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빈센트 반 고흐는 구두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목이 긴 구두나 짧은 구두를 포함해 구두만 그린 그림이 일곱 점이나 된다. 그릇이나 물병과 더불어 정물화로 그린 구두 그림도 두 점 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끈이 달린 낡은 구두’라는 제목이 붙은 그림이리라. 늙은 농부의 얼굴처럼 굵은 주름이 잡힌 구두는 끈이 풀어진 채 늘어져 있고 왼쪽 구두의 목은 접혀 있다. 해바라기 같은 화려한 작품에 가려 관심을 끌지 못하던 구두 그림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그려진 지 50년이나 지나서다.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고흐의 구두 이야기를 하면서 이 낡은 구두가 단번에 인문학의 화두로 부상한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이가 미국의 미술사학자 샤피로다. 하이데거가 아무런 검증도 없이 ‘끈이 달린 낡은 구두’를 농부, 또는 농부의 아내 것이라고 단정지은 것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 논쟁에 데리다가 가세하면서 고흐의 구두는 세상에서 가장 철학적인 구두로 바뀐다.

그림으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 이는 하이데거나 데리다뿐 아니다.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 메니나(시녀들)’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문구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을 분석했다. 이 밖에도 <판단력 비판> <미학 강의>란 저서에서 각각 자신의 미학을 펼친 칸트와 헤겔을 비롯해 수많은 철학자가 그림으로 철학과 미학을 설명했다.

2. 철학자들이 철학에 그림을 끌어들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은 딱딱한 철학을 쉽게 만든다는 이점 때문일 수 있다. 예술이라는 점에서 소설이나 시와도 닮은 회화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면 논증적이고 난해한 철학의 이해가 쉬워진다. 게다가 회화는 현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현실의 의무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작가나 철학자에게는 현실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지만 화가에게는 이를 면제해 주는 것이다. 어찌 보면 현실에서 벗어나 누구보다 사물을 순수하고 자유롭게 바라보고 표현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화가다.

철학자들이 그림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림으로 펼치는 세상에 대한 자유롭고 순수한 성찰이 이들의 사유를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공동체의 철학 수업에 화가나 예술학 전공자들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인문학을 깃발로 내세운 여러 공동체가 다투어 회화반을 만드는 것도 단순히 대상을 그럴싸하게 재현해내는 기능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언어로만 설명하던 사유를 시각으로 드러내며 이를 확장하거나 전복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물론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사물의 재현이라는, 기초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창의력과 영감을 마비시키는 입시교육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다. 대학이 제 역할을 포기한 시대, 자유를 추구하는 건 인문학 공동체를 개설한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3. “각각의 대학은 최대한 학문의 순수 이념과 마주할 때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고독과 자유야말로 이곳을 지배하는 원칙이다.”

19세기 초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창립을 주도한 빌헬름 폰 훔볼트의 말이다. 이 대학을 설립할 당시 프로이센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직후의 비상시국이었다. 패배의 원인을 군사력의 차이가 아닌, 경직되고 시대에 뒤진 국가 체제에서 찾은 프로이센의 지성인들은 이를 교육 개혁을 통한 사회 개혁의 기회로 여겼다. 그렇다고 이들의 관심은 당장의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과학 기술력이나 산학 협력에 있지 않았다. 예술과 문학을 통해 자유롭고 조화로운 영혼을 길러내는 것이 이들의 교육 이상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유였다. 개개인의 능력을 균형 잡힌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의 모든 통제가 배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무르익은 지금, 대학에 훔볼트의 이상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자본이 국가 권력을 조종해 대학의 학문과 자유가 시시각각 질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은 대학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가장 고통스럽게 목을 쳐줄 것”이라고 했던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의 e메일이다.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 문화수석의 각종 비리 의혹과 관련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들어서다 중앙대 학생들에게 카네이션을 받고 있다. (출처 : 경향DB)


보다 충격적인 일도 벌어졌다. 검찰로 출두하는 박 전 이사장에게 학생들이 뛰어들어 카네이션을 달아주며 사랑한다고 외친 것이다. 교수들의 목을 치겠다는 이사장을 학생들이 사랑한다? 얼마 전 도하 언론에 보도된 이 한 장의 사진이야말로 ‘이제 대학의 자유는 끝났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폭로하는 이미지일지 모른다.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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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중앙대 재단이사장이 어제 이사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학과제 폐지 등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중앙대 교수들에게 섬뜩한 막말을 한 사실이 경향신문 보도로 공개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지 하루 만이다. 박 이사장은 이 밖에 두산중공업 회장직과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 모든 직책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의 사퇴를 계기로 중앙대가 학문 자유의 전당이라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바란다.

박 이사장은 어제 자료를 내 “최근 중앙대와 관련해 빚어진 사태에 대해 이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대학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이 과정에서 논란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학내 구성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의 진심을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동안 중앙대의 정체성을 훼손시킨 과오가 크고 깊다. 이로 인한 교수와 학생 등의 자괴와 절망감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듯하다.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 (출처 : 경향DB)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한 박 이사장은 두산그룹의 비즈니스 운영체계를 그대로 도입하는 구조조정을 꾀했다. 효율성을 앞세워 대학에 5개 사업본부를 만든 뒤 교수들을 각 본부에서 일하는 ‘사원’처럼 만든 것이다. 이른바 ‘대학의 기업화’다. 이어 학과제 전면 폐지 방안을 내놓았다가 반발이 일자 학과제를 유지하되 모집단위를 광역화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학과제 전면 폐지는 소위 ‘인기 없는’ 인문학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려는 것이 숨은 목적이었다. 박 이사장은 이 과정에서 반발하는 교수들에 대해 “목을 쳐주겠다”며 협박하는 e메일을 총장과 보직교수들에게 보냈다. 검찰이 입수한 e메일에서 박 이사장은 “그들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라는 등 막말을 퍼부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의 재단이사장 발언이라고 믿을 수 없다.

박 이사장이 앞장선 대학의 기업화와 소유물화, 인문학 축소 시도는 비단 중앙대만이 아니라 오늘의 대학 사회 전체가 마주한 위협이다. 기업이 요구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돼 온 대학의 일탈은 학문과 지식인의 양식에 대한 모독이다. 대학은 이제 교양과 지성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제에 재단이사장이 경영권과 운영권 모두를 손에 쥐고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관행도 손질해야 할 것이다. 대학 경영은 재단이 하되 운영은 학내 구성원이 주도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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