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차 핵실험 소식이 전해지자 한반도는 순식간에 화약 냄새에 휩싸였다. 수소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항모강습단, 전략폭격기 같은 전쟁 이미지가 이 땅을 뒤덮고 있다. 차원이 다른 조치, 더 강력한 대응, 군사적 옵션, 자멸, 최고의 적의, 최강의 무기, 최악의 언어가 좁은 한반도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을 빼앗는 이런 소란과 불안에도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이 실패는 북핵 문제를 외면했던 오바마 때문만도 아니고, 남북관계를 단절한 이명박·박근혜 때문만도 아니다. 한·미 모두의 실패이자 트럼프·문재인 대통령 공조의 실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한국은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대화 거론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면 트럼프도 해당된다. 그는 군사적 조치를 언급하는 사이사이 대화론을 불쑥 꺼내곤 했다. 진짜 대화를 했다면 다른 경로가 펼쳐졌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대화론은 건성이었기 때문이다.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 달리는 북한을 멈춰 세울 만한 것을 그는 내놓지 않았다. 그만큼 무책임했고 무능했다. 한·미 연합훈련 축소인지 아닌지도 애매했고 그런 것조차 대화와 반대되는 신호들에 압도되었다. 보리에 쌀이 몇 톨 섞였다고 쌀이 되는 건 아니다. 북한도 보리와 쌀은 구별할 줄 안다.

해군이 북한의 해상도발에 대비해 5일 동해에서 함포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속초함, 광명함, 이병철함. 연합뉴스

이번 핵실험이 분명하게 드러낸 것은 트럼프가 김정은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이다. 8월22일 트럼프는 말했다. “김정은이 우리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북한을 유인할 만한 어느 것 하나도 내놓지 않은 채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편 것이다. 13일 뒤 긍정적인 일이 아니라, 수소폭탄 실험이란 부정적인 일이 일어났지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 정부는 그런 트럼프와 발을 맞추고 때로는 한발 더 나아가기도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사드 조기 배치, 독자적 대북 제재, 핵잠수함 도입, 미사일 탄두 중량 제한 해제, 전술핵 검토와 같이 군사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북한이 핵보유국의 목표에 다가갈수록 대북정책 목표를 비현실적으로 높게 잡았다. 핵실험 유예도 어려운 판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를 하자고 트럼프와 합의했다. 중국의 도움이 필요할 때 한·미·일 협력을 강조, 중국을 자극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해명했다. “전략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전술적으로 일관성 있게 한길로만 갈 순 없다. 전술적으로 다양한 변화들이 다 전략적 목표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부의 전략적 목표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핵동결이라고 하자. 그동안 정부가 한 것은 북한 도발 때마다 눈에는 눈식의 일대일 대응이었다. 그게 대북정책의 실체였고 전부였다. 그 때문에 전략적 목표는 하늘 높이 사라져 보이지 않고, 임기응변적 조치들이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전략적 목표가 없었던 게 아니다. 북한의 도발에 일일이 대응하는 데 충실하다 샛길로 빠지고, 목표에서 멀어지는 줄 몰랐을 뿐이다. 몸통이 꼬리를 흔든 게 아니라, 꼬리가 몸통을 흔들었다는 점에서 두 정부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중요한 순간에 전략적 목표를 놓쳤다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중요한 순간이란 말할 것도 없이 핵실험하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다. 실현가능한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실천적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그때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전쟁위기, 중첩된 안보위기의 수렁을 박차고 나갈 생각을 않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코앞에 닥쳤다. 전술적 변화라는 이름으로 우회할 시간이 없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올바로 학습하고 김정은을 잘 다룰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닥친 위기에 솔직해져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낡은 명분, 비핵화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버려야 한다. 선제적인 한·미 연합훈련 중단으로 대화 국면을 조성,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유도하고 핵동결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런데 훈련은 이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핵 문제 해결 기회를 포기하고서라도 지켜야 할 어떤 숭고함이 훈련에 있는 걸까?

6차례나 실패를 반복한 대북정책이 있다면 그건 ‘실패한 방법’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7번째 실패를 각오해야 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빠르면 북한 정부 수립 기념일인 9월9일 경험할 수 있다. 완성된 ICBM 발사일 수도 있고, 7차 핵실험일 수도 있다. 그것도 끝이 아니다. 8번째 실패가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3일 광화문광장은 휴일 나들이 인파로 북적였다. 눈부신 초가을 햇살 아래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아이들은 달리고 소리치고 웃었다. 보수층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안보불감증이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엄중한 정세라고 해도 이 정도의 행복과 평화조차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은 과도한 엄숙주의다. 70년 가까이 머리띠 두르고 북한 규탄 구호를 외쳤어도 달라진 것은 없지 않은가.

1주일 전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이 일본 상공을 통과해 날아갔을 때 일본은 발칵 뒤집어졌다. 학교가 휴교하고 신칸센이 멈춰서고 신문들은 앞다퉈 호외를 냈다. 일본 정부는 긴급 대피령인 ‘J얼러트’를 발령했다. 지진 때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반대로 한국인은 지진을 더 두려워한다. 북핵을 머리 위에 이고 사는 한국과 남의 동네 일로 보는 일본의 반응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한 3일 오후 도쿄 거리에서 한 시민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북한 핵실험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도쿄 _ AP연합뉴스

