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 이후, 여기저기서 기대와 불안이 섞인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에는 일부 의사단체 회원들이 모여 건강보험 개편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전면 비급여를 철회하고 의료수가를 올려달라는 이들의 주장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결국 이번 일부 의사단체의 ‘투쟁’ 역시 성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난 100년간 한국 의사 사회가 이렇게 늘 ‘지는 싸움’만을 해왔다는 것이다. 한국 의사 사회는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를 시작할 때 관행 수가의 55%에 불과한 낮은 수가를 채택한 것이 모든 문제의 원죄(原罪)라고 이야기한다. 이 주장은 의사 사회 내에서 서로 인용되면서 강화되어 ‘절대 진리’가 되었다.

의료 과정의 불친절, 과잉진료, 낮은 의료의 질 등 무슨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 ‘낮은 수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일견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이야기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현실에 안 맞는 ‘강요된 낮은 수가’는 ‘독재’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이 아니라 의료 부문에 대한 투자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공 병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조차 안되는 것도 그의 작품이다. 의사가 되는 데 들어가는 돈, 의료기관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대부분 의사 자신에게서 나왔다.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민심 무마책의 일환으로 의료보장제도를 법제화하지만, 그 시행은 1977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박정희 정부가 의료보험을 도입한 주된 이유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아니라 ‘정권의 정당성 확보’였다. 박정희의 의료보험 시행은 비스마르크의 의도와 흡사한데, 1883년 비스마르크가 독일 노동자의 봉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럽에서 제일 먼저 의료보험을 실시한 것처럼, 박정희 또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노동 평화’를 사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으로까지 이어졌다. 1988년 농어촌의료보험의 실시와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시대의 개막은 정권의 보위와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가 있다. 현재의 박정희식 의료보험체계는 고성장과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비스마르크식 제도이다. 따라서 고령화, 장기적 저성장, 낮은 고용률의 상황하에서 ‘비스마르크식 사회보장체계’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제도라는 점이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명토 박아 두자. 먼저, 의사 사회가 그 독재정권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저항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낮은 수가만을 강요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많은 비급여와 리베이트의 뒷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담합 구조’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한국 의사 사회는 정부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그간의 역사를 성찰하고 스스로의 변화를 각오하고 이뤄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며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지는 싸움’만을 계속할 것이다. 더욱이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의료보장체계의 개혁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비스마르크와 박정희식 의료보장을 청산하고, 건강권에 기초한 보건의료체계 구축 싸움에 의사 사회가 국민과 어깨를 겯고 함께 행진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신영전 | 한양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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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79년 만에 처음으로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되었다고, ‘삼성 불구속 신화’가 깨졌다고 거의 모든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물론 합법적으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약간 다른 각도에서 역사를 바라보면, 이미 삼성그룹의 회장은 한 차례 권력에 의해 붙잡힌 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난 바 있다. 1961년 5월28일, 일본에서 귀국한 이병철 회장이 박정희 장군을 ‘만났다’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박정희는 쿠데타에 성공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지적하고 체포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이병철은 일본에 있었고 한 박자 늦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감옥에 갈 줄 알았던 그는, 삼성그룹 비서실에 몸담았던 손병두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메트로호텔이라는 곳에서 박정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어떤 ‘신화’가 이어진다. 박정희는 자신이 경제를 잘 모르므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병철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병철은 박정희에게 기업인들을 석방해달라고 직언한 후, 일본의 일본경제인연합회(게이단렌)를 모델로 삼아 오늘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된 한국경제인연합회를 창설하였으며 국가중심의 경제개발 전략 수립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구속된 이후 이틀 연속 소환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적잖은 이들이 박정희 신화, 혹은 한국의 재벌 신화를 윤색하는 과정에서 이 사건을 일종의 평화로운 회의처럼, 혹은 이병철의 ‘돌직구’가 한국 경제 성장의 방향을 제시한 사업 설명회인 양 포장하곤 한다. 하지만 이병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계엄 상황이고, 상대는 바로 그 쿠데타의 주인공이다. 형무소가 아니라 호텔에서 만났다 해도 실질적으로 구금 상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박정희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박정희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만 할 상황이다. 박정희를 오래도록 보좌해온 누군가를 익명으로 인터뷰한 후 다니엘 튜더는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병철은 모종의 방법으로 귀국하라는 설득을 받았고, 돌아오자마자 서울 모처에 감금됐다. 그러나 재능 있는 사업가이자 설득력 있는 화술의 소유자였던 이병철은 박정희 장군과의 협상 끝에, 그가 지닌 대부분의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다른 기업가들이 박정희가 제시하는 경제개발 전략에 따르도록 설득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이병철은 오늘날까지 존속하며 기업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36쪽)

대한민국의 기업과 정부의 관계란 바로 이렇게 형성되었다. 정권을 손에 쥔 자는 기업의 목에 칼자루를 들이댈 힘을 갖는다. 기업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그 대신 정부의 경제발전계획에 따라 주요 사업에 참여할 권리와 더불어 해당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시중 금리보다 훨씬 저렴하게 대출받을 수 있다. 물론 그 대출받은 돈 중 일부는 다시 정치인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어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재용 측에서 최순실 딸 정유라의 말 구입 및 승마 비용을 지불해놓고도 그것이 뇌물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 협박을 받아 내놓은 것이라고 항변하는 것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강제로’ 돈을 내놓으면 권력으로부터 더 많은 이권을 얻어낼 수 있다는 기대하에 행동했을 따름이다. 1961년 이병철이 불법적으로 ‘구속’될 때부터 2017년 이재용이 합법적으로 구속될 때까지 이어져온 게임의 법칙을 따른 것이다.

‘삼성 불구속 신화’는 없다. 깨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없었다. 다만 재벌과 정권의 결탁이 너무도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그런 신화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제는 가짜 신화가 사라진 자리에 공정하고 민주적인 시장경제를 수립할 때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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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에는 유대인 학살에 가장 악랄하게 가담한 독일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의 수많은 증언들이 기록되어 있다.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법정 재판을 참관하면서 아렌트가 내린 결론은 ‘악의 평범성’이었다. 유대인을 색출하고, 그들을 열차로 호송하는 일을 맡았던 아이히만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심문하고 진술하는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행위를 ‘악의 평범성’으로 정의했다. 아이히만은 검찰의 살인죄 기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유대인을 죽이는 일에 나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나는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을 결코 죽인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어떤 인간도 죽인 적이 없다. 나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아렌트가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 아이히만과 같은 추악한 악을 지나치게 인간의 보편적 악으로 설명하려 했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가 말하려는 악의 평범성은 매우 멍청하고 심오한 의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들, 자신의 잘못을 모르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들의 보편적 속성이다.

국정조사에 출석하여 증언하는 내내, 특검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내내 자신은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김기춘에게서 아이히만과 같은 악의 평범성을 느낀다. 블랙리스트 명단은 오스트리아에서의 유대인 추방자 명단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신·공안 동맹체들은 예술이란 영토를 순결하게 만들기 위해 블랙리스트라는 이름으로 1만명에 가까운 예술가들을 추방하려 했기 때문이다. 김기춘은 박근혜와 동맹하여 블랙리스트 명단 작성을 주도했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마치 유대인 학살의 총책 하이드리히와 그 하수인 아이히만과 같다. 그들은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말로 ‘최종해결책’이란 그들만의 언어규칙을 쓰듯, 김기춘과 유신·공안 동맹체는 예술가들을 추방하기 위해 블랙리스트라는 언어규칙을 사용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구속영장을 청구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20일 오전 특검 사무실에 출석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블랙리스트는 문화공안정국의 인장이자, 유신의 징표이다. 박정희가 부일장학회를 강탈해서 만든 것이 5·16 장학회인데 이 장학회의 첫 수혜자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다. 검사였던 김기춘은 법무부 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유신헌법의 기초를 만든 10명의 실무진 중 하나였다. 김기춘은 나중에 자신의 부역행위에 대해 “과장이 아니라 평검사로 일하면서 상부에서 시키는 잔심부름 외에 한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아이히만이 한 말과 거의 유사하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유신체제의 법령 입법과 개정의 공로와 실력이 높이 평가되어 유례없이 발탁”되었다고 적고 있다.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 <죽음과 소녀>는 칠레의 독재정권하에서 벌어진 인권유린 진상조사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에스코바르는 진상조사를 총괄하는 인권 변호사이고, 그의 부인 파울리나는 독재정권하에서 끔찍한 성고문을 당했다. 에스코바르는 어느날 타이어가 펑크가 나 어쩔 줄 몰라 하다, 50대의 시골 의사 로베르토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까지 오게 된다. 그런데 파울리나는 남편을 태워준 그 의사 로베르토가 15년 전에 자신을 성고문한 자임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비록 그녀는 안대를 하고 고문을 당해 로베르토를 본 적은 없지만, 그자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파울리나는 결국 로베르토를 집에서 체포하고 몸을 결박한 후 그에게 총을 겨누며 이렇게 말한다. “너를 죽이는 거야, 그래서 내가 나의 슈베르트를 들을 수 있도록.”

