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미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정작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백악관은 25일 성명을 내 “우리는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길을 따르는 첫걸음을 의미하는지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 담당 부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미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데 대해 미국 입장을 전한 것이다. 미국이 김영철의 발언에 즉각 반응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의 발언을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의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과 백악관이 문 대통령을 매개로 높은 수준의 간접 대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북·미 양측이 간접 대화를 통해 대화의 필요성과 상대의 대화 의사를 확인했으니 이제 직접 만나 북핵 문제를 논의할 일만 남았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6일 오전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만난 뒤 호텔을 나서고 있다. 정 실장은 김 부위원장과 오찬을 함께하며 북미대화와 남북정상회담 추진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은 아직 대화의 조건을 매우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해야 대화한다고 고집하고, 북한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는 응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상대의 의중을 타진하는 탐색적 대화조차 성사되기 어렵다. 북·미는 평창 올림픽이 마련한 대화의 동력을 제대로 살려나가지 못한다면 상황은 ‘평창 이전’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북·미 사이에 대화 분위기 외에 초강경 대치 국면도 엄존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이 최근 해상차단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독자제재를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자제재 발표 후 “만약 북한이 비핵화로 가지 않으면 매우 거친 2단계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북한은 “어떤 봉쇄도 전쟁으로 간주하겠다”고 맞섰다. 대결이냐, 대화냐 중대 기로에 선 것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대결을 피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이 북핵 당사국들의 과제이자 의무다.

무엇보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 마주 앉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대화도 하기 전에 최대 목표치를 성급히 내세우며 상대를 물러서게 해서는 안된다. 한국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닿지 않는 손을 내밀면서 서로에게 더 다가오라고 주문만 하는 것은 문제를 풀려는 자세가 아니다. 북·미 모두 지금보다 서로에게 더 적극 다가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26일 밝힌 대로 “미국은 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한국도 북·미 양측이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수준으로 입장을 좁힐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평창 올림픽은 끝났지만 평화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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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회동하려다 무산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두 사람이 올림픽 개회식 다음날인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회담 두 시간 전 북한이 취소를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 했지만, 백악관 부통령실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펜스-김여정 회담이 불발된 것은 대단히 아쉽다.

(출처: 청와대사진기자단)

궁금한 대목은 북한이 왜 약속을 갑자기 취소했는가 하는 점이다.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기념관 방문과 탈북자 면담 등 반북 캠페인을 벌일 것이라고 미리부터 예고해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북한이 회담을 추진했다가 취소한 것이어서 궁금증이 증폭된다. 미국 측은 회담 불발에 대해 펜스가 김여정을 만난 자리에서도 반북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을 예상해 북한이 만나기를 꺼렸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평창 올림픽 리셉션과 개회식이 열린 9일 펜스가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이 더 큰 이유일 가능성이 있다. 펜스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나는 것을 꺼려 리셉션에 불참했다. 뒤늦게 도착해 잠깐 리셉션장에 들어왔지만 김영남과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나가버렸다.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북한 대표단의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이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펜스와 대화해봐야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위야 어찌됐건 펜스-김여정 회담 불발은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가 그만큼 만만치 않음을 일깨워준다. 정부와 북한이 회동 불발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백악관이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공개한 것도 뒷맛이 좋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럼에도 북한이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것은 성과이고,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다. 어떻게 분위기를 조성할지가 관건이고, 양쪽을 중재해야 하는 한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긴밀한 협의는 물론 중요하지만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23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다. 정부는 내주쯤 고위급 당국자를 미국에 파견해 한·미 간 조율에 나선다. 평창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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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산골 리조트 마을 다보스라는 곳에는 매년 1월 말이 되면 세계 주요 정상, 장관, CEO, 사안별 전문가, 그리고 유명 언론인들이 다 모여든다. 이들은 이곳 다보스에서 서로 만나 사업 협상도 하고, 세계의 주요 흐름을 살피기도 하고,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포럼이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이다. 작년 다보스 포럼에서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개막연설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와 일방주의에 대하여 중국이 책임지고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로 대표되는 국제질서를 수호해 갈 것을 선언하였고, 그로 인해 세계의 리더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서막이 올랐다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기도 하였다.

지난 1월22일부터 26일까지 열린 다보스 포럼은 작년의 시진핑 주석의 기세를 이어 인도의 모디 총리가 지난해 시진핑 주석의 선언과 맥을 같이하는 개막연설을 하였고, 영국, 독일, 프랑스의 정상들도 모두 한목소리로 개방경제와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였다. 세계의 주요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다보스에서는 그만큼 개방경제와 다자주의의 위기와 이를 지키려는 각국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폐막 연설 참석을 깜짝 발표하면서 폐막 연설에서 미국제일주의가 미국만 좋은 것이 아니라 세계에도 좋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돌아갔다. 다보스라는 글로벌 무대에서 이어지는 미국에 대한 공격에 대응한 수비 연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은 여전히 미국제일주의이지만 수사는 개방경제와 다자주의를 의식한 연설이었다. 그만큼 개방경제와 다자주의로 대표되는 지금의 국제질서 속에서는 나름대로 이탈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거시적인 국제질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곳이 다보스라면,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을 읽을 수 있는 곳도 다보스다. 거리에서 우연히 한국 아이돌 그룹 레드벨벳의 ‘피카부’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는 다보스의 소녀들을 만나면서 여기까지 뻗어 온 한류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반면,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한 세계의 우려를 역시 만날 수 있었던 곳이 이번의 다보스였다. 북한 문제에 관하여 다보스 포럼 측에서 갖는 관심을 반영하듯 관련 세션도 여러 개 열렸고, 세계의 언론도 이 문제에 주목하고 있었다.

