도한 추앙이나 과도한 조롱을 받을 이유가 없다.

여성대통령의 ‘여성성’은 성적 이미지가 아니라, 젠더 불균형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통해서만 강조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보편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리고 그러한 현상 뒤에 ‘여성들의 이기심’이 아니라 왜곡된 사회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여성정치인의 여성성을 강조할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찬숙 |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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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어제 담화는 개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이 개헌이라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와 친박 세력이 개헌을 위한 임기 단축을 제기했던 점을 고려하면 개헌론에 불을 붙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부추기는 의도는 분명하다. 그제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이 거론한 것이 바로 개헌을 고리로 한 박 대통령의 명예퇴진이었다. 이런 움직임에 개헌론을 제기하면 탄핵의 대오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내놓은 게 바로 담화이다. 야권 내 일부도 개헌을 주장하므로 야권을 분열시켜 탄핵을 희석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되었던 지난달 박 대통령은 국회에서 느닷없이 개헌을 제안해 정국 반전을 꾀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개헌을 명시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그 카드로 판을 뒤흔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 뒤편으로 나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무엇보다 허다한 정치·사회적 과제를 개헌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옳지 않다.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시민 의사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한국 사회의 권력이 된 재벌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하청을 받는 청부업을 청산하고 독립적 주체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시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하는 정당체제, 정치 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재벌개혁, 검찰개혁, 정치개혁, 방송개혁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했으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과연 가능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시민이 하라는 개혁은 안 하고 헌법 타령을 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개혁해야 할 낡은 정치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다.

현 국면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개헌으로 판을 흔들어 보겠다며 헌법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헌법을 모욕하는 처사이다. 지금의 개헌 논의는 여야의 대선주자들과 여러 세력들이 대통령 중임제니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자기에게 유리한 권력 구조로 바꾸려고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헌이라는 거대 이슈를 꺼내들어 일반 시민들을 배제하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과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 개인적인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정치인의 바른길이 아니다. 그래도 굳이 개헌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대선에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하고 대선 이후 그 결과에 따라 논의하면 될 일이다.

지금 국회가 할 일은 시민들이 이미 마음으로 탄핵한 박 대통령을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개헌론을 꺼내겠다면 그것은 촛불에 대한 저항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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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3차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어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나는 잘못한 게 없지만 물러나라고 하니 국회에서 알아서 해달라는 것이다. 2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지 25일 만이다. 퇴진 시기도 밝히지 않았고, 사과와 반성도 없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러면서 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선의” 타령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물러나겠다는 것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자기모순이다. 정권 이양이니 하는 것도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날 담화는 촛불 민심을 받드는 모습을 기대했던 시민들을 또다시 절망에 빠뜨렸다. 참으로 뻔뻔하고 무지막지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일견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했지만 실은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겠다고 한 것과 같다. 임기 단축이란 말부터 해괴한 표현이다. 자신이 잘못해서 물러나는 게 아니라 개헌 같은 정치 상황 변동에 따라 임기가 단축돼 퇴임하는 형식을 밟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개헌론으로 야권을 분열시키고 국면을 전환하려는 술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헌정체제 정비와 위기 극복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에 빠져들 위험을 안고 있다. 여기에 거국 총리와 개헌이 맞물려 돌아가면 국정 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정파 간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 더 머문다는 것 자체가 나라의 혼란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시민과 싸워 이길 순 없다. 96%의 민심과 괴리된 대통령은 존재할 수도, 필요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는 내용의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를 외면한 채 단상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에서 안정된 정권 이양을 위한 법 절차를 정해달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헌법엔 ‘대통령 궐위 시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고(제71조),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제68조)’고 명시돼 있다. 새삼스럽게 국회에서 따로 법 절차를 정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는 사안이다. 결국 국회에 어물쩍 공을 넘겨 시간을 끌겠다는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담화가 나온 과정 역시 석연치 않다. 난데없이 정계 원로들이 나서더니 다음날 친박계에서 이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같은 내용의 담화를 내놓았다. 야 3당이 예고한 탄핵안 표결 처리(12월2일) 사흘 전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잘 짜인 각본에 따른 것이라면 마지막까지 권력을 붙잡고 버티는 추태에 진저리를 치지 않을 수 없다. 나라가 결딴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다. 국정 문란의 방관자이자 옹호자였던 친박계의 이런 오만과 독선은 결국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 몰락의 길을 재촉할 뿐이다. 야당이 일제히 “퇴임 일정 밝히지 않은 계산된 퉁치기” “여야 정쟁을 유도하려는 탄핵 교란 작전”이라고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촛불 민심이야 어떻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시민들의 마음을 돌리기는커녕 더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식물대통령이 그나마 마지막 살길도 걷어찬 셈이다. 이날 담화를 딱 하나 평가할 부분이 있다면 박 대통령은 촛불 민심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계속 유지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하긴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물러날 뜻이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이런 참담한 지경에 빠뜨린 주범은 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사태에 대한 죄의식도 없고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한다. 공직자의 기본자세도 갖추지 못한 대통령이 국가 운영의 총사령탑을 맡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제 더 기대할 게 없다. 국회는 예정대로 탄핵을 단단히 추진해야 한다. 탄핵은 국정 공백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꼭두각시 대통령이 물러난다 해서 국정 운영이 흔들릴 나라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고 리더십은 무너졌다.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할 자격과 능력을 잃었다. 이대로 그 자리에 머물면서 나라를 계속 통치하겠다는 발상은 훼손된 나라의 자존심을 다시 한번 짓밟는 일이다.

식물대통령을 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선출 권력인 국회는 촛불 민심 앞에서 정치적 역량을 보여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국가적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선 정략에서 벗어나 국가와 미래만 생각하는 대승적 자세가 절실하다. 여소야대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야당은 정교한 탄핵 이후 로드맵을 만들어 정국 불안을 줄여야 할 책임이 더욱 무겁다.

촛불 민심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책임자인 박 대통령은 당연히 사임해야 하며 그 길만이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외침이었다. 이미 민심의 둑은 터졌다. 탄핵만이 시민을 승리로 이끄는 길이다. 엄정한 시국을 수습하는 첫 단추는 박 대통령의 직무를 속히 정지시키고 국정의 중심을 잡아가는 일이다. 위임한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 시민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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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한달째. 광화문에서는 100만명 이상의 꺼지지 않는 촛불이 횃불로 이어지고 있다. 뉴스는 아직도 대부분이 최순실의 국정농단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대통령은 헌법과 국민을 무시하고, 국가원수와 군 통수권자로서 스스로 권위를 던져 버렸다. 언젠가부터 국내 포털사이트의 청와대 연관검색어는 비아그라, 발기부전, 프로포폴 등으로 바뀌었을 정도다.