김기춘은 대한민국의 로베르토이다. 그는 공안검사로서 유신헌법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수많은 양심수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그리고 유신의 딸을 보좌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가들의 명예를 짓밟고, 예술을 검열했다. 검열당한 예술가들은 마치 <죽음과 소녀>에 나오는 파울리나와 같다. 그녀가 로베르토를 향해 총을 겨누듯이 우리는 유신의 역사적 유산인 블랙리스트를 향해 죽음을 선언해야 한다. 블랙리스트는 유신 회귀의 악귀이자 역설적으로 그 종말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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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중·고교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바꾸는 방식으로 모든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친일·독재를 미화해 폐기해야 마땅할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제 “기존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을 부른 것은 검정 절차 탓이라는 지적이 있어 심사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와 함께 중·고교에서 쓰일 검정 역사교과서가 집필기준에 미달하면 검정 심사에서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의 큰 틀을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도록 해 검정 역사교과서를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로 만들려는 얄팍한 속셈을 드러냈다.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하고, 박정희·이승만 관련 내용과 북한의 도발 사례를 대폭 늘린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르지 않는 검정 역사교과서는 탈락시키겠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출판사가 심사본을 제출하면 교육부 지침에 따라 심사하는 과정을 거친다. 출판사들로서는 교육부가 제시한 집필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 탈락하면 교과서 개발비를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정 역사교과서 필진이 자기 검열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기준을 따를 개연성이 높다. 검정 역사교과서가 ‘제2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강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검정 혼용 방침에 따라 검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입장은 자신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기 부정이자 무원칙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2015년 8월에 만들어졌다. 당시 교육부 위탁으로 역사 교수와 중·고교 교사 13명이 참여해 ‘한국사 교과서 집필기준’을 만들어 공청회까지 거쳤다. 하지만 국정화 고시가 발표되면서 해당 집필기준은 시안으로만 남아있다.

시민에게 탄핵당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되살려볼 요량으로 꼼수만 쓰고 있는 교육부의 기회주의적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교육부는 시대착오적인 검정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그것만이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고, ‘박근혜표 국정교과서’에 부역해온 잘못을 속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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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늘 세월은 흐르고 새해가 오지만 올해는 범상한 해가 아니다. 추운 날씨에도 1000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은 오직 불의에 분노하고, 나라가 바로 서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이 열망이 이번에는 실현될까? 과거 몇 차례 찾아왔던 호기를 번번이 놓쳐버린 우리가 과연 적폐를 청소하고 새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물론 첫 단계는 박근혜, 최순실 일당의 불법을 밝혀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정도로 새나라 건설은 안된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신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잘했는데, 그 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건 틀린 생각이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일심동체다. 박근혜, 최태민, 최순실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산물이다. 박정희는 헌법 위에 군림했고, 그걸 보며 자란 박근혜 역시 법의식이 희박하다.

박정희는 보기 드문 기회주의자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위해 일왕에게 충성 맹세 혈서를 썼다. 조갑제 책을 보면 박정희는 수시로 일본말을 했는데, 5·16 새벽 쿠데타군 출동명령조차 일본말로 했다. 해방 후 좌파 세상이 올 것 같으니 좌파에 가담했다가 이승만이 총애했던 악질 친일파 김창룡에게 체포되자 대뜸 동지들 이름을 불어서 수많은 동지들을 죽게 하고 혼자 살아남았다. 4·19로 모처럼 찾아온 민주주의를 1년 만에 뒤엎는 쿠데타를 일으켰는데, 온갖 이유를 갖다 대지만 본질은 권력욕이다. 그 뒤 대통령 임기 연장을 위해 헌법을 바꾸고 또 바꾸어 종신집권을 기도했다. 김재규는 법정에서 박정희의 여성 문제를 밝히는 부하의 발언을 제지했으나 끌려간 젊은 여성이 200명이 넘는다는 말을 남겼고, 그 부하는 달력에 등장하는 여성은 거의 다 다녀갔다고 보면 된다는 말을 남겼다.

1976년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해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최태민 총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람들은 박정희가 경제는 살렸다고 말하는데 이마저 허상이다. 박정희는 청렴해서 떨어진 러닝셔츠를 입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최순실 일가의 천문학적 재산이 실은 박정희 재산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통령의 재벌 독대, 정경유착, 부패는 박정희 모델의 핵심이다. 박정희는 욕심이 지나쳐 전국의 땅을 파헤치는 난개발,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 한국 땅값을 세계 1위로 올렸고, 돈을 마구 풀어 물가를 천정부지로 올렸다. 난개발과 물가상승은 일시적 성장 효과가 있겠지만 마약일 뿐이고, 장기적으로 경제를 망친다. 한국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덕분이 아니고,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근면한 우리 노동자, 농민이 피땀 흘려 달성한 것이다.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를 1968년에 착공, 1970년에 완공했다. 무리한 졸속, 부실공사로 애꿎은 77명의 인부들이 사망했다. 왜 이렇게 무리하게 서둘렀을까? 1971년 대선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박정희는 나라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했고, 멀리 보지 않고 항상 눈앞의 이익을 탐했던 사람이다. 일제 때는 친일파, 좌파 세상이 되자 좌파 변신, 체포되자 동지 배신, 권력욕에 눈이 멀어 신생 민주정권을 총칼로 뒤엎었고, 권력 유지를 위해 애국 학생, 시민을 잡아다 일제식으로 고문했고, 무고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켰고, 경제개발조차 대통령 선거에 이용했던 사람이다. 이런 아버지를 찬양하기 위해 박근혜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했단 말인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사람을 배우라고 가르친다면 이 나라가 장차 어찌 될 것인가.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면 세종과 이순신이 이러려고 훈민정음 만들고, 거북선 만들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 것이다.

선산 출신 김재규는 평생 박정희와 가까이 지냈으나 유신독재의 죄악상을 직시하고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했다. 전두환은 김재규를 패륜아로 몰았지만 언젠가 역사가 재평가하는 날이 올 것이다. 김재규는 거사 직전 붓글씨를 많이 썼는데, 그중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이 있다. 비리는 법을 못 이기고, 법은 권력을 못 이기고, 권력은 하늘을 못 이긴다는 뜻이다. 박정희의 무도한 권력도 하늘의 심판을 면할 수는 없다는 뜻이리라.

박근혜, 최순실의 부역자들이 쇠고랑을 차고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이 중요한 순간에 우리가 엄정한 법적 처벌만 갖고 새 나라 건설을 낙관할 수 없다. 하늘의 심판, 즉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박정희를 청산하지 않고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던 우리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없다. 박정희 청산 없는 박근혜, 최순실 처벌은 뿌리는 그냥 둔 채 잎과 가지만 자르는 것이어서 언제 다시 기회주의자들이 살아나 정의를 짓밟을지 모른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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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교육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책을 발표하였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면 사용을 1년 유예하고, 유예 기간이라도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려는 학교가 있으면 연구학교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또 새로운 검정교과서를 개발하여 2018년학도부터 국·검정을 혼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의 ‘품질’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먼저 역사인식의 기초인 사실의 오류가 너무 많다. 필자가 보기에는 근현대사 부분의 경우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에 비해 낫다고 말할 수 없다. 통합 임시정부 때 안창호 선생의 직책이 노동국 총판인데, 통합 이전의 직책인 내무총장을 언급하고 있을 정도이니.