나도 관련된 대부분의 세션에 참여하였고 참석자들의 발언을 면밀히 관찰하였는데, 다보스에서 알 수 있는 한반도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평창 올림픽 이후의 북한 핵 문제”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세계의 안보 문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평창 올림픽 이후에도 과연 이 지역이 안정적으로 잘 관리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올림픽이야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치러지도록 국제사회가 한국을 도와주겠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핵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의 제재는 그대로 이전의 모습으로 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으로 인하여 북한과 미국과 국제사회가 핵 문제와 관련하여 변한 것이 없을 터인데, 잘못하면 우리만 변하지 않는 북한에 호의적인 정권으로 비쳐 미국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세계의 우려는 현실이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김정은과 최대 압박을 통하여 핵을 포기시키려는 트럼프라는 두 강성 지도자가 다시 맞붙는다면 긴장 수위가 계속 높아져 한반도의 미래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부시 대통령의 2002년 “악의 축” 연설을 상기시키는 북한에 대한 경고를 1월30일 연두교서에 포함시켰다. 부시 행정부는 그 연설 이후 실제로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바 있다.

그 다음날인 1월31일에는 미국의 북한 예방타격을 반대하는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 빅터 차 교수의 임명을 철회하였다. 북한에 대한 강성 메시지를 연거푸 보내고 있다. 우리 정부가 평창 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 그 모멘텀을 유지시키려면 겨우 재개된 남북대화를 통하여 북핵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성사시켜야 한다.

문제는 북한은 항복하는 형식으로 북핵을 포기하는 대화에는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핵 문제에 항복하면 다른 문제도 끝까지 밀려서 결국에는 정권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는 자체진단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항복이 아닌 북핵 포기의 협상 구도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가 우리의 숙제가 될 것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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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히고,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면서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며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상태의 완화를 위해 남북이 노력해야 한다며 지난해 7월 남측이 제안한 군사당국 간 회담에 응할 가능성도 비쳤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의 대화와 접촉, 왕래의 길을 열어놓겠다며 남북교류 재개 방침도 내놨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평양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신년사의 남북관계 개선론이 원론적이었던 것에 비하면 올해 신년사는 구체적이다. 북한이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5형’을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뒤 올해부터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처럼 남북대화 의지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김정은의 대화 의사는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구상일 수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압박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남북대화를 북·미대화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면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한·미 간 북핵공조를 흐트러뜨리려는 책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화전양면식 신년사’라고 평가절하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남북관계는 우리의 필요와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북·미 간 긴장이 전쟁으로 치닫지 못하게 막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남북대화가 이 과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6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대를 잡겠다고 했지만, 그간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핵·미사일 도발을 하는 북한에 대북 군사공격을 거론하는 트럼프 행정부 때문에 한국 정부의 운신 폭이 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유엔총회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일체의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자는 휴전결의를 이끌어냈고, 북한에 올림픽 참가를 제안하면서 분위기를 다져왔다. 그런 노력에 북한이 화답한 셈이고, 이제야 문재인 정부가 운전석에 올라 실력을 보일 시기가 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설득해 북·미대화로 이끌어낸다면 동북아에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

지난 10년간 동결된 남북관계를 복원하는 데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에 균열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 않도록 주변국과의 충분한 협의도 필요하다. ‘동맹’이냐, ‘민족’이냐는 식의 흑백논리가 부각되면서 남남갈등이 격화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보수정부 10년을 거치며 생긴 관성을 탈피해 남북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디딤돌이 되도록 상상력과 지혜,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북한도 모처럼의 남북대화가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 달여 남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명실상부한 ‘평화의 제전’이 되도록 준비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남북 체육회담이 열려 남북이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모습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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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개봉되었던 영화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북부 덩케르크 해변에 갇혀 있던 19만8000명의 영국군과 14만명에 이르는 프랑스, 벨기에군을 영국의 군관민이 합동으로 구출해내는 기적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비록 전쟁의 서막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으나 철수 작전에 성공함으로써 영국은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총력전(total war)의 시대, 전쟁이 벌어지면 온 국토와 전 국민이 전쟁의 참화로 고통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력을 하나로 단합시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서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 전쟁 기간 중 조지 6세가 머물던 버킹엄궁은 7차례나 폭격당했지만, 국왕은 런던을 떠나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궁이 폭격당하는 장면과 국왕의 건재함을 홍보영상으로 만들어 국민의 단합과 결집을 호소했다.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이외에도 영국 정부는 여러 방식으로 프로파간다 작업을 수행했다. 그중 하나가 왕실 마크와 선전 문구를 담은 ‘KEEP CALM’ 시리즈 포스터였다. 첫 번째 포스터는 “Your Courage, Your Cheerfulness, Your Resolution will bring us victory(당신의 용기, 당신의 활기, 당신의 결의가 승리를 불러올 것이다).” 두 번째는 “Freedom is in peril defend it with all your might(위기에 처한 자유를 전력을 다해 사수하라).”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KEEP CALM AND CARRY ON(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라)”이었다. 마지막 포스터는 전쟁이 끝나는 바람에 공개되지 않다가 2000년 영국의 어느 고서점에서 1장의 포스터가 우연히 발견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 정권은 민심을 호도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북한과의 군사적 위기를 조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의 민심 흔들기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침착하게 현실에 대처해왔다.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계속되는 북핵 위기 속에서도 대다수 국민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진짜 가마니가 된다”는 사실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비참한 역사가 이런 사실을 반복적으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구까지 피란 내려간 상황에서도 “안심하라!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를 연신 틀어댔고, 2014년 4월16일, 이미 선체가 침수되어 기울어 가고 있는 세월호 선내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는 죽음의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참담하게 망가져가는 국가를 더는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던 국민이 나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만히 지켜만 보기엔 이른 듯싶다. 중요한 변화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남북관계 개선이다.

제1차 핵실험 이래 북핵 문제에 대한 한·미 양국의 접근 방법은 북한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핵 개발을 포기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는 6차 핵실험 소식이다. 대북 제재와 외교적 고립, 그리고 무력시위로는 북한의 선택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되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미사일 사정거리 연장과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계획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군사체제의 군사력은 앞으로도 북한을 계속해서 압도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유사시 한반도와 우리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그런 사실은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절대 안보’는 ‘절대 평화’ 이외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무시하는 한 어떠한 군사 무기의 도입도 현실적으로 비현실적이다.

