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용산참사, 백남기, 쌍용자동차, 밀양, 강정 대책위 관계자 10여명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경찰의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앞두고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자리였다. 당초 모임 장소는 남영동 경찰인권센터. 하지만 장소는 옮겨졌다. 당사자들이 경찰 근처로 가는 것조차 거부감이 든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노조간부가 입을 열었다.

“경찰을 보면 부들부들 떨려요. 보기 싫을 뿐만 아니라 분노마저 치밀어 오릅니다. 2009년 평택공장 점거 파업 때 물과 음식물을 차단하더군요. 대신 2급 발암물질이 섞인 최루액을 뿌리고, 대테러 진압용인 테이저건을 마구 쏘았어요. 그러고선 진압 때 경찰특공대가 사용했던 기중기 수리비 등 16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파업에 참가했던 동료와 가족 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다수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은둔 생활을 하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옆자리의 용산참사 유가족 한 분과 진상규명 대책위 관계자가 말을 이어받았다. 유가족의 목청은 높고 카랑카랑했지만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는 힘없고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철거민들입니다. 그래도 지나가는 차 한 대, 사람 한 명도 다치게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경찰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적절한 주거대책을 세워달라는 사람들을 농성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특공대와 물대포로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집회·시위 현장의 법집행 매뉴얼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어요. 세입자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죽었는데 재판은 경찰관의 죽음만 다루더군요. 경찰과 철거민, 어느 한쪽에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판결은 다섯 분의 죽음은 싹 지워버렸고, 그 원통함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경찰이 하루아침에 돌변하고선 믿어달라고요? 피가 거꾸로 솟을 뿐입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던 한 주민의 얼굴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점차 굳어져갔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대표를 경찰이 연행하자 이웃들이 일하다가 농기구를 들고 이를 막았어요. 그랬더니 국가 전복을 노린다며 경찰청장이 ‘공안사태’를 선포하고 일절 집회를 못하게 하더군요. 주민 2명만 모여도 불법집회라며 마구잡이 연행을 했는데 그게 무려 700여명이나 됐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화약으로 파괴할 때 주민들이 팔짱을 끼고 인간 사슬을 만들었는데 망치로 팔을 때려 다친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고선 주민들을 생떼 쓰는 집단이라고 매도하더군요. 이런 경찰을 어찌 공권력이라 할 수 있겠어요?”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던 할아버지 한 분은 “억울한 일이 너무 많아 말문이 막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 표정엔 슬픔과 절박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다른 주민 한 분이 감정을 억누르며 무겁게 입을 뗐다.

“공권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던 2013년에는 약 9개월 동안 무려 연인원 38만명의 경찰이 농성장 아홉 군데에 투입됐습니다. 경찰의 숙식비만 모두 100억원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 한 명당 30명의 경찰이 붙어 온갖 인권침해를 했어요. 경찰이 너무 무서워 할머니들이 알몸으로 저항하자 할머니들이 모여있던 천막을 칼로 푹푹 찢더군요. 칼날이 오가는 것을 알몸으로 바라보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 일을 겪고 할머니들이 정신과 진료를 250회 정도 받았고 항우울제 없이는 생활을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안함과 부끄러움과 무거운 책임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그 깊은 슬픔과 분노를 스치듯 느껴온 무신경함에 대한 자책으로 말을 건네기도 힘들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진실화해위원회를 운영했다. 극심한 인종차별과 국가범죄를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인권침해를 당한 희생자들의 증언을 텔레비전을 통해 직접 중계했다. 피해자들이 일차적으로 간절히 원했던 것은 진실을 말할 기회와 그들이 겪은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조만간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될 예정이다. 2005년 유엔이 채택한 ‘인권피해자 권리장전’은 진실에 대한 권리, 책임자 처벌을 포함한 정의에 대한 권리, 배상에 대한 권리를 해결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슬픔과 우울증을 치유하는 길은 철저한 진실규명과 그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데 있다. 시늉만의 진상규명은 당사자들을 또다시 절망과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인권국가로의 첩경이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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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권력은 막강하다. 현대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타인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사법부와 의료인에게만 허용되어 있다. 최근 정신보건법 개정으로 절차가 까다로워지기는 했지만,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환자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의료의 권력이 정신병원 강제입원 같은 특수한 상황에만 행사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의 의료 이용 전반에 걸쳐 행사되고 있다.