더 큰 문제는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는 부분에서 특정한 의도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외교론과 실력양성론의 독립운동을 유달리 강조하고 노동자·농민 등 대중의 생존권운동을 사회주의운동처럼 취급하며 가벼이 다뤘다. 또 유신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말할 때 흔히들 그 이유를 긴급조치에서 찾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법률이 제9호이다. 그럼에도 1300여명을 구속시킨 제9호보다는 경제문제를 다룬 제3호를 중점 소개하고 있다. 사실을 빙자하여 시대의 이미지를 비틀어 버린 대목이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19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 국정교과서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조속히 내려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다보니 국정교과서는 더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정치적 배경을 빼버렸고, 식민지기 역사를 수탈과 저항의 역사로만 기술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설명한 생활사 부분이 없다. 경제와 사회 영역이 생략·축소된 경우는 고대, 고려, 개항기 서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국정교과서는 학생들이 특정 시대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길안내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재이다.

이것도 수정하면 될 것 아닌가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글쎄, 필자들이 수정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문장을 수정해서 될 일도 아니다. 분량과 수업 시수를 고려하며 단원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까지 감수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정이 아니라 ‘신판’ 제작이다. 오탈자 수정도 신고하는데, 이 지경에 이르면 ‘재검정’을 해야 한다.

이런 교과서를 현재의 검정교과서와 함께 사용하면 2017년 고교 1학년생들에게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국정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운 학생은 검정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 검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의 전체 쪽수가 최소 100쪽 차이가 나는데, 근현대사 부분에서 특히 편차가 크다. 반대로 국정교과서는 특정한 곳에서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는데, 검정교과서에는 그렇게까지 많이 나오지 않는다. 국정교과서를 배운 학생이 2019년의 입시를 준비하려면 다른 출판사의 책을 2~3종 더 사서 공부하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외워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부 장관은 ‘공통 범위에서 출제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기자회견에서 자신했기 때문이다. 결국 절충이라지만 부담을 학생과 교사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그러면 2018년 국·검정 혼용을 본격화할 때는 어떻게 될까. 이때 사용할 검정교과서는 1년 만에 인쇄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매우 촉박함도 문제지만, 국정교과서용 교육과정에 따라 집필된 교재라서 문제다. ‘대한민국 수립’ 문제와 같은 사회적 논란이 있는 내용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더구나 국정교과서용 교육과정은 정치사 중심이어서 역사교육의 계열성을 무시하고 있다. 1876년 개항 이전과 그 이후의 서술 비율도 6 대 4를 지향하고 있어 근현대사 교육을 강조하는 지금까지의 흐름에도 역행하고 있다.

따라서 국·검정을 혼용할 것이 아니라 2019년도부터 적용할 교육과정을 우선 새로 개발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역사교육을 정치화로부터 독립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마침 내년에 대선이 있으니 역사학 대회에 참가하는 학회들이 후보자들에게 역사교육 공약을 공개적으로 질문하는 방법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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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 출신답게 의전을 중요시했다. 그는 골프를 칠 때 앞뒤 팀을 받지 못하게 했다. ‘황제 골프’란 말은 그때부터 쓰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코스 하나를 공짜로 독점하며 골프를 쳤다. 그의 골프 행차 때면 청와대에서 골프장까지 경찰이 배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황제 테니스’를 했다. 서울시장 때 남산 테니스장에서 3년가량 공짜로 테니스를 쳤던 그는 대통령 퇴임 후에도 주말에 반값 요금만 내고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황제 테니스’를 즐겼다.

박근혜 대통령은 ‘황제 의전의 종결자’로 불릴 만하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영국 국빈 방문 때 5성급 호텔의 침대 매트리스와 샤워꼭지를 바꾸고, 머리손질과 화장을 위해 객실에 조명등 2개와 스크린 장막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2014년 부산 벡스코 아세안 정상회의 때는 박 대통령 전용 화장실을 위해 세면대와 변기를 새로 설치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인천시장 재직 시절 박 대통령의 인천시 방문을 앞두고 청와대에서 변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변기에 집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 시민운동가는 광화문 촛불집회 때 모인 성금으로 2만원짜리 유아용 변기를 구입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청와대에 발송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이 전용 변기를 쓰기 위해 멀쩡한 변기까지 교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장도리]2016년 12월 19일 (출처: 경향신문DB)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황제 의전’으로 자주 입길에 오르고 있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23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한 임대아파트를 방문하면서 주차된 차량을 빼달라고 해 주민들에게 “대통령 코스프레 하지 말라”는 항의를 받았다. 황 권한대행은 지난 3월 관용차를 타고 서울역 KTX 승강장까지 진입해 ‘황제 의전’ 논란을 빚기도 했다.

교수신문은 지난 24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민생은 돌보지 않고 ‘황제 의전’만 즐긴 배를 물이 뒤집는 걸 다른 사자성어로도 표현할 수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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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TV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가 “저는 대한민국과 결혼했어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냥 얼어붙어 버렸다. 현직에 있던 대통령과 영부인을 총탄에 보낸 경험을 안고 있는 국민들은 그들의 딸 앞에서 연민의 정에 포박당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후광 앞에 그의 지도자적 자질이나 인간됨, 성격 등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니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을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어 보였다. 일상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슬퍼하고 사소한 일에 기뻐하기도 하며 질박하게 삶을 만들어가는 일반적인 국민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삶을 살아온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4년10개월 뒤인 지난 11월 영국 BBC는 박근혜 스캔들을 ‘셰익스피어의 희곡감’이라고 보도했다.

쿠데타로 집권해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의 딸로 태어나 권력의 보호막 밖에서 단 한순간도 살아보지 않은, ‘완전히 기이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가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고, 그 ‘기이한 환경’의 힘으로 대통령까지 되었다가 40년 지기 최순실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한 결과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스토리는 그 어떤 희곡보다 훨씬 극적이다.

2012년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출연한 SBS <힐링캠프>.

11세기 스코틀랜드의 장군이었던 맥베스 이야기를 셰익스피어가 희곡으로 만든 것도 극적 운명 때문이었다. 맥베스는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믿고 권력에 대한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이 모시던 왕을 죽이고 권력을 쟁취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악마의 예언에 눈이 멀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다니…. 하늘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나, 저주받은 왕관 때문에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한탄을 쏟는다. 그는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강력한 용맹을 가졌지만 마녀의 예언을 믿을 만큼 어리석었고, 그의 머릿속엔 권력의 욕망 이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연설문 하나 자기 힘으로 작성하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집요한 권력욕을 이용하여 대통령을 지배한 최순실은 맥베스를 죽음으로 이끈 마녀와 똑같은 역할을 하였다. 희곡 속 맥베스의 마녀는 처벌받지 않았고, 현실의 박근혜는 자신이 완전히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른다는 것만이 다른 점이다.

눈먼 권력자의 운명은 2000년 전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왕을 통해 이미 비극의 전형으로 묘사한 바 있다. 오이디푸스는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의 예언을 피하기 위해 방랑길에 올랐고, 아무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 정도로 지혜로웠다. 그러나 세 갈래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행인과 다투다가 그가 아비인 줄 모른채 왕을 살해했다.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그녀가 어미인 줄 모르고 선왕과 사별한 왕비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절대로 결백하며 죄는 오직 다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다는 중대한 착각과 오만에 빠져 있었다.

그는 선왕 살해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다 결국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과 자기정체를 알게 되었다. 어미이자 아내인 왕비가 자결을 하자 그는 왕비의 브로치로 자기 눈을 찌르고 절규하며 파멸하게 된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타고난 ‘운명’과 자신은 완결하다는 ‘오만’이었다. 일반국민의 삶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박근혜는 크나큰 폐해를 덮어버린 산업화의 신화로 포장된 박정희의 후광과 부모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동정심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은 결백하며 모든 잘못은 주변 사람들에게 있다는 독선과 오만으로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2000년 전의 오이디푸스와 너무도 닮았다.

맥베스는 마녀에게 속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오만함에 속았다면, 오늘날은 박근혜라는 기이한 운명의 권력자에게 온 국민이 속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과정과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독선과 오만으로 위법행위를 한 대통령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곡 중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켜 감정을 정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눈앞에 벌어진 현실에서 분노에 가득한 국민의 감정을 정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법에 따른 처벌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거리로 나선 수백만 국민들의 가슴에 메워질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 뿐 아니라 제2, 제3의 박근혜의 등장을 보게 될 것이다.

송호창 | 존스홉킨스대 방문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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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 틀림없어. 평일 아침에 흙 묻은 등산화를 신고, 허름한 배낭을 멨다. 게다가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분명 간첩이야. 저걸 어떻게 신고하지? 가다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워야겠다.’