온 국민이 김정은의 북한 핵과 트럼프의 대북 군사옵션이란 덩케르크 해변에 갇혀 있다.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든 길이겠으나,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믿고, 국민을 위해, 국민과 함께 우리가 주도하는 해법을 만들어 그들을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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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새벽 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발사지점에서 2700㎞ 떨어진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비행거리로 볼 때 미국의 괌을 사정거리에 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추정된다. 이는 한·미 양국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에 대한 대응 차원을 훨씬 넘어선 도발이다. 특히 이번 도발이 한국과 미국이 대북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이뤄진 것이어서 심각성을 더한다. 한반도 정세가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강력한 대북 응징 능력을 과시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의 도발이 용인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섰다고 본 것이다. 군은 맞대응 차원에서 MK84 폭탄 8발 투하훈련을 실시하고, 한국형 탄도미사일 ‘현무2’의 발사 영상을 공개했다. B-1B 전략폭격기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일본 도쿄 시민들이 29일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했다는 뉴스를 전하는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연 뒤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그간 외교적 해결을 시사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하면서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다”라며 강력한 대북 압박을 강조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전까지만 해도 긴장완화 조짐을 보이던 한반도 정세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일시에 긴장 국면으로 급변한 것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핵보유국 외길을 향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누가 뭐라고 하든 흔들리지 않고 핵미사일 완성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달 초 북한 스스로 공언한 ‘괌 포위사격 방안’이 언제든 실현 가능한 실제적 위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엿보인다. 어제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비행거리로 볼 때 북한에서 3000㎞ 떨어진 괌까지 도달 가능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최근 괌 포위사격을 유보하겠다면서 미국의 행보를 지켜보겠다고 말한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대북 제재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개발로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 번영을 얻으려는 시도는 전혀 승산이 없는 무모한 싸움일 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이에 굴복하는 나라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북한은 과연 자신들의 핵보유 명분에 국제사회가 동의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끝 간 데 없는 도발에 중국과 러시아마저 인내심을 잃고 등을 돌려 유엔 안보리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해온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난관에 부닥쳤다. 북핵 문제의 대화해결과 ‘한반도 운전자론’을 주창하고 “전쟁은 안된다”며 강력한 대미 메시지를 보낸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울 것이다. 물론 시민들의 불편하고 불안한 심정을 감안할 때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이 비상식적이고 국제관행을 따르지 않는 국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북한을 설득해 대화 무대로 끌고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다름 아닌 정부였다. 북핵 문제에서 감정적 대응은 금물이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으면 대화를 거론하고 미사일을 쏘면 금세 태도를 바꿔 응징하기를 반복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적절한 전략이라고 볼 수 없다. 정세에 따른 대응도 중요하지만 일관성을 잃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김정은의 핵 위협에 놀아나는 격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제재 병행의 기조를 굳건히 하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을 세운 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의 도발과 한·미가 맞대응하는 악순환은 이제 끝내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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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한반도가 지니는 지정학적 의미는 강대국들 간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서 특정 국가에 의한 한반도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펼치는 힘겨루기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강제적인 기술이전 요구 등 부당한 무역관행을 조사토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실상 무역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중국 상무부는 15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다자간 무역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제소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그러자 극우 성향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나서서 “중국과의 경제 전쟁은 모든 것이고, 우리는 모두 그에 미친 듯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 그들이 (북핵 문제 등으로) 우리를 툭툭 치고 있지만 그건 단지 곁가지(sideshow)에 불과하다”고 했다.

7월 28일 오후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미군 장비가 놓여 있다. 이날 국방부는 사드 기지에서 진행해온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이외 일반 환경영향평가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주고받은 ‘말폭탄’이 결국 ‘쇼’였던 것이다. 난공불락인 북한의 핵무기 위협 속에 살아남으려면 자수자강(自守自强)하는 수밖에 없다는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라는 물음에는 핵무기가 없는 한국의 전략적 딜레마가 숨겨져 있다. 풀기가 어려운 고난도 방정식과도 같다.

역대 어느 지도자도 자신에게 주어진 북핵 숙제를 풀지 못했다. 그 사이 북핵 문제는 점차 난도만 높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레드라인’을 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도 임기 내 북핵 문제를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묘안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임기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세습으로까지 이어지는 왕조체제를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시 말한다. 김정은 정권이 10~20년 이내 붕괴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도 말자. 희망적 사고가 정책이, 국가전략이 될 수는 없다. 머지않아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것을 가정하고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면 당장 중단하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현명한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경로를 택하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비핵화 벽돌을 한 장만 쌓는 일이다. 

‘가난한 국가’가 국가안보 수준을 단기간에 높이는 방법은 타국과 군사동맹을 맺는 것이 정설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사드 배치 과정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듯이, 한·미동맹 강화 과정에서 중국의 크고 작은 반발에 문재인 정부가 얼마나 명민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이다. 이를테면 동북아 지역에서라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급격하게 세력 전이가 이루어질 경우 우리의 내부적 균열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민도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의 동아시아 전문가였던 카를 필니가 19세기 말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존 헤이의 “지중해는 과거의 바다이고, 대서양은 현재의 바다이며, 태평양은 미래의 바다”를 인용하면서 21세기는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 역할을 맡는 다극화된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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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건 1993년 3월이다.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사찰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팀스피릿 훈련 중단 약속을 파기했고 따위의 한반도 정세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전쟁 위기가 ‘원자로 건설’ 때문인지 ‘핵미사일 개발’ 때문인지 몰랐다. 장교들은 “북한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했다. 전투준비태세 단계가 높아졌다. 군장을 꾸린 채 취침하기도 했다.