2014년 3월6일, 필자는 학군장교로서 동기생 5860여명과 함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앞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 헌법과 법규를 준수한다’는 임관선서를 했다. 이날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우리에게 ‘선배 전우들의 소임을 이어받아 강한 애국심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충성을 다해줄 것’을 주문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그날의 뜨거움은 가끔씩 힘들었던 군 생활 속에서 필자를 잡아주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장병들이 믿고 기대야 하는 정신적 지주 격인 군 통수권자는 스스로 군의 사명감을 저해하고 장병들의 권위와 사기까지 붕괴시켰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목숨으로 지켜온 선배 전우들의 뒤를 이을 각오로 훈련 중인 장교 후보생단의 기개를 꺾어버렸다.지금 이 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작전에 투입되고 있는 우리 용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지휘관들은 과연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주변에 간신뿐인 군 통수권자는 최순실에게 국정을 맡겨놓고 얼이 빠져 있었는데 일선 지휘관들의 명이 서겠는가.

미국에서는 주한미군의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는 트럼프가 당선되고,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핵실험을 계속하는 일촉즉발의 위급한 안보상황이다. 군 통수권자는 장병들에게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군기를 주문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 컨트롤 부재 상황에서는 그렇게 주문할 수 없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국정을 수습해 ‘이러려고 군 생활하나’ 하는 자괴감을 장병들에게 그만 심어주어야 한다.

김용태 | 예비역 중위·고려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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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많은 국민이 검찰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숨죽여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혐의가 나오고 어떤 비리가 더해질 것인지 검찰의 수사 하나하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이 밝혀낸 것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범죄 혐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별개로 우리는 최근 드러나고 있는 사건들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 국정농단과 엄청난 비리가 일어났는지 근본 원인을 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민정수석은 청와대에서 민정, 공직기강, 법무, 민원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민정수석은 국가 인사에 관여하고 감시하며 사정기관들의 정보를 취합하기도 한다. 현재 확인된 여러 비리들은 민정수석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지만 실상은 민정수석이 오히려 이런 일들에 공공연하게 앞장선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4일 오전 김수남 검찰총장이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검사 출신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앞서 박근혜 정부에는 곽상도·홍경식·김영한 3명의 민정수석이 있었는데 모두 검사 출신이었다. 사의를 표명하긴 했지만 우 전 수석의 후임으로 임명된 최재경 민정수석 역시 검사 출신이다. 이 밖에도 정홍원 전 국무총리, 황교안 국무총리, 김기춘 전 비서실장, 안대희 총리 후보, 그리고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를 맡은 유영하 변호사까지 모두 검사 출신이다.

이 정도 되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검찰공화국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검사 출신들이 가장 막강한 실권을 행사하고 있던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엄청난 비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실질적인 견제기관 하나 없는,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한국의 검찰조직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 결코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임기 중 가장 후회되는 일로 검찰을 개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와 함께 근본적으로 한국의 검찰이 바뀌어야 한다. 수십년간 외쳐온 말뿐인 그들만의 개혁이 아니라 진정으로 검찰이 바뀌어야만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동규 | 충남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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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흩날리는 늦은 오후. 옷깃을 여미며 지하철을 탔다. 안국역에서 내렸다. 안국(安國), 나라의 평안. 말의 의미가 새삼스러워졌다. 헌법재판소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내 인왕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애석하다, 희뿌연 안개에 가려 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우러르는 인왕산이다. 어렴풋한 흔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광화문으로 쇄도하는 발걸음에 한 걸음을 보탰다. 광장임에도 숨바꼭질하듯 걸어야 했다. 많은 궁리가 일어났다. 경복궁역에서 청운동 사무소까지 가는 길. 예전 궁리출판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눈 감아도 훤하다. 옆사람과 어깨를 걸고 나아가며 구호를 외쳤다. 특히 다음 일곱 글자에서 울컥, 했다. “국민이 명령한다!” 행진하는 너는, 나는, 우리는 저 문장의 확고한 주어다. 인왕산 쪽 길가에 가로수가 서 있다. 큼지막한 돌화분에 회양목을 울타리 삼아 심어진 무궁화. 총 68그루였다. 나흘 전이 소설(小雪)이었다. 시절에 맞게 오늘 첫눈이 내렸다. 나무는 꽃과 잎을 모두 버렸다. 벌어진 열매 속으로 하늘의 소식이 들어가고 있었다.

대열을 벗어나 잠깐 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정상에서 기습 고함도 질러볼까. 직접 인왕의 안부도 살피고 싶었다. 아뿔싸, 등산로가 폐쇄되었다. 성난 목소리는 이미 북악산 꼭대기까지 넘실대고 있었다. 둘레길을 걷다가 청와대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무무대(無無臺)이다. 돌판에 그 뜻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 왜 아니겠는가. 참여자 150만명에 연행자 0명, 부상자 0명이다. 대통령이 내팽개친 국격을 거리의 국민들이 쌓아올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저 아름다운 품격을 보라!

산에 갔다 온 사이 밤은 깊어졌고 국민들은 늘어났다. 도로에 송곳 하나 세우지 못할 만큼 빽빽했다. 경찰차에는 꽃 스티커도 많이 붙어 있다. 그 사이 무궁화는 여전하다. 이 함성, 이 물결, 이 느낌. 공중을 가득 채운 파동을 무궁화도 흠뻑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년 봄에 얼마나 본때 있게 피어날까, 골똘한 생각에 잠긴 무궁화.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 아욱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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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민주세력은 박정희 신화와 싸우고 있다. 우리의 상대는 박근혜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박정희다. 박정희를 가리키는 ‘반신반인’이라는 말에 모두 놀랐겠지만 이곳에서는 이 말이 오히려 겸양이다. 이곳에서 그는 온전한 ‘신’이다. 샤먼이다. 박정희 초상 앞에 촛불을 켜놓고 기복하는 모습을 이 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박정희 신화를 재생산하는 일은 쉬지 않고 진행됐다. 박정희 동상을 크게 세우고, 그의 최대 치적이라고 하는 새마을 담론을 동원하면서 박정희 신화를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박정희와 싸우는 일은 참 어렵다. 신화는 맹목적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보다도 강력하다. 이데올로기는 어떤 가치와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이지만 신화는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무섭다. 박정희 신화는 비판하면 할수록 더 단단해진다. 신화의 세계에서 박정희는 어떤 대화와 토론도 허락하지 않는다.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전교조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오늘 교육부에서 발표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이곳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신화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경기 군포 지역구를 버리고 고향을 찾아온 김부겸은 박정희 신화와 싸우기 위해 고육지계를 썼다. 그는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그리고 그것과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의 교류를 제안했다. 의표를 찌르는 제안이었다. 민주진영에서는 그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 후보의 공약에 박정희 컨벤션센터가 무슨 말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부겸의 의도는 박정희를 신화의 영역으로부터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내리자는 것이었다. 김부겸은 박정희를 역사의 세계로 호명한 후, 그를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차근차근 그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따져보자는 계획이었다. 김부겸이 오해와 논란을 감수하면서 내건 그 ‘아슬아슬한 공약’은 이유가 있었고 타당한 것이었다. 그것은 대구·경북에서 신화가 된 박정희와 싸우는 방편이었다. 신화를 상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김부겸은 박정희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그런 부담스러운 공약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박근혜 스스로가 박정희 신화를 깨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박근혜는 박정희 신화로부터 걸어 나온 ‘신의 딸’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의 신탁(神託)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의 언어는 아버지의 그것이고, 그의 국가관도 아버지가 끌고 가던 유신체제의 그것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시대에 성장이 멈추어버린 신의 딸이다. 그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여 좋은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고,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시대착오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랏돈을 빼돌려 최순실에게 주어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냉혹한 보복을 하였다. 박근혜를 지배한 것은 박정희의 신탁이었다. 그가 재벌들을 불러놓고 거래를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가 하던 방식대로 권력을 휘두르다 파국을 맞이했다.