 

1970년대가 아니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1986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도 아니었다. 군대까지 다녀온 스물아홉 먹은 멀쩡한(?) 청년, 게다가 버스 운전사였다. 그런데 아침에 내가 모는 삼화교통 333번 버스에, 어릴 적 반공 세뇌 교육으로 배운 그런 간첩 행색의 남자가 탔다. 나는 룸미러로 그자를 훔쳐보면서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파출소에 버스를 대고 얼른 뛰어가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이 와서 조사해 보니 간첩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었다. 부끄러웠다.

 

이렇게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요즘 ‘박근혜를사랑하는모임’(박사모)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때문이다. ‘북한지령 망국촛불’이라고 쓴 팻말을 보면 내가 버스 운전할 때 간첩 신고한 것과 너무 흡사하다.

 

“도대체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 당시, 집회하는 대학생·시민들을 보고 ‘도대체 왜 집회하는 거야?’라고 궁금해했던 것보다 더 세상을 모르고 있다.

 

사실 박사모 같은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가끔 본다. 얼마 전에 방송대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도 그런 사람을 만났다. 일흔 정도 돼 보이는 방송대 학생이 내 가슴에 달린 백남기 농민 추모 리본을 보더니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난 백남기 그 사람, 살아온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

 

지하철에서 만난 어떤 사람은 내가 달고 다니는 세월호 배지를 보고 이렇게 물었다. “아니, 다 끝났는데 아직도 달고 다니세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는 지난주에도 있었다. “아니, 대통령 7시간이 왜 그렇게 중요하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서.

 

박사모들은 어릴 때 나처럼 반공교육에 세뇌된 사람들이다. 나는 다행히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리영희의 <반세기의 신화> 등 다양한 책을 보면서 세상을 배웠다. 그런데 박사모들은 그때 세뇌된 상태로, 주로 텔레비전을 보고 세상을 판단한다. 전엔 박정희, 요즘은 박근혜에게 장악돼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만 보니 그 의식은 변하지 않는다.

 

하긴 TV조선 같은 종편은 더 심하다. 2011년 12월 조선일보 기자 박은주가 TV조선 방송에 나와 박근혜를 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했다. 다른 진보언론이나 인문학 책을 보지 않고 그런 방송만 보니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 없고, 꼴통 보수의식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보수언론이 박사모 같은 단체를 만든 주범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박근혜 게이트가 세상에 드러난 건 진보·보수언론의 합작품이었다. 박근혜 불통 정권을 일관되게 비판해온 매체는 경향신문, 한겨레이지만, 2016년 7월26일 ‘청(와대) 안종범 수석, 500억 모금 개입 의혹’ 기사로 K스포츠·미르 재단 의혹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TV조선이었다. 그리고 다시 진보언론이 국정농단한 최순실을 수면 위로 끌어내고, JTBC, 조선일보가 가세하면서 박근혜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끝까지 침묵하던 공영방송은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박근혜 게이트를 다뤘다.

 

박사모는 헷갈린다. 박정희, 박근혜를 칭송하던 보수언론이 갑자기 박근혜가 최순실 꼭두각시였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고, 탄핵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니 헷갈릴 수밖에. 그들은 정말로 대통령이 탄핵당해야 하는 이유를 모를 수도 있다. 그리고 “언론은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보수언론이 갑자기 내부자에서 심판자로 바뀐 걸까? 두고 봐야 한다. 보수언론이 이전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감추고, 전쟁을 조장하고, 진보를 비방한다면 ‘역시 보수언론은 쓰레기’에 머물 수밖에 없다.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 박사모한테 “언론은 쓰레기”라는 칭찬을 늘 받을 수 있는 언론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그리고 박사모들은 경향신문이나 월간 작은책 같은 진보적인 매체도 좀 읽어보시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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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에서 12월에 걸쳐 한국에서 벌어진 평화시민혁명의 의미를 지금 가늠하기에는 너무 이른지도 모르다. 일단은 잠정적 진단으로 봐주시길 바란다.

 

국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부정부패를 저지른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투쟁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를 이끌어냄으로써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만명에서 시작한 집회는 매번 참가자가 늘어나 급기야 2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국에서 참여하는 초거대 집회로 발전했음에도 순조롭게 열렸다. 정말 놀랍게도 부상자, 구속자 한 명 없이 평화롭게 순항했다. 세계가 놀랐고 우리 자신도 놀랐다. 우리는 이 세기적 평화시민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왜 가능했는지 곰곰이 헤아려야겠다. 이 진지한 점검에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래가 걸려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필자는 갖는다.

 

한국에서 평화시민혁명이 분출한 시점은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의 집권이 예정되면서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역학관계에 미묘한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이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혹은 개입축소정책으로 재조정되려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 한국의 동향을 북한을 비롯한 미국·중국·일본 등 관련 당사국들이 예민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가 보수로, 배타주의로, 자국이기주의로, 인종주의로 흐르고 있지만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정의로, 화해와 공존으로, 공동체주의로 향하고 있다. 핵무장으로 자신의 생존을 찾으려는 북한은 국정파탄과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집권자를 국회에서 탄핵하고 재판에 넘기는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사드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으로 미·일 군사동맹에 한국을 편입시키려 하지만 평화시민혁명에 부닥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와 대북정책에서 자신에 어깃장을 놓는 박근혜 정권이 못마땅했지만 평화시민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의 중도하차가 분명해지면서 한국에 대한 태도를 재조정하려 할 것이다.

 

간략하게 살펴봤지만 평화시민혁명은 남북한 분단대결 체제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미묘한 시기에 한반도 내부와 주변에 큰 파장을 던지면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적으로는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부정부패 사태 때문에 지난 60년 가까이 지속된 박정희·박근혜 프레임의 모든 사고와 행태가 한국 국민으로부터 폐기되었다. 이제 독재와 부정부패를 저질렀으면서 반성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지배자의 군림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 혁명은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이승만 이래 미국 일변도의 의존체제가 불가피하게 전환을 강요당하는 시기에 진입하게 되었다. 우리가 미국에 그렇게 하도록 요구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이 더 이상 군비확장을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군사동맹을 폐기하거나 축소해가겠다고 대선 전부터 약속했다. 이 추세는 점진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전략대화는 한반도에서의 대결보다는 힘의 균형 쪽으로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평화시민혁명은 한반도에서의 평화공존, 교류번영을 추구하고 남북의 현상변경을 추구하지 않을 경우 양 대국의 이해와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이 핵 문제에서 이런 흐름에 함께하느냐가 관건이 되겠다. 남북의 대화·교류가 필요한 까닭이다. 한국은 아베 정권의 일본과 대화를 이어가되 일본의 평화운동 진영과 긴밀한 논의를 깊이 있게 나눠야 한다.

 

박근혜와 그 일파가 나라망신을 저지르고 위험에 빠뜨렸다면 평화시민혁명은 세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국격을 높였다. 평화시민혁명은 이제 한국과 한반도의 운명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내 평화를 새롭게 확장하는 데 공헌하게 될 것이다. 이 위기의 지구촌에서 한국이 평화시민혁명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기적이 진행되고 있다. 박근혜와 그 일파들을 극복하고 나라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우리 시민들이 자랑스럽다.

 

이부영 |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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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저지레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 모양이다. 소가 웃을 노릇이다. 밥만 먹고 이야기만 들었다면 키친 캐비닛이라 한들 뭐라 하겠는가? 그런 거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무엇인가를 도모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이 한 일에 대한 적절한 비유는 키친 캐비닛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이 최근 지적했듯 ‘가족기업’이다. 최순실은 남편, 박근혜는 아내라는 얘기다. ‘재산마저도 집단 운영해온 공동운명체’라고 하니, 구태여 부른다면 ‘키친 캐비닛의 대화’가 아니라 ‘베갯머리 송사’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때는 박근혜는 구국선교단이라는 거창한 조직의 대표를 맡고 최씨네는 실질적 경영자 역할을 하는 가족기업을 운영했다. 지금 최씨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종잣돈은 이때부터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근혜에게 명예총재를 맡긴 후부터 최씨네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을 다 냈다’는 것이 최씨네 식구로부터 나온 증언이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 실험은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재단을 책임지고 있던 때에도 그들의 궤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족기업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돈을 빼돌리는 일이다. 이들은 공공재를 개인화하는 일을 능사로 알았다. 당시에 일어났던 온갖 부정이 그러했다. 박근혜가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던 동안 대학 경영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정입학, 경리부정, 재산매각대금의 불분명한 처리 등 문제 제기가 꼬리를 물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비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최씨네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가족기업이었다. 결국 그 일로 박근혜 재단이사장은 학원민주화 과정에서 자리를 내놓았는데, 당시의 부정비리가 최근 청와대에서 일어난 것과 복사를 한 듯 닮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농단한 것이다.

