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1.24 불사르다, 불태우다
  2. 2017.01.23 트럼프 왔어요
  3. 2017.01.12 [사설]동생·조카 부패혐의 몰랐다는 반기문 전 총장

명색이 기자라면서 대책 없이 혼동해 사용하는 단어가 꽤 많다. 최근에도 뒤늦게 의미의 차이를 깨친 단어들이 있다. ‘불사르다’와 ‘불태우다’이다. 열정을 불사르고, 이 한 몸 불태워 어쩌고저쩌고하는 식의 표현들을 뒤죽박죽 사용했으나 사실은 잘못된 것이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불사르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불에 태워 없앤다’와 ‘무언가를 남김없이 없애 버린다.’ 전자는 서류 더미나 책을 불사르다, 후자는 번뇌나 잡념을 불사른다는 것이 적절한 예문이다. 불태우다 역시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무언가 불이 붙어 타게 하거나, 비유적으로 어떤 감정이 끓어 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열정을 불태우고 의지를 불태운다는 표현이 맞다. <더 건방진 우리말 달인>이라는 책을 보니 불사르면 없어지는 것, 불태우면 더 커지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돼 있다.

지난해 말 “한 몸 불사르겠다”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권도전 포부가 태평양 건너에서 전해졌다. 별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진부하고 케케묵은 수사에 내가 집착하게 된 것은 그가 귀국 일성으로 이 말을 다시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을 불사른다는 것일까.

16일 반기문 전UN사무총장이 부산 남구 대연동 UN기념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그의 귀국 직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정원 스님이 소신공양했다. 소신공양은 ‘자기 몸을 불살라 부처님 앞에 바친다’는 뜻으로, 세상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공양물로 바친다는 극한의 수행법이다. 이 의미를 찾아보면서 나는 그제야 앞서 설명한 ‘불사르다’와 ‘불태우다’의 차이점을 알게 됐다.

티베트의 여러 스님들, 가깝게는 7년 전 문수 스님이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실재하는 몸을 불사르는 이 극한의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철저하게 소외된 약자들의 처절한 자기 표현법이다. 몸을 불사른다는 것은 실재의 몸을 태우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죽어 없어질 만큼 헌신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마도 반 전 총장은 그런 의도였겠지만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 자리는 이름 없이 희생하는 비천한 곳, 혹은 암흑을 떨치기 위해 몸소 헤쳐가야 할 가시밭길 같은 곳이다. 서로 하겠다고 기를 쓰는 대통령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불사르다’는 단어를 참칭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거라고, 아마도 열정을 불태워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도의 의미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감정이 끓어오르게 한다는 동사 ‘불태우다’와 주로 조응하는 명사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먼저 열정이나 투혼, 의욕과 같은 단어다. 귀감이 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줄 때 사용된다. 또 다른 부류에는 욕정, 야망, 노욕 따위가 포함된다. 이런 단어로 묘사될 경우 남들에겐 분노와 짜증을 돋우고 본인은 망신살 뻗치는 결과를 맞닥뜨릴 확률이 높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민생 행보에 나선 반 전 총장의 모습에서 투혼과 열정을 불태우려는 그의 의지가 조금은 보였다. 어이없는 실수도 있었지만 시차적응 과정이려니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체는 금방 드러났다. “정 다른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하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나는 6·25 전쟁 때 땅바닥에서 공부했다” 따위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그의 언사는 형언할 수 없이 불쾌했다. “나이 들면 양기가 입으로 올라온다”며 성희롱을 합리화하거나 “우리 때는 말이야…” 하고 시절 지난 노래에 박자맞추기를 강요하는 ‘꼰대’의 모습이 겹쳐 보일 만큼.