김정은은 핵 도박판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기대 이상으로 부응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쇼의 가장 충실한 관객은 도널드 트럼프다. 누구보다 빨리, 자주 반응한다. 반응 패턴은 불가측하고 피아를 넘나든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면 김정은을 극찬하고 도발하면 장롱 속 군사옵션을 꺼내든다. 트럼프가 중심인 국제사회 북핵 대응체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발언에는 사실과 의견이 섞여 있다.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한과 대화를 해왔고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했지만 대화는 답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과 대화를 죽 해온 게 아니라 하다 말다 했다. 클린턴이 대화 창구를 열어놓으면 부시가 창구를 닫는 식이었다. ‘터무니없는 돈’이란 말도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북·미 제네바 합의로 북한에 중유와 식량을 제공했지만 북한은 그 대가로 핵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북핵 사태의 수혜자인 트럼프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트럼프는 북핵 사태를 주도하면서 러시아 스캔들 등으로 흔들리는 국내 정치적 기반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터무니없이 돈을 쓰는 건 북한이다. 가장 발사비용이 싼 스커드미사일만 해도 1발에 600만~1000만달러인데, 북한은 지난 6년간 6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나라 곳간을 털어 도발하는 것을 트럼프는 감사해야 할 입장이다. 사학스캔들로 지지율이 폭락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북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김정은의 핵도박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의도치 않게 아베와 트럼프의 정치적 환경을 개선해주기도 했지만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쥐고 강대국들을 호령하는 편익이 훨씬 더 크다. 그러나 앞으로도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김정은은 핵보유국 지위와 영구적 체제생존을 최종목표로 추구한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려면 미국과 대등한 핵억지가 형성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핵무기 종류의 다양화와 운반체계 완비를 뜻하는 다종화다. 북한은 핵무기 종류는 구비하고 있지만 운반체계는 그렇지 못하다. 일종의 소모품으로 200대가량 보유 중인 미사일 발사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제작 기술은 없는데, 유엔 제재로 수입할 길은 막힌 상태여서 언제 동이 날지 모른다. 향후 발사대 부족으로 미사일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북한은 과거 병뚜껑 제조기술 부족으로 생활필수품인 병 생산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용 잠수함도 버거운 문제다. 발사관 3개짜리 대형 잠수함을 건조해야 하는 데 비용, 시간, 기술 모두 북한 편이 아니다. 미국과의 핵경쟁은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려는 것과 유사하다.

기술적 난관을 극복했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미국이 자신을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핵보유국 지위를 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6차례 핵실험 후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한 ‘파키스탄 사례’를 내심 기대하고 있겠지만 두 나라는 차이가 크다. 파키스탄은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고 국제사회와 반목하지도 않았다. 파키스탄의 핵이 숙적 인도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믿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은 이 중 어느 대목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김정은의 핵도박은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핵무력 교리도 어느덧 안보와 생존의 수단에서 공격 중심으로 변질됐다. 자위 차원의 핵개발 명분도 상실했다. 생존을 넘어 국제정치 현실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강대국을 꿈꾸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불가능하고, 추구하면 안되는 끔찍한 망상이다. 묻고 싶다. 북한은 왜 핵국가가 되려고 하는가.

<조호연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북한이 어제 기어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이후 1년 만에, 그리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넉달 만에 핵실험을 한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 3시간 뒤 조선중앙TV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 완전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ICBM 시험발사에 이은 북한의 6번째 핵실험 도발로 한반도 정세는 중대 국면을 맞이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지진 규모는 5.7이다. 폭발위력이 지진규모 5.04(10㏏)였던 5차 핵실험의 5~6배에 달하는 것이다. 진짜 수소탄의 폭발위력 100㏏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핵실험 중 폭발력이 가장 강했다. 북한은 ICBM급 ‘화성-14형’에 탑재할 수소탄 핵탄두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사진까지 공개했다. 이 때문에 당국도 인공지진 규모로 미뤄 수소탄 실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수소탄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수소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핵 기술을 최고 수준으로 진전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 등 핵무장화 마지막 완성 직전 단계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위협 이후 25년 만에 핵 무장을 완성하기 일보직전까지 온 것이다.

4일 새벽 동해안에서 육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를 발사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우리 군은 오늘 새벽 일출과 더불어 공군 및 육군 미사일 합동 실사격훈련을 실시했다"며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한 강력한 경고 차원"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격에는 육군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현무와 공군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동해상 목표 지점에 사격을 실시해 명중시켰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은 비핵화·탈핵 흐름에 역행하고 한반도를 위시해 평화를 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망동이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적 해결노력도 북한은 철저히 묵살했다. 김정은 정권 하나의 보위만을 위해 전 세계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핵도박을 강행하는 북한을 강력히 규탄한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일정표에 따라 움직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의 명분을 미국의 핵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그런 주장은 명분을 잃었다. 북한의 핵개발 수준은 자위적 차원을 넘은 지 오래다. 공세적 도발의 주체가 북한인 것은 어떤 논리로도 덮을 수 없는 사실이며, 피해자인 양 행세하는 것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혈맹이라는 중국도 핵개발에 극구 반대하고, 북핵에 관한 한 북한을 두둔하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한국 정부마저 등을 돌리면 북한은 기댈 곳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고립무원 속에서 김정은의 광기 어린 핵무기 집착이 계속되는 한 국제사회가 어떤 제재와 압박을 가해도 북한은 항변할 수 없다. 북한은 당장 도발을 중단하고 국제사회가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한 뒤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 단호한 대응을 천명했다. 한·미 양국 합참의장은 전화 통화를 하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군사적 대응 방안을 준비해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한반도에 전운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발로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핵개발에 몰두하는 정권이 오래갈 리 없다. 북한이 핵무장 완성에 이르려면 핵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마지막 관문을 넘어야 한다.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미국, 중국 등 관련 당사국들은 북한의 폭주를 멈출 실효성 있는 카드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특단의 대책이 화급한 상황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