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위안부 문제가 부산의 일본 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로 한·일 간 외교갈등 사안으로 재부상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0% 이상이 위안부 합의의 무효화나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고, 주요 대권주자들도 합의에 부정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합의를 실행하는 게 나라의 신용 문제’라며 일본의 아베 총리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차기 정부도 압박하고 있다.

12·28 위안부 합의를 쫓기듯 졸속으로 결정한 지도자의 시대적 의제에 대한 통찰력 부족, 그리고 인간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을 지켜주지 못한 박근혜 정부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는 물론 여론도 비판적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성의있는 이행’ 압박에 위안부 문제가 국내 정치 이슈로 재부상한 것이 다른 측면에선 12·28 합의에 대한 재평가와 문제점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어 오히려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가 밀실에서, 여론도 무시한 채 졸속으로 ‘얼렁뚱땅’ 끝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도 인정한 반인도적 범죄인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재협상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열린 우리겨레하나되기의 ‘윤병세 장관 사퇴 촉구’ 기자회견 참석자가 ‘왜’자가 적힌 종이를 들어 ‘왜교부’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첫째,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들고나온 ‘영사 문제 관련 비엔나협약’ 위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 시기 민족차별 문제고, 여성인권 유린 문제고,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성폭력 문제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정권이 바뀌어도 진정성 있게 사죄하고 보상해야 하는 국가범죄다. 이 문제는 10억엔을 받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면죄부를 일본에 주고 마무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차기 정부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에 대해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해 일본 관방장관이 ‘약속은 지키라’고 큰소리쳤다. 일본 총리와 장관의 고압적인 행동에 한마디 항의도 못하는 이유가 혹시라도 ‘이면합의’ 때문이라면 이 또한 재협상해야 하는 이유다. 분명 정부는 2016년 9월12일 ‘소녀상과 관련해서 이면 합의는 없었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3월부터 유지해온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도덕적 우위가 박근혜 정부 들어 무너졌다.

만약 소녀상 철거를 포함한 이면합의 토대 위에서 위안부 문제가 봉합됐다면 일본은 앞으로 두고두고 물고 늘어질 것이다. 차기 정부는 위안부 문제만은 국민 대다수의 여론을 수렴하여 밀실협상이 아닌 투명한 협상을 통해 일본과 재협상해야 한다.

셋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동안 한국 정부가 견지해 왔고 박 대통령 자신도 지켜온 입장을 하루아침에 버리고, 2015년 12월 쫓기듯 합의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들은 궁금해한다. 혹시라도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제3국의 ‘권유’성 ‘강박’이 있었다면, 그것 때문에 위안부 합의는 원천적으로 무효다. 국제법상 ‘강박에 의한 조약의 효력은 무효’이기 때문이다.

효력이 무효화된 합의는 어차피 파기되거나 재협상돼야 한다. 국제정치적 강박을 통해 합의를 해놓고, 비엔나협약을 들먹이면서 약속을 지키라고 일본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재협상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이 냈다는 ‘거출금’ 10억엔부터 돌려줘야 한다. 외교의 기본원칙이 무너졌는데 ‘외교협상 결과는 존중돼야 한다’느니 ‘국제관계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외교관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외교부가 강조하는 국가신용,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신용보다 중요한 것이 인권이고 국민의 자존이다. 조기대선으로 곧 차기 정부가 들어선다. 일본이 힘 잃은 박근혜 정부를 휘둘러 12·28 위안부 합의에 대못을 치려고 하지만, 국민은 받아들일 수 없다. 탄핵소추된 식물대통령의 권한대행과 식물정부의 외교안보팀도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더 큰 재앙을 막는 길이다. 차기 정부는 일본에 10억엔을 돌려주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위안부 문제를 재협상해야 할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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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주 귀국한 후 폭넓은 대선 행보를 하고 있다. 귀국 이튿날부터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와 고향인 충북 음성 꽃동네 방문에 이어 그제는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을 견학했다. 어제는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거제 대우조선해양을 들렀고,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과 세월호 현장인 팽목항, 광주 5·18묘역을 방문한다. 자신이 제시한 대통합과 정치교체라는 과제 실천에 옹골차게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그의 행보가 ‘정치교체’ 슬로건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성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보여주기식 행보와 실패한 이명박 정권의 인물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심판받은 정치세력과 함께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것은 코미디다. 또 반 전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을 잘 안다. 기회가 되면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제 박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그는 “잘 대처하시라”고 했다. 촛불시민의 뜻을 일관되게 무시하는, 직무정지된 대통령에게 한 덕담으로 적절치 않다. 보수층을 의식한 구태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가운데)이 15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를 방문해 천안함 선체를 둘러보며 군 관계자로부터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가 말하는 대통합이 모두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이라면 적이 실망스럽다. 시민을 분열시키는 비리와 부정의를 바로잡지 않는 한 대통합은 없다. 그게 빠진 대통합 구호는 이합집산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원칙한 세 모으기와 대통합을 구분하지 못할 시민들이 아니다.

정치교체의 내용은 짐작할 수조차 없다. 국내 정치 경험이 없어 해법을 제시하기 어렵다면 그에 상응하는 현실 진단과 해법의 방향 정도는 밝혀야 한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모순적인 말로 은근슬쩍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귀족 노동자’를 날 서게 비판했으면 거제 조선소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언급도 했어야 시민들이 수긍한다. 반 전 총장의 분명한 노선과 입장을 기대한다. 이것만이 철저한 검증과 공정한 경쟁을 통해 대통령을 뽑으려는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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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놀랍다.” 이 말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가장 못사는 나라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사용하는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변신한 한국의 발전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한다. 그런데 요즘 듣는 말은 ‘한국인은 놀랍다’이다. 수십만명의 군중이 한꺼번에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는 것도 놀라운데 그것도 주말인 토요일에 하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매번 왜 그렇게 시위를 자주 하는가에 대해 가장 놀란다.

해외 언론들은 그저 놀랍다고 표현했지만 그 놀라움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은 얼마나 부패했길래 저렇게 시위를 계속하겠는가라는 놀라움의 의문을 풀기 위해 해외 언론은 더욱 상세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한국인이 대통령 탄핵을 축제처럼 기뻐할 일은 아니라고 꼬집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인이 촛불집회를 한 덕분에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지만 민주주의의 승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한국인이 수만번의 시위를 해왔지만 시위만으로는 구조적인 개혁을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이유로 쉽게 끓어 올랐다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근성, 법률 위에 존재하는 ‘떼법’, 실력보다 학연·지연 등을 우선하는 ‘인맥 문화’,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로 ‘뿌리 깊은 정경유착’을 지목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재벌은 경제에서 특권화된 자리를 지켜줄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기부를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는 새해 전날 토요일에도 계속된 집회를 보도하면서 삼성 계열사의 합병을 위해 국민연금공단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구속을 상세히 설명했다.

미국 CNN방송에서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관련 뉴스. CNN뉴스 캡처

실제로 해외 기업들은 우리 기업들과의 관계에서 직무윤리와 준법서약을 강화하고 있고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사태로 인해 한국 기업은 부도덕한 이미지로 글로벌 경쟁시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특히 사회적 책임투자를 요구하는 프로젝트에는 치명적일 것이며 참여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는 분풀이를 계속하기보다는 박 대통령 퇴진 이후 다음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해 대한민국이 치러야 할 총비용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다음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많은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국가부패지수가 높아졌고 신용등급은 하향 조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기적으로는 큰 손실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다음 사회에서는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다. 단, 그것은 정부와 기업들이 이번 사태를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고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이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시민의식 개혁의 기회로 전환할 때 가능하다.