이제 시민혁명의 횃불이 켜지고 박근혜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자 박정희 신전의 어둠도 걷히고 있다. 요즈음 박근혜의 거취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모양인데, 중요한 것은 박근혜의 퇴진 과정에서 박정희 신화의 본질을 보여주고 그것을 역사적으로 청산하는 일이다. 박정희가 저렇듯 신화가 되어 그의 유령이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는 것은 그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역사적 청산의 기회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짚어서 정리하고 평가하고 징벌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것이 박정희의 신탁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정치인은 박근혜의 퇴진을 두고 명예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발언이다. 이 사태를 정치적 타협으로 적당히 마무리하겠다는 정치적 수사가 아닐까라는 염려 때문이다. 박근혜가 자진 사퇴를 한다고 해도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박정희 신화는 다시 부활할지 모른다.

검찰과 특검수사, 국정조사, 탄핵 등의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는 박정희 신전의 어둠을 걷고 박정희의 신탁이 어떻게 박근혜를 통해 육화되고 박정희의 유령이 우리들 곁을 어떻게 배회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질서의 건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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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이 어제 모임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 퇴진’을 직접 제안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에 주목한다. 전날 전직 국회의장 등 원로들의 퇴진 제안에 이어, 여당 주류까지 퇴진 요청에 동참한 것이다. 늦었지만 전국에서 190만 촛불이 켜지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친박 핵심들도 인식하게 됐다는 증좌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들 제안을 스스로 누차 밝힌 대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주류 중진들은 어제 시내 모처에서 비공개 오찬 회동을 하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국가와 본인을 위해 명예로운 퇴진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건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들은 4~5% 지지율에 머무는 박 대통령을 지탱해주던 마지막 보루였다.

서청원 의원은 회동 후 “국가와 대통령을 위해 탄핵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이 맞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또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만, (야당의 본회의 표결 추진 전에)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이들은 허원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서 의원도 박 대통령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원유철·김재경·홍문종·나경원·주호영·정우택 의원(왼쪽부터 시계방향) 등 주류·비주류 중진의원 6인 협의체가 2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당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당내 분위기도 급속히 퇴진 쪽으로 기울고 있다. 대통령 탄핵 추진 요구에 펄쩍 뛰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친박 중진들의 건의에 대해 “박 대통령이 여러 의견을 듣고 있으니 참고하시지 않겠느냐”며 “고명하신 국가 원로들 고견을 바탕으로 당 어른들도 시국수습 의견을 낸 것 같아 보인다”고 평가하며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민심에 맞서던 친박 주류도 대통령 임기 축소에 동의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촛불민심은 5주째 계속되면서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늘어가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는 박 대통령이 연루된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퇴진 요구를 넘어 “체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조만간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고, 현재 흐름이라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지지도는 한국 역사상 최저인 4%(한국갤럽)까지 떨어졌고, 국회 제1당이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당 지지도에서 3위로 전락했다.

유권자와 부대껴야 하는 지역구 의원들은 민심 흐름을 절감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 친박 의원이 “맞아 죽을까봐 무서워 지역구에도 못 내려가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이겠는가.

정권도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다. 사의를 표한 뒤 박 대통령의 집요한 만류를 뿌리쳐온 김현웅 법무부 장관 사표가 결국 수리됐다. 교육부마저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철회안을 내놓는 등 원심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친박 주류 핵심의 태도 변화로 ‘청와대에서 장기 농성’이라는 박 대통령의 기존 전략은 폐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지는 둘로 줄었다. 퇴임 시한을 못박고 국회와 정부에 질서있게 권력을 인계하는 방안과, 끝내 버티다가 친박까지 가세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뒤 청와대에서 유폐돼 헌법재판소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탄핵이 추진되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추안이 인용되든 안되든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는 점은 박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비정상인 한국 국정을 정상화하는 방안인지 두 번 다시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진 선언에 개헌이나 면책 등 이런저런 조건을 달거나 퇴임 시점을 명확하게 못박지 않으면 탄핵 회피용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퇴진 선언을 계기로 국회 내 탄핵 절차 진행을 훼방한 뒤 다시 지지부진하게 끌려고 한다면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0만명의 촛불시민이라면 그 정도 꼼수는 능히 들여다보고 남을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은 국정 최고지도자로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조건 없이, 가급적 이른 시점의 날짜를 분명히 택해 사임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스스로가 초래한 국정 난맥상에 깨끗하게 사과를 하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퇴진 로드맵’을 밝혀야 한다.

또 변호인 뒤에 숨어 검찰 수사를 방해할 것이 아니라, 숱하게 제기된 모든 의혹과 관련해 성실하게 조사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때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살아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것도 시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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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여론 수렴 후 내년도 학교 현장 적용 방안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준식 부총리는 “역사적 사실과 헌법가치에 충실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편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검토본은 우려했던 대로 헌법가치를 부정하고 편향적 역사인식으로 가득 차 있다.

현장검토본은 1948년의 이승만 정부 수립을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했다.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이승만 정부라는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강조한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친일파를 ‘친일세력’으로 완화하고, 친일 관련 서술을 줄인 것도 이해가 안된다. 정부가 앞장서 건국 97년의 역사를 68년으로 축소하고, 독립운동사를 부정하고 나선 셈이다. 반민족적, 반역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현장검토본은 또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옹호·미화하고 있다. 독재란 용어를 ‘권위주의 정권의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로 바꾸고, 박정희 정권 시절을 다룬 단원 제목을 ‘냉전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사회발전’으로 정하는 식이다. 독재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5·16쿠데타의 경우 쿠데타 명분과 함께 개혁을 설파하는 ‘혁명공약’까지 따로 싣고 있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옹호하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유신체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고만 기술했다. “대통령이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기존 교과서 기술과는 천지 차이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서는 마치 국가 안보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경제성장도 성과는 강조하고 문제점은 축소하는 편향적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문제점과 관련해 ‘전태일 분신사건, 농민의 희생 등이 있었다’는 식으로 단순 사실만 나열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마을운동의 경우 비판적인 내용은 한 줄에 그치고 칭찬 일색으로 서술한 것과 대조를 보였다. 이 부총리는 “역대 정부 독재를 사실대로 서술하고 경제성장의 성과와 한계를 균형있게 서술했다”고 밝혔지만 낯부끄러운 얘기다.