개별 인간의 가치와 의지가 무력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세상, 특히나 정세는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이 돌아갔다. 전쟁과 죽음, 핵의 공포를 체감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호전성을 곧잘 드러내던 선임병은 보초를 서며 욕설 한마디를 내뱉고 흐느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1994년 6월 전쟁 직전까지 갔다는 건 제대하고 수년이 지나서 알았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고 북한 영변 폭격을 계획했다가 격론 끝에 취소했다. “(폭격이) 북한 당국을 자극해 100만명이 희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쟁을 불러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1999년 CNN 보도를 읽곤 섬뜩했다. 남북한 사람 100만명이 죽을 수도 있는 폭격을 두고 미국은 ‘외과적 수술’이란 완곡어법을 썼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의 이유로 ‘무지’ ‘무기력’을 들었다. 미래에 무슨 불행이 닥쳐 큰 상처를 입힐지 모르는 무지와, 그 불행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공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고조시킨 최근 위기에서 무지와 무기력을 다시 느꼈다.

‘무신경’도 공포스럽다. 미디어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곧잘 소개한다.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예상 시나리오를 전한다. 어느 유력 언론은 외신기사를 ‘남한과 북한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까’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전개’ ‘충돌’ ‘정밀타격’ 같은 용어는 ‘나뒹구는 시체’를 은폐한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원격 조작 무기를 두고 “우리의 정서적인 심층은 집게손가락의 발사 신호가 타인의 창자를 찢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저널리즘 언어도 그 ‘집게손가락’처럼 움직이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공포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현실 정치를 지배한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에 기댄 핵무장론이다. 북핵이 그런 논리의 결과였다. 남한의 핵잠수함 추진도 예외일 수 없다. 한반도 위기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교훈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지 전쟁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2000년대 후반 이상주의적인 이름의 성명서를 내놓은 건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같은 국방·외교를 오래 한 현실 정치인들이다. 미·소의 수소폭탄 실험 이후 버트런드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주도해 1955년 발표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은 전면적 군비 축소와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약 체결을 제안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지식과 지혜가 지속적으로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가 결정된다”고 했다. 50년이 지나서도 유효한 선언이다.

바우만이 말한 공포의 세 번째 이유는 무지와 무기력에서 비롯된 굴욕감이다. 그는 “(굴욕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불행에 따른 손상의 많은 부분이 신호를 제때 탐지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부주의, 지나친 꾸물거림, 게으름, 의지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의 자존심과 자신감에 입게 되는 상처”(<도덕적 불감증> 책읽는 수요일)라고 했다. 군축·핵폐기를 위한 실천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우선 과제가 되길 바랄 뿐이다.

<김종목 모바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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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이틀째 상대를 위협하는 언사를 주고받았다. 김락겸 북한 전략군사령관은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12’형 4발의 동시 발사로 진행하는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어제 보도했다. 그는 화성-12형이 “일본의 상공을 통과해 괌도 주변 30~40㎞ 해상 수역에 탄착되게 될 것”이라며 이달 중순까지 방안을 최종 완성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고한 뒤 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담당 전략군사령관이 직접 나서 선전포고하듯이 괌 공격의 절차와 좌표, 시점을 공개한 것이다. 북한이 단순 엄포로 끝낼지, 실제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도발적 태도는 놀랍지 않지만 구체적인 군사 계획까지 공개하며 위협한 것은 도를 한참 넘은 것이다. 북한은 핵을 완성하면 핵보유국 대접을 받고 경제 부흥을 이룰 수 있다고 볼지 몰라도 어림없는 일이다. 오히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로 낙인찍혀 국제사회로부터 영원히 제재만 받게 될 것이다. 군사 도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도 초강경 메시지를 내보냈다. 그러나 막말을 쏟아내는 북한과 입씨름하며 세월을 보내는 것은 백해무익한 일이다.