김성택 넥스트소사이어티 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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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0년간 유엔 수장으로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어제 귀국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메시지를 통해 “부의 양극화,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다. 수많은 지지 인파 속에서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된다”며 국가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포부와 각오도 밝혔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무대를 누빈 한국인에게 시민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 향후 5개월 안에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짧은 기간에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반 전 총장은 외교부 장관과 유엔 사무총장으로 일했지만 국내 정치에는 문외한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현안을 접하지 않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와 그 배경에 대한 이해도 부족할 것이다. 당장 그에게 이에 관한 해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반 전 총장을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맞는 한국적 상황은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투표장에서까지 ‘깜깜이 선거’를 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 반 전 총장은 한국의 미래 비전과 이를 구현할 대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반 전 총장의 인기는 아직 검증을 거치지 않은 막연한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어제 부의 불평등과 이념·지역·세대 간 갈등을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을 헐뜯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게 권력의지라면 저는 권력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치 신인으로서 기존 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이지만, 기성 정치 비판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구성원들간 분출하는 갈등을 조직하고 조정하고 또 해소하기 위해 타협과 설득, 협상을 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을 통해 민심을 수렴하고 선거를 매개로 책임지는 과정의 연속이다. 반 전 총장에게 현실 정치, 특히 정당 경험이 없는 것은 예사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그는 지난달 “국민이 없는 상황에서 정당이 무슨 소용인가. 동교동, 상도동, 비박, 친박이 무슨 소용인가”라며 정당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특정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뭉치자는 논의의 중심에 반 전 총장이 서 있다. 정당은 경시하면서 정당 간 연대를 통해 당선되겠다는 생각은 이율배반이다.

그의 유엔 사무총장직 수행도 검증 대상이다. 이리저리 눈치만 본 역대 최악의 총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험담인지, 남북관계를 개선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에는 왜 부응하지 못했는지 등을 냉정히 따져야 한다. 게다가 개인 비리 의혹까지 불거져 있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수수한 의혹은 물론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가 뇌물 공여 혐의로 미국 연방법원에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은 (박연차씨 의혹에) “왜 내 이름이 등장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부인했다. 유엔 사무총장이 선출직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한 유엔총회 결의에 대한 질문에도 “왜 명백한 사안에 대해 문제를 일으키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문제제기가) 정당하지 않다”고 거부감을 표출했다. 이명박·박근혜 두 대통령을 거치며 대통령 후보에 대한 시민들의 검증 욕구는 최고조에 달해 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을 정치공세로 치부할 게 아니라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 경제와 민생, 안보 문제 등이 한꺼번에 겹친 총체적 위기에서 치러진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기간도 짧고 인수위원회 활동도 없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후보들의 비전과 철학, 정책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또 실패할 위험성이 높다. 함께할 정당은 물론 함께 집권할 통일된 정치 집단도, 집권 구상도 아직 없는 반 전 총장이 짧은 기간에 대통령 자격을 입증하는 일은 그 자신의 성공 여부를 떠나 국가의 미래가 걸린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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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의 진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대통령의 참모들에게도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지만 이를 막지 못한 허수아비 참모들도 공동책임이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 참모들의 무책임한 행태를 보면 화가 치민다. 300여명의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대통령비서실장도, 국가안보실장도 대통령의 위치를 몰랐다고 진술했다. 진술 내용은 물론 태연자약한 진술 태도 역시 분노를 샀다. 그 중차대한 시기에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 모른 것을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시민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다.

박근혜 정권에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자칫 대통령의 눈에 날까봐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한 채 자리만 보전하는 참모들로 넘쳐난다. 이러니 비선실세가 마음놓고 국기문란 행각을 벌여도 끽소리 못한 채 오히려 묵인·방조하는 불상사가 빈발한다. 예외가 없던 건 아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세월호 참사 때 내각 총사퇴를 주장했다가 대통령 눈 밖에 났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도 “이러면 안된다”고 대통령에게 직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른말을 한 참모는 극소수였다.

대통령의 ‘거수기 참모’들에게 질린 시민들에게 제프 세션스 미국 법무장관 내정자의 발언은 요즘 말로 사이다 같다. 그는 어제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에게 과감히 노라고 말하고, 대통령의 생각이라면 살피지도 않고 인가하는 ‘고무도장’이 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부활하겠다는 물고문이 불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고무도장은 형식을 갖추는 데 사용하는 도장으로, 여기서는 ‘예스맨’을 의미한다.

대통령의 참모가 되려면 전문성과 정치적 감각을 갖춰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시민과 국익을 바라보겠다는 의지다. 지금 4·19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고한 허정 외무장관 같은 이들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정권의 부정과 부패에 공동책임이 있다 해도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직언할 줄 아는 참모들을 보고 싶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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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우리나라의 법질서 수준이 낮다”고 말했다. 황 대행은 어제 법무부와 행정자치부의 새해 업무계획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들 부처의 성폭력·학교폭력 근절 정책 등을 평가하며 “이러한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국민안전과 법질서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법치주의가 정착되면 외국 자본유치 촉진, 연간 300조원의 사회갈등 비용 감소가 가능하다”고도 말했다. 도둑이 몽둥이를 든 격으로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리는 황 대행은 안전이나 법질서 운운할 자격조차 없다.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도 관저에서 엉뚱한 짓을 하다 300명이 넘는 생명을 잃게 한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박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그의 비선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진경준 같은 검사가 100억원이 넘는 뇌물을 받아챙기고 있었는데도 이를 묵인·방조한 사람이 누구인가. 전직 법무부 장관이자 총리인 황 대행이다. 박 대통령이나 김기춘·우병우 같은 청와대 고위 관료, 재벌은 법을 우습게 알지만 일반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지난 3개월간 전국적으로 1000만명이 참여한 촛불집회를 생각해 보라. 전 세계가 한국 시민들에게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지만 불미스러운 사고 한 건 없었고 청소와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이뤄졌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1일 오전 국민 안전 및 법 질서 관련 부처 업무보고가 열린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장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경제·사회 부총리의 뻔뻔함도 황 대행에 버금간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고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지난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유통구조 개선, 공공요금 관리 등을 통해 서민물가를 안정시키고, 일자리 중심 국정운영으로 역대 최고 수준 고용률을 달성했다”고 박근혜 정부 지난 4년을 평가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그 난리를 친 이준식 사회부총리는 “지난 4년간 강도 높은 교육개혁을 추진해 왔으며 교실 수업에서부터 우리 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이 정도면 업무보고가 아니라 대국민 사기극이나 다름없다.

이창재 법무부 장관 직무대행은 4년간의 업적으로 통합진보당 해산과 마을변호사 등 황 대행이 법무부 장관 시절 추진한 정책을 나열했다. 업무보고인지, 상사에 대한 아부인지 구분이 안된다. 정부 업무보고는 사실상 주권자인 시민에게 하는 것이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면 반성부터 해야 옳다. 국정농단 세력에 부역하고도 사죄는 고사하고 자화자찬하며 탄핵당한 정책을 강행하는 이들 공직자의 행태를 지켜보자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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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인정한 뒤 국회에서 탄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6일이었다. 분노한 1000만 촛불이 광화문광장과 전국을 가득 채웠다. 최근 ‘박근혜 결사 옹위’를 주장하는 ‘맞불 시위’가 등장하긴 했지만, 거센 분노의 흐름을 되돌리긴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례없이 짧은 기간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부패한 지도자를 거의 축출한 작금의 상황은 시쳇말로 ‘사이다’이다. 이제 시민들은 저마다 새로운 시대를 꿈꾸고 있다. 계기가 마련됐으니,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정말 그럴까.

