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단체의 송년 모임에서 간단한 강의를 했다. 나는 ‘올해 지구촌 뉴스’를 전하면서 “박근혜, 트럼프보다 더한 인물이 다음 우리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청중석에서 비명 소리가 나왔다. 박근혜·최순실도 충분히 끔찍한데, 더 나쁜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니 놀란 모양이다.

‘박·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국정파탄, 부정부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구토를 부르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분노보다는 인간의 사회성에 대한 한계와 절망을 느꼈다. 독점한다는 의미의 ‘농단(壟斷)’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최순실씨 일가가 박태환 선수 협박부터 무기 구입까지 손을 뻗지 않은 곳이 없으나, 그들이 집어 삼킨 것은 좁은 의미의 국가권력(청와대)이 아니라 사회 전체다. 그들은 ‘우리’에게 깊은 자상을 남겼다. 정권이 교체될지 확실치 않지만, 이번 사태가 새누리당 해체나 정권교체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되는 이유다.

인간관계, 사회성, 민주주의를 해결해주는 과학기술은 왜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기왕 인공지능이 필요하다면 바둑이나 소설 쓰기 실험 대신 인간의 가장 어려운 문제인 도덕성을 조절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해본다. 삶의 꼭대기에 부와 성공, 물질적 욕망이 등극한 지 오래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자원은 감정의 연대다. 덜 외로운 상태. 스트레스 덜 받는 일상. 자기가 속한 곳에서 인정받는 것. 나의 경우 미세먼지 없는 세상이다. 한국인들이 인간관계의 고통과 불쾌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의 1인당 주류 소비량, 국민총생산 대비 최대 규모의 성산업, 쇼핑 중독.

<빵과 장미>라는 영화가 있지만, 둘은 다르지 않다. ‘빵’도 ‘장미(인간으로서 존엄)’의 힘이다. 의식주는 유대와 배려 속에서 생산된다. 정의가 힐링이다. 바람직한 사회제도 역시 선의의 인간이 운용할 때만 인프라로서 힘을 가질 수 있다. 박·최 게이트는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증명 같았다.

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e메일을 많이 받는다. 이런 사연이 적지 않다. “저의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요즘은 특히, 마음 둘 곳이 없는 중에, 하소연합니다. 별반 내용도, 목적도 없는 메모가 되고 말았지만… 죄송합니다.”

광장은 불신의 시대에 유일하게 마음을 주고, 나누고, 두고 올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되었다. 광장에 모인 200만이 넘는 사람들의 동기와 생각이 같을 리 없다. 광장의 축제는 일상의 프로작(우울증 치료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촛불은 밤의 시위가 아니라 낮의 우울을 밝히는 데 더 긴요한지도 모른다. 이런 촛불이 “바람 앞에 쉽게 꺼진다”고?

마음 둘 곳. 마음을 두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한때 이데올로기에 마음을 두었고, 한때는 사람에게 마음을 두었지만 지금은 없다. 나의 거처는 나 자신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나 역시 있을 곳이 없다. 옆을 기웃거리게 된다. 외로움과 혼자임은 무관하다. 문제는 자기 충족적인 건강한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하고 고립된 느낌이다. 외로운 사람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로워서가 아니다. 외로움 자체는 죄가 없다. 사회가 따뜻하다면, 외로움은 절실한 연대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경험하다시피 현실은 외로운 사람을 이용한다.