출처: 경향신문DB

북·미 간 도발적 발언으로 한반도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끌려가고 있다. 최악의 언어로 상대를 자극하며 위기를 증폭시키는 이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제동을 걸지 않으면 우발적 사건이 무력충돌로 번질 수도 있다. 자칫 이번 사태가 군사적 대응으로 비화되면 한반도에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불문가지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뿐 아니라 세계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반도 문제를 넘어 세계적 분쟁으로 확산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위기가 도리어 기회일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위기지수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극적으로 타결된 적이 적지 않다. 푸에블로호 나포사건과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제1차 북핵 위기가 대표적 사례이다. 모두 북한과 미국이 충돌의 당사자였고, 갈등이 증폭되면서 무력충돌 직전까지 가는 위기로 발전했지만 최후의 순간에 대화로 극적 전환을 이뤘다. 무력충돌이 누구에게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과거 사례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이번 위기 조성에는 미국과 북한 모두에 책임이 있다. 결국 두 당사자가 어떤 형태로든지 타협하거나 합의하지 않으면 당면한 위기 상황을 해소할 수 없다. 양국은 말폭탄을 통한 ‘위협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외교적 해결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이 괌 포위공격 방안의 완성시점을 이달 중순까지로 밝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때까지 답변하라고 미국에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침 중국과 러시아가 긴장상황 타개를 위해 북·미 사이의 중재 용의를 시사했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당장 북한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북한에 쏠 테면 쏴보라는 식의 만용은 재앙을 부를 뿐이다. 미국은 국면 전환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북·미 갈등에서 한국의 역할이 제한적이라고 자포자기한 채 미국과 함께 대북 공세로만 일관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막후에서 남북 접촉도 하고 미국과 타협안도 마련해야 한다. 지금 한반도는 전쟁이냐, 대화냐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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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미국, 북한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 외화벌이의 주력 품목인 석탄을 비롯해 철·철광석 등 주요 광물, 수산물의 수출이 전면 금지된다. 북한의 신규 해외 노동자 송출도 차단된다. 북한이 지난달 4일 첫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 지 33일 만이다. 제재가 실행될 경우 북한으로서는 연간 10억달러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 연간 수출액의 3분의 1 규모라고 한다. 미국이 가장 강력한 제재 중 하나로 추진해왔던 북한으로의 원유 수출 금지는 제외됐지만, 지금껏 국제사회가 취한 대북 조치 가운데 가장 파급력이 크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이번 세대의 가장 혹독한 제재이자 북한 정권에 대한 단일 제재로서는 가장 광범위한 경제제재 패키지”라고 했다. 그만큼 국제사회 전체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의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결의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두 나라도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나란히 필리핀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6일 오후(현지시간) 마닐라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나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날 회담에서 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신규 대북제재 결의 이행 방안 등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국제사회 여론은 북한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북한의 경거망동을 규탄하는 여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 외교장관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데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 세계가 한목소리로 핵무기를 보유하겠다는 북한의 무모함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적 모험은 한반도와 국제 평화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더 큰 제재와 압박을 불러들이는 자충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대착오적 도발을 계속한다면 국제적 고립무원의 처지를 자초할 뿐이다. 북한은 군사적 강공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고 자기파괴적 상황만 만들어낼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다 끝낸 뒤 미국과의 담판으로 한몫 챙기겠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중국과 러시아조차 대북 제재에 동참할 정도로 국제사회 내 기류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최악의 상황을 맞기 전에 스스로 비핵화라는 현실적인 생존 방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번에도 국제사회의 핵·미사일 포기 요구를 의례적인 수사일 뿐이라고 무시한다면 치명적인 오판이 될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요구에 응해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만이 살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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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등 민감한 안보 현안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제 북한의 화성-14형 미사일 발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 소집된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송 장관은 사드 배치 이전 가능성에 대해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송 장관은 “대통령에게 전면배치를 건의했지만 임시배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가 “완전배치를 위한 전 단계로 임시배치를 한 것이냐”는 의원 질문에 “그렇게 결론이 났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 말이 논란을 빚자 “일반 환경영향평가 뒤 사드 배치 지역을 바꿀 수 있다”고 번복했고, 의원들의 재확인 질의에 “(롯데골프장 안에서) 위치 조정을 한다는 뜻”이라고 다시 바꿨다. 도대체 송 장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기 위해 회의장 단상으로 향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사드 발사대 배치 문제는 대내외적으로 중대 현안이다. 반대 시민들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고 중국은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당국자라면 누구라도 시민 혼란을 초래하고 주변국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언행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송 장관의 태도는 청와대의 애매모호한 입장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시민 불안을 진정시켜야 할 주무장관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안보 현안에 대한 그의 판단도 문제가 많다. 그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너무 빨리 넘었다”고 평가했지만, 이는 “레드라인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청와대와 차이가 있다. 외교적 대응과 군사적 대응을 가르는 기준으로 사용되는 레드라인을 넘었느냐 여부는 중대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북한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성공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레드라인을 넘었다고 평가한 것은 성급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는 논란이 돼온 핵잠수함 도입 문제에 대해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답했지만 이것이 과연 정부의 정리된 의견인지도 궁금하다. 그는 한·미 간의 한국 미사일 지침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느냐를 두고서도 회의 내내 “있다”와 “없다”는 답변을 오갔다. 부적절한 답변이 이어지자 여당 의원이 대신 입장을 정리해주기도 했고, “장관으로서 충분히 학습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송 장관은 월 수천만원의 자문료 등 도덕적 흠결에도 불구하고 국방개혁 적임자로 인정받아 장관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국회 출석에서 드러난 그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어느 때보다 시민의 신뢰가 중요한 북핵 위기 국면에 송 장관이 제대로 장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송 장관은 준비된 장관임을 증명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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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연설을 통해 새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핵과 전쟁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 북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추구,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새로운 한반도 신경제지도, 일관성 있는 비정치 남북교류협력사업 추진 등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5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반도 평화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쉬운 일부터 해야 한다며 추석 이산상봉,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 행위 상호 중단 등을 제안했다. 남북정상회담도 공식 제안했다. 문재인판 ‘베를린 선언’인 셈이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구상은 새 정부의 한반도정책의 큰 방향과 원칙을 밝힌 점에서 무게를 갖는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엄중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최대 당사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에 대해 분노와 실망감이 크지만, 그럴수록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화가 절실하다. 위중한 정세를 고려하면 남북정상회담 제안이 시기상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핵문제 등 모든 한반도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다. 열 수만 있다면 언제든 여는 것이 맞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당사자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종식시킬 수도 있는 결정권자이기도 하다.

독일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옛 베를린시청에서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을 통해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밝히고 있다. 베를린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문 대통령의 구상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자칫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평화로운 한반도는 가만히 기다린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직접 당사국의 문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를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설득하고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구상이 빈말과 겉치레가 아니라면, 지속적이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 대통령에 앞서 역대 대통령들도 독일에서 대북구상을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꽃을 피웠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남북 대결로 귀결되었다. 구상을 실천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은 대화를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긴장이 높아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대화다. 북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회복하려는 굳은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북한이라는 문도 열릴 것이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우리 모두의 실천 강령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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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했다. 문 대통령은 G20 회의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여느 때 같으면 두 정상 간 상견례가 되겠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한·중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만큼 긴장감이 감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성공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7월6일 (출처: 경향신문DB)