 

의료의 권력이 보편적으로 확립된 것은 20세기 초 이후에 형성된 현상이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의료 이용의 중심 공간은 병원이 아니었다. 빈민층은 수용소와 다름없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중산층 이상의 환자는 의료인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서 치료를 받았다. 의료인이 환자를 통제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의료기기와 기술이 발전하고 의료조직이 체계화되면서 병원이 의료 이용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됐고, 중산층 이상의 환자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게 됐다. 병원이라는 통제된 공간에서 의료인은 환자의 일거수일투족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의료인은 지시하고 환자는 따라야 하는 고전적인 의사·환자 관계는 점차 문화로 굳어졌다. 이런 관계는 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보건의료기본법’은 모든 국민은 보건의료인의 정당한 지도에 협조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질병을 잘 치료해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상거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소비자 의무 조항이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1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피멍 자국이 있는 박근혜 대통령 얼굴 사진을 들고 미용 시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국가권력은 면허 제도를 통해 의료의 권력을 배타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면허가 없거나,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일체의 의료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되어서 처벌받는다. 고 백남기 선생의 사망진단서 논란에서도 확인한 바와 같이, 모든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주치의가 그렇다고 하면 그 누구도 해당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손을 댈 수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몸에 칼을 대고도 처벌받지 않는 이는 의료인이 유일하다.

 

의료의 권력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다. 근대 의료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고,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일종의 공적 권력이다. 그런 만큼 의료인은 높은 책임성과 윤리성을 요구받는다. 일부 의료인은 왜 우리에게 일반인보다 더 엄격한 이중 잣대를 들이대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더 높은 책임성과 윤리성을 거부한다면 의료의 배타적 권력은 존립 근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책임성과 윤리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의료인 스스로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망진단서 논란부터 ‘박근혜 의료 게이트’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에서 일부 의료인이 보인 모습은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망진단서 논란은 권력화된 의료의 힘을 실감하게 했다. 권력과 가까운 의료인과 병원에 주어진 각종 특혜 의혹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정경유착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아직 진상이 다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진료기록 조작과 위증이 사실이라면 이것 역시 의료인의 책임성과 윤리성을 전적으로 위배한 것이다. 환자의 정보보호라는 의료인의 의무 조항이 진료기록 폐기와 조작을 감추는 방패막이로 악용하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의료인이 보인 모습은 대다수 의료인의 정서와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의료계의 대표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사망진단서 논란 초기에 백남기 선생의 사인은 외인사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대다수 의료인의 분노도 일반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소속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촛불집회 내내 광화문에 진료소를 차려서 촛불시민을 진료했다. 그러나 연이어 터져 나온 의료 게이트 파문은 의료인들의 이런 노력을 무색하게 했다.

 

권력에 유착된 의료는 국민으로 하여금 의료인의 책임성과 윤리성을 의심하게 했고, 최고 권력자가 누린 독특한 ‘웰빙 의료’는 정권의 정당성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라고 미용시술을 하지 말고, 각종 주사제를 맞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나라 국민이 그런 것을 가지고 트집 잡을 정도로 야박하지는 않다. 그러나 정도껏 해야 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는 눈치는 있어야 했다. 대통령에게 특별한 의료를 보장하는 이유는 그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위를 제쳐놓고 웰빙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에서 권력에 유착된 의료와 권력자의 독특한 웰빙 의료는 한 몸이었다. 국민은 독특한 웰빙 의료를 누리던 권력자로부터 권력을 거두어들였다. 권력에 유착된 의료가 다시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것은 상식 있는 의료인들이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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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악행으로 지난여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됐다. 검사직을 수백억원대 부정축재 수단으로 활용하고도 계속되는 거짓 해명으로 시민들의 공분을 샀던 점에 비하면 형량이 너무 낮다. 법원은 진 전 검사장이 김정주 넥슨 대표에게서 공짜로 받아 120억원의 차익을 거둔 주식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직무상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재판부가 과연 한국 사회에서 검사가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했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진 전 검사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최측근으로 검찰 내 실세였다. 김정주 대표는 검찰에서 진 전 검사장에게 주식을 준 것이 ‘보험’이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진 전 검사장과 한 식구였던 검찰은 징역 13년에 추징금 130억원을 구형했다.

