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이고, 역사적인 날이다. 엄격히 말해 그런 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날이다. 미국과 북한의 두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비핵화와 체제보장, 나아가 동북아의 ‘평화’를 구축해 나갈 대장정의 서막을 여는 날이다. 그리고 세계가 ‘정말로’ 이를 주목하고 있다. 건조하게 말하자면 서로의 잇속을 채우고 이에 부합하는 최대한의 명분을 얻고자 함이지만, 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본능적 행위가 이루어지기까지 7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70년이라니… 오나전 캐안습 우리 민족의 일만 아니라면 몰라, 니 맘대로 하세요 생각이 다 들 정도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이 회담의 시작과 협상 과정…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 과정과 하물며 두 정상이 어느 호텔에 묵고 어디로 이동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을 우리가 소상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안다는 사실. 우리가 ‘알 수 있다’는 (너무나 일상적이라 따로 인식하기도 쉽지 않은) 이 사실이, 그러나 어쩌면 이번 회담이 증명하는 남북의 가장 큰 성과일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종전과 평화란 두 단어가 당연히 대두될 것이다. 그래서 또 분명, 이 회담은 한국전쟁과 분단을 기점으로 한 것이겠지만… 남과 북이란 기차가 달려야 했던, 또 달릴 수밖에 없었던… 한 치도 벗어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레일의 출발점은 보다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슬러 올라 1905년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러일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있었던 해이고, 연이어 포츠머스조약, 을사조약이 줄줄이 체결된 해였다. 당시 미국의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누군지, 또 그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와 어디서 어떻게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아는 대한제국의 국민은 없었다. 2차 영일동맹, 포츠머스조약도 마찬가지…. 비로소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나서야 그나마 신문이라도 읽을 수 있는 자들이 예컨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과 같은 논설을 읽고 분노할 수 있었다.

미디어의 발전상을 논하기 이전에 우선 우리는 대화의 상대가 아니었다. 협상이나 회담의 대상이 아닌 객체였고, 알릴 필요도 알 필요도 없는 그 무엇(미안하지만 이 말을 대체할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이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잊어도 좋을 만큼 긴 세월이 지나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 사라진 민족과 국가도 실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었다. 식민지 지배도 전쟁과 분단도 또 냉전의 오랜 대치와 경쟁도…. 크게 보면 1905년에 내재된 시대적 부산물, 내지는 옵션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이지 더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만약 냉전의 승자가 달랐다면, 상대해주지 않는 러시아와의 협상과 회담을 위해 기필코 핵을 개발해야 했던 것이 바로 우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민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이런 타이틀도 그래서 실은 전부 허망한 말들이다. 1905년에 깔린 이 레일 위를 달리기 위한 옵션, 내지는 미션… 번호표에 불과한 말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세월 우리가 달려온 이유는 어쩌면 동등한(까지는 아니더라도) 협상이 가능하고 조약과 회담이 가능한 국가… 최소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국가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남이든 북이든, 1905년의 상황을 생각하면 도무지 우리가 어떻게 이 길을 달려왔는지, 그리고 또 살아남았는지… 가늠이 서지 않는다. 우리 민족의 일이 아니라면 이거 설화입니까? 생각이 다 들 정도다. 한 세기가 흘렀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싱가포르의 테이블을 중재하고 마련하고 그곳에 앉는 직간접적 당사자가 되었다. 이 회담의 시작과 협상 과정…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 과정과 하물며 두 정상이 언제 호텔에서 나와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에… 공동으로 발표할 선언문에 담긴 전체 그림을 소상히 보고 듣고 아는 주체가 될 것이다. 안다는 사실.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이 사실이 그래서 중요하다. 협상과 회담은커녕, 통보조차 받지 못하고 올라야 했던 1905년의 레일에서 우리가 비로소 벗어난 증표이자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늘, 2018년 6월12일 바로 오늘을! 즐기고 만끽하자. 우리에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고 누구나 알다시피 겸손은 힘든 것이다.

세기적이고 역사적인 오늘을 어떻게 보낼 생각이오?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며 보낼 거라 답하고 싶다. 정말이지 그들의 노랠 들으며 두 정상의 회담을 라이브로 지켜볼 생각이다. 방탄소년단의 ‘방탄’은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인데, 10대와 20대에게 가해지는 모든 억압을 막아내고 끝내 자신의 길을 찾는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알 길 없이 들을 길도 없이… 근대라는 시간을 가질 일말의 여유 없이… 그래서 터무니없이 가혹하고 뒤늦은 성장통을 겪어야 했던 남과 북이 오늘, 그리고 이제… 새로운 길을 가려하고 있다. 축하하자. 이 두 명의 방탄소년이 걸어 갈 스스로의 앞길을. 서로가 이행해야 할 저마다의 앞길을… 스스로가 마련한 새로운 레일의 시공식을 지켜보며 오늘 하루를 축복하자.

<박민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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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 사이의 군사분계선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로 상봉하게 될 것이다. 콘크리트 분계선을 넘어 남쪽 땅에 발을 디딘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뜨겁게 악수를 나눈 뒤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정상회담장인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으로 향할 때 사람들은 ‘한반도의 봄’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일산 킨텍스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서는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 때의 2배가 넘는 2800여명의 기자들이 취재등록을 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24일 오전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한병도 정무수석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차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는 회담 사흘 전인 24일 평화의집에서 리허설을 열었다. 25일에는 북측 선발대가 내려와 합동 리허설을 하게 된다. 이제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일만 남았다. 북한과 미국이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위기가 고조되던 한반도에서 불과 4개월 만에 이처럼 드라마틱한 전환이 이뤄지리라곤 상상조차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변화의 시동을 건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올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방침과 남북관계 복원에 나설 뜻을 천명했고, 김여정 특사 파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제안,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선언 등 대담한 선제조치로 대화 흐름을 주도해 나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수십년간 쌓여온 미국 내 대북 불신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이 보낸 비핵화 메시지의 진정성을 감별해내고 적극 호응하면서 대전환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초심을 유지하면서 일관되게 ‘바닥 다지기’를 해오지 않았더라면 한반도의 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북핵위기가 한창일 때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한편으로 한반도 전쟁반대를 천명하고 북한에 대화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이율배반적 처지에서도 지혜와 용기, 균형감각을 잃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은 특정 세력의 정치이벤트가 아니다. 북한의 변화도 ‘평화공세’로 폄훼할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보수세력들도 이번 정상회담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지금 남북관계의 큰 바퀴가 70년 만에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종착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곧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지대가 사라지는 것을 우리 모두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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