중국의 사드에 대한 입장은 문 대통령의 사드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지시로 부드러워지다 최근 다시 강경해졌다. 시 주석은 그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통해 사드 철수를 강하게 요구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군비를 강화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사드 배치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이나 역내 평화와 안정 확보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전보다 입장이 강해진 것이다. 지난주 문 대통령이 방미 중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중국의 강경 입장 선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한·미동맹의 균열을 의심하는 미국 조야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사드 배치를 강조한 것이 중국의 반발을 부른 셈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3국 협력 강화가 대중 포위전략처럼 비친 점도 있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할 접근법은 사드 논의를 잠시 미루고 북핵 해결에 집중하자고 중국에 제안하는 것이다. 북핵이라는 공동 현안을 우선하고 이견이 있는 사드는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는 기간만큼 시간을 벌어놓고 있다. 이 시간은 단지 유예기간이 아니다. 현재 북한의 태도나 핵개발 속도를 감안할 때 6차 핵실험과 ICBM 개발 완성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안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한·중이 함께 북핵 해결책을 찾고 나아가 한·미·중 간 공동의 북핵 협상안을 마련,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사드 문제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마당이 아니라, 대북 공조로 북핵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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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 공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확인되면서 한반도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금지선(레드라인)을 넘었다며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과의 핵협상은 없다고 공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 군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북한군 지휘부를 겨냥하는 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했다. 합참은 유사시 북한의 지도부를 표적으로 하는 전략무기 발사 장면 영상을 대거 공개했다.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가상의 평양을 타격하는 장면은 자극적이다.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맞대응으로 조성된 긴장 국면을 한국이 더욱 엄중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응해 5일 오전 동해안에서 열린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타격훈련에서 한국군 탄도미사일 현무-2A(왼쪽)와 주한미군 에이태킴스(ATACMS)가 동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양국 군의 맞대응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의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의한 결과다. 문 대통령이 무력시위에 나선 것은 북한에 경고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확고한 미사일 연합 대응태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군사적 대응은 과거 북한 도발 시 정부가 말로만 강경 대처를 외쳤다는 비판여론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여론에 부응하는 효과가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무력시위는 해답이 될 수 없다. 그것으로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강제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것이 가능했다면 북핵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군사적 대응은 상대에게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명분을 제공해 결국 악순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무력시위는 남북 당국 간 교류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을 게 뻔하다. 게다가 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어렵게 이끌어낸 북핵 및 남북관계 구상도 구체화하기 어렵게 만든다.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공감을 얻어낸 평화적인 한반도 비핵화 접근 방안이나 한국의 남북관계 주도권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소중한 기회이다. 정부는 군사적 대응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는 어디까지나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정세가 급하고 험하다고 해서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북한이 금지선에 다가간 만큼 중대 국면으로 인식하고 난국 타개를 위해 창의적인 접근법이 요구된다. 특히 이럴 때일수록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북·미 간 접점을 만들어주는 견인차가 될 수도 있다. 대북 물밑 접촉을 꺼릴 이유가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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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귀국 엿새 만에 숨졌다.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웜비어의 죽음을 애도하고 북한의 반인권적 행태에 분노하고 있다. 무고한 관광객을 억류하다 숨지게 만든 북한의 야만적 행태는 어떤 이유로든 합리화할 수 없다. 북한의 반인권적 폭거를 규탄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웜비어 가족에게 조의 전보를 보내 위로하면서 “북한이 인류보편적 규범과 가치인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웜비어의 명복을 빈다.

웜비어는 북한 여행 전까지만 해도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스물두 살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3월 억류된 직후 갑자기 식물인간이 됐다. 북한은 그가 식중독에 걸린 뒤 수면제를 복용했다가 혼수상태에서 빠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웜비어를 진단한 미국 의사들은 식중독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가족들은 웜비어가 혹독한 고문과 학대를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건강하던 그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질 리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라도 웜비어 가족의 주장에 공감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정부전산망 개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난 후 사망한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거론하며 북한을 “잔혹한 정권”이라고 규탄했다. 워싱턴 _ AFP연합뉴스

북한이 웜비어에게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하면서 적용한 것은 체제전복 혐의였다. 그가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대학생인 웜비어가 북한 체제전복을 하려고 했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 그가 한 행위가 아무리 북한의 관점에서 범죄에 해당한다 해도 턱없이 과중한 혐의를 뒤집어씌운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웜비어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을 때 치료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이런 비인도적 행태는 북한 정권의 폭력성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북한은 현재 한국인 6명 등 10여명을 억류하고 있다. 북한은 이들을 즉각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정부도 석방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웜비어 사망이 그의 가족과 미국인에게 비극일 뿐 아니라 북·미관계 차원에서도 나쁜 신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긴장상태인 북·미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다음주 열릴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첫 한·미 정상회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북한은 미국이 안보를 위협한다며 핵개발에 몰입하고 있지만 인명과 인권을 경시하는 태도야말로 더 큰 위협이다. 북한은 웜비어의 북한 체류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국제사회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또한 책임을 통감하고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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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 문제는 본질적으로 미·중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여서 미·중을 상대로 한 외교적 해법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일본, 괌 등의 미군기지를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사드 배치라는 주장을 중국은 믿지 않는다. 중국 북방 군사기지 활동의 탐지, 나아가 한국의 MD체계 편입, 그래서 동북아지역 세력 불균형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치졸한 방법이지만 한국에의 경제보복 등을 통해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사드의 한국 배치가 필요한 상황, 더욱이 전 정부와 합의하에 들여온 사드포대를 철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격언을 생각하자. 우리가 이 문제를 잘 해결한다면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자주적 외교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는 관계로의 발전이 가능케 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더욱 신뢰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오른쪽)이 지난 21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군 관계자들과 웃는 모습을 22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 문제의 본질을 생각하자. 모든 것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 문제 해결의 키는 북한에 있다는 사실이다. 핵미사일 개발의 중단, 나아가 궁극적으로 폐기에 이르는 방안을 찾는다면 사드 갈등 상황은 끝날 것이다. 먼저 사고의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역지사지의 관점이 필요하다. 1994년의 제네바 합의, 2005년의 6자회담 9·19성명, 그리고 북한과 중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던 핵폐기의 전제조건인 북·미 간의 관계정상화, 이를 위한 정전협정의 평화체제 전환, 그리고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의 해소를 위한 지원 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만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북한에 있어 현재의 한·미동맹하의 군사적 위협은 그들의 생존 문제여서 결코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1960~1970년대 공산적화통일의 두려움을 느꼈듯이 북한은 체제붕괴 흡수통일이라는 공포 속에 살고 있다.