국정교과서는 내용의 문제에 앞서 역사교육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해치는 반민주적, 반헌법적 성격 때문에라도 폐기해야 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교과서 내용이 뒤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는 교육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뉴라이트 계열이거나 친정부 학자들이 다수인 집필진은 편향성 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편찬과정과 집필진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밀실집필을 강행함으로써 국정화 정책의 공신력도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바꿔보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려는 기도가 성공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국정농단 주범으로 국정 운영의 권능을 상실한 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법이자 반역사적인 폭거다. 이런 교과서로 국가의 미래인 학생을 가르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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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 본래 맘 편하게 걷는 곳이 아니다. 머물러 있기에 적합한 곳도 아니다. 곳곳에서 전경과 마주칠 수 있기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빨리 지나가고 싶은 거리이다.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로, 그리고 자하문로를 걸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 기분을 안다.

2016년 11월26일 다섯 번째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그날에 모인 군중은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행진했고 그들의 요구를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야하라”고. 그날 군중의 한 명이 되어 세종대로를, 사직로를 그리고 종로를 오후 3시부터 그다음 날 새벽 1시까지 걸었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아침이슬을 맞겠다는 즐거운 결기로 무장한 이 거대한 인간의 집합체를 관찰했고 그들이 외치는 구호를 채집했다.

도시의 차량을 통제한다고 도심의 거리가 광장이 되지 않는다. 광장은 도시공학의 산물이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에 생명체인 인간이 모일 때 광장은 만들어진다. 동원된 군중은 광장을 완성하지 못한다. 동원된 군중에게선 광장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자발적 의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과 자연권을 갖고 있는 존재로 태어났음을. 서울의 150만명, 전국적으로 190만명의 사람들은 교과서에 단지 글로 존재하던 천부인권을, 그리고 국가는 자연권을 지닌 개인들이 맺은 계약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어냈다. 자신이 자연권을 지닌 사회계약적 주체임을 자각한 개인들이 모였다. 그래서 평상시 통치의 영역이자 국가의 의지가 재현되는 곳에 다름 아니었던 광화문 일대가 시민들의 광장으로 돌변하는 사태가 기적처럼 일어났다. 그 기적의 다른 이름이 촛불집회이다.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텍스트는 물리적 힘으로 변화했다. 그들이 행진할수록 결집된 의지는 자연권에 의거한 주권자의 엄중한 명령으로 바뀌었다.

자유발언이 펼쳐지는 광장에서 고등학생, 주부, 회사원, 농민, 목사, 외국인, 대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현재의 부당함에 대해 발언할수록 그들은 국민으로 동원된 착한 주체에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의 대칭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사회계약적 주체로 거듭났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연인원, 그리고 물리적으로 그곳에 있지 못했어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 광장에 접속한 사람의 규모는 ‘국민’에서 벗어나 ‘시민’의 역능(力能)과 비례한다.

조직에 속한 사람이든 그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든 이곳에선 ‘시민’이라는 주체로 합일된다. 깃발을 따라 행진하든 혼자서 행진하든 차이가 없다. 여기서는 혼자서(solitary)와 연대(solidarity)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국민’이라는 오래된 강제와 사유습관에서 벗어나는 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수없이 손가락으로 연습했던 ‘좋아요’와 ‘공유하기’와 ‘댓글달기’는 시민의 구호와 몸짓으로 거리에서 재현된다.

‘국민’으로 소환된 사람은 의무를 우선시한다. ‘국민’은 자신의 미래를 국가가 제시해주길 기다린다. 그리고 국가가 제시한 미래를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채 믿어버린다. 국가에 의한 배신에 배신이 더해져도 미래를 국가에 기대는 관습을 ‘국민’으로 소환된 사람은 버리지 못한다. 사회계약적 주체로 거듭난 사람은 ‘국민’이 알지 못하던 시민의 ‘권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권리를 지닌 시민의 눈으로 지금 현재의 박근혜호 대한민국을 목격한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가 쓰인 손팻말을 들었다.

사회계약적 주체는 ‘광장’에서 각자의 미래를 상상하고 타인들과 교류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원한다. 모든 ‘국민’이 ‘시민’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압축성장 신화에 사로잡힌 앙시앵 레짐의 모든 관습에서 유래한 관행과 제도들이 대체되지 않는 한, 박근혜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어도 과거는 무한 반복된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이곳에선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신화화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앙시앵 레짐, 즉 구체제를 지칭하는 기호이다. “박근혜를 즉각 구속하라”는 외침은 구체제에 대한 긴급 정지명령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구체제가 지연된 현재이다. 박근혜 퇴진은 단순히 정권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유예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원한다. 미래는 현재가 작동 중지될 때야 비로소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구호와 함께 통치의 거리 광화문 일대를 걷는다. “정치검찰을 청산하라. 검찰을 개혁하라”, 그리고 “재벌들도 공범이다, 정경유착 재벌기업 처벌하라”고. 사회계약적 주체는 현재에 대한 작동 중지 명령을 시민의 의무로 파악한다. 국가에 광장에서 수집된 우리 모두의 공통의 미래를 요구하는 것이 시민의 권리라 이해한다. ‘국민’이었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는 광장에서 이제 모든 것이 된다. 미래는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현재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초조하기에 얼굴을 찌푸리지만,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에게서 분노와 좌절은 찾기 힘들다. 여기엔 잉여의 무기력도 헬조선의 아나키스트적 분노도 없다. 여전히 진지하지만 영리한 군중들은 욕설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미래를 꿈꾸는 생성의 기쁨을 믿는다. 촛불집회는 이렇게 반복을 통해 진화했고 성장했다. 생성의 기쁨을 알아버린 사람은 폭력에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폭력은 현재를 지키려는 자의 비통한 마지막 몸부림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명령하는 국가와 통치하는 국가를 넘어서 광장을 담는 국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광장을 담지 못하는 그 어떤 정치, 그리고 그 정치가 제도화된 국가는 존재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2016년 11월26일 그날 “우리가 주권자다”, “우리의 명령이다”, “세상을 바꾸자”라는 외침은 그래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노명우 |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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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은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자긍심이 고취될 때 느끼는 심리적 만족감을 이르는 속어다. 마약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마냥 국가적 소속감이 자존감을 강화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지난 26일 전국 190만명의 시민이 참여한 촛불집회에서 ‘국뽕’ 경험을 했다는 인터넷 간증이 이어졌다. 지구촌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클린 평화 시위’에 외신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세상 어느 나라 시위대가 집회 이후 청소까지 마치고 귀가한단 말인가. 역설적이게도 이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장본인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재물·섹스·가족사가 얽히고설킨 스캔들로 매일같이 추문을 생산하며 대한민국 국격을 땅바닥에 메다꽂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방송인 허지웅은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5주째 (촛불집회에) 나왔는데 요즘은 한 주 동안 만신창이로 바스러진 시민의 자존감이 토요일마다 회복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가 국격을 구겨놓으면 시민이 촛불로 다려 펴낸다.” 또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같은 날 밤 8시에 1분간 진행된 시민들의 소등시위에 대해 이렇게 썼다. “광화문 카운트다운 맞춰서 불 끄고 얼른 창밖으로 어느 집에 불 꺼지나 보고 있는데 의외로 많은 집에서 차례로 타다닥 불이 꺼지는 걸 보고 차오르는 국뽕을 참을 수 없었다.”