12일 개봉하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이명박 정권 당시 YTN, MBC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거나, 편향적인 보도와 인사에 항의하거나, 그도 아니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해직된 기자와 PD들이 이후 7년간 겪었던 일들을 다뤘다. 해직된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두 달 후면 복직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1심에서 복직 판정을 받아냈지만, 회사는 끈질기게 소송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 복직된 이도 있지만, 몇몇은 끝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직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이 거대 언론사들은 기나긴 송사를 통해 해고의 정당성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해직자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7년 세월 동안 언론사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들어왔다. 초기엔 해직 언론인들의 처지에 관심을 가지던 여론도 조금씩 식어갔다. 심지어 해직 언론인들이 모두 복직된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잊혀진다는 건 힘들고 서글픈 일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파괴된다. 평소 온화한 가장이었던 조승호 YTN 기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아내와 아이들에게 괜한 일로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용마 MBC 기자는 암과 싸우고 있다. 버티고 살아남아야 했다. 조승호 기자는 무박 2일로 100㎞를 뛰는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했다. 박성제 MBC 기자는 취미였던 스피커 제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해결된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도 아닌 문제들 때문에 조금씩 지쳐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

탄핵 정국은 저널리즘의 승리라는 분석이 있다. 많은 언론사들이 대통령과 측근, 비선 인사들의 비리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뒀다. ‘단독’이란 말머리를 붙인 기사들이 각 언론사에서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제작한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저널리즘에 대한 최근의 상찬이 “불편하다”고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앞서 권력을 비판했던 해직 언론인들은 복직되지 않았고, 이들을 거리로 내쫓은 이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지난 정권의 피해자들에게 아직 ‘사이다’는 돌아가지 않았다.

어지러운 판국일수록 쾌도난마의 언변, 일도양단의 해결책이 환호를 받는다. 대선을 앞두고도 그런 정치인, 논객이 인기를 끈다. 돌아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야말로 ‘사이다’의 원조였다. 지난해 개봉해 인기를 끈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2000년 제16대 총선 당시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부산에 출마한 노무현을 담아냈다. 당시 유세 장면을 보면 노무현은 근래 보기 드문 탁월한 대중연설가였음을 알 수 있다. 대규모 군중 앞에서도, 골목길의 소규모 유세에서도 그는 두루 강점을 보였다. 그의 말은 논리와 감정을 동시에 자극했으며, 인간적인 매력까지 담아냈다.

그런 노무현조차 집권 이후엔 이런저런 장애물에 부딪혀 뜻한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서거 5개월 전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와 가진 마지막 인터뷰가 최근 뒤늦게 공개됐다. 자신의 임기를 솔직하고 냉정하게 평가한 그는 “(역사에)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확고한 비전과 추진력, 의지를 가진 정치인에게조차 개혁은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마스터>는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을 모델로 한 영화다. 현실의 조희팔은 수조원의 피해액을 남긴 채 죽었지만(혹은 사라졌지만), 영화 속 진현필(이병헌)은 시원하게 응징당한다. 진현필의 정·관계 로비 장부를 입수한 강직한 경찰 김재명(강동원)은 대규모 수사팀을 이끌고 국회의사당 쪽으로 향한다. 개봉 이후 3주 만에 650만 관객이 이 속 시원한 엔딩에 박수를 보냈다. 현실이 <마스터> 같다면 좋겠지만, 실제론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 가까울 것이다. 지루하고 지지부진하고 답답하다.

개혁이란 살림살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살림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해도해도 끝이 없다.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난다. 안 하기 시작하면 집안꼴이 엉망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지겨운 살림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이제 지겨운 일을 꾸준히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꾸역꾸역 고구마를 먹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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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무엇인가? 대학 신입생 때 정치학개론 문제였다. 데모하느라고 결석을 밥 먹듯이 해 수업내용 대신 상식에 기대어 “만백성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이라고 썼다가 낙제점을 받았다. 이후 정치학 박사가 되고 30년 정치학을 가르치면서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는 “갈등조정의 제도화”라고 답한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들을 국회와 같은 제도의 틀 내에서 조정하는 일이 바로 정치라는 이야기이다. 촛불혁명을 바라보면서 이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의 최고경쟁력은 민주화운동, 사회운동이다. 외국 학자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골리앗 투쟁, 촛불, 희망버스 등 우리의 운동을 너무 부러워한다. 그러면 나는 “이 운동들이 자랑거리가 아닐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답한다. 그렇다. 치열한 거리 투쟁과 거리의 정치가 일상화된 것은 정치가 제도 내에서의 갈등조정이라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치의 실패’, ‘정치의 직무유기’ 결과가 바로 ‘거리의 정치’이고 광장이다. 정치가 원래 해야 하는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우리의 자랑거리인 거리의 정치가 사라지는 날은 언제나 오려는가?

이번 촛불혁명의 밑바닥에는 민의와 동떨어진 정치, 나아가 ‘헬조선’에 대한 분노가 깔려있다. 단순한 박근혜 퇴진을 넘어 ‘11월 촛불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필요조건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정치의 발본적인 개혁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기 등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그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민심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다행히 광장의 힘, 그리고 새누리당의 분당으로 생겨난 1여4야의 5당체제는 이를 이룰 수 있는 사실상 유일무이의 기회이다. 공직선거법을 고쳐 이번 대선부터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현 제도는 30%대 지지율의 ‘소수파 대통령’을 양산해 왔다. 이는 대표성과 정통성에서 문제가 많다. 이제 결선투표제를 통해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다수파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는 야권 대권주자의 경우 이에 부정적 내지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얻을 자신이 없다면 그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

민의, 즉 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수를 배분하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거대보수지역정당들의 담합체제를 깨고 다양한 사회세력들이 제도정치로 나아가 거리가 아닌 제도 내에서 갈등들을 조정할 수 있다. 그것이 정치의 실패를 극복하는 첩경이다. 헌법재판소는 인구차이에 의해 표의 가치 차이가 3배 이상 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정했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에 던지는 표는 군소진보정당에 투표하는 표의 4배로 계산되고 있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례대표의 확대와 연동제 도입을 제안했지만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야합해 작년 총선에서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했다. 일각에서는 중대선거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보여주었듯이 이는 돈이 많이 들고 정치신인의 진입을 막는 등 문제가 너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9세인 투표권 나이도 글로벌 스탠더드인 18세로 낮춰야 한다. 이번 촛불의 중심세력 중 하나는 중·고등학생들이고 이들은 자유발언 등을 통해 놀라운 정치의식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서 분당한 바른정당이 이에 반대하는 것은 새 당이 여전히 수구정당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경고대로 이에 반대하는 정당은 촛불민심 역행 정당이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우 원내대표가 막상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투표권 연령 인하와 함께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결선투표제와 독일식 연동제에는 침묵한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결선투표제와 독일식 연동제에 반대하는 정당 역시 촛불민심 역행 정당임을.