열정과 투혼을 불태우고 싶은 청춘은 지금도 차고 넘친다. 문제는 거친 비바람 탓에 불꽃도 제대로 피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구를 100바퀴나 돌며 쌓은 소중한 경험과 자산까지 왜 불태우려 하나. 우리 청춘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람막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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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이명박’이라는 별명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현지시간 20일 취임하자 한국 누리꾼들은 ‘미국 사람들, 비슷한 지도자를 우리는 이미 겪어보았소’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트럼프가 취임사에서 “민중에게 권력을 돌려주겠다”며 배트맨 시리즈 <다크나이트 라이즈>(2012)의 악당 베인의 연설을 ‘복붙’하고, 빈자리가 숭숭했던 취임식에 ‘150만명’이 참석했다고 숫자까지 제멋대로 부풀리자 미국인들은 황당해했다. 미 중앙정보부(CIA) 본부 공석에서 기자를 콕 찍어서 인신공격하는 트럼프의 비민주적 행태는 한국 언론이 이미 지난 8년간 지나온 길고 어두운 터널의 ‘초입’을 연상시켰다. 트럼프의 취임식 케이크가 4년 전 버락 오바마의 두 번째 취임 때 사용됐던 케이크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며 요리사가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은 그의 단임을 기원하며 4년을 초단위로 거꾸로 세는 ‘트럼프 퇴임 카운트다운 시계’를 만들었다. 반면 지지율 60%로 백악관을 떠나는 오바마 전 대통령을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은 ‘짤방’들이 유통됐다. 오바마를 태우고 백악관을 떠나는 헬리콥터를 슈퍼히어로가 안간힘을 쓰며 붙들고 있는 장면 등이었다.

이에 한국의 한 트위터 사용자는 이렇게 위로했다. “지금 화나서 엎어버리고 싶겠지만, 나머지 절반을 (설득하려면 트럼프가) 누구도 부인 못하는 최악의 삽질을 한 4년 정도는 해야 한다”며 “너네는 큰 나라라 그렇게 삽질하면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없겠구나. 미국인들아. 잊지 마라. (트럼프 대통령이) 핵 쏘기 전에 탄핵”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미국인들이 어떻게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대선 당시 트럼프의 각종 구설에 대한 비판적 보도가 홍보로 역효과를 냈다는 뒤늦은 후회도 나왔다. 이에 각종 구설에 휩싸여 있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대선캠프가 ‘혹시 우리도 같은 패턴인가’ 싶어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믿거나 말거나.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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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하기 전날인 어제 그의 친동생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가 미국 연방법원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기소됐다.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는 베트남에 있는 경남기업 소유의 초고층빌딩 ‘랜드마크 72’의 매각을 위해 중동 관료들에게 50만달러의 뇌물을 주려고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사법당국은 이들의 범죄를 매우 무겁게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의 대변인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반 전 총장도 보도를 보고 알았다. 전혀 아는 바가 없을 것이고, 굉장히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조카 반주현씨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뇌물 혐의로 기소된 뉴욕 연방법원에서 심문을 받은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 전 총장의 동생·조카 문제는 이미 알려진 사건으로, 반 전 총장의 연루설이 계속 제기돼왔다. 2013년 자금 압박에 몰린 경남기업이 회사고문인 반기상씨와 미국에서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는 그 아들 주현씨에게 랜드마크 72의 매입자 알선을 요청했지만 이들은 카타르 관료의 가짜 대리인에게 속아 돈만 날렸다. 이 과정에서 주현씨가 경남기업에 제시한 카타르 투자청 명의의 인수의향서가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매각이 무산되자 경남기업은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국내법원에 제기했고, 지난해 10월 6억5000만원을 배상받으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경남기업의 성완종 전 회장은 바로 반 전 총장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인물이다. 2015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반 전 총장을 후원한 것 때문에 자신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밝힌 바도 있다. 이런 관계인 만큼 경남기업과 기상씨 간 계약 체결이 반 전 총장과 무관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주현씨가 큰아버지인 반 전 총장과 카타르 국왕 간 면담을 주선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증언도 있다. 그런데도 반 전 총장이 이들이 기소되는 것 자체를 몰랐다니 믿기지 않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정치 신인이지만 그의 출발이 신선하지는 않다. 비전·정책은 따지지도 않고 충청권이 집권해야 한다는 지역주의는 구태일 뿐이다.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지지단체들의 모습에서도 신선함을 찾을 수 없다. 반 전 총장은 에둘러 말하는 애매한 화법으로 비판받아왔다.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일성으로 박연차씨로부터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할 것이라고 한다.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되어야 한다. 동생의 기소를 마치 남의 일로 치부하듯 해명한다면 그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반 전 총장의 산뜻한 출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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