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7.05.25 부산국제영화제 명예회복을
  2. 2014.10.10 [기자 칼럼]문화행사 간섭은 ‘폭력’이다

나와 그다지 면식이 없는데도, 부고기사에 가슴이 멍해올 때가 있다. 지난 18일.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딱 그랬다.

1995년 부산 YWCA 대학부에서 진행한 ‘여성영화 읽기’에 한 대학교수가 초빙됐다. 강연을 마치며 그가 말했다.

“곧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릴 텐데, 여기 있는 학생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죠?”

“그런 거는 서울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요?”

학생들이 미심쩍어하자 그가 정색했다. “아니 반드시 할 겁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약속만 분명히 해주세요. 도와주겠다고.” 그가 김지석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부산예술대 교수였다.

칸 해변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6개월쯤 지난 어느날, 학내에 공고가 붙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그와의 약속이 떠올라 무작정 지원했다. 부산 남포동에 있는 극장 몇 군데를 빌려 시작한 제1회 영화제는 참 열악했다. 어떤 영화는 번역이 채 안돼 자막 없이 상영됐다. 예고된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상영이 중단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영화제 진행보다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감독과의 대화에 통역자가 없자 보다 못한 관객이 통역에 나서기도 했다. 경험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맨손으로 일군 축제였다.

그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쑥대밭이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좌파영화제’로 낙인이 찍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때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 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북영화제’로 격상됐다.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친박시장이 이끌던 부산시는 영화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지원을 주저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태풍이 해운대 백사장에 설치했던 야외무대를 날리면서 지난해 영화제는 최악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김 부위원장과 함께 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횡령,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특검은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뒷배경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많은 것을 되돌려놓고 있다. 그간 농락당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새 정부가 시급히 명예회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단순한 축제의 복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낳은 거위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영화제의 성공은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아시안필름마켓을 통해 수많은 영화와 시나리오가 팔려나갔다. 이는 한류붐의 원천이 됐다.

영화는 콘텐츠산업의 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제작, 배급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문화체육관광 분야 자료를 보면 콘텐츠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12.4명으로 전기전자(5.1명)나 자동차산업(5.7명)을 앞선다. 콘텐츠산업 종사자의 32%는 29세 이하 청년들이었다. 새 정부가 찾는 청년일자리의 보고가 여기 있다는 얘기다.

가을 바람이 불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문화예술 분야에 붙여진 블랙리스트를 시원하게 떼주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원칙에 대못을 박아주기를 더불어 기대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바다면서 일자리의 바다다.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국내외 영화가 발전하고, 사상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며,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어쩌면 김지석 부위원장이 꿈꿨던 세계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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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너는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처리가 서툰 사람을 놀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 이 농담은 종종 진리가 된다. 특히 관이 후원하는 문화행사의 경우가 그렇다. 정확히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될 때 문화행사가 성공하고 관도 체면을 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 초기에 빠르게 자리 잡은 배경에도 이런 원칙이 있었다. 문화 관료로 잔뼈가 굵었던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관의 간섭을 막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썼다. 당시엔 영화제 출품작도 규정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영화제에는 온갖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 방식의 영화가 출품된다. 만일 심의가 이뤄진다면 이런 영화들은 상영될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영화 프린트가 늦게 들어온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심의위원들을 부산의 여관방으로 불러모아 ‘느슨하게’ 심의하도록 유도했다. 심의 규정을 위반한 영화도 더러 있었으나, 김 위원장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상영을 강행했다. 다행히도 2회 영화제까지 공연윤리위원회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3회부터 영화제 출품작은 심의에서 제외한다는 예외조항이 생겼다. 바다 건너 풍문으로 제목만 들었거나 수입됐다 해도 이리저리 잘려나간 영화들에 상심했던 영화팬들은 부산영화제에 열광했다. 관객의 호응은 영화제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올해 이런 원칙이 훼손된 사례가 두 건 있었다. 광주비엔날레는 홍성담 화백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를 불허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작품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의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관계자의 사퇴, 작가들의 작품 철수 소동이 이어졌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는 “홍 화백의 작품은 광주시의 돌출적인 대응이 없었다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해, 작품 철회에 시가 개입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출범 20주년을 맞은 비엔날레는 인권·문화 도시인 광주의 위상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실추시켰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세월호 구조 과정의 난맥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상영중단 압력을 받은 것이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이자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서병수 부산시장이 “상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중앙정부에서도 국고 지원 중단 등을 거론하며 상영을 막으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부산이 광주와 달랐던 점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외압에 의해 상영을 취소한 사례가 없다”며 <다이빙벨>을 예정대로 상영했다는 사실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출처 : 경향DB)


지역 문화행사에 정치적 이유를 들어 개입하려 한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멍청했다. 그 이유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작품의 위상이 오히려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이빙벨>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312편 중 1편이었고,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 당시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세월오월’ 역시 광주비엔날레 본전시를 앞두고 열린 특별전 출품작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 작품들은 어쩌면 관객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객의 평가가 이뤄지기도 전에 관이 개입했고, 그 결과 작품의 창작자들은 ‘권력에 대항한 예술가’라는 명예로운 지위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나온 어느 여당 의원은 <다이빙벨>이 ‘노이즈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해당 의원이야말로 마케팅의 일등공신이다.

‘예술의 자율성’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에도 예술은 권력, 자본과 갈등하고 타협, 즉 ‘밀당’했다. 이 긴장감이 빚어낸 시대의 흔적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올해 광주와 부산에 ‘밀당’은 없었다. 돈줄 쥔 자의 일방적인 폭력이 있을 뿐이었다. 이 권력, 치사하고 유치하다.


백승찬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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