“멍청하긴, 문제는 경제야!” 잘 알려져 있듯이 1992년 미국 대선에서 40대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빌 클린턴이 들고나와 이라크 전쟁 승리로 기고만장하던 조지 부시 대통령을 패배시킨 유명한 구호이다. 그러나 이는 반쪽의 진실만을 담은 반쪽짜리 구호이다. 정답은 “멍청하긴, 문제는 정치야!”이다. 문제가 경제라고 하더라도 바른 경제정책을 선택해 펼 수 있는 올바른 정치가 없다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 박근혜 게이트도 다 정치가 잘못됐기 때문이며, 정치개혁, 선거개혁 없이는 박근혜 청산, 헬조선 청산도 없다.

손호철 | 서강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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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중·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모든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친일·독재를 미화해 폐기해야 마땅할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제 “기존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을 부른 것은 검정 절차 탓이라는 지적이 있어 심사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와 함께 중·고교에서 쓰일 검정 역사교과서가 집필기준에 미달하면 검정 심사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큰 틀을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도록 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로 만들려는 얄팍한 속셈을 드러냈다.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고, 박정희·이승만 관련 내용과 북한의 도발 사례를 대폭 늘린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지 않는 검정 역사교과서는 탈락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출판사가 심사본을 제출하면 교육부 지침에 따라 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출판사들로서는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 탈락하면 교과서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정 역사교과서 필진이 자기 검열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를 개연성이 높다. 검정 역사교과서가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검정 혼용 방침에 따라 검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자신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기 부정이자 무원칙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2015년 8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교육부 위탁으로 역사 교수와 중·고교 교사 13명이 참여해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들어 공청회까지 거쳤다. 하지만 국정화 고시가 발표되면서 해당 집필기준은 시안으로만 남아있다.

시민에게 탄핵당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려볼 요량으로 꼼수만 쓰고 있는 교육부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교육부는 시대착오적인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것만이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 ‘박근혜표 국정교과서’에 부역해온 잘못을 속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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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교안보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둘러싸고는 일본으로부터 공박당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 후 중국의 전방위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박근혜 정부 외교정책 실패의 후과가 한꺼번에 나타나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를 원칙 없이 오가다 덫에 빠지고, 미래지향적 결정이라며 성급하게 위안부 문제 합의를 했다가 일본으로부터 공격당하는 처지에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도 당국은 대응책 하나 없이 외교 실패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제는 중국군 폭격기 6대와 조기경보기 1대, 정찰기 1대 등 군용기 10여대가 제주도 남방 이어도 인근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해 들어왔다. 2013년 말 식별구역을 발표한 이후 중국 군용기가 간간이 침범한 적은 있지만 장거리 폭격기와 조기경보기 등이 한꺼번에 4~5시간 지속적으로 우리 경계선 안으로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한국군이 공군 F-15K 전투기 등 10여대로 대응 출격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류 연예인 방송 출연 금지와 한국행 전세기 운항 불허에 이은 외교적 보복 조치의 연장으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교류와 경제 통상에 이어 군사 위협으로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DB)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에 따른 일본의 공세는 박근혜 외교의 완벽한 실패를 증명한다. 부산 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것을 계기로 일본은 주한대사 소환과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 중단 등 보복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10억엔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도발도 했다. 가해자가 공세를 펴는 어이없는 상황에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부의 정책도 실패하면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는 국제적 신뢰를 내세워 잘못으로 드러난 정책까지 고수하겠다고 한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어제 “상황 악화를 가져올 수 있는 언행은 자제하는 게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마치 남의 일처럼 한·일 양측에 경고한 것도 잘못이지만,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주장하는 야당을 겨냥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부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사드에 대해서도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중국을 방문한 야당 의원들만 비판했다.

실패한 박근혜 외교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그릇된 판단이 낳은 결과이다.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하면 또 어떤 외교적 난제가 떠오를지 모른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유산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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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비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은 기본이고,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 사업에서 특정 기관을 탈락시킨 정황까지 나왔다.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대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로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형사처벌까지 받았지만 국정원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국정원, 시민 아닌 정권에 봉사하는 국정원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적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국정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시·도 문화재단의 좌편향·일탈 행태 시정 필요’ 문건에는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문화재단들이 좌편향을 보이고 있으므로 감사 등을 거쳐 보조금을 삭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작가회의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등 정권에 비판적인 단체를 탈락시키기 위해 최종 심사까지 마친 ‘현장 예술인 교육 지원 사업’을 갑작스럽게 폐지하는 과정에도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정보 수집 차원을 넘어 정부 부처의 예산 집행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으로 매우 심각한 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10일 (출처: 경향신문DB)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목할 만한 작가상’ 선정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 선임 과정에도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폭로가 있다. 문화예술인 이름 뒤에 알파벳 K나 B가 적혀 있는 새로운 블랙리스트도 발견됐다. 지난해 초 작성된 이 블랙리스트에서 K는 국정원, B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선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특검은 문화체육관광부 압수수색을 통해 국정원과 문체부 직원들이 “진보성향 문화예술단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은 국정원의 불법과 일탈이 드러난 이상 좌고우면할 필요없다. 특검법은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사건을 수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검은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 등 전면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정원은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는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이다. 막대한 인력과 예산 지원을 받고 있지만 국가안보를 명목으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정권에 악용될 우려가 있어 무엇보다 중립이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시민들이 감시하고 통제할 방법이 전무하다. 특검 수사가 국정원의 게이트 개입 의혹을 규명하고 관련자와 책임자를 처벌해 국정원 개혁과 인적 청산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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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주민 주권은 하나의 가결과 다른 하나의 부결을 받아낸다. 정의롭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12월9일 가결되었다. 20일 뒤 문화재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는 ‘설악산천연보호구역 내외 설악산 오색 삭도 설치 건’을 만장일치로 부결시킨다. 위 두 사건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비로소 부결되었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열망한 시민의 위대한 힘은 ‘박근혜 환경 적폐’를 바로잡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의 추진과 폐기 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문화재위원은 천연보호구역에 미치는 야생동물의 서식환경 악화, 외래종의 침입 가능성, 정류장 설치에 따른 지질 훼손, 경관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우려하였다. 심의에 참여한 문화재위원 10명 전원 부결을 의결한다. 이는 1965년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지정 근거나 1982년 오색과 중청봉 등 3구간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불가’ 결정을 내린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양양군의 세 번째 시도는 과거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부결 때와 사뭇 달랐다. 박 대통령, 전경련과 문체부가 직접 관여하였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2014년 6월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와 승마공원을 포함한 산지 관광 활성화 방안을 제안한다. 그해 8월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설악산 케이블카 계획을 발표한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김종 문체부 2차관은 9월 이후 4차례, 환경부와 양양군이 참여하는 ‘친환경 케이블카 확충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 10월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현장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조기 추진하라”고 직접 지시한다. 양양군은 2015년 4월에 3차 신청서를 다시 제출했고, 환경부는 국립공원위원회를 열어 그해 8월28일에 조건부 승인으로 통과시킨다. 산악 관광을 명분으로 정치와 재벌은 설악산 케이블카를 밀어붙였고 행정부는 절차를 밟았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부정한 정치와 재벌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해서는 안될 사업’이다. 천연보호구역, 국립공원,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각종 보호구역의 효력을 정지시킨다. 그래서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고 했다. 설악산의 빗장을 열고 케이블카 도미노, 산지 난개발을 시작하겠다는 것. 관광과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몇 남지 않은 보호구역 핵심지역과 야생의 생명을 처분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지난 5년 동안, 설악산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비극을 여실히 경험하였다. 정치와 재벌의 부정한 결탁이 그 이유다. 가습기 살균제 책임자는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반도체 백혈병 사업장은 사상 최대의 영업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단 며칠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베어버린 가리왕산 10만그루 나무들, 한겨울 상시 녹조를 만들어낸 4대강 사업, 지진의 위험에도 가동되는 핵발전소와 늘어나는 석탄화력도 마찬가지다. 안전 대신 위험, 사람 대신 돈을 선택한 부조리한 정치권력이다.