진경준 전 검사장(왼쪽)과 김정주 NXC 대표.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

반면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 폭력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를 입은 경찰관 숫자나 경찰차 파손 정도가 상당하고 극심한 교통혼란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를 책임지고 개최한 것이 징역을 살아야 할 중범죄인지 의문이다. 당시 경찰의 대응도 문제가 많았다. 도로를 차벽으로 막고 물대포를 조준 발사해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비리 고위 공직자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부당한 정책에 항의한 이에게는 엄벌을 내리는 판결로는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여론과 법 사이에 원활한 소통과 적절한 긴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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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믿었다. 김주열의 피로, 경무대 앞에서 쓰러진 학생들의 피로 4·19혁명이 이뤄졌다.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자신의 몸을 불사른 많은 열사들의 피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자유를 위해 비상해 본 사람이면 안다. 자유에는, 민주주의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는 걸.

어느새 아득한 시절이 돼 버린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학교엔, 거리엔 화염병과 최루탄, 쇠파이프와 곤봉이 난무했다. 그걸 당연시했다. 이렇게 온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는 독재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믿었다.

요즘은 민주주의가 촛불을 먹고 자란다. 100만명, 200만명이 촛불을 들고 권력자를 쫓아내려는 집회와 행진을 이어가지만 경찰과의 충돌은 없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는 촛불 시민들의 구호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무서운 비난과 분노가 권력자를 향해 외쳐졌다. 그러나 그들 모두 어쨌거나 임기는 마쳤다. 이번에는 정치적 꼼수가 훤히 보이긴 하지만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말은 꺼내놓은 상태다. 화염병보다 촛불의 폭발력이 더 강하다.

6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한 새누리당 해체 요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채택, 탄핵 추진에 제동을 건 새누리당의 대형 깃발을 찢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현 상황을 명예혁명이라 부르는 이들도 많다. 명예혁명은 1688년 영국에서 무력충돌 없이 왕을 몰아낸 혁명을 말한다. 이 혁명은 국왕의 전횡에 맞서 의회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으킨 반란이다. 입법권, 조세제정권 등 당시 의회가 쟁취한 권리와 자유가 일반 민중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영국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되긴 했다. 하지만 혁명의 과실을 가장 많이 차지한 것은 의회의 주인인 귀족과 부자들이다.

무엇보다 명예혁명이라는 말은 혁명의 대상을 주인공으로 하는 명칭이다. 당시 영국 왕 제임스 2세는 새로 들어설 왕의 묵인 아래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도피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혁명이라면 왕을 단두대나 교수대로 보내는 거지만 왕은 스스로 물러났고, 혁명세력도 쫓겨난 왕에게 살길을 열어줬다는 의미에서 명예혁명이라 불린다.

그러나 지금 거리의 촛불은 박 대통령에게 명예로운 퇴진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명예혁명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혁명의 대상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가 주인공이 되는 이번 혁명의 이름은 촛불혁명이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과 두 달여 전만 해도 현재 펼쳐지는 상황을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과연 바람은 딴 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듯 촛불혁명은 우리 앞에 툭 떨어진 것일까. 아니다. 촛불혁명은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 수백명의 피, 메르스로 고통 속에 숨진 시민 수십명의 피,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피를 먹고 자랐다. 시민들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보며 ‘이게 나라냐’고 절망했고, 남북관계를 일촉즉발의 위기로만 치닫게 하는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에 절망했고, 아버지를 미화하겠다는 ‘박근혜 국정교과서’에 절망했다. 쌓여만 가는 절망들이 결국 촛불혁명으로 폭발했다.

피와 절망으로 점철된 이 땅에서 우리는 그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다. 강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때 세월호에 타고 있지 않아서, 그때 메르스 감염자와 접촉하지 않아서 지금 살아 있다.