살 만한 현실이 중력처럼 나를 붙잡아주면 좋으련만 세상이 썩었으니 그 끈도 위태롭다. 예전에는 종교에 몸을 맡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기복은커녕 위안도 되지 못하나 보다. “종교가 없다”는 한국인이 56%가 넘는다. 마음 둘 곳을 찾아 헤매다가 방황을 멈춘 이들의 결심, 대한민국의 자살과 우울은 상상 이상이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상황은 몸(존재)을 둘 곳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말의 “몸 둘 바(所)를 모르겠습니다”는 겸양, 민망, 사과 등의 의미다. 내 몸이 차지하고 있는 작은 관짝만 한 공간조차 아깝고 부당하다는 자학의 뜻이다. 그런데 비유적으로 “죄송하다”는 의미 말고, 글자 그대로 실제 몸을 둘 곳이 없는 상태. 이것은 외로움을 넘어 존재의 위기다. 나는 어디에 있어야 적합한 사람일까. 타인과 세상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이들의 스트레스가 이것이다. 자기 몸 둘 곳이 없는 사람에게 사회는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눈총’에 대한 어느 청소년의 표현인데 실감 났다) 한심하게 여긴다.

나를 포함, 마음 둘 곳도 몸 둘 바도 없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잉여 신세임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음을 알고 있다. 자기계발도, 힐링도 속임수라는 것을 안다. 거기에 투자할 돈도 없다. 다른 쪽 사람들, 고령화사회에서 나이 들어가는 이들의 심정은 또 다른 서러움이다. 세상이 계속 “당신의 존재 자체가 사회문제”라고 하면? 고령화 대책은 좋은데, 그럴 때마다 ‘실제’ 고령인 사람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나는 ‘그들’과 동일시된다.

나의 송년 결론.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쓸모가 ‘생산과 건설’로 지구를 망치는 일이라면, 쓸모의 의미를 재규정하면 되지 않을까. 내 마음 둘 곳을 찾지 말고, 쉽지 않겠지만 남들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이렇게라도 생각을 묶어두어야 새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희진 |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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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난 리우올림픽은 박태환에게 기회의 땅이 되지 못했다. 그는 주종목인 400m는 물론이고 200m와 100m에서도 예선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 남은 1500m는 연습 부족을 이유로 기권했으니, 8명이 오르는 결선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채 귀국하는 신세가 된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두 달 앞두고 금지약물인 ‘네비도’를 투여받았고, 이 사실이 적발됨으로써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과 더불어 1년6개월간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는 징계를 당한다. 박태환은 줄곧 “비타민제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고, 주사를 놔준 의사를 고소까지 하는데, 어려서부터 국제대회를 숱하게 치른,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선수가 네비도가 금지약물임을 몰랐다는 것을 난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태환은 시종일관 억울하게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기자회견 때 눈물을 흘리며 했던 “고의성 여부를 떠나 대표선수로서 이런 결과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말에는 정작 진심 어린 반성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억울하게 당했는데 대체 뭘 반성한다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는 이런 식의 언론플레이를 계속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우리 국민을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몰랐다고 말하면 믿어주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과연 그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대한체육회 규정 때문에 박태환의 리우행이 좌절될 위기에 처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70%가 넘는 이들이 박태환에게 기회를 주자는 데 찬성했다. 재판 결과 의사에게 벌금형이 내려졌으니 박태환이 모르고 먹은 게 확실하며, 모르고 먹었는데 무슨 ‘약쟁이’냐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약을 먹은 선수들이 하나같이 ‘몰랐다’고 주장하는지라, 국제수영연맹은 모르고 먹은 이도 공평하게 약쟁이로 규정하고 있다는 주장도 그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화룡점정,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 박태환은 올림픽을 석 달 앞둔 시점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바닥에 넙죽 엎드려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그 이전에 이미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우리나라가 부당하게 선수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제소해 놓은 상태였기에 그런 퍼포먼스가 필요 없었지만, 그를 응원하는 국민들을 위해서 이는 꼭 필요한 행위였다.