이번 ‘국뽕’ 경험은 과거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2002년 월드컵 국뽕이 영웅적인 선수들과 자신의 동일시를 통한 만족감이었다면, 이번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험은 시민사회의 성격을 긍정적 방향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희망도 나온다.

다만 이번 평화시위가 ‘유별나게’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누리꾼들은 지적한다. 고 백남기 농민을 사망케 한 시위를 비롯해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은 그간 평화시위를 지향해왔다. 경찰의 차벽이 물러나고, 물대포가 사라지고서야 물리적 마찰이 줄어들었다. 우리 시민들은 원래부터 멋진 사람이었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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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장에서 터져 나온 지 5주가 지났다. 촛불민심은 영하의 날씨에 들이친 진눈깨비에도 꺼지기는커녕 거세지고 있다. 그만큼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열망이 뜨겁다는 증좌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일부 정치세력들이 개헌론을 끼워 팔려고 하고 있다. 촛불민심에 편승한 곁불 쬐기다.

최근 개헌 논의 불씨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폈다. 그는 23일 “문제 해결은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탄핵과) 개헌도 동시에 추진하려 한다”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3지대론’ 토론회에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정 전 의장과 손 전 고문은 26일 따로 만나 개헌 논의를 주고받았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개헌 작업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추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도 개헌 쪽에 서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 28일 (출처: 경향신문DB)

이들은 현시점에서 개헌을 주장하는 게 적절한 일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시민 10명 중 8명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이럴 때 각자 정치세력이 개헌을 부수 안건으로 끼워 팔면 탄핵 추진의 집중력이 떨어질뿐더러, 대오마저 흐트러질 수 있다. 개헌 저의도 의심받고 있다. 친박은 개헌이라는 복잡다단한 의제를 끼워 넣음으로써 탄핵을 늦춰 보려 하고 있다. 야당 내 개헌파는 굳어져 가는 대선판을 뒤흔들어 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개헌은 촛불민심과 동떨어진 것이다. 단 한 차례만 광화문이나 자신들의 지역구 촛불집회 현장에 가 봤으면 알 수 있다. 지난 5차례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외친 구호는 “박근혜는 물러나라, 재벌도 공범이다”였다. 개헌 논의는 여의도에 머물러 있지 광장을 파고들지 못했다.

이들이 진정으로 개헌을 하고 싶다면 탄핵 문제가 해결된 뒤 대선 혹은 총선 공약으로 구체적인 개헌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지 헌법을 바꾸자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단일한 정치세력으로 뭉치자는 것만큼 정치공학적인 접근도 없을 것이다. 개헌파인 남경필 경기지사도 “정치권 안에서 계속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개헌 논의는 사상누각일 뿐”이라고 했다. 얕은수로 개헌을 추진하다가는 촛불민심이 자신들을 향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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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시위의 새 역사를 썼다. 전국을 밝힌 190만 촛불은 사상 최대 규모요, 촛불의 절정이었다. 춥고 눈·비가 내린 궂은 날씨에도 훼손된 민주주의를 시민 손으로 직접 되살리려는 촛불은 횃불로, 들불로 번져 활활 타올랐다. 시민들은 활력이 넘쳤고 외침은 엄중했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에워싼 인간띠 잇기는 청와대를 포위하며 행진을 벌였다. 6살 아들과 함께 나온 젊은 엄마는 “이미 민심이 대통령을 이겼다”고 했다. 시민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골목길에서도 버려진 손팻말 등 쓰레기를 주웠다. 광화문광장을 일순간 암흑으로 바꾼 ‘1분 소등 행사’에서 시민들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외치며 다시 불을 붙였다. 감동과 전율이 몸에서 몸으로 전해졌다. 남녀, 세대, 지역, 이념을 떠나 모든 시민이 하나가 된 자리였고, 대화합 축제의 장이었다.

주말인 26일 오후 8시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150만개의 촛불이 1분간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함성이 이어졌다. 촛불은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옆으로는 종로·청계천로·새문안길, 율곡로까지 메우며 밝고 힘있게 다시 켜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침묵은 진실을 덮을 수 없다.” 시민들은 너나없이 목청껏 울분을 토해내며 청와대를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전국 60여개 도시에서도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40만개의 촛불이 함께 타올랐다. 사진공동취재단

광장에 나오지 못한 수많은 시민들도 마음은 함께했을 것이다. 시민들은 비폭력·평화 시위를 유지했으며 경찰은 평화시위 보장 약속을 지켰다. 외신들도 “사상 최대 피플 파워” “거대한 콘서트”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대통령은 국격을 추락시켰지만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전 세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보여줬다.

청와대는 주말 집회 이후 “국민의 뜻을 다시 한 번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의 소리를 잘 듣고 겸허한 자세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하나마나한 반응만 5주째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는 시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속 시원한 해법을 내놓기는커녕 오히려 시민들의 화만 돋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2차 대국민담화 이후 3주일 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10월20일), 국무회의(10월11일)를 마지막으로 주재한 이후 공식 회의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법무부 장관·청와대 민정수석이 낸 사표조차 1주일이 다 되도록 처리를 못하고 있다. 참모가 던진 사표조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대통령의 현재 모습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교육부의 반기(反旗) 조짐에도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모든 국정 현안을 판단하고 결정해줬던 비선 측근들이 한순간에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검찰이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대면조사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주엔 국회 국정조사가 본격 개시되고, 야당이 추천한 특검도 임명해야 한다. 대통령으로선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된 셈이다. 더는 입을 닫고 넘어가기 어렵게 됐다. 아무런 해법도 내놓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박 대통령에 대한 시민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혹시 역풍을 기다려 국면전환을 하겠다는 속셈이라면 가당치도 않고 이뤄질 수도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수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한 달 동안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게 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200만 촛불의 명령은 탄핵 전에 퇴진하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대통령 스스로 결단해주길 바라는 것뿐이다. 강제로 끌려 내려오기 전에 스스로 사퇴 일정을 제시하고 물러나는 게 본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바른길이다. 청와대는 시민들에게 포위됐고, 섬처럼 고립됐다. 들끓는 민심은 이제 폭발단계에 이르렀다. 더 얼마나 많은 촛불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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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처음으로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언론에 보도된 ‘오보 괴담 바로잡기’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11개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첫번째 글이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이것이 팩트입니다’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 해명 아닌 해명이야말로 대통령이 당장 그 직을 그만둬야 할 이유들을 확인해주고 있다.