수많은 이들의 고통으로 차려진 밥상에 정치인들은 숟가락을 들고 쇄도하고 있다. 대선을 어느 시점에 치러야 유리한지 주판알을 굴리고, 누구 뒤에 줄을 서고 누구와 합종연횡해야 살아남을지 탐색하는 이들의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다. 본디 자기가 차린 밥상도 아닌데 독차지하겠다고 싸우고 있다. 밥상을 엎을 기세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새 대통령을 뽑겠다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분노하는 것도 단지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절망 때문만은 아니다. 근저에는 특권과 반칙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실망이 깔려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어처구니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더욱 심각해지는 부의 양극화, 전혀 변하지 않는 권력과 재벌의 유착, 그리고 시류에 표변하는 하이에나 같은 언론과 검찰 등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그래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다음 대통령이 아니라 이런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한다.

밥상이나 엎지 마라. 그게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고 최소한의 염치다. 지난 주말 거리를 비춘 232만개의 촛불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면 또 다른 촛불혁명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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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올려다보기도 힘들 만큼 고압적인 광화문이 그토록 처연한 모습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귀를 때리는 스피커의 울림이 멀리 보이는 화면과 전혀 맞지 않는, 각자의 외침과 노랫소리가 100만, 혹은 200만의 인파와 함께 뒤엉기는 혼돈 속에서 문득 치밀어 올라온 것은 깊은 서러움이었다. 내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광장을 메운 낯선 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낸 것도 이런 서러움이며, 그들도 지금 목이 메고 있을까. 문득 스피커에서는 ‘길가에 버려지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광장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이끄는 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는 점이다. 분노는 강력하나 일시적이고 이토록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토록 철저하게 질서있고, 차갑도록 뒷정리에 신경을 쓰며, 가족과 함께 유모차를 밀고 오게 하는 힘은 분노는 결코 아닐 것이다. 바람이 불면 꺼지는 분노보다도 훨씬 더 서늘하게 깊고 무거운 그 무엇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버려진’ 서러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유전자에 각인될 정도로 소소한 일상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국가, 좌측통행을 어느날 우측통행으로 바꿀 수 있으며 조의금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는지까지 결정해주는 국가, ‘한강의 기적’을 이끄는 엔진이었으며 사회경제 모든 분야를 베 짜듯이 효율적으로 지휘하는 국가. 그 국가가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한낱 홑이불 뭉치에 불과했다는 자각이야말로 이 상실감과 서러움의 원인이 아닐까. 경외하면서도 미워하고, 그 무능함에 치를 떨면서도 그 존재를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던 국가가 사실은 한번도 ‘거기 없었다’는 사실이 이 열패감의 원인이 아닐까.

26일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석우 기자

이런 ‘버려진 서러움’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나 백남기 농민을 잃는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가 실패하였다고 생각했다. 메르스 창궐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생명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개성공단 폐쇄에서, 그리고 각종 사안들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말을 듣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패’한 것이 아니라 공적 과정으로 국가가 ‘부재’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던지는 물음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며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치적이라 함은 법적 책임을 묻는 지점을 넘어선다는 의미이고, 포괄적이라 함은 청와대를 넘어서서 국가와 사회 전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는 의미이다.

청와대의 법적 책임은 물론 ‘입증의 책무’(onus probandi)를 진 검찰과 특검이 범법을 확증할 수 있는 지점까지만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법정에서 가려질 법적 책임과는 달리 청와대와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은 스스로의 결백과 여러 의사 결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국민과 동맹국가들에 납득시켜야 하는 또 다른 무겁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검찰 조사나 특검이 책임질 법적 절차 못지않게 중요하고 의미있게 지켜보고 평가해야 할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다른 축인 국회가 밟게 될 국정조사 과정이다. 나는 대통령의 사임이나 탄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명백하고 정직하게 밝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2, 제3의 ‘박근혜 정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광장이 제기하는 문제들의 근본적인 포괄성은 청와대의 범위를 넘어서 정부와 정당,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거버넌스 구조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국정농단’이라는 편리한 말로 뭉뚱그려지는 결과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특정 사익 집단이 어떤 경로로 공적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었고, 어떻게 공당(公黨)과 의회와 사회집단이라는 저지선을 돌파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재벌과의 상호침투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이 편리하게도 준비하고 있는 ‘개헌’이라는 답변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손쉬운 해답일 따름이다.

이러한 일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당장 손쉬운 대답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광장을 메웠던 사람들이 많이 했던 말이 이러한 나라를 아들딸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는 바람이었던 것처럼 광장은 과연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물을 것이며, 끊임없이 찾으려 할 것이다. 마치 ‘길가에 버려지다’가 이렇게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의지에 날개가 돋아서/ 정의의 비상구라도 찾을 수 있길.”