정치와 재벌의 부정한 결탁이 지금 여기, 민주주의와 생명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우리는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세대의 능력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현세대의 부정한 욕망을 채우는 ‘박근혜 환경 적폐’는 정리되어야 한다. 세월호 1000일의 눈물은 멈춰야 한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취소가 그 시작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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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늘 세월은 흐르고 새해가 오지만 올해는 범상한 해가 아니다. 추운 날씨에도 1000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오직 불의에 분노하고,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이 열망이 이번에는 실현될까? 과거 몇 차례 찾아왔던 호기를 번번이 놓쳐버린 우리가 과연 적폐를 청소하고 새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물론 첫 단계는 박근혜, 최순실 일당의 불법을 밝혀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정도로 새나라 건설은 안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잘했는데, 그 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건 틀린 생각이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일심동체다. 박근혜, 최태민, 최순실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산물이다. 박정희는 헌법 위에 군림했고, 그걸 보며 자란 박근혜 역시 법의식이 희박하다.

박정희는 보기 드문 기회주의자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일왕에게 충성 맹세 혈서를 썼다. 조갑제 책을 보면 박정희는 수시로 일본말을 했는데, 5·16 새벽 쿠데타군 출동명령조차 일본말로 했다. 해방 후 좌파 세상이 올 것 같으니 좌파에 가담했다가 이승만이 총애했던 악질 친일파 김창룡에게 체포되자 대뜸 동지들 이름을 불어서 수많은 동지들을 죽게 하고 혼자 살아남았다. 4·19로 모처럼 찾아온 민주주의를 1년 만에 뒤엎는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온갖 이유를 갖다 대지만 본질은 권력욕이다. 그 뒤 대통령 임기 연장을 위해 헌법을 바꾸고 또 바꾸어 종신집권을 기도했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박정희의 여성 문제를 밝히는 부하의 발언을 제지했으나 끌려간 젊은 여성이 200명이 넘는다는 말을 남겼고, 그 부하는 달력에 등장하는 여성은 거의 다 다녀갔다고 보면 된다는 말을 남겼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최태민 총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람들은 박정희가 경제는 살렸다고 말하는데 이마저 허상이다. 박정희는 청렴해서 떨어진 러닝셔츠를 입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최순실 일가의 천문학적 재산이 실은 박정희 재산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통령의 재벌 독대, 정경유착, 부패는 박정희 모델의 핵심이다. 박정희는 욕심이 지나쳐 전국의 땅을 파헤치는 난개발,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 한국 땅값을 세계 1위로 올렸고, 돈을 마구 풀어 물가를 천정부지로 올렸다. 난개발과 물가상승은 일시적 성장 효과가 있겠지만 마약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경제를 망친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덕분이 아니고,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근면한 우리 노동자, 농민이 피땀 흘려 달성한 것이다.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를 1968년에 착공, 1970년에 완공했다. 무리한 졸속, 부실공사로 애꿎은 77명의 인부들이 사망했다. 왜 이렇게 무리하게 서둘렀을까? 1971년 대선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박정희는 나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고, 멀리 보지 않고 항상 눈앞의 이익을 탐했던 사람이다. 일제 때는 친일파, 좌파 세상이 되자 좌파 변신, 체포되자 동지 배신, 권력욕에 눈이 멀어 신생 민주정권을 총칼로 뒤엎었고, 권력 유지를 위해 애국 학생, 시민을 잡아다 일제식으로 고문했고, 무고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켰고, 경제개발조차 대통령 선거에 이용했던 사람이다. 이런 아버지를 찬양하기 위해 박근혜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했단 말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사람을 배우라고 가르친다면 이 나라가 장차 어찌 될 것인가.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면 세종과 이순신이 이러려고 훈민정음 만들고, 거북선 만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것이다.

선산 출신 김재규는 평생 박정희와 가까이 지냈으나 유신독재의 죄악상을 직시하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패륜아로 몰았지만 언젠가 역사가 재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다. 김재규는 거사 직전 붓글씨를 많이 썼는데, 그중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 있다. 비리는 법을 못 이기고, 법은 권력을 못 이기고, 권력은 하늘을 못 이긴다는 뜻이다. 박정희의 무도한 권력도 하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다는 뜻이리라.

박근혜, 최순실의 부역자들이 쇠고랑을 차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엄정한 법적 처벌만 갖고 새 나라 건설을 낙관할 수 없다. 하늘의 심판, 즉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박정희를 청산하지 않고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던 우리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없다. 박정희 청산 없는 박근혜, 최순실 처벌은 뿌리는 그냥 둔 채 잎과 가지만 자르는 것이어서 언제 다시 기회주의자들이 살아나 정의를 짓밟을지 모른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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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측이 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변론에서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을 종북세력으로 규정했다. ‘촛불’은 민심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단의 서석구 변호사는 “광화문 대규모 촛불집회를 주도한 곳은 민중총궐기투쟁본부인데, 이를 주도한 곳은 민주노총”이라고 언급한 후 “민주노총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이석기를 석방하라고 행진하는 것을 볼 때 민심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북한 노동신문이 ‘김정은 명령에 따라 남조선 인민이 횃불을 들었다’고 했다”는 말도 했다.

박 대통령은 촛불민심에 색깔론을 덧씌우면 탄핵을 모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대통령이 정경유착 비리를 저지르고 비선의 국정농단을 부추겨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에 대한 시민의 비판을 북의 지령 때문이라니 그가 국가 지도자이기는커녕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시민 모독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반민주적이고 반헌법적이다. 박 대통령은 또 서 변호사의 입을 빌려 “소크라테스도 사형됐고, 예수도 군중재판으로 십자가를 졌다”면서 자신을 박해받은 성인들에 비유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6일 (출처: 경향신문DB)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검찰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며 수사 기록을 증거로 쓰면 안된다는 주장도 했다. 서 변호사는 “박 대통령을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이었다”며 “정치적 중립성에 의심을 받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이영렬 지검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많은 인사혜택을 받고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다.