첫번째, 이 글은 “대통령은 관저 집무실 및 경내에서 당일 30여차례의 보고와 지시를 내렸다”로 시작한다. 첫 문장이 문법적으로 틀렸지만 어지간히 급했구나 하고 넘어가자. 문제는 ‘관저 집무실 및 경내’라는 표현인데, 조금 뒤에 “청와대에는 관저 집무실, 본관 집무실, 비서동 집무실이 있으며 이날은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했다고 밝힌다.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 안에 3개임을 나도 처음 알게 되었지만, 대통령이 일과시간에 일할 곳은 숙소에 딸린 관저 집무실이 아닌 본관이다. 몸이 불편했다거나 하는 납득할 만한 사정이 없는 한 평일에 관저에 머문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어디서든 보고를 받고 지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운하며 대통령은 “모든 시간이 근무시간”이라고 강변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법률대리인인 나승철 변호사가 22일 박근혜 대통령 고발장을 접수시키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고 있다. 이 시장은 세월호 7시간 의혹과 관련해 박 대통령을 직무유기죄 및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고발했다. 이준헌 기자

두번째, 마음 한구석이 켕겼는지 관저에 머문 사실을 희한한 논리로 합리화한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업무는 현장의 지휘 체계와 신속한 구조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회의 준비를 위해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경내 대면회의 대신 20~30분마다 직접 유선 등으로 상황보고를 받고 업무 지시를 했다”고 한다. 6000t급의 큰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는 긴박한 순간에 대통령이 보좌진과 머리를 맞대고 상황을 공유하며 바로바로 대응해야 옳을까, 아니면 참모들이 회의하느라 바쁘면 구조에 방해가 될까봐 전화 지시와 서면보고(맙소사!)에 의존하는 것이 나을까? 청와대의 해명은 한마디로 궤변이다.

세번째, 압권은 “이날의 진짜 비극은 오보에 따른 혼돈”이라는 주장이다. 계속 상황을 확인하던 대통령은 오후 2시50분 안보실장이 앞서의 보고가 잘못되었다고 전화로 알리자 바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을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해경청장에게 전화로 철저한 구조를 지시했다는 오전 10시30분도 세월호가 이미 뒤집혀 구조가 힘들어진 때였지만, 이 시각부터 대통령이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한 시각까지 헛되이 흘려버린 4시간20분이 언론에 책임을 미루며 변명해도 될 짧은 시간인가? 언론 오보부터가 국가 비상대응체제가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터진 일이었다. 기초적인 상식마저 무너진 논법이다.

네번째,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시점부터 오후 5시15분 중대본에 도착하여 ‘구명조끼를 입은 학생들을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드냐’는 엉뚱한 질문을 할 때까지 다시 2시간 이상이 흘러갔다. 중대본으로 이동하며 수행원의 스마트폰으로 뉴스나 동영상을 2~3분만 찾아봐도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해명은 단 한 줄도 없다. 궤변에도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 김현미 의원은 대통령이 중대본을 떠난 후 그날 밤 내내 어떤 회의도 열리지 않았고 관련 지시도 전무했음을 예결위 정책질의에서 확인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사실이라면 대통령의 심신이 적어도 그날 어떤 원인에 의해 국정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그 원인을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

해명 글의 마무리는 인용하기조차 거북하지만, 직접 홈페이지를 뒤져볼 여유가 없는 독자를 위해 그대로 옮긴다. “그러나 결국…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울었다.”

대통령을 변호한답시고 이런 글을 올린 참모들이 제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중대한 사고인지, 희생자와 미수습자 가족들이 2년 반이 넘도록 겪어온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해명 내용만으로도 대통령이 곧장 물러나거나 탄핵당할 명백한 사유가 된다. 정확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진실 하나를 거듭 확인한다. 청와대의 오만하고 우둔한 자들은 세월호 참사 앞에 진심으로 흐느껴 울어본 적 없다는 것을. 이들은 내리막길을 달리는 ‘불타는 수레’에 기름을 붓고 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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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가 임박했지만 국정화에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법원이 국정교과서 집필 과정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일부 일선학교는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는 실력행사를 선언하고 나섰다. 전국의 교육감들은 어제 협의회를 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중단 및 폐기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런 반발과 혼란에도 국정교과서 정책을 강행할 것인지 교육부에 묻고 싶다.

서울행정법원은 어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조영선 변호사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역사교과서 정보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집필기준을 공개해도 집필 및 심의업무의 공정한 수행이 지장받을 것이라는 개연성이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집필 과정이 불법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불법성이 입증된 역사교과서라면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역시 용납해선 안될 일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대통령과 정부 정책에 대한 시민의 분노와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피의자 대통령’이 추진한 교과서라는 것만으로도 국정화는 이미 교육적·윤리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열을 지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주장하는 패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광주시의 모든 중학교는 내년에 1학년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중2, 3학년은 기존의 검정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상당수 시·도 교육청도 이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내년에 중1 대상으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주문하도록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냈지만 일선 학교들이 실력행사로 맞서면서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시·도 교육감들은 어제 협의회에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강행한다면 모든 방안을 강구해 대처하겠다고 강력 경고했다. 내년부터 모든 중·고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가르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파행을 면치 못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시민 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세계적 추세 속에서 국가가 지정한 단일한 역사관만을 주입하겠다는 시대착오적 역사교육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교육부는 명심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중단하고 포기하는 것만이 역사와 시민 앞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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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버티기도 차츰 끝이 보이고 있다. 검찰은 대면조사 최후통첩과 별도로 연일 수사의 강도를 높이며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매일 몰아치는 대기업 수사는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죄를 정조준하고 있다. 뇌물죄가 입증되면 대통령은 퇴진 이후 사저가 아닌 감옥으로 가야 한다. 30일부터는 국정조사가 시작되고, 특검도 내달 초부터 활동에 들어간다. 이번 주말 촛불집회에는 전국에서 200만명이 모일 것이라고 한다. 사상 최대 규모다. 검찰 수사·국조·특검·촛불이란 파도가 사방에서 동시에 박 대통령을 덮치는 양상이다. 어느 것 하나도 피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이 본격적인 탄핵 절차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르면 12월2일, 늦어도 9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안을 표결에 부치겠다”고 못 박았다. 야 3당은 각각 탄핵안 준비기구에서 탄핵안을 만들어 이달 말 공동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비주류 의원들도 야당 발의 단계부터 동참할지, 표결에만 참여할지 아직 고심 중이나 찬성에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그동안 탄핵을 둘러싸고 불가측했던 안개가 걷힌 것은 다행이다. 이대로라면 수적으로도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이 필요한 탄핵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대통령 탄핵 당론 채택을 논의한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적 불행이 기어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탄핵 절차에 돌입하게 된 작금의 상황은 박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부정·거부하고 국회 추천 총리 제안을 철회하는 등 대국민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겼다. 그리고 되레 ‘탄핵을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강경으로 돌아섰다. 박 대통령이 자진 퇴진의 기회를 걷어차고 장기 농성 태세에 들어감에 따라 탄핵 추진은 불가피한 외길이 됐다.