박원호 |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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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 랄프 키즈는 2004년 사회생활에서 진실과 신뢰가 실종되어 부정직과 기만이 판치는 점에 주목해 <진실 뒤의 시대>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진실 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들춰 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롬니는 ‘진실 뒤의 정치’ 수법을 구사하며 오바마를 비판했다. 이것은 2016년 미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행한 여러발언의 모델이 됐다. 그리고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EU) 탈퇴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탈파는 ‘진실 뒤의 정치’를 내걸어 일정한 지지를 얻었고 관철됐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짓이 남길 후과를 생각해 보지도 못한 채.

완벽한 거짓은 완벽해 보이는 진실 뒤에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진실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진실이 숨겨지는 것이다. 미국 정치에서 ‘진실 뒤의 세계’는 2004년이나 2010년 즈음에만 나타났다고 볼 수 없다. 2001년 9·11 이후 부시 정권에 의한 아프가니스탄전쟁이나 이라크전쟁은 문자 그대로 ‘진실 뒤의 세계’의 사건이었다. 부시는 9·11을 구실로 한순간에 전쟁광들이 그렸던 세계전략을 구사했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됐다. 이런 진실과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8월4일 베트남전쟁으로 비화된 통킹만 정보조작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정치는 종종 ‘진실 뒤의 세계’에 있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0월25일 (출처: 경향신문DB)

일본 게이오대 호소야 유이치(細谷雄一)는 “일본 정치가 이상해졌다”면서 ‘진실 뒤의 세계’에서는 ‘허위가 일상에 침투해 진실은 무력화된다’고 지적했다. 지금 일본의 정치 세계에서는 아베 총리가 허위를 말해도 검증되지 않고 비판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아베의 안보정치는 야당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제 정치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거짓말을 하고 나서도 ‘과장’이라고 변명하고, ‘잘못 말했다’고 눈가림 사과만 하면 넘어갔던 것이다. 정치가 정의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허위를 선동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일상화하는 것이다. 공포를 선동하는 전략을 선택해 건설적인 정책 논쟁의 기회를 포기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헌법 개정을 거론했으나 거부 의사를 보였던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임기내 개헌 관철이라는 국면전환용 초강수를 내보였다. 개헌 이유는 논외로 치고 이런 정치변화의 주도권을 손에 쥐려는 사실의 이면에 무엇이 숨겨있는지 읽어내야 한다. ‘진실 뒤의 정치’를 강행하는 반민주주의적, 반헌법적 의도를 적나라하게 캐내야 한다. 대통령이 민생안정과 경기회복, 북핵 위기관리라는 제 할 일을 제쳐두고, 왜 국민들을 또다시 ‘정쟁의 홍수’에 빠트려 놓으려고 하겠는가? 바로 대통령 주변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덮으려는 게 아니었겠는가.

당장 한국정치에서 기만과 허위의 정치가 아니라 ‘진실 뒤의 세계’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 뒤의 세계’를 없애려는 집요하고 꾸준한 정치실천, 바로 의회민주주의의 진화와 부활을 촉구한다.

허상수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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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행위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중·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사회계약설의 개념이다. 사회계약설은 계몽사상의 핵심 논리로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기반이 됐다. 구태여 사회계약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적어도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믿음을 저버리는 국가의 행위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국가’의 이름을 내세운 정치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이 그러했으며, 3대 세습체제인 북한도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행위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우리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던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또다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잃게 된다.

9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에서 백씨의 둘째딸 민주화씨가 발언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세월호 사건에서, 백남기씨 사망에서 우리는 이런 현실을 본다. 많은 시민이 TV 화면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월호 배 안에 갇혀서 목숨을 잃었다. 사고신고 접수 후부터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었으며 침몰 후에도 당일에는 상당수 생존자가 배 안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국가는 거의 손을 쓰지 못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는 의식을 찾지 못한 채 317일 동안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 시민들에게 공권력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의법 조치도 할 수 있다는 위협이 그러하다.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황교안 총리는 “의혹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으나 의혹제기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했다.

