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 러시아를 2박4일 일정으로 국빈 방문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이후 19년 만에 이뤄진 이번 국빈 방문 기간 중 문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양국의 공조방안을 논의한다. 방문 첫날인 21일에는 뱌체슬라프 빅토로비치 블로딘 하원의장과 주요 정당 대표들을 면담한 데 이어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러시아 하원 의회에서 연설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2박4일 일정의 러시아 국빈방문을 위해 2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출발하기 전 전용기 계단에 올라 환송인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이번 방문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 국면에 접어드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올 들어 세 차례나 하면서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 확보를 꾀하고 있고, 일본도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나섰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으며 이 자리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할지 주목되고 있다.

한반도 정세의 전환은 한국에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향상시킬 기회가 된다. 러시아와의 협력은 그간 줄곧 구상에만 머물러 있던 남·북·러 경제협력을 현실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하원 연설에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를 다지고 보장하기 위한 양국 간 협력도 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동북아 평화안보 협력체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방러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는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이 20일 러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남북철도가 연결되고 시베리아 철도와도 연결되면 유럽까지 철도로 물류이동이 가능하다”고 했듯이 러시아는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창(窓)이다. 70년 가까이 닫혀 있던 이 창이 열리려는 시점에 와 있다. 양국관계가 동북아를 넘어 유라시아 평화번영 체제를 이루는 협력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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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개최되면서 전 세계인의 눈과 귀가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외신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남북한 소식을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고 이러한 관심은 접경지역 관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대비 임진각 관광지에는 관광객이 평일의 2배, 주말에는 4배 가까이로 늘었고 여행사를 통한 외국인의 접경지역 여행 문의도 2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특히 남북 정상이 만났던 비무장지대(DMZ)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져 지난달 미국의 주요 방송사 CNN은 DMZ의 역사와 여행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DMZ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최근 접경지역 부동산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어느 누구도 관심 없던 곳이 부동산 투자 열풍 지역이 된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접경지역 땅값이 몇 달 새 최고 50% 오른 곳도 있고 거래 규모도 10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또한 군사분계선과 민통선 인근 지역은 민간인 출입조차 어려운 지역이지만 땅을 보지도 않고 매매를 하는 이른바 ‘묻지마 거래’까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 DMZ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우는 어땠을까. 통일에 즈음하여 28년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자연의 보고가 되어 있던 동·서독 접경지역을 자연의 기념물로 보호하기 위해 독일 국민은 범국민적인 토지 매입에 나섰다. 그렇게 25년여간 보호해온 결과 독일의 접경지역 ‘그린벨트’는 한 개의 국립공원과 세 곳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그리고 271개 자연보호구역을 가진 세계적인 생태의 보고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DMZ도 환경오염으로 갈 곳을 잃은 멸종 위기종과 희귀한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최근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멸종위기종을 포함해 총 5929종의 야생생물이 DMZ에서 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멸종위기 267종의 37.8%가 DMZ에 살고 있을 만큼 DMZ는 생태 보고로 재탄생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 국내외 전문가들은 DMZ가 생태계 보전이 매우 잘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바로 등재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행객에게 여행 목적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희소성이다. DMZ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과 북에만 허락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관광자원이다. DMZ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디에 가치를 두어 발전시킬지 국가 차원에서 명확한 기준을 정해 국민적 공감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김성은 | 경기관광공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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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필자는 두 개의 원칙, 즉 게임전략과 협상 네트워크에 입각해서 지난 몇 달간의 진전을 지켜봐왔다. 주어진 입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게임전략, 주어진 입지 자체를 바꾸려는 전략을 네트워크전략이라고 한다. 먼저 게임전략을 보자. 트럼프는 게임이론의 교과서와 같이 행동해왔고, 따라서 대단히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물론 그는 스스로 했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뒤집어왔다는 점에서 예측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그가 한 말의 ‘내용’에 집중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그가 왜 말을 뒤집는지 ‘의사결정의 원칙’에 집중해보면 그는 매우 예측 가능하다. 그는 이미 20년 전에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금 구사하고 있는 대북 전략을 설명한 바 있다. 첫째, 북핵 대응은 빠를수록 좋다. 둘째, 처음에는 대화로 시작한다. 셋째, 선제타격의 가능성을 닫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선제타격뿐이므로. 넷째, 미국이 단호하게 나가면 북한은 대화에 응할 것이다. 그는 20년째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이 가져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보이며 웃고 있다. 친서를 담은 봉투가 트럼프 대통령의 아랫배를 거의 가릴 정도로 크다. 워싱턴 _ 연합뉴스