지난 대선 막바지 기간 핵미사일 실험을 자제하고 새로운 정부의 출범을 기대한 북한이 새 정부가 등장하자마자 미사일 실험을 감행한 것은 나름의 계산이 포함된 메시지라 필자는 생각한다. 대북 적대시 정책에는 핵미사일 지속개발로 임하겠지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원한다는 주중 북한대사의 발언, 그리고 조선신보 등 언론을 통한 대남 메시지를 보면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이 강도 높게 진행되는 현시점에서 대북 특사 파견 등 남북대화 제의에는 어려움이 크다고 본다. 이런 방법은 어떨까. 민간의 북한 영유아 지원 및 긴급한 의료 지원사업을 허용하면서 내년 평창올림픽 개최를 감안, 지난해 추진 중 핵실험 때문에 중지됐던 남북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친선경기의 개최 등을 통해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방법 말이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활발히 진행된 사회문화교류 속에서 우리 사회에도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과 경험을 소지한 많은 민간 대북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이 북한과의 접촉에서 우리 정부의 현재의 난처한 입장 그리고 남북관계 재개를 위해 북한이 먼저 취해야 할 조치 등을 설명하면서 북한을 설득하여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방안이 실효적이라 생각한다.

이성원 | 한라대 동북아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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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뀌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 정권교체도, 정권붕괴도, 침략도 하지 않고 체제를 보장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미국을 믿어달라”고도 했다. 외교언어치곤 거칠지만 진정성은 묻어난다. 그는 지난 3일 국무부 직원 강연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틸러슨의 발언은 정확히 북한의 흉중을 꿰뚫는다. 김정은 정권의 제1목표는 체제 생존이다. 핵개발도 미국의 안보 위협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북한은 주장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체제 보장을 공개 약속했다. 북한의 핵개발 명분과 논리는 거대한 모순에 직면하게 됐다.

이렇게 선명한 반전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처음에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한반도는 전쟁위기설로 설설 끓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화를 거론한다. 대화분위기 조성을 위한 조건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핵과 미사일 실험 동결이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직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국가 관계는 말과 행동으로 구성된다. 말로 명분과 정당성을 주장하고 행동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북한은 틸러슨의 말에 대답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말 한마디로 70년간 쌓인 북·미 간 적대감과 불신을 해소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북핵 게임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대외전략 환경 변화는 대미관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혈맹’ 중국의 태도변화도 북한을 곤혹스럽게 한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후 북한에 실질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시사하고,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에도 적극적이다. 북한으로선 하나같이 아프다. 북한이 핵·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지 못하는 데 미국의 군사적 실력행사와 중국의 대북 압박이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남한 내에서도 ‘우군’을 잃고 있다. 구조적으로 북한의 ‘적대적 이익공동체’인 남한 보수는 허약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자유한국당 여론지지율은 8%다. 불과 열흘여 전인 지난 대선에서 이 당 후보가 20% 넘게 득표한 것이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보수는 대선에서 특유의 색깔론과 이념공세를 폈지만 먹히지 않았다. 과거 보수의 안보공세에 쩔쩔매며 변명으로 일관하던 진보후보가 오히려 보수후보들을 ‘가짜 안보장사꾼’으로 공격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아마도 북한을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공존 추구와 대화를 중시하는 대북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북한을 비난하고 강경정책을 구사하는 보수 정권이 상대하기 쉬울 뿐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고마운’ 존재였다. 남북 간 적대감은 북한에 논리적 자양분을 제공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은 북한의 체제 및 핵개발 논리의 명분과 당위를 갉아먹는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중장거리 ‘화성-12’미사일 발사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며 단호한 대응을 지시했다. 겉으로 북한을 비난하면서 뒤로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북한에 돈을 건네려 하거나, 선거 때 북한군에 남쪽으로 총을 쏴달라고 부탁하는 보수 대통령, 보수 정당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대외정세의 변화는 김정은 정권에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요구한다. 한국·미국·중국 3국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를 국정 최우선 목표로 삼고 공조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의 일이다. 평화적인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도 공유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에 큰 진전을 보였던 6자회담과 9·19합의 등을 연상시킨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접근 방식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북한에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북핵·미사일이 동북아 및 세계평화·안정에 실질적인 위협으로 대두된 지금 북한 역시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해 있다.

핵개발을 통해 안보 우려를 해소하겠다는 북한의 발상은 그 자체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상대국도 핵으로 무장하거나 기존 핵무장력을 강화하게 되므로 안보 우려가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핵개발로 강국이 되겠다는 계획 역시 무모하다. 예컨대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이지만 강국으로 발돋움하지 못했다. 핵개발은 강국을 보장하지 못한다.

특히 주민 삶을 희생하는 핵개발은 오히려 국가의 토대를 약화시킨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저서 <부수적 피해>에서 “다리의 운명은 가장 약한 교각이 결정한다”고 했다. 북한이라는 다리에는 수많은 교각들이 있다. 하지만 핵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부실하고 강도가 약하다. 김정은은 핵을 자랑하기에 앞서 바우만의 경고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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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도발의 파장이 거세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주는 타격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대해 제재와 대화의 병행 노력을 공언해왔지만 북한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탄도미사일로 도발했다. 대화의지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문제 정책적 공간과 운신의 폭이 상당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본토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수준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 본토와 태평양 작전지대가 타격권에 들어왔다”고 공언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순 없지만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현실이 될 수 있다. 북핵이 미국 본토를 위협하게 되면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핵 문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은 위기관리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함께 위기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한 별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핵 실험·미사일 발사 동결 등 대안을 제시하고 주변국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취임에 맞춰 4강 특사 파견과 정상회담 등이 유용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북핵 접근법에는 이제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북한은 핵보유국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데 제재에만 의존한 북핵 폐기 입장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어떤 대안이나 비전 제시도 없이 대결적 이념공방만 되풀이하는 국내의 낡은 풍토도 바꿔가야 한다. 문 대통령이 역설하던 ‘진짜 안보’를 구현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공고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안보를 위해 미국의 핵우산 보호 방침을 재확인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또 북핵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한·미 공조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핵 문제 등 한반도 평화는 어디까지나 한국이 주도해 풀어나가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핵 문제 접근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협력과 공조가 중요하지만 한국만의 주체적 외교 역량을 발휘하는 일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를 위해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다.