이제 국민은 정부와 관련된 문제라면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의심할 만한 일이 생겨도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으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에 의해 법적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정부 정책과 의견을 달리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1970년대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정부를 비판하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갔다는 사건을 연상시킨다.

사실 사회계약설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반드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가가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거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지만, 어쩌다 그런 잘못을 했다고 해서 국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사상으로 일컬어지는 사회계약설은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그저 ‘이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가 그런 잘못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만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승객을 구조하지 못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사건의 책임 소재도 불투명하다. 그저 승객을 내버려둔 채 탈출한 선원들과 선박회사, 현장 구조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 해경의 책임만 물었을 뿐이다. 백남기씨가 시위 도중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으며 영상으로도 남아 있다. 병원의 진료기록에서도 ‘외상성 뇌출혈’을 선행 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원인 규명은 사건을 불러일으킨 시위 진압 방식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고인의 부검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위진압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논의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월호나 백남기씨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을 국가는 다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는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국가’의 이름을 내건 정부는 자신과 이념이나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보호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적대시한다. 국민들에게 국가에 보호를 요구할 수 있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의 눈치를 보는 ‘신민’이 되기를 요구한다. 정부가 그토록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룬 근간인 시민적 권리는 그저 교과서 안에 나오는 책상 지식으로 전락한다.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사라진다.

김한종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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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작은책’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백남기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백남기씨는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 도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은 뒤 중태에 빠져 316일 동안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오고 있었다. 경찰이 서울대병원의 모든 출구를 봉쇄했다는 소식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검찰이 시신을 부검하겠다고 강제로 침탈할지도 모른다는 소식도 올라왔다.

시신을 부검하려는 이유는 뻔하다. 물대포를 맞아서 죽은 게 아니라고 발뺌하려는 거다. 수술할 때 이미 담당 의사들이 외부 충격에 의한 출혈이라고 진술했는데 뭘 부검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씨. 공무원U신문

아니 수많은 시민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을 보지 않았는가. 캡사이신을 섞은 물대포를 그렇게 직사했는데 어떤 사람이 버텨내겠는가. 무엇보다 살인한 자들이 살해당한 사람을 부검하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경찰이 시신을 탈취할 가능성도 있다. 1991년 안양에서 경찰이 영안실 벽을 해머로 부수고 들어가 박창수 열사의 시신을 탈취해 자살로 결정내리고 화장을 해버린 적도 있다. 또 2005년에는 경찰폭력으로 희생된 전용철, 홍덕표 농민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까지 ‘두 농민의 사인이 직접적인 폭력이 아니라 평소에 앓던 지병 탓’이라고 주장한 적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수백명의 사복형사들을 군사작전 하듯 장례식장에 투입”한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조문’하겠다는 사람을 설마 경찰이 막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우리의 경찰’은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세상에 병원 문을 이렇게 틀어막은 정권은 유례가 없었다. 장례식장 앞에도 경찰이 5중, 6중으로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어제 병원으로 들어온 시민들이 안쪽에서 못 나오고 있고, 이쪽에서는 장례식장으로 못 들어가고 있었다. 경찰 너머로 노회찬, 박주민, 표창원 의원이 보인다. 지인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 24일 오후 9시쯤부터 장례식장 앞에 사복경찰 100여명이 들어왔고, 병원 내부에도 사복경찰 10여명이 들어왔다고 한다.

“조문하겠다는데 왜 막는 거야?” “경찰 물러나라!” 시민들이 항의하면서 경찰과 몸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민이 한 명 다치고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가량 몸싸움을 하는데 경찰이 방송을 한다. “경찰 병력을 철수시킬 테니 조문하세요.” 시민들이 소리 질렀다. “니들이 뭔데 조문을 허락하냐?” 경찰이 막고 있던 문에서 물러났다.

나는 시민들과 함께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벌써 길게 줄이 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조문을 했다. 백남기씨는 나하고는 한번도 만나본 분도 아니고 어떠한 인연도 없다.

그런데 푸근한 인상으로 싱긋이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니 울컥했다. 사실 백남기씨는 평범한 농민이 아니었다. 박정희 때부터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이다. 1980년 서울의봄 때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 뒤 고향으로 돌아가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도 역임했고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광주 전남본부의 창립을 주도하며, 1994년에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두환 때도 치열하게 싸우면서 살았던 분인데, 어떻게 이 정권의 물대포에 허망하게 가실 수가 있단 말인가. 참담했다.