박 대통령 측은 박영수 특검팀에도 딴지를 걸었다. 야당이 특검을 추천해 정치적 중립성에 위반된다는 논리지만 박 대통령의 불법행위가 증거로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 측은 탄핵심판을 지연하기 위한 꼼수도 부렸다. 증인신문이 예정됐던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헌재는 이들이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출석요구서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국회 청문회 출석을 기피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쓰던 방식과 닮은꼴이다. 헌재의 요구에도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 탄핵 사유와 당위성은 이미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헌재가 신속히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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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들의 자괴감을 높여 주기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준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은 세월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줬다는 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세월호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 그만 좀 우려먹어라, 지겹다. 둘째, 유족들이 돈 더 받으려고 저러는 거다. 셋째, 교통사고인데 무슨 진상규명이 필요하냐. 넷째, 인양하지 마라. 돈 아깝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는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밝혀진 이후 세월호는 다시금 조명되기 시작한다. 사건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은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는데, 이유인즉슨 검찰 수사로 인해 밝혀진 침몰 원인인 과적과 급변침에 대해 대부분 수긍했기 때문이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배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소위 인신공양설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동조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작년 말, ‘자로’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이 2년의 노력 끝에 ‘세월X’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무려 8시간49분에 달하는 이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자로와 그를 도운 김관묵 이화여대 교수의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자로는 그간 발표된 침몰 원인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세월호를 가라앉힌 진짜 이유에 접근해 나간다. 일단 급변침은 침몰 원인이 될 수 없다. 방향을 그 정도 틀었다고 해서 배가 넘어진다면, 우리나라 해역은 침몰하는 배들로 인해 연일 난리가 날 것이란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세월호의 복원력은 그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적이 원인일까? 세월호 운항일지를 보면 사고 당일보다 3배 가까이 물건을 실은 날도 있었단다. 자로가 존경스러운 점은 사소한 주장을 할 때조차 관련된 증거를 산더미처럼 제시한다는 데 있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결과가 인용되기도 하고, 언론보도나 검찰수사 자료, 그리고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이 동원된다. 과적이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자로는 세월호 당일 배에 화물이 실리는 폐쇄회로(CC)TV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 많은 자료를 다 어떻게 구했을까?’라는 감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노력 끝에 자로가 본 진실은 ‘외력’이었다. 사고 당일 세월호는 충격과 함께 45도로 기울었다. 3층 로비에 있던 양승진 선생님(실종)은 이 충격으로 바다로 튕겨 나가기까지 했는데, 이건 급변침으로 인한 침몰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실제로 세월호 생존자들 중 ‘쿵’ 소리를 들은 이가 많다고 하니, 이게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그 외력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고 장소가 바다인 만큼 암초나 다른 선박일 수밖에 없는데, 사고 당시 세월호 주위에는 둘 다 없었다고 발표된 바 있다. 자로는 그걸 잠수함이라고 추정한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레이더에 나타난 괴물체가 그 증거다. 원래 이 물체는 세월호에서 떨어진 컨테이너라고 발표됐다. 하지만 자로는 이것이 컨테이너가 아닌, 나름의 동력을 가진 물체라고 주장한다. 레이더에 따르면 그 물체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레이더에서 사라졌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물체는 잠수함밖에 없단다.

그렇다고 자로가 자기주장이 맞다고 일방적으로 우기는 것은 아니다. 자로는 말한다. 자신의 주장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며,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 나온다면 기꺼이 잠수함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보다 정확한 진실을 알기 위해 자로가 원하는 것은 세월호의 인양이다. 무엇인가에 부딪혔다면 세월호의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2016년 해양수산부 장관은 “올해 인양에 성공하겠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지만, 결국 세월호 인양은 해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인양에 별 뜻이 없는 게 아니냐 의심한다. 그간 인양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데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상하이샐비지를 인양업체로 선정한 사실은 의심을 증폭시킨다. 중국업체인 만큼 인해전술로 배를 빨리 인양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인양이 언제쯤 될지 오리무중이다. 오히려 이들은 배에 130개의 구멍을 뚫는 등 선체를 훼손하고 있는데, 이러다간 배를 인양해도 침몰 원인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혹자는 자로의 영상을 또 다른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음모론은 진실의 당사자가 뭔가를 자꾸 숨기려고 할 때 만들어진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7시간에 대해 갖가지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당시 행적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다 사실이 드러나면 그제야 인정하는 청와대의 석연치 않은 태도 때문이 아닌가?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음모론이 부담스러우면 하루빨리 배를 인양하자. 그리고 과학자를 포함한 검증단을 만들어 침몰 원인을 재조사하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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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잎이 난분분히 흩날리고 있다. 화사한 봄빛을 터트린 벚나무 아래에 모여 선 아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눈부시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아이들과 함께 다소곳하게 서 있는 앳된 선생님은 아이들만큼이나 순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 봄이 그렇게 사진 속에 있었다.

정유년 새해 첫날, 기억교실에서는 세월호 유가족 몇이 반별로 찍은 단체 사진을 벽에 걸고 있었다. 의자에 올라선 아버지의 못질은 서툴렀고, 의자를 꼭 잡고 있는 어머니의 눈매는 매서웠다. 못이 단단히 박혔는지, 한쪽으로 기울지나 않았는지 한참 공을 들인 뒤에야 사진 하나가 걸렸다. 아이에게 떡국을 끓여줄 수도, 새해 덕담을 해줄 수도 없는 부모들은 사진을 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양 온 힘을 쏟았다.

2016년 마지막 날 열린 1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 경복궁 앞에서 새해 세월호 인양을 소망하는 의미에서 촛불로 배 모형과 숫자 ‘2017’을 만들고 있다. 김창길 기자

“9반은 반 아이들이 다 나온 사진이 없네요.” 9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말을 건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 아이들이 몇 되지 않았다. 다른 반처럼 모두 함께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못 찾은 것이다. 못 찾은 게 어디 사진뿐이랴. 물어보고 싶은 게 어디 그것뿐이랴. 그러니까 사진이라도 있었더라면…….

새해 스물한 살이 되었을 아이들은 여전히 교복을 입은 열여덟 살의 모습으로 사진 속에 있다. 교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아이들 사진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를 보여주지만, 부모들은 그 사진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이 어엿하게 이 세상에 살아있었음을, 그날만 아니었다면 꿈꾸고 부딪치면서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그저 그것뿐이다.

기억교실을 돌아보고 나오다 아까 말을 건 어머니와 다시 마주쳤다. 조심히 가라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데, 그 인사가 슬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인사를 받나, 또 그들은 뭐 고마울 게 있다고 인사를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사 하나가 떴다. 뜬금없이 기자들을 불러 모은 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날 자신은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그의 오만함이 부끄러워 정말 견딜 수가 없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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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정당함’을 표현하는 언어다. 세계와 인간과 삶의 본질인 ‘좋음’을 구현하기 위한, 즉 실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란(rebellion)’이나 ‘반역(revolt)’과 구분해 ‘혁명(revolution)’이란 말을 별도로 만들어 쓰는 이유이다.

그러니까 혁명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방식으로 기존의 권력층을 뒤엎거나, 특정 정권을 타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계와 인간과 삶의 본질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낡은 체제(앙시앵 레짐)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근대 문명의 정치적 특성인 민주공화제의 등장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 혁명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프랑스 대혁명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보면 혁명이 반란이나 반역과 다른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루이 16세가 민중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했다는 소식을 듣고선 “반란인가?”라고 물었으나, 그의 최측근이었던 라 로슈푸코 리앙쿠르가 “아닙니다. 폐하! 혁명입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그것이다.