북핵 문제는 한국전쟁과 북·미 간 적대 관계의 산물이며 그로 인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대립은 동북아 각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국제사회와 공조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풀어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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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송민순 회고록의 비밀 내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작년 11월22일에 외교부 장관에게서 직접 받은 공문이다. 그러니까 송 전 장관은 작년 10월 회고록에 남북 접촉 등 안보 관련 비밀을 담아 출판하면서도 소속됐던 기관장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책에서 국가정보원이 북한으로부터 받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북한 전화통지문의 내용을 4줄에 걸쳐 공개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대통령 선거가 20일도 남지 않은 때, 자신의 책이 진실임을 증명하겠다며, 북한 전화통지문 청와대 문서를 공개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참여정부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 과정을 담을 자신의 회고록 내용과 관련, 당시 정부가 사전 확인한 북한의 입장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건을 21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나는 기억한다. 그가 장관으로 있던 외교부는 2007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고 문서를 공개한 정창수 당시 국회 보좌관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의 외교부는 FTA 보고 문서를 ‘비밀’로 지정하지도 않았었다. 게다가 문서의 내용도 매우 초보적이었다.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미국의 ‘반덤핑’이라는 무역 장벽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되, 미국이 끝내 거부하면 다른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삼척동자도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애초 정부가 제시한 FTA의 기본 목적을 허망하게도 포기한 것이었다. 정 보좌관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공익을 위해 언론에 제보했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정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결국 정 보좌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외교부의 수사의뢰가 없었다면 검찰은 정 보좌관을 기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송 전 장관은 북한이 보낸 전화통지 청와대 문서를 통째로 공개했다. 자신의 자서전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전화통지문 문서가 ‘비밀’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항변한다. 그는 자신이 수사의뢰한 정 보좌관을 잊었을까? 남북 사이에 오간 전화통지문 등은 보호가치가 있는 비밀이다.

나는 묻는다. 그는 어떻게 국정원장이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문서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을까? 그 문서는 사유할 수 없는 공공기록물이다. 송민순 사건은 외교·통상·안보 분야 비밀의 사유화이다. 소수 관료들이 시민이 알아야 할 외교·통상·안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 안보 비밀을 사유화한다. 파당적으로 이용한다.

외교부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위안부 공동 발표를 저질러 놓고도 가장 기초적인 강제연행 인정 여부 협의 문서도 한사코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산 수산물 방사능 검역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사드 배치를 위해 미국과 이미 진행을 마친 환경영향평가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한·미 FTA 협상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국익을 위한 비밀’이라는 나팔을 분다.

그러나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 파당화한다. 사익과 당파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 안보 비밀을 이용한다. 2012년 대선의 북방한계선(NLL) 사건에서도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이란 걸 들고나왔다. 정상회담 회의록이라며 대선 유세에서 읽었다.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해서 반북 공세를 강화한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둘로 갈랐듯이 시민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의 분출을 이념 대결로 편을 가른다.

안보 비밀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두 방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공익을 위한 공개 원칙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보호가치 있는 비밀에 대해선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첫째, 정보공개법을 고쳐 시민의 생명, 안전, 평화와 관련이 있는 정보는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공개 거부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안보 정보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안보가 산다. 이 점에서 송민순 사건에 대한 바른 처리가 중요하다. 관련 기관은 대선 날짜 달력만 쳐다보지 말고, 송 전 장관이 어떤 법적 권한에서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 문서를 취득했는지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것이 안보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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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는 허세도 중요한 전략이다. 적을 공포로 몰아넣고 아군의 사기는 북돋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일까. 전쟁판에서는 병력 부풀리기가 일반화돼 있다. 예컨대 삼국지연의를 보면 주요 전투의 동원 병력이 100만명을 넘기 일쑤다. 적벽대전에는 120만명이 투입됐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당시 위와 촉, 오나라의 동원가능 병력은 모두 합해 87만명 정도였다. 소설가가 재미를 위해 숫자를 부풀렸겠지만 장수들의 허풍도 한몫했을 것이다.

허풍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라가 북한이다. 김정일은 1990년대 초 미국에 대한 핵공격을 공언하곤 했다. 당시 북한은 조악한 형태의 핵폭탄 제조도 불가능했다. 북 외교관들이 플루토늄을 러시아로부터 밀수하다 적발되는 형편이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다르지 않다. 휴전선 지뢰 폭발 사건 때 대외적으로는 전쟁 불사 위협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군에는 전면전 예방을 지시했다. 안팎으로 다른 말을 한 셈이다. 임진왜란 직전 조선 장수들은 선조 앞에서 일본이 까불면 단숨에 대마도를 점령하고 왜왕의 무릎을 꿇리겠다고 큰소리쳤다. 이처럼 허세는 양날의 칼이다.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인도양을 지나고 있다. ㅣ미 해군

한반도로 향한다던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1주일이 지난 지금도 호주 해상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 가능성이 점쳐진 김일성 생일(4월15일) 이전 한반도에 배치될 것이라는 당초 관측과는 큰 차이가 있다. 칼빈슨호의 한반도 전개 소식은 미국의 시리아 공격 직후에 나와 긴장을 고조시켰다. 미국의 ‘선제타격설’ ‘4월전쟁설’ 같은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에 무적함대를 보내고 있다”고 말해 위기설을 부채질했다. 그러나 당시 칼빈슨호는 한반도에서 5000㎞가량 떨어진 인도양에서 다른 작전을 하고 있었다. ‘가짜뉴스’다.  

이것이 미국의 허세인지, 아니면 북한 압박용 심리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북핵 문제를 가볍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한반도는 사소한 불씨 하나도 전면전으로 이어질 우려가 상존한다. 항공모함 배치 같은 중요한 군사 조치는 계획적이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허풍은 포커판에서나 필요하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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