지금 시중에선 사람 둘만 모이면 어느 자리 할 것 없이 온통 박근혜·최순실 얘기뿐이다. 부끄러움과 한탄, 자괴감에서 비롯된 ‘박근혜 피로’가 하루하루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국정공백과 혼란은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국정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하지만 정상적인 국정수행은 불가능하다. 피의자 신분인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래서도 안된다.

민심은 더 이상 박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 3당은 촛불민심에 나타난 시민들의 분노와 기대를 모아 나라의 혼란을 서둘러 수습하고 국정을 정상화하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새누리당도 동참해야 할 것이다. 여야는 어느 때보다 대승적으로 타협하고 긴밀히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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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박근혜가 기어코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국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체제의 매듭을 짓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문재인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박근혜만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제도이고 규칙이므로. 박정희를 존경했기 때문에 박근혜를 좋아했던 유권자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보은(報恩)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덕분에 북한의 위협을 이겨냈고 이만큼 먹고살게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딸을 꽃가마에 태우는 것이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수미상관한 매듭이었다. 나는 다른 종류의 매듭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작동했지만 점차 효용을 잃어 이제는 거의 작동하지 않게 된 시스템을 마침내 그의 딸이 철저히 절단을 냄으로써 매듭짓게 될 것이라는 예감. 결국 우리는 그 파국적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파국은 다행스러운 면도 없지는 않다. 더 이상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린 박정희의 기나긴 그림자를 마침내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파국 앞에서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의논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의 파국이 박근혜라는 한 개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주권자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 파트너의 철저한 배제, 5년 단임 떴다방 정권의 대통령 무책임제, 위험의 사회화와 이윤의 사유화 같은 제도의 조합은 지나간 모든 정권에서 문제를 야기해왔다. 그 꼭짓점에 어떤 개인이 앉느냐에 따라 문제의 정도와 양상이 달랐을 뿐이다. 우리의 제도는 언제나 문제를 안고 있었고, 박근혜는 그 문제를 판타지 소설로 만드는 주술을 부렸을 따름이다. 언젠가 이 시스템의 꼭짓점에 박근혜보다 더한 진짜 악마가 들어앉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를 이틀 앞둔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벽면에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이석우 기자

내가 불행하게 생각하는 것은 야권의 유력 주자들에게서 ‘지도자의 언어’를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야권은 대체로 광장의 촛불에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것이 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광장은 엄청난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광장은 앙시앵 레짐을 해체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지는 않는다.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탄 난 정권과 덩달아 멈춰버린 행정부를 대신해 이 모든 논의를 국회가 책임 있게 이끌어나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야당이 앞장서서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고 권력을 가져올 준비가 되어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하고, 그중에서도 대선주자들이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앞장서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대선주자의 기득권은 지지율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러나 지금의 지지율은 우리가 그렇게도 재설계하고 싶어 하는 낡은 시스템하에서 얻어진 것이다.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대표를 보자. 이 와중에도 그의 지지율은 기껏해야 2~3%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대결적 정치구도에서 그의 편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면서도 그의 편에 합류하기를 꺼린다. 확장되지 않는 지지율에 연연하기보다는 다른 주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는 편이 훨씬 나은 전략이다.

국가적 민폐가 되어버린 박근혜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리기 위해 광장의 촛불이라는 동력을 활용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동시에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하나하나 합의하고 우리 중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것만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국민들은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심할 것이다. 마침 새누리당의 남경필 지사는 탈당을 결행했고 김무성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와 탄핵을 선언했다. 누군가는 불타는 수레에서 먼저 빠져나오려는 정치쇼라고 비판하겠지만, 비록 정치쇼라 하더라도 묵직한 희생을 감내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그들에게서 언뜻 지도자의 모습을 본 국민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제 공은 야권 주자들에게로 넘어왔다. 혁명의 시대이지만 지도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한 시대의 파국적 종언을 넘어 새 시대의 청사진을 보여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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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민심과 국민 여론은 거듭 대통령의 하야다. 하지만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헌법을 무기로 대통령이 국민을 이기겠다고 작정했다는 뜻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마지막 가능성으로 남았던 대통령의 정치는 완료됐으며 명예혁명과 망명을 운운했던 일각의 로망은 소멸했다. 남은 것은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다. 국회의 정치는 이제 외길로 보인다. 탄핵을 가결하고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대통령의 헌법과 국회의 헌법이 맞붙는 막다른 길이다. 반면 시민의 정치는 이 길과 함께 또 다른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사문화된 원칙을 되살려 엘리트 독과점 정치의 대의 민주제를 넘어서겠다는 국민혁명의 길이다.

날마다 특종과 속보와 가십성 뉴스가 홍수를 이루지만 국민은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지 않는다. 대통령의 하야를 마땅하게 여기는 민심은 하야한들 지난한 탄핵으로 간들 그다음이 마땅치 못한 이 난국을 냉정하고 차분하게 직시하고 있다. 국민은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지웠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과 처벌은 응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무엇을 위해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이다. 초겨울의 주말문화이자 저녁문화가 된 광장 행렬이 100만 촛불을 켜면 때맞춰 청와대 실내등이 꺼지고 경복궁과 북악산이 깜깜해지는 광경은 우연이 아니다.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교차하는 이 빛과 어둠의 대비는 국민 저마다의 간절한 ‘보디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거대한 ‘미디어 아트’다.

이 ‘국민예술’이 열망하는 국회의 정치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의 4대 국정과제를 사사로운 먹잇감으로 갈취한 ‘비선 실세’의 공범들과 이들을 공권력으로 뒷바라지한 국가 시스템의 적폐를 대청소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진 국회를 정당득표 연동 비례대표제를 통해 일신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탄핵 정국을 경과하는 동안 국회의 정치가 보여줘야 할 기본이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고 대통령 선거로 가서 차기정부가 하겠노라 공약한들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민심은 안다. 51%로 당선된 대통령을 95%가 마음에서 버리게 된 국민의 자괴감은 더 이상 무력감이나 패배감이 아니라 새 판 짜기를 시작해야겠다는 집단지성의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이 점에서 민심의 향배를 요약하면 이렇지 않을까 한다. 못 볼 것의 끝을 끝내 보았다,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왔다, 그리고 이 몹쓸 사태를 단숨에 정리할 방법을 그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국회는 죄인의 심정으로 탄핵의 외길에서 입법, 행정, 사법, 헌법재판, 선거관리에 이르는 헌법기관 전체의 정상화를 위한 대장정에 그 어떤 지름길도 샛길도 없음을 직시하고 국가 대개조의 가시밭길을 정직하게 걸어가라고 말이다. 이렇게 국민과 소통하며 탄핵 정국이 일단락되어야 대통령 선거가 의미를 갖는다.