 

지난 주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살인 암투를 보여주었는데, 그 핵심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거기에서도 오랫동안 가족기업을 굴려온 최씨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구국선교단,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그리고 청와대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돈을 어떻게 빼돌렸는지를 이번 기회에 파악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일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듯하다. 그리고 가족기업을 통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은 모두 토해 내도록 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의 부정축재에 대해 취한 방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부정축재를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 저 음험한 가족기업의 모의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분칠하는 후안무치의 민낯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앉은 곳마다 능수능란한 방법으로 돈을 빼먹어온 저 어두운 역사를 천하에 보여주어야 한다. 환수한 나랏돈은 나라에 돌려주고, 학교의 돈은 학생들을 위해 쓰도록 하고, 공익재단의 돈은 재단이 돌려받아 사회를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최순실이 저지른 일이고 자신은 몰랐다고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에서 재차 무고를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는지는 특검이 구체적으로 증거를 확인하며 밝힐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반복적인 ‘영업수법’으로 미루어보아 박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인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머리에는 전략만 있고 성찰은 없다. 물론 그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입을 앙다물고 전위를 맡고 친박이 새누리당의 스크럼을 다시 짜며 후위를 맡아 특검과 헌재 심판을 돌파할 계획으로 보이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저지른 동일수법 전과기록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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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의심스러운 대목은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소양에 관한 얘기는 그가 정계 입문한 18년 내내 입방아에 올랐다. 박근혜는 늘 짧게 말한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동생이 아니라면 아니다”. 간단명료하다. 처음에는 무슨 심오한 뜻이 있겠거니 했다. 알고 보니 그게 다였다. 2012년 대선 토론회에선 정책 현안을 묻는 문재인의 질문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선 ‘경제회생론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계속되자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했다. 본질인 정책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그간 보여준 행적과 언행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수단과 방법은 전무했다. “대통령이 돼도 걱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8회, ‘무능과 독선의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았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10회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50여회 기자회견을 했다. 박근혜는 4년 동안 5번 기자회견을 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질문은 받지 않았다. 토론 없는 회의, 대면보고 불가, 문답 기피는 박근혜의 실체다. 대통령 리더십은커녕 사회인의 기본 자질마저 갖추지 못했다. 그런 그가 국가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 적어도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집단 네다바이’를 당한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는 보수·영남·고령층에 깔린 박정희 향수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신격화됐고, 박정희의 딸도 특별한 존재였다. 박정희의 후광을 빼놓고서는 박근혜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설명할 수 없다. 둘째는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다. 박근혜는 야당 시절에도 ‘여의도 권력’이었고 확고부동한 ‘차기 대통령’이었다. 불러주면 감읍했고, 부르지 않더라도 줄을 이었다. 셋째는 포장이다. 박근혜의 불통과 오기, 무능, 책임 회피는 철저히 감춰졌다. 모든 단점은 신비주의로 포장됐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신중하다고 했고, 어쩌다 한마디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메시지라고 했다. ‘식인종 시리즈’를 얘기하면 세상에 이런 재밌는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는 것처럼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 세상 물정 모르는 공주를 만들었다. 비극의 전조는 있었을 테지만 외면하거나 은폐됐다.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곧바로 ‘레이저’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원로그룹 7인회의 좌장 김용환조차 ‘최태민’이라는 이름을 거명했다가 그 길로 정치생명이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여옥은 ‘벌거벗은 임금님’을 외친 유일한 측근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을 지내면서 박근혜 대표를 2년간 밀착 수행한 전여옥은 박근혜의 실체를 맨 처음 폭로했다. 전여옥에게 물어봤다.

-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이 많았는데.

“컴퓨터로 치면 저장 용량이 이미 꽉 차 있다. 새로 타인의 삶을 보고 배우고 공감할 능력이 없다. 야당 대표 시절엔 그나마 종이에 써서 외우기라도 했다. 대통령이 돼서 다시 나의 집이었던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내 임무를 완수했다 생각하고 손을 놔버린 것 같다.”

- 박근혜 화법을 ‘베이비 토크’라고 했다.

“사용하는 단어를 세어 보면 100단어가 안된다. 문법도 표현도 안 맞는다. ‘우리 경제가 불쌍하다’는 말은 유치원생들이 ‘꽃이 아야야 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청와대 공주 수준에서 딱 멈춘 것이다.”

- 다른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나.

“왜 몰랐겠나.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나보다 먼저 안 사람도 많다. 그런데 말을 안 하더라. 그게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란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 넘버원인 김기춘은 “우리 대통령은 차밍(매력적)하고, 디그니티(위엄) 있고, 엘레강스(우아)하다”고 했다. 이정현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했다. 이들뿐 아니다. 박근혜를 인우(隣友)보증 선 인사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지금 이들은 서로 네 잘못이 크다며 싸우고 있다. 박근혜 코미디 2막이다.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박근혜가 무사히 임기를 마쳤으면 전직 대통령으로 그 위세를 계속 떨쳐갔을 것이다. 친박계도 건재했을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정치판을 휘저을 것이고, 현안마다 “좋아요” “나빠요”를 던지며 정치 영생(永生)을 누렸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지 않았다면 이런 꼴을 더 봤어야 할 판이다. 반면교사도 훌륭한 선생님이다. 이젠 인물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눈도 생겼다. 지역·세대 투표도 달라질 수 있다. 천만다행이다. 그러니 박근혜에게 속았다고 속상해할 일만은 아니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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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한국인은 참으로 위대했다. 100만, 200만명이 저마다 촛불 하나씩을 들고 몰려나와 근 두 달 동안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는 모습을 나는 프랑스 남쪽 님(Nimes)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거북아, 거북아/ 네 목을 내어라…”를 외쳤던 신화를 떠올리게 하였으니, 만인의 입이면 무쇠도 녹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후세의 사가들은 2016년 12월9일,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을 두고 어떻게 기록할까?

돌이켜보면, 4년 전 대통령에 출마했을 때부터 그는 좀 이상했다. TV토론에 나와 “그래서 내가 대통령 되려고 하는 거잖아요”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웬만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댓글조작 의혹을 받는 국가정보원 여직원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었던 것을 두고 “사람들이 그녀를 감금했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은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앉은 그는 어쩌면 지금도, 나쁜 사람들에 의해 자신이 감금돼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12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한 첫 재판관 회의가 열린 헌법재판소 앞에서 경찰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언어구사력이 극히 저조해서 논리적 사유가 불가능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것은 세계적인 스캔들이 될 거라고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급기야 그는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보수’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물론 지켜지지는 않았지만 그가 내세웠던 공약들이라는 것이 ‘진보’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사실 ‘박정희’는 이 땅의 우상이었다. 18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면서 그가 저지른 온갖 만행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그 18년 동안 이룩한 경제적 성과만을 내세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퇴행적 로맨티시즘이 상당수 한국인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식 개발과 7·4·7 공약을 내세웠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옛날에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삽을 들고 4대강을 파기 시작했다. 어떤 외신은 그런 그를 보고 “뇌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박정희를 잊지 못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공과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그 단세포적인 논쟁은 이제 너무나 식상하고 피곤한 것이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그것이 보혁 논쟁의 출발점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박근혜의 출현에 대하여 어떤 외신은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웃었지만 소용없었다.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따위는 따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정말이지 절망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땅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 낡은 우상을 사람들이 허물기 시작한 것이다. ‘반신반인의 그 위대한 박정희의 딸’은 알고 보니 청와대 관저에서 각종 주사나 맞으면서 최순실이라고 하는 이상한 사람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는 의혹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비서실장 김기춘은 유신시절에 박정희 밑에서 배웠던 온갖 독재적 탄압을 오늘날 버젓이 음모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놀랍고 끔찍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박근혜가 탄핵심판대 위에 올랐다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의 뇌리를 점령하고 있던 그 지긋지긋한 우상이 통렬하게 허물어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우상을 허물어야만 비로소 사람들은 보수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차가운 사유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일지 | 소설가·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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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촛불에도 막무가내로 버티는 것은 과도한 권력욕 때문인가. 납득할 수 없다. 아무리 권력욕이 강해도 이토록 몰상식하고 몰염치하고 비양심적일 수는 없다. 분명 권력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 권력마저 수단으로 삼는 그 무언가가 비밀의 열쇠다.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결코 양보하지 않는 3가지가 있다. 경제성장, 대북강경론, 그리고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대통령에게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뭘 선택할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는 박정희의 딸일 뿐 아니라 정치적 후계자다. 박정희가 아프면 대통령도 아프다. 대통령은 영원히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수단을 교육에서 구했다. 바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다.