대화 시작과 동시에 존 볼턴과 같은 초강경 네오콘을 국가안보보좌관에 앉힌 것은 ‘협박을 믿게 만드는 전략(credible threat)’이다. 대표적 선제타격론자이자 ‘전쟁에 반대한 적이 한번도 없는 인물’이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볼턴이 트럼프의 곁에 있다면 그의 협박을 북한이 흘려듣기는 어렵게 된다. 김정은도 북핵의 위기감을 최고조로 높이고 핵보유국임을 세계에 천명함으로써 몸값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직후 협상에 나서는 것은 담대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의 한계는 만약 협상이 어그러져 미국을 상대로 서로가 목숨을 건 폭주에 나설 경우 결국 막판에 방향을 틀어야 할 것은 북한이라는 데에 있다. 동원할 수 있는 위협의 한계 때문에 김정은은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게임전략에서는 트럼프의 판정승이다.

존 볼턴 임명이 발표된 지 나흘 후 김정은은 전격적으로 시진핑을 방문했다. 게임전략에서 네트워크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기존의 남·북·미 협상 네트워크는 트럼프에게 유리했다. 한·미가 한쪽에 있고 북한은 남한에 의존해야 하는 구도이다. 김정은은 중국을 끌어들임으로써 이 틀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바꾸어버렸다. 북·중이 오랜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를 회복하고 협상 네트워크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된다면 미국은 졸지에 태평양 건너편의 관찰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임전략에서의 불리함을 네트워크전략으로 만회한 김정은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고, 회담 직후 다시 시진핑을 찾아가 협상 네트워크에서의 북·중 고리를 더욱 다졌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자 트럼프는 회담 취소를 선언하고 판을 깨버린다. 결국 김정은은 굴욕적이지만 대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낼 수밖에 없었고, 트럼프는 즉시 이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상대가 배신하면 즉시 처벌하고, 상대가 협동으로 복귀하면 즉시 용서하라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 전략의 가르침 그대로이다. 

중국이 아직 배후에 버티고 있으니 트럼프의 게임전략이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김정은이 잠시 점유했던 네트워크전략의 우위를 상당부분 무력화시켰다.

이렇듯 지금까지 트럼프와 김정은의 선택은 게임전략과 네트워크전략 두 가지로 대부분 설명된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싱가포르 회담은 열릴까. 김정은은 크게 모욕당하지 않는 한 판을 깰 인센티브가 없다. 트럼프는 최대한의 압박이란 단어까지 거둬들이면서 김정은을 관리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갑자기 협상 네트워크의 지형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판을 깨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회담은 예정대로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상당한 정도의 경제적 보상과 같은 입장료를 내지 않는 한 판에 끼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은 애써 조금이나마 바꿔놓은 협상 네트워크에 미국의 또 다른 우방 일본이 끼어들어 판세를 바꾸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고, 트럼프도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 문재인 대통령은 싱가포르로 날아갈까. 아마도 갈 것이다. 

하지만 일각의 예상처럼 비핵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전선언으로 체면을 살리는 것은 지금까지 보여준 트럼프의 게임전략에 크게 어긋난다. 비핵화의 확실한 약속을 받되 한 번의 회담으로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종전선언이 의미 있는 중간매듭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그의 전략에 잘 부합한다. 협상결과를 크게 ‘타결’과 ‘결렬’로 나눈다면 김정은은 완전한 타결에서 일부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결렬 쪽에 가까이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국 중간선거와 노벨상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11월 이후 트럼프의 협상의지는 크게 낮아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김정은이 치러야 할 대가는 훨씬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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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여부 등 굵직굵직한 이슈에 묻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자리 잡을 수 있느냐는 워낙 중요한 문제이므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6·13 지방선거는 촛불 이후에 처음 치르는 지방선거이다. 그리고 이 선거결과는 우리들의 삶에 여러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여부나 중앙정치의 분위기에만 쓸려가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정치개혁에도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번에 거대정당들이 한 공천만 보더라도 그렇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공천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있었다. 높은 대통령 지지율 덕분에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된다는 인식이 오히려 공천의 문제를 키웠다. 한 가지 예만 든다면, 수뢰 후 부정 처사,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천안시장을 전략공천했다.