라 로슈푸코 리앙쿠르는, 혹은 이 일화를 소개한 <프랑스 혁명>(1837)의 저자 토머스 칼라일은 루이 16세와 달리 바스티유 감옥 함락의 의미가 루이 16세의 퇴진만이 아니라, 시민과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절대왕정과 신분사회로 압축되는 앙시앵 레짐의 사멸과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질서, 즉 민주공화제를 요구하는 것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미국의 독립혁명도 빠지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에 앞서 일어난 미국 독립혁명 역시 단지 영국의 왕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의 기본적 권리의 획득’이라는 좋음을 추구한 사건이다. 프랑스와 미국 외에도 근대 문명 세계에서 강대국 혹은 선진국으로 불리는 나라들 대부분이 혁명이라 불리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근대 의회정치 발전의 기초가 된 명예혁명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다. 독일도 기억할 만한 혁명의 역사를 갖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말미인 1918년에 제정을 무너뜨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기초를 세운 11월 혁명이 그것이다. 아예 유럽 전체를 휩쓸면서 혁명의 경험을 선사했던 사건도 있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수용토록 한 1848년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새해가 밝았지만, 세상은 아직 어둡습니다. 지난해 세밑까지 촛불을 들었을 때 시민들은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라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촛불은 ‘여기 사람 있다’고 외치는 목소리였습니다. 암흑에 빠져 있던 민초들을 꺼내야 한다는 구조 신호였습니다.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이었습니다. 새해에는 촛불을 켜지 않아도 대지와 광장의 목소리들이 곳곳에 전달됐으면 합니다. 시민들의 삶이 밝아졌으면 합니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은 새해 첫날 새벽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입니다. 김창길 기자

최근 대한민국에선 촛불시위 과정에서 혁명이란 말이 공론장에 다시 등장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혁명이란 슬로건을 들고나오고, 지식인들이 촛불시위의 성격을 시민혁명으로 파악하면서다.

4차 산업혁명론을 필두로 문명의 전환이 거론되고 있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계기로 ‘대한민국 재설계’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혁명이 공론장의 주요 토픽으로 등장한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이번 기회에 촛불시위를 통해 모아진 민의를 구체제의 청산과 새로운 체제의 수립으로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촛불시위가 실제 혁명으로 이어질지 아닐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 혁명의 기운만이 아니라, 혁명으로 평가할 면모까지 갖추고 있다. 다수의 참여와 결집을 가능케 한 평화적 방식의 고수가 대표적인 예이다. “나는 내가 대표한다”는 기치하에 기성 질서에 대해 해학과 풍자의 언어를 구사하고, 기존 운동단체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의사표현과 참여의 방식도 그러하다. 혁명으로 불린 여타의 역사적 사건들에 비했을 때조차 혁명적이다.

촛불시위를 이런 방향으로 이끈 촛불시민은 ‘새 술’이다. 촛불집회의 진행을 담당했던 한 인권운동가가 “이들이 다 어디서 (광장과 거리로) 나왔나”하고 물음을 던질 정도로 새롭게 등장한 주체이다.

고약한 승자독식체제에서의 고단한 일상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벗과 함께 광장을 사수한 주체들이다. 그러나 아직 촛불시민이라는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없다. 새 술의 맛을 더 감칠나게 할 새로운 장인이 누군지도 아직 모르겠다. 촛불시위를 여전히 일시적 저항의 관점에서만 조망하거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로만 몰아 개헌만 힘주어 주창하거나,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통해 자파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기성 정치인들, 특히 노회한 정객들을 볼 때 그러하다.

2017년, 이들을 넘어서서 촛불시민 스스로가 새 부대를 마련하고, 새 술의 맛을 더 감칠나게 할 새로운 장인을 발견해내길 갈망한다. 그래서 촛불시민이 혁명의 도정에서 진짜 주역으로 서길 기대한다. 그런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면서 혁명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 본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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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검찰의 적폐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권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한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비리에 눈감아 오늘의 대혼란 사태를 야기했다. 김기춘·우병우 같은 검사 출신 인사들은 갖은 공작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홍만표·진경준 같은 전·현직 검사장은 공익의 대표자와 사회의 거악이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시민이 꿈꾸는 세상과 검찰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자명해졌다. 시민의 감시에서 벗어난 검찰,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부패한 폭압기구에 불과하다.

한국 검찰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수사기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2200여명의 검사와 7000여명의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찰은 그 자체로 직접적인 수사권을 갖고 있는 거대 권력이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도 지휘한다. 경찰이 형사 사건의 97%가량을 처리하지만 수사 주체는 엄연히 검찰이다. 경찰 단독으로는 압수수색 영장조차 발부받을 수 없고 경찰 조서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도 없다. 검찰은 기소도 독점하고 있다. 검찰이 봐주기로 작정하고 재판에 넘기지 않으면 아무리 나쁜 사람도 죄를 물을 수 없다. 검찰이 저지른 범죄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기관도 사실상 검찰밖에 없다. 하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처럼 검찰은 자체 비리에 둔감할 뿐 아니라 제 식구에게 한없이 관대하다. 검찰청 조사실에서 점퍼 지퍼를 반쯤 내린 채 팔짱을 끼고 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1월 4일 (출처: 경향신문DB)

한국 사법시스템의 원조격인 독일은 검찰에 자체 수사 인력이 없다. 검찰에 기소·불기소의 재량도 주지 않는다.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 일본은 경찰이 체포·압수수색 영장 등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시민들이 심사하는 제도도 있다. 무작위로 뽑은 시민 11명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지방 법원마다 설치돼 검찰을 견제한다. 미국에서는 범죄 수사를 원칙적으로 경찰이 담당하고, 검사장을 시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 영국은 중대 경제 범죄가 아닌 이상 검찰이 직접 수사하지 않고 기소와 공소유지만 담당한다.

이들 나라에 비하면 한국 검찰의 권력은 가공할 수준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검찰을 두려워하지만 검찰은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검찰에 부여된 막강한 힘은 정의의 편에서 공익을 수호하라는 취지지만 검찰은 강자의 이익을 위해 썼다. 부정한 정권일수록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검찰총장으로 세우고 민정수석을 리모컨으로 활용한다. 곽상도·홍경식·김영한·우병우·최재경을 거쳐 지금의 조대환까지 현 정권의 민정수석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청와대와 각 정부 부처는 매년 수십명의 검사를 파견받고 있다. 검찰은 정권과 거래하며 전리품을 챙긴다. 입법·사법·행정부의 주요 권력기관은 검찰의 재취업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직 공안 검사인 황교안과 박한철은 국무총리와 헌법재판소장으로 옮겼고, 국회는 검사 출신 의원들로 넘쳐난다. 검찰 공화국, 검찰 파쇼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게 정권과 한 몸이 된 검찰이 한 일은 시민을 배반하는 것이었다. 이번 게이트는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검찰은 부실·편파 수사를 했고 결국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일을 키웠다. 2년 전 정윤회씨가 청와대 핵심 인사와 정기적으로 만나 국정 정보를 교류했다는 청와대 문건이 공개됐을 때 검찰은 문건의 유출 과정만 문제 삼았다. 우병우 전 수석의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석수 특별감찰관과 비리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겨냥하는, 본말 전도로 일관했다. 최순실씨 관련 비리는 지난해 7월 언론에 최초 보도가 났지만 압수수색은 3개월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특검 출범이 기정사실화하자 검찰은 뒤늦게 박근혜 대통령을 수사하고 청와대를 압수수색하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다. 시민 통제에서 벗어난 검찰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취약하다는 증거이다.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한 것도 무소불위의 검찰이 대통령 권력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권의 축소와 분산, 검찰에 대한 견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수사를 담당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립 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한다. 공수처가 검찰의 의도적인 수사 기피와 검찰 부패를 막는 대증적 처방이라면, 검찰권 남용을 막는 근본 대책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가칭 수사청과 기소청을 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미국처럼 주민이 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직접 선출하자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정권으로부터 검찰을 독립시키고 중앙집권적인 검찰 권한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법무부에 대한 시민 통제도 필요하다. 검사 출신이 아닌 인사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고 법무부 주요 보직을 전문 행정관료로 대체하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수직적인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다만 수사권 조정 등의 문제는 검경 간의 권한 배분이 아닌, 인권 신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경찰의 인권 의식이 여전히 후진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검찰에 더 이상 ‘셀프 개혁’을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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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은 64개의 괘로 길흉을 따진다. 64괘 중에서 가장 좋은 괘가 겸(謙)이다. 겸손할 겸은 말씀 언(言)과 아우를 겸(兼)이 합쳐진 자다. 말할 때 상대를 배려해서 하면 자연 겸손해진다는 뜻이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새해는 겸과는 거리가 먼 해가 될지 모르겠다.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잃는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는 항상 옳고 똑똑하고 구국의 영웅이다. 들보 같은 흠결도 ‘세상에 안 그런 놈 어디 있느냐’고 하고, 티끌만 한 장점은 “세상에 이런 사람 또 있느냐”고 한다. 무조건적이다.