고교 한국사 검토본을 보면 무려 9쪽에 걸쳐 박정희를 다루고 있다. 5000년 역사를 다룬 교과서 전체 분량이 293쪽이니, 과도하다는 표현이 무색하다. 반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술은 4명 모두 합해 0.5쪽에 불과하다. 박정희 이름은 23회나 언급하면서 다른 대통령은 평균 2~3회만 언급한 것도 말이 안된다. ‘효도교과서’가 아니라 ‘박정희 위인전’ 수준이다. 진짜 위인들과 비교해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성웅’ 이순신 서술은 2쪽, ‘대왕’ 세종은 1쪽이다. 안중근 의사와 류관순 열사는 각각 단 두 문장이다. 박정희는 역사 속 위인 모두를 합한 것보다 더 걸출한 위인인 셈이다.

11월 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열을 지어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주장하는 패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내용은 훨씬 더 심각하다. 박정희는 사회 모순과 가난을 타파하고 산업화, 선진화를 이끈 인물로 그려진다. 5·16쿠데타 단원은 쿠데타의 동기와 명분을 평가 없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홍보물을 연상시킨다. ‘유신헌법과 중화학공업 육성’이란 단원 제목에서는 왜곡의 냄새가 풍긴다. 민주주의 말살과 인권탄압의 원흉인 유신체제를 마치 중화학공업을 육성시킨 원천으로 오해하도록 교묘히 조작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한국사를 수능 과목에 포함시킨 것은 박정희 우상화를 위한 역사조작의 마지막 한 수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박정희=절세의 위인이란 공식을 뇌리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사실 박정희 위인 만들기는 국정교과서가 처음이 아니다. 경북 구미시에서는 매년 ‘탄신제’가 열리고, 생가에는 5m 높이 동상이 세워졌다. 기념박물관, 체육관이 건립되고 박정희 이름을 딴 소나무와 등굣길, 밥상, 곶감이 탄생했다. 구미시장은 박정희에 대해 “하늘이 내린 반인반신”이라며 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서울 광화문에 동상을 세우겠다는 추모단체도 나타났다. 이 정부 들어 박정희 관련 사업 투입 예산은 3000억원이 넘는다. 박정희 띄우기는 파생상품도 만들어낸다. 박 대통령이 최대 수혜자다. 울산시가 지난 여름휴가 때 다녀간 박 대통령의 산책코스에 ‘대통령님이 걸으신 곳’이라고 안내문을 설치한 게 대표적이다. 그를 다룬 책에는 “진짜 거인” “선덕여왕의 화신”이란 표현이 넘쳐난다.

지자체와 일부 시민사회, 출판계의 박정희 부녀 띄우기는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우상화를 연상시킨다. 북한에서는 곳곳에 동상을 세우고 화재가 나면 가족보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부터 먼저 챙기는 코미디가 연출된다. 함경남도 신포의 이준 열사 생가 마당에는 ‘김정일 장군님 발자국’까지 보존하고 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촌극이 남한에서 현실화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지금 촛불 시민은 국정농단만이 아니라 박정희 망령과도 맞선 거대한 역사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국가와 시민의 현재와 미래가 걸린 중대한 싸움이다. 절대 져서도, 질 수도 없다.

대통령에게 촛불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원망스러운 존재일 게 틀림없다. 내년 박정희 탄생 100주년에 맞춰 교과서를 만들고 현장 배포를 코앞에 둔 지금 갑자기 나타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촛불에 밀려 자칫 불명예 퇴진이라도 당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국정교과서가 폐기되면 머리카락 빠진 삼손 꼴을 면할 수 없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가장 필요한 것이 시간이다. 최소한 교과서가 폐기되지 않도록 방안을 만들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는 이미 저물었다.

그제 사상 최대 230만 촛불은 대통령을 오갈 데 없는 구석으로 몰았다. 잔꾀와 말장난으로 버티지 말고 당장 물러날 것을 명령했다. 이게 정답이다. 파탄난 국정을 정상화하고, 나라 전역에 그림자를 드리운 박정희 망령을 걷어내는 길은 하나다.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정치생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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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지난달 28일 공개를 강행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초적인 사실 오류가 수백건에 달할 정도로 함량 미달의 부실 교과서인 것으로 드러났다. 뉴라이트 시각을 반영하며 친일과 독재를 미화한 편향성은 차치하더라도 엉터리 국정 역사교과서를 제작한 것이다.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어놓고도 이준식 부총리는 “질 좋은 교과서”라고 했으니 교육수장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내년에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한  서울·광주·전남 교육청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다.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역사교육연대 등 역사학회가 그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오류가 한 쪽당 1.5건가량이고 1·2권을 합치면 400~500건에 이른다. 오류와 왜곡이 너무 많아 도저히 교과서로 쓸 수 없는 수준이다. 역사적 사실을 틀리게 기술한 것은 물론 최근 연구를 통해 오류로 밝혀지거나 학회에서 쓰지 않는 과거 사료가 들어간 사례도 허다했다. 인류 최초의 금속도구는 순동이란 사실이 밝혀진 지 오래인데도 <한국사>엔 청동기로 기재됐다. 중학생용 <역사2>에는 인류 최초의 법전이 ‘우르남무 법전’이 아닌 ‘함무라비 법전’으로 나와 있고, <한국사>엔 통합 임시정부 때 안창호의 직책이 노동국 총판 대신 내무총장으로 잘못 표기됐다.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교육부 직원들이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살펴보고 있다. 교육부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이라 기술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더욱 심각한 것은 역사 왜곡이다. 현대사 영역에서 박정희란 단어를 20회 이상 사용하며 박정희 정권에 대한 서술을 대폭 늘린 대신 1987년 6월항쟁 이후 30년간의 역사는 4쪽 안팎에 그쳤다. 친일파의 범위에서 군인, 경찰, 사법관료와 동아일보 김성수, 조선일보 방응모 등 언론 사주를 빼기도 했다. 또 집필진이 초고본에 “유신헌법이 민주화운동의 헌법적 근거가 됐다”거나 “외환위기의 원인은 파업”이라고 서술했다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토과정에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국편은 직원들이 교과서 내용을 수정했다는 논란을 가릴 증거인 초고본과 개고본을 모두 삭제해 공공기록물관리법을 위반하는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다.

교육부는 함량 미달의 불량 국정 역사교과서를 즉각 폐기하는 것은 물론 수십억원의 국가 예산을 낭비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 국편이 초고본과 개고본을 삭제한 경위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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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통령을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 일컫는 것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을 위한 정책을 제안한 적도 없고, 여성으로서의 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여성’을 단지 생물학적 범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음을 생각하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을 너무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한때는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직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자가 무슨 정치!’라고 공공연히 훈계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물론 현 대통령이 선출된 데에 여성이라는 요소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라는 생물학적 금기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아버지의 후광’이 가장 중요했다. ‘박’가에게 통치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일종의 ‘역성혁명’의 논리였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성혁명이란 새 왕조의 옹립을 의미한다. 국정교과서를 통해 박정희 정권을 영원히 미화하려는 것이나, 국가예산을 들여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거나, 옥천군 예산으로 육영수 숭모제를 지내겠다는 계획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보다는 오히려 ‘나라님 숭배’의 정서에 가깝다. 청와대라는 ‘구중궁궐’에서 자란 ‘비운의 공주’ 이미지가 사실상 많은 지지자들을 사로잡았다. 그러한 전근대적 역성혁명의 결과가 현재의,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전근대적인 국정농단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6년 여성 신년인사회'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만큼,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보호받아야 한다’거나, ‘여성대통령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세월호 7시간에 대해서 묻지 못했다’는 말들은 어처구니가 없다. 걸핏하면 여성혐오 발언과 사건들이 불거지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그토록 고귀한(?) 존재인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여성’의 수치심이 국정농단의 범죄보다, 300명 이상의 목숨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만큼, 대한민국이 그렇게 여성을 맹종하는 사회였던가?

