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의료제도는 누가 지불하느냐를 기준으로 할 때 국가의료보험제도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공단이라는 단일한 보험자를 가지고 있어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간다면 매우 효율적인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건강보험료 부과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료 개선기획단을 만들어 지난 1년6개월간 개선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발표 하루 전날인 1월28일 복지부 장관이 이를 백지화한다고 밝혀 국민들을 의아하게 했다. 청와대에서 고소득자들을 의식해 철회 지시가 내려졌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연말정산 세금폭탄으로 불만이 높았던 국민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우리나라 보험료 체계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뉜다. 직장가입자들 중 특별한 가외 소득이 없는 근로자는 약 1200만명이다. 자신의 소득에 보험료율 약 6%를 곱하고, 절반은 기업이 내고 근로자는 나머지 절반을 낸다. 그런데 직장가입자 중 근로소득과 별도로 사업, 임대, 이자, 배당 등 종합소득을 가진 약 250만명은 전체 직장가입자의 약 15%에 해당되며 이들에게는 종합소득에 대해 보험료가 부과되는데 종합소득 7200만원 이하에 대해서는 보험료가 면제된다. 면제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5000만 건강보험 가입자 중 약 40%에 해당하는 2000만명이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보험료를 한 푼도 안 낸다는 점이다. 피부양자가 직장가입자의 자녀라든지 연로한 부모여서 소득이 없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문제는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다. 금융소득이든, 연금소득이든 기타 소득이 각각 4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피부양자가 된다. 이론상으로는 1억2000만원에 가까운 액수를 버는 사람도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보험료 한 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소득이 있으면서도 보험료를 면제받는 사람이 무려 230만명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소득이 있으면서도 무임승차를 하는 셈이다.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숨진 송파 세 모녀는 5만원의 보험료가 부과됐으나 소득과 재산이 있는 나는 퇴직 후 0원을 낸다”고 밝혀 부과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역가입자들에게 있다. 이들에게는 재산, 소득, 자동차, 사람(성/연령) 등에 보험료가 매겨진다. 직장에서 실직해 지역가입자가 되면 소득이 없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집과 차가 있다고 해서 보험료를 내야 한다. 더구나 재산에 대한 보험료는 가진 자에게 유리하다. 재산이 1억원이면 해당 보험료가 약 월 8만원이다. 10억원이면 18만원, 30억원 초과면 26만원이다. 재산 1억원과 30억원을 비교하면 자산가격은 30배이지만 보험료는 약 3배에 불과하다. 또한 재산 부과 상한액이 30억원으로 묶여 있으므로 100억원 재산가도 26만원만 낸다. 30억원까지만 재산점수를 부과하는 상한선을 폐지하는 것이 형평성을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이다. 또 양도·상속·증여소득에는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도록 했는데 이는 명백히 가진 자에 대한 특혜다.

현재 보험료 체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건강보험 적자는 불 보듯 뻔하다. 재산과 소득이 있는 사람들에게 면제를 해주기 때문에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번에도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서민들의 허리만 졸라매는 꼴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의 건강보험료 개편 당·정 회의에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이 논의되었다. (출처 : 경향DB)


마지막으로 국민들이 주목하지 않는 부분이 숨어 있다. 어느 나라나 사회경제적 약자에게는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도록 도와주는 공적부조 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공적부조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급여환자가 전 국민의 2%밖에 안된다. 미국의 경우 공적부조에 해당되는 메디케이드 대상자가 14% 수준인 것에 비추어 볼 때 매우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정부의 건강보험 부담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더구나 직장가입자의 경우 기업과 직장인이 보험료를 여전히 반반씩 내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볼 문제다. 대만만 해도 노동자 대 기업의 분담 비율이 1 대 2이고 프랑스는 3 대 7 정도로 기업이 더 많이 부담하고 있다. 아직도 건강보험료는 가진 자들과 기업에 유리하다. 여론이 악화되자 보건복지부는 백지화했던 건강보험료 개선을 위해 다시 나서겠다고 하는데 지켜볼 일이다.


서홍관 | 국립암센터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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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보험료

금융당국이 25년 만에 자동차보험 할인·할증 제도 개편안을 새로 내놨다. 지금은 사고의 경중에 따라 할증 폭이 좌우됐지만 앞으로는 사고 건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구조로 바꾸는 게 핵심이다. 결국 경미한 접촉 사고를 낸 운전자의 보험료 부담만 늘게 됐다. 사고 한번에 보험료가 13.7% 오른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운전자들은 할증이 무서워 보험에 가입하고도 생돈으로 차를 수리해야 할 판이다. 당국이 손해보험 업계의 빈 주머니를 채워줄 요량으로 개편안을 만든 결과다.

차 보험은 26등급으로 구분돼 등급당 약 6.8%의 보험료 차이가 나도록 설계돼 있다. 지금은 인명 사고나 수리비가 많이 나오는 대형 사고일수록 할증 폭이 커지는 구조다. 하지만 자동차 문화·환경 변화로 인명 사고는 줄어든 반면 물적 피해를 수반한 접촉 사고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를 감안해 사고 건수에 따라 보험료가 할증되도록 바꾸겠다는 게 개편안의 골자다. 한번 사고에 2등급이 할증되고 두번째 사고는 20.5%의 추가 보험료 부담을 져야 한다. 대형 사고는 부담이 적어지는 대신 경미한 사고 운전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동차보험 사고당 평균보험금 (출처 : 경향DB)


할증 체계에 문제가 있다면 바꿔야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개편안은 교통문화 개선이나 운전자들의 편익보다는 보험 적자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손해보험 업계는 “차보험은 팔수록 적자”라며 보험료 인상과 할증 체계 개편을 요구해왔다. 당국이 수리비 지출이 큰 보험사의 입맛에 맞게 오랜 숙원을 해결해 준 꼴이다. 운전자의 보험료 부담을 늘려 대기업 손해보험 업계의 곳간을 채우겠다는 발상과 다를 게 없다. 결국 보험료 할증이 부담스러운 운전자들은 멀쩡한 보험을 놔두고 자기 돈으로 수리비를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럴 거면 보험은 뭣 하러 들어야 하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편법 할증 체계 개편안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손보업계의 적자 타령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보험 사기와 비싼 외제차 부품 수리비가 차 보험료를 축내는 주범이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사기범들에게 떼이는 차 보험료만 한 해 1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수입차 부품 수리비는 부르는 게 값이라 국산차의 2.9배 수준이다. 이 문제만 해결해도 적자 해결은 물론 지금의 보험료를 대폭 내릴 수 있다. 언제까지 근본 원인은 방치한 채 손쉽게 운전자들의 주머니만 털겠다는 것인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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