그가 이렇게 해서까지 리우에 가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정컨대 국가에 대한 봉사가 아닌, 개인의 명예회복이 더 컸을 것 같다. 리우에 못 가면 약쟁이로 은퇴해야 하지만, 올림픽에 나가 동메달이라도 따면 약을 먹은 전력은 인간승리의 멋진 재료가 되니까 말이다. 안타깝게도 박태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연습 부족도 이유가 되겠지만, 수영선수로서는 환갑에 달한 그의 나이로 보아 열심히 연습했다 하더라도 메달은 힘들었을 것이다. 리우에서 쓸쓸히 귀국하던 날 박태환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일부 언론이 보내주기만 하면 메달이라도 딸 것처럼 기대감을 높여놓은 탓이었다. 불세출의 수영영웅이 이렇게 퇴장하나 싶었지만, 그에게는 다시 한 차례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름하여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해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워낙 광범위한 분야를 섭렵했지만, 최순실이 특히 공을 들인 분야는 자신의 딸이 활약하는 문화체육관광부였다.

“박태환 선수, 오해해서 미안해요.” 최순실과 특히 친한 김종 전 차관이 박태환에게 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그리고 박태환이 그간 쌓은 업적을 생각하면, 이런 반응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박태환 측의 관계자가 “박태환 선수가 자신도 모르게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게 된 게 최순실씨와 관련이 있는지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단다. 무슨 말일까? 최순실이 자기 딸 정유라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만들기 위해 의사를 매수해 박태환에게 네비도 주사를 놨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연아가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딴 것도 다 최순실의 음모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너무 어이없는 소설이라 웃어넘기려 하다가 주렁주렁 달린 댓글이 눈에 밟혔다. 눈물이 나려 한다느니, 못 지켜 줘서 미안하다느니, 수많은 이들이 저 루머를 믿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죄다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게 요즘 시국이긴 하지만, 이 루머는 너무 나갔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박태환의 태도다. 자신이 기자회견장에서 보인 눈물에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다면, 김 전 차관에게 협박당한 것과 자신이 맞은 네비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명해야 옳다. 하지만 그는 이런 루머에 기댐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한 박 대통령의 담화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숫자만 늘어나게 했을 뿐, ‘사생활’을 중시하는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지 못했다. 박태환은 물론 박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사람이지만, 이것만은 깨달았으면 한다. 진정한 명예회복은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말이다.

서민 |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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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금지약물 양성반응으로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수영스타 박태환 선수의 올림픽 출전 여부를 두고 찬반양론이 들끓고 있다. 논란은 FINA가 내린 징계의 만료일이 내년 3월이어서 내년 8월 개막되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참가의 여지를 남긴 것에서 비롯됐다. FINA의 처분과는 별도로 ‘금지약물 등으로 징계받은 선수는 징계 만료 후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박 선수만을 구제한다면 지난해 7월 금지약물 복용을 엄단하기 위해 만든 규정의 취지는 형평성 시비와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박 선수에게 기회를 주자는 쪽은 대한체육회의 규정은 ‘이중처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름 근거 있는 주장이다. 이미 2011년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처벌받은 선수에게 ‘차기 올림픽 출전금지’ 처분을 내리는 것은 ‘이중징계’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참에 대한체육회 규정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모양이다. ‘국위선양에 이바지한 박 선수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동정론이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금지약물 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타난 수영스타 박태환(26)이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18개월 선수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_ 연합뉴스


그러나 이는 박태환 선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박 선수가 ‘절대 복용해서는 안될’ 금지약물의 성분이 검출된 혐의로 FINA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에 FINA가 기본 징계 규정(2년)에서 18개월 징계로 감경한 이유도 분명하다. FINA 청문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기흥 대한수영연맹회장은 “FINA가 세계 수영 발전에 이바지한 박태환의 공로를 인정해 올림픽 출전 기회를 열어준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약물 양성판정을 받은 ‘엄연한 과오’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고의성 없음’이라는 국내 검찰의 수사 결과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FINA는 박태환 선수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할 기회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고 보니 박 선수는 약물 파문 이후 제대로 된 해명이나 사과가 없었던 것 같다. 조만간 팬들 앞에 나선다니 한번 지켜봐야겠다. 이제 징계가 확정된 만큼 자신을 성원해준 팬들 앞에서 진솔하게 용서를 구하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는 박 선수가 되기를 바란다. 용서는 그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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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박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