발언자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이러한 발언은 대한민국 여성을 ‘김치녀’로 매도하는 여성혐오의 문법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현 대통령을 옹호는커녕,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김치녀로 표현되는 여성혐오의 출발점이 바로 ‘여성이 무슨 벼슬이나 되는 줄 안다’는 남성들의 지레짐작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실제로 처한 상황이나 경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최대의 이익을 거두려 한다’는 ‘상상과 억측’이 여성혐오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 대통령을 ‘모시는’ 이 ‘신사(?)’들의 발언은 바로 이 상상과 억측에 기초해 있을 뿐만 아니라, 뻔뻔스럽게도 그것이 충성이라고 주장하는 행위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는 좌우, 학력, 세대, 계층적 차이와 무관하다. 심지어는 현 대통령을 철벽수비하려는 입장과 비판하는 입장마저 가리지 않는다. 여성대통령의 사생활 운운하는 ‘충신’들의 발언이 여성혐오적이라면, 대통령이 생물학적으로 여성임을 강조함으로써 조롱의 수위를 높이는 표현들 역시 여성혐오적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여성은 여성이라는 범주의 한 차원에 불과하고, 여성이라는 범주의 다른 특성들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도 않는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과도한 추앙이나 과도한 조롱을 받을 이유가 없다.

여성대통령의 ‘여성성’은 성적 이미지가 아니라, 젠더 불균형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통해서만 강조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보편적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리고 그러한 현상 뒤에 ‘여성들의 이기심’이 아니라 왜곡된 사회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여성정치인의 여성성을 강조할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찬숙 |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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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민주세력은 박정희 신화와 싸우고 있다. 우리의 상대는 박근혜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박정희다. 박정희를 가리키는 ‘반신반인’이라는 말에 모두 놀랐겠지만 이곳에서는 이 말이 오히려 겸양이다. 이곳에서 그는 온전한 ‘신’이다. 샤먼이다. 박정희 초상 앞에 촛불을 켜놓고 기복하는 모습을 이 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박정희 신화를 재생산하는 일은 쉬지 않고 진행됐다. 박정희 동상을 크게 세우고, 그의 최대 치적이라고 하는 새마을 담론을 동원하면서 박정희 신화를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박정희와 싸우는 일은 참 어렵다. 신화는 맹목적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보다도 강력하다. 이데올로기는 어떤 가치와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이지만 신화는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무섭다. 박정희 신화는 비판하면 할수록 더 단단해진다. 신화의 세계에서 박정희는 어떤 대화와 토론도 허락하지 않는다.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전교조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오늘 교육부에서 발표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이곳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신화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경기 군포 지역구를 버리고 고향을 찾아온 김부겸은 박정희 신화와 싸우기 위해 고육지계를 썼다. 그는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그리고 그것과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의 교류를 제안했다. 의표를 찌르는 제안이었다. 민주진영에서는 그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 후보의 공약에 박정희 컨벤션센터가 무슨 말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부겸의 의도는 박정희를 신화의 영역으로부터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내리자는 것이었다. 김부겸은 박정희를 역사의 세계로 호명한 후, 그를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차근차근 그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따져보자는 계획이었다. 김부겸이 오해와 논란을 감수하면서 내건 그 ‘아슬아슬한 공약’은 이유가 있었고 타당한 것이었다. 그것은 대구·경북에서 신화가 된 박정희와 싸우는 방편이었다. 신화를 상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김부겸은 박정희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그런 부담스러운 공약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박근혜 스스로가 박정희 신화를 깨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박근혜는 박정희 신화로부터 걸어 나온 ‘신의 딸’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의 신탁(神託)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의 언어는 아버지의 그것이고, 그의 국가관도 아버지가 끌고 가던 유신체제의 그것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시대에 성장이 멈추어버린 신의 딸이다. 그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여 좋은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고,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시대착오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랏돈을 빼돌려 최순실에게 주어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냉혹한 보복을 하였다. 박근혜를 지배한 것은 박정희의 신탁이었다. 그가 재벌들을 불러놓고 거래를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가 하던 방식대로 권력을 휘두르다 파국을 맞이했다.

이제 시민혁명의 횃불이 켜지고 박근혜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자 박정희 신전의 어둠도 걷히고 있다. 요즈음 박근혜의 거취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모양인데, 중요한 것은 박근혜의 퇴진 과정에서 박정희 신화의 본질을 보여주고 그것을 역사적으로 청산하는 일이다. 박정희가 저렇듯 신화가 되어 그의 유령이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는 것은 그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역사적 청산의 기회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짚어서 정리하고 평가하고 징벌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것이 박정희의 신탁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정치인은 박근혜의 퇴진을 두고 명예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발언이다. 이 사태를 정치적 타협으로 적당히 마무리하겠다는 정치적 수사가 아닐까라는 염려 때문이다. 박근혜가 자진 사퇴를 한다고 해도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박정희 신화는 다시 부활할지 모른다.

검찰과 특검수사, 국정조사, 탄핵 등의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는 박정희 신전의 어둠을 걷고 박정희의 신탁이 어떻게 박근혜를 통해 육화되고 박정희의 유령이 우리들 곁을 어떻게 배회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질서의 건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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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여론 수렴 후 내년도 학교 현장 적용 방안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준식 부총리는 “역사적 사실과 헌법가치에 충실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편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검토본은 우려했던 대로 헌법가치를 부정하고 편향적 역사인식으로 가득 차 있다.

현장검토본은 1948년의 이승만 정부 수립을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했다.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이승만 정부라는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강조한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친일파를 ‘친일세력’으로 완화하고, 친일 관련 서술을 줄인 것도 이해가 안된다. 정부가 앞장서 건국 97년의 역사를 68년으로 축소하고, 독립운동사를 부정하고 나선 셈이다. 반민족적, 반역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현장검토본은 또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옹호·미화하고 있다. 독재란 용어를 ‘권위주의 정권의 장기집권에 따른 독재화’로 바꾸고, 박정희 정권 시절을 다룬 단원 제목을 ‘냉전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사회발전’으로 정하는 식이다. 독재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5·16쿠데타의 경우 쿠데타 명분과 함께 개혁을 설파하는 ‘혁명공약’까지 따로 싣고 있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옹호하려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유신체제에 대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고만 기술했다. “대통령이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기존 교과서 기술과는 천지 차이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서는 마치 국가 안보를 위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경제성장도 성과는 강조하고 문제점은 축소하는 편향적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문제점과 관련해 ‘전태일 분신사건, 농민의 희생 등이 있었다’는 식으로 단순 사실만 나열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마을운동의 경우 비판적인 내용은 한 줄에 그치고 칭찬 일색으로 서술한 것과 대조를 보였다. 이 부총리는 “역대 정부 독재를 사실대로 서술하고 경제성장의 성과와 한계를 균형있게 서술했다”고 밝혔지만 낯부끄러운 얘기다.

국정교과서는 내용의 문제에 앞서 역사교육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해치는 반민주적, 반헌법적 성격 때문에라도 폐기해야 한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교과서 내용이 뒤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는 교육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뉴라이트 계열이거나 친정부 학자들이 다수인 집필진은 편향성 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편찬과정과 집필진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밀실집필을 강행함으로써 국정화 정책의 공신력도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바꿔보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려는 기도가 성공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국정농단 주범으로 국정 운영의 권능을 상실한 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법이자 반역사적인 폭거다. 이런 교과서로 국가의 미래인 학생을 가르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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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일대, 본래 맘 편하게 걷는 곳이 아니다. 머물러 있기에 적합한 곳도 아니다. 곳곳에서 전경과 마주칠 수 있기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빨리 지나가고 싶은 거리이다.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로, 그리고 자하문로를 걸어본 사람은 누구나 그 기분을 안다.

2016년 11월26일 다섯 번째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그날에 모인 군중은 청와대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행진했고 그들의 요구를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박근혜는 즉각 퇴진/하야하라”고. 그날 군중의 한 명이 되어 세종대로를, 사직로를 그리고 종로를 오후 3시부터 그다음 날 새벽 1시까지 걸었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아침이슬을 맞겠다는 즐거운 결기로 무장한 이 거대한 인간의 집합체를 관찰했고 그들이 외치는 구호를 채집했다.