시민의 정치는 국회의 정치를 견인하되 따로 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은 100만 촛불이 부른 그 노래의 후렴구 그대로다. “후회 없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고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이다. 이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소설가 부희령은 “오래오래 광장을 지킬 수 있으면 되는 거”라 믿지만 그러기 위해선 “촛불이 꺼지면 언제든지 옆 사람에게 붙여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강풍이 불고 한파가 와도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국민과 함께 만들 공적 주체는 누구일까. 이 난국에도 국민의 일상과 안전을 책임지는 최후의 헌법기관, 바로 전국 17개 광역 지방정부와 의회이며 228개 기초 지방정부와 의회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민은 경험했다. 중앙권력의 갑질 횡포에 위축된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지만 주민자치를 위해 깨알같이 많은 일을 해 왔으며 특히 위기 때 국민이 믿고 의지할 언덕이 되었던 공공이 누구였는지 말이다. 그 지방정부와 의회가 전국 각지에 한겨울의 촛불 민심을 환대하는 공간을 마련한다면, 시민의 정치는 겨울밤 내내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천일야화를 이어갈 것이다. 이 천일야화를 통해 헌법을 공부하고 민주주의 교과서를 집필하며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행복한 나라를 후회 없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의 통찰대로 “허깨비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꿈꾸는 것”이야말로 시민의 정치가 갖는 힘이자 국민혁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새로운 민주공화국이라면 국회의 정치와 시민의 정치를 연결하는 플랫폼은 대통령이나 중앙정부가 아니라 충분한 권력을 가진 지방자치의 각양각색 정치여야 할 것이다.

내년이면 6월 국민항쟁 30년이다. 그 사이에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까지 여섯 명의 대통령을 뽑았다. 국민이 원하는 바는 일곱번째 대통령을 뽑기 전에 헌법 제1조의 원칙이 살아 숨 쉬는 민주공화국을 맘껏 꿈꾸는 일이다.

김종휘 성북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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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속성상 비밀이 많다. 비밀에 관한 한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급’이다.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출신 성분은 차치하더라도 시치미를 잡아떼고 속마음을 감추는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이한 표현을 많이 쓰고 불리하면 아예 입을 닫아버린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지만 지난 4년간 그에게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문고리 3인방 등과 비밀의 성을 높이 쌓았고 그럴수록 권력은 공고해졌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최순실 파일이 열리면서 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성난 민심이 박 대통령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자 그와 관련해 여염집 여인들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들까지 쏟아지고 있다. 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 박근혜 이름 석 자 대신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吉裸恁)이 가명으로 사용됐다는데 고고한 박 대통령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충격이다. 한자 뜻을 풀면 ‘훌륭하게 벌거벗을 생각’으로 19금 미성년자 관람 불가 수준이다.

미혼인 박 대통령이 선호하는 남성상이 탤런트 현빈이라는 사실도 시중에 쫙 퍼졌다. <시크릿 가든> 남자주인공 역의 현빈은 극중 길라임(하지원)과 핑크빛 사랑을 키운다. 박 대통령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도 현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공군 출신 조인성, 해병대 출신 현빈, 육군 출신 비 중 누가 제일 좋은가”라고 묻자 박 대통령은 “세 사람 다 좋아하면 안돼요? 뭐 다 좋지만 해병대에 있는 현빈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당시엔 별 의미 없이 넘어갔지만 ‘길라임’ 덕에 퍼즐 조각이 맞춰진 것이다.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작고)이나 최의 전남편인 정윤회가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오른쪽)가 18대 대선을 이틀 앞둔 2012년 12월17일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의 경기 군포시 거리 유세에 동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나이 예순다섯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는 박 대통령의 미용 비결도 밝혀졌다. 선진 의료과학기술이 거둔 쾌거라는 조롱이 따라붙는 게 흠이다. 박 대통령은 남몰래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에서 줄기세포 시술을 받았다. 강남의 돈 많은 중년 여성들이 수백만·수천만원씩 주면서 비밀리에 받는 시술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가 없었다면 불법이다. 청와대가 미용과 피로해소 등의 효과가 있는 주사제를 지난 2년간 대량 구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태반·마늘·감초·백옥 등 이름조차 생소하다. 청와대는 “경호원 등의 건강 관리를 위해 정상적으로 구매했다”고 밝혔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런 얘기들은 정경유착·제3자뇌물·국고횡령·기밀유출·직권남용·강요·입시부정·기업강탈 등으로 표현되는 국정농단 사건의 본류는 아니지만 시민들에게 박 대통령의 이중성을 각인했다. 박 대통령 열혈팬인 60대 남성은 “예쁜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 것을 목격한 어린 초등학생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창조경제 공약이나 문화융성 정책을 보고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작용하고 그 감성은 다분히 연민과 동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자나 야한 생각은 털끝만큼도 안 할 것 같은 순수에 대한 갈망, 흉탄에 부모를 잃은 연약한 여성에 대한 보호본능, 나이가 들어도 곱고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자태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이다.

권력자는 비밀이 폭로되는 순간 힘을 잃는다. 신비주의로 덧칠된 박 대통령 같은 권력자는 사생활이나 속마음이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위기에 처한다. 박 대통령도 드라마 여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고 내면에 뜨거운 욕망이 있을 수 있다. 또래 여성들처럼 얼굴 주름을 펴기 위해 피부 마사지나 시술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5%의 지지자들은 이런 사실에 배신감을 느낀다. 신비감이 사라진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숭배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일반인은 그냥 웃고 넘어가는 길라임 건을 청와대가 ‘괴담’으로 분류하고 “간호사가 만든 가명”이라며 정색하고 해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밀이 많은 사람은 투명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도자로 결격이다.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은 비밀과 숨겨야 할 사생활이 너무 많다.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16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대표적이다. 성형시술을 했네, 주사를 맞았네, 최태민 20주기 천도제 굿을 했네 등 온갖 설이 돌고 있지만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할 뿐 박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숙소가 있는 관저에서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여성 대통령에게 결례라고 생각해 물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부터는 시민들이 추궁할 것이다. 비밀은 드러나기 위해 존재한다. 누를수록 세차게 튀어오르는 스프링처럼 깊이 묻어둔 비밀은 폭발력이 더욱 크다. 박 대통령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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