현직시장이 수사를 받고 기소당하는 문제가 있는데도 경선도 하지 않고 전략공천을 한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공천과정에서 여러 잡음이 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이다. 공천결과에 납득할 수 없다며 자유한국당을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들도 여럿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서 그런 사례가 여럿 발생했다.

거대정당들의 공천결과를 보면, 여성, 청년, 소수자들은 이번에도 소외됐다.

전국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로 등록한 71명 가운데 여성후보는 6명에 불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0명, 자유한국당은 1명이었고, 나머지는 녹색당 2명, 대한애국당 1명, 민중당 1명, 정의당 1명이었다.

이처럼 촛불 이후에도 한국의 정치는 변하지 않고 있다. ‘거대정당 공천=당선’이면 굳이 선거를 할 의미도 사라진다.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이 아예 출마를 포기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미 무투표 당선된 후보자가 86명에 달한다.

정책 경쟁도 사라진다. 어차피 거대정당의 공천만 잘 받으면 당선되는데, 굳이 정책에 신경쓸 이유가 없다. 대충 개발공약이나 내세우고 다른 후보들 정책을 참고해서 급조된 공약을 만드는 식이 된다.

이런 식의 선거는 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영향을 끼친다. 지역에 적폐가 쌓인다. 주민들을 위해 사용해야 할 예산이 엉뚱하게 사용된다. 여기저기서 벌이는 공사로 인해 미세먼지를 들이마시게 되고 생활환경도 악화된다. 비싼 전세, 월세는 해결되지 않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열심히 일해 온 상인들이 쫓겨난다. 부실한 규제로 인해 안전이 위협받는다. 이것이 ‘나쁜 지방자치’로 인해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이다.

반면에 지방자치를 통해 문제가 개선된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상급식이다. 2009년 경기도 교육감 보궐선거 때 무상급식이 선거이슈가 되었고,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이 확산됐다. 그 외에도 성남시가 시작한 청년배당, 주민들이 예산편성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 등은 지방자치가 정책을 선도하고 있는 좋은 사례들이다.

그래서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도 정당기호만 보고 투표하는 것은 최악이다. 정당과 후보들이 내세우는 정책이 선거이슈가 되어야 선거를 할 의미가 있다. 당선되는 후보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낙선하더라도 의미 있는 정책을 내건 후보가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그 정책에 힘이 실리고, 당선된 후보가 그 정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무상급식 같은 정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더라도 그랬다. 처음부터 무상급식이 유권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낙선하더라도 무상급식을 정책으로 내걸었던 후보들이 있었고, 그 후보들의 정책에 반응을 보이는 유권자들이 있었기에 무상급식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 왔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내 삶을 바꾸려면 어떻게 투표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방선거의 투표용지는 7장(다만, 국회의원 보궐선거 지역은 8장, 제주도는 5장, 세종시는 4장)이나 된다. 분명 그중에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정책을 제시하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있을 것이다.

최근의 미투운동, 낙태죄 폐지 주장, 불법촬영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책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어떤 문제이든 선거에서 이슈가 되고, 유권자들이 그 이슈에 대한 정당·후보들의 입장을 투표의 기준으로 삼을 때 문제가 풀릴 수 있다. 그래야 그 문제가 정치의 영역에서 진지하게 다뤄질 수 있다.

선거에서 최악은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투표장에 가서 ‘나는 찍을 데가 없다’며 기권표라도 던져야 최소한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정당 기호만 보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정당을 자만하고 방심하게 만들어서, 결국 그 정당을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을 살펴보고,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7장의 투표용지에 투표하는 것이다. 7장의 투표용지 중에는 분명 내 삶에 도움이 되는 ‘한 표’가 있을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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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3·5합의’를 이끌어내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바빴다. 그는 3월7일 페이스북에 “남북회담 합의문을 보니 1938년 뮌헨회담을 연상시킨다. 당시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히틀러의 수데테란트 합병을 승인해주고 유럽 평화를 이룩했다고 했지만, 이는 히틀러의 속임수에 불과했다”고 썼다. 28일에는 “문재인 정권의 위장평화쇼”라고 했다. 홍 대표가 남북 합의를 “속임수”와 “위장평화쇼”라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문 대통령에게 ‘체임벌린 이미지’를 씌우기 위함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리니, 안보를 강조해온 보수 야당으로서는 좌불안석일 터이다. 더욱이 두 회담에서 정전협정을 종전협정 등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결과가 나오는 일은 상상조차하기 싫을 법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26일 (출처:경향신문DB)