정책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세금은, 보육은, 가계 빚은, 실업문제는 어찌 풀지 궁금하지도 않다. 그건 난 모르겠고, 뽑아 주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식이다.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은 반기문에 대해 “공산당만 아니라면 따라갈 것”이라고 했다. 자기 집 가사 도우미를 구한대도 “공산당만 아니면…”이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눈 감고 귀 막고 뽑았던 대통령이 박근혜고 이명박이다. 이명박은 4대강에 20조원이 넘는 돈을 퍼부었다. 5000만 국민 1인당 40만원씩 걷어 강물에 뿌린 꼴이다. 지난 연말 모임에서 만난 서울대 교수는 “그 돈을 벤처 불쏘시개로 지원해줬으면 10%, 5%만 성공했어도 지금 활활 불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는 긴 말 할 것 없다. 시민들은 박근혜에 대해 믿어 왔던 것들이 조작된 신화이며 허상이었음을 4년 뒤에 깨달았다. 그나마 늦게라도 밝혀진 게 다행이다. 정유라의 강아지가 나라를 구했다. 촛불시위에 나온 노인들이 아이들에게 과자를 건네주며 “우리가 잘못해서 너희가 고생이다”고 했다고 한다. 과자로 끝낼 일이 아니다.

리더십의 요소는 통찰력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다. 나라의 장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 상황은 바람과 같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도자는 남보다 먼저 봐야 한다.

16세기 일본의 작은 섬에 포르투갈인이 표류했다. 이들이 긴 총으로 멀리 떨어진 과녁을 맞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일본은 총 만드는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그들의 말을 배웠다. 17세기 조선의 제주도에 네덜란드인 서른여섯명이 표류해왔다. 하멜 일행이다. 이들 중에도 총포 기술자가 있었다. 조선은 이들에게 노역을 시켰다. 생김새가 특이하다고 춤과 노래를 가르쳐 남자 기생으로 부리기도 했다.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는 조총으로 전국시대를 통일했고, 조선은 굴욕적인 역사를 맞았다.

바깥세상은 눈이 핑핑 돌아가게 변하고 있다. 변화의 주기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지금 1년은 미래 10년, 100년을 좌우한다. 4대강이나 창조경제 따위가 새 시대로 나아가는 시대정신일 수는 없었다. 본인이 모르면 사람이라도 잘 써야 한다. 경전에는 ‘천하가 다 옳다고 해야 그 사람을 한 번 찾아가서 보고 쓰라’고 했다. 박근혜는 천하가 다 안된다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 썼다. 이명박은 5년 내내 땅을 팠고 박근혜는 주사를 맞았다.

역사는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불의가 가고 정의가 오지 않는다. 역사는 그냥 발전한 적이 없다. 기득권 수구세력이 변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보는 이름 없는 수많은 개인들이 힘을 모을 때만 가능했다. 4·19혁명이 그랬고 6·10항쟁이 그랬다. 그렇게 죽어라 애써도 역사는 직선이 아닌, 나선형으로 발전한다고 이탈리아 역사학자 비코는 말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세월을 허송했다. 박근혜, 이명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시민들의 손으로 뽑았다. 그사이 금쪽같은 시간이, 기회가, 에너지가 강물처럼 흘러갔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흐르는 강물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2000년 전 폼페이 사람들은 베수비오 화산을 끼고 살면서도 희희낙락하다 하루아침에 4m 두께의 화산재에 파묻혔다.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슨 일이 닥쳤는지 잘 모르는 모습 그대로 발견됐다. 기존의 특권세력들이 이들과 똑같다. 기득권 세력들은 다른 세상을 사는 듯 살아왔다. 촛불은 박근혜의 무능뿐 아니라 재벌, 검찰, 정치, 언론 등에서 그동안 자행돼온 불의와 시민의 분노가 만난 곳에서 등장했다. 시민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몰랐던 게 아니고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을 뿐이다.

새해는 불평등, 불공정, 불의의 구체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특권과 반칙, 불법과 협잡이 판치는 세상을 끝내야 한다. 촛불은 화산 폭발의 전조(前兆)다. 민심이란 화산에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화산은 아직 폭발하지 않았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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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류철균, 필명 이인화. 그는 평론을 발표할 땐 본명을, 소설을 내놓을 땐 필명을 썼다. 문단에 먼저 나온 것은 평론가 류철균이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8년 본명 류철균으로 계간 ‘문학과사회’에 양귀자 소설 평론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하지만 평론가 류철균은 문단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이인화(二人化)라는 필명으로 19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제1회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은 이 소설의 평론을 본명 류철균 명의로 쓰는 이른바 ‘셀프 평론’으로 화제가 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 등을 표절했다는 지적도 받았다. 당시 그는 “실재와 모방의 경계를 무너뜨린 ‘패스티시(혼성모방)’와 패러디 기법으로 쓴 작품”이라며 “문단의 혹평과 힐난은 ‘마녀사냥’과 흡사하다”고 강변했다.

정유라 이화여대 재학 당시 정 씨의 대리 시험 등 학사 특혜를 준 의혹으로 긴급체포된 류철균(필명 이인화) 교수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소설가 이인화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은 1993년 선보인 <영원한 제국>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모티브로 조선 22번째 임금 정조의 독살설을 다룬 <영원한 제국>은 100만부 넘게 팔려나갔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와 신권정치를 주장하는 노론 사이에서 왕권정치의 편을 드는 역사의식을 드러냈다”는 문단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박사 학위를 받기 전인 1995년 이화여대 교수가 된 그는 1997년 발표한 소설 <인간의 길>에서 독재자 박정희를 ‘난세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국가주의를 지지해 독자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노골적인 ‘박정희 찬양가’를 불러서였을까. 교수 류철균은 박근혜 정부에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 등을 지내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학점 취득 특혜를 준 혐의로 긴급체포돼 영어의 몸이 될 처지에 놓였다. 교수 류철균의 ‘날개 없는’ 추락이다.

소설가 이인화가 발표한 작품 제목처럼 독재자 박정희가 간 길은 <인간의 길>이 아니었고, 세상에 <영원한 제국>은 없으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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