조문을 끝내고 1층으로 내려가 봤다(장례식장은 돈화문 쪽 길에서 보면 3층이다). 학생들, 시민들이 드문드문 복도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입구에는 200여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과 길 앞에 있는 정문 앞뒤로는 경찰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몇 겹으로 막고 있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인 유경근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추모만 하러 온 것이면 안된다. 추모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 언제까지 미안하다고만 할 것인가. … 그건 사람이 사는 방식이 아니다. 이제 떳떳하게 살자. 이 자리에 몇 시간 있다 간 걸로 자기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말자.”

뜨끔했다. 나한테 하는 소리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안건모 | ‘작은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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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뭐가 잘못된 일인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게 없다. 국가폭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낯 뜨거운 답변만 현실을 조롱하듯 허공을 맴돌고 있다.

사람이 죽었다고 꼭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경찰청장의 말은 아마 2016 화제의 어록을 장식할 듯하다. 그의 사전에는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권한만 있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써야 한다는 규칙은 없는 모양이다. 세상 물정 어두운 교수도 물대포는 사람에게 큰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물대포를 실제 사용할 때는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지침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짐작할 수 있는 상식이다. 전해 들은 바로는, 물대포는 우선 시위대의 머리 위로 물을 흩뿌려야 한다. 처음부터 사람의 몸을 향해 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시위대를 향해 쏠 경우에도 사람의 상반신으로 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라도 지켜졌는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고 의식불명에 빠졌던 농민 백남기(70)씨가 사고 317일만인 25일 숨을 거둔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이 이뤄지고 있다. 김창길 기자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은 정당하지 않았다. 무자비하게 직사한 물대포에 쓰러진 이후에도 백남기 농민은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몇 언론들은 미국 경찰의 총에 맞아 흑인이 사망했다는 뉴스는 중계 방송하듯이 보도를 하면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일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국가가 시위에 참여한 나이 많은 농민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야말로 세계적 뉴스가 아닌가. 우리나라가 과연 인권을 잘 지키고 있는 나라인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을 한 번 더 강화시키는, 부끄러운 세계 토픽이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것이 언제 우리 자신의 일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국가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자초지종을 따져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더 암담한 현실은, 정부의 누구도 백남기 농민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 백남기 농민은 가을걷이를 마치고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위해 서울로 왔다. 우리나라 농민들은 봄, 여름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가을 추수를 끝낸 후 한 번 더 지어야 할 농사가 있다. 아스팔트 농사다. 이 농사는 땀 흘린 대가를 제대로 받기 위한 농사이며 농민이 제대로 된 사회적 대접을 받기 위한 농사다. 이미 아련한 역사가 되어버린, 1970년대 유신체제의 얼음공화국을 뚫고 솟아올랐던 함평고구마 싸움의 깃발, 1980년대 군부정권의 공포를 밀어내고 가을 하늘에 펄럭이던 고추 제값 받기 투쟁, 수세 싸움의 깃발 등이 아스팔트 농사다.

백남기 농민이 지으려고 했던 아스팔트 농사는 ‘쌀값’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쌀값은 해마다 내리막길이어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었다. 쌀소비는 줄어들고 있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쌀은 늘어나고, 정부의 지지정책은 미지근하여 쌀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지고 있다. 백남기 농민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평생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을 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농민으로서 간절히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쌀농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쌀은 단순한 먹거리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체성의 중심, 안보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말자. 쌀 소비를 늘리는 방법도 더 적극 생각해보자. 남는 쌀이 있으면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나. 그러면 남쪽도 좋고 북쪽도 좋은 일일 것이다. 쌀이 가지고 있는 비경제적, 비교역적 성격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백남기 농민의 주장이 저 무도한 직사 물대포에 산산이 부서진 후, 올해의 쌀값은 더 절망적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암담한 상황에 대한 처방이 고작 농지를 줄이는 것이라고 하는 정부의 말을 들으니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는 한층 더 절실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백남기 농민의 고통스러운 생애의 마지막이 더 애달프다. 317일 동안의 병상에서도 그가 일구고 있었을 ‘아스팔트 농사’가 올가을에도 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먼 길을 떠나는 그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있는 것 같다. 용서를 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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