홍 대표가 언급한 체임벌린과 뮌헨협정은 20세기 국제관계사에서 실패의 대명사로 꼽힌다. 체임벌린은 1938년 9월29일 히틀러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체코 수데테란트를 넘겨주는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1년 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협정은 휴지 조각이 됐다. 체임벌린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그의 유화정책은 굴욕 외교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다.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세 차례 회담을 노상강도에 비유했다. “처음에 상대는 권총을 뽑아들고 1파운드를 요구했다. 그걸 주니까 또다시 총을 꺼내들고 2파운드를 요구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파운드17실링6펜스를 받고서 나머지는 미래에 대한 호의의 약속이라고 둘러댔다.”

아이러니하게도 회담 결과에 대한 영국 내 반응은 뜨거웠다. 하루 뒤 체임벌린이 히틀러의 서명이 담긴 평화선언 문서를 들고 귀국한 날은 비가 억수로 쏟아졌는데도 공항은 환영 인파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는 총리 관저 현관에서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를 했다. 60년 전 디즈레일리 총리의 유명한 “명예와 평화를 가지고 독일에서 돌아왔다”는 말을 되풀이하라는 누군가의 권유에 충동적으로 해서는 안될 말을 내뱉었다. “우리 시대의 평화가 찾아왔다.” 실수임을 바로 깨달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말은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히는 악몽이 됐다. 그 후 많은 지도자들은 전쟁의 명분으로 그를 이용했다. 2016년 &lt;협상의 전략&gt;을 쓴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설명했다. “군사개입은 언제나 독재자에게 놀아난 순진한 체임벌린에게 침을 뱉으면서 정당화됐고, 대화와 협상은 가짜평화라는 이름으로 조롱당했다.”

뮌헨회담의 실패는 나약한 평화주의자 체임벌린 탓만은 아니다. 그의 개인적 미숙함과 안이한 정세 판단, 전략 및 팀워크 부재 등 총체적 부실의 결과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뒤집어썼지만 승리는 연합군의 몫이었다. 전쟁을 막을 목적 하나로 히틀러를 세 번이나 만난 그는 죽기 전 말했다. “뮌헨이 없었다면 우리 제국은 1938년에 파괴됐을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처음 체임벌린의 회동 제의를 받은 히틀러도 당황했다. 체임벌린이 전쟁을 위협하러 올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결국 체임벌린과의 만남은 이미 전쟁을 결심하고 있던 히틀러의 마음을 돌렸다. 히틀러는 패배 직전 “1938년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지난해 5월 집권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모든 걸 걸었다. 그 결과물이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이다. 문 대통령의 역할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공동합의문을 채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상회담은 그 이후가 중요하다.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는 일이다. 체임벌린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유화정책이 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뮌헨협정을 비롯해 20세기를 만든 6개 회담을 분석해 펴낸 &lt;정상회담&gt;에서 회담은 유화-억제-데탕트-변모 단계로 진행돼왔다고 분석했다. 남북정상회담 과정도 그랬다. 2000년과 2007년은 유화단계였다. 2008년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유화단계는 억제단계가 됐다. 문 정부 출범 후 긴장완화 단계를 거쳐 변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체임벌린이 히틀러를 만난 시간은 9월13일부터 29일까지 보름 남짓이다. 하지만 그는 8월 말 비밀리에 히틀러를 단독으로 만나는 ‘Z계획’을 짰다. 이 때문에 함께 히틀러를 만나자는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체임벌린은 1940년 11월9일 눈을 감았지만 ‘체임벌린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사후 80년이 다 되도록 유령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문재인의 시간’은 달라져야 한다. 사후 역사가 평가할 때까지 이어진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모토 ‘평화, 새로운 시작’처럼 시작일 뿐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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