도시의 차량을 통제한다고 도심의 거리가 광장이 되지 않는다. 광장은 도시공학의 산물이 아니다. 물리적인 공간에 생명체인 인간이 모일 때 광장은 만들어진다. 동원된 군중은 광장을 완성하지 못한다. 동원된 군중에게선 광장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자발적 의지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웠다. 모든 인간은 천부인권과 자연권을 갖고 있는 존재로 태어났음을. 서울의 150만명, 전국적으로 190만명의 사람들은 교과서에 단지 글로 존재하던 천부인권을, 그리고 국가는 자연권을 지닌 개인들이 맺은 계약의 산물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어냈다. 자신이 자연권을 지닌 사회계약적 주체임을 자각한 개인들이 모였다. 그래서 평상시 통치의 영역이자 국가의 의지가 재현되는 곳에 다름 아니었던 광화문 일대가 시민들의 광장으로 돌변하는 사태가 기적처럼 일어났다. 그 기적의 다른 이름이 촛불집회이다.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헌법 제1조 제2항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텍스트는 물리적 힘으로 변화했다. 그들이 행진할수록 결집된 의지는 자연권에 의거한 주권자의 엄중한 명령으로 바뀌었다.

자유발언이 펼쳐지는 광장에서 고등학생, 주부, 회사원, 농민, 목사, 외국인, 대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현재의 부당함에 대해 발언할수록 그들은 국민으로 동원된 착한 주체에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의 대칭성을 정확하게 파악한 사회계약적 주체로 거듭났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연인원, 그리고 물리적으로 그곳에 있지 못했어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그 광장에 접속한 사람의 규모는 ‘국민’에서 벗어나 ‘시민’의 역능(力能)과 비례한다.

조직에 속한 사람이든 그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든 이곳에선 ‘시민’이라는 주체로 합일된다. 깃발을 따라 행진하든 혼자서 행진하든 차이가 없다. 여기서는 혼자서(solitary)와 연대(solidarity)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국민’이라는 오래된 강제와 사유습관에서 벗어나는 한,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이미 수없이 손가락으로 연습했던 ‘좋아요’와 ‘공유하기’와 ‘댓글달기’는 시민의 구호와 몸짓으로 거리에서 재현된다.

‘국민’으로 소환된 사람은 의무를 우선시한다. ‘국민’은 자신의 미래를 국가가 제시해주길 기다린다. 그리고 국가가 제시한 미래를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은 채 믿어버린다. 국가에 의한 배신에 배신이 더해져도 미래를 국가에 기대는 관습을 ‘국민’으로 소환된 사람은 버리지 못한다. 사회계약적 주체로 거듭난 사람은 ‘국민’이 알지 못하던 시민의 ‘권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권리를 지닌 시민의 눈으로 지금 현재의 박근혜호 대한민국을 목격한 시민들은 “이게 나라냐”가 쓰인 손팻말을 들었다.

사회계약적 주체는 ‘광장’에서 각자의 미래를 상상하고 타인들과 교류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원한다. 모든 ‘국민’이 ‘시민’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압축성장 신화에 사로잡힌 앙시앵 레짐의 모든 관습에서 유래한 관행과 제도들이 대체되지 않는 한, 박근혜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어도 과거는 무한 반복된다. 박근혜라는 이름은 이곳에선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신화화되었던 한국 현대사의 앙시앵 레짐, 즉 구체제를 지칭하는 기호이다. “박근혜를 즉각 구속하라”는 외침은 구체제에 대한 긴급 정지명령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구체제가 지연된 현재이다. 박근혜 퇴진은 단순히 정권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유예된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원한다. 미래는 현재가 작동 중지될 때야 비로소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구호와 함께 통치의 거리 광화문 일대를 걷는다. “정치검찰을 청산하라. 검찰을 개혁하라”, 그리고 “재벌들도 공범이다, 정경유착 재벌기업 처벌하라”고. 사회계약적 주체는 현재에 대한 작동 중지 명령을 시민의 의무로 파악한다. 국가에 광장에서 수집된 우리 모두의 공통의 미래를 요구하는 것이 시민의 권리라 이해한다. ‘국민’이었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는 광장에서 이제 모든 것이 된다. 미래는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현재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초조하기에 얼굴을 찌푸리지만,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에게서 분노와 좌절은 찾기 힘들다. 여기엔 잉여의 무기력도 헬조선의 아나키스트적 분노도 없다. 여전히 진지하지만 영리한 군중들은 욕설의 카타르시스가 아닌 미래를 꿈꾸는 생성의 기쁨을 믿는다. 촛불집회는 이렇게 반복을 통해 진화했고 성장했다. 생성의 기쁨을 알아버린 사람은 폭력에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폭력은 현재를 지키려는 자의 비통한 마지막 몸부림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명령하는 국가와 통치하는 국가를 넘어서 광장을 담는 국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광장을 담지 못하는 그 어떤 정치, 그리고 그 정치가 제도화된 국가는 존재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2016년 11월26일 그날 “우리가 주권자다”, “우리의 명령이다”, “세상을 바꾸자”라는 외침은 그래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노명우 |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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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박근혜가 기어코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국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체제의 매듭을 짓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문재인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박근혜만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제도이고 규칙이므로. 박정희를 존경했기 때문에 박근혜를 좋아했던 유권자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보은(報恩)이었을 것이다. 박정희 덕분에 북한의 위협을 이겨냈고 이만큼 먹고살게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딸을 꽃가마에 태우는 것이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수미상관한 매듭이었다. 나는 다른 종류의 매듭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박정희 시대에는 작동했지만 점차 효용을 잃어 이제는 거의 작동하지 않게 된 시스템을 마침내 그의 딸이 철저히 절단을 냄으로써 매듭짓게 될 것이라는 예감. 결국 우리는 그 파국적 종언을 목도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파국은 다행스러운 면도 없지는 않다. 더 이상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이 되어버린 박정희의 기나긴 그림자를 마침내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파국 앞에서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의논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지금의 파국이 박근혜라는 한 개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주권자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노동을 비롯한 사회적 파트너의 철저한 배제, 5년 단임 떴다방 정권의 대통령 무책임제, 위험의 사회화와 이윤의 사유화 같은 제도의 조합은 지나간 모든 정권에서 문제를 야기해왔다. 그 꼭짓점에 어떤 개인이 앉느냐에 따라 문제의 정도와 양상이 달랐을 뿐이다. 우리의 제도는 언제나 문제를 안고 있었고, 박근혜는 그 문제를 판타지 소설로 만드는 주술을 부렸을 따름이다. 언젠가 이 시스템의 꼭짓점에 박근혜보다 더한 진짜 악마가 들어앉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보다 새로운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를 이틀 앞둔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벽면에 시민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이석우 기자

내가 불행하게 생각하는 것은 야권의 유력 주자들에게서 ‘지도자의 언어’를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야권은 대체로 광장의 촛불에 뒤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것이 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광장은 엄청난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광장은 앙시앵 레짐을 해체할 수 있지만, 새로운 제도를 설계하지는 않는다.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파탄 난 정권과 덩달아 멈춰버린 행정부를 대신해 이 모든 논의를 국회가 책임 있게 이끌어나가야 한다. 그중에서도 야당이 앞장서서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고 권력을 가져올 준비가 되어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야 하고, 그중에서도 대선주자들이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앞장서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대선주자의 기득권은 지지율의 크기에 비례한다. 그러나 지금의 지지율은 우리가 그렇게도 재설계하고 싶어 하는 낡은 시스템하에서 얻어진 것이다. 지지율 1위인 문재인 전 대표를 보자. 이 와중에도 그의 지지율은 기껏해야 2~3%포인트 올랐을 뿐이다. 대결적 정치구도에서 그의 편에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면서도 그의 편에 합류하기를 꺼린다. 확장되지 않는 지지율에 연연하기보다는 다른 주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는 편이 훨씬 나은 전략이다.

국가적 민폐가 되어버린 박근혜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리기 위해 광장의 촛불이라는 동력을 활용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동시에 야권의 대선주자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대를 설계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무엇으로 채워나갈지 하나하나 합의하고 우리 중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것만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국민들은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안심할 것이다. 마침 새누리당의 남경필 지사는 탈당을 결행했고 김무성 전 대표는 대선 불출마와 탄핵을 선언했다. 누군가는 불타는 수레에서 먼저 빠져나오려는 정치쇼라고 비판하겠지만, 비록 정치쇼라 하더라도 묵직한 희생을 감내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이다. 그들에게서 언뜻 지도자의 모습을 본 국민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이제 공은 야권 주자들에게로 넘어왔다. 혁명의 시대이지만 지도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한 시대의 파국적 종언을 넘어 새 시대의 청사진을 보여야 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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